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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019년 창27강(49,50) 열 두 지파를 위한 야곱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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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06회 작성일 19-10-20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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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제 27 강                                   
말씀 | 창세기 49:1-50:26
요절 | 창세기 49:28

열두 지파를 위한 야곱의 축복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오늘 말씀으로 창세기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아름답게 창조하시고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만드시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인류는 죄와 슬픔, 고난과 질병 등으로 고통을 받고 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언약을 맺으시고 친히 구원 역사를 이루십니다. 지렁이 같은 야곱을 택하사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야곱은 그의 생애 마지막에 열두 아들을 불러 축복 기도를 합니다. 이 기도는 그들의 미래를 예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는 죽으면서 자녀들에게 가나안 땅에 대한 소망을 심습니다. 후에 요셉도 죽고 자신의 뼈를 가나안 땅 조상의 묘실에 묻으라고 합니다. 애굽에서 총리로서 최고의 부와 명예를 누렸지만 그의 소망은 하나님 나라에 있었습니다. 이 시간 우리도 양들과 자녀들을 어떻게 축복해야 하는지 생각하며 축복 기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렀습니다. 그는 유산을 나누어 주려고 부른 것이 아닙니다. 자식들이 잘되기만을 바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빈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열 두 아들이 후일에 당한 일을 예언하며 축복합니다. 그들 중에서 르우벤, 시므온과 레위, 유다, 요셉에 대해서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열두 아들 중에서 왜 이 다섯 명을 중심으로 다루었을까요? 이는 누가 형제들을 이끌 장자 곧 지도자가 될 것인가에 연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야곱의 축복을 통해 성경적 지도자의 조건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계승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첫째, 목자의 탁월함은 정욕의 유혹을 극복함으로 옵니다. 르우벤은 야곱의 첫 번째 아들로서 장자라는 탁월한 지위를 갖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계승하여 가족들의 지도자요 열한 형제의 우두머리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르우벤은 자신이 받은 특별한 지위와 탁월한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고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르우벤은 순간의 정욕을 절제하지 못해서 서모 빌하와 통간했습니다. 이는 심각한 간음죄요, 아버지의 권위에 도전하는 반역입니다. 이 사건 때문에 르우벤은 장자의 지위를 잃고 탁월한 능력을 소유했지만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지위와 탁월한 능력을 가졌지만 정욕을 절제하지 못하여 한 방에 훅하고 가버립니다. 하나님은 금그릇이나 은그릇이나 토기라도 깨끗한 그릇을 쓰십니다. 그러므로 청년의 정욕을 피해야 합니다. 베드로사도는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와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1)”고 권면합니다. 청년의 정욕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제어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정욕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음란 동영상, 정욕적인 분위기, 음란한 사람과 환경을 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삼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목자는 탁월함에 이르기 위해서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를 쳐서 복종시킬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고 그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살아야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목자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 목자는 분노와 혈기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르우벤이 장자의 명분을 잃게 되자 누가 그 다음일까요? 바로 시므온과 레위였습니다. 그러나 시므온과 레위는 잔인했습니다.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였습니다. 그들은 누이 디나가 세겜 땅의 추장인 세겜에게 강간을 당했을 때 격분하여 칼을 차고 그 성에 들어가서 모든 남자를 살육했습니다. 그들은 약속을 했지만 이를 어기고 잔인한 살육을 했습니다. 이런 방법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에 미움과 분노를 품고 있는 사람들을 축복하지 않으십니다. 분노와 혈기를 다스리지 못하면 목자로서 합당하지 않습니다.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은 더더욱 안 됩니다. 언어폭력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정대로 행하면 자신은 시원할지 모르지만 당하는 사람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그는 존경과 영향력을 잃게 됩니다. 한 번 폭발한 혈기와 분노가 이제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단숨에 허물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노와 혈기를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시몬과 레위 지파는 야곱의 예언적 저주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흩어졌습니다. 시몬 지파는 그 세력이 점점 약해지다가 나중에는 유다 지파에 흡수되었습니다. 레위 지파는 약속의 땅에 들어갔지만 땅을 기업으로 분배받지 못하고 열두 지파 중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이후를 보면 레위 지파는 열두 지파 가운데 영광스러운 직분을 얻게 됩니다. 금송아지 사건을 통해서 자신들에게 임한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어놓았습니다. 출애굽기 32,33장을 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자 불안해져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한 신이라 여기고 그 앞에서 제사를 드리고 춤을 추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모세는 크게 분노하여 하나님이 직접 쓰신 십계명, 두 돌판을 땅에 던져서 깨뜨렸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여호와 편에 있는 자는 나오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레위 지파가 나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편에 분명히 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심판했습니다. 이로 인해서 성전과 도피성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율법을 맡아서 가르치고 재판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땅은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셔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공급해주셨습니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옷을 입었습니다. 이렇듯이 레위 지파는 열두 지파 중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지파가 되었습니다.

