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 2019년 추수감사(살전5:12-18) 범사에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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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추수감사절 특강
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5:12-18
요절 | 데살로니가전서 5:18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대인 관계를 부드럽게 합니다. 또 감사로 드리는 제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감사할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매일 다섯 가지씩 감사제목을 찾았던 윈프리는 감사의 일기를 통해서 두 가지를 배웠다고 합니다. 하나는 인생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둘째는 삶의 초점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배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힘을 썼습니다. 그녀의 리더십으로 인해서 약자들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자신의 상처를 공중 앞에서 고백함으로 치유되는 변화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녀는 불행한 환경을 바꾸어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었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당한 어려움 속에서 함께 공감하며 삶의 의미를 찾고 감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빌립보 교회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개척된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데살로니가전서를 쓸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는 핍박을 받고 있었고 이제 막 시작된 어리고 연약한 상태였습니다. 바울이 청년 디모데를 그 곳에 보내어 목양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는 형제들을 칭찬하고 격려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권면합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교회 안에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형제들을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은 목사나 장로 등 교회의 지도자들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책임 목자나 요회목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수고하는 지도자들을 가장 귀히 여기라고 말합니다. 귀히 여기라는 말은 존경하라는 말입니다. 왜 지도자를 귀히 여겨야 합니까? 영적 질서를 세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기 위함입니다. 그래야 내가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목자가 미워지면 그가 전하는 메시지나 가르침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또한 그들도 사람입니다. 그들도 사역을 하면서 받은 수고와 상처로 인해서 격려와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들도 자기 집안 일, 직장 일을 하면서 교회의 일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니 십자가가 더 많습니다. 목자님들의 이런 헌신이 있기 때문에 공동체가 든든히 서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 끼리 화목하라.”고 권면합니다. 목자와 성도, 성도와 성도끼리 화목할 때 평안한 마음으로 전도하고 선교하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교제하며 서로 사랑할 때 생명력이 충만하게 되고 양들이 안정감을 느끼며 살아나게 됩니다.
또한 교회는 연약한 자들이 와서 힘을 얻고 회복되어야 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게으른 자는 규모 없는 자, 무질서하게 사는 자, 제멋대로 행하는 자입니다. 원어적으로 게으른 자는 대열에서 이탈한 군사를 이르는 말입니다. 이들은 일은 하지 않고 일만 만드는 자들입니다. 일을 도무지 하지 않는 배경은 잘못된 종말론으로 인해서 세상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곧 오실 것인데 이 세상 일을 열심히 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언제 오시든지 우리가 깨어서 맡은 바 사명에 충성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말씀을 열심히 나누어 주고 받은 바 은사로 장사를 하라고 권면하셨습니다.
마음이 약한 자는 소심한 자, 믿음의 삶에 대해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믿음으로 살다가 망하지 않을까, 박해를 받는 상황에서 믿음으로 살면 망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약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격려해야 합니다.
힘이 없는 자는 죄와 싸울 힘이 없고, 사명을 감당할 힘이 없는 자입니다. 이들에게 힘에 부치는 일을 맡기고 몰아붙이면 넘어집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공동체에 연약하고 힘이 없는 사람들이 서로를 도울 때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또 힘이 없고 연약한 사람들은 서로를 깊이 공감하고 불쌍히 여길 줄 압니다. 이들이 남아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고 있는 것을 인하여 감사하고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가 의지가 강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들만 제자감으로 생각하며 이들을 중심으로 사랑하면 안 됩니다. 또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아야 합니다. 리더는 동역자들에게 요구하며 잘 따라오지 못하면 판단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올챙이 시절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려울수록 우리는 서로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박해를 받고 있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복수하지 말라는 말씀은 특별하게 들렸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복수와 원한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는 분명하게 금지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의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마5:39),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 위하여 기도하라”(마5:44)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바깥에 있는 사람, 심지어는 원수까지도 모든 사람에 대하여 항상 선을 따라야 합니다. ‘항상 선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이것이 삶의 양식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속한 사람들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 세 가지가 무엇입니까? 16-18절을 보십시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첫째, 항상 기뻐하라. 바울은 고난 가운데 있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됩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고 슬프게 하는 것들이 종종 있습니다. 특히 우리의 실수나 죄로 인해서 자책할 때 마음이 슬프고 울고 싶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연약함을 생각할 때 탄식이 나옵니다. 쉽게 변화되지 않는 자신을 볼 때도 슬픕니다. 사도 바울은 많은 환난을 받았고 죄수의 몸으로 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특히 빌립보에 가서 전도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 한 밤중에 찬송하며 기도했습니다. 이때 기적이 일어나 사슬이 풀리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바울은 엄청난 시련과 환난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관계성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항상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고후6:4-10에 보면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고 고백합니다. 고후12:10에서는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예수님 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확실한 구원과 장래의 소망 때문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고난도 장차 받게 될 영광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세상에서 당하는 환난은 예수님을 더욱 깊이 알고 배우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기쁨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기뻐할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십니다. 기뻐하라는 것이 명령입니다. 항상 기뻐하는 것도 순종해야 할 말씀입니다.
