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 2021년 성탄 제 1 강(마1)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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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성탄 제 1 강
말씀 / 마태복음 1:1-25
요절 / 마태복음 1:23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23)
메리크리스마스! 성탄의 은혜가 우리 목자님들과 형제 자매님들, JBF 모두에게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요즘 분위기는 크리스마스 소식은 커녕 지금이 연말인지도 모를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거 같습니다. 요즘 코로나 확산세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제 집 앞에 임시 선별진료소가 있는데 이번주는 제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길게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2년전에 시작된 코로나19는 마스크를 잘쓰고 백신을 맞으면 집단면역이 생겨서 점차로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2년이 지났는데도 끝이 안 보입니다. 모두가 답답하고 힘들어 합니다. 최근 영국 정부의 자문단이 '코로나19 사태가 가라앉는 데 최소 5년이 걸린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습니다. 이런 암울한 소식들이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싸늘하게 합니다. 그러나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예수님의 탄생이 우리 마음을 위로하고 감사와 기쁨 마음을 갖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예전처럼 센터에 함께 모여 성탄예배 프로그램을 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은혜를 받기도 하고 동역자들과 함께 교제하며 먹고 마시고 즐거운 시간을 가지지는 못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성탄 말씀을 통해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어려운 상황을 잘 인내할 수 있는 힘과 믿음을 주시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의지하여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낙망하거나 약해지지 않고 믿음을 지키며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마태가 전한 성탄메시지입니다. 마태는 세리로서 많은 유대인으로부터 따돌림 받던 외롭고 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아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가운데 임마누엘의 은혜를 깊이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성탄메시지 주제도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아기 예수 성탄의 기쁨과 임마누엘의 은혜가 우리들의 심령에 충만히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마태처럼 “임마누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십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1-17)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위해 기록된 복음서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도 유대인이 중시하는 족보를 배경으로 시작 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여기서 계보란 족보라는 뜻입니다. 마태가 이 족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이 메시야로서 정통성을 가진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을 통해 예수님이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임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갑작스레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오시기 오래 전에 이를 계획하시고 그 계획을 섭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 아브라함을 택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그의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다윗을 부르셨습니다. 그에게 그의 씨를 통해 영원한 메시아 왕국을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삼하7:12,13, 눅1:32,33). 여기에서,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하는 아브라함의 씨도, 영원한 메시아 왕국을 세울 다윗의 씨도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사람에게 주신 약속을 통해 미리 계시되었고, 그 약속의 성취로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서부터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약 2000년이 걸렸습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 다윗부터 바벨론에 끌려갈 때까지 14대, 그 후부터 예수님이 나시기까지 14대였습니다. 그런데 이 긴 역사에는 한 가지 분명한 특징이 있습니다. 이 역사는 오직 하나님 은혜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조상들이 능력이 뛰어나거나 또는 착해서 이 역사에 쓰임받은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께서 부족하고 연약한 자를 통하여 이 역사를 이끌어 오신 것입니다.
먼저 이 역사의 출발점인 아브라함은 원래 자식도 없고 두려움 많은 노인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목숨 건져보겠다고 두 번이나 아내를 누이라 속였습니다. 그의 증손자인 유다도 허물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시기심으로 동생을 팔아버렸고 며느리와의 사이에 자식까지 낳았습니다. 라합은 명문가의 규수도 아니고 유대혈통도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단지 이민족의 기생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추앙하는 다윗왕도 큰 죄가 있었습니다. 그는 신하의 여자를 빼앗고, 그 신하가 죽도록 전쟁터에 보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선물 받아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많은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고 그들의 우상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후 유다왕국은 대대로 하나님께 반역하였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섬겼고 이방 나라를 의지하였습니다. 회개를 촉구했던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모두 죽이거나 박해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족보는 의인의 족보가 아니라 죄인들의 족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죄인들에게 길이 되시고, 힘이 되시고, 지혜가 되셔서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이 역사를 관철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신 것에 대해 아무 육체라도 자랑하지 못합니다. 거기에는 인간의 공로는 한 점 섞여 있지 않고 다만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과 그들을 구원시키려는 하나님의 의지가 담겨 있을 뿐입니다.
