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2016년 히8강(9:23-10:18) 한 번의 영원한 제사
페이지 정보

본문
2016년 히브리서 제 8 강
말씀 | 히브리서 9:23-10:18
요절 | 히브리서 10:14
한 번의 영원한 제사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우리는 이제까지 대제사장 예수님에 대해서 거의 모든 것을 다 이야기 했습니다. 오늘은 대제사장 예수님에 대한 결론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만 이 땅에 살면서 죄과 허물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요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십시오.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고 그의 구원은 완전합니다. 우리는 죽어봐야 구원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도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자라는 확신 가운데서 사는 것과 구원을 받기 위해서 사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고 계신 주님께서 구원의 완전함에 대해서 알게 하시고 거룩함에서 자라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해야 합니다. 즉 땅에 있는 모형에는 짐승의 피를 뿌려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참 성소의 제단에는 짐승의 피를 뿌려서 정결케 할 수 없습니다. 더 좋은 제물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피를 드리심으로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참 하늘에 들어가셨다는 말은 지극히 거룩하신 세계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습니다. 그는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사역을 하십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지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 앞에 나아가 사죄의 은혜를 덧입고, 하나님과 깊은 영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사는 대제사장이 자주 드리는 제사와 달리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셨습니다. 사람이 한 번 죽듯이 그리스도도 한 번 자신을 드리심으로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27,28절을 보십시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사람은 누구나 다 한 번은 죽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작정하신 것이니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은 자연의 법칙이요, 인간의 운명으로 받아들입니다.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볼 때 죽음은 자연 법칙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벌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한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창 3:19). 죄문제는 반드시 해결함을 받아야 합니다. 스탈린은 공산주의 혁명을 하면서 4500만명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죽어가면서 너무너무 두려워서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다고 그 딸 스베틀라나가 뉴스위크지에 폭로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6:23),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대로 따라 받게 됩니다(고후5:10).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심판이 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영생을 얻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지에 관한 상급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두 번째 나타나실 것입니다. 두 번째 오실 때는 그리스도를 소망하며 사는 성도들을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우리는 오실 그리스도를 소망하며 거룩한 삶을 살기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 세상을 살 때에 악한 사람들로 인해서 시험을 당하고 핍박도 당합니다. 때로는 나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로 인하여 주님을 섬기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나의 연약함이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이 역사하실 수 있는 공간입니다. 주님은 나의 그 연약함과 한계 때문에 나의 삶에 개입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이 이를 통해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시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번 해금강 학생 연합 수련회에서 원천센터의 김승원 목자님이 증거한 말씀의 요절은 이것이었습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9,10).” 우리는 내가 약하기 때문에 주님을 섬길 수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 세상은 강한 사람만이 살아남고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는 약한 사람도 승리할 수 있고 주님이 주시는 은혜 속에서 강해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자신에게 머물러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내가 강한 것을 자랑할 때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쉽습니다. 목자는 유모와 같이 부드럽고 온유해야 합니다. 온유한 사람이 땅을 차지하는 복을 받습니다. 자기를 낮출수록 마음은 넓어지고 어떤 사람이든지 품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자기를 높일수록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는 그릇은 작아집니다. 예수님이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말 구유에 태어나시고 목수의 아들로 자라나시고 섬기는 종의 생애를 사셨습니다. 그는 죄인 중의 죄수로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품에 담기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주님은 모든 교만한 죄인들을 품으시고 오랫동안 섬기는 종으로서 감당해주셨습니다. 그랬을 때 예수님의 삶을 본 받아 위대한 종들이 자라났고 하나님의 나라는 놀랍게 확장되었습니다.
우리는 통영 앞바다에서 숙소를 정하고 수련회를 진행했습니다. 그곳은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 대첩을 이끈 곳입니다. 임진왜란 때에 대한해협을 건너 부산으로 들어온 왜군들이 서해를 따라 올라가서 한성으로 진입하고자 했는데 그 통로에서 승전함으로 전쟁의 방향을 바꾼 곳입니다. 그때 장군은 죽기를 두려워하는 군사들의 마음을 다스려 죽고자 결단하게 했습니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 가장 연약한 가운데 있던 군사들을 지휘하여 가장 강력한 해군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는 세계 4대 해전 중에서 가장 으뜸인 전쟁사를 썼습니다.
