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21년 요22강(17:1-26)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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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요한복음 제 22 강
말씀 | 요한복음 17:1-26
요절 | 요한복음 17:11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다락방 강화를 마무리 하시고 기도하셨습니다. 말씀과 기도는 함께 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모범처럼 우리도 말씀을 공부하고 나서 기도에 힘을 써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1-5), 제자들을 위해(6-19), 그리고 모든 신자들을 위해(20-26) 기도하셨습니다. 이 시간 예수님이 기도하신 내용이 무엇인지 자세히 살펴보면서 우리도 예수님의 기도를 배우기를 원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이 영화롭게 되시도록 기도하셨습니다(1-5). 예수님께서 다락방에서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이 때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입니다. 대속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주신 일을 이루실 때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죄를 사하고 구원하는 일을 위해서 고난을 받고 죽으셔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소원으로 충만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아버지라는 단어가 39번 나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신뢰하는가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을 영화롭게 하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요한복음의 특징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경쟁에서 승리하고 업적을 남기고 많은 것을 소유하여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때 영광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고난과 죽음을 영광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이 고난을 받는 것이 영광이요,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두 가지와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나누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인들에게 생명을 가져다주십니다. 이 생명은 영생으로서 위로부터 오는 생명 곧 하나님 나라의 생명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예수님께 모든 사람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그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는 그가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3:16, 요일 4:7-14).
3절에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영생은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이 우리를 아시는 것입니다. 안다는 것은 체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용서를 아는 것입니다. 그의 능력을 아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관계가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그의 고난과 부활을 아는 것입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지금까지 희생적인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고, 이제는 죽음을 통해서 영화롭게 하고자 하십니다(12:28).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깊이 덧입은 사도 바울은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빌1:20). 고린도전서 10:31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우리의 인생 목적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제는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남은 사명을 완수하십니다. 그런 후에 “다 이루었다” 말씀하시고 운명하십니다(19:30). 이렇게 예수님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100% 이루셔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이 땅에서 하라고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녀들을 잘 양육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장 생활을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감당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학업을 잘 감당하고 장래를 위해서 준비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목자 생활에 따르는 희생과 고난을 기쁨으로 감당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둘째, 제자들을 위한 기도(6-19). 10,11절을 보십시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제자들로 인해 감사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순종과 섬김을 통해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위해서 네 가지를 기도하십니다. 첫째로, 그들이 보전되도록 기도하십니다. 제자들을 미워하는 자들이 세상에 있습니다. 이는 제자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예수님께 속해 있기 때문에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제자들을 보전하고자 기도하십니다. 사탄의 권세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박살났지만 그는 사탄을 유명무실한 존재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악한 자의 위험에 대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건강과 사업, 우리가 결정해야 하는 것들, 물질 문제, 가정 문제에 대해서 더 많은 시간을 기도하지만 정작 사탄의 유혹과 공격에 대해서는 무지하여 별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악령의 역사를 분별하고 예수님의 이름 권세에 의지해서 영적인 싸움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자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욕심을 따라서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세상 유혹은 언제나 신자들을 위험에 빠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다. 세상 것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거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합니다. 우리는 악령과 세상의 유혹과 거짓됨과 죄악을 분별하고 악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이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하나가 되지 못하도록 이간질을 시키고 불신을 조장하고 오해하게 만드는 일을 귀신 같이 잘 합니다. 제자들이 하나가 되기 어려운 점들이 있습니다. 서로 크고자 하고 자기 주장만 할 때 하나 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고 서로 사랑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자기 문제가 있지만 서로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고자 힘쓰는 것이 마귀의 공격을 막고 하나가 되는 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힘써 사랑하다보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부부 사이도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힘쓸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됨의 모델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를 이루고 계십니다. 우리도 거룩한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가 된다고 해서 획일적이 되라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다양성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위해서 우리 모두에게 각양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 은사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김으로 사랑이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건강한 한 몸을 이루게 됩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이 기뻐하도록 기도하십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제자들은 앞으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면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고 고난을 받게 되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그 모든 고난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은 이 세상이 주는 기쁨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예수님은 그 안에 있는 기쁨을 사랑하는 제자들도 누리도록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은 현재 우리에게도 이 기쁨을 주십니다. 우리 각자가 어려움이 있고 슬픔도 있고 아픔이 있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기쁨은 하나님 나라의 특징입니다.
