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024년 잠11강(22:17-24:34) 송이 꿀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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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잠언 11강
말씀 | 잠언 22:17-24:34
요절 | 잠언 24:13,14
송이 꿀 지혜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든 613가지 율법을 딱 한 말씀으로 요약하셨습니다. 무엇이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은 30가지 잠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30가지 잠언도 한마디로 줄인다면 ‘송이 꿀 지혜’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할 때에 어떤 유익이 있는지, 이 말씀을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하고 자녀는 부모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가정 교회를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이 주는 유익(22:17-21). 17-21절을 보십시오. “너는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 내 지식에 마음을 둘지어다. 이것을 네 속에 보존하며 네 입술 위에 함께 있게 함이 아름다우니라. 내가 네게 여호와를 의뢰하게 하려 하여 이것을 오늘 특별히 네게 알게 하였노니 내가 모략과 지식의 아름다운 것을 너를 위해 기록하여 네가 진리의 확실한 말씀을 깨닫게 하며 또 너를 보내는 자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회답하게 하려 함이 아니냐.”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두어 보존하며 가르치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지혜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순종해서 살아가는 일은 그 자체로 즐겁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노래하는 삶이 됩니다. 반면에 지혜자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악인의 길을 가는 것은 추하고, 슬프고, 더럽고, 원망 불평하는 삶이 됩니다.
지혜자의 말씀을 배우고 그에 따라서 사는 것이 여호와를 의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를 경외한다는 것은 그가 주신 말씀을 붙잡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말씀이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주고, 인도하셔서 가장 지혜로운 삶, 복된 삶을 살게 합니다.
오늘날은 말세중의 말세입니다. 갈수록 진리는 상대화되었고, 무엇이 죄인지, 무엇이 참된 길인지 알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질서가 무너지고 성정체성의 혼돈과 문란함, 점점 마약의 해악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사람들이 미쳐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진리의 확실한 말씀이 필요합니다. 잠언 말씀은 이런 시대에 분명한 가르침을 줍니다.
진리의 확실한 말씀을 깨닫고,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는 부모님이나 목자님,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확실히 회답하게 될 것입니다. 즉 자기 정체성이 분명해질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이것이 분명해집니다. 그럴 때 그의 삶은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고 영향력이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둘째,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들에게 주시는 말씀(23:12-25). 12-14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훈계에 착심하며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려면 먼저 부모가 훈계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자녀가 잘 했을 때 칭찬을 해 주어야 하고 잘못했을 때는 원칙을 가지고 훈계를 해야 합니다. 즉 훈계하기 전에 이런 경우는 혼난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 주어야 자녀가 인격에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잘못한 것을 혼내더라도 인격은 존중해야 합니다. 진정한 훈계는 잘못된 행동을 저지르는 자녀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행동 자체를 수정하는 것에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훈계하기 전에 자녀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는 것도 인격존중의 방법입니다. 자녀를 훈계할 때 엄마와 아빠가 불일치를 보이면 훈계는 효과를 보기 어렵습니다. 효과적인 훈계를 위해서는 부모가 서로 자녀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사전 대화가 필요하고 후에는 누가 이 문제를 훈계할 것인가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녀가 성장해 갈수록 훈계는 더욱 인격적이어야 합니다. 자녀가 마음에 감동을 받을 때 진정한 훈계가 될 수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부모님이 주는 훈계가 따분한 소리나 잔소리가 되지 않도록 하려면 자신이 은혜를 받고 변화된 간증을 하면 좋습니다. 함께 소감을 나누는 것은 가장 좋은 교육입니다. 우리가 감사제목과 기도제목을 나누면서 가정 예배를 드릴 때에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가정 안에서 일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본을 보이는 것만큼 좋은 교육이 없습니다. 가정은 최상의 학교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자녀의 마음을 얻고, 귀를 기울이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자녀로서 부모를 즐겁게 하는 길은 무엇입니까(15-18, 22-25)? 15-18절을 보십시오. “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지혜로운 자녀를 둔 부모는 마음이 즐겁습니다. 부모들은 대개 자녀들이 세상에서 돈을 많이 벌고 권세를 잡고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들에게 진정으로 원해야 하는 것은 정직한 자녀들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나 내면의 진실성을 추구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여도 그의 인격이 문제가 있을 때, 각종 비리와 부정이나 타락에 연루되어 삶이 무너지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워싱턴이 왜 위대한 미국의 국부가 되었습니까? 정직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도끼를 시험한다고 아버지가 아끼는 나무를 찍었다가 누가 이런 짓을 했느냐고 했을 때 워싱턴은 정직하게 자기의 잘못을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정직성이 부모를 기쁘게 했고 결국은 한 나라의 신임을 받는 초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정직한 것은 양심이 살아 있고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자녀들에게 장래가 있고 그의 소망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십니다.
