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 19왕상 8강(17:1-18:46) 바알에게 도전한 엘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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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열왕기상 제 8 강
말씀 | 열왕기상 17:1-18:46
요절 | 열왕기상 18:37
바알에게 도전한 엘리야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학생 연합 수양회를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알고 누리게 하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세계는 20대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변화되고 성장해왔습니다. 순수한 열정과 도전하는 청년들로 인해서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왔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바알 우상으로 휩쓸려 가는 한 나라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로 바꾸고자 도전하는 엘리야의 믿음에 대해서 배우기를 원합니다. 도전하는 한 사람, 막아서는 한 사람이 필요한 이 시대에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가 배우기를 원합니다.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당시 이스라엘은 불과 50년 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에서 바알 우상을 섬기는 나라로 급속히 타락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지키고 계승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 의아스럽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될 수 있습니다. 영국도 그러한 예입니다. 50년 전만해도 신자의 비율이 90%를 넘던 나라가 이제는 4%로 떨어져서 선교가 필요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아합 왕과 바알 숭배자들에게 도전하였습니다.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농경 사회에서 비와 번개를 주관하는 신인 바알을 숭배하는 왕에게 내 말이 없으면 비도 심지어 이슬조차도 내리지 않는다는 말은 얼마나 큰 도전입니까? 이는 목숨을 건 도전이었습니다. 목숨의 위협을 받을 수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는 스스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곳에 숨도록 하신 것은 먹고사는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도록 하는 훈련이었습니다. 흉년으로 인해서 먹고 살기 어려운 때에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하나님의 종을 먹이십니다. 매일 아침과 저녁에 까마귀 떼들이 한 입씩 떡과 고기를 물어다가 엘리야 앞에 내려놓고 날아갔습니다. 식사를 한 후에 엘리야는 시냇물을 마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시절에 엘리야를 친히 먹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신 하나님,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주님은 지금도 그의 백성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쓰신 종들을 보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많은 훈련을 받았습니다.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사람으로 준비가 됩니다. 신실하게 먹이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먹고사는 문제로 인해서 늘 불안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는 누구에게나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믿음이 없으면 일생 그 문제에 매여서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또 사명을 감당하는 종들에게 하나님은 신실하게 그 필요를 공급해 주십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말랐습니다. 엘리야는 시내가 마를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이 있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며 순종하였습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자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끝까지 중심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그곳에서 생존할 수 없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고 말씀하십니다. 시돈은 바알 숭배의 본거지입니다. 그곳도 먹고 살기가 어렵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엘리야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예수님처럼 이 여자에게 청하였습니다.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그녀가 물을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는 그를 불러 청하였습니다.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그녀는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인줄 어떻게 알았는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12).” 참으로 가련하기 그지없습니다. 남편도 죽고 이제 아들 하나 남았는데 먹을 것이 없어서 마지막 남은 가루와 기름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죽겠다고 합니다.
