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011년 이사야 6강(26,27장) 새 포도원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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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이사야서 제 6 강
말씀 이사야 26,27장
요절 이사야 27:6
새 포도원의 노래
“후일에는 야곱의 뿌리가 박히며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꽃이 필 것이라 그들이 그 결실로 지면을 채우리로다.”
우리는 2주 전에 5장에서 포도원의 노래를 공부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포도원인 이스라엘이 극상품 포도나무 대신에 들포도를 맺힘으로 멸망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이 지각이 없으므로 멸하십니다. 그러나 그 백성을 멸한 앗수르, 바벨론과 열방의 나라들을 심판하십니다. 그 내용이 13장부터 23장까지입니다. 24,25장은 하나님의 승리를 축하하는 잔치입니다. 오늘은 새 포도원의 노래로서 하나님께서 악을 멸하시고 포도원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친히 자신의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악되고 연약하지만 친히 구원 역사를 이루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믿고 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갑니다. 이 시간 주님께서 어떻게 구원 역사를 이루시는지 살펴보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심지가 견고한 자가 구원을 받습니다(26:1-10).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어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셔서 그 성 안으로 들어오는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신의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신의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나라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외교를 한다고 할지라도 신의가 있어야 다른 나라들이 따르고 존경합니다. 독일이 전후에 보여준 자세는 주변 나라들을 감동시켰습니다. 독일의 수상 빌리 브란트는 폴란드에 가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을 방문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신의를 보여준 독일은 유럽에서 영향력있는 지도국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의로운 나라로 자라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영적인 강국이 되어서 세계에서 영향력있는 제사장 나라로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주께서는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십니다. 심지가 견고하다는 것은 주님께 대한 신뢰가 확고부동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심지가 견고한 사람은 주를 신뢰합니다. 핍박이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신의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자기 유익을 주장하지 않고 중심을 지키고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시대가 어려우면 자기 유익을 좇는 기회주의자들이 많아집니다. 기회를 붙잡는 것은 좋으나 기회주의자가 되어서 하나님과 세상을 왔다갔다하면 양쪽에서 다 버림을 받습니다. 바벨론 포로 기간에도 믿음을 지킨 다니엘이나 느혜미야, 에스더, 스룹바벨 같은 사람들은 심지가 굳은 사람들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지만 자기 몸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자기 목숨이 위태로운 가운데서도 믿음의 지조를 지켰습니다.
복음 역사가 어렵고 손해보고 힘들 때 심지가 견고한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보일까요? 그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양이 있으나 없으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충성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축복해 주십니다. 심지가 견고한지 아니한지는 하루 아침에 평가할 수 없습니다. 오랜 기간을 통해 신앙의 검증을 받은 다음에 말할 수 있습니다. 상태가 좋으면 하나님을 찬양하다가 어려우면 불평하고 원망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는 훈련하시고 심지가 견고한 백성으로 빚어가십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불안해하기보다 한결 같이 주님을 신뢰함으로 평강을 누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바위와 같은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있으면 평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요14:27).”
4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반석은 집을 지을 때 기초가 되는 것처럼 우리가 인생의 집을 지을 때 하나님은 영원한 반석이 되십니다. 우리는 반석되신 하나님을 신뢰해야 환난 가운데서도 무너지거나 쓸려 내려가지 않고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이 변할지라도 변하지 않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반석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둘 때 낙담하지 않게 됩니다. 인생의 기초를 어디에 두느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기초가 흔들리면 모든 것이 다 흔들립니다. 정체성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다 무너집니다. 우리는 신자의 정체성, 목자의 정체성을 굳게 지키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석다윗 선교사님은 선교 역사를 섬기면서 많은 어려움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절대적으로 믿고 마음의 평강을 유지했습니다. 그의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축복하시고 지금도 유럽 선교 역사에 귀하게 쓰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높은 데에 거주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십니다.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곧 곤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입니다. 의인의 길은 정직합니다.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십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돈과 머리를 의지합니다. 죄는 사실 돈보다 가볍습니다. 죄를 가진 사람은 죄를 버리고 싶어하는데 돈 가진 사람은 버리지 않으려고 하잖습니까? 우리는 돈보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자기 머리보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 자기 영광을 추구합니다. 또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거침없이 세상을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갑자기 망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 정직하게 살 수 있고 정직한 의인의 길이 성공한 삶입니다. 의인도 환난을 당합니다. 그러나 환난은 위장된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환난 중에 어떤 자세를 갖습니까?
