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01년 사2강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오르자
페이지 정보

본문
2011년 이사야 2 강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말씀; 이사야 2:1-22
요절; 이사야 2: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이사야서는 심판과 소망이 반복되는 예언서입니다. 1장이 심판의 메시지라면 2장은 소망의 메세지입니다. 우리는 지난 강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 욕망과 우상숭배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범죄하여 황폐케 되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오늘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놀라운 소망과 비전을 보여 주십니다. 이 소망과 비전이란 무엇입니까? 시온의 영광이 회복되는 비젼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이 비전을 새롭게 영접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구속역사에서 시온으로 쓰임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시간되기를 기도합니다.  
Ⅰ. 여호와의 산이 뛰어나리니(1-5)
  다같이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현재의 이스라엘 모습은 어떠합니까? 북이스라엘은 다 사라지고 예루살렘만 덩그러이 남았습니다. 바벨론에게 멸망하여 성전이 불타고 성벽은 허물어지며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서 모진 수치를 당합니다. 여호와의 전이 있는 시온산은 보이지 않게 낮아져서 쓰러지고 허물어진 원두막처럼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정말 소망 없는 나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변하게 됩니까? “말일에” “In the last days”, 이는 종말의 때로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때, 곧 메시야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때를 가리킵니다. 말일이 되면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서고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날에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시온산은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가장 우뚝 솟은 산이 될 것입니다.
  
  당시에 애굽은 돈과 식량이 풍부한 경제 강국입니다. 앗수르와 바벨론은 강한 힘이 나오는 군사 강국입니다. 그 산들이 높기 때문에 그들의 신도 위대하고 그들의 군사력과 경제력도 막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말일이 되면 여호와께서 권능을 나타내십니다.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위에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37장을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병사 185,000명을 한 순간에 다 죽게 합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은 패하여 고국에 돌아갔다가 자기들의 신전에서 자기의 두 아들에게 암살을 당합니다. 이 사건이 말해 주는 바가 무엇입니까?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 하나님은 온 세상위에 뛰어나신 참 신이요, 만왕의 왕, 주에 주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말일 즉, 종말사상이 곳곳에 나타납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애굽의 바로는 당시에 최고로 높은 산이었습니다. 그는 태양신의 아들로 자처하며 교만이 하늘에 닿았습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과 모세를 깔보고 무시합니다. 그러나 말일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은 10가지 재앙사건으로 무시받고 천대받던 애굽의 노예백성 이스라엘을 출애굽을 시키시는 대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홍해사건을 통해서 애굽의 군사들이 완전히 수장되고 바로는 죽음의 공포로 떨었습니다. 마침내 애굽의 산이 낮아지고 여호와의 산은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해 볼까요? 로마의 헤롯왕은 태산처럼 높았고 마굿간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은 천한 골짜기로 보였습니다. 사람들도 예수님을 멸시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말일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무덤속에서 다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셨습니다(빌2:9-11). 이 예수님은 또 말일에 마지막 날에 다시 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날에 주와 복음을 위해서 믿음으로 산 자들 주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 욕심을 위해 산 자들은 다 불 못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일은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올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말일이 반드시 온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그날에 비로소 영적인 눈을 떠서 무엇이 가장 높은 산인가? 어떤 산에 올라야 할 것인가?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소망해야 하는가?를 깊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평소에 애굽의 바로처럼 자신들의 높음을 자랑하고 교만을 떱니다. 그러나 말일에 하나님께서 그 강하신 오른손을 번쩍드시면 세상에 높아진 산들이 다 낮아지고 여호와의 산은 모든 산 위에 우뚝 서게 됩니다.
