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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 19왕상9강(19: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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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99회 작성일 19-02-03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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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열왕기상 제 9 강   
말씀 | 열왕기상 19:1-21
요절 | 열왕기상 19:12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지금까지 엘리야는 열정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섬겼습니다. 갈멜 산에서 바알과 여호와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엘리야가 세운 제단에 하나님의 불이 임하는 것을 보고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바알 선지자 450명을 죽였습니다. 그가 기도했을 때 수년 간 가물었던 땅에 큰 비가 내렸습니다. 그는 42Km를 빠르게 아합의 말 앞에 달렸습니다. 그는 이 땅에 놀라운 영적 부흥이 일어날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바알 신앙의 수호자 이세벨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세벨은 갈멜 산에서 일어났던 일을 듣고는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도망갔습니다. 그는 죽기를 간청했습니다. 영적 탈진으로 더 이상 사역을 감당할 수 없는 엘리야를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서 만나주시고 회복케 하십니다. 우리 각자도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였습니다. 이를 듣고 이세벨은 회개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도리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취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자신에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감을 보고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에 사환을 머물게 하고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죽기를 원하였습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엘리야는 전심을 다해서 갈멜 산에서 큰 승리를 이루고 난 후 북 이스라엘 땅은 영적으로 회복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영적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세벨이 굳게 서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신앙적인 회의감과 피곤함과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그동안의 사역을 통해서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자신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이키는 사명을 받았지만 그것을 감당할 만한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선지자로서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고 고백하고 포기해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영적 침체에 빠지게 될까요? 희망과 의욕에 넘쳐서 열심히 살고 있다가 어느 날 뜻하지 않게 리더들이나 양들이 떠나가면 이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사역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죽어가는 영혼들이 말씀을 듣고 살아나고 제자가 될 때 얼마나 신이 납니까? 그런데 온 힘을 쏟아서 하나님을 섬기지만 열매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이로 인해서 사역에 대한 회의감에 사로잡힙니다. 영적인 무력감으로 인해서 낙담하고 죄의 유혹에도 빠지게 됩니다. “나 같이 부족하고 연약한 자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만 두고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어떻게 영적으로 회복할 수 있을까요?

  엘리야가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는데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일어나 먹으라고 했습니다.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었습니다.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습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습니다.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서 까마귀를 통해서 먹이신 하나님, 시돈 땅에서는 가난한 과부를 통해서 먹이시고 돌보신 하나님은 이제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서 천사를 통해서 먹이시고 돌보십니다. 예수님은 실패한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밤새도록 수고하였지만 아무 것도 건진 것이 없을 때 찾아오셨습니다. 그들에게 153마리의 물고기를 잡게 하시고 새벽 바람이 찬데 숯불에 떡과 생선을 구워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고 세 번씩 당부하셨습니다. 당신의 자녀들에 대한 주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연약함을 깊이 이해하고 감당하고 실패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엘리야가 굴에 있을 때 어떤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까?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하나님은 이 질문을 통해서 엘리야 자신을 냉철히 성찰해보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왜 앉아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변화되고 힘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제자를 양성할 수 있습니다. 후계자를 키울 수 있습니다. 영육간의 리더들을 세울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대답합니다.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10).” 엘리야는 하나님께 나아가 투정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바알을 숭배했고,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 머뭇머뭇했지만 갈멜 산 사건을 통해서 돌이키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엘리야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계속해서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자기 생명까지도 빼앗으려고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세벨이 주동이 되어서 한 일이지 백성들이 한 일이 아닙니다. 엘리야는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고 자기 혼자만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을 가지고 투쟁하다가 지금은 호렙 산에 왔다는 약간의 과대망상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그의 마음이 약해져 있는 것입니다. “오직 나만 남았다”고 말하는데 사실 오바댜는 100명의 선지자를 구했습니다. 갈멜산 사건 후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런데도 엘리야는 오직 자신만 남았다고 합니다.  선지자로서 감당해야 하는 외로움이 그를 괴롭힌 것입니다. 우리도 항상 오직 나 혼자서 몸부림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들은 항상 자신 혼자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혼자만 있고 동역자들이 도와주지 않고 믿음의 투쟁도 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이 됩니다. 사실 누구나 다 충성하며 봉사한다면 충성이 귀한 것이 아닙니다. 충성이란 워낙 귀한 것이라서 고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승리한 엘리야에게 왜 고독을 주셨을까요?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라고 고독을 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고독을 주셨습니다. 사람의 지지나 인기를 얻으므로 사람의 얼굴을 보지 말라고 사람들 가운데 있으나 고독을 경험하게 해 주셨습니다. 고독 속에서 주님을 깊이 만나고 나와 주님과만 아는 그 친밀한 교제 속으로 들어가도록 하십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헌신하여 수고하는 동역자들이 내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과 관계를 풍성히 맺기 전에 먼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엘리야는 모세를 통해서 구원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호렙 산은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던 곳이요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굴에서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고 하십니다. 산에 올라가니 자신과 하나님만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였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대한 고정관념이 있었습니다. 강한 바람이나 지진이나 불같이 강력하게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였습니다. 강한 불처럼 역사하셔서 대적하는 이세벨을 태워버리시고 우상으로 더렵혀진 이스라엘 땅을 갈아엎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가운데 계시지 않았습니다.

