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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09년 계13강(17:1-18) 이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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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2,198회 작성일 09-11-2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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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요한계시록 제 13 강 
말씀 요한계시록 17:1 - 18
요절 요한계시록 17:14

이길 것이다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우리는 전쟁을 할 때 승리에 대한 확신, 자신감을 갖는 것이 승패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영적인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말씀은 지난 주 말씀의 보충 설명과 같은데 큰 음녀, 바벨론에 내릴 심판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세상의 유혹이 크지만 주님과 함께 있는 자들은 이기게 됩니다. 이 시간 우리가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영적인 전쟁에 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많은 물 위에 앉은 음녀는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 큰 음녀는 5절을 볼 때 큰 바벨론으로서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습니다. 음녀는 말이나 행동이 음란하고 방탕한 여자를 말합니다. 신앙적인 면에서 음란할 때 도덕적으로도 음란해집니다. 그런데 그가 왜 심판을 받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큰 바벨론이 심판 받는 이유는 음행입니다. 신앙적인 음행, 즉 믿음의 순결을 잃어버린 문제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드려야 할 충성을 우상들에게 드린 것입니다. 바벨론과 로마 사회는 다신교 사회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도 섬기고 다른 신들도 섬겼습니다. 이 점이 심판받는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 또한 그들의 영향으로 인해 땅에 사는 자들도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게 하였습니다. 강대국의 악한 영향력은 전세계를 악으로 물들일 수 있습니다. 5b절을 보면 이 음녀는 큰 바벨론인데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했습니다. 어미는 자식을 낳는 여자입니다. 이런 점에서 장차 세계를 지배할 그 나라는 악의 원조, 악의 공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악이 여기서부터 나옵니다. 바벨론과 로마는 당대 최고의 화려함, 세계에 대한 영향력, 사치와 음행, 우상숭배 등을 닮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에 대한 핍박도 두 나라가 닮았습니다. 두 나라는 화려함을 무기로 사람들이 쾌락 지상주의적인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음녀의 유혹을 받은 사람은 영원한 만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지극히 찰나적이고 육욕적인 즐거움을 추구합니다. 하나님보다는 자신과 세상 쾌락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주 혼인빙자 간음죄가 위헌 판결이 났습니다. 세상이 변해가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급격히 발전하고 개방되면서 정조를 중요시하는 분위기는 약화되고 있습니다. 혼인빙자간음을 처벌하는 나라가 현재는 미국의 일부 주와 루마니아, 터키 정도라고 합니다. 말 많은 간통죄도 이번 결정으로 흔들거리고 있습니다. 급격한 성 개방 풍조에 따라 법 감정도 발맞추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로마는 무엇보다도 도덕적 윤리적 타락으로 인해서 내부로부터 무너졌습니다. 성적 윤리가 문란해지고 파괴 되는 현실 속에서 혼인을 빙자해 간음하는 자를 처벌하는 법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은 신앙적으로 상식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성관계는 혼인의 틀 안에서 이뤄질 때 정당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런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여자는 짐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짐승은 사탄을 상징합니다. 음녀로 상징되는 강대국이 사탄의 능력과 지혜를 빌려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들을 거침없이 행하고 있습니다. 그 여자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했습니다(4). 음녀는 매우 사치스러운 옷을 입고 값 비싼 장식물로 치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치와 외모지상주의로 인해서 사람들의 마음이 혹하게 됩니다. 금잔을 채운 내용물을 보면 가증한 물건과 그 음행의 더러운 것들로 가득했습니다.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불순한 것들로 가득했습니다. 음녀는 겉은 화려한데 속은 냄새가 나고 더럽습니다. 이런 것들을 타락한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화려한 모습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런 것들을 즐기기 시작하면 그들의 가치관을 닮게 됩니다.

  6절을 보십시오.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놀랍게 여기고 크게 놀랍게 여기니” 음녀는 마치 술을 마시듯 성도들의 피를 마셨습니다. 그들은 교회를 못살게 구는 재미에 푹 빠져 살았습니다. 술 마시는 낙으로 살듯이 교회를 괴롭히는 재미로 살고 있습니다. 얼마나 악한 자들입니까? 요한이 그 여자를 보고 놀랍게 여기고 크게 놀랍게 여겼습니다. 이는 당연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신자들의 잘못을 들추어내서 공격하는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신문과 인터넷을 보면 이런 일들을 사명감으로 여기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혁을 바라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마음에 있는 절망감, 미움과 증오가 그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누구의 조종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합니다. 우리는 이런 일들의 정체를 똑바로 직시해야 합니다.

