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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024년 잠 6강(12,13장) 권고를 듣는 지혜로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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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01회 작성일 24-10-20 13:56

본문

2024년 잠언 6강
말씀 | 잠언 12장,13장
요절 | 잠언 12:15

권고를 듣는 지혜로운 자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오늘 말씀의 제목이 “권고를 듣는 지혜로운 자”인데 다른 말로 하면 “경청”입니다. 지혜는 잘 듣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지혜는 일상생활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언어생활과 경제생활에서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의 삶이 대조가 됩니다.

  첫째, 일상생활에서 구체화되는 지혜. 1절을 보십시오.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인간에 대한 대 전제를 보여줍니다. 인간은 타락한 죄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래서 가만히 두면 온갖 죄가 그 사람을 삼키고 결국은 괴물이 되게 만듭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훈계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그 말씀 앞에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훈계를 받으면 거부반응을 보입니다. 지적받고 책망을 듣는 것이 누구에게나 기분 좋은 일은 아닙니다. 훈계 받기를 싫어하고 반발하고 공격하면 그에게는 아무도 더 이상 훈계를 해주지 않습니다. 훈련을 받기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습니다. 짐승은 이성이 없는 멍청이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훈계를 싫어한다고 해서 방치하면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훈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훈계하기 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섬기는 가운데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본인이 자기 발견을 하도록 실패의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변화가 필요함을 절실히 깨닫고 도움을 청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시간과 돈과 열정을 드려 변화받기를 소원할 때에 훈계와 훈련을 받을 준비가 된 것입니다. 지식을 가르치고 훈련을 잘 받아들이면 인격과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13:24을 보십시오.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여기서 매는 훈계를 말합니다. 매는 목자의 지팡이인데 다른 길로 갈 때 톡 쳐 주는데 사용했습니다. 아이들을 교훈한다고 때리다 보면 반항심, 반발심만 키우기 쉽습니다. 자녀나 양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근면 성실하게 훈련을 해야 합니다. 훈련이 힘들기 때문에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훈련의 의미를 알 때 고난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훈련의 한계를 깨닫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과 용서를 체험하면서 사나운 마음이 줄어들고 성숙해집니다. 타락한 본성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과 목자의 지혜와 사랑으로 훈련을 받을 때 사람다워지는 것입니다.

