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서 2025년 부활절 특강(고전15장)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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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부활절 특강
말씀 | 고린도전서 15:1-58
요절 | 고린도전서 15:49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우리는 태어나면서 죽음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성장과 열매를 경험하고 쇠퇴와 연약함, 포기나 죽음을 수용해야 합니다. 죽음의 세력은 모든 사람들을 슬프게 하고 허무하게 하고 전 인생에 영향을 미칩니다. 죽음 앞에 모든 인간은 꼼짝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수용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활한 모습을 보이셨고 50일 후에는 성령을 보내어 주심으로 부활의 능력을 믿는 자들에게 부어주셨습니다. 성령께서 믿는 자 속에서 부활의 능력으로 일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십니다. 고린도 교회는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음행과 금욕주의, 분파싸움, 부부관계에 대한 문제,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 은사를 잘 못 사용하는 문제 등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식이 많고 체험도 많았고 열정적이었지만 영적으로 어렸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은 미성숙과 죄로 인한 것입니다. 바울은 1-14장에 걸쳐 그들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도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성도들에게 부활에 대한 여섯 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함으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복음 위에 굳게 세우고자 합니다. 이 시간 우리가 처한 실패와 좌절, 문제 속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남으로 승리하는 인생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어떻게 아는가?(1-11) 부활을 믿는 이유는 믿을만한 증인들의 믿을만한 증언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5-8절에서 부활의 증인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도 그 중의 하나로 기록합니다. 이 명단에 등장하는 베드로나, 야고보나, 바울의 인격을 볼 때에 거짓 증언을 할 사람들이 아닙니다. 또 이들이 부활을 증언함으로 인하여 재물을 얻어 부유해진다든지 혹은 명성을 얻어 명예를 쌓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얻은 것은 고난과 순교뿐이었습니다. 이들이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만난 후의 삶이 극적으로 변한 것을 볼 때에 이들의 증언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시면서, 부활 후에 하나님께로 가실 것이고,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요 14:26). 약속대로 부활하신 지 50일 뒤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두려움 많던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공회 앞에서 우리는 듣고 보고 체험한 부활을 증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공회에서 채찍을 맞았지만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떠났습니다(행 4:19,20/ 5:40,41). 이러한 성령님을 오늘날 우리가 체험하기 때문에 부활에 대한 확신은 더욱 더 커집니다. 저는 일곱 살에 돌아가신 아버지로 인해 죽음의 세력에 짓눌려 인생의 허무로 고통하였습니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인데... 자취방에서 마당에 떨어지는 목련꽃을 보면서 내 인생도 언젠가는 죽음으로 끝나겠지 하는 생각에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러나 대학교 일학년 4월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나자 이 세상이 새롭게 보이고 나를 무기력하게 하던 허무감이 사라지고 생명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성경공부를 통해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 복음 전도자의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둘째,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어떤 결과가 생기는가?(12-19)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거대한 사기극에 말려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기초를 놓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도 바울 자신이 이런 내용을 말합니다. 자신이 부활을 증거하고 있는데,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자신은 사기꾼이라고 말합니다(15).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기독교 신앙은 허위에 근거한 사상누각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저나 여러분이나 모든 기독교인들은 모두 다 사기극에 놀아나고 있는 바보들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위하여 돌아가셨고 그를 주님으로 영접할 때에 우리 죄를 용서받는다고 믿는 것도 착각에 지나지 않습니다(14,17). 만일 부활이 없었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을 받아 죽은 것이 인류의 죄를 위하여 돌아가셨는지, 아니면 자신의 죄 때문에 죽었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그는 죄가 없는 분이라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죽음은 죄 때문에 왔습니다(롬 5:12). 석가모니를 비롯하여 공자, 마호멧을 포함하여 모든 성인과 위인이 죽었다는 사실은 그들 또한 완전한 사람들이 아니고 실수와 죄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죄가 없는 분임을 증명했습니다. 죄가 없기 때문에 죽음이 잡아 놓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죄가 없는 분이 왜 처참한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을까요? 우리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우리가 받을 형벌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을 예수님 오시기 약 700년 전에 활동했던 이사야를 통하여 하나님은 예고하셨습니다(사 53:5). 이 예고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오셨고, 성경대로 죽으셨고, 성경대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이론이나 주관적인 확신이 아닙니다. 구약에 예언되었고, 예언대로 주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통해 확실하게 이루어진 사실입니다(3,4). 야곱과 삭개오, 존 뉴턴, 척 콜슨, 등 수많은 사기꾼들이 예수님을 믿고 정직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평양 대부흥 운동 때 성령의 역사가 강력하게 일어나자 길선주 목사와 많은 사람들이 사기, 공금횡령, 도둑질 등 낱낱이 죄를 고백하고 회개함으로 새롭게 되었습니다.
