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박국 합2강/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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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하박국 제 2 강
말씀 / 하박국 3:1-19
요절 / 하박국 3:18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하바국 1장은 하박국 선지자의 항변과 여호와의 침묵이 나옵니다. 2장은 하박국 선지자가 침묵합니다. 그리고 3장은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와 찬양입니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온 세상을 통치하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믿음의 눈으로 역사를 보게 되자 하나님으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부흥을 열망하면서 진정 기뻐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배우고자 합니다.
I.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1-15)
1절을 보십시오. “시기오놋에 맞춘 바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시기오놋은 수금으로서 본 시는 심오하고 격렬한 느낌을 나타내는 곡조요 경쾌하고 빠른 박자로 찬양하는 기도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그가 주께 대하여 들은 소문은 유다 백성들을 바벨론을 통해서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만한 바벨론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소문을 들었을 때 하박국은 놀랐습니다. 사납고 무서운 바벨론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 사람들을 심판하시다니 이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하나님께 항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믿음으로 문제를 보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의 항변은 기도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의 기도 내용이 무엇입니까?
2a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부흥케 한다는 말은 소성하다, 보존하다, 깨끗하게 교정하다는 뜻입니다. 즉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을 다시 살린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강포와 간악과 패역과 겁탈과 변론과 분쟁등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은 상태나 다름이 없습니다. 거기에다 이제 바벨론의 침략을 받게 되면 나라가 풍비박산 날 것입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 하박국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박국은 자기 민족과 자신을 변호하기 보다 자기와 자기 백성에게 죄가 있음을 솔직히 시인하고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을 정결하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셔야 하고 자신들은 심판 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는 심판을 받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겸손해진 모습입니다. 나를 주관하시고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믿고 그 정한 때를 알기 때문에 잠잠히 부흥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부흥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주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말씀에 권능을 주시고 회개의 역사를 이루시고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간절해 지고 삶이 변화되는 역사가 각 사람에게 강력하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3-15절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고 있습니다.
첫째, 위엄에 찬 하나님.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시도다(셀라). 그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3).” 데만은 에돔 땅에 있는 도시이고 바란산은 시내산 북쪽의 많은 산들을 가리킵니다. 시내산에서 영광스럽게 빛으로 현현하셨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바란산과 데만을 거쳐 영광스럽게 나오시는 모습을 하박국은 보았습니다. 선지자는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미래에 다가올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중심에서 그 나라를 이끌어 가셨던 것 같이 지금도 미래에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실 때에 그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 찬송이 세계에 가득했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온역이 그 앞에서 행하며 불덩이가 그 발 밑에서 나오도다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며 그가 보신즉 열국이 전율하며 영원한 산이 무너지며 무궁한 작은 산이 엎드러지나니 그 행하심이 예로부터 그러하시도다.” 온역은 전염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바로를 심판하실 때 전염병과 우박으로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우박이 내릴 때에 불덩이가 땅을 굴러 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파괴하는 신이십니다.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고 그가 보신즉 열국이 전율했습니다. 그는 땅을 진동시키시고 산을 무너뜨리셨습니다. 땅과 산은 안정성, 영원성을 상징합니다.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침몰해버렸습니다. 각 나라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꼼짝 못하고 잠잠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믿음의 눈으로 역사를 보았을 때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통치하고 계셨습니다. 바벨론의 죄악을 징계하실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열국들을 한번 노려보시자 열국들이 두려워서 사시나무 떨 듯 전율하였습니다. 그리고 대국, 소국 할 것 없이 그 앞에서 다 알아서 스스로 엎드러졌습니다.
