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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024년 잠9강(18,18-19장)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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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22회 작성일 24-11-10 13:37

본문

2024년 잠언 9강
말씀 | 잠언 18장,19장
요절 | 잠언 18:10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18장 10, 11, 19절에는 견고한 망대(10), 견고한 성(11,19)이라는 단어가 반복되어 나옵니다. 여러분은 어려울 때 누구에게로 또 어디로 피합니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재물을 견고한 성으로 여기죠? 재물이 많으면 안전하고 행복할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능력을 의지하고 어떤 사람은 가족이나, 친구, 인맥, 정부를 의지합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누구일까요? 

  첫째, 좀 어렵더라도 교회 공동체에 머무는 것이 안전합니다(18:1-12). 1절을 보십시오. “무리에게서 스스로 갈라지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로서 공동체 속에서 살아갑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습니다. 안전하고 복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새 번역을 보면 이렇습니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욕심만 채우려 하고, 건전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을 적대시한다(1).” 사람과의 관계를 맺기가 어렵기 때문에 공동체에서 인간 갈등을 많이 겪습니다. 사실 갈등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하십니다. 신앙의 성숙은 나와 함께 있는 가족 또는 요회 구성원과 부딪치고 깨지면서 자기 발견을 하며 연단을 받는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여러 연단 가운데서 투쟁하며 용서를 배우고 사랑을 연습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참고 견디는 가운데 나의 모난 부분이 깎이고 서로 맞추어가면서 견고한 건물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하기보다 건전한 판단력을 갖고자 힘써야 합니다. 온갖 참 지혜 즉 건강한 판단은 공동체 속에 있으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지독히 이기적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의사만 고집하는 미련함을 반복합니다. 그러다가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죄를 범하게 되고 그런 사람에게 멸시와 수치가 임합니다(2).

  6-8절을 보십시오.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의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미련한 자의 입술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의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남의 말 하는 것은 뒤에서 험담하고 흉보는 것입니다. 별식은 너무 맛이 좋아 게걸스럽게 삼키는 음식입니다.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 소화되어 뼈와 살, 인격과 성품이 됩니다. 험담은 즐거워 보입니다. 맛있어서 폭풍흡입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인격에 치명적인 해를 끼칩니다. 사탄은 그런 사람과 말 속에서 힘있게 역사합니다. 그래서 공동체를 무너지게 만듭니다.

  9절을 보십시오. “자기의 일을 게을리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의 형제니라.” 원문에 ‘하물며’로 시작해 자기 일을 게을리 하는 자를 미련한 입을 가진 자보다 더 큰 해악으로 설명합니다.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기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필연적으로 게으름으로 이어져 멸망의 길을 갑니다. 딤전 5:12 “또 그들은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하여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니니” 살후3:11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자기 집을 세우려면 부지런히 자기의 일을 해야 합니다. 오늘날 자녀들이 가장 존경하는 부모님은 누구일까요? 외모가 아름답고 멋있는 부모, 능력과 재력이 있는 부모일까요? 진정으로 자녀들이 존경하는 부모는 맡은 바 자기 일을 충실히 감당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해 내는 분입니다. 그렇죠? 자기의 일을 게을리하는 사람은 집을 무너뜨리게 됩니다. 자녀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없습니다. 가난해 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게으름입니다. 게으름은 육체적인 것만이 아니라 배우지 않는 정신적인 것도 포함합니다. 건전한 판단력을 갖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망하는 길로 부지런히 갈 수가 있습니다.
 
