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024년 잠2강(2-4장) 지혜가 금, 은, 진주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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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잠언 2강
말씀 | 잠언 2-4장
요절 | 잠언 3:13,14
지혜가 금, 은, 진주보다 낫다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오늘 말씀은 지혜를 찾고 구하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지만 사람 편에서도 연구하고 간절히 찾아야 얻을 수 있습니다. 지혜를 얻는 것은 금, 은, 진주를 얻는 것보다 낫습니다. 우리가 돈을 벌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일을 해야 하는 것처럼 지혜와 깨달음을 얻는 과정도 이런 연구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럼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합니까? 기도하는 것도 필요하고, 경험도 필요하고, 다른 사람에게서 듣는 것도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성경 본문을 관찰, 해석, 적용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지혜와 깨달음을 얻는 것은 돈을 얻는 것보다 어떤 점에서 좋을까요?
첫째,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5). “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마음에 간직해야 합니다. 간직한다는 것은 감추는 것으로서 숙성시키는 과정입니다. 또 지혜를 깨달을 수 있도록 소리를 높여 기도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약1:5). 우리는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정보를 검색하고 시간과 돈을 투자합니다. 이처럼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 돈을 벌고자 하는 자세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지혜를 찾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지혜는 사고방식이며, 마음의 상태입니다. 이 마음의 상태는 가장 적절하게 “여호와 경외”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은 지혜를 발견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돈을 버는 것처럼 열심히 지혜를 찾게 되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구원을 경험하고 치료를 경험하고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이것보다 더 중요하며 복되며 가장 가치 있는 지식은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졌고 돈을 가졌다 해도 하나님을 모르고 살다 죽는다면 참으로 불행하고 불쌍한 인생입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옵니다(약1:17).
6-8절을 보십시오.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대저 그는 정의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의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지혜를 찾고 구하지만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정직한 자에게는 분별하는 지혜, 곤경에서 벗어나는 내적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삶의 온갖 문제들을 해결하며 극복해나갈 수 있는지, 올곧은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해 하나님이 지혜와 깨달음을 주십니다. 세상에는 얼마나 거짓된 것들, 불의함, 잘못된 길의 유혹들이 많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들은 이런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온전한 길, 정의의 길을 가고자 하는 경건한 성도의 ‘방패’가 되어주고 그 길을 ‘보호’해주고 ‘보전’해주십니다.
“그런즉 네가 공의와 정의와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을 즐겁게 할 것이요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 내리라(10-12).” 지혜는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또한 선과 악이 교묘하게 얽혀 있는 이 세상에서 분별력을 갖게 합니다. 지혜는 그를 따르는 자를 보호하며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낼 것입니다. 거짓되고 악한 것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분별력과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데 하나님이 주신 창조 목적과 깨달음이 이런 유혹을 분별하고 벗어나게 합니다.
16-20절은 지혜가 우리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부정한 여자에게서 구원해 줍니다. 바람을 피우고 유혹하는 여자에게 넘어가면 죽음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런 불륜에 빠져 가정이 파탄 나고 불행해지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혜의 말씀을 찾는 것이 이런 악한 길에서 우리를 지켜줍니다. 지혜가 여자로 의인화 된 것처럼 음녀도 어리석음이 의인화된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음녀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잊어버린 간음하는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그의 남편’을 ‘스승’에 대한 은유로 보아 스승의 가르침을 떠난 자로 볼 수도 있습니다. 세상은 유혹하는 음녀처럼 달콤하게 우리를 유혹합니다.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유혹합니다. 나의 힘으로는 그 유혹을 이겨내기 힘들지만 말씀을 듣고 간직하고 찾기에 힘쓸 때 그 지혜가 우리를 이것으로부터 보호하고 구해 줍니다.
더 나아가 선하고 의로운 길을 가게 합니다. 왜 우리는 의인의 길을 가야 할까요?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고’ ‘뽑히게’ 될 것이고, 올곧은 자, 온전한 자는 땅에 ‘거하며’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악인은 잠시 흥할지 모르나 결국 이 세상에서 끊어지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의인의 삶은 영원히 거하며 남아있게 될 것입니다.