  우리는 지난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사건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천안함 사건으로 꽃같은 젊은 생명들이 산화되었을 때 온 국민은 가슴 아파하였습니다. 특히 연평도 폭격 사건은 우리를 더욱 불안으로 떨게 하였습니다. 저는 현장에 있던 한 사람의 간증을 듣게 되었습니다. “폭격을 당할 때는 살아야 된다는 한가지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내게 있던 통장과 증권은 생명을 구하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 말의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산들을 오르고 있습니까?  젊은이들이 영적인 일에 관심이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로 몰리고 있습니까? 얼마전 개봉했던 ‘아저씨’라는 영화는 관객이 500만이나 몰렸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국가정보 유출을 막는 특수부대 소속인 주인공 원빈은 임신한 동역자가 적으로부터 무참히 살해당하자 은둔하며 전당포를 운영합니다. 전당포 옆집은 한 소녀의 엄마가 밤무대에서 일을 하는데 소녀는 밤늦도록 오지 않는 엄마 때문에 전당포에서 아저씨라 부르며 놀곤 하였습니다. 엄마는 돈 욕심으로 마약을 훔쳤고 조폭들에게 잔인하게 죽임을 당합니다. 결국 원빈은 아저씨라 부르는 한 소녀 때문에 이 사건에 뛰어들고 조폭들을 모조리 없애버린다는 복수시리즈입니다. 이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가슴을 쓰러 내리게 하면서도 통쾌하게 복수하여 청량음료와 같은 시원함을 선사하였습니다. 통쾌하고 시원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또한 주말이면 젊은이들은 홍대 근처로 몰려듭니다. 홍대 근처는 젊음이 있고, 먹거리가 있고, 까페가 있고, 클럽이 있고, 등등 쾌락과 향락을 즐길 수 있는 장소로 정평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알게 모르게 여러 부류의 산을 만들고 산 정상에 서고자 노력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명예의 산, 부의 산, 권력의 산, 지식의 산, 쾌락의 산들이 크고 높고 환상적으로 보입니다. 슈퍼스타 K1의 허각처럼 노래를 잘해서 잃어버린 엄마도 만나고 인기도 얻고 돈도 벌고 CF도 찍고 등등 스타의 삶을 부러워합니다. 인정받는 학벌, 안정된 직장을 부러워합니다. 대학생들은 좋은 직장을 얻기위해 남들보다 돋보이는 스팩에 주력합니다. 또한 요즘에는 ‘차도남’, ‘까도남’이란 말이 유행하고 국어사전에도 등재되어 있습니다. ‘차도남’은 ‘차가운 도시 남자’, ‘차갑고 도도한 남자’, ‘까도남’은 ‘까칠하고 도도한 남자‘ 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이 반열에 서고자 노력합니다. 허나 먼저 기본은 되야 합니다. ’시크릿 가든‘ 드라마의 현빈처럼 삼중 복근, 수려한 키와 몸매, 반반한 인물과 돈(쩐)도 어느 정도 있어야합니다. 그래야 ’까도남‘이 될 수가 있습니다. 저처럼 키 작고 배가 나온 사람은 가당치나 하겠습니까? 그저 저는 ’부시맨‘ 정도는 되겠죠. ‘부드러운 시골 남자’죠. 여하튼 우리가 노력 노력해서 이 모든 것을 얻었다고 칩시다. 말일이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무엇이 가장 중요합니까? 내가 과연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가는가? 아니면 영원한 지옥불에 던져지는가? 그것만이 가장 중요합니다. 말일이 되면 세상에서 높아진 산들은 한순간에 다 무너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목숨을 걸고 올라야 할 산은 어디입니까? 그것은 바로 “여호와의 전의 산” “하나님의 산”인 줄 믿습니다. 다같이 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이는 “자, 이제 하나님께로 나아가자” “예수님께로 가자” 그런 뜻입니다. 왜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해서 예수님을 향해서 몰려오는 것입니까? 거기에는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참된 진리가 있고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3b절을 봅시다.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사람을 바르게 하는 율법이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곳을 향해서 몰려오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나아옵니다. 모든 앓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 니고데모같은 엘리트들, 삭개오와 레위같은 세리들, 사마리아여인처럼 과거가 있는 자들, 고기잡던 어부들, 로마 정부 타도를 꿈꾸던 열혈당에 이르기까지 각종 부류의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향해서 나아옵니다. 왜 그들이 앞 다투어 예수님께로 나아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님께로 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 구원의 말씀, 어두움을 몰아내는 빛의 말씀, 귀신을 제압하는 능력의 말씀, 죄를 용서하는 사죄의 말씀,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 천국의 말씀, 참 평안과 위로를 주는 은혜의 말씀이 예수님으로부터 흘러 나오기 때문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온 것입니다. “오라! 우리가 예수님께로 가자.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서 나올 것임이니라” 예수님은 말일에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성전이 되십니다.
