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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025년 창11강(15,16장) 아브람의 믿음을 의롭다 여기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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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84회 작성일 25-05-18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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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창세기 제 11 강
말씀 | 창세기 15:1-16:16
요절 | 창세기 15:6

아브람의 믿음을 의롭다 여기신 하나님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15장은 아브람이 롯을 구출한 이후에 그돌라오멜 동맹군의 복수에 대한 두려움과 상속자 문제로 힘들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움과 낙담에 빠져 있는 아브람을 이끌고 나가 그에게 뭇별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네 자손이 하늘의 뭇별과 같으리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자손과 아브람이 의롭게 되는 것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그가 하나님을 믿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신자가 되었는데 왜 여기서 그를 의롭다고 하실까요? 16장은 사래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자식을 낳지 못해 자책감에 사로잡힌 사래가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식문제를 해결하려다가 심각한 가정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하나님이 친히 개입하셔서 가정 문제를 해결해주십니다. 아브람 가정의 문제에 개입하셔서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목자의 심정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아브람을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1-6). 1절을 보십시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은 롯을 빼내왔지만 그돌라오멜 동맹군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처절한 복수를 하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롯을 구해왔지만 그는 다시 소돔으로 돌아갔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전리품을 다 되돌려주었고 자신은 얻은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사람이 수고를 해도 열매가 있어야 신이 나는데 자신은 지금까지 무엇을 했나 하는 마음으로 허탈했습니다. 손해의식이 들었습니다. 이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신앙생활을 했지만 소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자 신앙생활의 한계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때 아브람의 마음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위로해 주십니다. “아브람아 두려워마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보호해 주시고 그에게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십니다. 아브람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상급으로 생각하는 것들은 좀 더 실제적인 것들입니다. 손에 잡히는 것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 돈이라든지, 취직이라든지, 양이라든지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들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 볼멘소리로 대답을 합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아브람의 문제는 자식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10년이 지나도 주지 않으시니 자신도 다 생각이 있었습니다.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마음에 상속자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임하여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나님께서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5절에서 “네 자손”은 2인칭 남성 단수입니다. 원어로는 “네 씨”입니다. 이 자손은 이삭이지만 후에 그의 자손으로 태어나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이 지금 아브람에게 약속을 하셨을 때 아브람의 몸은 죽은 자와 같은 상태였습니다(히 11:12). 그럼에도 그는 불신앙으로 비틀거리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굳건한 믿음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했습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롬 4:20-22).” 아브람은 자연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추론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까지도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이런 그의 믿음을 하나님은 의로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이 의 대신에 믿음을 받으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믿음을 의와 동등한 것으로 받으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믿음 자체가 공로가 됩니다. 믿음은 의가 흘러들어오는 통로, 의를 담는 그릇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이 자신의 몸을 다시 살리심을 통해서 자신에게 아들을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아들을 주셨음과 그 아들의 죽음과 다시 살아남을 통해서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믿습니다. 아브람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 신자였으나 의롭다고 여기신 것은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는 믿음과 연결이 됩니다. 즉 아브람이 의로 여기심을 받은 것은 약속된 자손과 관련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떠나 의롭다하심은 없습니다. 사도행전 13:38,39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는 믿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및 사역과 직접적으로 관련됩니다. 아브람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4).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롬 4:18).” 하나님께서는 당장 아브람의 자식 문제를 해결해 주기보다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믿도록 도우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유익이나 결과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인격 자체를 신뢰하고 순종하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은 이런 믿음입니다. 당장에 기도의 응답을 받고 물질문제가 해결되고 병이 낫고 열매가 풍성해서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하나님은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벗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그 존재 자체로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축복이나 열매 때문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관계를 원하십니다. 사실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그런 믿음을 원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바른 관계가 아닐까요? 