우리는 매우 약해져 있습니다. 복음 신앙도 약해져 있습니다. 우리의 힘도 약해져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영적인 전쟁을 치루고자 하니 힘에 겹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 보혈을 흘리신 대제사장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와 도우심으로 우리는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며 인내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기를 기도합니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죄가 자꾸 생각나고 범하기 때문에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칠 수 없었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제사드릴 때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었습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다시 제사드릴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율법 제사로는 죄를 온전히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없는 인간 몸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일생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그는 율법을 빠짐없이 지키심으로 자신의 의로움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는 자신을 드리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첫째 것을 폐하심으로 둘째 것을 세우셨습니다. 첫째 것은 무엇입니까? 율법을 따라드리는 제사제도입니다. 둘째 것은 예수님께서 자기 몸으로 드리는 순종의 제사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죽임을 당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들이시라도 그 받으신 고난을 통하여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는 십자가 앞에서 눈물과 통곡으로 자기 소원을 아버지께 올리셨습니다(히 5:7). 마침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여 자기 몸을 단번에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지만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셨습니다(빌 2:8).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는 염소나 양의 피로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순종의 제사 입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옛 언약을 폐하시고 새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심으로 구속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7:27;13:12). 그 결과 우리가 누리게 된 은혜는 거룩함을 얻은 것입니다. 거룩함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속된 것과 구별됨을 의미합니다. 거룩함은 그 마음이 하나님으로 가득한 상태를 말합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룩해져야 합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거룩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속됩니다. 말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 계획하는 모든 것이 다 악합니다. 본질적으로 거짓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거룩함을 얻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죽임을 당하심으로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그의 보혈로서 우리가 입고 있던 죄의 누더기 옷을 벗기시고 의의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계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가 드린 제사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한 번의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리스도가 드린 한 영원한 제사로 인해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가 다 해결되었습니다. 다시는 우리가 희생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죄 사함을 받은 사람도 같은 죄를 반복합니다. 소감도 같은 죄를 반복해서 고백합니다. 단 번에 해결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는 죄를 반복합니다. 음란의 문제를 반복하고, 이기심의 문제를 반복하고, 게으름을 반복합니다. 그렇다면 단번에 해결했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죄를 반복한다고 해서 나의 죄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의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았고 거룩함을 얻었습니다. 죄의 잔재가 남아 있지만 우리는 거룩한 주님의 온전하심에 이르도록 자라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탁구를 칠 때 반복 훈련을 통해서 자유를 얻게 됩니다. 반복 훈련을 통해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공을 보낼 수 있고, 내가 원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반복 훈련 없이 생각만으로 원하는 공격을 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는 우리가 자기 죄를 생각하기보다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내가 분명히 음란하고 죄가 있지만 예수님 안에 있을 때 거룩한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습니다. 이미 속죄제사가 끝났기 때문에 거기에 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죄를 짓지만 회개하고 죄 사함을 누립니다. 고백을 통해서 주님의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믿고 성장과 성숙을 위해 나아가야 합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자기 원수들은 누구입니까? 사탄과 악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원수들은 신자들을 끊임없이 공격하여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사탄은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통하여 신자들을 괴롭힙니다. 거짓 진리를 통해서 신자들을 속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셔서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우리는 원수들과 싸워야 합니다. 이것이 거룩한 영적인 싸움입니다. 그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온 몸이 깨끗하기 때문입니다. 목욕은 단 번에 우리가 거룩하게 된 것을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우리 구원의 완전함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28-30).” 우리를 영화롭게 하셨다는 말씀이 과거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되어질 일인데 예수님 안에서 이미 완료된 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이루신 구원의 온전함을 믿고 실제 삶에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위해서 힘쓸 수 있는 토대는 영단번에 온전하게 되었다는 진리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연합하여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서 나를 보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때로 넘어질지라도 대제사장되신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또 믿음으로 나아가면 언제든지 우리를 긍휼과 자비로 용납해 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또 그 죄를 이길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이 시간 성령께서 우리에게 증언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16-18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우리가 왜 이 말씀을 지난 주에 이어 반복하는 것입니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복음은 반복해서 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두신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와 불법을 하나님이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언약을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은 찬양합니다. 이 놀라운 복음 위에 굳게 서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웁시다. 예수님이 드린 제사는 영원한 효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를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아가야겠습니다.