22-25절을 보십시오. 또 자녀들이 다 같이 읽겠습니다.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말미암아 즐거울 것이니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장수를 약속하셨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자녀 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집니다. 부모의 말씀을 통해서 자녀들은 가치관이 형성이 됩니다. 부모님의 삶이 그들의 삶의 모델이 됩니다. 진리는 어떤 댓가를 지불해서라도 사야 할 만큼 귀한 것이고 결코 팔 수 없는 것입니다. 진리가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24절 말씀에서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라”고 했는데 배운 진리를 판다는 것은 성경 진리의 말씀을 세상적인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 결혼관과 바꾸어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셋째, 어떤 가정을 이룰 것인가?(24장). 24:1-4을 보십시오.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그들의 마음은 강포를 품고 그들의 입술은 재앙을 말함이니라.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하게 되며 또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은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은 부러워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말씀입니다. 잠언은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며, 함께 있으려고도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For) 그들의 ‘마음은 강포’를 품고, 그들의 ‘입술은 재앙’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새번역을 보면 “그들의 마음은 폭력을 꾀하고 그들의 입술은 남을 해칠 말만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악인들의 형통이 폭력과 거짓 협박의 결과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집, 어떤 가정을 세워야 할까요?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하게 됩니다(3).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명철로 인생의 집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지어야 합니다. 일시적이 아닌 영원한 집을 지어야 합니다. 또 집안의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됩니다. 이 지식은 하나님과 진리에 대한 지식입니다. 가정은 성전입니다. 가정과 교회를 합친 것이 가정교회입니다. 가정은 성전의 원형입니다. 성막이 세워지기 전에는 집안에서 장자에 의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AD 70년 제 2 성전이 무너지고 유대인들은 성전인 가정으로 돌아갔습니다. 회당이나 학교는 가정을 보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초대교회는 가정교회였습니다. 예수님은 누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냐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의 삶의 패턴은 토라를 공부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겼습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고 묻는 것처럼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먼저냐 실천하는 것이 먼저냐는 질문은 오래 되었습니다. 성경은 공부가 먼저이고 실천이 다음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성경을 배우고 자녀들에게 본을 보이고 가르침으로 가정교회를 세웁니다. 가정에서 배운대로 실제 선행을 행함으로 가르칩니다. 부모의 섬기는 삶, 구제하는 삶, 다른 형제들을 사랑하고 돕는 삶을 통해서 자녀들은 배웁니다. 우리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더 깊이 성경을 공부함으로 선순환 구조를 그리며 성장합니다.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쇠망사>에서 위대한 문명이 쇠퇴하고 망하는 다섯 가지 이유를 들었습니다. 1) 인간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정의 존엄함이 무너진다. 2) 세금이 늘어난다. 국고를 사용해 공짜 음식을 주고, 대중을 위한 서커스를 열어준다. 3) 쾌락을 미친 듯이 추구한다. 스포츠 경기는 해마다 흥미를 더하고, 더 잔인해지고 부도덕해진다. 4) 개인의 책임감 상실이라는 내부의 큰 적은 못보고, 바깥의 적을 막기 위해 군사력을 키운다. 5) 종교가 쇠퇴한다. 종교가 형식으로 전락하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가정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2023년 1인 가구비율이 35.5%입니다. 2050년이 되면 41.2%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혼을 해서 가정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역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집을 잘 세운다는 것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입니다. 5-7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 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 지혜는 너무 높아서 미련한 자가 미치지 못할 것이므로 그는 성문에서 입을 열지 못하느니라.” 새 번역은 5절을 “지혜가 있는 사람은 힘이 센 사람보다 더 강하고, 지식이 있는 사람은 기운이 센 사람보다 더 강하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전쟁은 이러한 지혜와 지식이 출중한 자들이 모여서 전략으로 싸워야 합니다. 전쟁은 전략가들이 많아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환난 날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낙담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강함을 보여야 합니다(10). 미약함은 부주의와 게으름, 비겁함, 두려움 등에서 옵니다. 