둘째, 하나님은 환난 중에 주를 앙모하는 자를 구원하십니다(26:11-21). 이사야는 심판 중에 길에서 주를 기다렸습니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 또 주를 기억하려고 주님을 사모합니다.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웁니다. 13-23장은 하나님께서 각 나라를 심판하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서 세계의 거민이 힘의 논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깨닫고 진정한 의를 배우게 됩니다. 환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반대로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정직한 자의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위엄을 돌아보지 아니합니다. 그들이 주님의 심판하시는 손이 높이 들릴지라도 보지 아니하지만, 백성을 위하시는 주의 열성을 보면 부끄러워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죄인이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오래 참으심과 관용을 깨닫고 죄의 길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십니다.
불은 주의 대적들을 살라버립니다. 반대로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평강을 베푸십니다. 주 외에 다른 주들이 우리를 관할하였지만 우리는 주만 의지하고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신사참배를 강요하던 시절에 주님을 의지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던 분들은 처음에는 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나중에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악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 사망하였은즉 일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이는 주께서 벌하여 그들을 멸하사 그들의 모든 기억을 없이하셨음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주께서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고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나이다 스스로 영광을 얻으시고 이 땅의 모든 경계를 확장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는 환난을 통하여 그 백성을 연단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더 크게 확장하셨습니다. 기독교는 핍박을 통해서 성숙해지고 자라납니다. 알짜배기와 쭉정이는 심판을 통해서 구별되어집니다. 여기 나오는 이 나라는 민족적 이스라엘을 넘어 믿음으로 사는 자를 가리킵니다. 신약에서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훈련하실 때에는 밑바닥까지 낮추시지만 때가 되면 영화롭게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환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연단하시고 정결하게 되었을 때에 교회를 확장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위를 살펴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시련을 당하고 어려움이 있지만 중심을 지키고 살 때에 심지가 굳어지고 믿음이 순수하게 되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환난 중에서 백성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1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그들이 환난 중에 주를 앙모하였사오며 주의 징벌이 그들에게 임할 때에 그들이 간절히 주께 기도하였나이다.” 환난 중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주를 앙모하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새벽을 깨워서 기도하고, 밤에도 모여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며 주님을 찾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귀히 쓰임을 받습니다. 고난을 받을 때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더욱 겸손해져서 주님의 의를 배우고 주님의 도우심을 체험합니다.
환난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환난을 통해서 그들이 깨달은 것은 자신들이 잉태하고 산고를 당하였지만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세계의 거민을 출산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고통을 해산이 임박한 여인의 고통으로 보았습니다. 산고는 죽음의 고통이지만 새 생명을 잉태하는 의미있는 고통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고통을 겪고 나서 얻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고통을 겪고 나서 무언가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도리어 피해의식만 생기고 재수가 없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허무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이런 고난을 통해서 세계의 거민을 출산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앗수르에 의해서 침략을 당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70년 동안 고생하다가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구원에 이르게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다니엘과 그 친구들을 통해서 바벨론에 알려졌지만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리시고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셨습니다. 21절은 앗수르에 대한 심판을 의미합니다. 이제 밀실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어 있어야 합니다. 이 밀실은 마음의 평온이나 침착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밀실로 들어가라는 말은 여호와의 심판이 임하는 동안 동요되거나 낙심하지 말고 견고한 믿음으로써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를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선지자 하박국도 유다에게 임할 재앙을 예언한 후에 안전한 곳에 가서 조용히 결과를 기다릴 것을 권고했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받는 동안 주님과 더욱 친밀한 교제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 고난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내면의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것들을 회개하고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환란을 통해서 연약한 것들이 강해지고 부족한 것들이 채워져야 합니다. 절제의 열매, 의의 열매, 평강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환난을 피하려고만 해서는 안 됩니다. 고난은 다 겪는 것입니다. 환난 중에 인내를 배우고 인내하면서 인격의 성숙을 이루어야 합니다. 환란을 통해서 긍휼의 사람, 사랑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사람은 쉽게 변화되지 않습니다.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라 생각하고 감당하면서 살아야 속이 편합니다. 내가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처럼 저 사람도 오직 은혜로 살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은혜로 살다가 은혜로 끝나는 것입니까? 우리는 환난에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강박관념을 갖기 쉽습니다. 그러나 환난 가운데서 내가 해야 할 것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앙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이 무엇입니까?
