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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022년 출16강(28,29장) 영화롭고 아름다운 제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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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64회 작성일 22-02-27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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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출애굽기 16 강 
말씀 | 출애굽기 28,29장
요절 | 출애굽기 28:2

영화롭고 아름다운 제사장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과 함께 거하시기 위해 지으라는 성막에 이어 계속되는 말씀입니다.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중보사역을 감당할 제사장을 임명하시고 그의 옷을 지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사장은 아론과 그의 아들이 위임을 받지만 대표성을 띠고 있는 것이지 이들만이 배타적인 제사장 계급으로 군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전체를 제사장 나라로 이끌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이 시간 제사장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그 아들들을 불러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십니다.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라고 명하십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는 직분이기 때문에 거룩한 옷, 구별된 옷, 신성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제사장이 그런 옷을 입어야 하는 이유는 영화롭고 아름답기 위함입니다. 영화롭다는 존엄하다, 아름답다는 명예롭다는 뜻입니다. 제사장이 거룩한 옷을 입어야 하는 이유는 제사장으로서 존엄과 명예를 풍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왜 제사장이 존엄과 명예를 드러내야 합니까? 제사장직은 여호와를 섬기는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은 성소와 제단에서 봉사하는 일을 합니다.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합니다. 또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묻는 일도 합니다. 여호와는 존엄하고 명예롭습니다. 제사장직은 여호와의 존엄과 명예를 드러내는 일입니다.

  왜 옷을 통해 존엄과 명예를 드러낼까요? 제사장일지라도 아론은 본래 영화롭고 아름다운 존재가 아닙니다. 그도 이스라엘 자손 중 다른 이들처럼 연약함에 싸여 있는 인간입니다(히 5:2). 제사장은 거룩한 옷을 입어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신의 약점을 가려야 합니다. 동시에 옷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옷은 그 사람에게 자기가 하는 일과 삶에 대한 책임감을 줍니다. 옷을 보면 그 사람의 정체와 하는 일을 알 수 있고, 그 사람의 됨됨이까지도 알 수 있습니다. 제사장은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옷도 세상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제사장의 정체성은 존엄하고 명예로운 삶으로 나타납니다.

  제사장의 존엄과 명예가 신약 시대에는 누구에게로 이어졌습니까? 예수님께로 이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존엄과 명예를 가진 제사장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제사장 옷을 입지 않 고 평범한 옷을 입으셨습니다. 오히려 당시 종교지도자였던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이 제사장 옷을 입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겉과 속이 다르다.”며 꾸짖었습니다(마 15:6). 왜냐하면 옷은 거룩했는데, 그 삶은 세속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옷보다도 그 삶이 거룩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거룩한 옷을 입으라.”라는 말은 “거룩한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 이후 그 제사장 직분은 누구에게로 이어졌습니까? 열두 사도로 이어졌고, 그 후에는 예수님을 믿는 성도, 교회로 이어졌습니다. 좁은 의미에서 제사장은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입니다.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제사장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입니다. 사역자는 물론이고 성도도 이 세상과 다른 구별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모든 성도는 그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존엄과 명예를 드러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성도에게 말씀했습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4). 바울은 거룩한 삶을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그것은 세상 풍조나 자기감정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삶을 뜻합니다. 성도는 외적으로는 세상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적으로는 세상의 ‘이념’이나 ‘진영 논리’를 따르면 안 됩니다.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 사람처럼 살면 안 됩니다. 그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우셨습니다. 우리가 삶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사도 바울은 신자들에게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4:22-24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우리는 죄악된 욕심을 따라 살던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될 때 예수님의 사랑과 온유와 섬김과 오래 참음으로 옷을 입게 됩니다. 그때 양들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어딘가 순수하고 거룩한 모습, 남을 섬기고 사랑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받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복음의 제사장으로 구별하여 영화롭고 아름답게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지혜있는 모든 자 곧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말하여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 하여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들이 지을 옷은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거룩한 옷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재료들은 성막을 지을 때 사용하는 것들입니다. 이를 통해 제사장이 곧 하나님을 대표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제사장은 움직이는 성막과 성전으로서 하나님을 대리하는 특별한 권위를 갖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그와 같은 사명으로 인도함으로 제사장 나라로서 세상을 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약에서 우리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 회복되었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전해야 합니다. 