  셋째, 목자는 회개를 진실하게 하고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유다는 어떤 축복을 받았습니까? 8-10절을 보십시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유다 이름의 뜻은 찬송입니다. 하지만 유다의 인생을 살펴보면 요셉처럼 아름답지 못합니다. 그는 믿음의 조상들처럼 신앙적인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여인과 결혼해서 세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중에서 두 아들이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여 죽었습니다. 그 후에 유다는 창녀로 꾸민 며느리 다말에게 들어가서 쌍둥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요셉을 애굽에 노예로 파는데 주동이 되었습니다. 이런 악한 일을 행한 후에 유다는 요셉을 잃고 슬퍼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죄책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깨닫고 애통하였습니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 애굽에 내려왔다가 베냐민이 은잔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종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유다는 베냐민을 잃고 슬퍼하실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자신이 베냐민을 대신하여 종살이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형제들의 모든 죄와 허물을 자신이 뒤집어쓰고 대신 고난 받고자 한 것입니다(44:18-34). 이렇게 유다가 동생을 대신하여 대속적인 고난을 받고자 했을 때, 가족 간에 생긴 모든 상처가 치유되고 미움과 시기로 분열되었던 가족들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유다를 통해서 배우는 영적 진리는 하나님 앞에서 흠이 없이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죄를 지었을 때 애통히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과거에 지은 모든 죄가 흔적 없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누구나 외면하고 싶은 과거가 있습니다. 잊고 싶은 흑역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회개할 때 예수님의 피로 깨끗하게 씻어주시고 새 피조물이 되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를 잊으십니다. 과거를 묻지 아니하십니다. 흰 눈보다 더 희게 우리를 만드시고 의롭다고 하십니다.

  유다는 르우벤을 대신하여 형제들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자손들인 유다 지파는 사자처럼 강하고 용감하였습니다. 나귀는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매어놓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값비싼 포도를 먹어치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귀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매며 옷을 포도즙에 빤다는 것은 그 만큼 포도가 넘쳐난다는 것입니다. 풍족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표현입니다. 무엇보다 유다 지파에게 주어진 축복의 핵심은 메시아가 오실 때까지 그들 가운데 왕들이 배출된다는 것입니다. ‘규’는 고귀함과 왕권을 상징합니다. 다윗 왕 때부터 유다지파는 20명의 왕들을 배출하며 이스라엘을 통치했습니다. 그리고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유다 지파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유다처럼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진실한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서 형통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흠이 없는 사람보다 오히려 진실한 회개를 아는 사람이 더 좋은 목자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감히 자기 의를 내세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에 넘어지는 연약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품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알기에 사람들을 그 은혜의 깊은 세계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요 복음입니다.
 
 넷째, 목자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법을 배우는 사람입니다. 22-26절은 요셉에 대한 예언적 축복입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나무가 물가에 심기울 때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시편 1:3에는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따라 과실을 맺음과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고 말씀합니다. 예레미야 17:13은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골 2:6-7은 예수님께 뿌리를 내리라고 합니다. 요셉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는 것을 그의 삶의 목표로 삼았을 때 그 가지가 담을 넘었습니다. 가나안을 넘어 애굽으로 뻗쳤습니다. 생명력이 넘쳐서 세계를 섬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쏘았지만, 요셉의 활이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이 힘이 있어서 대적자를 제압합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서 증오의 화살, 멸시의 화살, 그를 좌절시키는 화살을 맞았습니다. 꿈꾸는 것이 보기 싫어서 이렇게 화살을 쏘아댔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대적자들을 제압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는 강하게 되고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또한 요셉지파가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게 된 것은 그들의 조상 요셉이 하나님 앞에서 흠이 없는 인생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이런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셔서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꿈을 붙들게 하셨습니다. 고난을 견딜 수 있는 내적 힘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맡은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부어주셨습니다. 또한 요셉이 겪은 모든 고난을 통해서 정금 같은 믿음과 통치자의 자질을 갖추게 하셨습니다. 그런 후에 애굽의 총리로 세우셔서 그의 가족들을 구원하고 고센 땅에 정착해서 큰 민족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을 예비했습니다.

