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25년 창7강(7:1-9:17) 노아와 맺은 언약
페이지 정보

본문
2025년 창세기 제 7 강
말씀 | 창세기 7:1-9:17
요절 | 창세기 9:11
노아와 맺은 언약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성경에는 일곱 개의 언약이 있습니다. 아담 언약, 노아 언약, 아브라함 언약, 모세 언약, 레위 언약, 다윗 언약, 새 언약입니다. 언약은 족쇄, 의무, 약정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사회생활에서의 언약은 두 사람 이상의 당사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조약 또는 협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두 당사자가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가 지켜야할 의무와 조건들을 자발적으로 주의깊게 설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지는 언약에서는 하나님이 우선권, 주도권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제정하십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세우십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은 통일성이 있습니다. 이들 언약은 본질적인 면에서 하나이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즉 메시아 언약을 향해 점진적으로 발전해 나갑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은 영원성이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세우신 언약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이 은혜 속에는 복으로 주신 것이라는 뜻이 포함됩니다. 각 언약들을 충분히 설명하려면 책 한 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 시간 하나님이 노아와 맺은 언약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언약의 배경, 홍수 심판(7장).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모든 생명을 쓸어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는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습니다. 불신자들이 노아의 순종하는 생활을 볼 때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은 광신자라고 비웃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 시대에 맞게 적당하게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전폭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순종에는 경외심이 있어야 합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시대에 노아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었습니다. 그들이 다 들어간 칠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였습니다.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셨습니다.
방주는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피하는 피난처였습니다. 성경에 “Ark”로 표현하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노아의 방주(Ark of Noah), 갈대 상자(Ark of bulrushes), 언약궤(Ark of covenant)입니다. 노아의 방주는 그 안에 있는 자들을 하나님의 진노의 홍수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었습니다. 갈대 상자는 아기 모세를 사탄의 모형이었던 바로의 극악한 계획으로부터 지켜주었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이 새겨진 두 돌판을 감추었습니다. 각각의 “Ark”들은 모두가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진노(방주)와 사탄의 공격(갈대 상자)과 율법의 정죄(언약궤)로부터 가려지는 것을 배웁니다.
노아가 600세 되던 해 2월 17일에 홍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빗방울이 떨어지고 천둥과 번개가 치고, 땅에서는 깊음의 샘 지하수가 터졌습니다. 하늘에서는 하늘의 창이 열려서 비가 40일 동안 주야로 쏟아졌습니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습니다. 물이 산 위로 약 6m나 올랐습니다. 홍수가 나기 전까지 사람들은 노아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홍수 심판이 임하자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40일 간의 홍수와 150일 간 물이 있었기 때문에 방주 밖에 있던 사람들은 다 죽었습니다. 젊은이, 늙은이, 아기와 여자와 가난한 자, 부자, 힘이 있는 네피림과 연약하고 병든 자, 배운 자 무식한 자들도 다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합니다. 여기에는 그 어떤 예외도 없습니다. 우리는 죄를 철저히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 두려움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죽음 앞에 모든 사람이 불안해하고 두려워합니다. 이런 불안과 두려움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기를 기도합니다.
개역개정성경에는 “방주로 들어가라”고 되어 있지만 원어는 “오라(Come)”로 되어 있습니다. “가라”는 노아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함축하지만 “오라”는 방주에서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실 것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 가족들을 구원의 방주로 오라고 초대하신 것처럼, 오늘날에도 예수님 안에 들어오도록 초청하십니다. 방주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초청은 개인적이지만 네 온 집은 방주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2).” 지금은 은혜를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고후6:2).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려있습니다. 이때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방주는 절대적으로 안전한 장소였습니다. 그 안팎을 역청으로 칠했습니다. 노아가 방주 안에 감추어진 것처럼 우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습니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골 3:3).”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습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요 18:9).”