셋째,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들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20-26) 고린도 교인들이 부활에 관하여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당시 크리스천들 가운데 이미 부활이 일어났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딤후 2:18을 보면 “그들은 진리에 대해서는 빗나간 사람들이지. 부활이 이미 일어났다고 말하며, 몇멸 사람들의 믿음을 뒤엎어 버리고 있네.” 고린도교회에도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존재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성령을 받음으로 이미 천사와 같은 영적인 존재가 되었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죽게 되면 육신은 사라지고 영혼만 영원히 남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런 악한 사상이 고린도교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오늘날 성도들 가운데에도 불교의 영향을 받아 영혼의 존재만을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육체의 부활을 믿기가 어렵습니다.
이러한 고린도교인들을 향하여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할 것이라고 말합니다(12).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회복이 시작되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셨는데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죽음이 들어왔고 세상은 사탄의 지배하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사탄과 죄를 패배시켰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사탄이 패배하고 죄가 정복됩니다. 그러나 이것도 아직 시작일 뿐입니다. 최후에는 죽음이 정복되어야 합니다. 만유의 회복은 예수님의 부활로 시작해서 인류의 부활로 마무리 되는 것입니다(20-26).
넷째, 성도들은 어떠한 몸으로 부활할 것인가?(27-49) 고린도교인들이 육신의 부활에 회의적인 이유는 “어떤 몸으로 부활하겠는가?”라는 의문이 있기 때문입니다(35). 보통 영화에서 죽은 사람이 나타날 때에는 연기 같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성도가 부활할 때에는 만질 수 있는 몸으로 부활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몸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합니다. 이런 사실을 바울은 씨앗에 빗대어서 말합니다(37-38). 과일나무 씨앗은 작고 볼품없지만 거기서 자라난 나무는 크고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몸과 부활할 몸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제가 죽어서 부활하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저를 인식할 수 있는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48,49절을 보십시오.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농부는 알갱이(bare kernel)를 뿌리지만, 거기에서 어떤 형체가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종자(seed)에게 적합한 형체를 주시는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형체를 주실 지는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육체가 존재하고, 각각의 육체는 그 육체가 존재하는 영역이나 환경에 적합한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씨와 같은 이 세상의 몸이 부활의 몸으로 바뀌는 영적인 원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몸도 소중합니다. 그런데 부활의 몸에 비하면 욕되고, 약한 육의 몸입니다. 그런데 이 몸을 심으면 영광스럽고, 강하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약한 육체, 병든 육체로 인해 고통하고, 고생합니다. 그러나 부활 때에 우리는 아프지도 않고 병들지도 않는 강철 같은 아름답고 완벽한 몸을 가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닫힌 문을 통과해서 오셨고(요20:19,26), 하늘로 올라가실 수 있었습니다(막16:19). 사도 요한은 자신이 본 예수님의 신령한 몸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 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계1:12-16).”