셋째, 하나님께서 친히 사탄을 멸하시고 그 백성을 구원하십니다(27장).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을 친 나라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탄을 멸하십니다. 27:1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그날’이란 악인들과 유다를 괴롭혔던 자들을 여호와가 심판하시는 날입니다. 이 여호와의 심판의 대상은 본문 1절에 ‘날랜 뱀 리워야단’,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 그리고 ‘바다에 있는 용’ 세 가지로 나타나 있습니다. 리워야단은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압제하던 앗수르와 바벨론과 애굽을 가리키는데(참조, 시 74:13 사 51:9 겔 29:3), 궁극적으로는 어둠의 세력을 지배하는 사탄을 가리킵니다(참조, 시 91:13 계 12:7, 9). 즉 하나님의 백성들을 압제하고 괴롭혔던 앗수르, 바벨론, 애굽에 대한 심판은 마지막 때에 사탄과 그 무리들에 대한 심판을 예표합니다. 요한계시록 20:10절을 보면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그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이 나옵니다. 거기는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 날에 하나님의 백성은 아름다운 포도원을 두고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포도원지기로서 때때로 물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이를 해치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는 포도원에 대하여 노함이 없습니다. 찔레와 가시가 그를 대적하여 싸우면 그것을 밟고 모아 불사르십니다. 5장에서도 포도원에 대한 노래가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회복의 노래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후일에는 야곱의 뿌리가 박히며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꽃이 필 것이라 그들이 그 결실로 지면을 채우리로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의 날에 남 유다와 북이스라엘을 회복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죄악 때문에 심판하셨던 백성들을 용서하시고 사탄을 제거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열매를 맺게 하시고 그 결실로 지면을 채우십니다. 그 결실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공의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의의 나라를 이루십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땅에 충만하며 공의가 하수같이 흐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정과 캠퍼스에서 나누어지고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되는 나라가 됩니다. 각 사람의 가슴 가슴에 그리스도의 피가 나누어지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 집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됩니다. 사람들은 크리스천을 존중하는 나라가 됩니다. 전세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기 위해서 이곳으로 몰려들 것입니다. 5월이 되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선교사님들과 그 제자들이 구름떼 같이 모여들 것입니다. 이 센터가 비좁아 이들을 영접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올 것입니다. 우리는 2011학번 학생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심기를 원합니다. 한국의 대학생들과 세계의 대학생들이 함께 모여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공유하며 헌신하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치시지만 원수들을 치는 것과 같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적당히 징계하십니다. 그는 우상 숭배에 찌든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는 흩으신 백성들을 다시 모으십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너희 이스라엘 자손들아 그 날에 여호와께서 창일하는 하수에서부터 애굽 시내에까지 과실을 떠는 것 같이 너희를 하나하나 모으시리라. 그 날에 큰 나팔을 불리니 앗수르 땅에서 멸망하는 자들과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들이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께 예배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세기 동안 세계를 방랑하다가 시온주의 운동을 통해서 1948년 5월 14일 국가를 창설하고 회복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이스라엘로 데려오기 위해서 데이빗 벤 구리온은 놀라운 일들을 많이 하였습니다. 1991년 5월 35대의 군용기와 민간 항공기는 36시간 동안 14500명의 이디오피아 유대인들을 이스라엘로 데려오는 일에 성공했습니다. 좌석 하나에 2-3명이 앉기도 했습니다. B747로 1222명을 수송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서 수많은 잃어버린 영혼들을 하나님 나라로 모으십니다. 하나님의 목표는 그 백성을 정결하게 하고 예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포도원으로 회복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포도원으로서 세계 거민을 낳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민족 속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공의가 충만하도록 말씀을 전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훈련을 잘 받고 사역을 감당하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 나라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현재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심지가 견고한 사람들이 되어 한결 같이 주님을 신뢰합시다. 환난의 때에 주님을 바라보며 기도에 힘을 씁시다. 주님께서 사탄의 세력을 멸하시고 구원 역사를 친히 이루실 줄 믿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를 소망합니다.