둘째, 쉬지 말고 기도하라(17).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모든 시간을 무릎을 꿇고 눈을 감은 채 기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늘 기도하는 태도를 견지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나님께 말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인생 문제를 하나님께 들고 와서 해결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구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만든 기도실은 귀의 형상을 본떠서 만들었습니다. 기도실에 가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구할 때 우리에게는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을 받으면 하나님께도 영광이 됩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마귀와의 싸움입니다(엡6:12). 마귀는 늘 깨어서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다닙니다.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그래서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26:4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깨어 기도함으로서 사탄의 역사를 분별하고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아뢰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함으로 염려, 근심 등 무거운 짐들을 그 앞에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 나아가 기도함으로 우리는 쉼을 얻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해야 합니다. 손가락 중보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엄지는 교회와 국가의 최고 리더들, 검지는 나를 양육하고 가르치는 이들, 중지는 사랑하는 가족들, 약지는 복음전도자와 예비신자들, 소지는 연약한 이웃과 환우들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형편을 알고 기도해야 하고 그들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자 기도해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성서한국과 세계 선교를 위해서 부르짖어 기도했고 하나님은 이런 기도를 받으시고 우리 가운데 놀라운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기도에 힘쓰기를 바랍니다.
셋째, 범사에 감사하라(18). 18절을 보십시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우리가 로마서 공부하면서 배웠지만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않는 것이 죄의 뿌리입니다. 감사하지 아니할 때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그러나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제사입니다. 감사합니다. “Thank you!”의 어원은 경탄하다, 감동을 받았다라고 합니다. 감사(感事)는 고맙게 느낄 때 표현하는 언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다보면 범사에 감사하기보다는 무덤덤하고, 때로는 불평하고, 원망하고, 짜증을 내기 쉽습니다. 한마디로 감사는 자연스럽게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감사한 일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것을 감사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아름다운 자연과 생명을 주신 것을 생각할 때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귀한 생명을 주시고 숨을 쉴 수 있는 공기와 마실 물과 먹을 음식을 주셨습니다. 가을의 아름다운 단풍과 풍성한 과일을 맛볼 수 있을 때 감사합니다. 또 가족과 친구들과 교회의 동역자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으면서 교제하고 즐거움과 아픔을 나누며 살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구원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을 통해서 죄 사함의 은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를 죄책감과 슬픔과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시고 참 자유와 기쁨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을 주셔서 거룩한 순례의 길을 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땅에서 사는 날 동안에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고 돌보는 목자의 삶을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일상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특별한 일이 없는 것이 감사한 것입니다. 병에서 낫고 사고를 피한 것도 감사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지내는 평안한 일상이 감사한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축복에 대해서 감사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외관상 불행해 보이는 일에 대해서 감사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무 의미 없는 일이나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일에 감사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하고 불행하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힘든 일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한 주권과 섭리를 믿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아실뿐만 아니라,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주관하고 계시며, 그 분의 뜻을 성취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을 때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하나님을 완벽하게 신뢰하는 법을 배운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면 감사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틴 루터는 감사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불평은 마귀에게 속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불평은 불행을 낳지만 감사는 행복을 창조합니다. 감사는 행복과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행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항상 감사가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헬렌 켈러가 쓴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만일 내가 사흘간 볼 수 있다면 첫날에는 나를 가르쳐 준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그 분을 바라보겠습니다. 둘째 날에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동이 터오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을 보겠습니다. 셋째 날에는 아침 일찍 큰 길로 나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싶습니다. 점심때는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저녁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윈도의 상품들을 구경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사흘 간 눈을 뜨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헬렌 켈러의 소망은 우리가 매일 누릴 수 있는 지극히 소박하고 평범한 것들입니다. 하나님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in all circumstance)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해야 합니다. 언제나 우리를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이 베푸신 구체적인 은혜를 하나하나 헤아려보면서 감사제목을 찾고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여러 어려움 가운데서도 계속적인 기쁨과 기도와 감사가 충만한 활기 넘치는 인생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5:12-18