  
  사도행전에서 제자들의 사역을 보십시오. 한꺼번에 삼천 명, 오천 명이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사도들을 향해 나아옵니까? 그들에게는 다른 것은 없었지만 생명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2:21)” 그들에게는 심령골수를 찔러 쪼개는 권세있는 말씀,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하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말씀, 죽은 자를 살리는 권능의 말씀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구름떼와 같이 몰려온 것입니다.
  우리 UBF도 창설된지 올해로 50주년이 되었고 놀랍게 성장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믿음의 선배들이 말씀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가난하고 암울했던 60년대는 대학을 졸업해도 갈 곳이 없었습니다. 물로 주린 배를 채우며 지게를 지고 서울역에 모여 하루 품삯을 받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UBF로 몰려들었습니다. 그 핵심에는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 배사라 선교사님, 믿음의 선배들안에 생명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줄기차게 성경을 연구해서 젊은이들에게 공급하고 말씀을 기초로 시대를 진단하며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메시지는 마치 마른 땅을 적시는 단비와 같았습니다. 젊은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불덩어리와 같았습니다. 젊은이들은 말씀의 맛을 보고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먹고 마시고자 말구유와 같은 UBF센타로 꾸역꾸역 몰려 든 것입니다. 이런 말씀공부 운동은 광주로 서울로 한국을 넘어서 독일로 미국으로 아프리카로 오대양 육대주로 퍼져서 마침내 오늘날과 같은 성령의 역사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50주년 마침이 되고, 시작이 되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합니까? 우리에게 말씀이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서 나온 것처럼 우리의 입술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와야 합니다. 학자적인 자세로 말씀을 깊히 연구하고, 몸에 배이도록 실천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해야 합니다. 이러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홍대UBF를 통해서, 한국교회를 통해서, 세계 만방에 전하여지고, 전 세계 사람들이 물밀 듯이 몰려올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새로운 50년 역사에 주역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전의 산에 오르자”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지금 이 시대에도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얼마든지 사람들이 몰려올 것입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마4:4).
    
  4절을 봅시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온 열방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여들게 될 때에 더 이상 각 나라는 무기경쟁을 하지 않고 전쟁이 그치고 세계평화가 오게 됩니다. UN은 핵무기 감축과 비전쟁으로 세계평화를 부르짖습니다. 허나 인간의 마음속에 탐욕과 교만의 칼을 내려놓지 않는 이상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개인이나,국가나 마찬가지로 이익과 이권으로 말미암아 틀어지고 분열됩니다. 독도는 지금도 일본이 넘보는 분쟁 대상이기도 합니다. 북한은 지금도 핵무기에 대한 미련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도 이 문제를 해결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과 각 나라가 복음으로 정복될 때 비로서 복음을 통한 평화가 실현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개입하셔서 중재하실 때 서로를 용서하고 영접하며 세계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야곱 족속,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어두움 속에서 나와야 합니다. 우상숭배와 각종 죄의 어두움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나와서 여호와의 빛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빛을 받고, 어두운 세상에 빛을 발하는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서 사명을 회복해야 합니다.
