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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서 디모데후서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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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Joo James
댓글 0건 조회 364회 작성일 11-08-0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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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동교 신수 양평밸리 여름수양회 주제강의 제 3강
                                                                    영감된 말씀
말씀/디모데후서 3장                                                                                        요절/디모데후서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함이니라”

  여름수양회를 통해서‘다 이루었다’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십자의 죄사함의 은혜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인생방향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이 시대 빛의 사도요, 그리스도의 군사요,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본문 말씀을 통해 영감된 말씀이 살아있는 성경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I. 네가 이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1-9)
 디모데 후서는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쓴 서신입니다. 순교직전 옥중에서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눈물로 쓴 사랑의 편지입니다. 사도바울은 성령에 감동되어 변화된 사람입니다. 변화된 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 이방인의 사도로 믿음의 경주를 마쳤습니다. 사도 바울은 한 곳에 정착하지 않았습니다. 소아시아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천사도 흠모하는 선교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오랜 살았다면 우리 한국까지 와서 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조금 일찍 성서한국이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에베소교회는 성령의 능력과 전도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에베소교회 안에도 거짓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은 교회에 분쟁과 혼란을 야기 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교회 공동체는 분열되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믿음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딤후2:18). 디모데는 이런 어렵고 혼란스런 에베소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격려하기 위해 증보기도하면서 눈물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고통하는 말세의 때가 이른 것을 알라고 합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Mark this)”여기서 알라고 하는 말은 주목하라는 의미요,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면서 알아야 될 것은 확실히 알아야합니다. 그러나 몰라도 되는 것은 아예 모르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면 인터넷 도박, 게임, 절도, 사기 등은 처음부터 모르는 것이 좋습니다. 요즘 많은 젊은 청년들이 게임에 중독되어 몇 날 며칠을 잠도 자지 않고 게임만 합니다. 밥도 먹지 않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웁니다. 학교도 가지 않고 집에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세에 관한 내용은 꼭 알아야만 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말세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부터 다시 오실 재림의 때까지를 말합니다. 말세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고통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고통(사바투)이란 말은 '괴롭고 견딜 수 없는 아픔으로 구역질이 나고 현기증이 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NIV성경에는‘terrible times’라고,  RSV에는‘times of stress’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곧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고통이 가득한 시대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소득이 많아지고 복지가 좋아지면서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 유토피아, 테크노피아, e-편한 웰빙의 세상이 올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할수록 사람들의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더욱더 개인주의가 만연합니다. 편하고 안락하지만 정서적으로 메말라 갑니다. 편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사람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인들 질병의 90% 이상이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말세는 고통하고 신음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면 말세의 구체적인 특징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말세에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합니다. 극도의 이기주의가 팽배해져서 오직 자기만 생각하고 남에게 무관심합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2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한 나머지 다른 사람의 인격을 무시합니다. 타인의 의견을 묵살하고 마음에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또한 더불어 살아가는 기쁨을 알지 못합니다. 자신만을 생각하고 살면 편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자기도 피곤하고 남도 피곤하게 합니다. 자기만을 사랑하면 자연스럽게 돈을 사랑합니다. 인간의 가치가 연봉으로 은행자산으로 평가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뼈 빠지게 고생해서 번 돈을 어떻게 사용합니까? 많은 사람들은 멋진 스포츠카, 외제차를 사고, 집을 사고, 여인을 사고, 술과 쾌락에 빠져 탕진합니다.
 
  파란만장의 인생을 살다간 미국의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라는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20억불의 재산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었을 때 타임즈에 이런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는 세금을 피하기 위해 초호화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은둔생활을 했다. 매일 술과 마약을 즐기고 도박을 하다가 말년에는 병마로 홀로 투병하다 죽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은 없었다. 돈은 많았지만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고  허랑방탕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삶을 저주했다. 그의 장례를 주관할 목사님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장례식을 위해 국가에서 한 목사님을 세웠습니다. 목사님의 장례식 주례는 역사상 가장 짧은 설교였습니다. 그 장례사는 '오, 주여, 하워드 휴즈가 빈 손들고 왔다가 빈 손들고 갑니다.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였습니다. 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우리는 세상에 올 때 빈손으로 왔습니다. 빈손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채워주신다는 약속의 표시입니다. 공수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확실히 책임져 준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 갈 때 빈손으로 가는 것은 이 세상의 어느 것도 하나님 나라에 필요가 없다는 반증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우리가 죽을 때 하나님이 우리 손에 필요한 것을 가득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어떠한 재물도 하나님 나라에서는 필요가 없기 때문에 빈손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늘 쪼들리며 가난하게 살아야 합니까? 아닙니다.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물질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늘에 보화를 쌓는 길이요, 자신보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둘째로 말세에 사람들은 극도로 교만하고 쾌락을 사랑합니다.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과 불만이 가득합니다.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합니다. "배신하여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4절) 사실 쾌락은 순간적으로 즐겁고 감미롭지만, 순간의 쾌락이 끝나면 밀려오는 허탈함과 공허함, 죄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시편32편 3절에서 다윗은 죄의 중압감을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셀라).”라고 토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괴테는 말하기를 '향락은 인간을 천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정욕의 죄에 빠져 들어가는 순간 그는 하나님이 세우신 성군이 아니었습니다. 죄의 종으로 전략된 천한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세상의 어떤 달콤한 쾌락도 참된 평안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 평강과 놀라운 기쁨이 있습니다. 세상의 잔재미와 쾌락이 신자들 안에 들어오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딱딱해지고 얼굴이 시커멓게 타고 굳어지고 영적으로도 무감각해집니다.

