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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맞이수양회 심포지엄] 캠퍼스 문화와 새신자 정착-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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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섬김이
댓글 0건 조회 1,251회 작성일 03-03-11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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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개강맞이 수양회 연구발표 (김요셉)

N세대 제자양성 어떻게 할 것인가?

요절/  막3:14 “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

앞에서 두분의 발표를 통해 “세상 참 많이 변했다” 라고 생각이 문뜩 듭니다. 그러면 이런 변화의 시대에 우리의 제자양성도 어떻게 변해야 하지 않는가! 생각도 갖게됩니다. 그러나 제자양성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죄문제는 동일하고 예수님의 제자양성 방법 그 이상 완벽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자양성을 처음 시작하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선 저는 예수님의 제자양성을 생각하며 제자란 무엇인가? 왜 제자양성을 해야하는가? 어떻게 제자양성을 해야하는가? 세가지 질문을 통해서 함께 배워보고자 합니다. 

첫째, 제자란 무엇인가?

제자란? 영어사전에 ‘disciple’ 즉 ‘문하생’으로서 ‘배우는 자’의 의미가 있습니다. Discipline은 ‘disciple’ 과 같은 어원으로 훈련 또는 훈련하다의 의미를 갖고있습니다. the disciples 라고하면 예수님의 12제자를 말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를 볼 때 ‘제자’란 말 자체가 예수님을 배우고 훈련받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제자양성’이란! 예수님을 배워 예수님의 사람으로 만들고 다시 그런 사람을 키워내는 작업을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갈 4:19에서 말씀합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양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해산의 수고를 하는 것이 목자의 역할입니다. 또한 제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며 그에 대한 축복도 범상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실 때 ‘자기의 원하는자 들을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겸손과 순종, 성실의 기본이 되어있는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또 막 8:34절을 보면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시며 ‘자기 부인, 자기십자가’를 전제조건을 거셨습니다. 고난도 있지만 벧전2:9절 말씀과 같이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상만민을 구속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중추역할을 하게 되는 큰 축복이 있습니다.

둘째, 왜 제자양성을 해야하는가?
우리는 구원받았으면 됐지 어쩌다가 힘든 제자양성에 몸담게 되었는가! 가끔씩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나 혼자 축복받고 문안하게 신앙생활 할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이기적인 신앙생활에 머물라고 우리에게 비싼 피값을 치루지 않으셨습니다. 선데이 크리스챤으로 머물만큼 예수님의 희생이 그렇게 가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21장에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마28:19,20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자양성은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또 예수님의 지상명령이기 때문에 우리가 순종하여 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값을 치룬 자들이 해야할 의무입니다.