  
Ⅱ.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6-22)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6절 이후는 하나님의 말씀을 놓아버리고 세상 것들을 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들은 잘 먹고 잘사는 동방나라들을 부러워하고 그들의 풍습을 흉내 냈습니다. 은 금 보화를 땅에 쌓아두고 마필과 병거로 무장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전하고 행복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11,12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를 높이는 자를 반드시 낮아지게 하십니다. 그들이 자랑하는 것들을 다 무용지물이 되게 하십니다. 레바논의 모든 백향목들, 바산의 모든 상수리나무들, 모든 높은 망대, 견고한 성벽, 다시스의 화려한 모든 배, 모든 아름다운 조각물. 이런 것들은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탐하는 우상이요, 사치품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다 암혈과 토굴에 던져버리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은 우상, 금 우상을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지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치시면 황금돼지가 무슨 소용이며,각종 보석들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두더지나 박쥐들의 장난감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래서 22절은 뭐라고 말합니까?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인간이 쌓은 바벨탑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쌓을 때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간입니다. 인생들이 그렇게 의지하고 자랑하는 부 명예 권력 타이틀 외모 이런 것들은 셈할 가치가 없습니다. 야고보서 4:14절에 “너희의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안개와 같은 한국 백성을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한국을 부강한 나라로 키워오셨습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힘과 돈으로 빛나는 나라는 그 빛이 오래가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나라의 이면은 폭력과 욕심으로 어둠이 가득하고 추합니다. 미국이 강대국이긴 하지만 이면에는 마약과 동성애와 폭력이 난무합니다. 얼마전 학문의 전당 학교에서 총기 사건이 발생하여 많은 선량한 학생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중국이 일본을 앞질러서 경제 2대국이 되었지만 오직 돈만 벌면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그래서 먹는 것에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들을 집어넣습니다. 찜질방의 맥반석 구운 달걀도 약품을 넣고 진짜로 구운 것처럼 만들어 유통시키는 나라가 진정 강대국입니까?
  우리나라는 스스로 남의 나라를 침략해 본적이 없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입니다. 6.25전쟁 이후 우리의 삶은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외국이 주는 밀가루에 의지하여 하루하루의 생명을 부지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자원이 풍부합니까? 뉴욕타임지는 1960년대 우리를 보고 아무리 원조해도 도저히 가망이 없는 나라라 하였습니다. 1990년대는 가능성이 있는 나라 기적을 일군 나라로 정정하였습니다. 2010년대는 오일쇼크, IMF 등 험난하고 고통스러웠지만 G20 국가들 중에서 가장 빨리 경제를 회복한 또 하나의 기적을 이룬 나라로 평가하였습니다. 지난해는 수출 세계 9위, 국력 세계 13위로 랭크되었습니다. 세계는 이런 성장의 잠재력은 ‘한국인의 근면성’이라 말합니다. 아시아에선 한국이 동경의 대상이 되어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네팔, 아프가니스탄 등등에서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국가브랜드도 매우 올라갔습니다. 유럽에서는 삼성에니콜 핸드폰이 부의 상징이 되어 폰을 놓고 잠시 한눈 팔면 금방 사라져 버립니다. 그 만큼 국격이 올라갔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우리를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신 원동력이 무엇입니까? 우리나라의 기독교 역사는 100년밖에 안되었지만 수 많은 순교자들을 낳았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죽으면 살리라’ 외치며 자신의 안개같은 인생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여호와의 전의 산에 오르고자 투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한국을 ‘세계속의 한국’으로 키워오셨습니다. 우리를 이 세계에 대하여 ‘21세기 거룩한 백성, 왕같은 제사장 나라’로 세우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직 말씀을 배우고, 말씀대로 삶으로서 국격과 문화가 말씀의 수준까지 올라가고 세계속에 뛰어나고 아름다운 나라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세계로부터 존경받는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여호와의 전의 산’에 오르기를 더욱 힘쓰시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4대강 살리기에 한눈 팔지 아니하고 말씀 정독과 말씀 연구에 힘쓰므로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도구로 날마다 빚어 가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인생들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산이 무엇인가를 배웠습니다. 인간이 의지하고 자랑하는 것들은 하나님이 낮추셔서 두더지와 박쥐와 동급이 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슨 산에 오르고자 힘써야 하겠습니까?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우리가 힘써 여호와의 전의 산에 오릅시다. 성전에 와서 열심히 말씀의 샘을 팝시다. 힘써 1:1을 해서 세상 가운데 여호와의 빛을 비춥시다. 말세의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와 우리 모임을 이만큼 영화롭게 하신 것은 다른 것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살고자 몸부림치고 말씀을 전하고자 애를 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소중한 말씀의 횃불을 높이 들어서 만방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므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는 새 역사의 주역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말씀; 이사야 2:1-22
요절; 이사야 2: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이사야서는 심판과 소망이 반복되는 예언서입니다. 1장이 심판의 메시지라면 2장은 소망의 메세지입니다. 우리는 지난 강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 욕망과 우상숭배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범죄하여 황폐케 되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오늘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놀라운 소망과 비전을 보여 주십니다. 이 소망과 비전이란 무엇입니까? 시온의 영광이 회복되는 비젼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이 비전을 새롭게 영접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구속역사에서 시온으로 쓰임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시간되기를 기도합니다.  
