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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2011년 사 1강(1장)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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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2,027회 작성일 11-01-16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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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 제 1강
말씀 이사야 1:1-31                                               
요절 이사야 1:18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이사야는 BC 739-680년 사이에 활동했습니다. 그 때는 유다 왕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때였습니다. 웃시야 왕 시절에 유다는 군사 경제 외교 면에서 강성했습니다. 웃시야 왕은 교만해져서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제사를 드리다가 하나님의 징계로 문둥병이 걸렸습니다. 그 이후 나라는 쇠약해졌습니다. 아하스 왕 때에는 블레셋과 앗수르의 침공을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히스기야 왕에 이르러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함으로 영적 개혁을 이루었습니다. 그 이후 므낫세 왕 때에 유다는 수많은 우상들을 섬기다가 하나님의 진노의 불을 끌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고 결국 시드기야 왕 때에 바벨론에 패망하게 되었습니다.

  이사야서의 중심내용은 유다와 열방의 죄와 심판, 회복되는 이스라엘과 만유 즉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회복이 이사야서의 주제이며 회복의 내용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예배)의 회복입니다. 1-39장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예언이고 40-66장은 하나님의 위로로서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스런 미래를 다루고 있습니다. 성경은 66권입니다. 구약은 39권으로 되어 있고 신약은 27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사야 1-39장은 하나님의 심판을 다루고 있고, 후반부 27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고자 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는 성경의 축소판이라고도 합니다. 이사야서를 신약 성경에서 411회나 인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 이사야서에 가장 많이 나와 있어서 이를 제 5복음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인간의 역사는 범죄와 회개와 회복과 소망이 춤추듯이 반복되지만 역사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인간의 소망은 결국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의 참된 모습을 깊이 발견하고 주님께 소망을 두며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강의 주제는 범죄한 이스라엘을 다시 부르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 대한 심판을 어둡게 말씀하시면서 그 심판의 구름을 뚫고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1장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의 징계를 마음에 새기면서 소망의 빛을 보아야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늘 법정에서 펼쳐지는 재판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원고이신 하나님은 피고인 이스라엘을 고발하고 계십니다. 먼저 배심원 역할을 한 하늘과 땅이 부름을 받습니다. 하늘과 땅이야 말로 가장 공정한 판결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로 표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을 말씀과 양식으로 고귀하게 양육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지극한 것이었습니다. 사랑을 받으며 자란 자식은 잘못 나가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거역하였습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도 그 주인의 구유를 압니다. 소는 주인의 말을 듣고 순종합니다. 주인이 ‘이럇’ 하면 가고 ‘워워’ 하면 섭니다. 나귀가 집을 나가더라도 때가 되면 주인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니 하나님의 마음이 슬프십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특권을 가차없이 악을 행하는데 사용했습니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4-6).” 이스라엘의 이렇게 고집스러운 행동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자연의 이치에도 맞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로 인해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만홀히 여긴다는 것은 무심하고 소홀하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어로는 ‘나아쯔’로서 경멸하다, 멸시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멸시하는 태도는 세 가지 면에서 나타납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남용한 것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그와의 언약을 파괴한 것을 고발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주장을 뒷받침할 물증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을 남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오용한 것은 사회의 한 부류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선지자는 관원들과 백성들을 동시에 비난함으로써 이스라엘 사회 전체가 하나님의 율법을 잘못 사용하고 있음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11-15절에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가져온 제물을 거부하십니다. 많은 제물, 수양의 번제물, 살찐 짐승의 기름, 수송아지의 피, 어린 양의 피, 숫염소의 피, 제물, 분향 등 하나님은 그들이 드리는 각종 헌금을 거부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들의 각종 예배를 거부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보이기 위해서 오는 것, 초하루, 안식일, 대회로 모이는 것, 거룩한 집회, 정한 절기 등 각종 예배, 수양회를 거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에 귀 기울이기를 거부하십니다. 