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21년 요20강(15:1-27) 내 안에 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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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요한복음 제 20 강
말씀 | 요한복음 15:1-27
요절 | 요한복음 15:4
내 안에 거하라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사 믿음의 조상이요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습니다. 그의 후손 이스라엘 민족을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이를 누리면서 선민의 특권만을 주장했지 이방인들에게 말씀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쓸모없는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을 앗시리아와 바벨론에 망하게 하셨습니다. 그 이후에 하나님은 참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을 보내시고 그를 통해서 교회를 세우시고 세상 만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구원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런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오늘 말씀을 제자들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택하여 부르신 소망이 무엇인지 배우는 가운데 많은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우리 안에 기쁨이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열매 맺기 위해서 가지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이 비유에서 하나님 아버지는 농부로서 참 포도나무에서 열매가 많이 맺도록 부지런히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그 한 가운데에 망대를 세우고 거기에 포도주 짜는 곳도 파 놓고, 좋은 포도가 맺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열린 것이라고는 들포도 뿐이었습니다. 포도나무였던 이스라엘은 선한 일 하기를 기대했는데 보이는 것은 살육 뿐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옳은 일을 하기를 기대했는데 들리는 것은 그들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울부짖음 뿐이었습니다(이사야 5:2,7). 농부 되신 하나님께서는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두 가지입니다. 가지가 두 가지입니다. 예수님께 붙어 있는데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와 열매를 맺는 가지입니다. 먼저 예수님께 붙어 있는데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좋은 열매를 맺기를 원하셨지만 들포도를 맺자 그들을 잘라버리셨습니다. 가룟 유다도 잘라버리셨습니다. 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를 잘라버리실까요? 그 가지가 말라버렸기 때문입니다. 말라버린 가지는 더 이상 열매를 맺을 가능성이 없습니다. 예수님께 붙어 있는데 수분과 양분이 물관과 체관을 통해서 흘러야 하는데 어딘가 막혀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 붙어 있는데 그 안에 거하지 않는 가지는 밖에 버려져 말라버립니다. 거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 뒤에서 더 자세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열매를 맺는 가지는 깨끗하게 하십니다. 깨끗하게 한다는 말은 더러운 것이 붙었으면 떼어내고 병이 들었으면 치료하고, 더 열매를 맺도록 가지치기를 하는 것입니다. 가지치기는 농부이신 하나님이 하십니다. 어떻게 가지치기를 하십니까? 말씀을 통해서 가지치기를 하십니다(3). 우리가 말씀을 듣거나 공부하다가 나의 죄를 깨닫게 하심으로 회개하는 과정을 통해서 깨끗하게 하십니다. 잔가지가 너무 많이 뻗어 있으면 영양분을 분산시켜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못하기 때문에 가지치기를 합니다.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분산시키면 쭉정이가 되거나 잔열매만 맺게 됩니다. 그래서 농부는 과감하게 가지치기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이나 고난을 통해서도 가지치기를 하십니다. 우리는 물질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시험에 실패하기도 합니다.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가운데 마음고생을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의 모난 부분을 발견하고 회개함으로 깨끗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권면합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 2:20-22).”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말씀을 통해 자기를 발견하고 겸손하게 하시고 세상 소망, 욕심을 버리게 하심으로 깨끗하게 하십니다. 깨끗한 가기가 될 때에 열매를 잘 맺습니다.
둘째, 열매 맺기 위해서는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4-8절에는 ‘거하라(remain)’는 단어가 무려 8번이나 반복됩니다. 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반복해서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실까요? 제자들이 두려움과 세상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떠나갈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체포되자 제자들은 두려움과 혼란에 빠져 흩어지게 됩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고기를 잡지만 빈 그물뿐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다시 찾아오셔서 그들의 실패를 만회시켜 주시고 관계를 회복하십니다. 그런 후에 주님의 양떼들을 돌보는 사명을 주십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제자들의 연약함을 잘 아시기 때문에 ‘내 안에 거하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거하라는 것은 붙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자연히 열매를 맺게 됩니다. 걷는 사람 위에 뛰는 사람이 있고, 뛰는 사람 위에 나는 사람이 있고, 나는 사람 위에 붙어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 붙어 있을 때 우리는 열매를 맺습니다.