  7,8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이르되 왜 놀랍게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가 탄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음녀와 짐승의 정체를 알면 놀랄 것이 없습니다. 여기 여자와 그가 탄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은 세상의 세력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세력이 어느 것을 가리키느냐고 이야기할 때 꼭 집어내기가 힘듭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의 목적은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거나 역사적 사건을 예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거에 한 번 나타났다가 또 한 번 주님이 오시기 전에 나타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 당시에는 로마를 통해서 나타났다가 재림 직전에는 적그리스도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 세력은 온 땅의 왕들의 권세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우 화려하고 사치스럽고 내면은 더럽습니다.

  9-13절은 바벨론과의 관계에서 이 짐승의 사역을 다시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하나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시 동안 머무르리라. 전에 있었다가 지금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그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과 더불어 임금처럼 한동안 권세를 받으리라. 그들이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로마 시대는 지나갔으니 앞으로 일곱 머리 열 뿔 짐승이 나타날 것인데 그가 나타나서 무슨 일을 할까요?

  14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마지막에 메시아와 싸움이 붙게 됩니다. 싸운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사탄은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를 이용하여, 권력을 이용하여 교회를 못살게 굽니다.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방해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삶의 현장에서 불이익을 받도록 합니다. 그리고 잘 안 되면 직접적으로 핍박합니다. 그리고 개종을 하도록 압력을 가합니다. 신앙생활은 일종의 싸움입니다. 지느냐 이기느냐의 전쟁입니다. 이러한 전쟁이 계속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이들과 메시아의 세력을 향해 세상이 도전할 때 엄청난 박해가 교회에 오게 됩니다. 지금껏 살펴 온 것이 그것이고 앞으로 마지막에 큰 박해가 교회에 이를 것이라는 것입니다. 엄청난 도전으로 교회가 피를 많이 흘리고 거의 교회가 없어지는 상황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을 보면 참으로 놀랍습니다. 기독교 인구가 90%에 달했던 유럽이 지금은 4%이하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모슬렘 인구가 기독교인 수를 앞지르고 있습니다. 유럽의 예배처소들이 모슬렘의 예배처소인 모스크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럽은 벌써 피선교국이 되었습니다. 유럽이 이렇게 된 것은 모슬렘의 선교 열정 때문이 아니라 유럽인들이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세상을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사람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자 급속히 다신교 사회로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관심도 두지 않는 사이에 이슬람은 우리의 문턱까지 소리 없이 파고들고 있습니다. 외국인 근로자들 중에 이슬람 신자들이 꽤 많습니다. 유학생 신분으로 각 대학에도 많이 들어왔습니다. 얼마 전 서울대학교에서 모슬렘 학생들이 학교 안에 예배 공간을 세워달라고 청원을 했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타 종교도 배려해야 한다는 학교 측의  판단에 따라 임시 기도처를 내주었습니다. 특히 그들은 우리나라 여성을 좋아하여 결혼 대상으로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결혼은 확실한 전도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들은 아이들을 여섯씩 낳습니다. 그들이 다 아버지의 신앙을 따라서 무슬림 신자가 됩니다. 무슬림들은 결혼을 할 때 성경의 사람들 즉 유대인이나 기독교인 여자와는 결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슬림 여성은 절대로 무슬림 남자하고만 결혼을 해야 합니다. 기독교 여성들이 무슬림 남자와 결혼을 하면 개종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무슬림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세계 무슬림 연맹은 2020년까지 “대한민국을 무슬림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공격적인 선교활동을 펴고 있습니다. 세상도, 불교도, 이슬람도 결국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부정합니다.

  그러면 어째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무슬림으로 개종을 할까요? 무슬림들의 도덕적인 생활과 가정의 따뜻함에 매력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들은 일부다처제를 허용합니다. 단 여자들에게 공평하게 대해야 합니다. 돈이 많은 남자들은 여러 명의 아내들을 거느릴 수 있습니다. 영국은 일부일처제의 나라인데 무슬림 인구가 많아지면서 법이 바뀌고 있습니다. 남편이 죽으면 한 아내에게만 연금을 주던 것을 이제는 여러 아내에게도 주도록 한 것입니다. 모슬렘 인구가 많아지니 정치가들이 그들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들 모두는 예수님만이 절대적이며 유일하신 구원자이심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서 이러한 현실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전쟁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 결과는 무엇입니까? 어린 양이 승리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마침내 어린양이 그 세력을 파멸시켜 버린다는 것입니다. 어린양이 승리하는 것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만주의 주란 모든 주인의 주인이시라는 뜻입니다. 세상에는 주인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주인들의 주인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는 모든 왕들의 왕이십니다. 그 모든 나라에 왕들이 있습니다.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생각을 해봅시다. 당시는 누가 세상의 주인의 주인이며, 왕의 왕이었습니까? 로마 황제가 다 해먹었습니다. 그런 로마 황제를 앞에 놓고 이런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시오 역사의 주권자이십니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내 생명과 내 삶, 내 자식들 이 모든 것들의 주인이 내가 아니고 어린양이십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주인도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사상을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가 주인이시고 왕이시기 때문에 승리를 거둘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음녀와 짐승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과의 싸움에서 세상의 세력이 이길 것처럼 보입니다. 적그리스도는 모든 세상을 다 사로잡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로마는 권세와 화려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반면 교회는 가난했습니다. 초라하고 쪼들려서 늘 패배자의 마음으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현상입니다. 어린양이 진짜 주인이시고 진짜 왕이시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하십니다.

