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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09년 계5강(4:1-11) 보좌에 앉으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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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2,171회 작성일 09-09-27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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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요한계시록 제 5 강                                               
말씀; 요한계시록 4:1 - 11
요절; 요한계시록 4:2

보좌에 앉으신 분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우리는 오늘 천상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면을 본 요한의 메시지를 듣고자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눈에 보이는 현실만 보고 위축될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이 땅을 다스리고 계신 하나님을 바로 보고 예배해야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하늘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영광을 봄으로 예배하는 의미를 새롭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예배하는 사람만이 역사를 바로 볼 수 있고 올바로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왜 예배해야 합니까? 

첫째, 하나님의 통치로 인해서 그를 예배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사도 요한은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그 문을 통해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의 몸이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사도행전 8장에 보면 빌립도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준 이후에 성령의 역사로 광야에서 아소도로 이끌리어 갔습니다(행8:39-40). 에스겔 선지자도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이끌리어 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필요할 때에 이런 공간 이동을 시키십니다. 요한은 거기서 하늘에 베푼 보좌를 보았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좌에 앉아서 이 세상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에게 처음 말하던 그 음성이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그에게 보이리라고 하십니다.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은 6-22장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보이기 전에 4장은 성부 하나님에 대해서, 5장은 성자 예수님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4장에서는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으로, 5장에서는 어린 양에게 일곱 눈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앞으로 일어날 일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가지고 계셨고 성자 하나님께서 그 책을 취하여 인을 떼심으로 심판이 진행 됩니다.

  2b절을 보십시오.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여기서 보좌는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합니다. 그 보좌는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통치하고 있다는 말씀이 당시나 지금이나 고난 받는 성도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당시 크리스천들은 로마 황제의 핍박으로 인해서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교회의 수장이었던 사도 요한마저도 밧모 섬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을 전한다는 이유만으로 핍박을 받았습니다. 홍익대학에도 “수상한 외부인이 접근하거나, 원치 않는 포교 활동을 계속할 시 신고하세요”라는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우리가 일대일로 전도하되 귀찮지 않게 지혜롭게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하다가 악의적인 사람의 신고로 불려 가면 핍박을 받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5:41절을 보면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고 했습니다. 당시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고 말씀을 전하기 때문에 직장을 잃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데 감당할 수 없는 환란을 만나게 되면 하나님께서 정말 살아 계신가 의심이 들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생기는 불행한 일들로 인해서 우리는 때로 하나님의 사랑과 통치를 의심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왜 간섭해 주시지 않았는가?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면 그 순간에 그를 보호하셨어야 하지 않는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다 고난을 당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사랑한다고 해서 고난에서 면제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는가? 아니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잘 살고 더 자유롭게 살고 있지 아니한가? 이런 생각에 미치게 되면 믿음을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의미해 보입니다. 그러면 내가 하나님을 왜 믿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살아서 통치하고 계시기 때문에 믿습니다. 무슨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연단하십니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쓰고자 하는 그릇으로 준비를 시키십니다. 고난 없이, 훈련 없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세우시지 않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환란을 당할 때 하나님께 돌이켜야 합니다. 그것이 고난을 허락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환란을 당할 때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환란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때로 그 뜻을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내해야 합니다.

  우리는 환란을 당할 때 내가 부족하고 죄악 되어서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위축되기 쉽습니다. 나 자신에 대해 초라한 생각이 듭니다. 그런 자신에 대해서 슬퍼하십시오. 동시에 그로 인해 얻게 된 것으로 인해서 감사하십시오. 그뢴 신부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는 말씀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삶에선 하나를 선택하면, 늘 하나를 놓치게 된다. 그걸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놓친 것에 대해 충분히 슬퍼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선택한 삶에 대해 정말 감사하며 살 수 있다. 그런 식으로 고통을 뚫고 나아갈 때 우리는 영혼의 바닥과 만나게 된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마음을 낮추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배우게 됩니다. 고난을 통해서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의를 행하고도 핍박을 받으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고난을 인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고난을 받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고난이 큰 만큼 하나님의 위로가 클 것입니다. 저는 창12:3절 말씀을 믿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 말씀을 믿기 때문에 나를 힘들게 하는, 나를 못살게 구는 사람과 싸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맡겨 버립니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합니다. 그것이 복된 삶입니다. 이런 삶을 추구하기 때문에 되도록 이면 평화하게 됩니다. 욕을 먹고 핍박을 받는 것이 때로는 편안합니다. 아픔을 감당함으로 문제를 키우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성품은 어떠할까요? 3절을 보십시오.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보석으로 그의 성품을 상징적으로 나타냈습니다. 벽옥이란 푸른 빛을 띤 보석입니다. 또는 맑은 빛을 띤 보석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깨끗하심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순수하십니다. 그는 절대 선하십니다. 하나님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된 동기로 인해서 그 추함을 나타내게 됩니다. 또 홍보석은 붉은 빛인데 이는 죄를 심판하는 하나님의 정의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정의로우십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보좌에는 무지개가 둘러 있었습니다. 무지개는 노아의 홍수 심판 이후에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표로 무지개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하시지만 긍휼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서 사람들이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원하십니다. 니느웨 성에 대한 심판을 작정하셨지만 왕부터 짐승까지 금식하며 회개할 때 심판을 보류하셨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여기서 이십사 장로들이 나오는데 그들은 구약의 12지파와 신약의 12사도로 상징되는 교회의 대표들입니다. 그들이 흰 옷을 입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받고 의롭게 된 것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그들이 흰 옷을 입은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하게 된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윤리적으로 자기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한 것을 뜻합니다. 그들이 쓰고 있는 금관은 임금들이 쓰는 왕관이 아니라 경주를 해서 승리했을 때 얻는 월계관입니다. 그러므로 24장로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죄와 싸우면서 윤리적으로 깨끗한 삶을 살기까지 영적인 투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죄악이 난무하고 유혹이 많은 이 세상에서 깨끗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그 영광에 동참하려면 죄와 사탄의 유혹과 싸워서 승리해야 합니다. 그런 싸움에서 승리한 다음에 쓴 면류관이기에 더욱 값진 것입니다. 시험과 고난을 이긴 결과 얻게 된 열매가 귀한 것과 같습니다. 당시 교회는 어려움에 처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당하는 핍박으로 인해서 비참한 형편이었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승리와 영광의 대상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적극적으로 진리의 말씀을 전파하고 그대로 살고자 힘쓰는 가운데 이 백성이 의로운 삶을 살도록 확산시켜야 합니다. 무력과 물질적인 풍요가 있는 나라가 강성대국이 아니라 공의가 바로 세워진 나라가 진정한 강국입니다. 