제자들은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깨끗하게 되어서 참 포도나무 가지가 되었습니다. 참 포도나무 가지가 된 것은 100%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제 참 포도나무 가지들이 해야 할 일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는 말씀이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예수님 안에 있는데 왜 ‘내 안에 거하라’고 명령하실까요? 이는 우리가 힘써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되어 있지만 예수님 안에 거하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힘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열매를 맺도록 압박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다만 예수님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면 저절로 열매를 맺게 됩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 끙끙대며 땀을 흘리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저절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열매를 맺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주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 안에 거하고자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예수님과 사랑의 관계성을 깊이 맺는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 안에 거하지 못하도록 유혹하는 것들이 이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우리를 바쁘게 하는 것들, 조급하게 만드는 것, 우리의 마음과 시간을 빼앗는 것들을 분별하고 주님 안에 거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거하는 것은 주님 앞에 머무는 것입니다. 거하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20은 말씀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거하는 것은 예수님과 더불어 먹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아무나 식사에 초대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식사를 함께 한다는 것은 존경과 사랑의 마음으로 깊이 친교를 나누는 것입니다.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 안에 거할 수 있을까요?
7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내 안에 거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하는 것’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즉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형이상학적인 것이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하는 것은 구체적입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공부하고 암송하고 소감을 쓰고 내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말씀 공부가 머리로만이 아니라 내 마음으로 내려오고 손과 발로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는 올해 신년 말씀을 공부하면서 골로새서 3:16을 공부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님의 말씀이 내 속에 풍성히 거할 때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말씀이 충만한 이 모습은 성령 충만한 모습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내 안에 풍성히 거할 때 주님이 주시는 사랑과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 주님과 교제가 살아 있을 때 우리는 기쁩니다. 말씀을 받으면 스피릿이 있습니다. 열정이 생깁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섬길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고 그 말씀 안에 거하고 그 사랑 안에 거하게 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제자양성의 열매는 결국 사랑의 열매입니다. 사랑할 때 우리는 어떤 어려움도 능히 극복하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우리가 서로 격려하고 사랑하는 가운데 열매 맺는 기쁨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예수님의 사랑 가운데 머물러 있을 때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농부이신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어가게 될 것입니다.
셋째, 열매 맺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나무와 가지가 영양분을 공급받는 것처럼, 우리와 예수님의 관계는 기도를 통해서 주고받는 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기도는 예수님과의 대화입니다. 대화가 많아지면 정이 붙습니다. 서로를 잘 알게 되고 사랑의 관계가 깊어지게 됩니다. 대화가 끊기면 관계가 단절되기 쉽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도가 끊기면 관계가 서먹서먹해집니다. 나무와 가지는 물과 영양분의 순환이 잘 되어야 생명력을 충만히 누리며 좋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와 같이 기도를 통해서 교제를 나눌 때 생명력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면 이루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신실하게 응답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우리가 주님께 마땅히 구해야 할 바가 무엇일까요? 농부이신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많이 맺는 것입니다. 열매를 많이 맺으면 농부이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는 예수님께 속한 제자라는 것이 입증됩니다. 왜냐하면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농부 하나님이 원하시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의 특징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예수님 안에 있으면 반드시 변화됩니다. 변화의 속도가 더딜지언정 변화됩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면 이런 성령의 열매가 내면에 맺히게 됩니다. 성품이 변화되면 외적인 생활도 달라집니다. 세상에서 좋은 영향력을 끼치며 많은 사람을 예수님께 인도할 수 있습니다. 특히 본문 흐름상 제자들이 구해야 할 것은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서로의 허물과 약함을 감당해주면서 사랑으로서 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서로 섬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자들이 상호간에 사랑하는 모습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분명한 증거가 됩니다. 요한복음 13장 36절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9-12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사랑을 낳습니다. 사랑이 충만하면 기쁨이 됩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우리를 사랑하사 버리셨습니다. 사랑은 희생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예수님의 친구가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종이라 하지 아니하십니다.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친구로서 대하시고 그가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알게 하셨습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제자들이 예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을 택하여 세우셨습니다. 제자라는 영광스러운 자리로 나오게 된 것은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제자로 세우신 목적은 제자들로 하여금 열매를 맺게 하고 항상 열매가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열매를 맺는 결과로 인해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마다 응답받게 됩니다. 7,8절에서는 열매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 응답으로 열매를 맺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16,17절에서는 열매를 맺은 결과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든지 응답받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선순환구조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제자의 능력의 원천이 무엇인가를 알려줍니다. 있는 자는 더 받고 없는 자는 있는 것 까지 빼앗기게 됩니다.
이후로 제자들이 세상에서 미움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제자들을 미워하면 그들보다 먼저 예수님을 미워한 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지만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주님이 우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미워합니다. 주인이신 주님이 박해를 받으셨은 즉 종 된 우리도 박해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예수님의 말씀을 지킨 자도 있기에 우리의 말을 지킬 자도 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미워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미워합니다. 이는 그들이 이유없이 나를 미워하였다는 말씀을 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낼 보혜사 곧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가 그가 예수님을 증언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예수님을 증언합니다. 우리는 핍박을 받지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입니다. 가지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참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 그의 사랑 안에 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 공동체 속에서 동역자들을 사랑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열매를 맺고 기도를 신실하게 응답받게 될 것입니다.