Ⅰ. 여호와의 산이 뛰어나리니(1-5)
  다같이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현재의 이스라엘 모습은 어떠합니까? 북이스라엘은 다 사라지고 예루살렘만 덩그러이 남았습니다. 바벨론에게 멸망하여 성전이 불타고 성벽은 허물어지며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서 모진 수치를 당합니다. 여호와의 전이 있는 시온산은 보이지 않게 낮아져서 쓰러지고 허물어진 원두막처럼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정말 소망 없는 나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변하게 됩니까? “말일에” “In the last days”, 이는 종말의 때로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때, 곧 메시야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때를 가리킵니다. 말일이 되면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서고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날에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시온산은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가장 우뚝 솟은 산이 될 것입니다.
  
  당시에 애굽은 돈과 식량이 풍부한 경제 강국입니다. 앗수르와 바벨론은 강한 힘이 나오는 군사 강국입니다. 그 산들이 높기 때문에 그들의 신도 위대하고 그들의 군사력과 경제력도 막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말일이 되면 여호와께서 권능을 나타내십니다.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위에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37장을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병사 185,000명을 한 순간에 다 죽게 합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은 패하여 고국에 돌아갔다가 자기들의 신전에서 자기의 두 아들에게 암살을 당합니다. 이 사건이 말해 주는 바가 무엇입니까?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 하나님은 온 세상위에 뛰어나신 참 신이요, 만왕의 왕, 주에 주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말일 즉, 종말사상이 곳곳에 나타납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애굽의 바로는 당시에 최고로 높은 산이었습니다. 그는 태양신의 아들로 자처하며 교만이 하늘에 닿았습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과 모세를 깔보고 무시합니다. 그러나 말일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은 10가지 재앙사건으로 무시받고 천대받던 애굽의 노예백성 이스라엘을 출애굽을 시키시는 대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홍해사건을 통해서 애굽의 군사들이 완전히 수장되고 바로는 죽음의 공포로 떨었습니다. 마침내 애굽의 산이 낮아지고 여호와의 산은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해 볼까요? 로마의 헤롯왕은 태산처럼 높았고 마굿간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은 천한 골짜기로 보였습니다. 사람들도 예수님을 멸시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말일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무덤속에서 다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셨습니다(빌2:9-11). 이 예수님은 또 말일에 마지막 날에 다시 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날에 주와 복음을 위해서 믿음으로 산 자들 주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 욕심을 위해 산 자들은 다 불 못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일은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올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말일이 반드시 온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그날에 비로소 영적인 눈을 떠서 무엇이 가장 높은 산인가? 어떤 산에 올라야 할 것인가?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소망해야 하는가?를 깊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평소에 애굽의 바로처럼 자신들의 높음을 자랑하고 교만을 떱니다. 그러나 말일에 하나님께서 그 강하신 오른손을 번쩍드시면 세상에 높아진 산들이 다 낮아지고 여호와의 산은 모든 산 위에 우뚝 서게 됩니다.
