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 신년3강(렘29:1-23)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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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신년 제 3 강
말씀 | 예레미야 29:1-23
요절 | 예레미야 29:13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우리는 신년 말씀으로 하나가 되라, 성전을 건축하라는 말씀에 이어 기도에 대한 내용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 위에 기도를 더해야 합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정상적인 삶을 살려면 호흡이 자연스럽게 되어야 하는 것처럼 기도가 자연스럽게 되어야 영적인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며 고난 가운데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니라(1-11)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여호야긴 때 유다를 침공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을 함락시켰습니다. 성전과 왕궁의 보물들을 탈취했습니다. 여호야긴 왕과 왕후와 내시들, 그 땅의 고관들, 모든 기술자와 대장장이, 토공들을 사로잡아갔습니다. 바벨론 제국에 유용한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아주 가난한 사람말고는 남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 대신에 숙부인 맛다니야를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시드기야로 고쳤습니다(왕하 24:10-17).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에게 보내는 외교관들 편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4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잡아왔는데 하나님께서 사로잡혀가게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실 뿐만 아니라 때로는 고난을 허락하시고 이를 통해서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고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로 만드십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으로 인도하실 뿐만 아니라 사랑으로 징계도 하십니다.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온 사람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자신들을 사로잡아 온 바벨론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패배한 자신들의 연약함에 대한 울분이 있었을 것입니다. 포로로 잡혀와 있는 자신들이나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이나 우상숭배와 불순종의 죄로 인해서 이런 고통과 수치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하루 빨리 이곳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어떤 말씀을 주십니까?
5,6절을 보십시오. “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그들은 하루 빨리 떠나고 싶은데 하나님은 거기에 집을 집고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으라고 하십니다.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않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더러움을 씻고 정결하게 되는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문제를 해결하고 모면하는데 집중하기보다 본질적이고 내면적인 것에 집중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훈련을 마음으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벨론의 평안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이 성읍이 평안함으로 그들도 평안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패망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을 위해서 기도함으로 그들이 더 이상 파멸을 면하고 숫자가 줄어들지 않고 소생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면서 200만 명으로 번성한 다음에 출애굽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깊고 높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멸하고자 하심이 아니라 회복하고자 하십니다.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바벨론이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는 70년간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국에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헛된 생각을 품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바벨론에 정착하여 생존해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귀에 솔깃한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선지자 하나냐는 이런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28:2-5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 내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이곳에서 빼앗아 바벨론으로 옮겨간 여호와의 성전 모든 기구를 이 년 안에 다시 이곳으로 되돌려 오리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 년 안에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는 그들이 듣고 싶었던 말씀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는 거짓 메시지입니다. 8,9절을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중에 있는 선지자들에게와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꾼 꿈도 곧이 듣고 믿지 말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거짓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듣지 말아야 합니다.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지 않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꿈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간절히 바라는 것이 꿈으로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받아들여야 할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10).” 이 년이 아니라 칠십 년입니다. 칠십 년이 차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시고 고국으로 돌아가게 할 것입니다. 그 때까지는 이방 땅에서 농사짓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그 수가 줄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11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당장 눈에 보이는 현실은 재앙입니다. 환난입니다. 고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서 끝나지 않으십니다. 바벨론 포로 기간을 통해서 그들을 정결하게 하십니다. 주님의 심판은 우리를 단련하는 용광로이며, 연단을 통해 그 믿음을 정금같이 빛나게 하십니다. 그들의 성전 중심 예배를 회당 중심으로 바꾸셨습니다. 의식 중심이던 예배를 말씀 중심으로 바꾸신 것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문화에 흡수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방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그들은 성전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장소와 한계를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어디서든지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 평안, 번영을 생각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언약을 깨버렸을지라도 언약에 신실하십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처음부터 재앙이 아니라 평안입니다. 그들이 너무도 악하여 재앙을 내리고 버리겠다고 하셨지만 이는 본심이 아닙니다. 언약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처음부터 재앙이 아니라 평안입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때로 어려운 일이 닥칠 때가 있습니다. 재앙 같은 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질병에 걸리기도 하고 물질적인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하고 복음 역사가 어려움에 처하기도 합니다. 