2.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18-25)
20,21절을 보십시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드디어 때가 되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18절을 보면 요셉과 마리아는 정혼한 사이였습니다. 예수님은 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인 요셉의 아들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죄인인 것은 우리나라의 형법이나 민법을 위반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인인 것은 우리가 하나님처럼 되려했기 때문입니다. 본래,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사람의 본분은 선하시고 온전하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 자기 멋대로, 자기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한갓 피조물인 우리가 스스로를 절대화시켜 창조주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던 것입니다.
죄에는 당연히 처벌이 따릅니다. 절도를 하면 절도에 대한 처벌을, 살인을 하면 살인에 대한 처벌을 받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난 것, 하나님 행세를 한 것, 이 죄에 대한 처벌은 죽음입니다. 여기서 죽음이란 단지 태어나서 70,80년 살다가 죽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대가로 받는 죽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그리고 완전히 끊어지는 것입니다. 지옥의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영원토록 고통 받는 것입니다. 이 형벌에서 예외가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이렇게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 영원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가난에서 부를 얻거나 병에서 나음을 얻거나 어떤 성과를 얻는 것은 우리가 노력하거나 싸워서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죽음의 문제, 하나님과의 이 분리 문제는 인간의 힘과 지혜로 풀어낼 수 없습니다.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아무리 돈을 써도, 또는 아무리 도를 닦아도 죄와 죽음의 세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지옥이 정말 무서운 이유는 영원토록 형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올해 군대를 갔던 많은 형제들이 무사히 제대를 하였습니다. 군생활을 통해 배운것이 많지만 다시 들어가고 싶은 분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군생활이 힘들지만 버틸 수 있는 것은 그래도 군대에는 제대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희망 하나 붙들고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옥에는 제대가 없습니다. 지옥이 무서운 것은 그 고통이 크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지옥이 지옥인 것은 아무리 오래 있어도 그 고통에서 벗어날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영원한 고통, 이 막다른 골목에 출구가 생겼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죄값을 치루시고 우리에게 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면 하나님 앞에 두려움 없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신 예수님, 이 예수님이야말로 진정 우리의 구세주입니다. 이 예수님의 탄생이야말로 우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22, 2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러 세상에 오셨습니다. 마태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에서 이 예수님 탄생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그에게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이 죄인들과 함께 하신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예수님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임마누엘 예수님 안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인간은 타락했습니다. 거룩과 타락, 선과 악, 진리와 거짓이 어떻게 함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 엄청난 간격을 넘어 사람과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먹는 곳에서 드시고 사람이 자는 곳에서 주무셨습니다. 그들의 고통, 그들의 슬픔, 그들의 절망을 체험하시고 그것을 나누어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들을 대신해 찢기시고 맞으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들과 이와 같이 함께 하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들을 이와 같이 사랑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참사랑입니다. 사랑, 그 이상의 사랑입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 살면 행복해 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 없이 우리가 만든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하나님을 떠나 우리 마음대로 살았지만 결국 우리가 저지른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따로 말하지 않아도 다 잘 아실 것 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아닌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죄인들을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죽어도 싼 우리였으나 하나님은 우리가 한 대로 되갚지 않으셨습니다. 버림받아 마땅한 우리였으나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아니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오셔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은 우리가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셨습니다. 나그네 되었을 때 초대해 주셨고 헐벗었을 때 입혀 주셨습니다. 우리가 아플 때나 감옥에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와 함께 하여주시되 마침내 우리를 대신해 목숨까지 내어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그 고통 받으심으로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할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지금부터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십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 그리고 우리의 죄조차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현재 어떤 희망과 소망을 가지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어디서 위로와 힘을 얻고 계십니까? ”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에게서 희망을 찾으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이 예수님에게서 힘을 얻고 소망을 발견하시길 기도합니다.