. 이런 신자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합니다. 바리새인들과 같이 외적으로는 경건한 신앙인척합니다. 백성들의 목자로서 사람의 존경과 세상의 인정을 구합니다. 그러나 겉모양만 있고 사람들 마음에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경건의 능력이 없으므로 회칠한 빈 무덤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는 것은 이들의 삶을 본받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들과는 다른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열매 맺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섬기는 아름다운 삶으로 그들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늘 깨어서 경건한지 스스로 돌아보고 회개의 열매를 맺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자신보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II.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10-17)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영적지도자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목자 생활을 어떻게 증거하고 있습니까? 10-11절을 보십시오.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 바울은 사람을 미혹하는 거짓 스승들과 달랐습니다. 오직 십자가의 죄사함의 은혜와 부활의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삶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삶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핍박과 고난을 감수했습니다. 특히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는 죽음의 문턱에 갈만큼 핍박과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어려움 가운데서 바울을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시고 건져주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사도 바울은 분명한 한 가지를 알았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경건한 신앙인들이 핍박을 받는 이유는 그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고, 그리스도에 속하였기 때문입니다(요15장18-20). 자신의 안일을 위해 위선적인 삶을 살아가는 악한 자는 어떻게 됩니까?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지고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13) 악인들과 동일하게 되어 점점 더 악하여지고 속이기도하고 자신 또한 다른 악한 사람들에 의해서 속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상황에서 디모데에게 어떻게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까?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지금까지 배우고 확신했던 일에 계속적으로 거하라고 권고합니다. 거하라는 말씀은 continue in입니다. 지금까지 배우고 확신한 일에 지속적으로 거하고, 굳게 붙들라는 뜻입니다. 디모데는 왜 지금까지 그가 배우고 확신한 일에 계속적으로 거해야 합니까? “너는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14b,15) 그가 지금까지 배우고 확신한 일은 인간의 생각이나 사상이 아닙니다. 성경의 복음진리입니다. 인간의 생각과 사상은 변하고 삶의 방식과 가치관도 변합니다. 큰 지진과 쓰나미, 집중호우로 물난리와 산사태가 나서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쓸어버린다고 해도 성경에 기록된 진리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급속히 변하는  이 시대에 흔들리지 않고 꽉 붙잡아야 할 성경은 어떠한 책이며, 우리들의 삶에 어떠한 유익과 축복을 줍니까?
 
  첫째로, 성경은 사람으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구원에 이르는 지혜!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구원! 내가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인생문제로부터의 구원! 이는 모든 것을 우리가 얼마나 알기를 갈망하는 것입니까? 구원만큼 좋고 위대하며 놀라운 축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을 다 소유한다고 해도 구원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들이며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소유가 비록 부족하다 하여도 구원을 받은 우리들은 하늘의 축복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이며 진정으로 행복하고 부요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어디에서 얻었습니까? 많은 책들과 많은 지식에서 얻었습니까? 연애와 사랑과 결혼에서 얻었습니까? 재물과 세상의 권세와 영예에서 얻었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의 그 어디에서도 자신의 죄악과 고통, 세상의 포악함과 인생무상으로부터 고통하는 우리의 영혼을 구원할 지혜를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게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을 갖게 합니다. 그 믿음을 가질 때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진리를 깨닫고 구원을 얻습니다. 
 