네 번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이 악에 빠지지 않고 진리로 거룩하게 되도록 기도하십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악된 이 세상을 떠나 산 속에 들어가서 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봉쇄수도원을 만들어 그 속에 들어가서 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도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악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악한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내가 깨어지는 고난도 받고 영적으로 깨어 있게 됩니다. 더 나아가 악한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믿도록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가라지 비유를 볼 때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나를 반대하는 사람들, 의견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 미워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그들과 함께 살면서 악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을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을 닮지 말아야 합니다. 세속화되지 말아야 합니다. 도리어 소금의 맛을 내야 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악에 빠지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려면 진리의 말씀이 내 안에 있어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고 악과 거짓을 분별하게 하고 악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줍니다(15: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검과 같아서 우리의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폐부를 찌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울과 같이 나의 더러워진 양심을 발견하게 하고 나의 교만을 꺾게 해 주십니다. 나의 거만한 모습을 부수어 겸손하게 하십니다. 나의 음란하고 정욕적인 마음을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내 힘으로는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가치관을 바로 잡아 주시고, 진리가 무엇인지 알게 해 주시고, 자유를 주십니다. 말씀은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말씀을 미리 준비해서 공부하고 받은 말씀을 암송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럴 때 말씀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말씀 공부는 지적 유희가 아니라 가치관을 바꾸고, 성품을 바꾸고,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예수님도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또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이 자신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이유를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진리의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진리를 깨닫게 함으로서 거룩함을 얻게 합니다.
셋째, 우리를 포함해서 모든 신자들을 위한 기도(20-26). 20절을 보십시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현재 제자들의 모습은 영적으로 어리고 부족하지만 앞으로 그들이 많은 양들을 섬기는 목자들이 되고 열매를 맺을 것을 예수님은 믿음으로 바라보십니다. 제자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신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여기에는 우리도 포함되어 있고 우리를 통해서 믿게 될 양들도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통해서 이루어질 만민 구원 역사를 소망하며 대제사장적인 기도를 드리십니다.
21-23절을 보십시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예수님은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그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또한 교회가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우리가 하나가 됨으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과 또 예수님을 사랑하심 같이 우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하십니다. 사랑으로 하나가 될 때 세상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알게 됩니다. 신자들을 향한 주님의 간절한 소원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소원과 뜻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가 된 것처럼 교회 공동체도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질서 속에서 아내와 남편이, 아버지와 아들이, 교회의 지도자와 성도들이 하나를 이룰 때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혼자서 독립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머리로 한 몸인 교회 공동체의 지체로서 생활하는 것입니다. 몸의 지체는 머리의 지시를 받아서 다른 지체와 조화를 이루어서 움직이는 것처럼, 모든 신자가 내주 하시는 주님의 인도함을 받아 순종하고 섬기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혼자서 자기 나름대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예수님께 속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자기 생각과 자기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어서 하나가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자신을 훈련하여 연단된, 성숙한 사람만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다양성 속에서 조화와 일치를 이루며 살 수 있으려면 우리가 성장할 뿐만 아니라 성숙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믿는 사람들이 왜 저래? 우리와 똑같잖아! 우리와 똑같은데 굳이 교회에 다닐 필요가 있겠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돕고 사랑하면, “역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달라도 뭐가 달라!”하면서 동경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 되기를 힘쓰면서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할 수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도 그 영광에 동참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했던 그 사랑이 영원히 제자들에게도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이 그들 안에 있어서 하나님과 예수님과 모든 신자들이 사랑의 연합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하십니다. 참으로 예수님의 기도는 깊고도 놀랍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간절한 소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 거룩하고 서로 사랑하는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질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합니다.