둘째, 노아와 맺은 언약(8장, 9:9-1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물이 줄어들었고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쳤습니다.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백오십 일 후에 줄어들었습니다.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혔습니다.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 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셨습니다.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처음 한 일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고 예배하는 일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처음으로 제단이 언급되었습니다. 제단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입니다. 노아는 홍수 심판으로 인해 세상이 황폐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염려하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홍수 심판 가운데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했습니다. 정결한 짐승과 새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을 취하여 희생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희생제물 위에 기초했습니다. 그것은 노아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아니라 하나님이 노아와 맺은 언약입니다. 이 언약은 무조건적이며 절대적인 언약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향기를 받으셨다”는 것은 제사를 기쁘게 받으셨음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향기를 흠향하시고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겠다고 결심하셨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였습니다. 홍수 심판 후에도 인간 내면에 악한 본성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다”는 것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존재임을 말해줍니다. 로마서 3장 10-12절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아이들에게 죄를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죄를 잘 짓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실존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노아가 드린 희생 제물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운 분노를 진정시키고 그 분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셨습니다. 희생 제물을 통해서 인간의 허물을 덮으시고 의롭다고 칭하시는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노아의 번제물은 예표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물로부터 말미암습니다. 희생 제물을 통해서 인간을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는 예수님을 통해서 완성됩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의’라고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롬1:17). 뿐만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거듭나 새 생명을 얻고 변화가 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서 우리는 일생토록 성장하고 열매를 맺어갑니다.
22절을 보십시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사계절과 낮과 밤이 쉬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자연법칙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자연법칙들 뒤에 자연의 주인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창조세계로부터 단절시키고자 애를 씁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일용할 양식과 육체의 건강을 사람이 생산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심고 거두고 먹고 사는 것은 위로부터의 선물입니다. 계절이 순환되지 않는다든지 혹은 하나님이 지면을 새롭게 하지 않으신다면 사람은 단 한 톨의 곡식도 생산할 수 없습니다. 계절이 순환되고 지력이 새로워지는 것은 하나님이 노아와 맺은 언약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없다면 계절이 제멋대로 바뀌지 않을 것이라든지, 세상이 또 다시 홍수로 멸망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증을 결코 가질 수 없습니다. 노아의 때에 자연의 “법칙들”은 대홍수를 막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어떻게 우리 시대에 또 다시 대홍수가 임하는 것을 막을 것이란 말입니까?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내가 너희와 연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을 듣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땅이 있을 동안”이라는 말은 땅이 언제까지나 존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해 줍니다. 최후 심판이 있을 때까지 땅과 생태계를 보존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땅과 하늘이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것입니다(계 20:11, 21:1).
하나님은 심판을 은혜로 마무리하십니다. 아담의 범죄, 가인의 범죄 때처럼 죄벌을 주시지만 은혜로서 생명을 보존케 하십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범죄하지만 이를 끝까지 인내하시며 대속하시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사랑, 변함없는 사랑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9:1,2).” 하나님은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셨는데, 이 복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주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노아의 아들들에게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했음에도 여전히 복을 주는 분입니다. 그런데 아담에게 주어진 복과는 조금 다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지만,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라는 말씀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대신에 모든 동물이 인간을 두려워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권위에 대항하게 되자 자연히 짐승들도 인간의 권위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인간과 동물 상호간에 화평하지 않은 관계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말씀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또 급격한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 동물도 먹거리로 주셨습니다. 인간이 힘든 환경을 이기기 위해서 고단백질을 섭취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피 채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피를 생명체 유지의 중요한 수단으로 보시고 짐승의 피라도 피 채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사람의 피를 흘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에 모든 생명을 존엄하게 여겨서 남의 목숨을 빼앗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피를 무고하게 흘리면 인간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이는 타락한 인간 속에도 하나님의 형상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으로 공권력의 칼이 사람의 손에 위임이 됩니다. 국가의 모든 통치권과 관련한 기본적인 원리를 주신 것입니다.
9:9-11을 보십시오. “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조금만 비가 내려도 사람들은 홍수 심판이 임하지 않을까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상황을 잘 아시고 홍수 후에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다시는 홍수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결코 멸하지 않으시겠다고 언약을 채결하셨습니다.