셋째, 어떻게 제자양성을 해야하는가?
그러면 우리가 제자양성을 잘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가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양성의 분명한 목적을가지고 계셨습니다. 막3:14“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 우리는 이 말씀에서 두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는  치료와 가르침, “전도와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는 영적인 리더가 되도록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막1:15-17절을 보면” 네가 너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심으로 재생산의 강한의지를 드러내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제자양성은 ‘죄인을 치료하시는 과정, 훈련하는 과정 ,재생산’하는 과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1과정, 복음신앙을 통한 치료와 회복,  예수님이 제자들을 훈련하시면서 가장 해심적인 내용은  예수님을 아는 고백이었습니다. "당신은 나의 주요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고백의 단계가 되기까지 베드로는 많은시간이 걸렸습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것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신앙에 대한 뿌리가 생겼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말씀공부를 통해 예수님을 알고 구원을 얻었지만 이제까지 세상에서 익혀온 삶의 패턴 ,너무나 다른 환경에서 만들어진 인생문제와 상처들로 인하여 제자로서 성장하는데 많은 걸림돌이 있습니다. 특히 개인주의와 물질주의, 세속화된 생활패턴, 자기생각과 고집에 젖어 있던 양들이 복음적인 가치관을 갖기까지 돕는다는 것은 많은 인내와 사랑이 필요합니다. 질서와 권위를 해체시키는 포스트 모더니즘 사상 그리고 개성과 자율, 자기이익이 더 중요시되는 개인화의 물결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권위에 순종하고 헌신하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목자는 이기적인 양을 보면 이제까지 시간과 물질을 드려 간을 좀 떼어준 것이 아까운 생각이 들기도합니다. 또 더디변화하는 양을 보면 같이 지쳐서 속병을 앓기도 합니다. 말썽피우는 양들은 조용히 스스로 힘들어서 나가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양의 있는 모습그대로를 예수님과 같이 영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내와 중보기도로 도와줘야합니다. 목자의 인위적인 회개의 푸쉬보다 병든양이 주님을 만나 병이 낫도록 간구하는 심정을 가져야합니다. 병이 나으면 건강하게 주님의일을 할 수 있다는 소망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2과정, 말씀에 대한 자세와 말씀훈련,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성장과 열매는 땅의 기초에 있음을  저희에게 잘 가르쳐주셨습니다. 제자양성도 좋은 마음 밭가운데 토양을 만들 때 훈련이 될 수 있습니다. 제자양성의 기본은 말씀의 맛을 느낄 수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말씀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도록 해야합니다 또한 스스로 남을 가르치면서 자신이 말씀을 지키도록 해야합니다. 또 지식을 얻기보다 생각하도록 하고 의미를 곱씹고 삶 가운데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말씀생활에 맛을 느끼도록 하면 자연스레 성장하게 됩니다. 자기생각보다 한 말씀을 앞세워 순종하도록 도울 때 그리스도의 사람이 됩니다. 머리와 마음에 온통 죄와 세상의 찌끼들이 묻어있을 때 끊임없는 말씀훈련을 통해서 사상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게 됩니다. 우리모임은 말씀훈련을 할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 말씀훈련의 기본은 양식과 주 소감입니다. 소감에도 종류가 많이있습니다. 주일소감,인생소감,연요절소감,졸업소감,구두소감까지, 양들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피력할 기회를 많이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양들은 필(feel)이 꽃혀야하는데 자꾸 글을 쓰라고 하니 괴로와합니다. 그래도 차근차근 소감을 통해 말씀에 자신을 복종시킬때까지 인격적으로 도와야합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전도훈련을 마치거나 역사후에는 항상 소감을 발표하도록 하셨습니다. 지성과 역사성을 갖춘 제자로 성장하려면 영상메시지외에 소감에서 필(feel)이 꽂혀야합니다. 또한 목자는 자신의 이야기보다 문제를 듣어주고 한 말씀을 주어 순종하도록 기회를 주는 역할을 해야합니다. 예전에는 “이렇게 하세요” 라고 말해도 되는 권위의 시대였지만 이제는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는데 이것이 더 좋습니다. 이렇게 해 보세요. 하나님의 뜻은 이것입니다.” 라고 인격적인 선택의기회를 주어야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목자는 말씀의 방향을 분명히 주지만 최대한 겸손으로 감정을 절제하고 사랑의 마음으로 말씀을 대변해야합니다. 권위를 해체시키는 포스트 모더니즘시대에도 헤체시킬 수 없는 유일한 권위는 오직 하나님 말씀입니다. 목자의 권위로 주는 방향은 부작용이 많지만 말씀의 권위로 주는 방향은 부작용이 없습니다.

제3과정, 복음적인 삶의 실천, 예수님의 제자양성방법중 가장 실제적인 것은 공동생활이었습니다. 앞에 말씀에서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며…”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실 생활에서 같은 공기, 같은 한솥밥을 먹으며 본을 보이시고 현장교육을 시키셨습니다. 이는 세상으로부터 악의 영향력에서 보호하고 다른인격과 만나 부딪히며 배우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목자는 계속적으로 영적인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듯 목자가 그리스도를 닮고자 온 힘을 기울일 때 그러한 제자가 나오게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겸손과 섬김의 본을 보이신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라이프 투게더(life together)에는 겸손이 있고 영접과 섬김과 관용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온 몸으로 본을 보이셨습니다. 제자들이 바리새인들에게 이삭을 잘라 비벼먹다가 걸렸을때에 변호해주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인간적인 말에 대해서는 “사단아 물러가라” 단호히 책망하시는 분명한 자세를 보이셨습니다. 사랑과 영적인 분명함이 돋보이셨습니다. 무엇보다 중보기도와 인내로 변화하기를 더디하는 제자들을 죽을때까지 섬기셨습니다.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도 실패한 제자들을 섬겨주셨습니다.