둘째, 구원의 용사이신 하나님(8-11). 8,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주께서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오니 하수를 분히 여기심이니이까 강을 노여워하심이니이까 바다를 대하여 성내심이니이까 주께서 활을 꺼내시고 살을 바로 발하셨나이다 (셀라) 주께서 하수들로 땅을 쪼개셨나이다.” 주께서 말을 타시고 진격하는 모습을 보이시고 군사들을 지휘하여 적을 이기시는 모습은 구원자의 모습입니다. 산들이 주를 보고 흔들리며 창수가 넘치고 바다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높이 들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널 때의 모습을 연상시켜 줍니다.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시고 원수들을 수장시키신 승리의 용사이십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주의 날으는 살의 빛과 주의 번쩍이는 창의 광채로 인하여 해와 달이 그 처소에 멈추었나이다.” 이는 여호수아가 아모리 사람들을 물리칠 때 태양과 달을 멈추게 하고 진멸한 사건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그 택하신 백성을 책임지시고 보호하시고 구원하십니다.
셋째, 심판의 하나님(12-15). 13,14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 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끝까지 드러내셨나이다 (셀라) 그들이 회리 바람처럼 이르러 나를 흩으려 하며 가만히 가난한 자 삼키기를 즐거워하나 오직 주께서 그들의 전사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셨나이다.” 하나님은 악인을 철저히 심판하시고 원수를 멸하십니다. 그들의 전사들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십니다. 글라디에디터의 마지막 장면과 같습니다. 주의 백성, 기름받은 자는 구원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구원하시되 원수들은 반드시 진멸하십니다. 그들을 철저하게 멸하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선을 행하며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갚아 주시고, 오직 악을 행하고 불의를 좇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노와 분으로 심판하십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역사 속에서 악인을 심판하시고 그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미래에 대해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현재만 바라볼 때 출세한 사람들, 좋은 집에서 살고 인생을 자기 멋대로 즐기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현실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인 안목이 있으면 악인이 흥하는 것은 잠깐이요 믿는 자에게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할 것을 바라보고 하나님 나라에 목표를 두고 살게 됩니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입니다. 과거 속에 역사하신 하나님은 현재에도 살아계시고 미래에도 그 약속을 신실하게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II.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16-19)
16절은 2절과 연결됩니다. 3-15절에서 계시 가운데 위엄과 영광의 하나님을 본 하박국은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현실로 돌아오자 들리는 것은 바벨론이 곧 침공해 온다는 소문이었습니다. 바벨론의 침공소식을 듣는 하박국의 내적 고통이 어떠하였습니까? 16절을 보십시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를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 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바벨론이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생각하자 하박국은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는 고통이 밀려 왔습니다. 잔인하고 강포한 바벨론 군대가 치러 올라와서 약탈과 살육을 자행하고 자기 민족을 포로로 끌고 갈 것을 생각할 때 너무도 괴로웠습니다. 하박국은 선지자로서 자신보다 자기 민족이 당할 고통을 생각할 때 그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우리도 만약 북한이 내일 서울을 향해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하고, 숨겨두었던 핵폭탄을 터뜨린다는 뉴스를 듣게 된다면 창자가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상당수가 대포동 미사일을 맞기도 전에 쇼크로 사망할 것입니다.