지혜 훈련을 받은 제자는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생명을 살리고 회복하는 일에 쓰임을 받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웃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들을 도와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의 자녀들이 잘못된 결정으로 고난당한 자를 외면한다면, 주님도 그런 상황에서 그 사람을 외면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디서 지혜를 얻을 것입니까? 13,14절입니다. 자녀들이 다 같이 읽겠습니다.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 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고대사회에서는 설탕이나 시럽이 없기 때문에 가장 단 것으로 꿀이 있었습니다. 꿀 중에서 송이 꿀은 최고의 꿀입니다. 송이 꿀은 벌집에서 덩어리째 방금 딴 꿀을 말합니다. 덩어리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송이 꿀을 상상해 보십시오. 송이 꿀은 가장 신선하고 순전하며 달콤합니다. 이런 꿀은 치료 효과가 있어서 영육간 힘을 주고, 소생시킵니다. 이 송이 꿀을 먹는 것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하고, 그 결과 참된 지혜자가 되는 것입니다. 14절은 “꿀을 먹는 것”과 “지혜를 얻는 것”을 비교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지혜는 송이 꿀처럼 달고 먹으면 힘이 납니다. 어리석음을 치료하고 분별력을 갖게 합니다. 이 때문에 지혜를 얻는 자는 정녕 장래가 있고, 소망이 끊어지지 않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예루살렘 멸망 당시 랍비 요하난 벤자카이는 로마 총사령관을 찾아가서 “다른 모든 것은 파괴해도 좋으니 토라를 공부할 수 있는 작은 학교 하나만 남겨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 성전과 모든 것이 파괴되었지만 토라 학교만은 보존되었습니다. 이후에 토라를 공부하지 말라는 황제의 명령을 공개적으로 거부하고 죽음의 길을 택한 랍비 아키바가 있습니다. 성경 공부는 우리에게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내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입니까? 돈, 가족, 명예, 친구, 신념보다 성경을 공부하고 주일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왜 사는가? 자식들에게 무엇을 남겨줄 것인가? 우리가 이에 대한 대답은 성경을 공부하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악한 자여 의인의 집을 엿보지 말며 그가 쉬는 처소를 헐지 말지니라.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의인이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의인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랑하는 자입니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과 은혜와 능력이 부어집니다. 그래서 넘어질 때마다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지혜, 사랑, 은혜, 능력 등’ 모든 좋은 것을 부어주시기 때문에 계속 일어설 수 있습니다. 최후 승리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실천하기를 힘쓰기를 바랍니다. 영육간 자녀들에게 본을 보이며 가르치고, 선행을 힘쓸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을 굳건하게 하시고 교회를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보호하시며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지혜로운 자들, 충성스러운 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져갑니다.
말씀 | 잠언 22:17-24:34
요절 | 잠언 24:13,14
송이 꿀 지혜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든 613가지 율법을 딱 한 말씀으로 요약하셨습니다. 무엇이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은 30가지 잠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30가지 잠언도 한마디로 줄인다면 ‘송이 꿀 지혜’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할 때에 어떤 유익이 있는지, 이 말씀을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하고 자녀는 부모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가정 교회를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이 주는 유익(22:17-21). 17-21절을 보십시오. “너는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 내 지식에 마음을 둘지어다. 이것을 네 속에 보존하며 네 입술 위에 함께 있게 함이 아름다우니라. 내가 네게 여호와를 의뢰하게 하려 하여 이것을 오늘 특별히 네게 알게 하였노니 내가 모략과 지식의 아름다운 것을 너를 위해 기록하여 네가 진리의 확실한 말씀을 깨닫게 하며 또 너를 보내는 자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회답하게 하려 함이 아니냐.”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두어 보존하며 가르치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지혜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순종해서 살아가는 일은 그 자체로 즐겁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노래하는 삶이 됩니다. 반면에 지혜자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악인의 길을 가는 것은 추하고, 슬프고, 더럽고, 원망 불평하는 삶이 됩니다.
지혜자의 말씀을 배우고 그에 따라서 사는 것이 여호와를 의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를 경외한다는 것은 그가 주신 말씀을 붙잡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말씀이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주고, 인도하셔서 가장 지혜로운 삶, 복된 삶을 살게 합니다.
오늘날은 말세중의 말세입니다. 갈수록 진리는 상대화되었고, 무엇이 죄인지, 무엇이 참된 길인지 알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질서가 무너지고 성정체성의 혼돈과 문란함, 점점 마약의 해악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사람들이 미쳐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진리의 확실한 말씀이 필요합니다. 잠언 말씀은 이런 시대에 분명한 가르침을 줍니다.