일이년이 아니라 십년 이십 년 계속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마음이 어두워지고 절망이 됩니다. 11절을 표준새번역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 내가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재앙이 아니라 번영이다. 너희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려는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망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가 평안하고 번영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희망찬 미래를 생각하고 예비하십니다. 11절을 공동번역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에게 어떻게 하여주는 것이 좋을지 나는 이미 뜻을 세웠다. 나는 너희에게 나쁘게 하여주지 않고 잘하여 주려고 뜻을 세웠다. 밝은 앞날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밝은 앞날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어두운 현실 속에서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소망과 비전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생각이 실현되는 것을 볼 것입니다. 이런 소망 가운데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고 미래와 희망을 주시려는 하나님을 믿고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내게 와서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라(12-23). 12,13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첫째로, 내게 와서 기도하라. 이 말씀에 ‘나, 내가’가 반복되어 강조되고 있습니다. 내게 부르짖고 내게 와서 기도하고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고 나를 찾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당연히 하나님께 나아가 그를 찾고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이스라엘은 이 당연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 달려가지 않고 바알에게 달려갔습니다. 바알을 따르고 그를 의지하고 바알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예언했습니다(7:9, 9:4, 12:16, 23:13). 여호와께로 가지 않고 모압자손이 섬기는 그모스에게로, 암몬 자손이 섬기는 밀곰에게로 갔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아들 딸들을 몰렉신을 위해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했습니다(32;35, 왕상 11:33).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우상이 가득한 도성으로 옮기셨습니다. 그들을 추방한 것이 아니라 빼내어 오셨습니다. 이제 이곳에서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나를 찾으라고 하십니다. 내게 부르짖으라고 하십니다.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우상이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께 오라고 하십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헛된 신들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고 광야로 인도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유일하신 하나님, 그들과 언약을 맺으신 여호와 하나님께로 오라고 하십니다.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고 찾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온 마음으로 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의 죄악이 아직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온 마음으로 구하고 찾아야 합니다. 염치가 없지만 다시 한 번 언약을 붙들고 목놓아 부르짖어야 합니다. 부르짖는다는 것은 꼭 큰소리가 아니라 간절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르짖으라는 말은 간절함을 가지고 기도하라, 온 마음으로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둘째로, 나를 만나리라. 내게로 와서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겠다고 합니다.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고 나를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추방하셨으니 그들을 외면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겠다고 하십니다. 그들을 만나겠다고 하십니다. 예루살렘에서도 만나지 못한 하나님을 그들은 이곳 바벨론에서 만날 것입니다. 고난의 땅에서 하나님을 만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출애굽시키고 광야에서 만나주셨듯이 그들을 바벨론에서 만나주십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잘살게 되었을지라도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곳은 더 이상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 아닙니다. 저주를 불러오는 재앙의 땅입니다. 번영하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로 가지 않고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 있다면 그 곳은 번영의 땅이 아닙니다. 반면 재앙을 만날지라도 하나님께로 가게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게 하고 부르짖게 한다면 그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징계와 환난의 기간이 영적으로 가장 은혜로운 때이기도 한 것입니다.
셋째로, 돌아오게 하리라. 14절을 보십시오.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 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포로된 땅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더 이상 우상을 따르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따르는 하나님의 참 백성이 됩니다. 형식적으로 제사만 드리는 백성이 아닌 언약 위에 굳게 서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는 영광스러운 미래를 준비하는 자들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그러면 그들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19,2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들이 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들에게 꾸준히 보냈으나 너희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런즉 내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보낸 너희 모든 포로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그들이 부르짖어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바벨론 포로의 땅, 유배지처럼 보이는 그곳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는 이들이 나타났습니다. 소년 시절에 포로로 잡혀와 바벨론과 바사의 왕들을 섬겼던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지는 위협 앞에서도 하나님께 나아가 하루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글을 읽고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쓰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과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예루살렘 성이 허물어지고 성문들이 불탔다는 말을 들은 느헤미야는 울고 슬퍼하며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이들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들을 만나주셨습니다. 그들은 포로로 잡혀간 땅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들의 아버지요 신실하신 하나님,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바벨론 포로된 백성들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선포되는 회개와 소망의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율법에 정통한 에스라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이해하고 해석하고 가르치는 성경선생들이 세워졌습니다. 느헤미야와 같은 헌신적이고 충성된 일꾼들이 양성되었습니다. 잡혀간 남은 자들은 다음 세대를 위해서 준비했습니다. 포로공동체는 재앙의 땅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길러내는 평안과 번영의 모판이었습니다.