말씀 이사야 26,27장
요절 이사야 27:6
새 포도원의 노래
“후일에는 야곱의 뿌리가 박히며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꽃이 필 것이라 그들이 그 결실로 지면을 채우리로다.”
우리는 2주 전에 5장에서 포도원의 노래를 공부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포도원인 이스라엘이 극상품 포도나무 대신에 들포도를 맺힘으로 멸망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이 지각이 없으므로 멸하십니다. 그러나 그 백성을 멸한 앗수르, 바벨론과 열방의 나라들을 심판하십니다. 그 내용이 13장부터 23장까지입니다. 24,25장은 하나님의 승리를 축하하는 잔치입니다. 오늘은 새 포도원의 노래로서 하나님께서 악을 멸하시고 포도원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친히 자신의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악되고 연약하지만 친히 구원 역사를 이루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믿고 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갑니다. 이 시간 주님께서 어떻게 구원 역사를 이루시는지 살펴보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심지가 견고한 자가 구원을 받습니다(26:1-10).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어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셔서 그 성 안으로 들어오는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신의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신의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나라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외교를 한다고 할지라도 신의가 있어야 다른 나라들이 따르고 존경합니다. 독일이 전후에 보여준 자세는 주변 나라들을 감동시켰습니다. 독일의 수상 빌리 브란트는 폴란드에 가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을 방문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신의를 보여준 독일은 유럽에서 영향력있는 지도국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의로운 나라로 자라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영적인 강국이 되어서 세계에서 영향력있는 제사장 나라로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주께서는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십니다. 심지가 견고하다는 것은 주님께 대한 신뢰가 확고부동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심지가 견고한 사람은 주를 신뢰합니다. 핍박이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신의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자기 유익을 주장하지 않고 중심을 지키고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시대가 어려우면 자기 유익을 좇는 기회주의자들이 많아집니다. 기회를 붙잡는 것은 좋으나 기회주의자가 되어서 하나님과 세상을 왔다갔다하면 양쪽에서 다 버림을 받습니다. 바벨론 포로 기간에도 믿음을 지킨 다니엘이나 느혜미야, 에스더, 스룹바벨 같은 사람들은 심지가 굳은 사람들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지만 자기 몸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자기 목숨이 위태로운 가운데서도 믿음의 지조를 지켰습니다.
복음 역사가 어렵고 손해보고 힘들 때 심지가 견고한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보일까요? 그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양이 있으나 없으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충성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축복해 주십니다. 심지가 견고한지 아니한지는 하루 아침에 평가할 수 없습니다. 오랜 기간을 통해 신앙의 검증을 받은 다음에 말할 수 있습니다. 상태가 좋으면 하나님을 찬양하다가 어려우면 불평하고 원망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는 훈련하시고 심지가 견고한 백성으로 빚어가십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불안해하기보다 한결 같이 주님을 신뢰함으로 평강을 누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바위와 같은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있으면 평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요14:27).”
4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반석은 집을 지을 때 기초가 되는 것처럼 우리가 인생의 집을 지을 때 하나님은 영원한 반석이 되십니다. 우리는 반석되신 하나님을 신뢰해야 환난 가운데서도 무너지거나 쓸려 내려가지 않고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이 변할지라도 변하지 않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반석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둘 때 낙담하지 않게 됩니다. 인생의 기초를 어디에 두느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기초가 흔들리면 모든 것이 다 흔들립니다. 정체성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다 무너집니다. 우리는 신자의 정체성, 목자의 정체성을 굳게 지키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석다윗 선교사님은 선교 역사를 섬기면서 많은 어려움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절대적으로 믿고 마음의 평강을 유지했습니다. 그의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축복하시고 지금도 유럽 선교 역사에 귀하게 쓰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높은 데에 거주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십니다.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곧 곤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입니다. 의인의 길은 정직합니다.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십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돈과 머리를 의지합니다. 죄는 사실 돈보다 가볍습니다. 죄를 가진 사람은 죄를 버리고 싶어하는데 돈 가진 사람은 버리지 않으려고 하잖습니까? 우리는 돈보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자기 머리보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 자기 영광을 추구합니다. 또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거침없이 세상을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갑자기 망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 정직하게 살 수 있고 정직한 의인의 길이 성공한 삶입니다. 의인도 환난을 당합니다. 그러나 환난은 위장된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환난 중에 어떤 자세를 갖습니까?