이처럼 덜덜 떨리는 상황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어떻게 하겠다고 합니까? 17,18절을 보십시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17절은 바벨론의 침략으로 인해 유다 땅이 약탈당하여 황폐화 될 것을 실감나게 표현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니 당연히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에는 아무 소출도 없게 됩니다. 전쟁으로 밭이 황폐화되니 먹을 식물도 없게 됩니다. 탐욕스런 바벨론 군대가 와서 양을 잡아가고 소는 끌고 가서 잡아 먹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와 외양간이 텅텅 비고 찬바람만 썰렁하게 불게 됩니다. 유다 사람들은 다 빼앗기고 당장 내일 먹을 양식을 걱정해야 합니다. 17절 한절에는 없다는 말이 무려 6번이나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없다고 하는 것들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 아니라 반드시 있어야 하는 생활필수품들입니다. 무화과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로 먹는 과일이고, 포도주는 음료수의 주종이고, 감람나무는 기름을 짜는 것이고, 밭의 식물은 하루 세끼 양식이고, 양은 털로 옷을 만들어 입는 것이고, 소는 농사를 짓는 수단이요, 동시에 양과 함께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사용하는 제물입니다. 이처럼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을 다 빼앗기고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하박국은 어떻게 하겠다고 합니까? 하나님을 원망하겠다고 합니까?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을 품겠다고 합니까? 18절을 보십시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전쟁으로 아무 것도 없는 지경에 이를지라도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하박국 선지자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첫째,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는 신앙입니다(18a)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한다는 것은 세상의 것으로 즐거움을 삼지 않고 하나님만으로 즐거움을 삼는 것을 말합니다. 하박국은 바벨론의 침략으로 모든 것이 다 없어질지라도 오직 하나님만으로 즐거워하겠다고 합니다. 전쟁으로 인해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감람나무도 없고, 먹을 양식도 없고, 양도 없고, 소도 없을지라도 그는 여호와만으로 즐거워하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만을 즐거움의 근원으로 삼는 순수한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무엇으로 인하여 즐거워합니까? 어떨 때 즐겁습니까? 우리는 대체로 자신의 상황이 17절과 정반대로 될 때 아주 즐겁습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풍성하고, 밭에 식물이 가득하고, 우리에 살찐 양이 많고, 외양간에 소가 송아지까지 낳아서 젖을 먹이고 있을 때 즐겁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솔직히 우리 요회에 양이 많아야 기쁜 것 아닙니까? 우리 자식이 공부를 잘해서 ‘1등’이라고 적힌 성적표를 가져오고 수능도 잘 봐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기쁜 것 아닙니까? 중간 고사를 치루는데 신기하게도 공부한데서만 문제가 나오고 예상외로 좋은 학점이 나올 때 기쁜 것 아닙니까? 우리들은 자신이 하는 사업이 잘 되어 돈도 잘 벌리고, 직장에서는 승진이 잘 되고, 자식도 잘 자라고, 시험 쳤다 하면 붙고, 학점도 잘 나오고, 아르바이트도 척척 생길 때 즐거운 법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반대로 일이 잘 안 풀리고 꼬여 가는 것만 같을 때 우리가 하박국처럼 감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환난이 찾아와서 있던 것도 사라지는 뼈아픈 상실의 고통을 체험할 때 하박국처럼 감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요회에는 한 해가 저물어 가는데 양 한 명 없고, 전세금은 점점 올라가서 집을 구하기는 힘들고, 직장 생활은 언제 구조조정 대상이 될지 불안하고, 중간고사에서는 공부 안 한데서만 문제가 골라서 나올 때 과연 우리가 하박국 선지자처럼 “이렇게 되었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겠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선교사님들 중에는 외국에 나가서 사업에도 성공하고 이방 양도 얻고 조상도 세워서 기쁨이 충만한 분도 있지만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순간 순간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서 기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나이 40이 되도록 손에 쥐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지만 사명인으로 부르심을 받고 산다는 자체로 인해서 기뻐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도 무소유입니다. 제 이름으로 되어 있는 재산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무소유에는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무소유에 따르는 행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때마다 체험하게 됩니다. 또한 작은 섬김에도 감사할 수 있는 가난한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고 또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일생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잘 받아서 관리하고 남기는 청지기로 살다가 가야 합니다. 아무 것도 없지만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고 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소유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여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에릭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에서 소유에 집착함으로 얻게 되는 이기적인 병과 끊임없는 경쟁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탐욕의 죄는 우상숭배입니다. 사람이 소유에 집착하는 이유는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된 구원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데 있습니다. 믿음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구원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 자체로 기뻐할 수 있는 고귀한 영혼을 가진 존재입니다. 우리가 현실이 슬퍼할 조건밖에 없고 극한 어려움에 처해 있을지라도 순수하게 하나님 한 분으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박국 선지자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이유가 하나님으로부터 무슨 축복을 받아서가 아니라 여호와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는 신앙입니다(18b)