  12b을 보십시오.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3절도 보십시오. “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이에 대해 엘리야는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장엄한 광경들이 지나간 후에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로 말씀하셨을까요? 엘리야는 이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로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처음하신 질문과 같이 두 번째 질문에도 똑같이 대답을 하였습니다. 왜 하나님은 똑같은 질문을 하시고 엘리야는 똑같은 대답을 했을까요? 엘리야의 마음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하나님이 아무리 말씀하셔도 알아먹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이상하고 특별한 말씀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늘 듣던 말씀을 잘 깨닫도록 해 주십니다. 우리가 늘 들었던 말씀인데도 순종하지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주시고 또 주십니다. 진리는 평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주 듣던 말씀을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엘리야가 변화된 것은 세미한 소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고 새로운 사명을 받았을 때입니다. 여기서 세미한 소리는 성령의 임재를 뜻합니다. 성령께서는 바람과 같이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 같이 역사하십니다.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도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로 임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미한 소리 자체보다는 세미한 소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듣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여하튼 엘리야는 호렙 산에서 ‘세미한 소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린 것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이 사건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은 기적과 이적을 통해서도 역사하지만 조용하고 은밀한 곳에서도 역사하시 분이십니다.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같은 장엄한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멈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수천명이 모여서 큰 소리로 기도하고 장엄하게 경배와 찬양을 하고 방언으로 기도하고 전도하는 가운데서 역사하시지만 때로는 조용조용 기도하고 전해주는 말씀을 통해서 만나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제에 당면했을 때, 항상 기적을 동반하시는 하나님만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사역이 항상 세상의 권세와 하나님의 원수들을 무력으로 파괴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권세가 세상의 권세에 짓밟히는 것처럼 보이거나 혹은 아예 역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이적을 행하시기도 하시지만 침묵하는 듯이 잔잔히 말씀하실 때도 있습니다. 엘리야는 불같은 사람입니다.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섬겼고 뜨겁게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고자 했습니다. 실제로 엘리야는 그런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파격적인 이적이 일어나지 않아서 의기소침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엘리야에게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NIV는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What are you doing here, Elijah?)”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너의 일터로 돌아가라는 권고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어떤 방향을 주십니까? 15,1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하사엘과 예후를 왕으로 세우고 엘리사를 제자 삼는 일을 하라고 방향을 주셨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사람들을 세우는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조용하게 사람들을 세우는 것입니다. 특히 제자양성을 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재충전되었고 새로운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에 힘써야 합니다. 세미한 음성을 들음으로 영적인 성숙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우리가 메시지를 듣고 소감을 쓰고 묵상하는 가운데 나에게 하시는 주님의 뜻을 깊이 분별하고 그 뜻을 섬기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명을 남기셨습니다. 그들은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들입니다.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는 소 24마리를 앞세워 큰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는 부농이었습니다.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청하였습니다. “나를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자 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습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을 따르고자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부농으로 열심히 일하였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엘리야를 따랐습니다. 이제까지 엘리야를 통해서 역사하셨던 하나님이 엘리사를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또 하사엘과 예후를 세우심으로 정치적인 지도자들을 통해서 바알 숭배자들을 심판하시고 바알 신앙을 이스라엘 땅에서 제거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엘리야는 홀로 바알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제자를 삼는 사역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그는 소수의 지도자를 세우심으로 효과적이고 지혜롭게 일하십니다. 엘리사는 긍휼이 풍성한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고난당하는 백성들과 함께 하며 그들을 치료하고 회복하는 일을 합니다.

  우리는 나의 생각과 계획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현실로 인해서 탈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려고 하든지 아니면 포기하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이때 우리는 자기만의 동굴에서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강한 바람이나 불이나 지진처럼 한 순간에 큰 역사를 이루기고자 하기보다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제자로 키우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이 일이 작게 보이지만 이런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바꾸어나가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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