요절 | 데살로니가전서 5:18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대인 관계를 부드럽게 합니다. 또 감사로 드리는 제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감사할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매일 다섯 가지씩 감사제목을 찾았던 윈프리는 감사의 일기를 통해서 두 가지를 배웠다고 합니다. 하나는 인생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둘째는 삶의 초점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배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힘을 썼습니다. 그녀의 리더십으로 인해서 약자들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자신의 상처를 공중 앞에서 고백함으로 치유되는 변화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녀는 불행한 환경을 바꾸어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었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당한 어려움 속에서 함께 공감하며 삶의 의미를 찾고 감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빌립보 교회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개척된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데살로니가전서를 쓸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는 핍박을 받고 있었고 이제 막 시작된 어리고 연약한 상태였습니다. 바울이 청년 디모데를 그 곳에 보내어 목양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는 형제들을 칭찬하고 격려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권면합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교회 안에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형제들을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은 목사나 장로 등 교회의 지도자들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책임 목자나 요회목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수고하는 지도자들을 가장 귀히 여기라고 말합니다. 귀히 여기라는 말은 존경하라는 말입니다. 왜 지도자를 귀히 여겨야 합니까? 영적 질서를 세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기 위함입니다. 그래야 내가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목자가 미워지면 그가 전하는 메시지나 가르침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또한 그들도 사람입니다. 그들도 사역을 하면서 받은 수고와 상처로 인해서 격려와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들도 자기 집안 일, 직장 일을 하면서 교회의 일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니 십자가가 더 많습니다. 목자님들의 이런 헌신이 있기 때문에 공동체가 든든히 서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 끼리 화목하라.”고 권면합니다. 목자와 성도, 성도와 성도끼리 화목할 때 평안한 마음으로 전도하고 선교하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교제하며 서로 사랑할 때 생명력이 충만하게 되고 양들이 안정감을 느끼며 살아나게 됩니다.
또한 교회는 연약한 자들이 와서 힘을 얻고 회복되어야 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게으른 자는 규모 없는 자, 무질서하게 사는 자, 제멋대로 행하는 자입니다. 원어적으로 게으른 자는 대열에서 이탈한 군사를 이르는 말입니다. 이들은 일은 하지 않고 일만 만드는 자들입니다. 일을 도무지 하지 않는 배경은 잘못된 종말론으로 인해서 세상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곧 오실 것인데 이 세상 일을 열심히 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언제 오시든지 우리가 깨어서 맡은 바 사명에 충성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말씀을 열심히 나누어 주고 받은 바 은사로 장사를 하라고 권면하셨습니다.
마음이 약한 자는 소심한 자, 믿음의 삶에 대해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믿음으로 살다가 망하지 않을까, 박해를 받는 상황에서 믿음으로 살면 망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약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격려해야 합니다.
힘이 없는 자는 죄와 싸울 힘이 없고, 사명을 감당할 힘이 없는 자입니다. 이들에게 힘에 부치는 일을 맡기고 몰아붙이면 넘어집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공동체에 연약하고 힘이 없는 사람들이 서로를 도울 때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또 힘이 없고 연약한 사람들은 서로를 깊이 공감하고 불쌍히 여길 줄 압니다. 이들이 남아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고 있는 것을 인하여 감사하고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가 의지가 강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들만 제자감으로 생각하며 이들을 중심으로 사랑하면 안 됩니다. 또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아야 합니다. 리더는 동역자들에게 요구하며 잘 따라오지 못하면 판단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올챙이 시절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려울수록 우리는 서로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박해를 받고 있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복수하지 말라는 말씀은 특별하게 들렸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복수와 원한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는 분명하게 금지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의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마5:39),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 위하여 기도하라”(마5:44)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바깥에 있는 사람, 심지어는 원수까지도 모든 사람에 대하여 항상 선을 따라야 합니다. ‘항상 선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이것이 삶의 양식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속한 사람들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 세 가지가 무엇입니까? 16-18절을 보십시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첫째, 항상 기뻐하라. 바울은 고난 가운데 있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됩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고 슬프게 하는 것들이 종종 있습니다. 특히 우리의 실수나 죄로 인해서 자책할 때 마음이 슬프고 울고 싶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연약함을 생각할 때 탄식이 나옵니다. 쉽게 변화되지 않는 자신을 볼 때도 슬픕니다. 사도 바울은 많은 환난을 받았고 죄수의 몸으로 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특히 빌립보에 가서 전도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 한 밤중에 찬송하며 기도했습니다. 이때 기적이 일어나 사슬이 풀리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바울은 엄청난 시련과 환난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관계성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항상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고후6:4-10에 보면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고 고백합니다. 고후12:10에서는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예수님 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확실한 구원과 장래의 소망 때문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고난도 장차 받게 될 영광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세상에서 당하는 환난은 예수님을 더욱 깊이 알고 배우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기쁨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기뻐할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십니다. 기뻐하라는 것이 명령입니다. 항상 기뻐하는 것도 순종해야 할 말씀입니다.
