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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 2018 합2강(3:1-9)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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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00회 작성일 18-09-16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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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하박국 제 2 강
말씀 | 하박국 3:1-19
요절 | 하박국 3:18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나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나 자신의 죄와 허물로 인해서 실패하고 수치를 당합니다. 외부적인 환난으로 인해서 힘을 써도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일본은 골라서 취직을 하는 판인데 한국의 청년 대학생들은 수십 군데 원서를 넣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장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시대가 어렵기 때문에 기뻐할 일이 없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진정 기뻐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I.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1-15)

  이제까지 하나님께 항변하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해야 합니다. 하박국은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다가 하나님께 대한 찬양으로 가득하여 수금(시기오놋)에 맞추어 기도합니다. 찬양은 곡조를 붙인 기도입니다. 그의 찬양은 경쾌하고 빠른 박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그 소문은 유다 백성들을 바벨론을 통해서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백성이 당할 심판을 생각할 때에 낙담하기 쉬웠습니다. 이때 그는 어떻게 기도합니까? 2a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그는 심판 받아 멸망할 백성들을 앞에 두고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대개 전쟁 후에 영적인 부흥이 일어납니다. 우리나라도 6.25 전쟁 이후에 폐허가 된 상황에서 놀라운 영적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하박국은 심판을 받기 전에 영적인 부흥을 이루어 달라는 것입니다.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부흥하게 한다는 말은 소성하다, 깨끗하게 교정하다는 뜻입니다. 즉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을 다시 살린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강포와 간악과 패역과 겁탈과 변론과 분쟁 등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은 상태나 다름이 없습니다. 거기에다 이제 바벨론의 침략을 받게 되면 나라가 풍비박산 날 것입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 하박국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박국은 자기와 백성에게 죄가 있음을 솔직히 시인하고 정결하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는 자신들은 심판 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는 심판을 받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있습니다.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말아 달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없으면 우리는 한시도 설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뿐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구원의 시작입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말씀에 대한 사모함을 주십니다. 증거 되는 말씀에 권능을 주시고 회개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회개 후에 삶이 변화되는 역사가 각 사람에게 강력하게 일어납니다. 부흥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주의 일입니다.

  평양 대부흥 운동은 선교사 하디의 회개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거슬러 올라가면 원산부흥운동이 발흥했던 두 명의 여 선교사들의 기도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중국의화단 사건으로 원산으로 피신해온 여 선교사 화이트(Mary Culler White)와 캐나다 장로교 출신 여선교사 맥컬리(Louise Hoard McCully)가 선교사들과 한국인들 가운데 부흥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도회 소식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다른 선교사들도 하나 둘씩 기도회에 합류하였습니다. 이들은 차제에 공개적으로 기도회를 갖기로 하고 의료 선교사 하디(Robert A. Hardie)에게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기도할 수 있는지 3번의 강의를 부탁했습니다. 강의 부탁을 받은 하디가 강의를 준비하다 말씀과 만나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명문 토론토대학, 그것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입국한 하디는 그 내면에 학력에 대한 교만함,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교만함, 영국시민이라는 백인우월주의, 한국인에 대한 편견과 인종차별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이 모든 것을 깨닫게 해주신 것입니다. 이미 기도회 시작하기 전부터 말씀을 통해 은혜를 경험한 하디는 기도회를 인도하는 동안 내내 울면서 동료 선교사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통회했습니다. 하디 자신이 고백했듯이 그것은 고통스럽고 굴욕적인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 앞에 그는 자신의 죄악과 잘못을 토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하디의 고백은 동료 선교사들의 회개로 이어졌습니다. 그 다음 주일 창전감리교회 예배 때 하디는 자신이 맡고 있는 회중들 앞에서 또 다시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 앞에 자신의 교만과 성령충만하지 못함과 한국인들에 대한 인종편견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디의 고백은 한국인들의 회개운동으로 이어져 회개를 동반한 성령의 역사가 1903년 8월 이후 계속되었습니다.

  1907년 1월 2일부터 15일까지 평안남도 전역에서 올라온 1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평안남도 도사경회가 열렸습니다. 6일부터 저녁집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낮에는 평양시내 사람들은 참석이 허용되지 않았으나 저녁에 열리는 저녁집회에는 평양시내 사람들도 참석이 허용되었습니다. 그 놀라운 평양대부흥운동은 사경회 기간, 특별히 사경회 마지막 14일과 15일 이틀 동안에 발흥했습니다. 12일 블레어가 말씀을 전할 때 은혜가 임했으나 13일 주일 저녁집회는 냉랭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고포드의 말을 빌린다면 마치 놋쇠로 된 지붕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기도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막는 것처럼 답답했고, 마치 사탄이 온 회중을 압도한 것처럼 그날의 영적분위기는 너무도 차가웠습니다. 오죽했으면 그날 말씀을 전했던 길선주가 너희 다 죽었어 라고 반문할 정도였습니다.