둘째, 창조 원리를 따라 사는 삶입니다. 3:1-4절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인자와 진리는 한 쌍입니다. 인자는 하나님의 사랑인데, 인자와 진리가 삶의 원칙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인자와 진리를 마음 판에 새기고, 은총과 좋은 식견을 따라서 살게 되면 오래 살되 평강을 더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16-18절을 보십시오.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이니라.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지혜와 깨달음을 얻은 자는 에덴 동산의 중앙에 있던 생명나무를 얻게 됩니다. 지혜와 깨달음으로 힘을 내는 사람은 부귀와 장수와 평강과 즐거움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내 명철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6-8절을 보십시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인정하다’는 히브리어 ‘야다(알다)’에 어근을 갖고 있는데 ‘인격적이고 친숙한 관계를 맺는다’는 뜻입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내 분별에 기대지 말고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자 힘쓰면 하나님께서 나의 행동거지를 올바르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 악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지도하사 평탄하게 하십니다. 또한 이것이 내 몸에 양약이 되어 골수를 윤택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9,10절을 보십시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은 자발적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십일조와 첫 열매를 드리는 것입니다. 돈보다, 내 모든 수입보다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물질생활에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아니 쓰고도 남아서 다른 사람을 구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부모는 사랑하는 자녀를 나무라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에 훈련하십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확성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난, 시련을 당할 때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낙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여기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며 나의 잘못을 깊이 회개하고 돌이킬 때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히12:11)
지혜와 깨달음은 그로 힘을 내는 자에게 생명나무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에덴 동산에 있던 생명나무에 접근하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지혜와 깨달음을 얻는 자는 생명나무에 접근하여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19, 2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에 터를 놓으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견고히 세우셨고 그의 지식으로 깊은 바다를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지혜 명철 지식으로 땅과 하늘과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창조는 우연이나 무작위로 된 것이 아니라 질서 정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지혜로 창조를 완성하셨습니다. 창조세계에서 목격되는 무질서는 원래의 창조의 결과가 아니라 타락의 결과입니다. 지혜가 은금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만물을 만드신 것이 지혜로 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우주 만물에는 창조주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과 지혜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것을 발견하고 깨달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지 발견하고 바르고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1세대 AI 전문가인 이호수 박사는 서울대와 한국과학기술원을 거쳐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에서 AI로 박사학위를 받고 IBM 왓슨 연구소에 재직할 때였습니다. 당시 연구소에는 세계 최정상급 AI 전문가 30여명이 모여 ‘인공 컴퓨터 눈’을 연구했습니다. 사람 눈이 물체를 인식하는 것에 버금가는 컴퓨터 눈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수천만 달러를 투자해 20여년간 공들인 연구 결과를 확인한 이 박사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이날 귀가해 마주한 한 살배기 둘째 딸의 사물 인식 수준은 연구소의 인공 눈과는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불현 듯 회의가 찾아왔습니다. ‘인도 이스라엘 등 전세계 수재들이 수십년간 매달려도 아기의 생물학적 기능이 훨씬 우월하다. 인간의 시청각과 인지, 소화 능력, 심장 운동 기능 등은 도대체 어떻게 주어진 것일까?’ 그는 인간은 만들 수 없는, 인체의 정교한 구조와 기능이 오랜 세월 동안 우연히 만들어졌다는 기존 관념에 의심이 생겼습니다. 기술의 한계에서 인간 능력의 위대함을 엿본 그는 인간의 근원을 파고들다가 신적 존재의 가능성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 예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신론자로 살다가 35세 때에 회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이 내 눈 앞에서 떠나지 말게 해야 합니다. 완전한 지혜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대로 사는 것이요, 근신은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것이 내 영혼의 생명이 되며 내 목에 장식이 됩니다. 내가 내 길을 평안히 행하겠고 내 발이 거치지 아니하겠으며 내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누운즉 단잠을 자게 될 것입니다. 돈이 많다고 평안한 것이 아닙니다. 악인의 마음에는 평강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붙들 때 하나님이 나의 의지가 되시고,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신다는 믿음 가운데 평안히 행하고 두려움 없이 단 잠을 자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심으로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내게 가진 것이 있으면서도 주기 싫은 마음에 이웃에게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다’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원수라 하더라도 곤경에 빠졌을 때 도와주라고 하셨고(출23:4,5), 추수할 때 고아 과부 나그네를 위해 일부는 남겨두라 명령하셨습니다(신24:19). 예수님은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너희에게 안겨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눅6:38).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될 때 그도 사람들에게 긍휼히 여김을 받고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게 됩니다. 선을 베푸는 삶을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귀히 여기시고 영원한 영광을 기업으로 받게 되는 삶입니다.
