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21년 요21강(16:1-33)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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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요한복음 제 21 강
말씀 | 요한복음 16:1-33
요절 | 요한복음 16:13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지난 주 우리는 예수님 안에 거하라는 말씀을 통해서 열매 맺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할 때 변화된 삶을 살게 됩니다. 성품의 열매, 전도의 열매, 제자 양성의 열매, 구제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삼년 동안 제자들과 늘 함께 하시며 보호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말씀을 가르치시고, 믿음을 갖도록 도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내어 인도하신 것처럼 성령을 보내어 제자들을 인도하십니다. 이 시간 우리는 성령께서 오셔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배우기를 원합니다.
첫째,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 세상을 책망하시는 성령님(1-11). 예수님은 제자들이 앞으로 당할 일에 실족하지 않도록 미리 백신주사를 놓아주십니다. 사람들이 제자들을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그들을 죽일 것인데 제자들을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AD 90년 얌니아 회의에서 기독교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회당에서 쫓아냅니다. 출교는 사회적인 살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제가 끊기고 경제 활동을 못함으로 생계가 위협을 당합니다. 제자들이 여러 모양의 핍박을 받지만 성령께서 오셔서 그들을 보호하시고 위로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마음에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떠나가는 것이 제자들에게 유익합니다.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시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제자들이 어디로 가든지 항상 함께 하시며 도우실 수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지혜가 필요하면 지혜를 주시고, 능력이 필요하면 능력을 주시고 고난을 받을 때 위로해 주십니다. 이런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해서 제자들은 자립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은 다른 보혜사로서 보호하고 은혜를 베푸시고 가르치는 선생이십니다. 보혜사는 헬라어로는 파라클레토스로서 ‘옆에서 돕는 자’, ‘위로자’, ‘상담자’라는 뜻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이 성령님을 가리켜서 ‘여편네’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여편네는 ‘옆에 있는 아내’의 줄임말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항상 우리 옆에 계셔서 우리를 편들어 주시기 때문에 여편네와 같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8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돕는 배필이 아내를 말하는데 돕는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돕는 것과 같은 단어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와 거하십니다. 성령님은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십니다(사 11:2).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증언하십니다(15:26). 즉 제자들이 예수님을 증언할 때에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여시고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복음을 듣는 사람의 마음에 빛을 비추심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게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교회를 통하여, 환경을 통하여, 기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개인적이며, 사실적이고, 실제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아버지가 하는 일을 제자들로 알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보고 그 일에 동참하신 것처럼(요 5:19),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계시하시고 동참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위에 있는 친구들이 예수님을 알고자 하는 소원을 갖고 말을 할 때 하나님이 일하심을 보고 그 일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 친구에게 말씀을 전함으로 그를 주님께로 이끌 수가 있습니다.
8-11절을 보십시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첫째로, 성령께서 사람의 죄를 책망한다는 것은 죄에 대해서 깨닫게 한다는 뜻입니다. 성령께서는 죄를 깨닫게 할 뿐만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능력도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이 가장 큰 죄라는 것을 깨우쳐주십니다. 세상 사람들의 죄의 개념은 도덕적이고 상대적입니다. 간음이나 살인이나 도둑질 같은 것은 죄로 생각해서 죄를 범하면 죄의식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을 죄로 생각하고 죄의식에 시달리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불신앙은 모든 죄의 뿌리입니다. 로마서 14:23에서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예수님은 고향에 가셨을 때 사람들이 믿지 아니함으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1:8은 말씀합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는 2호입니다. 모든 도덕적인 죄와 사회적인 악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은 불신앙에서 온 것입니다.