  둘째,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말은 영어로 “God-breathed"로 하나님의 생기가 불어 넣어진 것입니다. 다른 영어성경에는 "God's inspiration" 즉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 말씀이 우리 마음에 임하면 새로운 감동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감동적이고 역동적인 역사가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정욕과 자기 연민에 빠져서 자신 하나도 감당할 수 없었던 중풍병자가 캠퍼스의 목자가 되었습니다. 학생들을 섬기는 위대한 제자양성가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폭력과 세상의 불공평함을 원망하던 자가 성경말씀에 감동되어 아무도 가기 싫어하는 아프리카의 선교사로 파송되었습니다. 버림받은 그들의 친구요 목자가 되었습니다. 죽음의 세력에 눌려서 방황하던 저와 같은 사람도 이렇게 부활신앙과 하나님의 은혜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입니까?

    셋째,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한 성숙에 이르게 합니다. 16, 17절을 보십시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니라"  이 세상에는 다양한 교육기관들이 있습니다. 수많은 스승들이 있습니다. 각종 장르의 책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진정으로 우리를 교육하기에 유익합니까?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16) 하나님의 감동이 없는 형식적인 교육, 하나님의 감동이 없는 선생들의 가르침은 우리의 머리를 혼란스럽게만 합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우리의 내면과 삶을 변화시켜주지 못합니다. 내면의 성숙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지식으로 인한 머리는 커지고 터질걸 같지만  우리의 뜨거운 가슴은 점점 작아져 참새가슴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식은 넘쳐나지만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열정은 식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이 어떤 여행인지 아십니까?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여행입니다. 그러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좁아진 가슴을 넓혀주며,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열정을 타오르게 하며,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게 합니다.

  모든 성경은 사람의 내면과 인격을 온전히 성숙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합니다. 영어로는 ‘the man of God may be thoroughly equipped for every good work’입니다.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필요한 장비를 완전히 갖추게 합니다.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충분히 준비된 사람으로 완전히 변화시킨다는 뜻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격려와 희망이 되는 말씀입니까? 성경만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게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형상을 온전히 회복케 합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람, 믿음의 용사, 천만인의 기도의 어미, 위대한 제자 양성가, 모든 사람의 친구요 목자로 성장시켜 줍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감동에 사로잡히고 하나님의 감동적인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철저히 성경 중심의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No Bible, No Breakfast 정신으로 살아야합니다. 미국의 독립선언서의 기초를 잡았던 토마스 제퍼슨은 “성경을 열심히 정독하는 사람은 더 나은 시민, 더 나은 아버지, 더 나은 남편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웨슬리 목사는 “나는 한 권의 책, 성경의 사람이 되고 싶다.”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피로할 때 성경은 나의 침상이 되었고, 어두울 때 성경은 나의 불빛이 되네, 주릴 때에 성경은 나의 만나가 되었고, 두려울 때 성경은 나의 무기가 되었네. 일할 때에 성경은 나의 연장이 되었고, 찬양할 때 성경은 나의 악기가 되었네. 무지할 때 성경은 나의 교실이 되었고, 헛발 디뎌 빠질 때 성경은 나의 반석이 되네. 위기 때에 성경은 나의 보호자 되었고, 세상 떠날 때 성경은 나의 천국 시민권과 상속권이 되리라. 우리는 Sleeping Bible이 아니라 살아있는 성경, living and Walking Bible, Bible Person이 되어야 합니다.
 
 시편 1편 2, 3절 말씀에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1:2,3)하셨습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율법, 성경말씀을 여름날 시원한 팥빙수보다 냉커피보다 얼음물보다 즐거워해야 합니다. 성경말씀을 주야로 묵상할 때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마르지 아니하고 가뭄을 타지 아니하고, 시절을 좇아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가정에서, 사명의 땅 캠퍼스에서 은혜로운 삶을 통해 성령의 열매를 맺고 감동을 주고 감동을 받는 Bible Person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성경을 10년, 20년 공부했지만 좀처럼 변하지 않는 자신을 바라볼 때면 회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이 능력이 있는 것이야? 없는 것이야? 나는 왜 이렇게 변화가 더디고 동역자는 결혼했을 때나 지금이나 변화 된 것이 없고 그대로인 것 같고 도대체 왜 달라지지 않는 거야 하면서 말씀의 능력을 의심할 수 도 있습니다. 양들은 새벽에 토끼가 물만 먹고 가듯이 도대체 말씀 공부를 하는데 성장을 하지 않는 거야 하면서 제자양성에  대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요절말씀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니라”(딤후3:16,17) 우리가 이번 가을학기에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의 능력을 실제적인 삶에서 체험하고 열심히 배우고 확신한 복음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섬겨서 제자양성에 도전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감동의 역사가 서강대, 홍대 캠퍼스의 젊은 청년들 가운데 흥왕이 일어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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