엘리야는 이런 여자에게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3절을 보십시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벼룩도 낯짝이 있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그 종으로 하여금 얼굴에 철판을 까는 훈련을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과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앞세우도록 도왔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14).” 이 과부는 음식을 해 먹고 죽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을 먹었으나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때로 우리는 알바를 해서 생활을 하는 학생들에게 십일조를 드리고 남을 섬기는 생활을 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섬김을 받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도리어 섬기도록 방향을 주어야 합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되다고 하였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과부가 엘리야를 먹여 살리는 것 같은데 사실은 엘리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과부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과부가 하나님을 도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엘리야를 통해서 과부를 도운 것입니다. 먼저 믿음으로 헌신할 때 하나님의 넘치는 복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 일 후에 그 집 주인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졌습니다. 여인의 슬픔과 낙담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여인은 살 소망이 없어졌습니다. 마음이 힘들자 여인은 엘리야를 원망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이 여자는 남편을 잃어버리고 힘들게 살아왔는데 이제 하나 밖에 없는 아들까지 죽었으니 여인은 살 소망이 없어졌습니다. 여인의 마음은 비통하였습니다. 여인은 이 불행이 자신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가 이런 여인을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엘리야는 그에게 아들을 달라 하여 자기가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이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엘리야는 자신의 생명을 드려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났습니다. 엘리야가 그 아이를 그의 어머니에게 주니 여인이 엘리야에게 말합니다.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여자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 이렇게 어렵습니다. 엘리야는 이제야 사르밧 과부에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학생 수양회에서 믿음을 잃었다가 회복되는 학생들의 소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 중에 소감을 발표한 한 사람은 믿음의 집안에 태어났기 때문에 예배를 드리고 모임에 참여했지만 개인 신앙이 없어 주중에는 술과 게임과 정욕에 이끌려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이요한Jr. 목자가 전한 예레미야 29장 메시지를 듣고 깊이 회개했습니다. 레갑 족속이 왜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고 장막에 거하는 생활을 해 왔는지? 바로 거룩한 삶을 살도록 돕고자 하는 조상들의 지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도 예배와 소감과 믿음의 결혼 등 거룩한 삶을 살고자 투쟁하는 UBF전통을 이해하게 되자 오해가 풀리고 나의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죄와 허물로 죽은 죄인들을 살리십니다. 우리 가운데 계속해서 죽은 자가 살아나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했습니다.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가니 그 때에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하였습니다. 아합이 왕궁 맡은 자 오바댜를 불러서 물 근원과 시내를 찾아 꼴을 얻기를 원했습니다. 죽어가는 말과 노새를 살리고자 두 사람이 두루 다닐 땅을 나누어 풀을 찾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오바댜를 만나 아합에게 보고를 하라고 했습니다.
아합은 엘리야를 만나자 마자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하고 물었습니다. 엘리야가 대답합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18).” 그런즉 사람을 보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아오게 하소서 부탁을 했습니다.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로 사람을 보내 선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았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백성들은 유구무언이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고 바알이 비를 주관한다고 생각하고 바알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머뭇하였습니다. 머뭇거리는 것은 분명한 가치관을 따라 살지 않고 상황을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현실적인 유익을 따라서 살아간 것입니다. 그들은 차지도 더웁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아합 왕은 많은 돈을 들여 곳곳에 바알 신전을 화려하게 건축하였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학교를 세워 전원 장학금을 지급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믿겠다고 하면 각종 세금과 부역을 면제해 주었습니다. 직장에 취업하려면 바알교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특혜를 주었습니다. 아세라 여신 숭배의식 후에는 신전여사제들과 성관계를 가짐으로 음란과 쾌락을 정당화시켰습니다. 이렇게 물질적인 유익과 쾌락을 주는 바알 숭배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신앙을 급속히 버렸습니다. 여호와 신앙을 지키고자 하면 사회에서 왕따를 당하고 불이익을 당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과 아세라 숭배자들이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이런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고자 하는 불타는 열심이 있었습니다. 3년 6개월 동안의 광야 훈련을 통해서 믿음의 담력을 덧입었습니다. 이제 아합 왕에게 도전하고 백성들에게 도전을 하였습니다.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결단도 없고 변화와 성장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도전하지 않으면 사탄에게 양들을 빼앗겨 버립니다. 도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이 부족하고, 양들에 대한 목자의 심정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엘리야는 시대를 막아서는 사람이었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바꾸고자 시도하였습니다. 그의 위대한 시도가 무엇입니까?
그가 바알 선지자들에게 제안을 하였습니다. “그런즉 송아지 둘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그들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나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고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하니라.”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너희가 많으니 먼저 하라고 했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은 받은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쌓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며 그래도 응답이 없자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였습니다. 그래도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바알은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요, 부르다가 죽을 이름이었습니다.