  또한 어떤 자들이 승리합니까? 14b절을 보십시오.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주님과 함께 있는 자들이 승리합니다. 주님께서 부르시고 택하신 자들이 승리합니다. 주님은 주권적으로 우리를 부르시고 택하셨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것이 은혜입니다. 내가 잘 나서 택함을 입은 것이 아닙니다. 내가 경건하지 않고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택하시고 함께 하십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는 죄로 인해서 쉽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피로 맺어 졌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는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하십니다. 자신은 죽고 새 생명 가운데 산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을 때 우리는 죄와 싸울 수 있고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승리 성공이라는 단어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실패보다는 승리를, 좌절보다는 성공을 기대하면서 살아갑니다. 세상은 성공이라는 단어로 승리라는 단어의 뜻을 포함하며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성공이란 단어보다는 승리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공이란 자신의 노력에 의한 이김에 대한 표현이라면, 승리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주님의 도우심으로 위험으로부터 건짐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인간이 나약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을 향하여 하나님을 믿으라고 명령합니다. 또한 신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권면합니다. 자신의 상태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인간의 처절함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신뢰하게 됩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잘 알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영적 싸움에서 승리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긴다고 했습니다. 음녀의 특징은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의 옷은 어떠합니까?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은 거룩한 모습입니다. 진실된 모습입니다. 순수합니다. 꾸밈이 없습니다. 청결합니다. 단순합니다. 거기에서 영적인 힘이 나옵니다. 우리가 힘을 어디에 쏟아야 합니까? 외모를 꾸미는데 두기 보다는 내면의 성숙, 정직과 진실함, 참된 것을 배우는데 끊임없이 힘을 쏟아야 합니다.

  세상의 세력은 특징이 권력과 영광과 음행입니다. 음녀는 자줏빛 옷을 입고 있으면서 온갖 보물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음녀는 돈과 화려함으로 신자들을 유혹합니다. 또 음행으로 유혹합니다. 음행이란 남녀간의 불법적인 성관계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포함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 이 세상을 섬기는 전체를 음행이라고 말합니다. 야고보서 4:4절을 보십시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음행이란 세상을 붙들고 이 세상의 권력과 돈을 좇는 것입니다. 물론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예수 믿는 것을 포기하면서라도 차지해야하는 돈과 영광이라고 하면 그것은 음행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붙들고 뒹구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원수 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합니다(요일2:5-7). 

  애굽의 박해가 너무나 심했을 때 지도자들은 사막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 가운데 한 수도사는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한 젊은 왕이 그를 찾아와서는 “당신은 굉장한 것을 희생했구먼!”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수도사는 “폐하, 폐하께서도 큰 희생을 하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왕이 충격을 받고 그게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수도사는 “폐하께서는 지나가는 세상 때문에 영원한 세상을 희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더 큰 것을 희생하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나가는 세상 때문에 영원한 세상을 희생시키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영원한 세상 때문에 이 세상을 희생하는 것, 그것이 멋진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할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자들이 이기는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은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의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이는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그들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그들의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라.” 짐승과 음녀는 결코 뗄 수 없는 운명 공동체였는데 때가 되면 미워합니다. 바벨론조차도 짐승에게 미움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악의 자기 파멸적 성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악의 이러한 성격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미움에서 시작된 적대적인 마음은 결국 음녀를 불로 사르는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불로 사르는 것은 구약에서 음녀를 처형하는 방법이었습니다(레 21:9). 또 짐승이 온 땅의 왕들과 나라들을 완전히 자신의 통제 아래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짐승을 향한 열 왕들의 충성의 표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계획 아래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악의 세력들이 서로 싸울 수밖에 없는 본질적 이유입니다. 즉 그들의 멸망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결정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식으로 악의 세력을 심판하십니다. 악은 악이 징벌합니다. 이런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응하기까지 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종말과 최후 심판과 관계되는 모든 약속을 성취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사탄의 세력을 멸망시키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구속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더러운 것들에 물들지 않는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세상을 변혁시키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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