우리가 새해 희망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내가 만난 하나님을 전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경험하기 위해서 온 마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말씀 | 예레미야 29:1-23
요절 | 예레미야 29:13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우리는 신년 말씀으로 하나가 되라, 성전을 건축하라는 말씀에 이어 기도에 대한 내용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 위에 기도를 더해야 합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정상적인 삶을 살려면 호흡이 자연스럽게 되어야 하는 것처럼 기도가 자연스럽게 되어야 영적인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며 고난 가운데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니라(1-11)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여호야긴 때 유다를 침공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을 함락시켰습니다. 성전과 왕궁의 보물들을 탈취했습니다. 여호야긴 왕과 왕후와 내시들, 그 땅의 고관들, 모든 기술자와 대장장이, 토공들을 사로잡아갔습니다. 바벨론 제국에 유용한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아주 가난한 사람말고는 남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 대신에 숙부인 맛다니야를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시드기야로 고쳤습니다(왕하 24:10-17).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에게 보내는 외교관들 편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4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잡아왔는데 하나님께서 사로잡혀가게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실 뿐만 아니라 때로는 고난을 허락하시고 이를 통해서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고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로 만드십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으로 인도하실 뿐만 아니라 사랑으로 징계도 하십니다.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온 사람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자신들을 사로잡아 온 바벨론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패배한 자신들의 연약함에 대한 울분이 있었을 것입니다. 포로로 잡혀와 있는 자신들이나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이나 우상숭배와 불순종의 죄로 인해서 이런 고통과 수치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하루 빨리 이곳을 떠나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어떤 말씀을 주십니까?
5,6절을 보십시오. “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그들은 하루 빨리 떠나고 싶은데 하나님은 거기에 집을 집고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으라고 하십니다.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않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더러움을 씻고 정결하게 되는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문제를 해결하고 모면하는데 집중하기보다 본질적이고 내면적인 것에 집중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훈련을 마음으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벨론의 평안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이 성읍이 평안함으로 그들도 평안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패망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을 위해서 기도함으로 그들이 더 이상 파멸을 면하고 숫자가 줄어들지 않고 소생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면서 200만 명으로 번성한 다음에 출애굽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깊고 높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멸하고자 하심이 아니라 회복하고자 하십니다.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바벨론이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는 70년간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국에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헛된 생각을 품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바벨론에 정착하여 생존해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귀에 솔깃한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선지자 하나냐는 이런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28:2-5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 내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이곳에서 빼앗아 바벨론으로 옮겨간 여호와의 성전 모든 기구를 이 년 안에 다시 이곳으로 되돌려 오리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 년 안에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는 그들이 듣고 싶었던 말씀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는 거짓 메시지입니다. 8,9절을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중에 있는 선지자들에게와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꾼 꿈도 곧이 듣고 믿지 말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거짓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듣지 말아야 합니다.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지 않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꿈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간절히 바라는 것이 꿈으로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받아들여야 할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10).” 이 년이 아니라 칠십 년입니다. 칠십 년이 차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시고 고국으로 돌아가게 할 것입니다. 그 때까지는 이방 땅에서 농사짓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그 수가 줄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11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당장 눈에 보이는 현실은 재앙입니다. 환난입니다. 고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서 끝나지 않으십니다. 바벨론 포로 기간을 통해서 그들을 정결하게 하십니다. 주님의 심판은 우리를 단련하는 용광로이며, 연단을 통해 그 믿음을 정금같이 빛나게 하십니다. 그들의 성전 중심 예배를 회당 중심으로 바꾸셨습니다. 의식 중심이던 예배를 말씀 중심으로 바꾸신 것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문화에 흡수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방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그들은 성전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장소와 한계를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어디서든지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 평안, 번영을 생각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언약을 깨버렸을지라도 언약에 신실하십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처음부터 재앙이 아니라 평안입니다. 그들이 너무도 악하여 재앙을 내리고 버리겠다고 하셨지만 이는 본심이 아닙니다. 언약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처음부터 재앙이 아니라 평안입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때로 어려운 일이 닥칠 때가 있습니다. 재앙 같은 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질병에 걸리기도 하고 물질적인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하고 복음 역사가 어려움에 처하기도 합니다. 