말씀 | 요한복음 15:1-27
요절 | 요한복음 15:4
내 안에 거하라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사 믿음의 조상이요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습니다. 그의 후손 이스라엘 민족을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이를 누리면서 선민의 특권만을 주장했지 이방인들에게 말씀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쓸모없는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을 앗시리아와 바벨론에 망하게 하셨습니다. 그 이후에 하나님은 참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을 보내시고 그를 통해서 교회를 세우시고 세상 만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구원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런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오늘 말씀을 제자들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택하여 부르신 소망이 무엇인지 배우는 가운데 많은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우리 안에 기쁨이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열매 맺기 위해서 가지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이 비유에서 하나님 아버지는 농부로서 참 포도나무에서 열매가 많이 맺도록 부지런히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그 한 가운데에 망대를 세우고 거기에 포도주 짜는 곳도 파 놓고, 좋은 포도가 맺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열린 것이라고는 들포도 뿐이었습니다. 포도나무였던 이스라엘은 선한 일 하기를 기대했는데 보이는 것은 살육 뿐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옳은 일을 하기를 기대했는데 들리는 것은 그들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울부짖음 뿐이었습니다(이사야 5:2,7). 농부 되신 하나님께서는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두 가지입니다. 가지가 두 가지입니다. 예수님께 붙어 있는데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와 열매를 맺는 가지입니다. 먼저 예수님께 붙어 있는데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좋은 열매를 맺기를 원하셨지만 들포도를 맺자 그들을 잘라버리셨습니다. 가룟 유다도 잘라버리셨습니다. 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를 잘라버리실까요? 그 가지가 말라버렸기 때문입니다. 말라버린 가지는 더 이상 열매를 맺을 가능성이 없습니다. 예수님께 붙어 있는데 수분과 양분이 물관과 체관을 통해서 흘러야 하는데 어딘가 막혀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 붙어 있는데 그 안에 거하지 않는 가지는 밖에 버려져 말라버립니다. 거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 뒤에서 더 자세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열매를 맺는 가지는 깨끗하게 하십니다. 깨끗하게 한다는 말은 더러운 것이 붙었으면 떼어내고 병이 들었으면 치료하고, 더 열매를 맺도록 가지치기를 하는 것입니다. 가지치기는 농부이신 하나님이 하십니다. 어떻게 가지치기를 하십니까? 말씀을 통해서 가지치기를 하십니다(3). 우리가 말씀을 듣거나 공부하다가 나의 죄를 깨닫게 하심으로 회개하는 과정을 통해서 깨끗하게 하십니다. 잔가지가 너무 많이 뻗어 있으면 영양분을 분산시켜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못하기 때문에 가지치기를 합니다.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분산시키면 쭉정이가 되거나 잔열매만 맺게 됩니다. 그래서 농부는 과감하게 가지치기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이나 고난을 통해서도 가지치기를 하십니다. 우리는 물질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시험에 실패하기도 합니다.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가운데 마음고생을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의 모난 부분을 발견하고 회개함으로 깨끗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권면합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 2:20-22).”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말씀을 통해 자기를 발견하고 겸손하게 하시고 세상 소망, 욕심을 버리게 하심으로 깨끗하게 하십니다. 깨끗한 가기가 될 때에 열매를 잘 맺습니다.
둘째, 열매 맺기 위해서는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4-8절에는 ‘거하라(remain)’는 단어가 무려 8번이나 반복됩니다. 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반복해서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실까요? 제자들이 두려움과 세상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떠나갈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체포되자 제자들은 두려움과 혼란에 빠져 흩어지게 됩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고기를 잡지만 빈 그물뿐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다시 찾아오셔서 그들의 실패를 만회시켜 주시고 관계를 회복하십니다. 그런 후에 주님의 양떼들을 돌보는 사명을 주십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제자들의 연약함을 잘 아시기 때문에 ‘내 안에 거하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거하라는 것은 붙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자연히 열매를 맺게 됩니다. 걷는 사람 위에 뛰는 사람이 있고, 뛰는 사람 위에 나는 사람이 있고, 나는 사람 위에 붙어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 붙어 있을 때 우리는 열매를 맺습니다.