  우리는 지난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사건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천안함 사건으로 꽃같은 젊은 생명들이 산화되었을 때 온 국민은 가슴 아파하였습니다. 특히 연평도 폭격 사건은 우리를 더욱 불안으로 떨게 하였습니다. 저는 현장에 있던 한 사람의 간증을 듣게 되었습니다. “폭격을 당할 때는 살아야 된다는 한가지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내게 있던 통장과 증권은 생명을 구하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 말의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산들을 오르고 있습니까?  젊은이들이 영적인 일에 관심이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로 몰리고 있습니까? 얼마전 개봉했던 ‘아저씨’라는 영화는 관객이 500만이나 몰렸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국가정보 유출을 막는 특수부대 소속인 주인공 원빈은 임신한 동역자가 적으로부터 무참히 살해당하자 은둔하며 전당포를 운영합니다. 전당포 옆집은 한 소녀의 엄마가 밤무대에서 일을 하는데 소녀는 밤늦도록 오지 않는 엄마 때문에 전당포에서 아저씨라 부르며 놀곤 하였습니다. 엄마는 돈 욕심으로 마약을 훔쳤고 조폭들에게 잔인하게 죽임을 당합니다. 결국 원빈은 아저씨라 부르는 한 소녀 때문에 이 사건에 뛰어들고 조폭들을 모조리 없애버린다는 복수시리즈입니다. 이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가슴을 쓰러 내리게 하면서도 통쾌하게 복수하여 청량음료와 같은 시원함을 선사하였습니다. 통쾌하고 시원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또한 주말이면 젊은이들은 홍대 근처로 몰려듭니다. 홍대 근처는 젊음이 있고, 먹거리가 있고, 까페가 있고, 클럽이 있고, 등등 쾌락과 향락을 즐길 수 있는 장소로 정평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알게 모르게 여러 부류의 산을 만들고 산 정상에 서고자 노력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명예의 산, 부의 산, 권력의 산, 지식의 산, 쾌락의 산들이 크고 높고 환상적으로 보입니다. 슈퍼스타 K1의 허각처럼 노래를 잘해서 잃어버린 엄마도 만나고 인기도 얻고 돈도 벌고 CF도 찍고 등등 스타의 삶을 부러워합니다. 인정받는 학벌, 안정된 직장을 부러워합니다. 대학생들은 좋은 직장을 얻기위해 남들보다 돋보이는 스팩에 주력합니다. 또한 요즘에는 ‘차도남’, ‘까도남’이란 말이 유행하고 국어사전에도 등재되어 있습니다. ‘차도남’은 ‘차가운 도시 남자’, ‘차갑고 도도한 남자’, ‘까도남’은 ‘까칠하고 도도한 남자‘ 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이 반열에 서고자 노력합니다. 허나 먼저 기본은 되야 합니다. ’시크릿 가든‘ 드라마의 현빈처럼 삼중 복근, 수려한 키와 몸매, 반반한 인물과 돈(쩐)도 어느 정도 있어야합니다. 그래야 ’까도남‘이 될 수가 있습니다. 저처럼 키 작고 배가 나온 사람은 가당치나 하겠습니까? 그저 저는 ’부시맨‘ 정도는 되겠죠. ‘부드러운 시골 남자’죠. 여하튼 우리가 노력 노력해서 이 모든 것을 얻었다고 칩시다. 말일이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무엇이 가장 중요합니까? 내가 과연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가는가? 아니면 영원한 지옥불에 던져지는가? 그것만이 가장 중요합니다. 말일이 되면 세상에서 높아진 산들은 한순간에 다 무너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목숨을 걸고 올라야 할 산은 어디입니까? 그것은 바로 “여호와의 전의 산” “하나님의 산”인 줄 믿습니다. 다같이 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이는 “자, 이제 하나님께로 나아가자” “예수님께로 가자” 그런 뜻입니다. 왜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해서 예수님을 향해서 몰려오는 것입니까? 거기에는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참된 진리가 있고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3b절을 봅시다.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사람을 바르게 하는 율법이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곳을 향해서 몰려오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나아옵니다. 모든 앓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 니고데모같은 엘리트들, 삭개오와 레위같은 세리들, 사마리아여인처럼 과거가 있는 자들, 고기잡던 어부들, 로마 정부 타도를 꿈꾸던 열혈당에 이르기까지 각종 부류의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향해서 나아옵니다. 왜 그들이 앞 다투어 예수님께로 나아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님께로 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 구원의 말씀, 어두움을 몰아내는 빛의 말씀, 귀신을 제압하는 능력의 말씀, 죄를 용서하는 사죄의 말씀,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 천국의 말씀, 참 평안과 위로를 주는 은혜의 말씀이 예수님으로부터 흘러 나오기 때문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온 것입니다. “오라! 우리가 예수님께로 가자.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서 나올 것임이니라” 예수님은 말일에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성전이 되십니다.
