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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 2018합1강(1:1-2:20)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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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04회 작성일 18-09-0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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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하박국 제 1 강                        
말씀 | 하박국 1:1-2:20
요절 | 하박국 2:4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살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저자 하박국의 이름의 뜻은 ‘포옹하다, 또는 레슬러’입니다. 그는 자기 백성을 껴안고 달래는 유모와 같이 고통하는 백성들을 안고 메지시를 전합니다. 또 그는 하나님과 씨름을 하는 자입니다. 그는 므낫세의 통치 말기와 요시야 시대의 예언자로서 주전 650-627년 어간에 예언을 했습니다. 그가 사역을 했던 시기는 국가적으로 국제적으로 위기였습니다.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패망시키고, 요시야는 종교개혁을 하다가 앗수르를 치기 위해 길을 열어 달라는 애굽과 맞서다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애굽이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멀리 있는 바벨론이 신흥제국으로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사회는 타락하여 강포와 겁탈이 만연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께 항변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박국 선지자의 항변을 듣고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묻고 그의 응답을 들으며 그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기를 원합니다. 
I.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 까지리이까?(1:1-11)
하박국 선지자가 살던 시대는 유다 왕국의 국운이 기울어져 가는 여호야김(B.C. 609-598) 왕 통치 시대였습니다. 그 시대는 사람들이 악인의 손에서 고통하고 강포와 폭력, 불의와 부정과 부패로 깊이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고용하여 불의로 집을 짓고  품삯을 주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백향목으로 수억짜리 고가 집짓기 경쟁을 하였습니다(렘22 :13,14). 그리고 권세있고 힘있는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과 궁핍한 자들을 착취하고 압제했습니다. 그로 인해서 사회의 양극화는 심해졌습니다. 그는 눈 앞에서 간악과 패역과 겁탈과 강포가 행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선지자 하박국은 이런 유다의 형편을 보고 큰 의분과 슬픔에 빠져 고통했습니다. 그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조국을 위해 부르짖고 외치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 응답이 없으셨습니다. 이에 그는 견디다 못해 하나님께 항의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 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의가 짓밟히는데도 왜 잠잠하십니까?”, “하나님은 왜 이 땅에 사악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허용하시는 것입니까?”하나님께서 가슴 아픈 상황들을 무심하게 바라만 보고 계시는 것 같이 생각되어 항의했습니다. 현실은 절망적이고 아무리 부르짖어 기도해도 응답이 없을 때 실망과 좌절로 인해 고뇌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며 묻는 나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바로 바로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 잠잠하십니다. 답답합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시고 세상은 계속 이렇게 타락하여 간다면 믿는 자는 어떻게 살 수 있단 말인가?” 악한 시대에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며, 왜 살아야 하는가?” 이런 생각들을 하며 삶의 의미와 목적과 방향을 상실하고 무기력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4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권위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율법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퍼지고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어리석게 생각합니다. 공의가 전혀 시행되지 않으니 악인이 의인을 에워싸고 정의가 굽게 행하여 집니다. 한마디로 큰소리치는 사람들이 이익을 보고 의롭게 살려는 사람들이 손해를 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신자들마저 타락하여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사람이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들의 영향력이 현격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니 복음을 전해도 사람들이 코웃음만 칩니다. 이런 시대를 살고자 할 때 신자들의 탄식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상황은 그때와 거의 비슷합니다. 군대에서도 동성애를 합법화하고, 이것을 죄라고 하면 잡아 가두는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합니다. 주택 보급률은 100%가 넘었지만 자가보유율은 61%에 불과합니다. 또한 주택보급을 늘리겠다고 하는데 빈 집이 서울에만 9만호 이상이라고 합니다. 대법원의 판결이 1,2심을 뒤집었는데 정치적인 결탁의 결과라는 소식이 들립니다. 공정해야 할 재판에 불의가 끼어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대기업 총수들은 죄를 무겁게 지어도 집행 유예로 풀려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전 유죄 유전 무죄입니다. 우리는 여기저기서 울분에 찬 소리, 원통한 소리, 한 숨소리를 듣습니다. 최저임금 보장, 소득주도 성장을 추진하는데 도리어 가난한 사람들의 수입이 16%나 줄어들고 부자들의 수입이 늘어났습니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기도 어렵고 취직을 하여 집을 장만하기도 어렵다는 생각으로 절망하여 버는대로 즐기자는 풍조가 만연합니다. 여기저기 탄식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공의와 사회정의를 부르짖지만 여전히 원통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날 하박국의 이 절규 섞인 하소연에 응답하셨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하나님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갈대아 사람들을 통해서 그들이 도저히 믿지 못할 방법으로 유다를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땅이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점령합니다. 그들은 두렵고 무서우며 당당한 위엄을 가지고 나옵니다. 그들의 군마는 표범보다 빠르고 저녁 이리보다 사나우며 그들의 마병은 먼 곳에서부터 빨리 달려옵니다. 마치 먹이를 움키려 하는 독수리의 날음과 같이 빠릅니다. 그들은 사람을 사로잡아 모으기를 모래 같이 많이 할 것입니다. 그들은 왕들을 멸시하며 방백들을 조소하며 모든 견고한 성들을 비웃고 흉벽을 쌓아 그것을 점령할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힘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힘을 믿고 자기들의 욕심대로 행하고 그들의 말이 곧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을 심판하며 바람 같이 급히 몰아 지나치게 행하여 범죄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무섭고도 철저하게 심판하시는 것입니까? 이는 그들이 너무 깊이 병들어서 이런 방법이 아니고는 그들의 죄를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환난을 통하여 율법에 순종하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세상에 임하기 전에 먼저 신자들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신자들이 세상의 소금이 되어 부패를 막지 못하면 우리는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버려집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어 어둠을 몰아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우리 안에 어두움이 있으면 세상은 어디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가 생명의 빛 되신 예수님을 힘써 따르고 전함으로 세상의 어두움을 밝히기를 기도합니다. 