셋째, 지혜와 분별이 제일이니 내가 가진 모든 것으로 지혜와 분별을 얻어야 합니다. 아버지도 아들이었을 때에 할아버지에게 훈계를 들었습니다. 할머니가 보기에 아버지도 유약한 외아들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어기지 말라.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으라, 그가 너를 높여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모든 소유로 분별을 획득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전해줄 것은 유산이 아니라 지혜와 분별이 제일이니 지혜와 분별을 획득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버리지 말라, 사랑하라, 높이라, 품으라’ 이런 단어들은 결혼과 연관된 동사들입니다. 아내를 귀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아내를 무시하다가는 그대로 돌아오게 됩니다. 아내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고 높이고 품을 때 그대로 돌아오게 됩니다. 지혜 여인을 얻고, 버리지 말고, 사랑하고, 높이고, 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고 하셨습니다(삼상2:30). 예수님은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셨습니다. 지혜와 분별을 친구로, 지혜와 분별을 아내로 얻고 사랑하고 가슴에 품고 높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0-19절은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이 대조되어 반복됩니다. 의인의 길은 지혜로운 길, 정직한 길입니다(11,12). 이 길로 다닐 때 걸음이 곤고하지 않겠고 달려갈 때에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훈계를 받고 굳게 잡아 놓치지 말고 지켜야 합니다. 연단 가운데 힘을 내야 합니다.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혜와 분별을 유지해야 합니다. 지혜와 분별이 나의 생명입니다(13). 내 생명의 연수가 많아질 것입니다(10).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게 됩니다(18).
반면 악인의 길은 사악한 자의 길(14)입니다. 악인의 길을 가는 사람은 악을 행하지 못하면 자지 못하고,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않고, 불의의 떡을 먹으며 강포의 술을 마시는 자들입니다(16,17).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합니다(19).
결국 삶에는 두 개의 길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갈 때 곳곳에 악인의 길들이 있어서 우리를 유혹하고 이끌고자 합니다. 어찌하든 악인의 길을 피해야 합니다. 잠깐 실수로 들어갔을지라도 빨리 돌이켜 떠나야 합니다(15). 지혜로운 길 정직한 길, 의인의 길을 가는 방법은 훈계를 굳게 잡고 놓치지 않고 지키는 것입니다. 여기에 내 생명이 달려 있습니다.
20-27은 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줍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지키라’는 유지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유지하고 지켜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돈을 지키기 위해서는 눈에 불을 켜고 살지만, 더욱 정말 열심히 지켜야 할 것은 나의 마음입니다. 바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사는냐 죽느냐가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길을 가게 되느냐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마음을 지키는 길은 위에서 말한 대로 말씀에 주의하고 귀를 기울이고 눈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마음 속에 간직하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귀(20), 눈과 눈꺼풀(21,25), 마음(23), 입과 입술(24), 발(26)’ 등 신체 부위들을 총동원하여 설명합니다. 온 몸과 마음을 드려 노력을 해야 합니다. 특히 언어생활을 개선해야 합니다. 구부러진 말을 입에서 버리고 비뚤어진 말을 입술에서 멀리해야 합니다(24). 말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지만 말하는 자신의 내면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덕이 되는 말, 은혜가 되는 말을 해야 합니다. 거칠고 더러운 말은 입에 담지도 말아야 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9).