  
  사도행전에서 제자들의 사역을 보십시오. 한꺼번에 삼천 명, 오천 명이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사도들을 향해 나아옵니까? 그들에게는 다른 것은 없었지만 생명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2:21)” 그들에게는 심령골수를 찔러 쪼개는 권세있는 말씀,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하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말씀, 죽은 자를 살리는 권능의 말씀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구름떼와 같이 몰려온 것입니다.
  우리 UBF도 창설된지 올해로 50주년이 되었고 놀랍게 성장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믿음의 선배들이 말씀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가난하고 암울했던 60년대는 대학을 졸업해도 갈 곳이 없었습니다. 물로 주린 배를 채우며 지게를 지고 서울역에 모여 하루 품삯을 받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UBF로 몰려들었습니다. 그 핵심에는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 배사라 선교사님, 믿음의 선배들안에 생명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줄기차게 성경을 연구해서 젊은이들에게 공급하고 말씀을 기초로 시대를 진단하며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메시지는 마치 마른 땅을 적시는 단비와 같았습니다. 젊은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불덩어리와 같았습니다. 젊은이들은 말씀의 맛을 보고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먹고 마시고자 말구유와 같은 UBF센타로 꾸역꾸역 몰려 든 것입니다. 이런 말씀공부 운동은 광주로 서울로 한국을 넘어서 독일로 미국으로 아프리카로 오대양 육대주로 퍼져서 마침내 오늘날과 같은 성령의 역사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50주년 마침이 되고, 시작이 되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합니까? 우리에게 말씀이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서 나온 것처럼 우리의 입술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와야 합니다. 학자적인 자세로 말씀을 깊히 연구하고, 몸에 배이도록 실천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해야 합니다. 이러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홍대UBF를 통해서, 한국교회를 통해서, 세계 만방에 전하여지고, 전 세계 사람들이 물밀 듯이 몰려올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새로운 50년 역사에 주역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전의 산에 오르자”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지금 이 시대에도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얼마든지 사람들이 몰려올 것입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마4:4).
    
  4절을 봅시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온 열방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여들게 될 때에 더 이상 각 나라는 무기경쟁을 하지 않고 전쟁이 그치고 세계평화가 오게 됩니다. UN은 핵무기 감축과 비전쟁으로 세계평화를 부르짖습니다. 허나 인간의 마음속에 탐욕과 교만의 칼을 내려놓지 않는 이상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개인이나,국가나 마찬가지로 이익과 이권으로 말미암아 틀어지고 분열됩니다. 독도는 지금도 일본이 넘보는 분쟁 대상이기도 합니다. 북한은 지금도 핵무기에 대한 미련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도 이 문제를 해결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과 각 나라가 복음으로 정복될 때 비로서 복음을 통한 평화가 실현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개입하셔서 중재하실 때 서로를 용서하고 영접하며 세계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야곱 족속,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어두움 속에서 나와야 합니다. 우상숭배와 각종 죄의 어두움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나와서 여호와의 빛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빛을 받고, 어두운 세상에 빛을 발하는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서 사명을 회복해야 합니다.
