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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2019년 성탄2강(마2장) 왕이요 목자이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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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7회 작성일 19-12-27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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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성탄 제 2 강
말씀 / 마태복음 2:1-12
요절 / 마태복음 2:6

왕이요 목자이신 예수님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메리크리스마스! 동교 화랑이 연합하여 크리스마스 연합예배를 드리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센터 입구쪽에서 조명으로 예쁘게 장식을 해놨습니다. 조명을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기쁘다 구주오셨네” 문구로 되어있습니다. 제가 보니까 센타 앞을 지나는 많은 사람들이 대체 뭐라고 써놓았지 하며 유심히 쳐다보는 것을 봤습니다. 이것을 통해 썰렁한 길거리가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나고,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가 어떤 날인지 짧지만 메시지를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어떤 날입니까? 크리스마스는 놀고 즐기는 날이 아니라 우리의 구주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입니다. 아기 예수님때문에 기뻐하고 아기 예수님때문에 마음에 위로와 평강을 얻는 날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 구주로 오신 예수님으로 기뻐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동방 박사의 이야기는 성경에서 유일하게 마태복음의 이곳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대상으로 기록된 복음서임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인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경배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이를 통해 예수님이 유대인뿐 아니라 만민의 구주이심을 나타내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 모두의 구주로 오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도 동방박사들처럼 구주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릴 수 있길 기도합니다.

1.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1-8)
예수님은 폭군 헤롯이 통치하던 때에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헤롯은 아주 잔인하고 권모술수가 능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정통 유대인이 아니라 에돔 사람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성전을 크게 지었습니다. 또 로마황제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아우구스투스 신전도 지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건축물을 지었는데, 이로 인해 백성들은 가난한 삶 가운데 세금을 더 내야 해서 고통했고, 돈 없는 자들은 건축 사업에 노동력이 착취당하여 힘들었습니다. 그는 또한 권력유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였는데 아내와 두 아들까지 죽였습니다. 이런 헤롯의 악행은 자기뿐만 아니라 자녀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잘 아시는대로 헤롯의 아들은 세례요한을 목베였고, 헤롯의 손자는 사도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투옥시키고는 후에는 벌레에 먹혀 죽었습니다. 헤롯의 증손자는 근친상간을 하고 사도 바울을 심문하던 자였습니다. 이런 잔인하고 악행을 일삼던 헤롯왕 밑에서 살아가는 백성들은 어둡고 힘든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은 헤롯이 다스리던 어두운 시대에 오셨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평안하고 행복할 때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악한 왕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죄로 병들고, 삶이 소망이 없던 그때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에도 성탄절이 되어도 행복하지 않은 분들이 있습니다. 직장상사나 동역자나 자녀가 헤롯이 되어 고통을 주기도 하고, 때로 양들이 헤롯이 되어 마음이 힘들어 하는 분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많은 업무와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지쳐서 성탄절이 와도 마음에 여유가 없는 분도 있습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실패와 어려움으로 마음이 낙담이 된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일이 잘 풀리고, 여유가 있고, 삶이 행복해야 성탄절이 의미가 있고, 기쁘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시대가 어렵고 우리 인생이 어두울 때에 아기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화려한 궁이 아니라 냄새나고 비천한 마굿간에서 나셨고, 이스라엘이 번영할때가 아니라 가장 어두운 때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힘들고 지친 우리를 위로하고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리시기위해 왕이신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께 나의 힘든 문제, 죄문제, 아픔을 내려놓고 큰 위로와 평강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고 먼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찾아 왔습니다. 여기서 박사들은 페르시아의 성직자들로서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시대의 징조를 찾고 미래를 예견하는 학자들이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하늘의 별을 관찰하다가 매우 특별한 징조를 발견하였습니다. 이 징조를 해석하던 동방박사는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별은 유대 땅에서 전해 내려오던 메시야의 별이었기 때문입니다. 별이 떴다는 것은 바로 메시야가 탄생했음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별을 따라 메시야를 만나기 위한 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낮에는 쉬고 밤에는 별을 따라 가야 하는 매우 힘든 여행을 하였습니다. 페르시아에서 이스라엘까지 거리가 1156키로 정도라고 합니다. 비행기로는 2시간이면 갈 거리이지만, 낙타를 타고 갔으니 5달정도가 걸릴 거리입니다. 그러나 별을 따라 주로 밤에 이동한 것을 감안하고, 또 헤롯이 2살 아래의 사내아이를 죽인 것을 볼 때 1년정도 걸린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때론 황량한 사막이, 거친 광야가 그들 앞에 펼쳐졌지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메시야를 만나야겠다는 간절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유대땅에 이르렀을 때에 예루살렘에 가면 예수님을 좀더 쉽게 찾지 않을까 생각이 되었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면서 성탄절을 즐기고 있으리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이런 선택과 결정으로 인해 별의 인도함을 놓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헤롯왕 앞에서 말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 당시 유대인의 왕인 헤롯 앞에서 '유대인의 왕'이 어디 계시냐고 하는 것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이상한 질문입니다.