  둘째,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가 의지할 견고한 망대이십니다. 앞에서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공동체를 회복하고 견고하게 세울 수 있을까요? 10-1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 같이 여기느니라.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입니다. 이름은 그의 존재를 나타냅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여호와의 성품과 언행이 담겨있습니다. 망대는 성읍을 적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방어하기 위해 만든 높고 견고한 탑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강한 방어 능력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전능하시고 지혜가 끝이 없습니다. 그는 공의와 진리를 기뻐하십니다. 그는 자신을 경외하는 공동체를 불의와 어리석음으로부터 지켜줍니다. 하나님 안으로 달려가면 안전합니다. 그 안으로 달려가는 것은 절박하게 피난처로 달려가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예기치 못한 어려움에 부딪칠 때가 많습니다. 이때 의지할 사람을 찾아보다가 절망하고 두려움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이때가 하나님을 체험할 때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간절히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우리를 온전히 보호해 주는 견고한 성은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견고한 망대요 견고한 성이 되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더욱 붙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윗이 블레셋 아기스 왕에게 피해 있을 때에 이스라엘과의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그가 주둔해 있던 시글락이 아말렉 사람들의 침략으로 성읍이 불타고 남아 있던 자들을 다 사로잡아갔습니다.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때 다윗은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습니다(삼상 30:6). 그는 하나님께 묻고 아말렉을 추격하여 모든 것을 도로 찾아왔습니다. 하나님께 피할 때에 그는 안전함을 얻었습니다.

  부자는 자기 재물을 견고한 성과 높은 성벽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재물을 안전한 보호처로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착각입니다. 돈이 많으면 안전할 것이란 생각은 재물의 사기(deceitfulness of wealth: 막4:19)입니다. 재물의 거짓에 속는 것은 마음의 교만이며 멸망의 선봉입니다. 겸손은 여호와를 향해 달려가고 교만은 재물을 향해 달려갑니다.

  셋째,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다툼과 갈등을 해결하는 지혜(13-24). 18장에 ‘다툼’이라는 단어가 세 번 나옵니다(6,18,19). 다툼은 공동체를 무너뜨리지만 지혜는 다툼을 해결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경청이 곧 겸손입니다. 우리가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말을 존중해서 듣는 경청이 필요합니다. 경청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말이 내 생각과 달라도 끝까지 참고 들어주고 그 의견을 존중합니다. 경청은 마음을 다해서 듣는 것입니다. 이는 상대방에 대한 최상의 존경을 표하는 행동입니다. 자기의 말에 귀 기울이며 공감하는 사람을 만나면 큰 기쁨과 위로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게 경청하는 사람은 그 만남에서 지혜를 얻습니다.

  16절은 “사람의 선물은 그의 길을 넓게 하며 또 존귀한 자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선물은 공동체를 부드럽게 하는 기름과 같습니다. 선물은 사람의 마음을 열고 길을 넓게 합니다. 마음이 담긴 선물을 주는 것을 통해서 공동체에 사랑이 풍성해지고 사랑이 흐릅니다. 하나님께서도 선물을 주기를 좋아하십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선물을 받는 기쁨을 누리게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17절을 보면 갈등과 다툼의 때 먼저 말하는 사람의 말만 듣지 말고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야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먼저 온 사람의 말이 바른 것 같지만 이웃이 와서 그 말이 옳은지 그른지 밝히게 됩니다. 우리는 섣부른 판단을 조심해야 합니다. 여러 사람의 말을 충분히 듣고 판단해야 합니다.

