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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2011년 이사야 3강(3,4장) 청결하게 하실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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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956회 작성일 11-01-30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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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이사야서 제 3 강 말씀 이사야 3,4장요절 이사야 4:4
청결하게 하실 하나님
“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

  우리는 지난 주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위에 뛰어나리라고 하신 말씀을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된 이유(3:1-15), 둘째, 이스라엘의 딸들의 죄(3:16-4:1), 셋째, 심판의 목적(4:2-6)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청결하게 되어 진정한 아름다움을 회복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된 이유(1-15) : 이스라엘은 황폐하고 혼란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된 이유는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양식을 의지하고, 물을 의지했습니다. 양식과 물은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요소들입니다. 사람은 양식과 물만으로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썩을 양식을 위해서 살기보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이 양식은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이스라엘이 배가 부르고 등이 따뜻하게 되자 하나님보다 이런 것에 자족하며 살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이 의지하는 것들을 제거하십니다. 느부갓네살이 이스라엘을 침공 했을 때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설상사상 예루살렘은 포위되어 물과 양식을 성 안으로 반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게 되었고, 심지어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양식의 풍족함을 의지하기보다 날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가난한 이웃과 양식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들은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와 오십부장과 귀인과 모사와 정교한 장인과 능란한 요술자를 의지했습니다. 용사는 영웅을 말합니다. 전사는 군인, 사병을 말합니다. 군대의 힘이 강하면 목에 힘을 줄 수 있습니다. 며칠 전에 청해부대에서 소말리아 해적들에 인질로 잡혀 있던 삼호주얼리호 선원들을 구출하여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국방력이 튼튼해야 안보가 유지되고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군대의 힘이 강해야 하지만 그 힘을 의지하는 것도 하나님을 슬프시게 합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국방력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을 때 용사들이 전쟁에서 다 죽게 되었습니다. 선지자는 부정적인 의미로 거짓 선지자, 거짓 예언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의 예언은 빗나갔습니다. 장로는 나이든 노인으로서 지혜와 경륜으로 공동체를 다스리는 지도자입니다. 느부갓네살은 유다의 귀족들과 박사들과 재능있는 기술자들과 각 분야의 엘리트들을 바벨론에 포로로 끌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2:22절에서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연약한 자입니다. 사람은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은 호흡을 멈추면 죽게 되고 흙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사람이 강한 것 같지만 약한 자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성취하는 과학 문명들을 생각할 때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문명의 화려함 뒤에 있는 연약함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인공위성 나로호 2호를 발사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점검했지만 페어링 문제로 궤도 진입에 실패했습니다. 우리는 과학의 위대한 힘에 놀라면서도 그 연약함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의지할 때 교만해집니다. 멸망의 때에 이런 것들이 우리를 구원해 주지는 못합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 이런 것들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사람을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는 어떤 징계를 내리십니까?

  그는 소년들을 그들의 고관으로 삼으시며 아이들이 그들을 다스리게 하십니다. 미숙한 사람들, 유치하고 성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통치자가 됩니다. 성숙한 지도자의 부재로 인해서 나라가 혼란스러워집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올해는 우리 공동체에 한국과 세계의 리더십 교체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들을 세워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해야겠습니다.

  멸망해 가는 나라에서는 백성이 서로 학대하며 각기 이웃을 잔해하며 아이가 노인에게,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에게 교만할 것입니다. 위기의 때에는 먼 친척보다 이웃사촌이 더 많은 도움을 주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웃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사는 길입니다. 그런데 각기 이웃을 잔해하기 때문에 이웃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살벌한 사회가 됩니다. 아이가 노인에게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에게 교만하다는 것은 권위가 상실된다는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의 특징은 권위를 해체시킨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질서가 사라지고 도덕이 무너집니다. 공동체에서 권위를 무시하면 아무도 일할 수 없습니다. 성숙한 사회는 하나님을 믿고 세우신 권위를 인정하기 때문에 잘 돌아갑니다.