하박국은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구원의 하나님’은 하박국 자신의 구원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자기 민족의 구원의 하나님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 바로의 쇠사슬과 종살이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광야 기간 동안은 이스라엘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모든 대적들과 위험들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사사 시대 때는 기드온, 삼손, 사무엘과 같은 사사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모든 대적들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박국은 이 구원의 하나님께서 미래에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압제로부터도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이때 그는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기뻐하리로다 하며 기뻐서 감격적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구원을 주십니다. 우리는 과거 죄 가운데 살았습니다. 사단의 종 노릇하며 살았습니다. 자신의 본성을 좇아 정욕과 육체의 욕심대로 사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죄와 사단의 종 노릇하며 일생 죄 가운데 살다가 심판 받아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수 밖에 없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들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로 우리를 먹보다도 검은 죄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요, 황태자 황공주로 영접해 주셨습니다. 또 예수님의 영광스런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를 괴롭히던 사망 권세와 마귀로부터 자유케 해 주셨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은 현재 빠져 있는 죄의 수렁으로부터도 구원해 주십니다. 구원은 현재적인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부활의 새 생명을 주시고 하늘 나라의 기쁨과 평안과 영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우리를 영화롭게 하사 몸도 구원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이 놀라운 큰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려 드립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하박국이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했을 때 그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주 여호와가 자신의 힘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 신자의 힘입니다. 느헤미야 8:10절은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박국은 하나님을 기뻐함으로 환난을 극복할 힘을 얻었고 절망을 이길 힘을 얻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사슴의 발은 빠르고 지치지 않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발을 사슴처럼 힘있게 하심으로 앞으로 닥칠 고난을 이기게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또 장차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높은 곳을 다닌다는 것은 장차 바벨론이 망하고 유다가 그 압제에서 벗어나는 날,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 시간 하박국 선지자의 신앙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소유나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즐거워하는 신자가 아니라, 하박국 선지자와 같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고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는 순수한 신앙인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영접하고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는 가운데 박력 있고 활기 넘치고 힘있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저희들을 축복하시고 하나님 한 분으로 즐거워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하박국 3:1-19
요절 / 하박국 3:18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하바국 1장은 하박국 선지자의 항변과 여호와의 침묵이 나옵니다. 2장은 하박국 선지자가 침묵합니다. 그리고 3장은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와 찬양입니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온 세상을 통치하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믿음의 눈으로 역사를 보게 되자 하나님으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부흥을 열망하면서 진정 기뻐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배우고자 합니다.
I.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1-15)
1절을 보십시오. “시기오놋에 맞춘 바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시기오놋은 수금으로서 본 시는 심오하고 격렬한 느낌을 나타내는 곡조요 경쾌하고 빠른 박자로 찬양하는 기도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그가 주께 대하여 들은 소문은 유다 백성들을 바벨론을 통해서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만한 바벨론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소문을 들었을 때 하박국은 놀랐습니다. 사납고 무서운 바벨론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 사람들을 심판하시다니 이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하나님께 항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믿음으로 문제를 보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의 항변은 기도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의 기도 내용이 무엇입니까?
2a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부흥케 한다는 말은 소성하다, 보존하다, 깨끗하게 교정하다는 뜻입니다. 즉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을 다시 살린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강포와 간악과 패역과 겁탈과 변론과 분쟁등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은 상태나 다름이 없습니다. 거기에다 이제 바벨론의 침략을 받게 되면 나라가 풍비박산 날 것입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 하박국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박국은 자기 민족과 자신을 변호하기 보다 자기와 자기 백성에게 죄가 있음을 솔직히 시인하고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을 정결하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셔야 하고 자신들은 심판 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는 심판을 받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겸손해진 모습입니다. 나를 주관하시고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믿고 그 정한 때를 알기 때문에 잠잠히 부흥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부흥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주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말씀에 권능을 주시고 회개의 역사를 이루시고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간절해 지고 삶이 변화되는 역사가 각 사람에게 강력하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3-15절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고 있습니다.