여기서 유대인의 왕은 메시야의 별칭입니다. 유대민족을 통해서 오실 온 세상의 구원자를 말합니다. 동방박사들은 어떻게 이곳까지 찾아 올 수 있었다고 말합니까? 또 찾아온 목적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2b를 보십시오. "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박사들은 별을 보고 인류의 구원자가 탄생한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민수기24:17절에는 메시야 별에 대한 예언이 나옵니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그들은 오랫동안 메시야가 탄생하실 때 뜬다고 예언된 메시야 별을 기다려 왔습니다. 그들은 그 예언된 별의 출현을 기다리며 밤마다 밤하늘의 별을 연구했습니다. 당시 모든 사람들이 현실문제에 메여 땅만 바라보고 살 때 그들은 하늘과 별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매일 메시야 별이 있는지 관측한다는 것은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이고,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동료과 가족들은 포로로 끌려온 유대인들의 종교에 왜 관심을 갖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그들을 현실 감각이 없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비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에 대한 열정으로 메시야의 별을 찾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비록 나이가 많았지만, 진리를 향한 열정으로 눈은 언제나 반짝거렸고 스피릿이 충만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마침내 메시야의 별이 떴습니다. 그들은 메시야의 별을 발견하자 너무도 기뻤습니다. 그들은 별의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별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들이 떠나고자 할 때 가족과 친척들과 친구들은 못가도록 만류하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별의 주인공을 만날 생각에 부풀어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별의 주인공을 만나 경배할 생각에 부풀어 고생도 고생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위해서는 자신들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투자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물질주의 실용주의 시대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하는 것보다, '이것이 어떤 나에게 유익이 있는가?' 혹은 '무슨 재미가 있는가?'에 관심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현실적인 유익이 없으면 따르지 않습니다. 반대로 현실적인 유익이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고자 합니다. 초등학생의 꿈의 직업 중 하나가 건물주였다가 요새는 그 위에 유트버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현재 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대박을 꿈꾸며 유트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 집값이 끊임없이 치솟아 부동산 광풍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서울의 아파트 매매자 중 30대가 가장 높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돈과 자기유익과 재미보다는 예수님을 알기에 힘쓰고 진리를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을 입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니면 참된 만족과 기쁨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진리안에 거할때 거기서 참 지유함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동방박사처럼 시대를 거스려서 진리를 추구하며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소동한다는 말을 여러 한글 성경 변역본을 보면 매우 당황하였다, 매우 근심하였다, 깜짝 놀랐다 이렇게 써 있습니다. 메시야가 탄생한 소식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데 왜 근심이 되고 당황이 되고 깜짝 놀랐을까요? 해롯은 나이가 70세인데도 왕권에 대한 위협을 느껴서 깜짝 놀랬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백성들이 근심이 되고 당황한 것은 그들이 메시야를 맞이할 마음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메시야를 기다리는 건 맞지만 너무 빨리 왔기 때문에 당황스러웠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려면 버려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이 되어 매우 근심이 되었습니다.

헤롯은 즉시 모든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불러 물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는냐". 그러자 그들은 단숨에 미가서 5:2절을 펴들고 대답했습니다.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그들은 메시야의 탄생 장소를 말했지만, 아무도 베들레헴으로 아기 예수님을 만나러 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식과 입술로만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럼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마태는 미가서 5:2절을 인용하면서 원문에 없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는 말을 껴 넣었습니다. 이로서 마태는 예수님은 다스리는 자인데 목자처럼 다스리신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목자의 사랑을 가진 동시에 왕의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사랑과 능력을 동시에 가진 왕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능력이 무한하시고 사랑이 한이 없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공평과 정의 평화로 다스리는 왕이십니다. 목자 왕 예수님은 목숨을 버리시기까지 양들을 희생적으로 섬겨 주셨습니다. 앞서 애기한 헤롯은 자기 권력을 지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백성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어려워 하는지등은 알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힘과 권력으로 백성을 다스리며 권세를 부리는 재미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목자이신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목자는 양들의 이름 하나 하나를 다 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 양이 없어지면 그 잃은 양을 찾아 다닙니다. 만일 그 양을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양을 찾은 것으로 더 기뻐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보살펴 주십니다. 이 목자 왕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다윗은 그 행복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23:1,2) 예수님을 우리에게 목자 왕으로 보내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7,8절을 보십시오.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헤롯이 박사들에게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물은 것은 별이 나타난 때를 기준으로 하여 베들레헴 지역 안의 사내 아이들을 죽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런 무서운 음모를 숨기고서 박사들에게 자신도 경배하게 그곳을 가르쳐달라고 하였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순수하게 유대인의 왕을 찾았지만, 헤롯왕은 잘못된 동기로 유대인을 찾고자 했을 때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순수하게 유대인의 왕 예수님을 찾는자만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2.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는 동방박사(9-12)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베들레헴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다시 나타나서 그들을 인도하였습니다. 별은 베들레헴의 한 작은 동네로 박사들을 인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님이 계신 곳 위에 머물러 섰습니다. 그리고 한 작은 집을 비추었습니다. 별이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서 아기를 비추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박사들의 기쁨이 어떠했습니까? 10절을 보십시오. "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동방박사들의 기쁨은 더 이상 어떻게 표현 할 수 없는 최상의 기쁨을 말합니다. 이 기쁨은 그토록 찾던 메시야를 만난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진리를 갈망하던 구도자가 진리를 만난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참된 경배의 대상을 만난 기쁨이었습니다. 이 기쁨은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세상이 빼앗아 갈 수도 없는 영원한 기쁨입니다. 박사들은 너무 기뻐서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한 고생이 컷던 만큼 기쁨도 컷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기쁨을 주시길 기도합니다. 냄새나고 비천한 우리 자신을 위해서 아기 예수님이 오신 것으로 기쁨이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박사들이 집에 들어가니 아기 예수님이 있고, 아기 옆에는 마리아와 요셉이 있었습니다. 박사들은 이 아기가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임을 알아보았습니다. 박사들은 사회적으로 최고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었으며, 그에 비해 아기 예수님은 현실적으로 너무도 초라한 베들레헴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선입관과 자만심 그리고 사회적 통념을 버리고 아기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아볼 만큼 마음이 겸손했습니다. 박사들은 아기를 보았을 때 엎으려 경배를 했습니다. 큰 절을 했습니다. 이것은 아기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한다는 신앙고백의 표현입니다.