  제사장의 옷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첫째로, ‘에봇’입니다. ‘에봇’은 앞으로는 가슴과 복부, 뒤로는 어깨와 엉덩이를 덮고 어깨에 걸치는 겉옷입니다. 에봇에 멜빵을 두 개 만들어 붙이는데, 호마노 두 개를 가져다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깁니다. 나이에 따라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을 다른 보석에 새깁니다. 그 보석을 에봇의 양 어깨받이에 달아야 합니다(6-14).  여기에 무슨 뜻이 있을까요? 12절입니다. “그 두 보석을 에봇의 두 어깨받이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워서 기념이 되게 할지며.” 제사장은 열두 지파, 즉 이스라엘을 대표합니다. 제사장은 이스라엘의 중보자입니다. 아론은 제사장 직무를 할 때마다 백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여호와도 그 백성을 생각하십니다. 

  제사장은 양들의 문제를 대신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중보기도 하는 자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1:28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은 날마다 우리 인생들의 삶의 짐, 죄의 짐을 다 짊어지십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가 나의 짐을 내려놓음으로 참 쉼과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다른 사람의 문제에 관심 갖고 책임지고 짊어진다는 것은 분명히 부담입니다. 그것은 거룩한 부담입니다. 그러나 목자가 양들의 짐을 짊어짐으로 예수님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판결 흉패’입니다. 흉패는 정사각형이며 두 겹이며 윗부분이 열려 있고 옆을 꿰매 주머니 역할을 합니다. 주머니 안에는 판결에 사용하는 ‘우림’과 ‘둠밈’을 넣었는데, 그것은 판결을 내리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돌입니다. 제사장은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결정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림과 둠밈을 이용하여 분별했습니다. 그래서 ‘판결 흉패’라고도 부릅니다. 거기에 금테에 물린 12개의 보석을 가로로 3개씩 세로로 4 개씩 붙였습니다. 그 보석들에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아론은 성소에 들어갈 때 그 흉패를 가슴에 붙였는데, 여호와께서 그것을 보시고 그 백성을 기억하십니다(15-30). 

  사도바울도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섬길 때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했습니다(행20:31). 또 갈라디아 교회 양들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새겨지기까지 해산하는 수고를 했습니다(갈4:19). 이렇게 한 양 한 양을 가슴에 품고 섬겼기에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 2:19,20).”고 고백했습니다. 사람을 가슴에 품고 섬긴다는 것 자체가 상처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위해서 간절히 중보기도하면 상처가 변하여 별이 됩니다. 영어 속담에 “scars into stars”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목자님들이 양들과 동역자들을 품고 기도할 때 별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삶으로 빚어집니다. 세상적인 아름다움은 비싼 옷이나 화장품으로 꾸미지만 영적인 아름다움은 상처가 성령의 용광로를 거치면서 보석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더 이상 상처받기 싫어서 양을 안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마음에 부담은 없지만 영광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한 양 한 양을 가슴에 품고, 눈물로 기도해서 보배들로 키워낼 수 있길 기도합니다.

  셋째로, 금방울입니다. 에봇 받침 겉옷 가장자리에 금방울을 달아야 합니다. 제사장이 여호와를 섬기러 성소에 들어갈 때와 나갈 때 그 소리가 들리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가 죽지 않습니다(31-35).  방울 소리를 듣고 죽지 않게 한 데는 무슨 뜻이 있을까요? 그 방울 소리를 누가 들을까요? 성소 안에 있는 레위인과 제사장일까요? 아론 자신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이실까요? 방울 소리는 제사장을 지켜주었습니다. 방울 소리는 제사장에게 제사장으로서 합당한 옷을 입고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그는 방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난 제사장이다. 제사장처럼 살아야 한다.’라는 자기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만약 그가 방울 소리 없이 성소에 들어간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그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방울 소리는 제사장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고 깨어있게 하는 알람과 같습니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세상 쾌락과 안일을 따라 삶으로써 영적인 잠에 빠져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패기가 없고 비전이 없습니다. 이것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이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이들을 흔들어 깨우겠습니까? 옷자락에 금방울을 달고 다니면서 열심히 말씀을 가르치고 사랑하며 섬기는 성경선생이 바로 제사장들입니다. 내가 깨어있지 않으면 나도 죽고, 내가 섬기는 리더들,  양들, 우리 공동체가 다 잠에 빠져들게 됩니다. 이런 위기의식을 갖고 필사적으로 말씀을 연구하여 가르치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사랑의 수고를 통해 섬겨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 공동체에 생명력이 충만하고 풍성한 은혜와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줄 믿습니다.
 