둘째로, 성령께서는 의에 대해서 깨닫게 하십니다. ‘의’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성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됩니다. 즉 예수님이 ‘하나님의 의’라는 것을 성령께서 알려주십니다. 하나님 없이 살고자하는 것이 죄인 반면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믿는 것이 의입니다. 사람들은 도덕적인 삶을 살며 선행을 많이 하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는 자신의 선한 행실을 통해서 하늘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킴으로서 의롭게 되고자 했습니다. 자기 의가 많은 사람일수록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죄인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자기 의에 기초해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 죄인입니다. 로마서 3장 10절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1장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셋째로,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성령께서는 세상 임금이 심판받았음을 깨우쳐주십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건은 죄와 사망의 권세로 세상을 통치하던 사탄이 그의 권세를 잃어버렸음을 보여줍니다. 마태복음 12장 28,29절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보혜사 성령은 제자들을 통해서 사람들 속에 역사하는 악령을 몰아내시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십니다. 성령의 역사 없이는 누구도 진실하게 회개하고 거듭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사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는 역사, 죄를 이기고 거룩한 삶을 사는 역사, 악령이 떠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십니다.
둘째,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진리를 헬라어로 ‘알레세이아’라고 하는데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 즉 존재하는 것을 뜻합니다. 영어로는 truth 진실이고 반대말은 거짓,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과 우상은 대립이 됩니다. 우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데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우상숭배는 거짓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진리는 인격체입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깨우쳐주십니다. 예수님이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 6:53,54).” 이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어렵다고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성령께서 오셔서 이 말씀이 진리임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믿고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이심을 처음에는 제자들이 몰랐지만 성령께서 오신 이후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이 성전이요, 성령이 거하시는 우리 몸이 성전인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전 6:19).” 이와 같이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진리를 계시하시고 가르치십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또 예수님의 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알리십니다. 성령께서 일하시는 곳에 예수님이 드러납니다. 성령은 예수님이 하신 사역을 바탕으로 구원을 이루셔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제자들은 그동안 예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을 기억하게 되었고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사람들에게 전파합니다. 또한 자신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듣고 경험한 모든 일들을 복음서에 기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진리 가운데 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을 기록한 것이 사도행전입니다.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깥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이 말씀대로 제자들에게 또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자 수많은 선교사님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선교 역사는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강력한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성령께서 빌립집사에게 가사에 있는 광야길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가사의 광야 길에 누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러나 빌립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나갔을 때에 그곳에는 에디오피아의 국고를 맡은 내시가 마차를 타고 가며 이사야서 53장 말씀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는 말씀이 어려워서 성경선생을 간절히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빌립집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그를 찾아와서 말씀을 가르쳐 줌으로 복음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내 주위에 있는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말을 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심임을 알고 기회를 잡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은 소아시아 비두니아 지방으로 가고자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이를 막으셨습니다. 환경을 통해서 성령께서 그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밤에 바울에게 마게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마게도니아와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시오.” 성령께서 바울을 유럽으로 보내셨습니다. 바울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배를 타고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기도하러 가다가 루디아를 만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복음을 영접하고 자기의 집을 가정교회로 드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유럽개척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십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도 말씀의 뜻을 깨닫도록 우리의 마음을 밝혀주십니다. 이를 ‘성령의 조명’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주일 메시지를 들을 때에도 마음에 감동이 있으면 메모를 하고 소감을 쓰면서 나에게 개인적으로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순종함으로 구원 역사에 참여하게 되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셋째, 기쁨을 주시는 성령. 조금 있으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기 때문에 제자들은 그를 볼 수 없습니다. 또 조금 후에 예수님이 부활하시면 제자들은 그를 보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근심했으나 그가 부활하심으로 기뻐하게 됩니다. 여자들은 아기를 낳을 때가 다가오면 그 고통을 생각하고 근심합니다. 그러나 아기를 낳으면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둘, 셋, 넷 아기를 계속 낳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해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오심으로 그들의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기쁨은 사랑과 함께 성령의 열매입니다.