민학근 목사님은 <장발장 목사>라는 책을 썼습니다. 부제목은 <세상에 이런 나쁜 놈도 목사가 되다니>입니다. 그는 2살 때 생모가 돌아가시고 계모 밑에서 구박받다 13살에 가출했습니다. 어려서 어머니가 그렇게 때리고 구박해서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동네사람들에게서 듣게 됩니다. “너의 생모는 2살 때 돌아가셨다. 네 형제들은 이복형제들이다.” 그는 계모 밑에서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가출했는데 먹을 것이 없어 3일을 굶다가 빵을 훔칩니다. 결국 잡혀서 소년원에 갑니다. 거기서 나쁜 것들을 배우고 나와도 또 문제를 일으키고 교도소를 드나들기 시작합니다. 전과 9범이 됩니다. 조폭들의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사형구형까지 받습니다. 총 22년 6개월을 교도소에서 보냅니다. 구제불능의 인간입니다. 그런데 깡패출신의 목사 고이천석 목사의 설교를 듣고 복음을 영접합니다. 여러 믿음 좋은 분들의 권면으로 회심을 합니다. “나 같은 죄인도 예수님이 용서해 주시는구나” 눈물로 회개하고 거듭남을 체험합니다. 감옥에서 성경을 백번 읽고, 책을 만권을 독파합니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통신으로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가 됩니다. 감옥에서 출소한 후 8년째 붕어빵 장사를 하는데, 한 장소에서 기반이 잡히면 출소자에게 물려주고, 다른 곳으로 옮깁니다. 그렇게 30군데를 물려주고, 지금도 교도소 재소자들, 고아들, 소년소녀가장 등을 섬기고 있습니다. 붕어빵을 사러 온 한 아이가 엄마에게 말합니다. “엄마, 나 이 아저씨 TV에서 봤어(아침마당등에 출연했음). 옛날에 나쁜 일 많이 해서 감옥에 갔는데 지금은 목사님이 되었대.” 옆에 엄마가 말합니다. “세상에 저런 나쁜 놈도 목사가 되는구나” 한마디 하고 사라집니다. 그는 그 말을 듣고 주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했다고 했습니다. “그래, 나같이 나쁜 놈도 없지, 이런 내가 목사가 되었으니 얼마나 은혜인가”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제사는 영원한 제사입니다. 더 이상 다른 제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영원한 희생 제사를 통해서 이 지상에 오고 가는 모든 사람들이 죄사함과 구원을 받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습니다. 이 복음은 우리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이 복음을 전하여 죄로 인해 고통하는 사람들을 구원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히브리서 9:23-10:18
요절 | 히브리서 10:14
한 번의 영원한 제사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우리는 이제까지 대제사장 예수님에 대해서 거의 모든 것을 다 이야기 했습니다. 오늘은 대제사장 예수님에 대한 결론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만 이 땅에 살면서 죄과 허물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요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십시오.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고 그의 구원은 완전합니다. 우리는 죽어봐야 구원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도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자라는 확신 가운데서 사는 것과 구원을 받기 위해서 사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고 계신 주님께서 구원의 완전함에 대해서 알게 하시고 거룩함에서 자라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해야 합니다. 즉 땅에 있는 모형에는 짐승의 피를 뿌려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참 성소의 제단에는 짐승의 피를 뿌려서 정결케 할 수 없습니다. 더 좋은 제물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피를 드리심으로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참 하늘에 들어가셨다는 말은 지극히 거룩하신 세계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습니다. 그는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사역을 하십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지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 앞에 나아가 사죄의 은혜를 덧입고, 하나님과 깊은 영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사는 대제사장이 자주 드리는 제사와 달리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셨습니다. 사람이 한 번 죽듯이 그리스도도 한 번 자신을 드리심으로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27,28절을 보십시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사람은 누구나 다 한 번은 죽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작정하신 것이니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은 자연의 법칙이요, 인간의 운명으로 받아들입니다.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볼 때 죽음은 자연 법칙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벌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한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창 3:19). 죄문제는 반드시 해결함을 받아야 합니다. 스탈린은 공산주의 혁명을 하면서 4500만명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죽어가면서 너무너무 두려워서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다고 그 딸 스베틀라나가 뉴스위크지에 폭로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6:23),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대로 따라 받게 됩니다(고후5:10).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심판이 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영생을 얻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지에 관한 상급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두 번째 나타나실 것입니다. 두 번째 오실 때는 그리스도를 소망하며 사는 성도들을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우리는 오실 그리스도를 소망하며 거룩한 삶을 살기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 세상을 살 때에 악한 사람들로 인해서 시험을 당하고 핍박도 당합니다. 때로는 나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로 인하여 주님을 섬기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나의 연약함이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이 역사하실 수 있는 공간입니다. 주님은 나의 그 연약함과 한계 때문에 나의 삶에 개입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이 이를 통해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시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번 해금강 학생 연합 수련회에서 원천센터의 김승원 목자님이 증거한 말씀의 요절은 이것이었습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9,10).” 우리는 내가 약하기 때문에 주님을 섬길 수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 세상은 강한 사람만이 살아남고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는 약한 사람도 승리할 수 있고 주님이 주시는 은혜 속에서 강해질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자신에게 머물러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내가 강한 것을 자랑할 때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쉽습니다. 목자는 유모와 같이 부드럽고 온유해야 합니다. 온유한 사람이 땅을 차지하는 복을 받습니다. 자기를 낮출수록 마음은 넓어지고 어떤 사람이든지 품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자기를 높일수록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는 그릇은 작아집니다. 예수님이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말 구유에 태어나시고 목수의 아들로 자라나시고 섬기는 종의 생애를 사셨습니다. 그는 죄인 중의 죄수로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품에 담기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주님은 모든 교만한 죄인들을 품으시고 오랫동안 섬기는 종으로서 감당해주셨습니다. 그랬을 때 예수님의 삶을 본 받아 위대한 종들이 자라났고 하나님의 나라는 놀랍게 확장되었습니다.
