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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2016년 히10강(11:1-22) 믿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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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13회 작성일 16-02-07 10:39

본문

2016년 히브리서 제 10 강
말씀 | 히브리서 11:1-22
요절 | 히브리서 11:6

믿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지난 주 우리는 뒤로 물러가지 말고 오직 믿음을 굳게 잡으라는 권면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 히브리서 11장은 믿음 장이라고 부릅니다. 많은 믿음의 용사들의 믿음이 잘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가운데서 믿음으로 역경을 이기고 믿음의 발자취를 남긴 조상들의 믿음을 잘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1절을 보십시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바라지는 것들의 실상, 실체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들을 우리는 바라게 되는데 그것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이루어진 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는데 증거란 실제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지만 손에 쥔 듯이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육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영적인 눈을 떠서 미래에 되어질 일을 실제로 이루어진 것처럼 현재화시켜서 보는 것입니다. 선진들이 이 믿음으로써 증거를 얻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우리가 사는 지구를 포함해서 우주는 잘 짜여진 세계입니다. 세미한 세계부터 거대한 세계까지 모든 것이 분명한 규칙과 질서와 조화로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습니다. 믿음의 기초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창조신앙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말씀의 능력으로 이 세상을 지으셨다는 것을 믿을 때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기적들을 믿을 수 있고 우리의 삶 속에서도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아벨은 어떻게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믿음으로 드렸습니다. 제사는 하나님께 지은 죄를 회개하고 화목하기 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는 자신이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자기중심성과 교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벨은 희생제물로 양을 죽였는데 이는 단순히 양을 죽인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자신을 죽인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옛 자아를 죽인 것이요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자신을 죽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했던 부모와 자신의 죄에 대해서 애통하는 마음을 갖고 회개하고 믿음으로 희생제물을 드렸을 때 하나님은 그를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은 그의 믿음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에녹은 그 당시 사람들이 안목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따라 살 때에 육신의 본성을 회개하고 자기가 죽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이런 그를 하나님은 매우 기뻐하시고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복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5장은 조상들의 족보를 말하면서 죽었더라가 반복되었지만 에녹에게는 그것이 없습니다. 그는 죽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간 첫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된 것은 자기를 죽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욥은 자신이 이유 없이 고난을 받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기뻐하셨습니다. 히브리 신자들은 현실 속에서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고난 가운데 기도를 해도 고난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자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에 침묵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기도에 대한 응답이 없자 하나님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믿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 같아도, 계속되는 그들의 고난 가운데 하나님도 거기 계셨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고난을 받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무슨 상을 주셨습니까? 영생을 주셨습니다. 고난 가운데 그들을 위로하셨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그들의 믿음을 정금보다 더 순결하게 연단하셨습니다. 또한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을 주셨습니다. 10:35,36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은 막연하게 존재하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에게 넘치도록 보상해 주시는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저자는 선진들의 믿음에 대해서 계속해서 실례를 들고 있습니다.

  노아가 믿음으로 한 일이 무엇입니까? 7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노아의 믿음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홍수 심판에 대한 경고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많은 세월 동안 거대한 방주를 지었습니다. 사람들은 노아를 미쳤다고 조롱했습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데 홍수가 올 것이라고 거대한 방주를 짓는 그를 시대착오적인 사람이라고 놀렸습니다. 그는 하루 이틀도 아니고 120년 동안 방주를 지었습니다. 노아의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과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에 대한 믿음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조롱하면서도 속으로는 두려워하였습니다. 믿음은 때로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히브리 성도들이 핍박 가운데서 예수님을 믿는 것은 노아처럼 방주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 신학을 공부하고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합니다. 신자들은 걸어다니는 성경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소녀가 전쟁 중에 시골 농장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 소녀는 신앙을 다 낡아빠진 쓸데없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농장 주인 부부는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이었고 그 소녀에게 기독교가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습니다. 소녀도 마침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 이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성경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고,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기독교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하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농장 아주머니를 따라서 믿기만 하면 될테니까요.” 이 소녀가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 이른 것은 성령과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본을 통해서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약속의 땅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까? 8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75세였습니다. 그는 그 나이가 되도록 자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브람을 부르셔서 명령과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12:1,2).”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여러 가지 불안 요소가 있었지만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우리도 인생 길을 가지만 하루 앞을 알 수 없습니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아브람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갑니다.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하나님의 선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문학가이며 사학자였던 제임스 미케너(James Michener)는 미국 상원의 과학, 기술, 우주개발위원회에서 이런 연설을 하였습니다. “신대륙을 발견하고 세계로 뻗어나가던 15세기의 유럽 국가들을 세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새로운 가능성을 내다보지 못하고 바다 건너편 세계에 대해서 전혀 눈을 뜨지 못하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눈을 뜨긴 했지만 결심을 하고 모험을 시작할 때까지는 무척 느렸고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러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보이지 않는 새 세계를 향하여 믿음을 가지고 과감하게 바다로 나아갔다. 그래서 그들은 당시 선진국이 되었던 것이다.” 기독교인도 15세기 유럽처럼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죽을 때까지 배를 바다에 띄워 보지도 못하고 생각만 하다 마는 신자입니다. 볼 수 있는 것만 믿는다는 것은 실상 믿지 않는 것입니다. 중세기의 독일, 이탈리아 형입니다. 그 다음은 영국 프랑스 형으로 결심이 느립니다. 어느 정도의 믿음을 갖긴 하였으나 배를 띄우기까지는 남들의 경험을 오래 분석하는 경향 등 증거가 보인 뒤에야 겨우 행동합니다. 마지막은 스페인 포르투갈 형으로 보이지 않고 증거는 없어도 믿음으로 모험하는 신자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살면서 장막 생활을 했습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이삭과 야곱도 장막 생활을 했습니다. 장막 생활이란 일정한 집이 없는 텐트 생활입니다. 언제든지 옮길 수 있는 생활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고 광야에서 장막 생활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9,10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았지만 실제로 약속의 땅을 얻게 되는 것은 6백년 뒤에 여호수아 시대에 가나안 땅을 정복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믿음의 길을 가는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성취되는 때는 내가 다 알 수 없습니다. 내 당대에 성취되는 것도 있고 내 후대에 이루어질 일도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가 최종적인 약속의 땅이기 때문에 이를 바라보고 이 땅에서 나그네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은 땅과 자손입니다. 땅은 여호수아 시대에 얻었다면 자손은 어떠하였습니까?