셋째, 언약의 증거, 무지개(12-17). 하나님은 노아와 그 후손들과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세우는 언약의 증거를 주셨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하나님은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노아와 그 후손들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십니다. 무지개를 사람도 보고 하나님도 보십니다. 그 무지개를 보고 하나님은 그와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셨습니다.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17).” 무지개는 하나님께서 인간들과 모든 생물들의 생명을 담보하는 언약의 증표입니다. 홍수심판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사람의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안정시켜 줍니다. 무지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평화를 상징합니다. 무지개는 “빨주노초파남보”의 일곱 색깔로 이루어져서 매우 아름답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무지개처럼 아름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무지개가 하늘과 땅을 연결해 주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만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 많은 인간을 연결시켜 줄 수 있습니다. 무서운 진노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나타내 주는 것이 무지개입니다. 무지개는 웃는 모습이죠.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진 언약의 표징입니다. 인간에게는 언약이 필요합니다. 존재 자체가 불안하고 죄로 인해서 불안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이 필요합니다.
노아와 맺은 언약은 보편적이며, 영구적입니다. 인간이 지켜야 할 어떤 제약도 없는 것으로서 무조건적인 언약입니다. 이 언약의 목적은 창조한 세상을 보존하는데 있습니다. 이 은혜의 언약 때문에 인간은 죄를 품고 살아가면서도 생명을 유지하고 번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은혜입니다. 언약이란 환경조건이 변하고 세대가 변해도 지켜야 하기 때문에 큰 멍에가 됩니다. 하나님은 죄악된 인간들을 구원하시려고 큰 멍에를 메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악을 행하는 사람을 보고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하나님 왜 저런 악인을 빨리 데려가지 않으십니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습니다.”하소연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러면 너를 참고 기다리는 나의 고통은 얼마나 크겠느냐?” 되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심판하지 않고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십니다. 자기 인생을 다 살게 하시면서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누구나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도록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5장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마가복음 2장 17절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끈질기고 풍성한지요!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가 알고 그 은혜 안에 거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서 죄사함을 받고 자기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말씀 | 창세기 7:1-9:17
요절 | 창세기 9:11
노아와 맺은 언약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성경에는 일곱 개의 언약이 있습니다. 아담 언약, 노아 언약, 아브라함 언약, 모세 언약, 레위 언약, 다윗 언약, 새 언약입니다. 언약은 족쇄, 의무, 약정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사회생활에서의 언약은 두 사람 이상의 당사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조약 또는 협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두 당사자가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가 지켜야할 의무와 조건들을 자발적으로 주의깊게 설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지는 언약에서는 하나님이 우선권, 주도권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제정하십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세우십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은 통일성이 있습니다. 이들 언약은 본질적인 면에서 하나이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즉 메시아 언약을 향해 점진적으로 발전해 나갑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은 영원성이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세우신 언약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이 은혜 속에는 복으로 주신 것이라는 뜻이 포함됩니다. 각 언약들을 충분히 설명하려면 책 한 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 시간 하나님이 노아와 맺은 언약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언약의 배경, 홍수 심판(7장).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모든 생명을 쓸어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는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습니다. 불신자들이 노아의 순종하는 생활을 볼 때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은 광신자라고 비웃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 시대에 맞게 적당하게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전폭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순종에는 경외심이 있어야 합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시대에 노아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었습니다. 그들이 다 들어간 칠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였습니다.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셨습니다.
방주는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피하는 피난처였습니다. 성경에 “Ark”로 표현하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노아의 방주(Ark of Noah), 갈대 상자(Ark of bulrushes), 언약궤(Ark of covenant)입니다. 노아의 방주는 그 안에 있는 자들을 하나님의 진노의 홍수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었습니다. 갈대 상자는 아기 모세를 사탄의 모형이었던 바로의 극악한 계획으로부터 지켜주었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이 새겨진 두 돌판을 감추었습니다. 각각의 “Ark”들은 모두가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진노(방주)와 사탄의 공격(갈대 상자)과 율법의 정죄(언약궤)로부터 가려지는 것을 배웁니다.