오늘 우리는 지혜와 깨달음, 지혜와 분별이 얼마나 유익한 것인지 배웠습니다. 돈이 최고의 가치인 시대입니다. 그러나 금 은 진주 그 어떤 것보다도 지혜와 깨달음, 지혜와 분별을 획득해야 합니다. 지혜와 깨달음, 지혜와 분별을 얻기 위해서 귀를 기울이고 찾고 간직하고 사랑하고 순종함으로 생명의 길을 가는 인생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귀한 잠언 말씀을 통해서 돈보다 귀한 지혜를 풍성히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잠언 2-4장
요절 | 잠언 3:13,14
지혜가 금, 은, 진주보다 낫다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오늘 말씀은 지혜를 찾고 구하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지만 사람 편에서도 연구하고 간절히 찾아야 얻을 수 있습니다. 지혜를 얻는 것은 금, 은, 진주를 얻는 것보다 낫습니다. 우리가 돈을 벌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일을 해야 하는 것처럼 지혜와 깨달음을 얻는 과정도 이런 연구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럼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합니까? 기도하는 것도 필요하고, 경험도 필요하고, 다른 사람에게서 듣는 것도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성경 본문을 관찰, 해석, 적용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지혜와 깨달음을 얻는 것은 돈을 얻는 것보다 어떤 점에서 좋을까요?
첫째,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5). “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마음에 간직해야 합니다. 간직한다는 것은 감추는 것으로서 숙성시키는 과정입니다. 또 지혜를 깨달을 수 있도록 소리를 높여 기도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약1:5). 우리는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정보를 검색하고 시간과 돈을 투자합니다. 이처럼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 돈을 벌고자 하는 자세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지혜를 찾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지혜는 사고방식이며, 마음의 상태입니다. 이 마음의 상태는 가장 적절하게 “여호와 경외”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은 지혜를 발견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돈을 버는 것처럼 열심히 지혜를 찾게 되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구원을 경험하고 치료를 경험하고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이것보다 더 중요하며 복되며 가장 가치 있는 지식은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졌고 돈을 가졌다 해도 하나님을 모르고 살다 죽는다면 참으로 불행하고 불쌍한 인생입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옵니다(약1:17).
6-8절을 보십시오.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대저 그는 정의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의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지혜를 찾고 구하지만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정직한 자에게는 분별하는 지혜, 곤경에서 벗어나는 내적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삶의 온갖 문제들을 해결하며 극복해나갈 수 있는지, 올곧은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해 하나님이 지혜와 깨달음을 주십니다. 세상에는 얼마나 거짓된 것들, 불의함, 잘못된 길의 유혹들이 많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들은 이런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온전한 길, 정의의 길을 가고자 하는 경건한 성도의 ‘방패’가 되어주고 그 길을 ‘보호’해주고 ‘보전’해주십니다.
“그런즉 네가 공의와 정의와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을 즐겁게 할 것이요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 내리라(10-12).” 지혜는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또한 선과 악이 교묘하게 얽혀 있는 이 세상에서 분별력을 갖게 합니다. 지혜는 그를 따르는 자를 보호하며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낼 것입니다. 거짓되고 악한 것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분별력과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데 하나님이 주신 창조 목적과 깨달음이 이런 유혹을 분별하고 벗어나게 합니다.
16-20절은 지혜가 우리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부정한 여자에게서 구원해 줍니다. 바람을 피우고 유혹하는 여자에게 넘어가면 죽음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런 불륜에 빠져 가정이 파탄 나고 불행해지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혜의 말씀을 찾는 것이 이런 악한 길에서 우리를 지켜줍니다. 지혜가 여자로 의인화 된 것처럼 음녀도 어리석음이 의인화된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음녀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잊어버린 간음하는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그의 남편’을 ‘스승’에 대한 은유로 보아 스승의 가르침을 떠난 자로 볼 수도 있습니다. 세상은 유혹하는 음녀처럼 달콤하게 우리를 유혹합니다.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유혹합니다. 나의 힘으로는 그 유혹을 이겨내기 힘들지만 말씀을 듣고 간직하고 찾기에 힘쓸 때 그 지혜가 우리를 이것으로부터 보호하고 구해 줍니다.
더 나아가 선하고 의로운 길을 가게 합니다. 왜 우리는 의인의 길을 가야 할까요?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고’ ‘뽑히게’ 될 것이고, 올곧은 자, 온전한 자는 땅에 ‘거하며’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악인은 잠시 흥할지 모르나 결국 이 세상에서 끊어지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의인의 삶은 영원히 거하며 남아있게 될 것입니다.