제자들은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깨끗하게 되어서 참 포도나무 가지가 되었습니다. 참 포도나무 가지가 된 것은 100%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제 참 포도나무 가지들이 해야 할 일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는 말씀이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예수님 안에 있는데 왜 ‘내 안에 거하라’고 명령하실까요? 이는 우리가 힘써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되어 있지만 예수님 안에 거하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힘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열매를 맺도록 압박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다만 예수님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면 저절로 열매를 맺게 됩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 끙끙대며 땀을 흘리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저절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열매를 맺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주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 안에 거하고자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예수님과 사랑의 관계성을 깊이 맺는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 안에 거하지 못하도록 유혹하는 것들이 이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우리를 바쁘게 하는 것들, 조급하게 만드는 것, 우리의 마음과 시간을 빼앗는 것들을 분별하고 주님 안에 거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거하는 것은 주님 앞에 머무는 것입니다. 거하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20은 말씀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거하는 것은 예수님과 더불어 먹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아무나 식사에 초대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식사를 함께 한다는 것은 존경과 사랑의 마음으로 깊이 친교를 나누는 것입니다.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 안에 거할 수 있을까요?
7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내 안에 거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하는 것’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즉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형이상학적인 것이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하는 것은 구체적입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공부하고 암송하고 소감을 쓰고 내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말씀 공부가 머리로만이 아니라 내 마음으로 내려오고 손과 발로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는 올해 신년 말씀을 공부하면서 골로새서 3:16을 공부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님의 말씀이 내 속에 풍성히 거할 때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말씀이 충만한 이 모습은 성령 충만한 모습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내 안에 풍성히 거할 때 주님이 주시는 사랑과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 주님과 교제가 살아 있을 때 우리는 기쁩니다. 말씀을 받으면 스피릿이 있습니다. 열정이 생깁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섬길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고 그 말씀 안에 거하고 그 사랑 안에 거하게 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제자양성의 열매는 결국 사랑의 열매입니다. 사랑할 때 우리는 어떤 어려움도 능히 극복하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우리가 서로 격려하고 사랑하는 가운데 열매 맺는 기쁨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예수님의 사랑 가운데 머물러 있을 때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농부이신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어가게 될 것입니다.
셋째, 열매 맺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나무와 가지가 영양분을 공급받는 것처럼, 우리와 예수님의 관계는 기도를 통해서 주고받는 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기도는 예수님과의 대화입니다. 대화가 많아지면 정이 붙습니다. 서로를 잘 알게 되고 사랑의 관계가 깊어지게 됩니다. 대화가 끊기면 관계가 단절되기 쉽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도가 끊기면 관계가 서먹서먹해집니다. 나무와 가지는 물과 영양분의 순환이 잘 되어야 생명력을 충만히 누리며 좋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와 같이 기도를 통해서 교제를 나눌 때 생명력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면 이루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신실하게 응답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우리가 주님께 마땅히 구해야 할 바가 무엇일까요? 농부이신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많이 맺는 것입니다. 열매를 많이 맺으면 농부이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는 예수님께 속한 제자라는 것이 입증됩니다. 왜냐하면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농부 하나님이 원하시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의 특징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예수님 안에 있으면 반드시 변화됩니다. 변화의 속도가 더딜지언정 변화됩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면 이런 성령의 열매가 내면에 맺히게 됩니다. 성품이 변화되면 외적인 생활도 달라집니다. 세상에서 좋은 영향력을 끼치며 많은 사람을 예수님께 인도할 수 있습니다. 특히 본문 흐름상 제자들이 구해야 할 것은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서로의 허물과 약함을 감당해주면서 사랑으로서 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서로 섬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자들이 상호간에 사랑하는 모습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분명한 증거가 됩니다. 요한복음 13장 36절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9-12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사랑을 낳습니다. 사랑이 충만하면 기쁨이 됩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우리를 사랑하사 버리셨습니다. 사랑은 희생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예수님의 친구가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종이라 하지 아니하십니다.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친구로서 대하시고 그가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알게 하셨습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제자들이 예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을 택하여 세우셨습니다. 제자라는 영광스러운 자리로 나오게 된 것은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제자로 세우신 목적은 제자들로 하여금 열매를 맺게 하고 항상 열매가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열매를 맺는 결과로 인해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마다 응답받게 됩니다. 7,8절에서는 열매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 응답으로 열매를 맺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16,17절에서는 열매를 맺은 결과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든지 응답받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선순환구조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제자의 능력의 원천이 무엇인가를 알려줍니다. 있는 자는 더 받고 없는 자는 있는 것 까지 빼앗기게 됩니다.
이후로 제자들이 세상에서 미움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제자들을 미워하면 그들보다 먼저 예수님을 미워한 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지만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주님이 우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미워합니다. 주인이신 주님이 박해를 받으셨은 즉 종 된 우리도 박해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예수님의 말씀을 지킨 자도 있기에 우리의 말을 지킬 자도 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미워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미워합니다. 이는 그들이 이유없이 나를 미워하였다는 말씀을 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낼 보혜사 곧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가 그가 예수님을 증언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예수님을 증언합니다. 우리는 핍박을 받지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입니다. 가지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참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 그의 사랑 안에 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 공동체 속에서 동역자들을 사랑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열매를 맺고 기도를 신실하게 응답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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