둘째, 하나님은 환난 중에 주를 앙모하는 자를 구원하십니다(26:11-21). 이사야는 심판 중에 길에서 주를 기다렸습니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 또 주를 기억하려고 주님을 사모합니다.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웁니다. 13-23장은 하나님께서 각 나라를 심판하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서 세계의 거민이 힘의 논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깨닫고 진정한 의를 배우게 됩니다. 환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반대로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아니하며 정직한 자의 땅에서 불의를 행하고 여호와의 위엄을 돌아보지 아니합니다. 그들이 주님의 심판하시는 손이 높이 들릴지라도 보지 아니하지만, 백성을 위하시는 주의 열성을 보면 부끄러워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죄인이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오래 참으심과 관용을 깨닫고 죄의 길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십니다.
불은 주의 대적들을 살라버립니다. 반대로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평강을 베푸십니다. 주 외에 다른 주들이 우리를 관할하였지만 우리는 주만 의지하고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신사참배를 강요하던 시절에 주님을 의지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던 분들은 처음에는 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나중에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악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 사망하였은즉 일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이는 주께서 벌하여 그들을 멸하사 그들의 모든 기억을 없이하셨음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주께서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고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나이다 스스로 영광을 얻으시고 이 땅의 모든 경계를 확장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는 환난을 통하여 그 백성을 연단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더 크게 확장하셨습니다. 기독교는 핍박을 통해서 성숙해지고 자라납니다. 알짜배기와 쭉정이는 심판을 통해서 구별되어집니다. 여기 나오는 이 나라는 민족적 이스라엘을 넘어 믿음으로 사는 자를 가리킵니다. 신약에서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훈련하실 때에는 밑바닥까지 낮추시지만 때가 되면 영화롭게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환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연단하시고 정결하게 되었을 때에 교회를 확장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위를 살펴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시련을 당하고 어려움이 있지만 중심을 지키고 살 때에 심지가 굳어지고 믿음이 순수하게 되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환난 중에서 백성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1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그들이 환난 중에 주를 앙모하였사오며 주의 징벌이 그들에게 임할 때에 그들이 간절히 주께 기도하였나이다.” 환난 중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주를 앙모하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새벽을 깨워서 기도하고, 밤에도 모여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며 주님을 찾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귀히 쓰임을 받습니다. 고난을 받을 때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더욱 겸손해져서 주님의 의를 배우고 주님의 도우심을 체험합니다.
환난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환난을 통해서 그들이 깨달은 것은 자신들이 잉태하고 산고를 당하였지만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세계의 거민을 출산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고통을 해산이 임박한 여인의 고통으로 보았습니다. 산고는 죽음의 고통이지만 새 생명을 잉태하는 의미있는 고통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고통을 겪고 나서 얻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고통을 겪고 나서 무언가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도리어 피해의식만 생기고 재수가 없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허무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이런 고난을 통해서 세계의 거민을 출산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앗수르에 의해서 침략을 당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70년 동안 고생하다가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구원에 이르게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다니엘과 그 친구들을 통해서 바벨론에 알려졌지만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리시고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셨습니다. 21절은 앗수르에 대한 심판을 의미합니다. 이제 밀실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어 있어야 합니다. 이 밀실은 마음의 평온이나 침착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밀실로 들어가라는 말은 여호와의 심판이 임하는 동안 동요되거나 낙심하지 말고 견고한 믿음으로써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를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선지자 하박국도 유다에게 임할 재앙을 예언한 후에 안전한 곳에 가서 조용히 결과를 기다릴 것을 권고했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받는 동안 주님과 더욱 친밀한 교제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 고난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내면의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것들을 회개하고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환란을 통해서 연약한 것들이 강해지고 부족한 것들이 채워져야 합니다. 절제의 열매, 의의 열매, 평강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환난을 피하려고만 해서는 안 됩니다. 고난은 다 겪는 것입니다. 환난 중에 인내를 배우고 인내하면서 인격의 성숙을 이루어야 합니다. 환란을 통해서 긍휼의 사람, 사랑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사람은 쉽게 변화되지 않습니다.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라 생각하고 감당하면서 살아야 속이 편합니다. 내가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처럼 저 사람도 오직 은혜로 살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은혜로 살다가 은혜로 끝나는 것입니까? 우리는 환난에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강박관념을 갖기 쉽습니다. 그러나 환난 가운데서 내가 해야 할 것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앙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이 무엇입니까?