우리는 통영 앞바다에서 숙소를 정하고 수련회를 진행했습니다. 그곳은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 대첩을 이끈 곳입니다. 임진왜란 때에 대한해협을 건너 부산으로 들어온 왜군들이 서해를 따라 올라가서 한성으로 진입하고자 했는데 그 통로에서 승전함으로 전쟁의 방향을 바꾼 곳입니다. 그때 장군은 죽기를 두려워하는 군사들의 마음을 다스려 죽고자 결단하게 했습니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 가장 연약한 가운데 있던 군사들을 지휘하여 가장 강력한 해군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는 세계 4대 해전 중에서 가장 으뜸인 전쟁사를 썼습니다.
우리는 매우 약해져 있습니다. 복음 신앙도 약해져 있습니다. 우리의 힘도 약해져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영적인 전쟁을 치루고자 하니 힘에 겹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 보혈을 흘리신 대제사장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와 도우심으로 우리는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며 인내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기를 기도합니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죄가 자꾸 생각나고 범하기 때문에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칠 수 없었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제사드릴 때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었습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다시 제사드릴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율법 제사로는 죄를 온전히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없는 인간 몸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일생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그는 율법을 빠짐없이 지키심으로 자신의 의로움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는 자신을 드리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첫째 것을 폐하심으로 둘째 것을 세우셨습니다. 첫째 것은 무엇입니까? 율법을 따라드리는 제사제도입니다. 둘째 것은 예수님께서 자기 몸으로 드리는 순종의 제사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죽임을 당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들이시라도 그 받으신 고난을 통하여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는 십자가 앞에서 눈물과 통곡으로 자기 소원을 아버지께 올리셨습니다(히 5:7). 마침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여 자기 몸을 단번에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지만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셨습니다(빌 2:8).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는 염소나 양의 피로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순종의 제사 입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옛 언약을 폐하시고 새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심으로 구속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7:27;13:12). 그 결과 우리가 누리게 된 은혜는 거룩함을 얻은 것입니다. 거룩함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속된 것과 구별됨을 의미합니다. 거룩함은 그 마음이 하나님으로 가득한 상태를 말합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룩해져야 합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거룩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속됩니다. 말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 계획하는 모든 것이 다 악합니다. 본질적으로 거짓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거룩함을 얻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죽임을 당하심으로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그의 보혈로서 우리가 입고 있던 죄의 누더기 옷을 벗기시고 의의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계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가 드린 제사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한 번의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리스도가 드린 한 영원한 제사로 인해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가 다 해결되었습니다. 다시는 우리가 희생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죄 사함을 받은 사람도 같은 죄를 반복합니다. 소감도 같은 죄를 반복해서 고백합니다. 단 번에 해결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는 죄를 반복합니다. 음란의 문제를 반복하고, 이기심의 문제를 반복하고, 게으름을 반복합니다. 그렇다면 단번에 해결했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죄를 반복한다고 해서 나의 죄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의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았고 거룩함을 얻었습니다. 죄의 잔재가 남아 있지만 우리는 거룩한 주님의 온전하심에 이르도록 자라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탁구를 칠 때 반복 훈련을 통해서 자유를 얻게 됩니다. 반복 훈련을 통해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공을 보낼 수 있고, 내가 원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반복 훈련 없이 생각만으로 원하는 공격을 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는 우리가 자기 죄를 생각하기보다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내가 분명히 음란하고 죄가 있지만 예수님 안에 있을 때 거룩한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습니다. 