II. 어찌하여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1:12-2:20)
하나님께서 이렇게 심판의 의지를 보이시자 하박국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그는 당황했습니다. 자기 백성이 아무리 악할지라도 어떻게 강포한 이방인들을 통해 자기 백성을 심판하실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기 백성을 물고기 같이 마구잡이로 죽이고 파리 목숨 같이 가볍게 여기시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적들은 유다 백성을 잡은 그물에 제사하며 투망 앞에 분향을 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열국을 살륙함이 옳으니이까? 그는 하나님이 하시는 방법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에는 ‘어찌하여, 어찌하여, 어찌하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자기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자 하나님께 따지는 것입니다.
 2:1을 보십시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 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그가 왜 파수하는 곳에 서 있는 것입니까? 그는 성루에 올라가서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습니다. 파수꾼처럼 살피며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습니다. 우리도 기도만 하고 성급하게 내가 결론을 내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한 후 이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 왜 라고 묻고 말씀을 통해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또 믿음으로 기도하고 난 후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시는가 자세히 살펴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 안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2,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하나님은 정한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장차 일어날 일을 예고하고, 그것을 자기 종에게 계시합니다. 그리고 그 예언은 반드시 실현되되 그 예언이 정해진 때에 늦지 않게 이루어집니다. 성경은 예언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홍수 심판을 예언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홍수심판이 120년이 지나도록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정해진 때가 되자 그 예언은 정확하게 실현되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한 후 놓임을 받을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는데 말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야를 보내겠다는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것이라는 예언을 주셨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도 때가 되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인내함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박국에게 묵시에 대한 믿음을 심으신 후 의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말씀해 주십니다. 4절을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보라, 그 갈대아 사람의 마음은 교만하며 바르지 못하다. 그러므로 그들은 반드시 패망할 것이다. 불신자가 세상에서 번영하는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교만한 자는 반드시 패망하게 된다. 이것은 역사의 철칙이다.” 그러나 의인은 자기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합니다. 그 시대의 영향이나 주위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믿음의 원어는 “확고부동한 것, 신실한 것, 충성스러운 것”입니다. 이는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확고 부동한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은 마틴 루터가 율법을 따라서 살고자 하다가 절망하고 이 말씀을 통해서 구원의 길을 발견하고 종교개혁을 일으킨 동기가 된 말씀입니다. 그는 이 말씀을 통해서 구원의 확신을 얻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1:17절에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이야기 하면서 하박국서 2:4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는 by faith인데 여기서는 by his faith입니다. 로마서는 행위와 믿음을 대조한다면 하박국은 불의와 그의 믿음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불의한 시대에 의인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고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사는 자입니다. 히브리서 10:38에서는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시대가 아무리 어두워도 현실과 타협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할 때 구체적으로 무엇을 믿는다는 것입니까?