노아가 600세 되던 해 2월 17일에 홍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빗방울이 떨어지고 천둥과 번개가 치고, 땅에서는 깊음의 샘 지하수가 터졌습니다. 하늘에서는 하늘의 창이 열려서 비가 40일 동안 주야로 쏟아졌습니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습니다. 물이 산 위로 약 6m나 올랐습니다. 홍수가 나기 전까지 사람들은 노아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홍수 심판이 임하자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40일 간의 홍수와 150일 간 물이 있었기 때문에 방주 밖에 있던 사람들은 다 죽었습니다. 젊은이, 늙은이, 아기와 여자와 가난한 자, 부자, 힘이 있는 네피림과 연약하고 병든 자, 배운 자 무식한 자들도 다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합니다. 여기에는 그 어떤 예외도 없습니다. 우리는 죄를 철저히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 두려움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죽음 앞에 모든 사람이 불안해하고 두려워합니다. 이런 불안과 두려움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기를 기도합니다.
개역개정성경에는 “방주로 들어가라”고 되어 있지만 원어는 “오라(Come)”로 되어 있습니다. “가라”는 노아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함축하지만 “오라”는 방주에서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실 것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 가족들을 구원의 방주로 오라고 초대하신 것처럼, 오늘날에도 예수님 안에 들어오도록 초청하십니다. 방주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초청은 개인적이지만 네 온 집은 방주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2).” 지금은 은혜를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고후6:2).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려있습니다. 이때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방주는 절대적으로 안전한 장소였습니다. 그 안팎을 역청으로 칠했습니다. 노아가 방주 안에 감추어진 것처럼 우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습니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골 3:3).”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습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요 18:9).”
둘째, 노아와 맺은 언약(8장, 9:9-1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물이 줄어들었고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쳤습니다.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백오십 일 후에 줄어들었습니다.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혔습니다.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 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셨습니다.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처음 한 일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고 예배하는 일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처음으로 제단이 언급되었습니다. 제단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입니다. 노아는 홍수 심판으로 인해 세상이 황폐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염려하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홍수 심판 가운데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했습니다. 정결한 짐승과 새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을 취하여 희생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희생제물 위에 기초했습니다. 그것은 노아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아니라 하나님이 노아와 맺은 언약입니다. 이 언약은 무조건적이며 절대적인 언약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향기를 받으셨다”는 것은 제사를 기쁘게 받으셨음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향기를 흠향하시고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겠다고 결심하셨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였습니다. 홍수 심판 후에도 인간 내면에 악한 본성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다”는 것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존재임을 말해줍니다. 로마서 3장 10-12절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아이들에게 죄를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죄를 잘 짓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실존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노아가 드린 희생 제물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운 분노를 진정시키고 그 분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셨습니다. 희생 제물을 통해서 인간의 허물을 덮으시고 의롭다고 칭하시는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노아의 번제물은 예표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물로부터 말미암습니다. 희생 제물을 통해서 인간을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는 예수님을 통해서 완성됩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의’라고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롬1:17). 뿐만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거듭나 새 생명을 얻고 변화가 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서 우리는 일생토록 성장하고 열매를 맺어갑니다.
22절을 보십시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사계절과 낮과 밤이 쉬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자연법칙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자연법칙들 뒤에 자연의 주인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창조세계로부터 단절시키고자 애를 씁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일용할 양식과 육체의 건강을 사람이 생산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심고 거두고 먹고 사는 것은 위로부터의 선물입니다. 계절이 순환되지 않는다든지 혹은 하나님이 지면을 새롭게 하지 않으신다면 사람은 단 한 톨의 곡식도 생산할 수 없습니다. 계절이 순환되고 지력이 새로워지는 것은 하나님이 노아와 맺은 언약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없다면 계절이 제멋대로 바뀌지 않을 것이라든지, 세상이 또 다시 홍수로 멸망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증을 결코 가질 수 없습니다. 노아의 때에 자연의 “법칙들”은 대홍수를 막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어떻게 우리 시대에 또 다시 대홍수가 임하는 것을 막을 것이란 말입니까?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내가 너희와 연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을 듣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땅이 있을 동안”이라는 말은 땅이 언제까지나 존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해 줍니다. 최후 심판이 있을 때까지 땅과 생태계를 보존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땅과 하늘이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것입니다(계 20:11, 21:1).