이미 속죄제사가 끝났기 때문에 거기에 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죄를 짓지만 회개하고 죄 사함을 누립니다. 고백을 통해서 주님의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믿고 성장과 성숙을 위해 나아가야 합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자기 원수들은 누구입니까? 사탄과 악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원수들은 신자들을 끊임없이 공격하여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사탄은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통하여 신자들을 괴롭힙니다. 거짓 진리를 통해서 신자들을 속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셔서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우리는 원수들과 싸워야 합니다. 이것이 거룩한 영적인 싸움입니다. 그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온 몸이 깨끗하기 때문입니다. 목욕은 단 번에 우리가 거룩하게 된 것을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우리 구원의 완전함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28-30).” 우리를 영화롭게 하셨다는 말씀이 과거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되어질 일인데 예수님 안에서 이미 완료된 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이루신 구원의 온전함을 믿고 실제 삶에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위해서 힘쓸 수 있는 토대는 영단번에 온전하게 되었다는 진리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연합하여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서 나를 보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때로 넘어질지라도 대제사장되신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또 믿음으로 나아가면 언제든지 우리를 긍휼과 자비로 용납해 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또 그 죄를 이길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이 시간 성령께서 우리에게 증언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16-18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우리가 왜 이 말씀을 지난 주에 이어 반복하는 것입니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복음은 반복해서 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두신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와 불법을 하나님이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언약을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은 찬양합니다. 이 놀라운 복음 위에 굳게 서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웁시다. 예수님이 드린 제사는 영원한 효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를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아가야겠습니다.
민학근 목사님은 <장발장 목사>라는 책을 썼습니다. 부제목은 <세상에 이런 나쁜 놈도 목사가 되다니>입니다. 그는 2살 때 생모가 돌아가시고 계모 밑에서 구박받다 13살에 가출했습니다. 어려서 어머니가 그렇게 때리고 구박해서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동네사람들에게서 듣게 됩니다. “너의 생모는 2살 때 돌아가셨다. 네 형제들은 이복형제들이다.” 그는 계모 밑에서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가출했는데 먹을 것이 없어 3일을 굶다가 빵을 훔칩니다. 결국 잡혀서 소년원에 갑니다. 거기서 나쁜 것들을 배우고 나와도 또 문제를 일으키고 교도소를 드나들기 시작합니다. 전과 9범이 됩니다. 조폭들의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사형구형까지 받습니다. 총 22년 6개월을 교도소에서 보냅니다. 구제불능의 인간입니다. 그런데 깡패출신의 목사 고이천석 목사의 설교를 듣고 복음을 영접합니다. 여러 믿음 좋은 분들의 권면으로 회심을 합니다. “나 같은 죄인도 예수님이 용서해 주시는구나” 눈물로 회개하고 거듭남을 체험합니다. 감옥에서 성경을 백번 읽고, 책을 만권을 독파합니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통신으로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가 됩니다. 감옥에서 출소한 후 8년째 붕어빵 장사를 하는데, 한 장소에서 기반이 잡히면 출소자에게 물려주고, 다른 곳으로 옮깁니다. 그렇게 30군데를 물려주고, 지금도 교도소 재소자들, 고아들, 소년소녀가장 등을 섬기고 있습니다. 붕어빵을 사러 온 한 아이가 엄마에게 말합니다. “엄마, 나 이 아저씨 TV에서 봤어(아침마당등에 출연했음). 옛날에 나쁜 일 많이 해서 감옥에 갔는데 지금은 목사님이 되었대.” 옆에 엄마가 말합니다. “세상에 저런 나쁜 놈도 목사가 되는구나” 한마디 하고 사라집니다. 그는 그 말을 듣고 주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했다고 했습니다. “그래, 나같이 나쁜 놈도 없지, 이런 내가 목사가 되었으니 얼마나 은혜인가”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제사는 영원한 제사입니다. 더 이상 다른 제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영원한 희생 제사를 통해서 이 지상에 오고 가는 모든 사람들이 죄사함과 구원을 받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습니다. 이 복음은 우리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이 복음을 전하여 죄로 인해 고통하는 사람들을 구원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를 기도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