  자손은 아브라함의 믿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아내 사라도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습니다. 여자로서 늙어 폐경이 되고 인간적으로 도무지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99세요 사라는 89세였습니다. 죽은 자와 방불한 나이였습니다. 그러나 사라는 약속을 성취하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사라는 실제적인 상황과는 관계없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은 상황과 인간조건을 초월해서 단지 하나님의 약속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죽은 자와 방불한 상태였습니다. 도저히 소망을 둘 수 없는 나이였습니다. 자신들이 일생을 헛 살지 않았는가 생각할 정도로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들은 하늘의 허다한 별과 같고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을 얻어 생육하였습니다. 그가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이십니다. 그는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고 하나님이 능히 이루실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믿음은 모든 인간적 조건과 한계를 뛰어넘습니다. 우리는 때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을 돕고자 할 때 한계에 부딪혀 그 사람을 포기하고 싶은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적인 눈으로 보지 말고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 한 사람을 통해서 무수한 후손들이 세워지게 될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습니다.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을 찾는 자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습니다.

  우리는 때로 세상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궁극적으로 마음에 안정과 평안을 얻는 곳은 본향 즉 천국입니다. 이 땅에서 너무 안정된 삶을 살고자 할 때 문제가 됩니다. 이 땅의 소망에 사로잡히게 되면 믿음으로 사는 것이 거추장스럽습니다. 자유스럽지 못한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지고 자신을 초라하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거룩한 나그네 인생을 살아야겠습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5:4).”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거기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떻게 이삭을 드릴 수 있었을까요? 17-19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하나님은 이삭을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자녀로 주셨는데 그 이삭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시험은 무엇을 시험한 것일까요? 불가능한 가운데서 자식을 주신 하나님이 죽을 아들을 살리실 것을 믿는가를 시험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창조 신앙을 시험했다면 나중에는 부활신앙을 시험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리라 믿었습니다. 부활신앙은 믿음의 최고봉입니다. 히브리 성도들은 자신들의 생명조차도 죽음의 제단에 바쳐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핍박의 강도가 더욱 심해지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 있는 히브리 성도들에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가졌던 부활 신앙을 이야기함으로 그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바쳐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은 우리의 삶 가운데서 반복적으로 요구되는 제자도입니다. 우리가 자기를 죽여야 할 상황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버림으로 승리할 때 주님은 영광과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도 우리를 축복하시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상급으로 보상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나의 하나님이 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때 낙망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신실하게 따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축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믿음의 역사는 당대에 끝나지 않습니다. 자자손손이 믿음과 축복이 계승되어집니다. 하나님이 영원히 살아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도 영원하고 믿음도 영원해야 합니다. 이삭은 야곱을 축복하고, 야곱은 12아들을 축복하였습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이 후손들에게 계승되도록 하였습니다. 우리가 당대만 생각하지 말고 역사성을 가지고 후손들에게 믿음을 가르치고 축복해야겠습니다.

  요셉은 그의 믿음을 어떻게 후손들에게 물려주었습니까? 22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 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요셉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땅에서 400년 동안 고난을 받다가 나와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것을 믿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을 믿고 자신의 뼈를 보관해서 출애굽 할 때 가지고 갈 것을 당부했습니다. 아브라함은 600년 앞을 내다보고 요셉은 400년 앞을 내다보고 살았습니다. 우리도 이 땅에서 8,90을 살지만 영원을 바라보고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역사 속에서 점진적으로 성취되어 갑니다. 믿음은 내 당대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조상들과 선배들의 믿음을 계승하고 복을 받았다면 우리의 후배들과 후손들에게 믿음이 계승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다음 세대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친히 믿음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 우리의 일상 가운데서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살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어려운 시대에 단지 먹고 사는 것에 매이지 말고 알바트로스처럼 더 높이 더 멀리 날기를 소망하며 학생 제자 양성과 세계 선교를 섬기며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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