신자는 이 땅에 속해 있으면서 동시에 하늘에 속한 사람입니다(빌3:20). 하나님은 하늘에 속한 사람들에게 하늘에 어울리는 몸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육의 몸밖에 모르는 사두개인들에게 하늘에 속한 몸을 이렇게 소개하셨습니다.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막12:25).” 이것이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한 몸의 속량이고(롬8:23), 영광의 자유에 이른 상태입니다(롬8:21). 높은 산에서 변형되셔서 얼굴이 해처럼 빛나셨던 예수님처럼(마17:2), 신자들 역시 빛나게 될 것입니다(마13:43). 롬 8:11에서 바울은 말씀합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다섯째, 부활한 후에는 어떤 삶이 전개되는가?(50-56) 성도들의 부활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일어납니다(51-53).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살아 있는 사람들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할 것입니다. 그 전에 이미 죽은 사람들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부활한 후에는 새로운 환경이 주어지고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부활 후에 어떤 모습이 전개될지를 환상 가운데 보여주셨습니다(계 21:1). 여기에 묘사된 일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전개될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란 현재의 자연법칙보다 더 차원이 높은 자연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을 말합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즉시 새로운 하늘과 새 땅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주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우리 마음의 상처를 위로해 주시고 우리의 희생과 섬김에 대한 보상을 해 주실 것입니다(계21:3,4). 그리고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잔치가 시작됩니다(계 19:6,7). 예수님이 약속한 잔치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공간과 시간의 개념이 전혀 다른 세계이기 때문에 그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개미가 인간의 삶을 상상하는 것만큼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잔치의 개념도 우리가 상상하기 힘들 것입니다.
여섯째, 부활을 믿으면 어떤 삶을 사는가?(57-58) 마지막 질문은, “부활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입니다.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58). 예수님은 사도 요한에게 장차 일어날 일에 관한 계시를 주면서 당신의 상을 갖고 오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 그러므로 우리들은 주님의 일을 열심히, 많이 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노력을 해도 결과가 잘 안 나오기도 하고, 노력한 만큼 보상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일이 헛되다고 생각하여 무기력하게 있거나 사명이나 비전을 포기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58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사탄은 우리에게 “네가 하는 일이 무슨 쓸모가 있느냐”하며 우리의 힘을 빼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다.” 우리가 이 땅에서 부활신앙과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한 우리의 모든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음을 믿고 매일 우리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지혜로 창조성을 발휘하고 주님이 시키시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고 주님이 시키시는 일을 열심히 해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큰 기쁨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고린도전서 15:1-58
요절 | 고린도전서 15:49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우리는 태어나면서 죽음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성장과 열매를 경험하고 쇠퇴와 연약함, 포기나 죽음을 수용해야 합니다. 죽음의 세력은 모든 사람들을 슬프게 하고 허무하게 하고 전 인생에 영향을 미칩니다. 죽음 앞에 모든 인간은 꼼짝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수용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활한 모습을 보이셨고 50일 후에는 성령을 보내어 주심으로 부활의 능력을 믿는 자들에게 부어주셨습니다. 성령께서 믿는 자 속에서 부활의 능력으로 일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십니다. 고린도 교회는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음행과 금욕주의, 분파싸움, 부부관계에 대한 문제,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 은사를 잘 못 사용하는 문제 등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식이 많고 체험도 많았고 열정적이었지만 영적으로 어렸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은 미성숙과 죄로 인한 것입니다. 바울은 1-14장에 걸쳐 그들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도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성도들에게 부활에 대한 여섯 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함으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복음 위에 굳게 세우고자 합니다. 이 시간 우리가 처한 실패와 좌절, 문제 속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남으로 승리하는 인생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어떻게 아는가?(1-11) 부활을 믿는 이유는 믿을만한 증인들의 믿을만한 증언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5-8절에서 부활의 증인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도 그 중의 하나로 기록합니다. 이 명단에 등장하는 베드로나, 야고보나, 바울의 인격을 볼 때에 거짓 증언을 할 사람들이 아닙니다. 또 이들이 부활을 증언함으로 인하여 재물을 얻어 부유해진다든지 혹은 명성을 얻어 명예를 쌓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얻은 것은 고난과 순교뿐이었습니다. 