  “선인은 여호와께 은총을 받으려니와 악을 꾀하는 자는 정죄하심을 받으리라(2).” 선인은 선한 사람, 좋은 사람입니다. 훈계를 잘 받을 때 선하고 좋은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은총을 받습니다. 반면 본성대로 살며 악을 꾀하는 자는 정죄하심을 받게 됩니다. 악을 꾀하는 자는 굳게 서지 못합니다. 악한 자들은 한 순간에 무너집니다. 그렇지 않은 것 같아도 언젠가는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악인의 삶이란 당장 화려하고 힘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쉽게 흔들리고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믿음으로 의롭게 된 의인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약속의 말씀에, 예수님께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의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4).” ‘어진’이라는 말은 원어로 ‘유능함, 강함’을 뜻하지만, 여자에게 사용될 때에는 ‘덕이 있는’이라는 의미입니다. 잠31:10의 ‘현숙한’도 이 단어입니다. 31장에 나오는 이런 아내는 남편의 면류관입니다. 남편의 위상을 높여주고 자랑거리가 됩니다. 반면 ‘욕을 끼치는’(disgraceful) 여인은 남편에게 뼈가 썩는 것과 같은 고통이 됩니다. 암적인 존재가 됩니다. 당장 외모에만 끌려 이런 여자를 아내로 얻었다가는 평생 고통하며 불행하게 됩니다. 어떤 여인을 아내로 얻을 것인가가 남자의 인생의 행불행을 좌우하듯이 어떤 남편을 얻을 것인가가 여자의 일생을 좌우합니다. 그러므로 남자나 여자나 덕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덕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를 통해서 훈계를 받고 선하게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지혜로운 자의 언어생활. 우리는 지난 주에 이어 말의 중요성에 대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5-7절을 보십시오. “의인의 생각은 정직하여도 악인의 도모는 속임이니라. 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거니와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하느니라. 악인은 엎드러져서 소멸되려니와 의인의 집은 서 있으리라.” 의인의 생각, 악인의 도모에서 악인의 말, 정직한 자의 입으로 발전하고 결과가 나옵니다. 악인은 소멸되나 의인의 집은 서 있습니다. 무슨 생각과 말을 하느냐가 의인과 악인의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말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죽어가는 사람을 말로 구원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2:36,37).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에 들여보내기 전에 정탐꾼들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정탐하고 돌아와서 열 명은 부정적인 보고를 하여 백성들을 낙담시켰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옷을 찢으며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밤새도록 울며 하나님을 대적하자 그들 중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음 세대만이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 후에 맹세하셨습니다. 민수기 14:28에 보면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을 하나님께서 다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말대로 행하겠다고 맹세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말을 할 것인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 11:22,23).” 여기서 누구든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말이 가지고 있는 권세를 믿으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로보니게 여인이 더러운 귀신들린 딸을 고쳐 주기를 구했을 때에 거절하는 것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거절에 여인은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막 7:29)” 말씀하시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말미암아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 사람은 입의 열매로 말미암아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이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 18,19절도 보십시오.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 사람은 입술의 열매로 말미암아 복을 받습니다. ‘복록에족하며’는 좋은 것을 넉넉하게 얻는다는 뜻입니다. 지혜로운 자의 말은 양약과 같습니다. 말로 받은 상처를 말로 치료해 줍니다.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됩니다. 우리는 대부분 말로 먹고 삽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말은 힘이 없지만, 행동도 말로부터 시작이 되기 때문에 말이 중요합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미련한 자는 자기가 잘 하는 줄로 알고 고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미련한 자는 쉽게 분노하고 분노를 조절하지를 못합니다. 열등감이나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으면 훈계를 모욕으로 듣기 쉽습니다. 그것이 감정싸움으로 번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분노가 조절되지 않는다면 내 안에 어린 시절 치료되지 않은 상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상처가 건드려지기 때문에 성숙한 사람이 아니라 그 아이가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처 받은 그 내면의 아이를 다독여야 합니다. 상처 받은 그 상황에서 예수님의 용서와 지지와 격려를 받아야 합니다. 내면의 치료가 이루어지면 분노조절이 가능해지게 됩니다.

  13:1~6은 말과 그 열매에 대한 내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좋은 말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못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좋은 말은 내보내고 나쁜 말은 못나가게 막는 노력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말이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내 마음과 생각이 변화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윗이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141:3) 기도했듯이 우리도 기도하면서 말을 하면 좋겠습니다.

  셋째, 지혜로운 자의 경제 생활. 9-12절은 경제생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천히 여김을 받을지라도 종을 부리는 자는 스스로 높은 체하고도 음식이 핍절한 자보다 나으니라. 의인은 자기의 가축의 생명을 돌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거니와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느니라. 악인은 불의의 이익을 탐하나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하느니라.” 업신여김을 받더라도 실속을 차리는 사람이, 가진 것이 없으면서 허세를 부리는 사람보다 낫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보느냐에 좌우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내실 있는 삶을 살아갑니다. 직업에 귀천이 없습니다. 반면 사람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하고자 애쓰지만 실제로는 가진 것이나 이룬 것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허세보다 겸손과 실속이 있는 것이 지혜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허황된 꿈이나 환상을 따릅니다. 수고와 고생을 싫어하고 쉽고 빨리 한 몫 잡고자 하는 헛된 꿈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도박 등을 하지 않더라도 시간과 물질을 허비하며 쪽박 차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묵묵하고 성실하게 자기의 일을 하는 사람은 먹을 것이 넉넉함을 누리게 됩니다.

  의인은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의 생명까지도 돌보는 긍휼을 가진 사람입니다. 돌본다는 말은 안다는 뜻입니다. 리브가는 늙은 아브라함의 종이 물을 달라고 요청했을 때 그의 낙타에게도 물을 주었습니다. 리브가는 천만인의 어미가 되었습니다. 진정한 의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가축까지도 사랑합니다. 온유한 사람이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24-28절은 부지런한 자와 게으른 자의 삶을 비교합니다.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하게 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 의인은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되나 악인의 소행은 자신을 미혹하느니라.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 공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 13:4을 보면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경제적으로 풍요한 삶을 사는 길은 부지런히 손을 놀려 일을 하는 것입니다.  부지런한 자는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됩니다. 좋은 목자가 됩니다.

