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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021년 요19강(14:1-31) 내가 곧 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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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86회 작성일 21-08-01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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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요한복음 제 19 강 
말씀 | 요한복음 14:1-31
요절 | 요한복음 14:6
                 
내가 곧 길이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지난 주에는 빌립보서 수양회를 통해서 예수님을 알고자 하는 소원을 충만히 덧입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은 다락방에서 말씀을 하시는 중에 이제는 자신이 떠나간다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지금은 예수님을 따라올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또한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의 마음은 근심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장래에 대한 불안이 엄습해왔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어떻게 도우십니까? 이 시간 우리가 장래 문제로 염려하고 근심하기보다 주님의 말씀을 깊이 듣고 온전히 따르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1-4). 예수님은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심으십니다.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많은 근심거리들이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염려합니다. 학생들은 졸업과 함께 취직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염려가 있고, 또 청년들은 결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염려도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50대부터 은퇴 후의 생활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염려합니다. 예수님은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근심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근심거리가 생길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해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실행을 하고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은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근심하는 일의 90%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고 또 쓸데없는 것들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근심하기보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떤 약속의 말씀을 하십니까? 2,3절을 보십시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께서 가신다고 하시니 제자들은 고아처럼 버려진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다시 오십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예수님은 종말의 때에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것입니다. 제자들은 머리 둘 곳 없으신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제자들을 영접해 주는 집이 있으면 들어가고, 없으면 노숙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고달픈 나그네의 삶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셔서 제자들을 위한 영원한 거처를 예비해 놓으실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충분히 크고 넓어서 거할 곳이 많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 아버지 집’은 ‘천국’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교회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거할 곳’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를 말합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 한 사람이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하나님의 거처를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이루어지게 될 하나님의 성전에 엄청난 변화가 있음을 예고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죄와 죽음 문제를 해결하시고 그 피로써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이 하나님께 이르는 생명의 길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9,20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육신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이 제자들 곁을 떠나시지만, 다시 오셔서 제자들과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은 세상 끝날 까지 제자들과 항상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28:20). 제자들은 변함없이 예수님과 함께 하며 목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더는 근심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은 제자들이 근심 대신이 어떤 일을 이루었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근심하기보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힘써 구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님이 더하여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근심거리들을 통해서 도리어 기도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이 천국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을 하다가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인 본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천국은 우리의 진정한 소망입니다. 그때는 우리의 몸이 변화하여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둘째, 길 되신 예수님(5-14).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도마는 무엇이라고 대답합니까? 5절을 보십시오.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도마는 목적지를 모르는데 그 길을 어찌 알겠느냐고 반문합니다. 답답해 하는 도마에게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6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내가 지도를 주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길을 보여주겠다”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어떤 길로 가라고 말해 주겠다”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눈먼 소경과 같이 인생의 길을 찾지 못해서 방황하고 근심하고 두려워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도착할 곳도 모르고, 그 길도 모르고, 인도하는 자도 없이 그냥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자신이 멸망 길을 가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 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앞두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어느 누구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길을 찾는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자신이 길이라고 말씀하신 분은 없었습니다. 오늘날 종교 다원주의와 혼합주의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모든 종교가 다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배타성은 바로 그분이 가지고 있는 독특함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이 예수님 때문에 길도 알고 도착하는 곳도 알고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걷는 인생길은 지뢰밭과 같습니다. 그때 지뢰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나를 인도해 주겠다고 자청했습니다. 여러분은 그에게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아요. 나는 당신이 나에게 강요하는 것을 원치 않아요”라고 말하겠습니까? 저라면 가능한 한 그 사람에게 바싹 붙어 따라갈 것입니다. 이리저리 방황하고 헤매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나를 인도하는 길이 되어 주고 나의 생명을 지켜 줄 것입니다. 내가 걸음을 뗄 때마다 예수님이 나를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게 되면, 나는 새로운 자유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마다 나는 걱정하고 고민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경직되어 결정을 내리지도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렇게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가 이번 여름수양회에서 이런 말씀을 배웠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길이 되십니다. 우리가 이 주님과 깊이 교제하며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살 때에 근심 걱정 대신에 기쁨과 자유와 확신 가운데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길 되신 예수님을 따라 갈 때 진리를 알게 되고, 생명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아버지 하나님께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한다는 말씀을 기억합니다(요일 2:17).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이 세상의 나그네 길을 주님과 함께 갈 수 있음에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예수님을 아는 사람은 누구도 알게 됩니까? 7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예수님을 알면 하나님 아버지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완전한 계시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님은 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를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알 수 있다는 말씀을 듣고 빌립은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라고 요청합니다. 빌립은 하나님을 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잘 대변하고 있습니다. 모세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뒷모습만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보고 살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봅니다. 하나님은 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삶에서 그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도 그를 사랑합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그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계시면서 당신의 일을 하시기 때문입니다(9,10). 예수님께서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생깁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들은 그 일을 통해서 우리로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증거들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없어서입니다.

  예수님은 아직 어린 아이 같은 빌립에게 놀라운 약속을 하십니다. 12-14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이 한 일보다 더 큰 일을 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제자들은 질적인 면이 아니라 양적으로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하루 복음을 전하여 삼천 명이 회개하는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를 벗어나지 않으셨는데 제자들은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큰 일을 할 수 있는 비밀이 무엇입니까? 이는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시고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어 함께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기도의 능력을 알고 기도하는 일에 헌신할 때 우리는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큰 일은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는 것이요 그 인생이 죄로 인한 상처에서 치료되고 회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일은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요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은 무겁지 않습니다. 우리가 내 힘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면 오래 지속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깨닫고 그 일에 동참하게 됩니다. 우리가 근심할 수 있는 문제들을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함으로 응답을 받고 하나님을 위해서 큰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는 근심하는 우리에게 큰 위로요 소망입니다.

  셋째, 보혜사 성령 하나님(16-31). 16,17절을 보십시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보혜사란 우리 말로는 신자를 보호하여 돕는 선생님이란 뜻이고 헬라어로는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 변호자, 상담자입니다. ‘다른’이란 종류 자체가 다른(different)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종류 중에 다른(another)이란 뜻입니다. 즉 성령 하나님은 예수님과 같은 하나님이시며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제자들에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하시는 일은 무엇일까요? 26절을 보십시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께서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게 하고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는 진리의 영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시고 예수님도 하나님 아버지도 함께 거하십니다. 성령께서 계시는 곳에 예수님도 계시고 아버지 하나님도 계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내 삶을 인도하는 것은 즉 내 삶을 주관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주 하시는 그리스도의 영,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제자들은 이제 보이는 것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내주 하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신다는 증거는 내가 예수님을 그리스도 주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하십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문제들 속에서 지혜가 필요할 때 지혜를 주시고, 능력이 필요한 때 능력을 주십니다. 담대함이 필요할 때 용기를 주십니다. 또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데 필요한 각양 은사를 주셔서 섬기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7절을 보십시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릅니다. 세상의 평안은 조건적이고 한계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평안이 내 안에 있을 때 환난 가운데서도 깊은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삶에 고난이 없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대신 평안을 주셔서 고난의 때에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을 통해서 이겨내게 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근심으로 시작해서 평안으로 끝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대신하여 제자들을 보호하고 인도해 주십니다. 그들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고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사랑할 힘도, 물질도 주십니다. 우리가 내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믿음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섬길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기쁨으로 충만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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