이제 엘리야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는 기도하기 전에 여호와의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였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돌 열두 개를 취하였습니다.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고 돌아가며 곡식 종사 두 세아를 둘 만한 도랑을 만들고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았습니다. 그 후에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째로 그리하라 하여 세 번째로 그리하니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습니다. 그가 이렇게 한 이유는 하늘로부터 불로 임하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분명히 드러내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엘리야는 저녁 소제 드릴 때에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36,37).” 그가 이렇게 기도하기를 마치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자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그 백성들이 우상을 버리고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기도를 받으시고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 제단을 태우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그의 역사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저는 학생 수양회를 준비한 한 한양 센터 이여호수아 목자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놀랍게 역사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수양회 주제를 정하고 강사들을 선정하고 세우는 과정, 수양회 기간 동안 일어난 변화의 역사들, 들려지는 영감 넘치는 말씀과 소감을 들으면서 저는 눈물이 나왔습니다. UBF 목자 2세들의 영적인 고통이 무엇인지 마음으로 느끼며 이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들의 주님을 향한 개인적인 고백과 헌신을 볼 때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통해서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우실 것입니다. 이들을 통해서 영적인 부흥을 일으킬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하나님이 친히 영광을 드러내실 것을 믿습니다.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여 잡은 후에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였습니다. 이를 통해 바알 숭배의 싹을 잘라버리고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조치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걸치고 있는 양다리를 빼고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황금 숭배, 혼합주의, 상대적인 생각 등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영생을 얻은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얻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좀 가난하게 살고 좀 불편하고, 사명을 감당하며 사는 것이 사실은 복이요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삶을 살게 하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이 우리 안에 온전히 회복되고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그 후에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큰 비 소리가 있으니 올라가서 먹고 마시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갈멜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기도해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일곱 번까지 다시 가서 확인하며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렸습니다. 아합은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는데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습니다. 비가 와서 신이 나서 달려가는 엘리야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신이 났을까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달리는 그의 마음에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희망으로 차올랐습니다.
우리도 우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양들에 대한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도전하여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되도록 도와야겠습니다. 더 나아가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양성하는 그리스도의 군사들로 세워야겠습니다. 우리가 한 사람을 붙잡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도전해야겠습니다. 또 작은 결단을 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한 가지에 믿음으로 도전하는 종들과 함께 하시고 날마다 승리를 체험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열왕기상 17:1-18:46
요절 | 열왕기상 18:37
바알에게 도전한 엘리야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학생 연합 수양회를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알고 누리게 하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세계는 20대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변화되고 성장해왔습니다. 순수한 열정과 도전하는 청년들로 인해서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왔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바알 우상으로 휩쓸려 가는 한 나라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로 바꾸고자 도전하는 엘리야의 믿음에 대해서 배우기를 원합니다. 도전하는 한 사람, 막아서는 한 사람이 필요한 이 시대에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가 배우기를 원합니다.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당시 이스라엘은 불과 50년 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에서 바알 우상을 섬기는 나라로 급속히 타락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지키고 계승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 의아스럽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될 수 있습니다. 영국도 그러한 예입니다. 50년 전만해도 신자의 비율이 90%를 넘던 나라가 이제는 4%로 떨어져서 선교가 필요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아합 왕과 바알 숭배자들에게 도전하였습니다.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농경 사회에서 비와 번개를 주관하는 신인 바알을 숭배하는 왕에게 내 말이 없으면 비도 심지어 이슬조차도 내리지 않는다는 말은 얼마나 큰 도전입니까? 이는 목숨을 건 도전이었습니다. 목숨의 위협을 받을 수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는 스스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곳에 숨도록 하신 것은 먹고사는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도록 하는 훈련이었습니다. 흉년으로 인해서 먹고 살기 어려운 때에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하나님의 종을 먹이십니다. 매일 아침과 저녁에 까마귀 떼들이 한 입씩 떡과 고기를 물어다가 엘리야 앞에 내려놓고 날아갔습니다. 식사를 한 후에 엘리야는 시냇물을 마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시절에 엘리야를 친히 먹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신 하나님,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주님은 지금도 그의 백성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쓰신 종들을 보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많은 훈련을 받았습니다.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사람으로 준비가 됩니다. 신실하게 먹이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먹고사는 문제로 인해서 늘 불안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는 누구에게나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믿음이 없으면 일생 그 문제에 매여서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또 사명을 감당하는 종들에게 하나님은 신실하게 그 필요를 공급해 주십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말랐습니다. 엘리야는 시내가 마를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이 있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며 순종하였습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자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끝까지 중심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그곳에서 생존할 수 없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고 말씀하십니다. 시돈은 바알 숭배의 본거지입니다. 그곳도 먹고 살기가 어렵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엘리야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예수님처럼 이 여자에게 청하였습니다.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그녀가 물을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는 그를 불러 청하였습니다.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그녀는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인줄 어떻게 알았는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12).” 참으로 가련하기 그지없습니다. 남편도 죽고 이제 아들 하나 남았는데 먹을 것이 없어서 마지막 남은 가루와 기름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죽겠다고 합니다.