하나님은 아브람과 바른 관계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둘째, 아브람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7-16).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자손에 대한 약속에 이어 땅에 대한 약속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게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아브람은 그 증거를 달라고 요구합니다.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여호와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삼년 된 암염소와 삼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습니다. 3년 된 가축은 완전히 자라서 제물로 바쳐지기에 적당하였습니다. “삼년”이 세 번 반복됩니다. 예수님은 삼년 동안 섬김의 일을 행하셨습니다. 동물들 모두가 죽임을 당합니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습니다. 사함이 없으면 그 땅을 유업으로 얻는 것도 없습니다. 동물을 쪼개는 것은 희생제사의 언약을 위한 것입니다(렘 34:18-20).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600년 뒤에 일어날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이 땅을 애굽에서부터 유브라데 강까지 그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예비하신 땅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고난의 풀무를 통과해야 합니다. 이 기간 동안 큰 민족을 이루어 강대한 나라를 형성한 후에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가나안에 큰 재물을 가지고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한 사람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으로 키우시되 600년 앞을 내다보게 하심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을 어떤 스케일의 사람으로 키우고자 하셨는지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눈 앞의 유익만 계산해서는 믿음으로 살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후손 삼대, 사대를 내다보며 믿음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청교도들은 200년 동안 세계 선교를 위해서 기도했는데 19세기에 이르러 선교의 꽃을 피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여유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아브람의 가정 문제를 해결하신 하나님(16장).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출산하지 못하자 애굽에서 데려온 여종 하갈을 통해서 자녀를 얻고자 계획을 하였습니다. 75세가 된 사래가 아브람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그러자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었습니다. 사래는 여종 하갈의 소생도 아브람의 몸에서 난 자식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과 위배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15:4).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사래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을 불신하여 인간적인 방법을 모색한 것이죠.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조급할 때 누구나 이런 죄에 빠지기 쉽습니다. 아담이 아내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먹은 것과 같이 아브람도 아내의 말을 듣고 여종을 취하였습니다. 여종을 남편의 품에 안기도록 한다는 것이 사래로서는 엄청난 자기 부인이었을 것입니다. 아브람이 하갈을 첩으로 들여 임신을 하게 되자 가정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하갈이 자기가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하였습니다. 나온 배를 더 내밀며 안방마님 행세를 하였습니다. 사래는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났습니다. 아브람의 허락을 받고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아들을 낳고, 부부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여주인과 여종 사이에 미움과 학대가 일어났습니다. 가정의 질서가 파괴되고 평온하던 가정에 평지풍파가 일어났습니다. 아브람의 가정은 해결하기 힘든 복잡한 문제에 말려들게 되었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쓴 결과로 사랑과 은혜와 평화가 충만하던 가정이 멸시와 학대, 투기와 미움, 원망과 분쟁,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가정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주십니까?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셨습니다.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에게는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범죄한 가인에게는 “네 형제가 어디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하갈에게는 “네가 어디와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십니다. 이를 통해 자기 발견을 하도록 도우십니다. 하갈이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한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사자가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고 방향을 주십니다.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고 예언하셨습니다.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습니다.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회의 약자들의 고통을 감찰하십니다. 이들을 돌보십니다. 문제를 해결할 때에는 문제 자체보다 현재 자신의 존재 상태를 발견하도록 도와주십니다. 나는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생각해보면 우리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지혜가 생깁니다. 사람은 자기가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가장 안정되고 복을 받게 됩니다. 하갈은 아브람에게 의지할 수도 없었고, 여주인 사래에게는 핍박을 받아 도망 왔기 때문에 이제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돌보아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오셔서 이해해주고 도와주셨습니다.

  비천한 여종을 돌아보시는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살피시고 항상 가까이서 지켜보십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슬픔과 고통을 당할 때에 외면하지 않고 돌봐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주위에 있는 약자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 40절에 보면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눅 14:13,14).” 하나님께서 주변의 약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돌보도록 우리에게 건강을 주시고 물질을 주시고 시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까지 내가 아프고 힘들 때에 말씀으로 찾아오시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지극히 큰 상급이십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큰 상급되신 주님과 더 깊이 교제하길 기도합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이루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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