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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2011년 성탄 1강(사 11:1-16)/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한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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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298회 작성일 11-12-18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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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성탄 1 강                                                       
말씀 이사야 11:1-16
요절 이사야 11:1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한 싹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기 전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에 의해서 예언되었습니다. 그 예언이 성취된 것을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예수님이 진정한 메시아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메시아는 어떤 분이신지, 어떻게 통치하시는지, 그로 인한 평화와 그 나라의 모습이 어떠한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시간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잘 배우고 온 마음으로 경배하며 그를 본받아야 할 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자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BC 739- 681년에 대략 50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사역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입니다. 이새의 줄기란 다윗의 가문을 말하는데 그 후손 가운데서 한 싹이 나온다고 했고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다윗의 가지”로  하지 않고 이새의 가지라고 부른 것은 미천하고 연약한 곳에서부터 메시아가 등장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또 마태복음 2:23절에는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고 했습니다. 가지란 말은 히브리어로 네체르인데, 이 자음 문자가 ‘나사렛’이란 신약의 지명과 유사해서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는 예언이 본문에서 유추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메시아는 눅 2:4-5절에 다윗의 후손 요셉이 마리아와 약혼한 상태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베들레헴이라는 다윗의 동네에서 태어났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새의 다른 줄기에서 나왔다고 말함으로 다윗 왕국이 육적인 뿌리이지만 메시아는 영적인 나라를 이룸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이새의 줄기에서 ‘줄기’는 the stump, 곧 ‘그루터기’를 말합니다. 나무가 잘려버려진 밑동을 말합니다. ‘뿌리’는 어떠합니까? 이는 흙속에 묻혀있어 형체도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날 당시 다윗의 집과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이어 바벨론, 헬라, 로마가 차례로 짓밟아 잘려진 밑동이요 뿌리처럼 되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장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그루터기에서 한 싹을 나게 하시고, 그 뿌리에서 한 가지를 내심으로 소망스러운 새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그루터기에서 나온 싹, 뿌리에서 나온 한 가지는 불사조와 같이 살아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상징합니다. 사탄의 훼방과 인간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역사는 망할 수 없으며, 언제나 새롭게 그루터기에서 싹이, 뿌리에서 가지가 돋듯이 새 역사를 창조합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한 싹은 연약해 보입니다. 그러나 싹은 생명력이 왕성합니다. 싹은 새롭습니다. 메시아 왕국은 미천한 출발을 하지만 영광스럽게 됩니다. 메시야는 한 아기로 이 땅에 오십니다. 그는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십니다. 그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십니다. 그 후에 부활하십니다. 그는 일생 열 두 제자를 양성하시고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십니다. 기독교는 작고 연약하게 시작했지만 세상을 덮을 만큼 성장했습니다. 우리는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입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심으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심으로 모든 무릎이 그 앞에 꿇어 영광스럽게 되었음을 봅니다.

  우리가 이번 성탄에 예수님 안에서 이런 희망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루터기 속에서 싹을 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에 남아 있는 그루터기들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어린 양들을 보내심으로 그들 안에 믿음의 싹을 티우십니다. 이렇게 새 역사가 시작되어 장차 그 싹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여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할 비전을 봅니다. 우리는 작고 보잘 것 없는 싹이라도 소중하게 여겨 잘 키워야 합니다. 내 안에서도 메시아의 싹을 보고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평범하다고, 작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위에 성령이 임하사 일하시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2절을 보십시오.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성령이 임하심으로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십니다(눅 4:18).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은 어떻게 메시아의 사역에 함께 하십니까?

  성령은 지혜를 주십니다. 지혜는 본질을 꿰뚫고 선악을 분별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충만하셔서 메시아로서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잡고자 여러 가지 시험을 했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은 여자를 끌고 와서 율법에는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고 하였는데 선생은 어찌하시려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심으로 그들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고 여자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로마 돈을 가져와서는 우리가 세금을 바쳐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묻는 그들에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총명의 영이십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신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총명은 이해력을 말합니다. 총명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습니다. 총명은 하나님께서 주시는데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함으로 얻습니다. 또 고난 속에서 배웁니다. 총명은 어떤 일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다르게 생각함으로 얻습니다. 총명한 자는 사랑이 풍성하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합니다(빌 1:9,10). 또 하나님의 비밀을 압니다. 판단력이 있습니다. 공교한 일을 할 수 있고 나라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총명이 있는 사람은 쉽게 배웁니다.