엘리야는 이런 여자에게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3절을 보십시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벼룩도 낯짝이 있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그 종으로 하여금 얼굴에 철판을 까는 훈련을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과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앞세우도록 도왔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14).” 이 과부는 음식을 해 먹고 죽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을 먹었으나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때로 우리는 알바를 해서 생활을 하는 학생들에게 십일조를 드리고 남을 섬기는 생활을 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섬김을 받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도리어 섬기도록 방향을 주어야 합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되다고 하였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과부가 엘리야를 먹여 살리는 것 같은데 사실은 엘리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과부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과부가 하나님을 도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엘리야를 통해서 과부를 도운 것입니다. 먼저 믿음으로 헌신할 때 하나님의 넘치는 복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 일 후에 그 집 주인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졌습니다. 여인의 슬픔과 낙담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여인은 살 소망이 없어졌습니다. 마음이 힘들자 여인은 엘리야를 원망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이 여자는 남편을 잃어버리고 힘들게 살아왔는데 이제 하나 밖에 없는 아들까지 죽었으니 여인은 살 소망이 없어졌습니다. 여인의 마음은 비통하였습니다. 여인은 이 불행이 자신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가 이런 여인을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엘리야는 그에게 아들을 달라 하여 자기가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이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엘리야는 자신의 생명을 드려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났습니다. 엘리야가 그 아이를 그의 어머니에게 주니 여인이 엘리야에게 말합니다.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여자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 이렇게 어렵습니다. 엘리야는 이제야 사르밧 과부에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학생 수양회에서 믿음을 잃었다가 회복되는 학생들의 소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 중에 소감을 발표한 한 사람은 믿음의 집안에 태어났기 때문에 예배를 드리고 모임에 참여했지만 개인 신앙이 없어 주중에는 술과 게임과 정욕에 이끌려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이요한Jr. 목자가 전한 예레미야 29장 메시지를 듣고 깊이 회개했습니다. 레갑 족속이 왜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고 장막에 거하는 생활을 해 왔는지? 바로 거룩한 삶을 살도록 돕고자 하는 조상들의 지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도 예배와 소감과 믿음의 결혼 등 거룩한 삶을 살고자 투쟁하는 UBF전통을 이해하게 되자 오해가 풀리고 나의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죄와 허물로 죽은 죄인들을 살리십니다. 우리 가운데 계속해서 죽은 자가 살아나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했습니다.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가니 그 때에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하였습니다. 아합이 왕궁 맡은 자 오바댜를 불러서 물 근원과 시내를 찾아 꼴을 얻기를 원했습니다. 죽어가는 말과 노새를 살리고자 두 사람이 두루 다닐 땅을 나누어 풀을 찾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오바댜를 만나 아합에게 보고를 하라고 했습니다.