  권위를 무시하면 아무도 나서서 일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혹시 사람이 자기 아버지 집에서 자기의 형제를 붙잡고 말하기를 네게는 겉옷이 있으니 너는 우리의 통치자가 되어 이 폐허를 네 손아래에 두라 할 것이면 그 날에 그가 소리를 높여 이르기를 나는 고치는 자가 되지 아니하겠노라. 내 집에는 양식도 없고 의복도 없으니 너희는 나를 백성의 통치자로 삼지 말라 할 것입니다. 아무도 공동체에 대해서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각자 제 코가 석자입니다. 그럴수록 마음을 합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위기를 극복할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서로를 귀하게 여기고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덧입게 됩니다. 지도자의 권위가 서야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권위는 인격과 사랑으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니 지도자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지도자는 십자가를 지는 사람입니다. 지도자는 책임을 지고 공동체를 섬기는 사람인데 지도자가 바로 서고 세울 때 그 공동체가 건강하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지도자가 존경을 받지 못하고 무시를 받으면 공동체가 황폐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멸망하여 이렇게 비참하게 되는 근본 원인은 무엇입니까? 8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역하여 그의 영광의 눈을 범하였음이라.” 언어와 행위는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도구입니다. 흥미롭게도 뇌는 현실과 언어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뇌는 현실과 언어를 구별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입으로 ‘짜증나’를 반복하면 그 소리가 귀를 통해 뇌로 전달되고, 뇌는 ‘짜증이 나 있는 것인데 왜 멀쩡한 척하느냐’면서 온몸에 불쾌한 스트레스 호르몬을 쫙 뿌립니다. 말은 밖으로 나왔다가 ‘뇌의 지령’에 따라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갑니다. 노상 ‘짜증난다’고 하는 사람 주변에는 짜증 날 일이 계속 생깁니다. 반면 긍정적이고 좋은 말만 계속하면 실제로 좋은 일만 생기게 됩니다. 말버릇이 자신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언어가 우리의 행동을 지배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시는 분이십니다. 긍정적인 언어, 믿음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행동이 긍정적이고 믿음의 열매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불신에 가득 차 있고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여호와를 거역합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영광의 눈을 범하였습니다. 눈은 가장 예민합니다. 여호와의 눈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현존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면전에서 대들고 함부로 말했습니다. 그들은 공개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가인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지만 그 예배를 받지 아니하셨을 때 어떤 태도를 보였습니까? 그는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자 시기심이 미움으로 미움이 살인으로 변하게 되어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이게 되었습니다. 소돔 백성들은 대낮에 나그네를 상관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철면피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들이 재앙을 자취하였습니다.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이는 그의 손으로 행한 대로 그가 보응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그들의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복이 있습니다. 

  12a절을 보십시오.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 다스리는 자는 여자들입니다.” 여자들은 실제로 여자들일 수도 있고, 자격이 안 되는 통치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세벨과 아달리야의 통치로 인해서 나라가 어지러워졌습니다. 오늘날 남자들이 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 남성상을 잃어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교사 중에 남자 선생님이 소수입니다. 그래서 어떤 초등학교는 남자 선생님들이 많이 있는 것을 자랑거리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는 형제들을 적극적으로 세워야 합니다. 그들의 기를 살려주어야 합니다. 형제들이 살아야 하나님의 역사가 살아납니다. 자매님들이 그 점을 깊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백성이 타락하고 방황하는 것은 지도자들의 책임도 큽니다. 그들의 죄를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그들은 권력을 가진 특권을 이용하여 포도원을 삼킵니다.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것을 자기 집에 갖다 놓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을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지도자는 긍휼이 있어야 하는데 그들은 잔인무도했습니다.

  이상에서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지한 것이요,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하나님을 거역한 것이요, 참된 지도자들의 부재에 있었습니다. 이런 일들 이면에는 여인들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담의 타락 뒤에는 하와가 있었습니다.