첫째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6은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 말씀은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임을 말해 줍니다. 사람들은 불의한 현실을 보고 하나님을 불신하여 "신은 죽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이 죽은 것이 아니라 “신은 죽었다”고 말한 그 사람의 사고방법이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부활신앙이 없이 죽은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두개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막 12:24-27).”하나님은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살아 계시며 영원히 만유를 다스리는 분이십니다(계 1:8).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역동적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대로 역사하시며,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일일이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이렇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 삶에 늘 활기와 생명력이 충만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당장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불신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이것은 어째서 이렇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하며 따지지 않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고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도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믿고 살았습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나님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을 때 순종할 수 있었습니까? 이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전적으로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용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 고난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고, 필요하다면 모든 것, 심지어 목숨까지 버릴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가이사를 주로 고백하라는 강요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이를 거절하면 투기장으로 보내 사자의 밥이 된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주님이시다”라고 신앙고백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하게 했습니까?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신약과 구약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종교 개혁자 칼빈은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마다 그 말씀을 하나님이 내게 주신 말씀으로 믿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믿음이란 바로 이 말씀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약속의 말씀으로 믿고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원하시는 대로 섭리해 나가십니다. 당장에는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도 거기에는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뜻이 반드시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의 죄에 대해 하박국이 아는 것보다 더 잘 아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교만하고 거짓된 자들임을 알고 계시되 그 죄악을 그들의 머리카락 수를 하나 하나 세어 알고 계신 것처럼 아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택한 백성 유다가 악한 바벨론에게 멸망당하는 것이 당장 이해가 안 된다고 해서 하나님이 잘못하고 계신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8,9).” 우리는 이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지금 고난을 받고 있다 하더라도, 일이 꼬이고 당장에 망하는 것 같더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과 놀라운 섭리가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나의 인생이 환경이나 사람들의 손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에 의해 좌우됨을 믿어야 합니다. 구약의 요셉은 이런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모든 역경을 이기고 승리의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따라 한치도 착오 없이 진행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원보다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지 알고 따르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넷째로, 개인 신앙의 중요성입니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니라.”고 말씀하실 때 그의 믿음은 자기의 믿음(his faith)을 말합니다. 이 믿음은 개인적인 믿음을 말합니다. 이는 남의 믿음이 아니라 자기 믿음을 말합니다. 우리는 목자님의 믿음, 남편이나 아내의 믿음, 부모님의 믿음을 의지해서 살기 쉽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입니다(요 21:22). 우리는 다른 사람의 믿음을 빌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각자 한 인간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분위기를 따라 살지 말고 자기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2세들 중에서 자기 믿음을 갖고자 몸부림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고민 가운데 주님이 함께 하여 주시고 그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자기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갑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든,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우리가 이 불의한 시대를 살아나가기 위해서 먼저 믿음을 구해야 합니다. 요한 1서 5:4은 말씀합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우리가 이 시대의 불의와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돈을 중심으로 움직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먹고 사는 것, 취직 문제, 자녀 교육, 건강 유지 등 돈이 필요한 경우가 끊임없이 밀려옵니다. 이때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신다는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염려와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믿고 살아야 합니다. 모세는 잠깐 동안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당하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우상을 숭배하는 본토친척 아비 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왔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생명을 걸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믿음을 가질 때 불의한 세상을 이길 뿐 아니라 영향력이 있는 성경 선생이요 목자로 살 수 있습니다. 
2:5-20에는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어떻게 심판하고자 하시는가를 보여 줍니다. 5절은 갈대아인들의 특징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술을 즐기며 속이기에 능하고 교만하며 탐욕은 끝이 없습니다. 그들의 탐욕은 무덤과도 같아서 만족을 모르고 끊임없이 정복전쟁을 합니다. 그러나 6-20절에는 “화 있을진저”라는 말씀이 다섯 반복되고 있습니다(6,9,12,15,19). 바벨론의 탐욕과 약탈의 죄(6-8), 자기 도취의 죄(9-11), 피와 불의로 성읍을 건축함(12-14), 이웃에게 술을 마시게 하여 취하게 하는 죄(15-17), 우상 숭배(18-20) 등으로 인하여 그들을 망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교만하고 죄 가운데 빠졌을 때 바벨론을 심판의 도구로 쓰신 것 같이, 바벨론이 악을 행할 때 페르시아 제국을 일으키사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이라고 해서 특별히 봐 주시지 않고 악을 행할 때는 심판하십니다. 역사 속에서 영원한 제국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미국이나 중국이 자기 유익을 위해서 일하지만 한도를 넘을 때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만홀히 여김을 받는 분이 아니십니다(갈 6:7).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나 편벽됨이 없는 공의로운 분이십니다. 이를 통해 온 세상을 통치하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됩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게 됩니다(14).
이상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20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 지를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우상과 달리 살아계신 분으로서 거룩한 성전에 계십니다. 거룩한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는 각 사람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신자들의 모임이 성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온 땅은 하나님 앞에서 잠잠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 역사를 그 뜻대로 주관하는 분이시요, 공의로 심판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요동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 같이 그 앞에 바르게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승리의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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