진리의 확실한 말씀을 깨닫고,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는 부모님이나 목자님,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확실히 회답하게 될 것입니다. 즉 자기 정체성이 분명해질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이것이 분명해집니다. 그럴 때 그의 삶은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고 영향력이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둘째,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들에게 주시는 말씀(23:12-25). 12-14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훈계에 착심하며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려면 먼저 부모가 훈계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자녀가 잘 했을 때 칭찬을 해 주어야 하고 잘못했을 때는 원칙을 가지고 훈계를 해야 합니다. 즉 훈계하기 전에 이런 경우는 혼난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 주어야 자녀가 인격에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잘못한 것을 혼내더라도 인격은 존중해야 합니다. 진정한 훈계는 잘못된 행동을 저지르는 자녀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행동 자체를 수정하는 것에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훈계하기 전에 자녀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는 것도 인격존중의 방법입니다. 자녀를 훈계할 때 엄마와 아빠가 불일치를 보이면 훈계는 효과를 보기 어렵습니다. 효과적인 훈계를 위해서는 부모가 서로 자녀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사전 대화가 필요하고 후에는 누가 이 문제를 훈계할 것인가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녀가 성장해 갈수록 훈계는 더욱 인격적이어야 합니다. 자녀가 마음에 감동을 받을 때 진정한 훈계가 될 수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부모님이 주는 훈계가 따분한 소리나 잔소리가 되지 않도록 하려면 자신이 은혜를 받고 변화된 간증을 하면 좋습니다. 함께 소감을 나누는 것은 가장 좋은 교육입니다. 우리가 감사제목과 기도제목을 나누면서 가정 예배를 드릴 때에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가정 안에서 일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본을 보이는 것만큼 좋은 교육이 없습니다. 가정은 최상의 학교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자녀의 마음을 얻고, 귀를 기울이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자녀로서 부모를 즐겁게 하는 길은 무엇입니까(15-18, 22-25)? 15-18절을 보십시오. “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지혜로운 자녀를 둔 부모는 마음이 즐겁습니다. 부모들은 대개 자녀들이 세상에서 돈을 많이 벌고 권세를 잡고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들에게 진정으로 원해야 하는 것은 정직한 자녀들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나 내면의 진실성을 추구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여도 그의 인격이 문제가 있을 때, 각종 비리와 부정이나 타락에 연루되어 삶이 무너지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워싱턴이 왜 위대한 미국의 국부가 되었습니까? 정직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도끼를 시험한다고 아버지가 아끼는 나무를 찍었다가 누가 이런 짓을 했느냐고 했을 때 워싱턴은 정직하게 자기의 잘못을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정직성이 부모를 기쁘게 했고 결국은 한 나라의 신임을 받는 초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정직한 것은 양심이 살아 있고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자녀들에게 장래가 있고 그의 소망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십니다.
22-25절을 보십시오. 또 자녀들이 다 같이 읽겠습니다.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말미암아 즐거울 것이니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장수를 약속하셨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자녀 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집니다. 부모의 말씀을 통해서 자녀들은 가치관이 형성이 됩니다. 부모님의 삶이 그들의 삶의 모델이 됩니다. 진리는 어떤 댓가를 지불해서라도 사야 할 만큼 귀한 것이고 결코 팔 수 없는 것입니다. 진리가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24절 말씀에서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라”고 했는데 배운 진리를 판다는 것은 성경 진리의 말씀을 세상적인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 결혼관과 바꾸어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셋째, 어떤 가정을 이룰 것인가?(24장). 24:1-4을 보십시오.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그들의 마음은 강포를 품고 그들의 입술은 재앙을 말함이니라.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하게 되며 또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은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은 부러워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말씀입니다. 잠언은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며, 함께 있으려고도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For) 그들의 ‘마음은 강포’를 품고, 그들의 ‘입술은 재앙’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새번역을 보면 “그들의 마음은 폭력을 꾀하고 그들의 입술은 남을 해칠 말만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악인들의 형통이 폭력과 거짓 협박의 결과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집, 어떤 가정을 세워야 할까요?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하게 됩니다(3).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명철로 인생의 집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지어야 합니다. 일시적이 아닌 영원한 집을 지어야 합니다. 또 집안의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됩니다. 이 지식은 하나님과 진리에 대한 지식입니다. 가정은 성전입니다. 가정과 교회를 합친 것이 가정교회입니다. 가정은 성전의 원형입니다. 성막이 세워지기 전에는 집안에서 장자에 의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AD 70년 제 2 성전이 무너지고 유대인들은 성전인 가정으로 돌아갔습니다. 