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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2019년 히특 4강(12:1-29)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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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08회 작성일 19-03-10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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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히브리서 특강 4
말씀 히브리서 12:1-29
요절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배웠습니다. 어떤 이들은 믿음으로 살아서 약속의 성취를 보고 승리하는 삶을 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고난을 견디며 살다가 약속의 성취를 보지 못하고 죽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경기를 마친 선진들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 각자 믿음의 경주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경주를 잘 할 수 있을까요?

  첫째,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것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우리는 혼자서 믿음의 경주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마라톤 경주를 할 때 기본적인 복장은 가장 가볍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과학기술을 동원해서 최대한 가볍게 옷과 신발을 만듭니다.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하기 위해서도 모든 무거운 것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먹고 살 걱정이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시간과 능력 등 자신의 한계를 생각할 때 마음이 무겁습니다. 사는 것이 힘들어 몸이 무겁고 지칩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 나아가 기도함으로 우리의 무거운 짐을 그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주님을 믿음으로 무거운 짐을 그에게 맡겨야 합니다. 내가 무한 책임을 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또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은 우리가 얽매이기 쉬운 죄입니다. 게임도 한번만 하고 그만두려고 하지만 계속합니다. 이기면 좋아서 한 번 더, 지면 화가 나서 한 번 더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밤을 새고 나중에는 게임에 붙들려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우리가 쉽게 빠지는 게으름과 안일은 죄의 온상입니다. 이렇게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릴 때 마음이 가볍고 자유함을 느낍니다. 죄 사함을 받을 때 하나님을 섬기고 싶은 소원이 생깁니다. 죄 사함을 받을 때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둘째, 인내해야 합니다. 믿음의 경주는 하루 이틀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생을 해야 합니다. 마라톤 경주를 할 때 사점이 있습니다. 5-10Km, 30-35Km 지점이 가장 힘들다고 합니다. 이때를 견디면 손과 발이 자동적으로 움직이고 달리기가 편하다고 합니다. 달음질이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인내할 수 있을까요? 앞에 있는 기쁨을 생각하면 현재의 고난을 참기가 쉽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은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셨습니다. 재수생이나 고3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가서 누릴 자유와 기쁨을 생각하면서 어려움을 참습니다. 군인들은 제대를 생각하면서 군대 생활의 어려움을 참습니다. 우리가 현재의 고난을 참으면 어떤 결과가 있을까요? 우리가 얻게 될 상급은 하나님이십니다. 특히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는 분이십니다. ‘믿음의 주’라는 말은 믿음의 근원, 근본, 믿음을 만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만들어 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믿도록 만드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믿음을 온전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을 완성으로 이끄십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우리 믿음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십니다. 로마서 10:17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공부할 때 우리 마음에 진리를 알게 되고 진리를 알게 될 때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이 생길 때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치실 때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하였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진실되었고 그의 말씀대로 병자가 낫기도 하고 죄사함을 받고 광풍이 잠잠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믿음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따라야 할 모범이십니다.

  그러면 지금 고난 가운데 있는 신자들이 따라야 할 본은 무엇입니까? 바로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미혼모에게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가난한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어린 아기일 때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슬픔의 원인이 되셨습니다. 아기 때 애굽에서 이스라엘로 이사를 해야 했고 무시 받는 나사렛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그의 젊은 시절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목수 일을 하면서 어머니와 형제들과 자매들을 부양해야했습니다. 그는 머리 둘 곳조차 없이 살았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그를 미워하고 핍박했습니다. 그는 정신이상자, 미친 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귀신에 들렸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자신의 가족으로부터 배척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가르치는 사람들부터도 배척을 받았습니다. 가까운 친구가 배신을 했습니다. 그의 모든 친구들에게 버림을 받고 홀로 되셨습니다. 반역죄로 그 땅의 최고 법정에서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가장 지독한 고통과 함께 십자가형을 받으셨습니다. 심지어 그는 잠시지만 하나님에게 버림을 당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그는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깊이 이해하고 동정하며 도우실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4:15,16절은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예수님은 앞에 있는 기쁨을 바라보고 고난을 참으셨습니다. 우리는 현재 당하는 고난과 아픔, 좌절만을 보기 쉽습니다. 그러나 어둠의 터널은 끝이 있습니다. 우리가 앞에 있는 승리와 상급을 바라보고 현재의 고난을 참아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강철 멘탈이셨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렇게 강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자신이 당하는 고난의 의미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에게 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 거하였기 때문에 강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잘못해서 그랬다면 당연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내가 잘못이 없는데 비난하는 말을 들으면 무시하면 됩니다. 거짓은 잠시뿐이고 진실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바르다면 하던 일을 계속하면 됩니다. 그러면 오해는 풀리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지가의 고난을 참으셨을 때 삼일 후 부활하셨습니다. 그가 부활하심으로 그의 십자가 죽음이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한 고난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사십 일 후에 그는 승천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고난이 오래 계속되면 피곤하여 낙심하기 쉽습니다. 이때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하는 일들을 자신이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능히 동정하고 위로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어려울 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많이 묵상합니다. 그때마다 마음에 큰 위로를 경험합니다. 다시 일어나서 믿음의 경주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에 대한 죄인들의 반항을 참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낙심하여 지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대항해야 합니다(4).