  
Ⅱ.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6-22)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6절 이후는 하나님의 말씀을 놓아버리고 세상 것들을 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들은 잘 먹고 잘사는 동방나라들을 부러워하고 그들의 풍습을 흉내 냈습니다. 은 금 보화를 땅에 쌓아두고 마필과 병거로 무장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전하고 행복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11,12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를 높이는 자를 반드시 낮아지게 하십니다. 그들이 자랑하는 것들을 다 무용지물이 되게 하십니다. 레바논의 모든 백향목들, 바산의 모든 상수리나무들, 모든 높은 망대, 견고한 성벽, 다시스의 화려한 모든 배, 모든 아름다운 조각물. 이런 것들은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탐하는 우상이요, 사치품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다 암혈과 토굴에 던져버리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은 우상, 금 우상을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지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치시면 황금돼지가 무슨 소용이며,각종 보석들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두더지나 박쥐들의 장난감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래서 22절은 뭐라고 말합니까?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인간이 쌓은 바벨탑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쌓을 때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간입니다. 인생들이 그렇게 의지하고 자랑하는 부 명예 권력 타이틀 외모 이런 것들은 셈할 가치가 없습니다. 야고보서 4:14절에 “너희의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안개와 같은 한국 백성을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한국을 부강한 나라로 키워오셨습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힘과 돈으로 빛나는 나라는 그 빛이 오래가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나라의 이면은 폭력과 욕심으로 어둠이 가득하고 추합니다. 미국이 강대국이긴 하지만 이면에는 마약과 동성애와 폭력이 난무합니다. 얼마전 학문의 전당 학교에서 총기 사건이 발생하여 많은 선량한 학생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중국이 일본을 앞질러서 경제 2대국이 되었지만 오직 돈만 벌면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그래서 먹는 것에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들을 집어넣습니다. 찜질방의 맥반석 구운 달걀도 약품을 넣고 진짜로 구운 것처럼 만들어 유통시키는 나라가 진정 강대국입니까?
  우리나라는 스스로 남의 나라를 침략해 본적이 없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입니다. 6.25전쟁 이후 우리의 삶은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외국이 주는 밀가루에 의지하여 하루하루의 생명을 부지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자원이 풍부합니까? 뉴욕타임지는 1960년대 우리를 보고 아무리 원조해도 도저히 가망이 없는 나라라 하였습니다. 1990년대는 가능성이 있는 나라 기적을 일군 나라로 정정하였습니다. 2010년대는 오일쇼크, IMF 등 험난하고 고통스러웠지만 G20 국가들 중에서 가장 빨리 경제를 회복한 또 하나의 기적을 이룬 나라로 평가하였습니다. 지난해는 수출 세계 9위, 국력 세계 13위로 랭크되었습니다. 세계는 이런 성장의 잠재력은 ‘한국인의 근면성’이라 말합니다. 아시아에선 한국이 동경의 대상이 되어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네팔, 아프가니스탄 등등에서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국가브랜드도 매우 올라갔습니다. 유럽에서는 삼성에니콜 핸드폰이 부의 상징이 되어 폰을 놓고 잠시 한눈 팔면 금방 사라져 버립니다. 그 만큼 국격이 올라갔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우리를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신 원동력이 무엇입니까? 우리나라의 기독교 역사는 100년밖에 안되었지만 수 많은 순교자들을 낳았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죽으면 살리라’ 외치며 자신의 안개같은 인생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여호와의 전의 산에 오르고자 투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한국을 ‘세계속의 한국’으로 키워오셨습니다. 우리를 이 세계에 대하여 ‘21세기 거룩한 백성, 왕같은 제사장 나라’로 세우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직 말씀을 배우고, 말씀대로 삶으로서 국격과 문화가 말씀의 수준까지 올라가고 세계속에 뛰어나고 아름다운 나라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세계로부터 존경받는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여호와의 전의 산’에 오르기를 더욱 힘쓰시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4대강 살리기에 한눈 팔지 아니하고 말씀 정독과 말씀 연구에 힘쓰므로 하나님께서 쓰실만한 도구로 날마다 빚어 가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인생들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산이 무엇인가를 배웠습니다. 인간이 의지하고 자랑하는 것들은 하나님이 낮추셔서 두더지와 박쥐와 동급이 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슨 산에 오르고자 힘써야 하겠습니까?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우리가 힘써 여호와의 전의 산에 오릅시다. 성전에 와서 열심히 말씀의 샘을 팝시다. 힘써 1:1을 해서 세상 가운데 여호와의 빛을 비춥시다. 말세의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와 우리 모임을 이만큼 영화롭게 하신 것은 다른 것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살고자 몸부림치고 말씀을 전하고자 애를 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소중한 말씀의 횃불을 높이 들어서 만방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므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는 새 역사의 주역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첨부파일
-
data/message1/02e6d15b5ad3630318c9e58dd7965a58.hwp (0byte)
65회 다운로드 | DATE : 2011-01-23 19:36:2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