회당이나 학교는 가정을 보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초대교회는 가정교회였습니다. 예수님은 누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냐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의 삶의 패턴은 토라를 공부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겼습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고 묻는 것처럼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먼저냐 실천하는 것이 먼저냐는 질문은 오래 되었습니다. 성경은 공부가 먼저이고 실천이 다음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성경을 배우고 자녀들에게 본을 보이고 가르침으로 가정교회를 세웁니다. 가정에서 배운대로 실제 선행을 행함으로 가르칩니다. 부모의 섬기는 삶, 구제하는 삶, 다른 형제들을 사랑하고 돕는 삶을 통해서 자녀들은 배웁니다. 우리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더 깊이 성경을 공부함으로 선순환 구조를 그리며 성장합니다.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쇠망사>에서 위대한 문명이 쇠퇴하고 망하는 다섯 가지 이유를 들었습니다. 1) 인간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정의 존엄함이 무너진다. 2) 세금이 늘어난다. 국고를 사용해 공짜 음식을 주고, 대중을 위한 서커스를 열어준다. 3) 쾌락을 미친 듯이 추구한다. 스포츠 경기는 해마다 흥미를 더하고, 더 잔인해지고 부도덕해진다. 4) 개인의 책임감 상실이라는 내부의 큰 적은 못보고, 바깥의 적을 막기 위해 군사력을 키운다. 5) 종교가 쇠퇴한다. 종교가 형식으로 전락하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가정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2023년 1인 가구비율이 35.5%입니다. 2050년이 되면 41.2%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혼을 해서 가정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역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집을 잘 세운다는 것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입니다. 5-7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 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 지혜는 너무 높아서 미련한 자가 미치지 못할 것이므로 그는 성문에서 입을 열지 못하느니라.” 새 번역은 5절을 “지혜가 있는 사람은 힘이 센 사람보다 더 강하고, 지식이 있는 사람은 기운이 센 사람보다 더 강하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전쟁은 이러한 지혜와 지식이 출중한 자들이 모여서 전략으로 싸워야 합니다. 전쟁은 전략가들이 많아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환난 날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낙담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강함을 보여야 합니다(10). 미약함은 부주의와 게으름, 비겁함, 두려움 등에서 옵니다. 지혜 훈련을 받은 제자는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생명을 살리고 회복하는 일에 쓰임을 받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웃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들을 도와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의 자녀들이 잘못된 결정으로 고난당한 자를 외면한다면, 주님도 그런 상황에서 그 사람을 외면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디서 지혜를 얻을 것입니까? 13,14절입니다. 자녀들이 다 같이 읽겠습니다.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 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고대사회에서는 설탕이나 시럽이 없기 때문에 가장 단 것으로 꿀이 있었습니다. 꿀 중에서 송이 꿀은 최고의 꿀입니다. 송이 꿀은 벌집에서 덩어리째 방금 딴 꿀을 말합니다. 덩어리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송이 꿀을 상상해 보십시오. 송이 꿀은 가장 신선하고 순전하며 달콤합니다. 이런 꿀은 치료 효과가 있어서 영육간 힘을 주고, 소생시킵니다. 이 송이 꿀을 먹는 것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하고, 그 결과 참된 지혜자가 되는 것입니다. 14절은 “꿀을 먹는 것”과 “지혜를 얻는 것”을 비교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지혜는 송이 꿀처럼 달고 먹으면 힘이 납니다. 어리석음을 치료하고 분별력을 갖게 합니다. 이 때문에 지혜를 얻는 자는 정녕 장래가 있고, 소망이 끊어지지 않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예루살렘 멸망 당시 랍비 요하난 벤자카이는 로마 총사령관을 찾아가서 “다른 모든 것은 파괴해도 좋으니 토라를 공부할 수 있는 작은 학교 하나만 남겨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 성전과 모든 것이 파괴되었지만 토라 학교만은 보존되었습니다. 이후에 토라를 공부하지 말라는 황제의 명령을 공개적으로 거부하고 죽음의 길을 택한 랍비 아키바가 있습니다. 성경 공부는 우리에게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내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입니까? 돈, 가족, 명예, 친구, 신념보다 성경을 공부하고 주일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왜 사는가? 자식들에게 무엇을 남겨줄 것인가? 우리가 이에 대한 대답은 성경을 공부하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악한 자여 의인의 집을 엿보지 말며 그가 쉬는 처소를 헐지 말지니라.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의인이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의인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랑하는 자입니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과 은혜와 능력이 부어집니다. 그래서 넘어질 때마다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지혜, 사랑, 은혜, 능력 등’ 모든 좋은 것을 부어주시기 때문에 계속 일어설 수 있습니다. 최후 승리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실천하기를 힘쓰기를 바랍니다. 영육간 자녀들에게 본을 보이며 가르치고, 선행을 힘쓸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을 굳건하게 하시고 교회를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보호하시며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지혜로운 자들, 충성스러운 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져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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