  보좌로부터 무엇이 나왔으며, 보좌 앞에는 또 무엇이 있습니까? 5,6절을 보십시오.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난 것은 8:5절을 볼 때 심판의 재앙들을 상징합니다. 6장 이후에 나오는 심판의 재앙들이 바로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나오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무지개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뇌성과 음성들과 번개도 나온다는 사실을 통해서 하나님의 양면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무지개만 보고 있으면 하나님 앞에서  떨고 경외하는 마음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모습을 반드시 알고 있어야 죄를 짓지 않게 됩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할 때 죄짓기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이제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쫙 펼쳐져 있습니다. 물론 실제 물로 된 바다는 아닙니다. 수정으로 포장된 것입니다. 수정으로 깔았으되 바다라고 말한 것과 같이 아주 넓습니다. 그토록 넓은 것이 보좌 앞에 펼쳐져 있다는 말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올라 오라’는 요청으로 올라가긴 하였으나 요한과 보좌 사이에는 바다와 같은 먼 공간이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다만 성령의 감동으로 그것을 보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사람이 아무리 위대하다 할지라도 하나님과는 굉장히 먼 거리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는 하나님과 그 분의 모든 피조물과 구분하는 보좌의 영광과 위엄을 상징합니다. 수정은 하나님의 절대 순수성을 상징하고 바다는 창조자와 피조물의 구분을 상징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양합니다(6b-9) : 6b,7절을 보십시오.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보좌 가운데와 주위에 있던 네 생물은 높은 계급의 천사들입니다. 천사들도 조직과 계급이 있어서 하나님의 일을 효과적으로 감당합니다. 첫째 생물은 강한 사자 같고, 둘째는 가장 유용한 소와 같고, 셋째는 사람처럼 가장 지혜로우며, 넷째는 날아가는 독수리처럼 신속하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6장에 보면 네 생물은 여섯 날개를 가졌는데 두 날개로는 얼굴을 가려서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나타내고 두 날개로는 발을 가려서 하나님 존전에서의 겸손을 나타내고 두 날개로는 명령이 떨어지면 언제든지 신속하게 날아가 순종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네 생물은 밤낮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양합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8).”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최우선 순위를 두었습니다.

  한편 이십사 장로들도 주님을 찬양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이십사 장로들은 하나님께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렸습니다. 이는 영광을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시라는 고백입니다. 또한 승리의 면류관은 나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던지는 것입니다. 내가 잘해서 이렇게 되었고, 내가 신앙생활을 잘해서 이렇게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나 같은 자를 어떻게 이 자리에 세워주셨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께 면류관을 던지며 엎드려 경배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15:10절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하나님의 은혜로 된 나이기에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립니다.

셋째,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하나님은 창조주시오 만물을 섭리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만물이 존재하고 운행되고 있습니다. 창조의 신비를 본 장로들은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연을 탐구하는 과학자들이든지, 자연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사람들은 그의 신묘막측하심 앞에 엎드려 경배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태양빛을 비추어 올 해도 풍년이 들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적절한 비를 내려주셔서 농작물이 자라게 하시고 우리의 목을 축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축복하사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가장 먼저 회복되게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역사 속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하나님께서 친히 돌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고 직장을 주셨습니다. 건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섬세히 채워주셨습니다. 유럽 개척 40주년 기념 국제 수양회를 넘치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센터 건축을 하도록 한 마음으로 헌신하게 하셨습니다. 이 주님을 찬양합니다. 지금 고난 가운데 있는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당시 도미티안 황제에게 사용하던 칭호를 오직 하나님께만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경배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궁핍한 가운데서 하나님께 예배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3:17-18).” 욥은 환란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땅만 바라보고 있으면 답답합니다. 그러나 지금 겪고 있는 현실이 다가 아닙니다. 현실 너머에 하늘이 있고, 그 하늘에 보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보좌 위에 앉아 계신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이 나라와 우리 캠퍼스, 그리고 내 삶을 사랑과 공의로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 보좌를 바라보고, 하늘 보좌에 앉으신 그 분을 신뢰해야 합니다. 내가 섬기는 분은 이 세상 만물과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십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이 그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당하는 억울한 일과 고난을 통해서 더욱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로 자라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올바로 예배하고 하나님 편이 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예배에 승리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진정한 승리자가 됩니다. 우리가 일생 하나님을 예배하며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특별히 이번 주가 추석 명절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한 분만을 온 마음으로 예배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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