아합은 엘리야를 만나자 마자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하고 물었습니다. 엘리야가 대답합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18).” 그런즉 사람을 보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아오게 하소서 부탁을 했습니다.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로 사람을 보내 선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았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백성들은 유구무언이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잃어버렸고 바알이 비를 주관한다고 생각하고 바알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머뭇하였습니다. 머뭇거리는 것은 분명한 가치관을 따라 살지 않고 상황을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현실적인 유익을 따라서 살아간 것입니다. 그들은 차지도 더웁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아합 왕은 많은 돈을 들여 곳곳에 바알 신전을 화려하게 건축하였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학교를 세워 전원 장학금을 지급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믿겠다고 하면 각종 세금과 부역을 면제해 주었습니다. 직장에 취업하려면 바알교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특혜를 주었습니다. 아세라 여신 숭배의식 후에는 신전여사제들과 성관계를 가짐으로 음란과 쾌락을 정당화시켰습니다. 이렇게 물질적인 유익과 쾌락을 주는 바알 숭배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신앙을 급속히 버렸습니다. 여호와 신앙을 지키고자 하면 사회에서 왕따를 당하고 불이익을 당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과 아세라 숭배자들이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이런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고자 하는 불타는 열심이 있었습니다. 3년 6개월 동안의 광야 훈련을 통해서 믿음의 담력을 덧입었습니다. 이제 아합 왕에게 도전하고 백성들에게 도전을 하였습니다.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결단도 없고 변화와 성장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도전하지 않으면 사탄에게 양들을 빼앗겨 버립니다. 도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이 부족하고, 양들에 대한 목자의 심정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엘리야는 시대를 막아서는 사람이었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바꾸고자 시도하였습니다. 그의 위대한 시도가 무엇입니까?
그가 바알 선지자들에게 제안을 하였습니다. “그런즉 송아지 둘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그들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나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고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하니라.”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너희가 많으니 먼저 하라고 했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은 받은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쌓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며 그래도 응답이 없자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였습니다. 그래도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바알은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요, 부르다가 죽을 이름이었습니다.
이제 엘리야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는 기도하기 전에 여호와의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였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돌 열두 개를 취하였습니다.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고 돌아가며 곡식 종사 두 세아를 둘 만한 도랑을 만들고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았습니다. 그 후에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째로 그리하라 하여 세 번째로 그리하니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습니다. 그가 이렇게 한 이유는 하늘로부터 불로 임하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분명히 드러내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엘리야는 저녁 소제 드릴 때에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36,37).” 그가 이렇게 기도하기를 마치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자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그 백성들이 우상을 버리고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기도를 받으시고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 제단을 태우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그의 역사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저는 학생 수양회를 준비한 한 한양 센터 이여호수아 목자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놀랍게 역사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수양회 주제를 정하고 강사들을 선정하고 세우는 과정, 수양회 기간 동안 일어난 변화의 역사들, 들려지는 영감 넘치는 말씀과 소감을 들으면서 저는 눈물이 나왔습니다. UBF 목자 2세들의 영적인 고통이 무엇인지 마음으로 느끼며 이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들의 주님을 향한 개인적인 고백과 헌신을 볼 때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통해서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우실 것입니다. 이들을 통해서 영적인 부흥을 일으킬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하나님이 친히 영광을 드러내실 것을 믿습니다.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여 잡은 후에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였습니다. 이를 통해 바알 숭배의 싹을 잘라버리고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조치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걸치고 있는 양다리를 빼고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 속에 있는 황금 숭배, 혼합주의, 상대적인 생각 등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영생을 얻은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얻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좀 가난하게 살고 좀 불편하고, 사명을 감당하며 사는 것이 사실은 복이요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삶을 살게 하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이 우리 안에 온전히 회복되고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그 후에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큰 비 소리가 있으니 올라가서 먹고 마시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갈멜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기도해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일곱 번까지 다시 가서 확인하며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렸습니다. 아합은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는데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습니다. 비가 와서 신이 나서 달려가는 엘리야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신이 났을까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달리는 그의 마음에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희망으로 차올랐습니다.
우리도 우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양들에 대한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도전하여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되도록 도와야겠습니다. 더 나아가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양성하는 그리스도의 군사들로 세워야겠습니다. 우리가 한 사람을 붙잡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도전해야겠습니다. 또 작은 결단을 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한 가지에 믿음으로 도전하는 종들과 함께 하시고 날마다 승리를 체험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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