얼마 있으면 2021 한해가 다 지나갑니다. 올 해는 다들 어떻게 보내셨나요? 각자의 삶에 좋은 일도 있지만 어려움도 많고 걱정스러운 일도 많았을 것입니다. 4일날 요회목자 사모 수양회에서 근황을 애기하면서 힘든 애기보다 감사하는 것을 많이 애기하시는 목자님들을 보면서 은혜가 많이 되었습니다. 각자 건강문제, 경제 문제, 자녀문제등등 어려운 사정 있습니다. 캠퍼스에 나아가서 전도하기도 어렵고 내년에는 동아리등록이 될지도 걱정입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걱정거리가 많지만 그래도 우리가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주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시편23편을 보면 목자되신 하나님은 우리를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기도 하지만,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다닐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에는 좋은 길도 있지만 때로는 어렵고 힘든 길을 걷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모든 순간 순간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보호하시며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했습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어려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저는 주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주 주시는 말씀, 하루 하루 주시는 양식말씀이 우리와 함께 함으로 우리를 여기까지 이끌어 주셨습니다. 우리앞에 놓은 상황들만 보면 마음이 위축됩니다. 그러나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보호하시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주께서 작고 연약한 우리 안에 계심을 믿고 성탄의 때 감사가 풍성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하루 하루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때마다 범죄하고 허물이 많지만 우리를 용서하시고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합시다. 매 주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할 수 있음에도 감사를 합시다. 주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시고 옳은 길로 인도하심에 감사를 합시다. 우리 안에 귀한 동역자들을 주시고 함께 교제하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감사를 합시다. “임마누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얼마 있으면 성탄절입니다. 2000년 전 이때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저 높고 높은 하늘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위로와 크나큰 은혜를 경험하기를 기도합니다. 임마누엘 예수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큰 사랑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마태복음 1:1-25
요절 / 마태복음 1:23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23)
메리크리스마스! 성탄의 은혜가 우리 목자님들과 형제 자매님들, JBF 모두에게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요즘 분위기는 크리스마스 소식은 커녕 지금이 연말인지도 모를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거 같습니다. 요즘 코로나 확산세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제 집 앞에 임시 선별진료소가 있는데 이번주는 제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길게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2년전에 시작된 코로나19는 마스크를 잘쓰고 백신을 맞으면 집단면역이 생겨서 점차로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2년이 지났는데도 끝이 안 보입니다. 모두가 답답하고 힘들어 합니다. 최근 영국 정부의 자문단이 '코로나19 사태가 가라앉는 데 최소 5년이 걸린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습니다. 이런 암울한 소식들이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싸늘하게 합니다. 그러나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 예수님의 탄생이 우리 마음을 위로하고 감사와 기쁨 마음을 갖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예전처럼 센터에 함께 모여 성탄예배 프로그램을 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은혜를 받기도 하고 동역자들과 함께 교제하며 먹고 마시고 즐거운 시간을 가지지는 못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성탄 말씀을 통해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어려운 상황을 잘 인내할 수 있는 힘과 믿음을 주시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의지하여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낙망하거나 약해지지 않고 믿음을 지키며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마태가 전한 성탄메시지입니다. 마태는 세리로서 많은 유대인으로부터 따돌림 받던 외롭고 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아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가운데 임마누엘의 은혜를 깊이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성탄메시지 주제도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아기 예수 성탄의 기쁨과 임마누엘의 은혜가 우리들의 심령에 충만히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마태처럼 “임마누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십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1-17)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위해 기록된 복음서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도 유대인이 중시하는 족보를 배경으로 시작 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여기서 계보란 족보라는 뜻입니다. 마태가 이 족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이 메시야로서 정통성을 가진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을 통해 예수님이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임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갑작스레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오시기 오래 전에 이를 계획하시고 그 계획을 섭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 아브라함을 택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그의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다윗을 부르셨습니다. 그에게 그의 씨를 통해 영원한 메시아 왕국을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삼하7:12,13, 눅1:32,33). 여기에서,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하는 아브라함의 씨도, 영원한 메시아 왕국을 세울 다윗의 씨도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사람에게 주신 약속을 통해 미리 계시되었고, 그 약속의 성취로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서부터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약 2000년이 걸렸습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 다윗부터 바벨론에 끌려갈 때까지 14대, 그 후부터 예수님이 나시기까지 14대였습니다. 그런데 이 긴 역사에는 한 가지 분명한 특징이 있습니다. 이 역사는 오직 하나님 은혜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조상들이 능력이 뛰어나거나 또는 착해서 이 역사에 쓰임받은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께서 부족하고 연약한 자를 통하여 이 역사를 이끌어 오신 것입니다.