기도는 가장 순수한 행위인데 그들이 팔을 벌리고 기도하는 것, 많이 기도하는 것 등 각종 기도를 거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심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오용하고 있음을 지적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고 훈계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하시는 순종은 어떤 것입니까? 16,17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결코 복잡하거나 화려하지 않습니다. 아주 간단명료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정의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착한 행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둘째,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태도는 윤리를 상실한 모습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21-27절을 보십시오.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정의가 거기에 충만하였고 공의가 그 가운데에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 네 은은 찌꺼기가 되었고 네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네 고관들은 패역하여 도둑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예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지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하지 아니하는도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하게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복하리라. 내가 또 내 손을 네게 돌려 네 찌꺼기를 잿물로 씻듯이 녹여 청결하게 하며 네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내가 네 재판관들을 처음과 같이, 네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불리리라 하셨나니 시온은 정의로 구속함을 받고 그 돌아온 자들은 공의로 구속함을 받으리라.” 이스라엘의 도덕적 타락을 보여주는 것은 구체적으로 경제 풍토가 썩었다는 것입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속이고 있습니다. 정치인들과 경제인들 사이에 부정부패가 성행하고 있습니다. 고급 공무원들이 뇌물을 먹고 도둑놈들의 뒤를 봐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건설 현장에서 현장 식당인 함바집 이용을 위해서 경찰 간부들이 뇌물을 먹은 것이 사회면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뇌물 문제는 공정한 거래를 방해합니다. 경제 풍토가 썩으면 서민들이 피해를 보고 권력을 가진 자들이 이득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퍼져 있는 음란한 문화는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대학가의 원룸 동거문화는 심각합니다. 대학생들의 57%가 혼전동거에 찬성한다고 설문에 답하였습니다. 동성애를 합법화시키고자 국회에 법안이 제출 중에 있습니다. 음란은 탐욕과 함께 결코 만족할 줄 모르는 죄입니다. 그런데 도덕적 몰락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가가 중요합니다. 그것은 부패한 신앙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여호와께 신실하던 성읍이 창기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신을 좇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질만능, 음란, 종교혼합주의 등이 백성들을 타락시키고 있습니다. 사회의 윤리문제는 종교의 몰락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셋째, 그들이 하나님을 멸시하는 증거는 종교적 혼합주의입니다. 28-31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라. 너희가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말미암아 너희가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가 택한 동산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할 것이며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 강한 자는 삼오라기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 같아서 함께 탈 것이나 끌 사람이 없으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도 꾸준히 예물을 드리면서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상수리나무는 가나안 사람들의 다산 종교들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버린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양다리를 걸치고 있습니다. 요즈음 학생들 사이에 기독교와 불교의 모습에서 혼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불교 사찰에서 성탄절 축하  플랭카드를 걸고, 목사님이 절에 가서 절을 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미국의 폴 니터 교수는 올 1월 1일 동화사에 가서 “부처님 없이 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었다”는 요지로 강연을 했습니다. 그는 종교간 대화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불교가 샤머니즘에 먹히고, 기독교도 샤머니즘에 먹히고 있는 상태에서 불교와 기독교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종교혼합주의가 세력을 떨치고 있습니다. 죤 스토트는 우리시대의 가장 큰 문제를 물질주의와 다원주의 그리고 나르시즘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우리가 다른 종교와 대화를 할 수는 있지만 구원의 도리를 포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종교 간의 갈등을 없애려는 노력은 중요하지만 복음을 전하고 선교하는 것까지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진리의 말씀을 상대화시키려는 시도에 분명하게 맞서서 순교자적인 자세로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패역한 자식과 같이 하나님을 버리고 떠난 자기 백성들을 어떻게 회복하고자 하십니까? 1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하나님은 먼저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는 길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서 징계를 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머니와 같은 사랑을 가지고 계시지만 아버지 하나님으로서 징계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 감싸주는 것이 아니라 징계하시고 훈련하시고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어머니 하나님이라 부르지 않고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가 그 자식을 징계하듯이 훈련하십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에게 매를 대십니다. 