일이년이 아니라 십년 이십 년 계속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마음이 어두워지고 절망이 됩니다. 11절을 표준새번역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 내가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재앙이 아니라 번영이다. 너희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려는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망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가 평안하고 번영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희망찬 미래를 생각하고 예비하십니다. 11절을 공동번역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에게 어떻게 하여주는 것이 좋을지 나는 이미 뜻을 세웠다. 나는 너희에게 나쁘게 하여주지 않고 잘하여 주려고 뜻을 세웠다. 밝은 앞날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밝은 앞날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어두운 현실 속에서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소망과 비전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생각이 실현되는 것을 볼 것입니다. 이런 소망 가운데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고 미래와 희망을 주시려는 하나님을 믿고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내게 와서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라(12-23). 12,13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첫째로, 내게 와서 기도하라. 이 말씀에 ‘나, 내가’가 반복되어 강조되고 있습니다. 내게 부르짖고 내게 와서 기도하고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고 나를 찾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당연히 하나님께 나아가 그를 찾고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이스라엘은 이 당연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 달려가지 않고 바알에게 달려갔습니다. 바알을 따르고 그를 의지하고 바알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예언했습니다(7:9, 9:4, 12:16, 23:13). 여호와께로 가지 않고 모압자손이 섬기는 그모스에게로, 암몬 자손이 섬기는 밀곰에게로 갔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아들 딸들을 몰렉신을 위해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했습니다(32;35, 왕상 11:33).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우상이 가득한 도성으로 옮기셨습니다. 그들을 추방한 것이 아니라 빼내어 오셨습니다. 이제 이곳에서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나를 찾으라고 하십니다. 내게 부르짖으라고 하십니다.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우상이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께 오라고 하십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헛된 신들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고 광야로 인도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유일하신 하나님, 그들과 언약을 맺으신 여호와 하나님께로 오라고 하십니다.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고 찾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온 마음으로 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의 죄악이 아직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온 마음으로 구하고 찾아야 합니다. 염치가 없지만 다시 한 번 언약을 붙들고 목놓아 부르짖어야 합니다. 부르짖는다는 것은 꼭 큰소리가 아니라 간절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르짖으라는 말은 간절함을 가지고 기도하라, 온 마음으로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둘째로, 나를 만나리라. 내게로 와서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겠다고 합니다.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고 나를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추방하셨으니 그들을 외면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겠다고 하십니다. 그들을 만나겠다고 하십니다. 예루살렘에서도 만나지 못한 하나님을 그들은 이곳 바벨론에서 만날 것입니다. 고난의 땅에서 하나님을 만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출애굽시키고 광야에서 만나주셨듯이 그들을 바벨론에서 만나주십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잘살게 되었을지라도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곳은 더 이상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 아닙니다. 저주를 불러오는 재앙의 땅입니다. 번영하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로 가지 않고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 있다면 그 곳은 번영의 땅이 아닙니다. 반면 재앙을 만날지라도 하나님께로 가게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게 하고 부르짖게 한다면 그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징계와 환난의 기간이 영적으로 가장 은혜로운 때이기도 한 것입니다.
셋째로, 돌아오게 하리라. 14절을 보십시오.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 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포로된 땅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더 이상 우상을 따르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따르는 하나님의 참 백성이 됩니다. 형식적으로 제사만 드리는 백성이 아닌 언약 위에 굳게 서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는 영광스러운 미래를 준비하는 자들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그러면 그들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19,2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들이 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들에게 꾸준히 보냈으나 너희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런즉 내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보낸 너희 모든 포로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그들이 부르짖어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바벨론 포로의 땅, 유배지처럼 보이는 그곳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는 이들이 나타났습니다. 소년 시절에 포로로 잡혀와 바벨론과 바사의 왕들을 섬겼던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지는 위협 앞에서도 하나님께 나아가 하루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글을 읽고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쓰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과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예루살렘 성이 허물어지고 성문들이 불탔다는 말을 들은 느헤미야는 울고 슬퍼하며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이들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들을 만나주셨습니다. 그들은 포로로 잡혀간 땅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들의 아버지요 신실하신 하나님,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바벨론 포로된 백성들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선포되는 회개와 소망의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율법에 정통한 에스라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이해하고 해석하고 가르치는 성경선생들이 세워졌습니다. 느헤미야와 같은 헌신적이고 충성된 일꾼들이 양성되었습니다. 잡혀간 남은 자들은 다음 세대를 위해서 준비했습니다. 포로공동체는 재앙의 땅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길러내는 평안과 번영의 모판이었습니다.
우리가 새해 희망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내가 만난 하나님을 전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경험하기 위해서 온 마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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