둘째, 쉬지 말고 기도하라(17).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모든 시간을 무릎을 꿇고 눈을 감은 채 기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늘 기도하는 태도를 견지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나님께 말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인생 문제를 하나님께 들고 와서 해결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구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만든 기도실은 귀의 형상을 본떠서 만들었습니다. 기도실에 가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구할 때 우리에게는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을 받으면 하나님께도 영광이 됩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마귀와의 싸움입니다(엡6:12). 마귀는 늘 깨어서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다닙니다.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그래서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26:4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깨어 기도함으로서 사탄의 역사를 분별하고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아뢰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함으로 염려, 근심 등 무거운 짐들을 그 앞에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 나아가 기도함으로 우리는 쉼을 얻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해야 합니다. 손가락 중보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엄지는 교회와 국가의 최고 리더들, 검지는 나를 양육하고 가르치는 이들, 중지는 사랑하는 가족들, 약지는 복음전도자와 예비신자들, 소지는 연약한 이웃과 환우들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형편을 알고 기도해야 하고 그들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자 기도해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성서한국과 세계 선교를 위해서 부르짖어 기도했고 하나님은 이런 기도를 받으시고 우리 가운데 놀라운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기도에 힘쓰기를 바랍니다.
셋째, 범사에 감사하라(18). 18절을 보십시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우리가 로마서 공부하면서 배웠지만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않는 것이 죄의 뿌리입니다. 감사하지 아니할 때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그러나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제사입니다. 감사합니다. “Thank you!”의 어원은 경탄하다, 감동을 받았다라고 합니다. 감사(感事)는 고맙게 느낄 때 표현하는 언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다보면 범사에 감사하기보다는 무덤덤하고, 때로는 불평하고, 원망하고, 짜증을 내기 쉽습니다. 한마디로 감사는 자연스럽게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감사한 일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것을 감사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아름다운 자연과 생명을 주신 것을 생각할 때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귀한 생명을 주시고 숨을 쉴 수 있는 공기와 마실 물과 먹을 음식을 주셨습니다. 가을의 아름다운 단풍과 풍성한 과일을 맛볼 수 있을 때 감사합니다. 또 가족과 친구들과 교회의 동역자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으면서 교제하고 즐거움과 아픔을 나누며 살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구원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을 통해서 죄 사함의 은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를 죄책감과 슬픔과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시고 참 자유와 기쁨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을 주셔서 거룩한 순례의 길을 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땅에서 사는 날 동안에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고 돌보는 목자의 삶을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일상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특별한 일이 없는 것이 감사한 것입니다. 병에서 낫고 사고를 피한 것도 감사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지내는 평안한 일상이 감사한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축복에 대해서 감사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외관상 불행해 보이는 일에 대해서 감사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무 의미 없는 일이나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일에 감사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하고 불행하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힘든 일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한 주권과 섭리를 믿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아실뿐만 아니라,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주관하고 계시며, 그 분의 뜻을 성취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을 때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하나님을 완벽하게 신뢰하는 법을 배운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면 감사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틴 루터는 감사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불평은 마귀에게 속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불평은 불행을 낳지만 감사는 행복을 창조합니다. 감사는 행복과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행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항상 감사가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헬렌 켈러가 쓴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만일 내가 사흘간 볼 수 있다면 첫날에는 나를 가르쳐 준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그 분을 바라보겠습니다. 둘째 날에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동이 터오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을 보겠습니다. 셋째 날에는 아침 일찍 큰 길로 나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싶습니다. 점심때는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저녁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윈도의 상품들을 구경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사흘 간 눈을 뜨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헬렌 켈러의 소망은 우리가 매일 누릴 수 있는 지극히 소박하고 평범한 것들입니다. 하나님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in all circumstance)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해야 합니다. 언제나 우리를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이 베푸신 구체적인 은혜를 하나하나 헤아려보면서 감사제목을 찾고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여러 어려움 가운데서도 계속적인 기쁨과 기도와 감사가 충만한 활기 넘치는 인생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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