또한 제자들이 기도의 응답을 받음으로 기뻐합니다. 23,24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신앙생활의 특권은 죄 사함을 받은 기쁨, 성령의 열매로 인한 기쁨, 기도의 응답을 받음으로 인한 기쁨 등 기쁨입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때 성령께서는 우리 속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하나님께 중보기도해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주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우리가 근심하고 불평하고 두려워하는 대신에 기도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말할 수 없는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십니다(엡 3:20).
헤롯 왕은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아 죽이려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베드로는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자고 있었습니다. 그 만큼 그는 평안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주의 사자가 홀연히 나타나 자는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웠습니다. 그를 결박했던 쇠사슬이 풀리고 첫째,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하는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렸습니다. 베드로가 성도들에게 갔는데 기도하는 중이었습니다. 로데라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너무 기뻐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서 “베드로가 문 밖에 섰더라”고 하니 사람들이 네가 미쳤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실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한 후에 하나님의 응답이 어떻게 오는지 주시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놀라운 이적을 베푸시며 그들에게 기쁨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말씀 공부나 요회 모임 시간에 최근에 기도 응답 받은 것을 나누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 요회 목자 모임에서 나누었는데 많은 기도 응답이 있었습니다. 한 목자님은 직장에서 자격이 안 되었지만 승진을 하고 부서를 이동하는 기도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한 목자님은 자녀가 대학 입학 자격을 얻어서 기뻐하였습니다. 한 목자님은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했지만 자신을 더 겸손하게 하시는 주님으로 인해서 기뻐하였습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이긴 싸움을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당하고 핍박을 받아도 예수님으로 인해 기뻐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사는 동안 진리의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진리 가운데 살아갑니다. 우리가 성령의 역사하심을 더욱 민감하게 깨닫고 그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성령께서 슬퍼하십니다. 불순종은 우리의 영적 민감도를 둔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성령을 소멸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고 더욱 친밀하게 그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십시오. 진리의 성령께서 우리를 말씀을 통해서, 환경 속에서, 기도 가운데, 성도의 교제 가운데 말씀하시며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시는 나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말씀 | 요한복음 16:1-33
요절 | 요한복음 16:13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지난 주 우리는 예수님 안에 거하라는 말씀을 통해서 열매 맺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할 때 변화된 삶을 살게 됩니다. 성품의 열매, 전도의 열매, 제자 양성의 열매, 구제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삼년 동안 제자들과 늘 함께 하시며 보호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말씀을 가르치시고, 믿음을 갖도록 도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내어 인도하신 것처럼 성령을 보내어 제자들을 인도하십니다. 이 시간 우리는 성령께서 오셔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배우기를 원합니다.
첫째,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 세상을 책망하시는 성령님(1-11). 예수님은 제자들이 앞으로 당할 일에 실족하지 않도록 미리 백신주사를 놓아주십니다. 사람들이 제자들을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그들을 죽일 것인데 제자들을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AD 90년 얌니아 회의에서 기독교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회당에서 쫓아냅니다. 출교는 사회적인 살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제가 끊기고 경제 활동을 못함으로 생계가 위협을 당합니다. 제자들이 여러 모양의 핍박을 받지만 성령께서 오셔서 그들을 보호하시고 위로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마음에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떠나가는 것이 제자들에게 유익합니다.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시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제자들이 어디로 가든지 항상 함께 하시며 도우실 수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지혜가 필요하면 지혜를 주시고, 능력이 필요하면 능력을 주시고 고난을 받을 때 위로해 주십니다. 이런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해서 제자들은 자립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은 다른 보혜사로서 보호하고 은혜를 베푸시고 가르치는 선생이십니다. 보혜사는 헬라어로는 파라클레토스로서 ‘옆에서 돕는 자’, ‘위로자’, ‘상담자’라는 뜻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이 성령님을 가리켜서 ‘여편네’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여편네는 ‘옆에 있는 아내’의 줄임말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항상 우리 옆에 계셔서 우리를 편들어 주시기 때문에 여편네와 같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8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돕는 배필이 아내를 말하는데 돕는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돕는 것과 같은 단어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와 거하십니다. 성령님은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십니다(사 11:2).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증언하십니다(15:26). 즉 제자들이 예수님을 증언할 때에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여시고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복음을 듣는 사람의 마음에 빛을 비추심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게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교회를 통하여, 환경을 통하여, 기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개인적이며, 사실적이고, 실제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아버지가 하는 일을 제자들로 알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보고 그 일에 동참하신 것처럼(요 5:19),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계시하시고 동참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위에 있는 친구들이 예수님을 알고자 하는 소원을 갖고 말을 할 때 하나님이 일하심을 보고 그 일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 친구에게 말씀을 전함으로 그를 주님께로 이끌 수가 있습니다.