둘째, 시온의 딸들의 문제(16-4:1) : 시온의 딸들은 어떤 문제가 있었습니까? 그들은 교만하여 늘인 목,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작거려 걸으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냈습니다. 본래 여인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인들이 공주병에 걸렸습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상 중에서 여인들의 부패상을 말하는데 교만이 가장 먼저 나옵니다. 교만하여 늘인 목,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닌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자를 지으실 때 남자를 돕는 배필로 지으셨습니다. 여자는 또 남자의 영광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자가 교만하여 자기를 중심으로 행동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행동을 했습니까? 형제들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동역하기보다는 자기에게 집중하도록 한 것입니다. 정을 통하는 눈은 추파를 던지는 행동입니다. 아기작거려 걷는다는 것은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며 걷는다는 뜻입니다. 발로 쟁쟁한 소리를 낸다는 것은 발목거리를 걸고 짤랑짤랑 소리를 내며 걷는다는 뜻입니다. 남자들의 관심을 자기에게 끌기 위해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자매들이 형제의 마음을 빼앗아 병들이게 되면 형제들이 영성을 잃어버립니다. 교회 안에서도 자매님들이 형제들의 마음을 빼앗고자 자기를 꾸미기 시작하면 형제들이 힘을 쓰지 못하게 됩니다. 열국의 어미로서 열왕들을 품고 기도하며 키워야 할 자매님들이 형제의 사랑이나 받으면서 살고자 하면 그 공동체는 소망이 없습니다.
 
  오래 전부터 한국 사회에서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치마를 사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몸짱, 외모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습니다. 섹시한 것이 중요한 가치로 부각이 되었습니다. 왜 외모를 중시하는 것일까요? 남의 시선을 강하게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이고 정신적인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작기 때문입니다. 속이 비어있기 때문에 외적인 것으로 대체하려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아무리 외모를 멋있게 꾸며도 건강한 자아상을 갖지 못하며 스스로 만족을 느끼지 못하면 공허한 것입니다. 남에게 아무리 멋있게 보여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스스로 존중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주님의 경고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시온의 딸들의 정수리에 딱지가 생기게 하시며 그들의 하체가 드러나게 하십니다. 주께서 그 날에 그들이 장식한 발목 고리와 머리의 망사와 반달 장식과 귀 고리와 팔목 고리와 얼굴 가리개와 화관과 발목 사슬과 띠와 향합과 호신부와반지와 코 고리와 예복과 겉옷과 목도리와 손 주머니와 손 거울과 세마포 옷과 머리 수건과 너울을 제하십니다. 여기에 21가지의 악세사리가 나옵니다. 자매님들이 악세사리로 자기를 꾸미는 일에 온 마음을 쏟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썩은 냄새가 향기를 대신하고 노끈이 띠를 대신하고 대머리가 숱한 머리털을 대신하고 굵은 베 옷이 화려한 옷을 대신하고 수치스러운 흔적이 아름다움을 대신할 것입니다. 이런 심판을 통해서 그들은 외적인 것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될 것입니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습니다(잠31:30).

  그 날에 장정은 칼에, 용사는 전란에 망할 것입니다. 그 성문은 슬퍼하며 곡할 것이요 시온은 황폐하여 땅에 앉을 것입니다. 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다만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부르게 하여 우리가 수치를 면하게 하라고 요청할 것입니다. 전쟁으로 남자들이 수없이 죽기 때문에 남자가 귀한 시대가 옵니다. 그러면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시집가지 못한 자기의 수치를 면하게 해 달라고 청혼을 하게 됩니다.