  예수님은 모략과 재능의 영으로 충만하셨습니다. 모략은 전쟁에서 쓰는 용어입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전쟁을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전략을 가지고 계십니다. 재능은 전략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권세 있게 전파하시고 제자 양성을 통해서 세계 만민을 구원하십니다. 성령의 권능이 임하자 두려움 많던 제자들이 담대하게 땅 끝까지 나아가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성령의 권능이 임하면 모든 권위를 조롱하는 세대 가운데서도 구원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모략을 영어로는 카운슬링이라고 했습니다. 즉 상담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와 밤에 상담하셨습니다. 당시 최고의 지성인이었던 니고데모와 거듭남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셨고 그에게 거듭나는 길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받아들이지 않을 때는 바람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시고 때로는 책망도 하시면서 십자가의 도를 알려 주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과는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대낮에 우물 가에서 상담해 주셨습니다. 목마름으로 고통하는 여인에게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수를 얻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잠언 15:22절에서는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무너지고 지략이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가정을 경영하고, 요회를 경영하고, 교회를 경영하고, 회사를 잘 경영하려면 동역자들 사이에 많은 의논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여호와 하나님께 상담치 아니하는 일에는 화가 있습니다(사 30:1,2). 우리가 새 해를 경영하기 위해서 먼저 많이 의논하되 특히 하나님과 상담하기를 기도합니다.

  성령은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십니다. 지식의 근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지식이 많아질수록 사람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지식을 참되게 쌓은 사람은 배울수록 고개를 숙이고 겸손해 집니다. 배울수록 자신이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압니다. 많이 배울수록 많이 모른다는 것을 그 만큼 더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많이 배울수록 여호와를 경외하는 데서 깊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목적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에는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예수님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개 돈 버는 것, 스포츠, 텔레비전의 오락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즐깁니다. 여행을 즐거워하기도 합니다. 권력을 소유하는 것, 성취나 업적, 자아 만족으로 인해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는 일은 삶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입니다. 삶 속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는 사람은 경건한 삶에서 오는 능력을 행사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는 사람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는 사람은 변화를 체험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하여 자신이 죽고 새 사람이 사는 것을 체험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는 사람은 날마다 자기가 죽고 부활의 능력으로 사는 것을 체험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는 사람은 인간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그를 감당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는 사람은 사람과 화목하게 지냅니다. 그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공의를 행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는 사람은 담대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는 사람은 믿음의 능력을 체험하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이런 즐거움을 깊이 누리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인간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존재목적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운데 기쁨을 맛봅니다. 경건한 삶 속에서 즐거움을 누립니다.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누리는 기쁨, 정결함 속에서 시원함을 누립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으로 인해서 기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예수님은 어떻게 메시아의 사역을 감당하십니까? 그는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습니다. 가난한 자, 겸손한 자들은 억울한 일을 당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메시아는 공의와 정직으로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그는 진리의 말씀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심판하십니다.

  예수님이 다스리는 세계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6-9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리와 어린 양, 표범과 어린 염소, 사자와 송아지, 곰과 암소, 독사와 젖 먹는 아이는 약육강식의 관계입니다.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에서 죽고 죽이는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먹이사슬로 인해서 약한 짐승들은 해를 받고 상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메시아가 다스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면 은혜와 사랑의 법이 다스리게 됩니다. 강한 자가 약자를 돌보는 사회가 됩니다. 피조물들이 지금은 탄식하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몸이 구속받을 날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메시아의 나라가 완성되면 죄로 인한 적대감이 사라지고 참된 평화가 임하게 됩니다.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때에 이루어집니다. 이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나라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통치를 받을 때 우리 안에 미움과 적대감이 사라집니다. 사납고 난폭한 사람이 양과 암소처럼 부드러워집니다. 항상 으르렁거리며 싸우고 싸워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이 화목한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됩니다. 원수 같은 사람들이 서로 장난치고 노는 아름답고 행복한 관계로 회복이 됩니다. 예수님을 영접할 때 이 땅에서 이런 회복과 평화를 맛볼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과 만유 회복의 날 아름다운 평화가 완성이 될 것입니다. 그날 세상의 분열과 갈등과 다툼이 완전하게 사라지고 영원한 평화가 임할 것입니다. 국제 분쟁도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메시아의 통치가 세상의 참된 희망입니다.