첫째, 위엄에 찬 하나님.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시도다(셀라). 그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3).” 데만은 에돔 땅에 있는 도시이고 바란산은 시내산 북쪽의 많은 산들을 가리킵니다. 시내산에서 영광스럽게 빛으로 현현하셨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바란산과 데만을 거쳐 영광스럽게 나오시는 모습을 하박국은 보았습니다. 선지자는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미래에 다가올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중심에서 그 나라를 이끌어 가셨던 것 같이 지금도 미래에도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실 때에 그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 찬송이 세계에 가득했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온역이 그 앞에서 행하며 불덩이가 그 발 밑에서 나오도다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며 그가 보신즉 열국이 전율하며 영원한 산이 무너지며 무궁한 작은 산이 엎드러지나니 그 행하심이 예로부터 그러하시도다.” 온역은 전염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바로를 심판하실 때 전염병과 우박으로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우박이 내릴 때에 불덩이가 땅을 굴러 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파괴하는 신이십니다.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고 그가 보신즉 열국이 전율했습니다. 그는 땅을 진동시키시고 산을 무너뜨리셨습니다. 땅과 산은 안정성, 영원성을 상징합니다.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침몰해버렸습니다. 각 나라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꼼짝 못하고 잠잠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믿음의 눈으로 역사를 보았을 때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통치하고 계셨습니다. 바벨론의 죄악을 징계하실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열국들을 한번 노려보시자 열국들이 두려워서 사시나무 떨 듯 전율하였습니다. 그리고 대국, 소국 할 것 없이 그 앞에서 다 알아서 스스로 엎드러졌습니다.
둘째, 구원의 용사이신 하나님(8-11). 8,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주께서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오니 하수를 분히 여기심이니이까 강을 노여워하심이니이까 바다를 대하여 성내심이니이까 주께서 활을 꺼내시고 살을 바로 발하셨나이다 (셀라) 주께서 하수들로 땅을 쪼개셨나이다.” 주께서 말을 타시고 진격하는 모습을 보이시고 군사들을 지휘하여 적을 이기시는 모습은 구원자의 모습입니다. 산들이 주를 보고 흔들리며 창수가 넘치고 바다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높이 들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널 때의 모습을 연상시켜 줍니다.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시고 원수들을 수장시키신 승리의 용사이십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주의 날으는 살의 빛과 주의 번쩍이는 창의 광채로 인하여 해와 달이 그 처소에 멈추었나이다.” 이는 여호수아가 아모리 사람들을 물리칠 때 태양과 달을 멈추게 하고 진멸한 사건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그 택하신 백성을 책임지시고 보호하시고 구원하십니다.
셋째, 심판의 하나님(12-15). 13,14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 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끝까지 드러내셨나이다 (셀라) 그들이 회리 바람처럼 이르러 나를 흩으려 하며 가만히 가난한 자 삼키기를 즐거워하나 오직 주께서 그들의 전사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셨나이다.” 하나님은 악인을 철저히 심판하시고 원수를 멸하십니다. 그들의 전사들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십니다. 글라디에디터의 마지막 장면과 같습니다. 주의 백성, 기름받은 자는 구원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구원하시되 원수들은 반드시 진멸하십니다. 그들을 철저하게 멸하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선을 행하며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갚아 주시고, 오직 악을 행하고 불의를 좇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노와 분으로 심판하십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역사 속에서 악인을 심판하시고 그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미래에 대해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현재만 바라볼 때 출세한 사람들, 좋은 집에서 살고 인생을 자기 멋대로 즐기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현실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인 안목이 있으면 악인이 흥하는 것은 잠깐이요 믿는 자에게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도래할 것을 바라보고 하나님 나라에 목표를 두고 살게 됩니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입니다. 과거 속에 역사하신 하나님은 현재에도 살아계시고 미래에도 그 약속을 신실하게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II.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16-19)
16절은 2절과 연결됩니다. 3-15절에서 계시 가운데 위엄과 영광의 하나님을 본 하박국은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현실로 돌아오자 들리는 것은 바벨론이 곧 침공해 온다는 소문이었습니다. 바벨론의 침공소식을 듣는 하박국의 내적 고통이 어떠하였습니까? 16절을 보십시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를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 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바벨론이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생각하자 하박국은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는 고통이 밀려 왔습니다. 잔인하고 강포한 바벨론 군대가 치러 올라와서 약탈과 살육을 자행하고 자기 민족을 포로로 끌고 갈 것을 생각할 때 너무도 괴로웠습니다. 하박국은 선지자로서 자신보다 자기 민족이 당할 고통을 생각할 때 그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우리도 만약 북한이 내일 서울을 향해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하고, 숨겨두었던 핵폭탄을 터뜨린다는 뉴스를 듣게 된다면 창자가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상당수가 대포동 미사일을 맞기도 전에 쇼크로 사망할 것입니다.