  우리 자매님들이 이런 시대의 문제를 극복하려면 영적인 가치관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여자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딤전2:9-15).” 우리 자매님들이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기 위해서 애쓰는 것은 해산의 고통과 같이 힘든 것입니다. 자기를 꾸미고, 드러내고 형제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싶은 자매의 본성을 부인하는 것은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이 아픈 것입니다. 형제에게는 정복욕이 있지만 자매에게는 독점욕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해산의 수고를 할 때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서 자라게 되고 이런 여자들이 형제들을 왕 같은 제사장으로 키울 수 있습니다. 우리 자매 목자님들이 형제들을 품고 기도하며 영적인 사람들로 키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무엘을 키운 한나와 같은 기도의 어미들이 다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볼로를 키운 브리스길라, 디모데를 키운 어머니 유니게와 외할머니 로이스와 같은 여인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마더 배리 선교사님과 같은 믿음의 여인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심판의 목적(4:2-6) : 이사야는 이런 가운데 어떤 영광스러운 회복의 비전을 봅니까? 2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황폐하게 된 땅에서 새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시는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의 싹은 이사야 11:1절과 10절을 참고해 볼 때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사11:1).”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사11:10).”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란 하나님께 피한 자,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자들, 심판에서 남은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메시아가 피난한 자들을 구원하기 때문에 그가 영화롭고 아름답게 됩니다. 메시야의 아름다움과 영화로움은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습니다. 영적인 눈이 트인 사람들이 메시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예수님을 보면 미련하고 수치스럽습니다. 신자의 삶, 캠퍼스 목자들의 삶이 믿는 자들에게는 아름답지만 세상 사람들에게는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날에 하나님은 남은 자들을 무엇으로 청결하게 하십니까? 3,4절을 보십시오.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하게 하실 때가 됨이라.”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은 성령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성령께서는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기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청결하게 하실 것입니다. 어떻게 청결하게 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깨끗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피를 믿음이 없이는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더러워진 양심을 깨끗하게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더럽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막 7:21-23).”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더러움에 대해서는 예민하지만 진정 사람을 더럽게 하는 죄 문제에게 대해서는 관대한 경향이 있습니다. 때 묻은 손을 물로 씻을 때 깨끗해지는 것처럼 예수님의 피를 믿고 죄를 고백할 때 죄가 깨끗이 씻겨집니다. 요한일서 1:9절은 말씀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죄를 자백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 죄를 씻는 일이요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회개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니라 마음을 가볍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어떤 사람은 나의 이 죄는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더러운 죄가 무엇이 좋다고 무덤까지 가지고 갈려고 그렇게 독하게 마음을 먹으십니까? 죄를 마음 깊이 묻어두면 속이 병듭니다. 그 죄가 어딘지 모르게 나를 어둡게 만들고 부자유스럽게 합니다. 그 무거운 죄를 일생 마음에 담고 살면 행복할까요? 아닙니다. 마음을 막아버립니다. 하나님과의 통로가 막힙니다. 기도가 막힙니다. 진정으로 복된 삶을 살고 영적으로 뚫린 삶을 살려면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십시오. 마음을 새롭게 하려면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남은 자들을 청결하게 하고자 하십니까? 그 백성이 거룩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염된 성전에 거하실 수가 없습니다. 1장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많은 제물을 드리고 절기를 지키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예배를 받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백성들이 거룩하지 않을 때, 악을 행할 때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거하실 수 없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연합을 위해서는 반드시 청결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징계가 무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신약적으로 보면 예수님의 보혈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 내면을 정결케 하십니다. 주님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씻어 내시고 정결한 신부가 되게 하십니다. 우리를 청결케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청결하게 된 사람들에게 임하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5,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온 시온 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덮개를 두시며 또 초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 구름과 연기, 화염의 빛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출애굽할 때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성막에 임하여 영광을 나타내심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혼인 관계의 친밀함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임하실 때 그의 사랑으로 만족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누리는 것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은 모든 일에 형통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할 때 위로부터 오는 능력으로 모든 십자가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청결하게 하시고 함께 하고자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회개의 영을 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회개하는 심령마다 새롭게 하시고 능력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올 해 나로부터 깨끗하게 되어 우리 공동체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간구합니다. 또한 민족적인 회개 운동이 아침마다 골방에서 이루어져서 이 나라를 깨끗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이 나라와 함께 하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리하여 이 민족이 계속하여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로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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