  반대로 게으른 자는 남의 부림을 받고, 잡을 수 있는 것도 사냥하지 않습니다. ‘사냥한다’는 단어는 ‘굽다, 익히다’라는 뜻입니다. ‘사냥한 것도 굽지 않는다’는 뜻도 됩니다. 게으른 자에게는 아무리 좋은 사냥감이 있어도, 잡은 것이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 잡은 것도 요리를 해서 먹지 않습니다. 그러니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부지런히 일하면 먹고 사는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게으른 자에게는 눈 앞에 좋은 것을 갖다놓아 줘도, 좋은 기회가 주어져도 소용이 없습니다. 게으름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13장 7-11절을 보십시오. “스스로 부한 체하여도 아무 것도 없는 자가 있고 스스로 가난한 체하여도 재물이 많은 자가 있느니라. 사람의 재물이 자기 생명의 속전일 수 있으나 가난한 자는 협박을 받을 일이 없느니라.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느니라.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 부자인체 하지만 아무 것도 없는 자가 있고 가난한 체하지만 재물이 많은 자가 있습니다. 옷차림이나 외모만 가지고 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열등감 때문에 아무 것도 없으면서 부자인체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반대로 재물이 많으면서도 가난한 체 하며 연기를 하는 것도 옳지 못 합니다. 재물이 많다고 부자인체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가난한 체 하면서 부자로서의 마땅한 역할을 하지 않고, 손해보지 않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옳지 못한 악한 일입니다. 재물이 많다면 나의 가진 것을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2-19절은 소원을 성취하는 비결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마음이 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소원이 이루어지면 살맛이 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그가 마음에 소원하는 것까지도 이루어주십니다. 소원이 이루어지는 길은 스승의 가르침을 잘 따르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지 말고 계명을 두렵고 떨림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지혜자의 교훈을 잘 듣고 분별력을 가지고 따르는 것입니다. 또 지식으로 행하는 것입니다(16). 올바른 판단에 근거하여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소원을 성취하면 마음에 달아도 미련한 자는 악에서 떠나기를 싫어합니다(19).

  잠언은 한 개인의 지혜로운 삶에 대해서 다루고 있지만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20-25절은 죄인에게는 재앙이 따르고 의인에게는 보상이 따른다고 말씀합니다. 의인에게는 선한 보응이 있습니다. 그 산업을 자자손손에게 끼칩니다. 밭을 경작함으로 양식이 많아집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 열심히 새로운 밭을 일구어 양식을 많이 얻는다 하더라도, 정의가 없으면 모든 가산을 다 빼앗기게 된다’는 뜻입니다. 가난은 단지 게으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난한 자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사회적인 불의로 인해 더욱 가난해지기만 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특히 권위주의적인 국가, 독재국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이런 구조적인 악과 불의를 타파하고 개선하여 정의로운 사회를 세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번에 노벨경제학상을 탄 아제모울루, 존슨, 로빈슨 교수들은 국가의 번영과 쇠퇴에 대해 책을 썼습니다. 그 예가 남북한이었습니다. 비슷한 지리적 환경과 문화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각각 자유시장경제와 계획경제, 민주주의와 독재라는 제도를 선택한 결과 경제 발전의 격차가 10배나 크게 벌어졌습니다. 자본주의는 시간이 지날수록 부의 양극화가 심화됩니다. 성경은 토지공개념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안식년 희년 제도를 명하셔서 7년마다 안식년이 되면 모든 빚을 면제하도록 했고, 50년 마다 돌아오는 희년에는 땅도 돌려받고 종의 신분에서도 벗어나게 되는 제도를 명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회보장제도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언어생활과 경제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 배웠습니다. 우리 모두 지혜를 배움으로 정직하고 진실한 언어생활을 하고 삶이 풍요로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더 나아가 이 나라에 하나님의 인애와 정의가 강 같이 흐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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