  길선주는 물론 모든 선교사들은 이렇게 사경회가 끝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14일 정오기도회에 모여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날 헌트가 말씀을 전한 후 이길함이 나와 통성기도를 요청하자 청중들이 기도를 드렸습니다. 통성기도는 전날과 완연히 달랐습니다. 통성기도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을 다 돌려보내고 600명이 남아 새벽 2시까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사도행전 이후 가장 강력한 성령의 역사로 평가받는 평양대부흥운동은 바로 그 때 모인 남은 자 600명 가운데 임했습니다. 회개를 동반한 강력한 성령의 역사는 모인이들 모두가 처음 체험하는 강력한 부흥이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새롭게 만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 위엄에 찬 하나님.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시도다(셀라). 그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3).” 데만은 에돔 땅에 있는 도시이고 바란산은 시내산 북쪽의 많은 산들을 가리킵니다. 시내산에서 영광스럽게 빛으로 현현하셨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바란산과 데만을 거쳐 영광스럽게 나오시는 모습을 하박국은 보았습니다. 선지자는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미래에 다가올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실 때에 그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 찬송이 세계에 가득했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역병이 그 앞에서 행하며 불덩이가 그의 발 밑에서 나오는도다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며 그가 보신즉 여러 나라가 전율하며 영원한 산이 무너지며 무궁한 작은 산이 엎드러지나니 그의 행하심이 예로부터 그러하시도다.” 역병은 전염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바로를 심판하실 때 전염병과 우박으로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우박이 내릴 때에 불덩이가 땅을 굴러 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파괴하는 신이십니다.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고 그가 보신즉 여러 나라들이 전율했습니다. 그는 땅을 진동시키시고 산을 무너뜨리셨습니다. 땅과 산은 안정성, 영원성을 상징합니다.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앗수르와 애굽과 바벨론 제국이 침몰해버릴 것입니다. 각 나라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꼼짝 못하고 잠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역사를 볼 때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위엄 있게 세계를 통치하고 계십니다.

둘째, 구원의 용사이신 하나님(8-11). 8,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주께서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오니 강들을 분히 여기심이니이까 강들을 노여워하심이니이까 바다를 향하여 성내심이니이까 주께서 활을 꺼내시고 화살을 바로 쏘셨나이다 (셀라) 주께서 강들로 땅을 쪼개셨나이다.” 주께서 말을 타시고 진격하는 모습을 보이시고 군사들을 지휘하여 적을 이기시는 모습은 구원자의 모습입니다. 산들이 주를 보고 흔들리며 강들이 넘치고 바다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높이 들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널 때의 모습을 연상시켜 줍니다.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시고 원수들을 수장시키신 승리의 용사이십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날아가는 주의 화살의 빛과 번쩍이는 주의 창의 광채로 말미암아 해와 달이 그 처소에 멈추었나이다.” .” 이는 여호수아가 아모리 사람들을 물리칠 때 태양과 달을 멈추게 하고 진멸한 사건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그 택하신 백성을 책임지시고 보호하시고 구원하십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심판 중에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자기 백성이 멸망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셋째, 심판의 하나님(12-15). 13,14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의 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바닥까지 드러내셨나이다 (셀라) 그들이 회오리 바람처럼 이르러 나를 흩으려 하며 가만히 가난한 자 삼키기를 즐거워하나 오직 주께서 그들의 전사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셨나이다.” 하나님은 악인을 철저히 심판하시고 원수를 멸하십니다. 그들의 전사들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십니다. 주의 백성, 기름받은 자는 구원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구원하시되 원수들은 반드시 진멸하십니다. 그들을 철저하게 멸하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선을 행하며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갚아 주시고, 오직 악을 행하고 불의를 띠르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노와 분으로 심판하십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역사 속에서 악인을 심판하시고 그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미래에 대해서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현재만 바라볼 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한 사람들, 성공한 사람들을 부러워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인 안목이 있으면 악인이 흥하는 것은 잠깐이요 믿는 자에게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할 것을 바라보고 하나님 나라에 목표를 두고 살게 됩니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입니다. 과거 속에 역사하신 하나님은 현재에도 살아계시고 미래에도 우리를 구원하실 분이십니다. 