셋째, 하나님께서 친히 사탄을 멸하시고 그 백성을 구원하십니다(27장).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을 친 나라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탄을 멸하십니다. 27:1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그날’이란 악인들과 유다를 괴롭혔던 자들을 여호와가 심판하시는 날입니다. 이 여호와의 심판의 대상은 본문 1절에 ‘날랜 뱀 리워야단’,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 그리고 ‘바다에 있는 용’ 세 가지로 나타나 있습니다. 리워야단은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압제하던 앗수르와 바벨론과 애굽을 가리키는데(참조, 시 74:13 사 51:9 겔 29:3), 궁극적으로는 어둠의 세력을 지배하는 사탄을 가리킵니다(참조, 시 91:13 계 12:7, 9). 즉 하나님의 백성들을 압제하고 괴롭혔던 앗수르, 바벨론, 애굽에 대한 심판은 마지막 때에 사탄과 그 무리들에 대한 심판을 예표합니다. 요한계시록 20:10절을 보면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그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이 나옵니다. 거기는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 날에 하나님의 백성은 아름다운 포도원을 두고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포도원지기로서 때때로 물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이를 해치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는 포도원에 대하여 노함이 없습니다. 찔레와 가시가 그를 대적하여 싸우면 그것을 밟고 모아 불사르십니다. 5장에서도 포도원에 대한 노래가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회복의 노래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후일에는 야곱의 뿌리가 박히며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꽃이 필 것이라 그들이 그 결실로 지면을 채우리로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의 날에 남 유다와 북이스라엘을 회복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죄악 때문에 심판하셨던 백성들을 용서하시고 사탄을 제거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열매를 맺게 하시고 그 결실로 지면을 채우십니다. 그 결실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공의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의의 나라를 이루십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땅에 충만하며 공의가 하수같이 흐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정과 캠퍼스에서 나누어지고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되는 나라가 됩니다. 각 사람의 가슴 가슴에 그리스도의 피가 나누어지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 집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됩니다. 사람들은 크리스천을 존중하는 나라가 됩니다. 전세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기 위해서 이곳으로 몰려들 것입니다. 5월이 되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선교사님들과 그 제자들이 구름떼 같이 모여들 것입니다. 이 센터가 비좁아 이들을 영접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올 것입니다. 우리는 2011학번 학생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심기를 원합니다. 한국의 대학생들과 세계의 대학생들이 함께 모여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공유하며 헌신하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치시지만 원수들을 치는 것과 같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적당히 징계하십니다. 그는 우상 숭배에 찌든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는 흩으신 백성들을 다시 모으십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너희 이스라엘 자손들아 그 날에 여호와께서 창일하는 하수에서부터 애굽 시내에까지 과실을 떠는 것 같이 너희를 하나하나 모으시리라. 그 날에 큰 나팔을 불리니 앗수르 땅에서 멸망하는 자들과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들이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께 예배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세기 동안 세계를 방랑하다가 시온주의 운동을 통해서 1948년 5월 14일 국가를 창설하고 회복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이스라엘로 데려오기 위해서 데이빗 벤 구리온은 놀라운 일들을 많이 하였습니다. 1991년 5월 35대의 군용기와 민간 항공기는 36시간 동안 14500명의 이디오피아 유대인들을 이스라엘로 데려오는 일에 성공했습니다. 좌석 하나에 2-3명이 앉기도 했습니다. B747로 1222명을 수송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서 수많은 잃어버린 영혼들을 하나님 나라로 모으십니다. 하나님의 목표는 그 백성을 정결하게 하고 예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포도원으로 회복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포도원으로서 세계 거민을 낳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민족 속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공의가 충만하도록 말씀을 전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훈련을 잘 받고 사역을 감당하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 나라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현재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심지가 견고한 사람들이 되어 한결 같이 주님을 신뢰합시다. 환난의 때에 주님을 바라보며 기도에 힘을 씁시다. 주님께서 사탄의 세력을 멸하시고 구원 역사를 친히 이루실 줄 믿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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