  우리는 정권 말기에 새로운 희망을 걸고 정권 교체를 이루지만 바뀐 정권도 말기가 되면 실망을 안겨 줍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이 부패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연약함이 통치 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인간의 연약함과 부패로 인해서 세상 나라는 영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메시아는 은혜와 진리가 조화되어 있고 죽음을 정복한 분이시기에 영원한 나라를 이루십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메시아는 만민의 기치로 서게 됩니다. 기치란 깃발을 말합니다. 그의 깃발 아래 열방이 그에게 돌아옵니다. 세계 만민이 그에게 돌아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화목하게 됩니다. 그 날에 주께서 다시 그의 손을 펴사 그의 남은 백성을 세계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그때에 에브라임의 질투는 없어지고 유다를 괴롭게 하던 자들은 끊어지며 에브라임은 유다를 질투하지 아니하며 유다는 에브라임을 괴롭게 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진 이스라엘은 분열과 반목의 역사를 거듭했습니다. 특히 에브라임의 시기심이 심각했고, 분열은 서로에게 큰 고통을 주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에브라임과 유다의 화해는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하여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메시아가 공동체의 분열과 갈등과 고통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심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모든 공동체의 분열, 시기심 문제가 심각합니다. 한미 FTA로 인해서 야당과 여당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남한과 북한의 갈등은 여전합니다. 그런데 메시아 예수님만이 완전한 화해와 일치, 사랑과 조화를 이루어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다 같이 믿는 장로교 안에 분열이 있습니다. 우리는 갈등과 분열이 어떻게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는지 의문을 갖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그의 통치를 받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 사이에도 갈등이 있습니다. 물론 갈등이 더 큰 선을 위한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갈등을 힘들어하면 역사발전이 없습니다. 이런 갈등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면 참된 평화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장차 예수님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만방이 그에게 돌아와 구원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세계 선교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도 선교사님들과 성령의 역사로 인해서 하나님 나라가 힘있게 전파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국가 간에 부족 간에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인간 내면에 있는 싸우는 정욕으로 인해서 다툼과 전쟁이 일어나지만 예수님의 피로 인해 죄가 씻겨질 때 나와 나 자신, 나와 이웃, 나와 하나님 사이에 화목하게 되는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14-16절은 하나 된 이스라엘이 얻을 승리의 모습을 말해줍니다. 과거 이스라엘은 블레셋에게 침략을 많이 당했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내려 앉아 정복합니다. 동방 백성들에게도 침탈을 많이 당했으나 이제 그들을 노략합니다. 에돔, 모압, 암몬은 대대로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외세들입니다. 그런데 메시아의 나라가 임하게 되면 도리어 그들을 손 봐 주고 복종시킵니다. 애굽의 바다와 강을 말리고 건너가 정복하게 하십니다. 앗수르로부터 남은 백성이 돌아올 큰 길을 내십니다. 이런 승리의 모습들은 메시아를 통해 온 세상을 복음으로 정복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비전입니다.

  우리나라도 과거 외세의 침략으로 고통을 많이 받았는데, 이제는 복음을 들고 세계로 나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계 선교 앞에 장애물들을 하나 하나 제거해 주심으로 큰 길을 내십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 민족이 얼마나 영화롭게 되었습니까? 학자들은 우리나라가 앞으로 미국보다 많은 선교사 파송 1위 국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유를 예수님 안에서 통일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영접하고 이일에 헌신하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성탄 시즌에 남과 북이, 여와 야가, 적대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화목하고 평화를 깊이 누리도록 기도합니다.

  우리는 한 싹으로 나신 예수님이 세상 만민을 구원하셨음을 배웠습니다. 예수님께 성령의 권능이 임하여 갖가지 장애를 이기고 구원 역사를 섬기셨음을 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역사에 쓰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도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을 때 이곳에서부터 땅 끝까지 이르도록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어 구원과 제자 양성을 힘있게 섬길 수 있습니다. 그루터기에서 한 싹이 나게 하시고 구원 역사를 놀랍게 이루어 가시는 주님께 소망을 두며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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