II.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16-19)
  16절은 2절과 연결됩니다. 3-15절에서 계시 가운데 위엄과 영광의 하나님을 본 하박국은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현실로 돌아오자 들리는 것은 바벨론이 곧 침공해 온다는 소문이었습니다. 바벨론의 침공소식을 듣는 하박국의 내적 고통이 어떠하였습니까? 16절을 보십시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를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 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바벨론이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생각하자 하박국은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는 고통이 밀려 왔습니다. 잔인하고 강포한 바벨론 군대가 치러 올라와서 약탈과 살육을 자행하고 자기 민족을 포로로 끌고 갈 것을 생각할 때 너무도 괴로웠습니다. 하박국은 선지자로서 자신보다 자기 민족이 당할 고통을 생각할 때 그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이처럼 덜덜 떨리는 상황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어떻게 하겠다고 합니까? 17,18절을 보십시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7절은 바벨론의 침략으로 인해 유다 땅이 약탈당하여 황폐화 될 것을 실감나게 표현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니 당연히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에는 아무 소출도 없게 됩니다. 전쟁으로 밭이 황폐화되니 먹을 식물도 없게 됩니다. 탐욕스런 바벨론 군대가 와서 양을 잡아가고 소는 끌고 가서 잡아먹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와 외양간이 텅텅 비고 찬바람만 썰렁하게 불게 됩니다. 유다 사람들은 다 빼앗기고 당장 내일 먹을 양식을 걱정해야 합니다. 17절 한절에는 없다는 말이 무려 6번이나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없다고 하는 것들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 아니라 반드시 있어야 하는 생활필수품들입니다. 무화과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로 먹는 과일이고, 포도주는 음료수의 주종이고, 감람나무는 기름을 짜는 것이고, 밭의 식물은 하루 세끼 양식이고, 양은 털로 옷을 만들어 입는 것이고, 소는 농사를 짓는 수단이요, 동시에 양과 함께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사용하는 제물입니다. 이처럼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을 다 빼앗기고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하박국은 어떻게 하겠다고 합니까? 하나님을 원망하겠다고 합니까?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을 품겠다고 합니까? 18절을 보십시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전쟁으로 아무 것도 없는 지경에 이를지라도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하박국 선지자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첫째,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는 신앙입니다(18a).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한다는 것은 세상의 것으로 즐거움을 삼지 않고 하나님만으로 즐거움을 삼는 것을 말합니다. 하박국은 바벨론의 침략으로 모든 것이 다 없어질지라도 오직 하나님만으로 즐거워하겠다고 합니다. 전쟁으로 인해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감람나무도 없고, 먹을 양식도 없고, 양도 없고, 소도 없을지라도 그는 여호와만으로 즐거워하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만을 즐거움의 근원으로 삼는 순수한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무엇으로 인하여 즐거워합니까? 어떨 때 즐겁습니까? 우리는 대체로 자신의 상황이 17절과 정반대로 될 때 아주 즐겁습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풍성하고, 밭에 식물이 가득하고, 우리에 살찐 양이 많고, 외양간에 소가 송아지까지 낳아서 젖을 먹이고 있을 때 즐겁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우리 자식이 공부를 잘해서 ‘1등’이라고 적힌 성적표를 가져오고 수능도 잘 봐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기쁜 것 아닙니까? 시험을 치르는데 신기하게도 공부한데서만 문제가 나오고 예상외로 좋은 학점이 나올 때 기쁜 것 아닙니까? 우리들은 자신이 하는 사업이 잘 되어 돈도 잘 벌리고, 직장에서는 승진이 잘 되고, 자식도 잘 자라고, 시험 쳤다 하면 붙고, 학점도 잘 나오고, 아르바이트도 척척 생길 때 즐거운 법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반대로 일이 잘 안 풀리고 꼬여 가는 것만 같을 때 우리가 하박국처럼 감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환난이 찾아와서 있던 것도 사라지는 뼈아픈 상실의 고통을 체험할 때 하박국처럼 감사할 수 있나요? 직장 생활은 언제 구조조정 대상이 될지 불안하고, 건강이 좋지 않은데 과연 우리가 하박국 선지자처럼 “이렇게 되었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고 또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일생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잘 받아서 관리하고 남기는 청지기로 살다가 가야 합니다. 아무 것도 없지만 감사할 이유를 찾아보면 많은 것들로 인해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주께 받은 복을 세어보십시오. 감사가 생깁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이것이 없다, 저것이 없다 불평만 하면 감사는커녕 하나님께 대한 믿음마저도 흔들립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탐욕의 죄는 우상숭배입니다. 사람이 소유에 집착하는 이유는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된 구원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구원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 자체로 기뻐할 수 있는 고귀한 영혼을 가진 존재입니다. 우리가 현실이 슬퍼할 조건밖에 없고 극한 어려움에 처해 있을지라도 순수하게 하나님 한 분으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박국 선지자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이유가 하나님으로부터 무슨 축복을 받아서가 아니라 여호와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신앙입니다(18b). 하박국은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구원의 하나님’은 하박국 자신과 자기 민족을 구원하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구원을 주십니다. 우리는 과거 죄와 사탄의 종노릇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들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롭다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스런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를 괴롭히던 사망 권세와 마귀로부터 자유하게 해 주셨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살아가면서 때마다 겪는 어려움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구원은 현재적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우리를 영화롭게 하사 몸도 구원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하십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기억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있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주 여호와가 나의 힘이 되십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 신자의 힘입니다. 느헤미야 8:10절은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박국은 하나님을 기뻐함으로 환난을 극복할 힘을 얻었고 절망을 이길 힘을 얻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사슴의 발은 빠르고 지치지 않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발을 사슴처럼 힘있게 하심으로 앞으로 닥칠 고난을 이기게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또 장차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높은 곳을 다닌다는 것은 장차 바벨론이 망하고 유다가 그 압제에서 벗어나는 날,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 시간 하박국 선지자의 신앙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영접하고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는 가운데 장애물을 극복하고 목표를 성취하며 시험을 이기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저희들을 축복하시고 하나님 한 분으로 즐거워하는 믿음으로 맡기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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