먼저 이 역사의 출발점인 아브라함은 원래 자식도 없고 두려움 많은 노인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목숨 건져보겠다고 두 번이나 아내를 누이라 속였습니다. 그의 증손자인 유다도 허물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시기심으로 동생을 팔아버렸고 며느리와의 사이에 자식까지 낳았습니다. 라합은 명문가의 규수도 아니고 유대혈통도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단지 이민족의 기생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추앙하는 다윗왕도 큰 죄가 있었습니다. 그는 신하의 여자를 빼앗고, 그 신하가 죽도록 전쟁터에 보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선물 받아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많은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고 그들의 우상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후 유다왕국은 대대로 하나님께 반역하였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섬겼고 이방 나라를 의지하였습니다. 회개를 촉구했던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모두 죽이거나 박해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족보는 의인의 족보가 아니라 죄인들의 족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죄인들에게 길이 되시고, 힘이 되시고, 지혜가 되셔서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이 역사를 관철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신 것에 대해 아무 육체라도 자랑하지 못합니다. 거기에는 인간의 공로는 한 점 섞여 있지 않고 다만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과 그들을 구원시키려는 하나님의 의지가 담겨 있을 뿐입니다.
2.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18-25)
20,21절을 보십시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드디어 때가 되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18절을 보면 요셉과 마리아는 정혼한 사이였습니다. 예수님은 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인 요셉의 아들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죄인인 것은 우리나라의 형법이나 민법을 위반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인인 것은 우리가 하나님처럼 되려했기 때문입니다. 본래,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사람의 본분은 선하시고 온전하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 자기 멋대로, 자기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한갓 피조물인 우리가 스스로를 절대화시켜 창조주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던 것입니다.
죄에는 당연히 처벌이 따릅니다. 절도를 하면 절도에 대한 처벌을, 살인을 하면 살인에 대한 처벌을 받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난 것, 하나님 행세를 한 것, 이 죄에 대한 처벌은 죽음입니다. 여기서 죽음이란 단지 태어나서 70,80년 살다가 죽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대가로 받는 죽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그리고 완전히 끊어지는 것입니다. 지옥의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영원토록 고통 받는 것입니다. 이 형벌에서 예외가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이렇게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 영원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가난에서 부를 얻거나 병에서 나음을 얻거나 어떤 성과를 얻는 것은 우리가 노력하거나 싸워서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죽음의 문제, 하나님과의 이 분리 문제는 인간의 힘과 지혜로 풀어낼 수 없습니다.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아무리 돈을 써도, 또는 아무리 도를 닦아도 죄와 죽음의 세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지옥이 정말 무서운 이유는 영원토록 형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올해 군대를 갔던 많은 형제들이 무사히 제대를 하였습니다. 군생활을 통해 배운것이 많지만 다시 들어가고 싶은 분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군생활이 힘들지만 버틸 수 있는 것은 그래도 군대에는 제대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희망 하나 붙들고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옥에는 제대가 없습니다. 지옥이 무서운 것은 그 고통이 크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지옥이 지옥인 것은 아무리 오래 있어도 그 고통에서 벗어날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영원한 고통, 이 막다른 골목에 출구가 생겼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죄값을 치루시고 우리에게 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면 하나님 앞에 두려움 없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신 예수님, 이 예수님이야말로 진정 우리의 구세주입니다. 이 예수님의 탄생이야말로 우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22, 2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러 세상에 오셨습니다. 마태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에서 이 예수님 탄생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그에게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이 죄인들과 함께 하신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예수님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임마누엘 예수님 안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인간은 타락했습니다. 