  셋째, 고난은 하나님의 사랑의 훈련입니다. 5-8절을 보십시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징계는 훈련으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훈련을 받을 때에 이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합니다. 그 훈련의 의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성찰해야 합니다. 또 징계를 받는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징계가 주는 고통이 너무 힘들어 지치고 자포자기 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징계를 영접하지 못하고 쓴 뿌리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징계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주시는 훈련입니다. 훈련을 통해서 마음을 강하게 연단하고 불순물들을 제거하고 거룩하게 합니다. 훈련을 잘 감당할 때 평강의 열매를 맺고 자유를 얻게 됩니다. 어찌 아버지가 훈련하지 않는 아들이 있겠습니까? 훈련 즉 징계가 있다면 아들과 같이 우리를 대우하시는 것입니다. 징계가 없다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우리는 훈련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장 상관의 막대기나 하급자, 동역자, 염소 같은 양 막대기, 또는 1:1 성경선생의 막대기를 통해서 우리를 징계하시고 훈련시키십니다. 인생채찍이란 갑자기 들어 닥친 질병이나 실패, 가난, 사람들의 오해와 불신 받음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시키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요, 목자로 세우시기 위해서 17년간 혹독한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다윗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골리앗과 싸워 그의 목을 베었습니다. 사울 왕의 사위가 되어서는 이방의 침입을 받을 때마다 용감히 싸워 수만 명의 원수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다윗을 시기하여 그를 죽이고자 추적을 했습니다. 다윗은 억울하게도 17년간이나 광야에서 도망을 다니면서 생명의 위협과 불안정한 생활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훈련을 받고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이 외에도 하나님께서는 야곱은 20년간, 요셉은 13년간, 모세는 40년간 훈련을 시켰습니다. 이렇게 혹독하게 오랫동안 훈련시키신 것은 그들을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위대하게 쓰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훈련이 있습니까? 직장에서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3분마다 끊임없이 들어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민원인들의 고통을 듣고 해결하기 위해서 애쓰는 가운데 목자 훈련을 받는 분도 있고, 적은 돈으로 생활하는 법을 훈련하는 분도 있습니다. 새롭게 대학 생활을 하면서 인간관계를 맺는 훈련을 받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훈련들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습니까? 사람의 죄악에 대해서 이해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배우고, 섬기는 기쁨을 누리고, 적은 돈으로 원하는 물건을 사는 법을 터득하고, 사람을 이해하고 사귀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주시는 훈련을 잘 받으면 평강의 열매를 맺습니다. 감사의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과 더욱 깊이 교제함으로 기쁨을 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징계를 어떻게 받아야 할까요?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습니까? 육신의 아버지의 징계는 실수도 있고 감정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로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징계하십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입니다. 그러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우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해야 합니다. 성도들 중에는 고난으로 낙망과 실의에 빠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훈련 받는 자세가 분명하지 않고 어정쩡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제 그들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고난이니 낙망과 실의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합니다. 다시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 곧고 바른 진리의 길을 경주해야 합니다.

  그러면 신자들은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라야 합니다.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성도가 성도들과 화평하게 지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거기에다 대적하는 사람,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까지, 아니 자신을 어렵게 만들고 핍박하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하고 화평하게 지내야 합니다. 모든 사람과 화평하게 지내되 거룩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을 따라 살거나 같아지면 안 됩니다. 화평하게 지내는 것은 좋지만 그들과 함께 죄를 짓지는 말아야 합니다. 화평만 앞세워 죄에 눈감지도 말고, 거룩함만 앞세워 갈등과 분열을 만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공동체 안에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할 죄에 빠진 자가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작은 쓴 뿌리 하나가 공동체 전체를 파괴하고 더럽히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또 장자의 특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판 에서처럼 탐욕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 나라보다 세상을 사랑하여 주를 부인하는 배도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회개의 눈물조차 소용없을 때가 오기 전에 공동체를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새 언약의 자리에 있습니다. 과거 첫 언약을 맺을 때에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의 광경이 어떠하였습니까? 그들이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습니다. 이는 짐승이라도 그 산에 들어가면 돌로 침을 당하였습니다. 그 보이는 바가 무서워 모세도 이르기를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른 곳은 시온 산과 같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과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부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 교제하며 그 분을 즐거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을 거역하지 말고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28,29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받았으니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겨야 합니다. 또한 고난 받는 성도들을 사랑하고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때 고난을 잘 극복하고 영광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믿음의 경주를 잘 하기 위해서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함을 배웠습니다. 또한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 생각하고 훈련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훈련을 통해서 평강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과 화평하고 개인적으로 거룩함을 따라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고 훈련의 열매 맺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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