  18,19절을 보십시오. “제비 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하게 하느니라.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 다툼을 그치기 위해서 제비뽑기는 하나님께 해결을 맡기는 신앙적 행동입니다. 사람의 판단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재판관으로 모셔 공정한 판단을 의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엽게 한 형제는 견고한 성과 같아서 관계를 회복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형제를 노엽게 하지 않고 화목을 이루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노엽게 한 형제의 마음을 여는 것은 산성 문빗장처럼 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갈등은 칡과 등나무를 의미합니다. 등나무는 시계방향으로 , 칡은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는 방향이 서로 반대입니다. 그러니 칡나무와 등나무가 함께 있으면 그 사이에 있는 나무가 먼저 말라 죽고 그 다음에 둘 다 말라 죽습니다. 그러므로 갈등을 잘 해결해 나가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갈등을 해결해야 할까요? 갈등 해결은 복잡할 수 있지만 효과적인 갈등 해결 방법은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경청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과 요구를 솔직하고 명확하게 표현합니다. 비난하는 대신 “나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합니다. 감정이 격해지기 쉬운 상황일수록 침착함을 유지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접근합니다. 갈등이 발생한 이유와 각자의 목표를 명확히 하고, 갈등 해결을 위한 공통의 목표를 설정합니다. 서로가 원하는 결과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여 서로가 인정할 수 있는 해결점을 찾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논의합니다. 한쪽의 주장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타협점을 찾습니다. 모든 당사자가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자신의 입장만 고집하지 않고, 다른 의견도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한 태도를 유지합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수용적인 태도를 가지려 노력합니다. 갈등 해결은 쉬운 과정이 아닐 수 있지만,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사람은 말을 먹고 삽니다. 나쁜 말을 먹으면 잘 못 살게 되고, 좋은 말을 먹으면 잘 살게 됩니다. 내가 한 말이 나의 양식이 됩니다. 아름다운 말을 하면 그 말로 내가 배부르고 행복합니다. 험한 말을 하면 내가 주리고 상하게 됩니다. 입술이 양식 창고의 문입니다. 내 속에 지혜, 지식을 쌓으면 입술을 통해 아름다운 열매가 나오고 그 열매를 내가 먹습니다.

  넷째, 아내와 친구(22-24).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은 자입니다. 아내를 만나는 것은 공동체의 기본 단위인 가정의 시작입니다. 아내를 만나는 것은 지혜를 얻는 것처럼 찾아 소유하는 것입니다. 아내는 여호와의 선물입니다. 19:14은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아내를 여호와의 복으로 얻는 것은 감정과 세상 가치관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믿음의 결혼을 하는 것입니다.

  공동체에서 아내 다음으로 친구가 중요합니다.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나와 마음이 통하고 하나가 되는 친구는 정말 보석과 같은 존재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 나를 위하여 희생하는 사람이 참 친구입니다. 이런 친구 한 사람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입니다. 예수님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하셨고, 너희가 내 말대로 행하면 나의 친구라 말씀하셨습니다(요15:13,14). 예수님을 따르느라 세상 친구를 많이 잃기도 하지만 나를 위해 목숨 버리신 예수님을 친구로 얻은 사람이 진정 복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여 나와 마음이 통하는 믿음의 친구, 나를 사랑하는 진실한 친구를 얻은 점에서 우리는 얼마나 큰 복을 받았는지요? 예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여 친밀함으로 굳게 달라붙은 믿음의 친구가 있는 공동체를 이룬다면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일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친구를 얻을 수 있을까요? 19:4입니다. “재물은 많은 친구를 더하게 하나 가난한즉 친구가 끊어지느니라.” 예수님은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친구를 얻기 위해서 재물을 쓰는 것은 지혜로운 것입니다. 19장에는 부와 가난에 대한 말씀이 많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정직하고 의롭게 살기보다 풍족하게 누리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구할 것은 흠없이 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19:23은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느니라.” 27절은 NIV에는 “가르침 받기를 그치면 지식의 말씀에서 떠나게 된다”로 번역하였습니다. 훈계 받는 삶을 살지 않을 때 진리의 말씀을 떠날 수밖에 없고, 그런 삶은 정의를 업신여기는 망령된 증인, 죄악을 삼키는 악인의 입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 위해 심판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 다툼을 피하고 의사소통을 원활히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함으로 경청하고 공감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내가 어려울 때 의지할 수 있는 가정과 친구, 교회 공동체를 잘 세워야 합니다. 무엇보다 견고한 망대요 견고한 성이 되시는 하나님께 피할 때 안전합니다. 깊은 물과 같이 시원하고 솟구쳐 내는 지혜의 샘을 통해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가정과 친구, 교회 공동체를 가꾸어 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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