  넷째로, 패입니다. 그들은 순금으로 패를 만들어 그 위에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써야 합니다. ‘여호와께 성결’이란 ‘여호와께 바쳐진’, ‘여호와께 거룩’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을 아론의 이마에 두었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이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과 관련된 죄책을 담당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백성이 거룩한 예물을 드릴 때 잘못하면 그 책임을 아론이 져야 합니다. 아론이 그 패를 이마에 달고 있으면, 백성이 바치는 예물을 여호와께서 받아주십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예물은 무엇이든지 거룩해야 합니다. 제사장은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거룩함이 생명이요 능력입니다. 제사장이 거룩함을 잃어버리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제사장이 다른 재능은 좀 부족해도 거룩함에 있어서만은 양보해서는 안 됩니다. 거룩하고 성결해야만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힘 있게 증거 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로, 속옷, 관과 띠입니다. 그것을 만드는 목적은 제사장을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하여 아론과 그 아들이 제사장 직분을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39-41).  마지막으로, 속바지입니다. 그들은 속바지를 만들어 허리에서부터 두 넓적다리까지 이르게 하여 하체를 가려야 합니다. 제사장이 회막에 들어갈 때나 제단에 가까이하여 거룩한 곳에서 섬길 때 그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래야 죄를 짊어진 채 죽지 않습니다(42-43).  하체를 드러내면 왜 죽을까요? 하체를 드러내는 일은 벌거벗음을 뜻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자신의 벌거벗음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과 그의 아내의 부끄러움을 가리려고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창 3:7, 8, 21). 제사장도 자신의 벌거벗음을 속바지로 가려야 합니다.

  이방의 제사란 사람의 생식기가 숭배의 대상이 됩니다. 세계 곳곳에서 남근석이 숭배가 되는 것을 보면 그것을 생산 능력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식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려야 합니다. 생식 능력이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포함합니다.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언약만이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29장은 제사장 위임식에 관한 말씀입니다. 제사장을 임명하여 세울 때 송아지를 잡아서 그 피를 제단 뿔에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고기를 진 밖에서 불살라 속죄제를 드리라고 하십니다. 숫양 한 마리를 잡아서 불살라 드리는데 이것이 번제요, 화제입니다. 제단 위에 피와 관유를 가져다가 제사장들의 오른쪽 귓부리, 오른쪽 엄지 손가락, 오른쪽 엄지 발가락에 바르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귀로 듣는 것, 손으로 닿는 것, 발로 가는 곳이 다 거룩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부정한 것은 듣지도 말고, 손대지도 말고, 가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또 제물을 가져다가 흔들어 하나님께 드리는데 이것이 요제입니다. 이처럼 제사장은 먼저 자신의 죄를 씻고,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려야만 합니다. 29장에만 ‘거룩’이라는 단어가 13번이나 나옵니다. 제사장 한 사람을 위임하여 세우는데 의식절차가 이렇게 까다로왔습니다. 그만큼 한 사람을 거룩한 제사장으로 세운다는 것이 어렵고도 귀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예수님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번의 십자가 피 제사로 영원하고 온전한 제사를 완성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2-14절을 보면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제사장으로 쓰임받기 위해 복잡한 제사나 의식절차를 행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께서 속죄제물이 되셔서 단 한 번의 제사로 영원하고 온전한 속죄를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이 피의 은혜를 덧입고 나아가서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면 됩니다. 우리는 이렇게 값비싼 댓가를 지불하신 예수님의 피의 은혜를 항상 마음에 품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 자신을 드리기를 힘써야겠습니다.

  우리가 제사장으로서 해야 할 일은 가정예배, 요회 모임, 주일 예배, 일대일 말씀공부, 중보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주일 예배에서 은혜를 받고 힘을 얻어 평일에 우리의 삶을 산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산제사는 균형 잡힌 신앙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생활, 직장이나 학교생활, 가정생활이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늘 동행하며 그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배 중에 만나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말씀하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역동적인 삶을 사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 다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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