말씀 | 요한복음 17:1-26
요절 | 요한복음 17:11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다락방 강화를 마무리 하시고 기도하셨습니다. 말씀과 기도는 함께 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모범처럼 우리도 말씀을 공부하고 나서 기도에 힘을 써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1-5), 제자들을 위해(6-19), 그리고 모든 신자들을 위해(20-26) 기도하셨습니다. 이 시간 예수님이 기도하신 내용이 무엇인지 자세히 살펴보면서 우리도 예수님의 기도를 배우기를 원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이 영화롭게 되시도록 기도하셨습니다(1-5). 예수님께서 다락방에서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이 때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입니다. 대속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주신 일을 이루실 때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죄를 사하고 구원하는 일을 위해서 고난을 받고 죽으셔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소원으로 충만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아버지라는 단어가 39번 나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신뢰하는가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을 영화롭게 하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요한복음의 특징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경쟁에서 승리하고 업적을 남기고 많은 것을 소유하여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때 영광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고난과 죽음을 영광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이 고난을 받는 것이 영광이요,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두 가지와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나누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인들에게 생명을 가져다주십니다. 이 생명은 영생으로서 위로부터 오는 생명 곧 하나님 나라의 생명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예수님께 모든 사람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아들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그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는 그가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3:16, 요일 4:7-14).
3절에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영생은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이 우리를 아시는 것입니다. 안다는 것은 체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용서를 아는 것입니다. 그의 능력을 아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관계가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그의 고난과 부활을 아는 것입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지금까지 희생적인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고, 이제는 죽음을 통해서 영화롭게 하고자 하십니다(12:28).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깊이 덧입은 사도 바울은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빌1:20). 고린도전서 10:31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우리의 인생 목적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제는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남은 사명을 완수하십니다. 그런 후에 “다 이루었다” 말씀하시고 운명하십니다(19:30). 이렇게 예수님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100% 이루셔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이 땅에서 하라고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녀들을 잘 양육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장 생활을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감당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학업을 잘 감당하고 장래를 위해서 준비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목자 생활에 따르는 희생과 고난을 기쁨으로 감당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둘째, 제자들을 위한 기도(6-19). 10,11절을 보십시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제자들로 인해 감사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순종과 섬김을 통해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위해서 네 가지를 기도하십니다. 첫째로, 그들이 보전되도록 기도하십니다. 제자들을 미워하는 자들이 세상에 있습니다. 이는 제자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예수님께 속해 있기 때문에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제자들을 보전하고자 기도하십니다. 사탄의 권세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박살났지만 그는 사탄을 유명무실한 존재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악한 자의 위험에 대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건강과 사업, 우리가 결정해야 하는 것들, 물질 문제, 가정 문제에 대해서 더 많은 시간을 기도하지만 정작 사탄의 유혹과 공격에 대해서는 무지하여 별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악령의 역사를 분별하고 예수님의 이름 권세에 의지해서 영적인 싸움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자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욕심을 따라서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세상 유혹은 언제나 신자들을 위험에 빠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다. 세상 것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거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합니다. 우리는 악령과 세상의 유혹과 거짓됨과 죄악을 분별하고 악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이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하나가 되지 못하도록 이간질을 시키고 불신을 조장하고 오해하게 만드는 일을 귀신 같이 잘 합니다. 제자들이 하나가 되기 어려운 점들이 있습니다. 서로 크고자 하고 자기 주장만 할 때 하나 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고 서로 사랑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자기 문제가 있지만 서로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고자 힘쓰는 것이 마귀의 공격을 막고 하나가 되는 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힘써 사랑하다보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부부 사이도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힘쓸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됨의 모델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를 이루고 계십니다. 우리도 거룩한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가 된다고 해서 획일적이 되라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다양성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위해서 우리 모두에게 각양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 은사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섬김으로 사랑이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건강한 한 몸을 이루게 됩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이 기뻐하도록 기도하십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제자들은 앞으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면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고 고난을 받게 되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그 모든 고난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은 이 세상이 주는 기쁨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예수님은 그 안에 있는 기쁨을 사랑하는 제자들도 누리도록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은 현재 우리에게도 이 기쁨을 주십니다. 우리 각자가 어려움이 있고 슬픔도 있고 아픔이 있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기쁨은 하나님 나라의 특징입니다.