이처럼 덜덜 떨리는 상황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어떻게 하겠다고 합니까? 17,18절을 보십시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17절은 바벨론의 침략으로 인해 유다 땅이 약탈당하여 황폐화 될 것을 실감나게 표현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니 당연히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에는 아무 소출도 없게 됩니다. 전쟁으로 밭이 황폐화되니 먹을 식물도 없게 됩니다. 탐욕스런 바벨론 군대가 와서 양을 잡아가고 소는 끌고 가서 잡아 먹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와 외양간이 텅텅 비고 찬바람만 썰렁하게 불게 됩니다. 유다 사람들은 다 빼앗기고 당장 내일 먹을 양식을 걱정해야 합니다. 17절 한절에는 없다는 말이 무려 6번이나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없다고 하는 것들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 아니라 반드시 있어야 하는 생활필수품들입니다. 무화과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로 먹는 과일이고, 포도주는 음료수의 주종이고, 감람나무는 기름을 짜는 것이고, 밭의 식물은 하루 세끼 양식이고, 양은 털로 옷을 만들어 입는 것이고, 소는 농사를 짓는 수단이요, 동시에 양과 함께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사용하는 제물입니다. 이처럼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을 다 빼앗기고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하박국은 어떻게 하겠다고 합니까? 하나님을 원망하겠다고 합니까?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을 품겠다고 합니까? 18절을 보십시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전쟁으로 아무 것도 없는 지경에 이를지라도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하박국 선지자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첫째,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는 신앙입니다(18a)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한다는 것은 세상의 것으로 즐거움을 삼지 않고 하나님만으로 즐거움을 삼는 것을 말합니다. 하박국은 바벨론의 침략으로 모든 것이 다 없어질지라도 오직 하나님만으로 즐거워하겠다고 합니다. 전쟁으로 인해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감람나무도 없고, 먹을 양식도 없고, 양도 없고, 소도 없을지라도 그는 여호와만으로 즐거워하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만을 즐거움의 근원으로 삼는 순수한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무엇으로 인하여 즐거워합니까? 어떨 때 즐겁습니까? 우리는 대체로 자신의 상황이 17절과 정반대로 될 때 아주 즐겁습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풍성하고, 밭에 식물이 가득하고, 우리에 살찐 양이 많고, 외양간에 소가 송아지까지 낳아서 젖을 먹이고 있을 때 즐겁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솔직히 우리 요회에 양이 많아야 기쁜 것 아닙니까? 우리 자식이 공부를 잘해서 ‘1등’이라고 적힌 성적표를 가져오고 수능도 잘 봐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기쁜 것 아닙니까? 중간 고사를 치루는데 신기하게도 공부한데서만 문제가 나오고 예상외로 좋은 학점이 나올 때 기쁜 것 아닙니까? 우리들은 자신이 하는 사업이 잘 되어 돈도 잘 벌리고, 직장에서는 승진이 잘 되고, 자식도 잘 자라고, 시험 쳤다 하면 붙고, 학점도 잘 나오고, 아르바이트도 척척 생길 때 즐거운 법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반대로 일이 잘 안 풀리고 꼬여 가는 것만 같을 때 우리가 하박국처럼 감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환난이 찾아와서 있던 것도 사라지는 뼈아픈 상실의 고통을 체험할 때 하박국처럼 감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요회에는 한 해가 저물어 가는데 양 한 명 없고, 전세금은 점점 올라가서 집을 구하기는 힘들고, 직장 생활은 언제 구조조정 대상이 될지 불안하고, 중간고사에서는 공부 안 한데서만 문제가 골라서 나올 때 과연 우리가 하박국 선지자처럼 “이렇게 되었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겠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선교사님들 중에는 외국에 나가서 사업에도 성공하고 이방 양도 얻고 조상도 세워서 기쁨이 충만한 분도 있지만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순간 순간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서 기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나이 40이 되도록 손에 쥐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지만 사명인으로 부르심을 받고 산다는 자체로 인해서 기뻐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도 무소유입니다. 제 이름으로 되어 있는 재산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무소유에는 말할 수 없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무소유에 따르는 행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때마다 체험하게 됩니다. 또한 작은 섬김에도 감사할 수 있는 가난한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고 또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일생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잘 받아서 관리하고 남기는 청지기로 살다가 가야 합니다. 