둘째, 창조 원리를 따라 사는 삶입니다. 3:1-4절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인자와 진리는 한 쌍입니다. 인자는 하나님의 사랑인데, 인자와 진리가 삶의 원칙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인자와 진리를 마음 판에 새기고, 은총과 좋은 식견을 따라서 살게 되면 오래 살되 평강을 더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16-18절을 보십시오.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이니라.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지혜와 깨달음을 얻은 자는 에덴 동산의 중앙에 있던 생명나무를 얻게 됩니다. 지혜와 깨달음으로 힘을 내는 사람은 부귀와 장수와 평강과 즐거움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내 명철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6-8절을 보십시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인정하다’는 히브리어 ‘야다(알다)’에 어근을 갖고 있는데 ‘인격적이고 친숙한 관계를 맺는다’는 뜻입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내 분별에 기대지 말고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자 힘쓰면 하나님께서 나의 행동거지를 올바르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 악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지도하사 평탄하게 하십니다. 또한 이것이 내 몸에 양약이 되어 골수를 윤택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9,10절을 보십시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은 자발적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십일조와 첫 열매를 드리는 것입니다. 돈보다, 내 모든 수입보다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물질생활에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아니 쓰고도 남아서 다른 사람을 구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부모는 사랑하는 자녀를 나무라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에 훈련하십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확성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난, 시련을 당할 때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낙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여기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며 나의 잘못을 깊이 회개하고 돌이킬 때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히12:11)
지혜와 깨달음은 그로 힘을 내는 자에게 생명나무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에덴 동산에 있던 생명나무에 접근하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지혜와 깨달음을 얻는 자는 생명나무에 접근하여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19, 20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에 터를 놓으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견고히 세우셨고 그의 지식으로 깊은 바다를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지혜 명철 지식으로 땅과 하늘과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창조는 우연이나 무작위로 된 것이 아니라 질서 정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지혜로 창조를 완성하셨습니다. 창조세계에서 목격되는 무질서는 원래의 창조의 결과가 아니라 타락의 결과입니다. 지혜가 은금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만물을 만드신 것이 지혜로 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우주 만물에는 창조주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과 지혜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것을 발견하고 깨달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지 발견하고 바르고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1세대 AI 전문가인 이호수 박사는 서울대와 한국과학기술원을 거쳐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에서 AI로 박사학위를 받고 IBM 왓슨 연구소에 재직할 때였습니다. 당시 연구소에는 세계 최정상급 AI 전문가 30여명이 모여 ‘인공 컴퓨터 눈’을 연구했습니다. 사람 눈이 물체를 인식하는 것에 버금가는 컴퓨터 눈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수천만 달러를 투자해 20여년간 공들인 연구 결과를 확인한 이 박사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이날 귀가해 마주한 한 살배기 둘째 딸의 사물 인식 수준은 연구소의 인공 눈과는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불현 듯 회의가 찾아왔습니다. ‘인도 이스라엘 등 전세계 수재들이 수십년간 매달려도 아기의 생물학적 기능이 훨씬 우월하다. 인간의 시청각과 인지, 소화 능력, 심장 운동 기능 등은 도대체 어떻게 주어진 것일까?’ 그는 인간은 만들 수 없는, 인체의 정교한 구조와 기능이 오랜 세월 동안 우연히 만들어졌다는 기존 관념에 의심이 생겼습니다. 기술의 한계에서 인간 능력의 위대함을 엿본 그는 인간의 근원을 파고들다가 신적 존재의 가능성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 예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신론자로 살다가 35세 때에 회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이 내 눈 앞에서 떠나지 말게 해야 합니다. 완전한 지혜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대로 사는 것이요, 근신은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것이 내 영혼의 생명이 되며 내 목에 장식이 됩니다. 내가 내 길을 평안히 행하겠고 내 발이 거치지 아니하겠으며 내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누운즉 단잠을 자게 될 것입니다. 돈이 많다고 평안한 것이 아닙니다. 악인의 마음에는 평강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붙들 때 하나님이 나의 의지가 되시고,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신다는 믿음 가운데 평안히 행하고 두려움 없이 단 잠을 자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심으로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내게 가진 것이 있으면서도 주기 싫은 마음에 이웃에게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다’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원수라 하더라도 곤경에 빠졌을 때 도와주라고 하셨고(출23:4,5), 추수할 때 고아 과부 나그네를 위해 일부는 남겨두라 명령하셨습니다(신24:19). 예수님은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너희에게 안겨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눅6:38).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될 때 그도 사람들에게 긍휼히 여김을 받고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게 됩니다. 선을 베푸는 삶을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귀히 여기시고 영원한 영광을 기업으로 받게 되는 삶입니다.