  요셉은 야곱이 죽은 후에 자신들에게 복수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형들에게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들을 기르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50:19-21).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당한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으로 바꾸셨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믿음과 영적 통찰력이 있었기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해도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을 믿고 인내하며 충성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겪는 모든 일들이 유익이 됩니다. 악한 일이라도 하나님 안에서 선한 일로 바꾸십니다. 그래서 어떤 고난을 당해도 절망하지 않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생의 결국은 승리와 영광으로 마치게 됩니다.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베푸시는 가장 큰 은혜는 임마누엘 곧 그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나머지 일곱 아들은 어떤 축복을 받았습니까?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여 부요한 삶을 살게 됩니다. 잇사갈은 안일을 좋아하다가 압제를 당합니다. 단은 독사와 같이 기습 공격에 능합니다.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다가 전세를 뒤집는 역전의 명수가 됩니다. 아셀은 기름진 땅에서 거주하게 됩니다.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처럼 자유분방한 지파가 됩니다. 막내 베냐민은 싸움에 능한 물어뜯는 이리로 비유됩니다. 베냐민 지파는 용맹한 전사들입니다. 사사 드보라가 있을 때는 칭찬을 듣지만(삿5:14), 사사기 20장에 보면 악한 일을 행하여 600명만 남습니다. 에훗(삿3:15), 사울(삼상9:1), 사도 바울이 베냐민 지파 출신입니다. 이런 결과는 야곱의 예언이 결정론적인 숙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라는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할 때 주어진 운명 가운데서도 영광스러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구속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과 이에 대한 인간의 반응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믿음의 순종이 생명의 역사를 잉태하는 것입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야곱의 열두 아들들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들입니다. 그 자체가 큰 은혜요 축복이지만 그 은혜와 축복 안에서 각 사람이 하나님께 받는 축복의 분량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각 사람이 하나님께 받은 분량대로 축복했습니다. 모든 신자들은 구원의 은혜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축복의 분량은 각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 축복의 분량은 그 사람의 믿음과 성품과 행실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그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서 그의 후손들과 그 미래가 어떻게 되는지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대로 심판도 하시고 상급도 주십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영원한 삶과 잇대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 번뿐인 삶을 함부로 살 수 없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면 생명력이 충만한 인생을 살면서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우리의 삶을 남과 비교하는 것은 불행입니다. 자족하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요 믿음입니다. 자기의 분량을 알게 되면 감사하게 됩니다. 반대로 자기의 분량을 모르면 감사하지 않습니다. 나의 분량을 알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축복입니다. 자기를 아는 것이 복입니다. 내 그릇이 너무 작아서 걱정이십니까? 분노와 혈기가 많습니까? 너무 연약하고 소심합니까? 모난 성격이라고 사람들과 자꾸 부딪쳐 괴롭습니까? 이런 모습을 가지고서 과연 하나님께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괜찮습니다. 이런 모습을 가지고서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면 더 많은 축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이 주시는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야곱은 아들들에게 자신을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고 유언합니다.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으로서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의 매장지를 삼았던 곳입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는 믿음을 소유한 채 죽었습니다.

  이제 창세기 전체의 결론을 내리고자 합니다. 1-11장은 천지 창조와 원시역사, 12-50장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믿음에 대해서 다루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오,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이삭과 야곱, 요셉의 믿음을 키우시고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죽었지만 그들의 믿음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지금도 살아서 우리에게 좋은 본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변함없이 살아계셔서 지금도 구원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나 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복을 받고 업적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축복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제자들과 자녀들을 축복함으로 그들이 형통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위한 축복기도는 그들의 내일을 위해 심는 축복의 씨앗과 같습니다. 우리가 매일 매일 양들과 자녀들을 위해서 축복하며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가장 소중한 방법은 자녀를 축복하며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영육간에 자녀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건강과 거룩과 경건과 풍요와 번영을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과 은사를 최대한 개발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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