아무 것도 없지만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고 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소유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여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에릭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에서 소유에 집착함으로 얻게 되는 이기적인 병과 끊임없는 경쟁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탐욕의 죄는 우상숭배입니다. 사람이 소유에 집착하는 이유는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된 구원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데 있습니다. 믿음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구원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 자체로 기뻐할 수 있는 고귀한 영혼을 가진 존재입니다. 우리가 현실이 슬퍼할 조건밖에 없고 극한 어려움에 처해 있을지라도 순수하게 하나님 한 분으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박국 선지자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이유가 하나님으로부터 무슨 축복을 받아서가 아니라 여호와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는 신앙입니다(18b)
하박국은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구원의 하나님’은 하박국 자신의 구원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자기 민족의 구원의 하나님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 바로의 쇠사슬과 종살이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광야 기간 동안은 이스라엘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모든 대적들과 위험들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사사 시대 때는 기드온, 삼손, 사무엘과 같은 사사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모든 대적들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박국은 이 구원의 하나님께서 미래에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압제로부터도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이때 그는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기뻐하리로다 하며 기뻐서 감격적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구원을 주십니다. 우리는 과거 죄 가운데 살았습니다. 사단의 종 노릇하며 살았습니다. 자신의 본성을 좇아 정욕과 육체의 욕심대로 사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죄와 사단의 종 노릇하며 일생 죄 가운데 살다가 심판 받아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수 밖에 없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들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로 우리를 먹보다도 검은 죄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요, 황태자 황공주로 영접해 주셨습니다. 또 예수님의 영광스런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를 괴롭히던 사망 권세와 마귀로부터 자유케 해 주셨습니다. 구원의 하나님은 현재 빠져 있는 죄의 수렁으로부터도 구원해 주십니다. 구원은 현재적인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부활의 새 생명을 주시고 하늘 나라의 기쁨과 평안과 영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우리를 영화롭게 하사 몸도 구원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이 놀라운 큰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려 드립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하박국이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했을 때 그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주 여호와가 자신의 힘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 신자의 힘입니다. 느헤미야 8:10절은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박국은 하나님을 기뻐함으로 환난을 극복할 힘을 얻었고 절망을 이길 힘을 얻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사슴의 발은 빠르고 지치지 않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발을 사슴처럼 힘있게 하심으로 앞으로 닥칠 고난을 이기게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또 장차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높은 곳을 다닌다는 것은 장차 바벨론이 망하고 유다가 그 압제에서 벗어나는 날,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 시간 하박국 선지자의 신앙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소유나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즐거워하는 신자가 아니라, 하박국 선지자와 같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고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는 순수한 신앙인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영접하고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는 가운데 박력 있고 활기 넘치고 힘있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저희들을 축복하시고 하나님 한 분으로 즐거워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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