이들이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만난 후의 삶이 극적으로 변한 것을 볼 때에 이들의 증언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시면서, 부활 후에 하나님께로 가실 것이고,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요 14:26). 약속대로 부활하신 지 50일 뒤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두려움 많던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공회 앞에서 우리는 듣고 보고 체험한 부활을 증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공회에서 채찍을 맞았지만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떠났습니다(행 4:19,20/ 5:40,41). 이러한 성령님을 오늘날 우리가 체험하기 때문에 부활에 대한 확신은 더욱 더 커집니다. 저는 일곱 살에 돌아가신 아버지로 인해 죽음의 세력에 짓눌려 인생의 허무로 고통하였습니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인데... 자취방에서 마당에 떨어지는 목련꽃을 보면서 내 인생도 언젠가는 죽음으로 끝나겠지 하는 생각에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러나 대학교 일학년 4월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나자 이 세상이 새롭게 보이고 나를 무기력하게 하던 허무감이 사라지고 생명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성경공부를 통해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 복음 전도자의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둘째,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어떤 결과가 생기는가?(12-19)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거대한 사기극에 말려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기초를 놓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도 바울 자신이 이런 내용을 말합니다. 자신이 부활을 증거하고 있는데,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자신은 사기꾼이라고 말합니다(15).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기독교 신앙은 허위에 근거한 사상누각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저나 여러분이나 모든 기독교인들은 모두 다 사기극에 놀아나고 있는 바보들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위하여 돌아가셨고 그를 주님으로 영접할 때에 우리 죄를 용서받는다고 믿는 것도 착각에 지나지 않습니다(14,17). 만일 부활이 없었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을 받아 죽은 것이 인류의 죄를 위하여 돌아가셨는지, 아니면 자신의 죄 때문에 죽었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그는 죄가 없는 분이라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죽음은 죄 때문에 왔습니다(롬 5:12). 석가모니를 비롯하여 공자, 마호멧을 포함하여 모든 성인과 위인이 죽었다는 사실은 그들 또한 완전한 사람들이 아니고 실수와 죄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죄가 없는 분임을 증명했습니다. 죄가 없기 때문에 죽음이 잡아 놓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죄가 없는 분이 왜 처참한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을까요? 우리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우리가 받을 형벌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을 예수님 오시기 약 700년 전에 활동했던 이사야를 통하여 하나님은 예고하셨습니다(사 53:5). 이 예고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오셨고, 성경대로 죽으셨고, 성경대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이론이나 주관적인 확신이 아닙니다. 구약에 예언되었고, 예언대로 주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통해 확실하게 이루어진 사실입니다(3,4). 야곱과 삭개오, 존 뉴턴, 척 콜슨, 등 수많은 사기꾼들이 예수님을 믿고 정직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평양 대부흥 운동 때 성령의 역사가 강력하게 일어나자 길선주 목사와 많은 사람들이 사기, 공금횡령, 도둑질 등 낱낱이 죄를 고백하고 회개함으로 새롭게 되었습니다.
셋째,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들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20-26) 고린도 교인들이 부활에 관하여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당시 크리스천들 가운데 이미 부활이 일어났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딤후 2:18을 보면 “그들은 진리에 대해서는 빗나간 사람들이지. 부활이 이미 일어났다고 말하며, 몇멸 사람들의 믿음을 뒤엎어 버리고 있네.” 고린도교회에도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존재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성령을 받음으로 이미 천사와 같은 영적인 존재가 되었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죽게 되면 육신은 사라지고 영혼만 영원히 남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런 악한 사상이 고린도교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오늘날 성도들 가운데에도 불교의 영향을 받아 영혼의 존재만을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육체의 부활을 믿기가 어렵습니다.
이러한 고린도교인들을 향하여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할 것이라고 말합니다(12).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회복이 시작되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셨는데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죽음이 들어왔고 세상은 사탄의 지배하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사탄과 죄를 패배시켰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사탄이 패배하고 죄가 정복됩니다. 그러나 이것도 아직 시작일 뿐입니다. 최후에는 죽음이 정복되어야 합니다. 만유의 회복은 예수님의 부활로 시작해서 인류의 부활로 마무리 되는 것입니다(20-26).