8-11절을 보십시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첫째로, 성령께서 사람의 죄를 책망한다는 것은 죄에 대해서 깨닫게 한다는 뜻입니다. 성령께서는 죄를 깨닫게 할 뿐만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능력도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이 가장 큰 죄라는 것을 깨우쳐주십니다. 세상 사람들의 죄의 개념은 도덕적이고 상대적입니다. 간음이나 살인이나 도둑질 같은 것은 죄로 생각해서 죄를 범하면 죄의식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을 죄로 생각하고 죄의식에 시달리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불신앙은 모든 죄의 뿌리입니다. 로마서 14:23에서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예수님은 고향에 가셨을 때 사람들이 믿지 아니함으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1:8은 말씀합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는 2호입니다. 모든 도덕적인 죄와 사회적인 악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은 불신앙에서 온 것입니다.
둘째로, 성령께서는 의에 대해서 깨닫게 하십니다. ‘의’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성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됩니다. 즉 예수님이 ‘하나님의 의’라는 것을 성령께서 알려주십니다. 하나님 없이 살고자하는 것이 죄인 반면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믿는 것이 의입니다. 사람들은 도덕적인 삶을 살며 선행을 많이 하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는 자신의 선한 행실을 통해서 하늘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킴으로서 의롭게 되고자 했습니다. 자기 의가 많은 사람일수록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죄인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자기 의에 기초해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 죄인입니다. 로마서 3장 10절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1장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셋째로,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성령께서는 세상 임금이 심판받았음을 깨우쳐주십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건은 죄와 사망의 권세로 세상을 통치하던 사탄이 그의 권세를 잃어버렸음을 보여줍니다. 마태복음 12장 28,29절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보혜사 성령은 제자들을 통해서 사람들 속에 역사하는 악령을 몰아내시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십니다. 성령의 역사 없이는 누구도 진실하게 회개하고 거듭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사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는 역사, 죄를 이기고 거룩한 삶을 사는 역사, 악령이 떠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십니다.