하나님은 심판을 은혜로 마무리하십니다. 아담의 범죄, 가인의 범죄 때처럼 죄벌을 주시지만 은혜로서 생명을 보존케 하십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범죄하지만 이를 끝까지 인내하시며 대속하시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사랑, 변함없는 사랑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9:1,2).” 하나님은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셨는데, 이 복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주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노아의 아들들에게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했음에도 여전히 복을 주는 분입니다. 그런데 아담에게 주어진 복과는 조금 다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지만,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라는 말씀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대신에 모든 동물이 인간을 두려워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권위에 대항하게 되자 자연히 짐승들도 인간의 권위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인간과 동물 상호간에 화평하지 않은 관계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말씀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또 급격한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 동물도 먹거리로 주셨습니다. 인간이 힘든 환경을 이기기 위해서 고단백질을 섭취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피 채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피를 생명체 유지의 중요한 수단으로 보시고 짐승의 피라도 피 채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사람의 피를 흘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에 모든 생명을 존엄하게 여겨서 남의 목숨을 빼앗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피를 무고하게 흘리면 인간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이는 타락한 인간 속에도 하나님의 형상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으로 공권력의 칼이 사람의 손에 위임이 됩니다. 국가의 모든 통치권과 관련한 기본적인 원리를 주신 것입니다.
9:9-11을 보십시오. “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조금만 비가 내려도 사람들은 홍수 심판이 임하지 않을까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상황을 잘 아시고 홍수 후에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다시는 홍수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결코 멸하지 않으시겠다고 언약을 채결하셨습니다.
셋째, 언약의 증거, 무지개(12-17). 하나님은 노아와 그 후손들과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세우는 언약의 증거를 주셨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하나님은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노아와 그 후손들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십니다. 무지개를 사람도 보고 하나님도 보십니다. 그 무지개를 보고 하나님은 그와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셨습니다.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17).” 무지개는 하나님께서 인간들과 모든 생물들의 생명을 담보하는 언약의 증표입니다. 홍수심판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사람의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안정시켜 줍니다. 무지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평화를 상징합니다. 무지개는 “빨주노초파남보”의 일곱 색깔로 이루어져서 매우 아름답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무지개처럼 아름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무지개가 하늘과 땅을 연결해 주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만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 많은 인간을 연결시켜 줄 수 있습니다. 무서운 진노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나타내 주는 것이 무지개입니다. 무지개는 웃는 모습이죠.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진 언약의 표징입니다. 인간에게는 언약이 필요합니다. 존재 자체가 불안하고 죄로 인해서 불안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이 필요합니다.
노아와 맺은 언약은 보편적이며, 영구적입니다. 인간이 지켜야 할 어떤 제약도 없는 것으로서 무조건적인 언약입니다. 이 언약의 목적은 창조한 세상을 보존하는데 있습니다. 이 은혜의 언약 때문에 인간은 죄를 품고 살아가면서도 생명을 유지하고 번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은혜입니다. 언약이란 환경조건이 변하고 세대가 변해도 지켜야 하기 때문에 큰 멍에가 됩니다. 하나님은 죄악된 인간들을 구원하시려고 큰 멍에를 메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악을 행하는 사람을 보고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하나님 왜 저런 악인을 빨리 데려가지 않으십니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습니다.”하소연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러면 너를 참고 기다리는 나의 고통은 얼마나 크겠느냐?” 되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심판하지 않고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십니다. 자기 인생을 다 살게 하시면서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누구나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도록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5장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마가복음 2장 17절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끈질기고 풍성한지요!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가 알고 그 은혜 안에 거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서 죄사함을 받고 자기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