넷째, 성도들은 어떠한 몸으로 부활할 것인가?(27-49) 고린도교인들이 육신의 부활에 회의적인 이유는 “어떤 몸으로 부활하겠는가?”라는 의문이 있기 때문입니다(35). 보통 영화에서 죽은 사람이 나타날 때에는 연기 같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성도가 부활할 때에는 만질 수 있는 몸으로 부활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몸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합니다. 이런 사실을 바울은 씨앗에 빗대어서 말합니다(37-38). 과일나무 씨앗은 작고 볼품없지만 거기서 자라난 나무는 크고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몸과 부활할 몸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제가 죽어서 부활하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저를 인식할 수 있는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48,49절을 보십시오.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농부는 알갱이(bare kernel)를 뿌리지만, 거기에서 어떤 형체가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종자(seed)에게 적합한 형체를 주시는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형체를 주실 지는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육체가 존재하고, 각각의 육체는 그 육체가 존재하는 영역이나 환경에 적합한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씨와 같은 이 세상의 몸이 부활의 몸으로 바뀌는 영적인 원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몸도 소중합니다. 그런데 부활의 몸에 비하면 욕되고, 약한 육의 몸입니다. 그런데 이 몸을 심으면 영광스럽고, 강하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약한 육체, 병든 육체로 인해 고통하고, 고생합니다. 그러나 부활 때에 우리는 아프지도 않고 병들지도 않는 강철 같은 아름답고 완벽한 몸을 가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닫힌 문을 통과해서 오셨고(요20:19,26), 하늘로 올라가실 수 있었습니다(막16:19). 사도 요한은 자신이 본 예수님의 신령한 몸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 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계1:12-16).”
신자는 이 땅에 속해 있으면서 동시에 하늘에 속한 사람입니다(빌3:20). 하나님은 하늘에 속한 사람들에게 하늘에 어울리는 몸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육의 몸밖에 모르는 사두개인들에게 하늘에 속한 몸을 이렇게 소개하셨습니다.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막12:25).” 이것이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한 몸의 속량이고(롬8:23), 영광의 자유에 이른 상태입니다(롬8:21). 높은 산에서 변형되셔서 얼굴이 해처럼 빛나셨던 예수님처럼(마17:2), 신자들 역시 빛나게 될 것입니다(마13:43). 롬 8:11에서 바울은 말씀합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다섯째, 부활한 후에는 어떤 삶이 전개되는가?(50-56) 성도들의 부활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일어납니다(51-53).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살아 있는 사람들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할 것입니다. 그 전에 이미 죽은 사람들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부활한 후에는 새로운 환경이 주어지고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부활 후에 어떤 모습이 전개될지를 환상 가운데 보여주셨습니다(계 21:1). 여기에 묘사된 일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전개될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란 현재의 자연법칙보다 더 차원이 높은 자연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을 말합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즉시 새로운 하늘과 새 땅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주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우리 마음의 상처를 위로해 주시고 우리의 희생과 섬김에 대한 보상을 해 주실 것입니다(계21:3,4). 그리고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잔치가 시작됩니다(계 19:6,7). 예수님이 약속한 잔치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공간과 시간의 개념이 전혀 다른 세계이기 때문에 그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개미가 인간의 삶을 상상하는 것만큼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잔치의 개념도 우리가 상상하기 힘들 것입니다.
여섯째, 부활을 믿으면 어떤 삶을 사는가?(57-58) 마지막 질문은, “부활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입니다.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58). 예수님은 사도 요한에게 장차 일어날 일에 관한 계시를 주면서 당신의 상을 갖고 오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 그러므로 우리들은 주님의 일을 열심히, 많이 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노력을 해도 결과가 잘 안 나오기도 하고, 노력한 만큼 보상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일이 헛되다고 생각하여 무기력하게 있거나 사명이나 비전을 포기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58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사탄은 우리에게 “네가 하는 일이 무슨 쓸모가 있느냐”하며 우리의 힘을 빼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다.” 우리가 이 땅에서 부활신앙과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한 우리의 모든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음을 믿고 매일 우리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지혜로 창조성을 발휘하고 주님이 시키시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고 주님이 시키시는 일을 열심히 해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큰 기쁨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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