둘째,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진리를 헬라어로 ‘알레세이아’라고 하는데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 즉 존재하는 것을 뜻합니다. 영어로는 truth 진실이고 반대말은 거짓,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과 우상은 대립이 됩니다. 우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데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우상숭배는 거짓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진리는 인격체입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깨우쳐주십니다. 예수님이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 6:53,54).” 이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어렵다고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성령께서 오셔서 이 말씀이 진리임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믿고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이심을 처음에는 제자들이 몰랐지만 성령께서 오신 이후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이 성전이요, 성령이 거하시는 우리 몸이 성전인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전 6:19).” 이와 같이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진리를 계시하시고 가르치십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성령께서는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또 예수님의 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알리십니다. 성령께서 일하시는 곳에 예수님이 드러납니다. 성령은 예수님이 하신 사역을 바탕으로 구원을 이루셔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제자들은 그동안 예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을 기억하게 되었고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사람들에게 전파합니다. 또한 자신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듣고 경험한 모든 일들을 복음서에 기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진리 가운데 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을 기록한 것이 사도행전입니다.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깥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이 말씀대로 제자들에게 또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자 수많은 선교사님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선교 역사는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강력한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성령께서 빌립집사에게 가사에 있는 광야길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가사의 광야 길에 누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러나 빌립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나갔을 때에 그곳에는 에디오피아의 국고를 맡은 내시가 마차를 타고 가며 이사야서 53장 말씀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는 말씀이 어려워서 성경선생을 간절히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빌립집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그를 찾아와서 말씀을 가르쳐 줌으로 복음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내 주위에 있는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말을 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심임을 알고 기회를 잡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은 소아시아 비두니아 지방으로 가고자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이를 막으셨습니다. 환경을 통해서 성령께서 그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밤에 바울에게 마게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마게도니아와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시오.” 성령께서 바울을 유럽으로 보내셨습니다. 바울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배를 타고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기도하러 가다가 루디아를 만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복음을 영접하고 자기의 집을 가정교회로 드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유럽개척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십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도 말씀의 뜻을 깨닫도록 우리의 마음을 밝혀주십니다. 이를 ‘성령의 조명’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주일 메시지를 들을 때에도 마음에 감동이 있으면 메모를 하고 소감을 쓰면서 나에게 개인적으로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순종함으로 구원 역사에 참여하게 되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셋째, 기쁨을 주시는 성령. 조금 있으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기 때문에 제자들은 그를 볼 수 없습니다. 또 조금 후에 예수님이 부활하시면 제자들은 그를 보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근심했으나 그가 부활하심으로 기뻐하게 됩니다. 여자들은 아기를 낳을 때가 다가오면 그 고통을 생각하고 근심합니다. 그러나 아기를 낳으면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둘, 셋, 넷 아기를 계속 낳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해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오심으로 그들의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기쁨은 사랑과 함께 성령의 열매입니다.
또한 제자들이 기도의 응답을 받음으로 기뻐합니다. 23,24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신앙생활의 특권은 죄 사함을 받은 기쁨, 성령의 열매로 인한 기쁨, 기도의 응답을 받음으로 인한 기쁨 등 기쁨입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때 성령께서는 우리 속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하나님께 중보기도해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주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우리가 근심하고 불평하고 두려워하는 대신에 기도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말할 수 없는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십니다(엡 3:20).
헤롯 왕은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아 죽이려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베드로는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자고 있었습니다. 그 만큼 그는 평안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주의 사자가 홀연히 나타나 자는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웠습니다. 그를 결박했던 쇠사슬이 풀리고 첫째,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하는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렸습니다. 베드로가 성도들에게 갔는데 기도하는 중이었습니다. 로데라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너무 기뻐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서 “베드로가 문 밖에 섰더라”고 하니 사람들이 네가 미쳤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실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한 후에 하나님의 응답이 어떻게 오는지 주시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놀라운 이적을 베푸시며 그들에게 기쁨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말씀 공부나 요회 모임 시간에 최근에 기도 응답 받은 것을 나누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 요회 목자 모임에서 나누었는데 많은 기도 응답이 있었습니다. 한 목자님은 직장에서 자격이 안 되었지만 승진을 하고 부서를 이동하는 기도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한 목자님은 자녀가 대학 입학 자격을 얻어서 기뻐하였습니다. 한 목자님은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했지만 자신을 더 겸손하게 하시는 주님으로 인해서 기뻐하였습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이긴 싸움을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당하고 핍박을 받아도 예수님으로 인해 기뻐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사는 동안 진리의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진리 가운데 살아갑니다. 우리가 성령의 역사하심을 더욱 민감하게 깨닫고 그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성령께서 슬퍼하십니다. 불순종은 우리의 영적 민감도를 둔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성령을 소멸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고 더욱 친밀하게 그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십시오. 진리의 성령께서 우리를 말씀을 통해서, 환경 속에서, 기도 가운데, 성도의 교제 가운데 말씀하시며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시는 나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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