  N세대 양들은 온라인에서 만나고 문자메시지에서 만나기를 더 좋아합니다. 개인시간을 더 원하고 참견받는 것을 원치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겉도는 관계를 허물지 않으면 제자로서의 성장이 없습니다. 어찌하든 오프라인에 끌고나와 목자와 부딪히고 성장해야 합니다. 목자가 때로는 실패담을 이야기 해 줄 수 있고 허물과 눈물을 보일  수 있을 때 양들은 위로와 희망을 얻습니다. 목자가 ‘저는 더했어요’ 라고 헤매던 이야기를 솔직히 이야기하면 오히려 양들은 ‘자기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하며 큰 위로를 얻습니다. 복음안에서 솔직함과 진실함이 신뢰를 만들고 제자훈련을 위한 구체적인 관계성을 만듭니다. 목자가 본을 보여도 잘 따라주지 않는 시대가되었습니다. 목자는 본을 보이고 양이 감동받기를 바라는데 양들은 인정을 안해주고 내몰라라 하면 할 말이없습니다. “…형제님 이거 내가 본을 보이는거니까 따라해야 됩니다.” 라고 말할 수도 없고.. 난처합니다. 그러나 본을 보여주기 위해서 본을 보이는 목자가 되어서는 안되고 진실과 겸손함으로 해야합니다.