거룩과 타락, 선과 악, 진리와 거짓이 어떻게 함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 엄청난 간격을 넘어 사람과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먹는 곳에서 드시고 사람이 자는 곳에서 주무셨습니다. 그들의 고통, 그들의 슬픔, 그들의 절망을 체험하시고 그것을 나누어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들을 대신해 찢기시고 맞으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들과 이와 같이 함께 하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들을 이와 같이 사랑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참사랑입니다. 사랑, 그 이상의 사랑입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 살면 행복해 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 없이 우리가 만든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하나님을 떠나 우리 마음대로 살았지만 결국 우리가 저지른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따로 말하지 않아도 다 잘 아실 것 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아닌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죄인들을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죽어도 싼 우리였으나 하나님은 우리가 한 대로 되갚지 않으셨습니다. 버림받아 마땅한 우리였으나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아니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오셔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은 우리가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셨습니다. 나그네 되었을 때 초대해 주셨고 헐벗었을 때 입혀 주셨습니다. 우리가 아플 때나 감옥에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와 함께 하여주시되 마침내 우리를 대신해 목숨까지 내어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그 고통 받으심으로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할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지금부터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십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 그리고 우리의 죄조차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현재 어떤 희망과 소망을 가지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어디서 위로와 힘을 얻고 계십니까? ”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에게서 희망을 찾으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이 예수님에게서 힘을 얻고 소망을 발견하시길 기도합니다.
얼마 있으면 2021 한해가 다 지나갑니다. 올 해는 다들 어떻게 보내셨나요? 각자의 삶에 좋은 일도 있지만 어려움도 많고 걱정스러운 일도 많았을 것입니다. 4일날 요회목자 사모 수양회에서 근황을 애기하면서 힘든 애기보다 감사하는 것을 많이 애기하시는 목자님들을 보면서 은혜가 많이 되었습니다. 각자 건강문제, 경제 문제, 자녀문제등등 어려운 사정 있습니다. 캠퍼스에 나아가서 전도하기도 어렵고 내년에는 동아리등록이 될지도 걱정입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걱정거리가 많지만 그래도 우리가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주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시편23편을 보면 목자되신 하나님은 우리를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기도 하지만,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다닐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에는 좋은 길도 있지만 때로는 어렵고 힘든 길을 걷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모든 순간 순간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보호하시며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했습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어려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저는 주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주 주시는 말씀, 하루 하루 주시는 양식말씀이 우리와 함께 함으로 우리를 여기까지 이끌어 주셨습니다. 우리앞에 놓은 상황들만 보면 마음이 위축됩니다. 그러나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보호하시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주께서 작고 연약한 우리 안에 계심을 믿고 성탄의 때 감사가 풍성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하루 하루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때마다 범죄하고 허물이 많지만 우리를 용서하시고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합시다. 매 주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할 수 있음에도 감사를 합시다. 주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시고 옳은 길로 인도하심에 감사를 합시다. 우리 안에 귀한 동역자들을 주시고 함께 교제하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감사를 합시다. “임마누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얼마 있으면 성탄절입니다. 2000년 전 이때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저 높고 높은 하늘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위로와 크나큰 은혜를 경험하기를 기도합니다. 임마누엘 예수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큰 사랑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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