네 번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이 악에 빠지지 않고 진리로 거룩하게 되도록 기도하십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악된 이 세상을 떠나 산 속에 들어가서 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봉쇄수도원을 만들어 그 속에 들어가서 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도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악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악한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내가 깨어지는 고난도 받고 영적으로 깨어 있게 됩니다. 더 나아가 악한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믿도록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가라지 비유를 볼 때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나를 반대하는 사람들, 의견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 미워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그들과 함께 살면서 악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을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을 닮지 말아야 합니다. 세속화되지 말아야 합니다. 도리어 소금의 맛을 내야 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악에 빠지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려면 진리의 말씀이 내 안에 있어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고 악과 거짓을 분별하게 하고 악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줍니다(15: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검과 같아서 우리의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폐부를 찌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울과 같이 나의 더러워진 양심을 발견하게 하고 나의 교만을 꺾게 해 주십니다. 나의 거만한 모습을 부수어 겸손하게 하십니다. 나의 음란하고 정욕적인 마음을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내 힘으로는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가치관을 바로 잡아 주시고, 진리가 무엇인지 알게 해 주시고, 자유를 주십니다. 말씀은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말씀을 미리 준비해서 공부하고 받은 말씀을 암송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그럴 때 말씀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말씀 공부는 지적 유희가 아니라 가치관을 바꾸고, 성품을 바꾸고,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예수님도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또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이 자신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이유를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진리의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진리를 깨닫게 함으로서 거룩함을 얻게 합니다.
셋째, 우리를 포함해서 모든 신자들을 위한 기도(20-26). 20절을 보십시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현재 제자들의 모습은 영적으로 어리고 부족하지만 앞으로 그들이 많은 양들을 섬기는 목자들이 되고 열매를 맺을 것을 예수님은 믿음으로 바라보십니다. 제자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신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여기에는 우리도 포함되어 있고 우리를 통해서 믿게 될 양들도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통해서 이루어질 만민 구원 역사를 소망하며 대제사장적인 기도를 드리십니다.
21-23절을 보십시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예수님은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그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또한 교회가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우리가 하나가 됨으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과 또 예수님을 사랑하심 같이 우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하십니다. 사랑으로 하나가 될 때 세상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알게 됩니다. 신자들을 향한 주님의 간절한 소원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소원과 뜻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가 된 것처럼 교회 공동체도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질서 속에서 아내와 남편이, 아버지와 아들이, 교회의 지도자와 성도들이 하나를 이룰 때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혼자서 독립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머리로 한 몸인 교회 공동체의 지체로서 생활하는 것입니다. 몸의 지체는 머리의 지시를 받아서 다른 지체와 조화를 이루어서 움직이는 것처럼, 모든 신자가 내주 하시는 주님의 인도함을 받아 순종하고 섬기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혼자서 자기 나름대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예수님께 속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자기 생각과 자기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어서 하나가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자신을 훈련하여 연단된, 성숙한 사람만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다양성 속에서 조화와 일치를 이루며 살 수 있으려면 우리가 성장할 뿐만 아니라 성숙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믿는 사람들이 왜 저래? 우리와 똑같잖아! 우리와 똑같은데 굳이 교회에 다닐 필요가 있겠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돕고 사랑하면, “역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달라도 뭐가 달라!”하면서 동경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 되기를 힘쓰면서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할 수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도 그 영광에 동참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했던 그 사랑이 영원히 제자들에게도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이 그들 안에 있어서 하나님과 예수님과 모든 신자들이 사랑의 연합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하십니다. 참으로 예수님의 기도는 깊고도 놀랍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간절한 소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 거룩하고 서로 사랑하는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질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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