박사들은 아기께 경배한 후 정성껏 준비한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황금은 고귀하고 불변하는 속성으로 인해 왕을 상징합니다. 유향은 제사장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하는 것입니다. 몰약은 장사지낼 때 시신에 바르는 귀한 향료입니다. 이 3가지는 예수님에게 꼭 맞는 예물입니다. 황금은 예수님이 영원한 왕이 되심을, 유향은 예수님이 인류의 대제사장 되심을, 몰약은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실 것을 상징합니다. 동방박사들은 많은 물질을 희생해 가며 매우 귀한 예물로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였습니다.

우리를 이 말씀을 보며 박사들의 순수한 경배의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2절에서도 박사들은 자신들이 수천킬로나 되는 여행을 한 목적이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동기는 참으로 순수했습니다. 그들이 메시야를 찾는 목적은 자기들의 이상을 이루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의 논문에 쓸 거리를 얻기 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세상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요, 세상적으로 부러울 것이 없는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세상에서 많은 경험은 가진 현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이 늙은 나이에도 이렇게. 다만 그에게 경배드리고자 함이었습니다. 경배드리는데 최고의 가치를 두었습니다. 메시야를 찾아 경배하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많은 연구를 하며 업적을 내었지만, 참된 행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고상한 삶을 살려고 하지만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즐기는 죄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많은 지식과 오랜 연륜과 경험도 시대의 문제를 해결줄 수도 없었습니다. 별을 보면 볼수록 자연 앞에 자신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자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들려준 메시아 이야기는 너무나 놀라왔습니다. 목자의 모습으로 다스리시는 왕, 자기 백성의 죄와 허물을 지고 가는 메시야는 그 어디에도 볼 수 없는 왕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이사야 9:6) 이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시는 분이시며, 지혜로우신 분이십니다. 영존하셔서 우리를 보살피시는 아버지이시요, 평강의 왕이 되십니다. 지금까지 그들이 경험한 왕들은 절대권력을 휘두르며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다스렸습니다. 그런 세상 속에서 예수님 이야기를 들으니 그들은 이 메시야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분을 왕으로 영접하고 경배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의 바램대로 마침내 별의 주인공을 만났을 때 박사들은 최고의 경의를 표하며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경배가 무엇입니까? 경배는 절대자에게 자신의 최고의 것을 드려 경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배는 하나님만이 받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사람의 마땅한 의무요 본분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박사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얻거나 이루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받은 것이 없지만 먼저 하나님을 경배하였습니다. 우리도 박사들처럼 무엇을 얻고자 하는 자세가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을 높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참 경배의 대상으로 만나서 경배를 드릴 때 우리 마음에는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 찾아 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경배할 때 예수님은 우리의 메시야가 되어 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다스려 주십니다. 그리고 하늘의 평화를 주시고, 영혼에 참 기쁨을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경배를 드릴 때 기쁨과 감격, 그리고 구원과 영생의 확신을 주십니다. 참 경배의 대상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경배드리는 우리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세상에는 예수님을 참된 경배의 대상으로 모르고 방황하는 영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돈과 명예와 권력과 이성친구와 인기 연예인을 경배의 대상으로 따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이런 불쌍한 세상 사람들에게 참 경배의 대상이신 예수님을 힘써 소개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성탄을 맞이해서 우리가 다시 한번 예수님을 나의 왕이요, 목자로 영접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다스리심을 받고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고자 결단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하는 삶, 감사하고 순종하며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때 매일 매일의 삶이 동방박사들처럼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는 삶이 되리라 믿습니다. 왕이요, 목자로 오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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