셋째, 지혜와 분별이 제일이니 내가 가진 모든 것으로 지혜와 분별을 얻어야 합니다. 아버지도 아들이었을 때에 할아버지에게 훈계를 들었습니다. 할머니가 보기에 아버지도 유약한 외아들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어기지 말라.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으라, 그가 너를 높여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모든 소유로 분별을 획득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전해줄 것은 유산이 아니라 지혜와 분별이 제일이니 지혜와 분별을 획득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버리지 말라, 사랑하라, 높이라, 품으라’ 이런 단어들은 결혼과 연관된 동사들입니다. 아내를 귀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아내를 무시하다가는 그대로 돌아오게 됩니다. 아내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고 높이고 품을 때 그대로 돌아오게 됩니다. 지혜 여인을 얻고, 버리지 말고, 사랑하고, 높이고, 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고 하셨습니다(삼상2:30). 예수님은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셨습니다. 지혜와 분별을 친구로, 지혜와 분별을 아내로 얻고 사랑하고 가슴에 품고 높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0-19절은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이 대조되어 반복됩니다. 의인의 길은 지혜로운 길, 정직한 길입니다(11,12). 이 길로 다닐 때 걸음이 곤고하지 않겠고 달려갈 때에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훈계를 받고 굳게 잡아 놓치지 말고 지켜야 합니다. 연단 가운데 힘을 내야 합니다.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혜와 분별을 유지해야 합니다. 지혜와 분별이 나의 생명입니다(13). 내 생명의 연수가 많아질 것입니다(10). 의인의 길은 돋는 햇살 같아서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게 됩니다(18).
반면 악인의 길은 사악한 자의 길(14)입니다. 악인의 길을 가는 사람은 악을 행하지 못하면 자지 못하고,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않고, 불의의 떡을 먹으며 강포의 술을 마시는 자들입니다(16,17).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걸려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합니다(19).
결국 삶에는 두 개의 길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갈 때 곳곳에 악인의 길들이 있어서 우리를 유혹하고 이끌고자 합니다. 어찌하든 악인의 길을 피해야 합니다. 잠깐 실수로 들어갔을지라도 빨리 돌이켜 떠나야 합니다(15). 지혜로운 길 정직한 길, 의인의 길을 가는 방법은 훈계를 굳게 잡고 놓치지 않고 지키는 것입니다. 여기에 내 생명이 달려 있습니다.
20-27은 바른 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줍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지키라’는 유지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유지하고 지켜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돈을 지키기 위해서는 눈에 불을 켜고 살지만, 더욱 정말 열심히 지켜야 할 것은 나의 마음입니다. 바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사는냐 죽느냐가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길을 가게 되느냐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마음을 지키는 길은 위에서 말한 대로 말씀에 주의하고 귀를 기울이고 눈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마음 속에 간직하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귀(20), 눈과 눈꺼풀(21,25), 마음(23), 입과 입술(24), 발(26)’ 등 신체 부위들을 총동원하여 설명합니다. 온 몸과 마음을 드려 노력을 해야 합니다. 특히 언어생활을 개선해야 합니다. 구부러진 말을 입에서 버리고 비뚤어진 말을 입술에서 멀리해야 합니다(24). 말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지만 말하는 자신의 내면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덕이 되는 말, 은혜가 되는 말을 해야 합니다. 거칠고 더러운 말은 입에 담지도 말아야 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9).
오늘 우리는 지혜와 깨달음, 지혜와 분별이 얼마나 유익한 것인지 배웠습니다. 돈이 최고의 가치인 시대입니다. 그러나 금 은 진주 그 어떤 것보다도 지혜와 깨달음, 지혜와 분별을 획득해야 합니다. 지혜와 깨달음, 지혜와 분별을 얻기 위해서 귀를 기울이고 찾고 간직하고 사랑하고 순종함으로 생명의 길을 가는 인생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귀한 잠언 말씀을 통해서 돈보다 귀한 지혜를 풍성히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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