우리 모임의 가장 큰 특징은 진실함가운데서 나오는 웃음과 기쁨이었습니다. 고령의 시니어 목자님이 앞에 나와 어린아이와같이 싱스퍼레이션을 해도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차마 이야기못할 죄문제를 성도앞에 고백해도 창피하지 않았습니다. 내양 네양 누가와도 처음보는 사람에게 아는척하고 크게 웃고 영접했습니다. 그래도 어색하지않았습니다. 남이 섬기면 경쟁적으로 섬기려 실갱이를 했습니다. 한명의 양이 수양회에 가기까지 먼 제주도까지 가서 동역하여 데리고 왔습니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다 복음적인 목자의삶, 제자양성을 향한 주님께 대한 진심에서 나온 개인과 공동체의 힘이었습니다. 그러나 개인주의 시대는 이러한 우리의 진실된 모습들과 대치됩니다. 개인주의시대에서는 무관심,이기적인 마음과 싸우고 훈련해야 합니다. 겸손과 섬김의 훈련이 되기까지 같이 책상을 접고 예배를 준비해야합니다. 방을 닦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형제의 구멍난 양말을 감당하는 훈련도 해야합니다. 함께 하기 힘든 평신도 목자님들은 먼저 관심과 중보기도의 수고를 해야합니다. 양의 영적상태는 물론이거니와 양의 약속, 물질적, 육체적 상태를 꼼꼼히 알고 있어야합니다. 장,단점,성격,건강,생일, 음식,자라온환경, 관심사등…모든것을 잘 알아야합니다. 관심은 곧 사랑의 실천입니다. 수시로 만남을 통해 관계성을 가지고 밥먹으면서 확인하고, 길가면서도 자연스럽게 영적인 씨가 있는 사랑의 말을 해야합니다. 이러한 진실된 관심과 섬김이 이시대의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함께 제자양성을하기위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변하는 것 같지 않는 양을 보면서도 소망을 두고 인정과 칭찬을해야 합니다. 때론 눈물이 쪽 빠지는 책망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때론 과감한 역사위임을 통해 주인의식과 책임의식을 심어야합니다. 때론 영,육간 구체적인 비젼을 갖이 고민하고 기도해야합니다. 양이 학업이나 인생문제에서 한가지 실패하면 그것을 만회하고 열매를 맺기까지 도와주어야합니다. 1:1목자와 팀과 요회와 센터에서같이 기도해주고 관심을 가져주어야합니다. 목자와 양이 영적인 ,육적인 일 가릴 것 없이 함께 울고 함께 웃고 함께 기쁨을 나눌 때 제자양성이 이루어집니다. 이와 같은 관계성은 모두 복음적인 삶을 몸소 가르치고 죽을 때까지 제자들을 섬기신 주님의 정신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공동생활을 통해 보여주신 것은 제자들의 연약함과 허물을 있는 모습그대로 감당해 주신것입니다. 양은 언젠가 목자가 자신의 허물과 연약함을 감당해 준 것을 알고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목자가 하나님을 믿고 제자양성할 때 기다림의 믿음, 허물을감당하는 사랑의 기초를 통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제4과정, 예수님을 믿는 믿음훈련과 개인신앙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특히 강도높은 믿음훈련을 많이 주셨습니다. 특히 믿음이 없을 때 가장 크게 호통하고 단호히 책망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가족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는 훈련에서부터 인간적인 정과 자기생각을 부인하는 강도높은 제자훈련으로부터 제자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광풍훈련, 배척받는 훈련, 전도훈련, 죽음의 현장에서 믿음을 갖는 훈련등 영적지도자로서 성장하기위한 강한 믿음훈련을 받았습니다. 제자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의 시험을 통과 해야합니다. 때론 나의 소원과 계획을 포기하고 먼저 주님께 나의인생을 드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믿음으로 졸업하고 믿음으로 선교사로 나가며 믿음으로 결혼을 해야할 때가있습니다. 믿음으로 학과생활을 하고 주님께 헌신하는 법을 배워야할 때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졸업후 직장준비보다 말씀의 종으로 훈련받고자 결단해야할 때도 있습니다. 믿음으로 자기부인을해야할 때가 있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하는 때가 있습니다. 목자는 양이 결정적이 시험의 때 기도하고 방법적인 것 보다 믿음의 원리를 알도록 도와 주어야합니다. 히11장에 많은 믿음의 선진들의 예를 들며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앞에서 내적으로 성장하도록 영혼의 내용을 도와야합니다. 또한 믿음이 없을 때는 단호히 책망하고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리도록 인격적으로 섬겨야합니다. 마6: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말씀은 이시대에 가장 도전이 되는 말씀입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장래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양들이 하나님께 헌신하기를 꺼려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한말씀을 통해 망하지 않고 승리하는 믿음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도전해야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둘씩 둘씩 짝지어 나아가 전도케 하시는 훈련이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관계성이 힘든 양들을 목자가 함께 캠퍼스를 나아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도전하는 믿음훈련을 해야합니다. 궁극적으로 이들이 믿음을 가지고 여러모양의 양들을 또 제자양성하는 것이 제자양성의 목표가 되어야합니다.


결론적으로 제자양성은 한사람을 인도하여 쓸모있는 주님의 사람으로 키워내기까지 많은 희생과 수고가 필요힌 사명입니다.  무엇보다도 인내와 지속적인 기도의 수고가 필요합니다. 한사람이 하는것도 아니요 함께 동역해서 일궈내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제자양성은 내가 하는 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하다보면 방법을 더 많이 생각하고 프로그램을 짜고 잔기교를 부리다가 내면을 섬기는 것을 놓치기 쉽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제자로 성장하는 것은 결국 내면과 사상, 인본적인 습관을 변화시키는 투쟁입니다. 또한 제자양성은 예나 지금이나 시대는 변하지만 양들의 죄문제는 동일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양성 방법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예수님의 집요한 제자양성 스피릿을 배우고 그 열정을 회복해야만 물질,세속주의 물결가운데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 제자를 키울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을 살리는일이요 또한 내가 사는 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자리에 있습니다. 또 유언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거룩한 뜻과 소망을가지고 남들이 하지않는 제자양성이라는 사명을 위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주님께서 저희에게 변함없는 주님의제자양성 정신을 갖게하사 홍대와 세계를 변화시키는 작은 불꽃을 일으키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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