패역한 자들을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때리고 돌이키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유다 백성들은 앗수르 군사들에 의해서 성읍이 불에 타버렸습니다. 그들의 토지는 이방인들에 의해서 삼켜졌습니다. 이방인에게 성읍이 파괴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가운데서도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싸인 성읍같이 겨우 남겨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조금 남겨두지 않으셨다면 소돔과 같고 고모라와 같이 망해버렸을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징계하며 때리다가 부모 자신이 상심이 되어서 자녀를 끌어 안고 때린 매를 부수어 버리는 것과 같은 심정으로 하나님은 매를 거두시고 그들을 끌어안으십니다. 이스라엘 의 책임 있는 행동의 결과로 소망의 메시지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 때문에, 그들에 대한 긍휼 때문에 그들을 용서하시고 회복하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떠나 배반한 자녀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하나님은자신을 낮추십니다. 신앙은 이성과 함께 갑니다. 하나님과 다시 시작하는 것은 진지하고 논리적인 대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이성적인 것 같지만 실은 매우 불합리합니다. 지혜롭다고 하지만 실은 어리석습니다(롬 1:21b,22). 그래서 하나님은 논리적으로 잘 따져보고 대화를 하면 그들이 하나님께 나아와 할 이유를 알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고 영적 질서가 회복되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회복되면 아름답고 멋진 바이올린처럼 모든 것이 잘 연주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문제가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씻어주고 희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께로만 나아오라고 하십니다. 과거의 죄를 묻지 않겠다, 다 용서해 주겠다, 하나님께 나오기만 하면 된다고 하십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 주님의 씻음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뭔가 들고 나아가고자 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자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면 파멸과 멸망뿐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환자가 상처투성인 채로 의사에게 나오면 되는 것처럼 우리가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가면 됩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를 벌주는 것이 아니라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축복하고자 하십니다. 25,26절을 보십시오. “내가 또 내 손을 네게 돌려 네 찌꺼기를 잿물로 씻듯이 녹여 청결하게 하며 네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내가 네 재판관들을 처음과 같이, 네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불리리라.” 시온은 정의로 구속함을 받고 그 돌아온 자들은 공의로 구속함을 받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손을 우리에게 돌려 나의 경외심이 없는 마음, 혼합주의, 음란, 이기심, 교만, 고집과 미움, 부도덕에 대해서 잿물로 씻듯이 녹여 청결하게 하십니다. 내 속에 있는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십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피로 나의 더러움을 씻어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능력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바꾸어 주심으로 행동을 바꾸십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바로잡아주심으로 바른 행동을 하게 하십니다. 돌같이 굳은 마음을 살같이 부드럽게 만드십니다. 우리의 병든 마음을 치유하심으로 부드럽게 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깨끗하게 하십니다. 죄로 물든 우리의 마음은 잘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를 완전히 빼시고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에 맘몬이즘과 음란과 폭력성이 난무한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먹고 신자들이 고개를 들고 다니기가 어렵습니다. 가장 부유하고 학식이 높은 신자들이 많은 교회요 이 나라를 움직이는 리더들이 많은 교회에서 목사가 목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새해 첫 주일예배가 끝난 후에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국교회 청년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젊은 목회가가 성추행으로 사임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여기저기 목회자와 평신도 리더들의 죄악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교회의 리더들로 인해서 신자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사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음란과 폭력, 물질 우상숭배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지 않으면 한반도에 전쟁이 닥칠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우리 동역자들이 주일 예배를 빠지지 않고 드리는 것을 생각할 때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주일을 섬깁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데 시간을 잘 맞추어서 예배에 늦지 않게 와서 준비된 마음으로 드리면 더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과 같이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의 죄가 우리의 죄입니다. 그들과 우리는 한 몸입니다. 우리가 더욱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 앞에서 깨어있지 않음으로 인해서 병이 깊이 든 줄도 모르면서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복음에 대해 식어진 열정과 안일을 사랑하는 마음,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용서해 주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난한 마음을 주시고 주님과 함께 고난을 받으면서 제자의 길을 가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숱한 약점과 허물이 있지만 교회는 여전히 우리의 희망입니다. 이 세상의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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