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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 왕상1강(1:1-2:46) 왕으로 세움 받은 솔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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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83회 작성일 18-10-2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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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열왕기상 제 1 강                                                       
말씀 | 열왕기상 1,2장
요절 | 열왕기상 1:39

왕으로 세움 받은 솔로몬
“제사장 사독이 성막 가운데에서 기름 담은 뿔을 가져다가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으니 이에 뿔나팔을 불고 모든 백성이 솔로몬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하니라.”

  열왕기서는 왕들의 기록입니다. 다윗의 통치 말년부터 여호야김이 바벨론 감옥에서 나온 때까지 400년간의 역사 기록입니다. 솔로몬 이후 20명의 남유다 왕들과 20명의 북이스라엘 왕들의 행적을 기록했습니다. 사관은 신명기적 사관 즉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자에게는 복을 주시고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벌을 내리신다”는 관점을 가지고 기록했습니다. 열왕기 저자의 의도 속에 민족주의적 동기에서 비롯된 이스라엘의 영웅들을 영화롭게 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세속 역사가들의 눈에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간주될 만한 업적들을 간과해버리기까지 했습니다. 저자는 왕들의 행적을 그들의 정치 ‧ 경제 ‧ 사회적 성취나 업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켰는지 여부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멸망의 원인은 불순종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임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주신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신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서 장차 세우실 왕국의 후사이십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실패를 통해 우리의 진정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대망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왕으로 자청한 아도니야(1:1-27).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했습니다. 충성스러운 신하들이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그의 품에 누워 왕의 몸을 따뜻하게 하며 받들어 모시게 했습니다. 다윗 왕이 늙자 후계자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장남인 암논은 다말을 욕보여 죽고 둘째는 다니엘인데 잘 알려지지 않았고 셋째는 압살롬인데 반역을 일으켜서 죽고 넷째가 아도니야였습니다(대상 3:1). 아도니야는 실제적인 적통으로서 스스로를 높여 “내가 왕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는 용모가 준수하였습니다. 또한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는 준비된 왕의 후계자로 보였습니다. 거기다가 실세인 군대장관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이 그를 따랐습니다. 아도니야가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바위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과 왕의 신하 된 유다 모든 사람을 다 청하였으나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또 다윗의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다윗은 왜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을까요?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실 것을 믿고 자신이 죽기 전에 세우고자 했을까요? 물론 다윗은 솔로몬을 낳기 전, 성전 건축을 위하여 기도할 때 이미 솔로몬을 후계자로 삼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대상 22:9). 또 솔로몬을 낳은 후 밧세바에게 그 말씀대로 솔로몬에 대하여 맹세한 바 있습니다(30). 그러나 솔로몬의 나이가 이제 20세쯤으로 어렸고 압살롬의 반역을 처리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니면 그가 영적으로 둔감해져 있는 것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조선왕조는 후계자를 미리 정하여 훈련하고 준비하는 것이 국가의 안정을 꾀하는 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기름부음과 백성들의 추대를 받아서 되었기 때문에 후계자도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친히 세우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아도니야는 스스로 높여서 왕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는 자신이 왕이 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윗 왕에게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윗 왕을 무시했습니다. 왕이 힘이 없다 생각하고 제쳐버리고 실력자들과 담합하여 왕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가 왕이 되었더라면 다윗의 흔적을 지우려고 했을 것입니다. 다윗을 이으려는 하나님으로서는 그를 왕으로 세울 수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지금까지 보면 전 대통령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전 대통령의 흔적을 지우려고 했습니다. 전 대통령과의 차별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한 나라가 견고히 서려면 하나님과 백성을 두려워하고 공의와 인애가 강같이 흐르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인 교회는 어떠해야 합니까? 리더가 되려면 하나님의 주권에 복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심을 알고 우리 안에 그의 통치가 이루어지도록 말씀을 선포하고 그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아도니야는 자기가 왕이 되고자 인간적인 도모를 꾀하고 결국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거역하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자기 힘으로 도모를 하여도 하나님께서 세울 자를 세우시고 폐할 자를 폐하십니다. 
 
  둘째, 왕으로 세움을 받은 솔로몬(28-53). 나단은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기 위해 어떤 도모를 했습니까? 나단 선지자는 아도니야가 군대 장관 요압을 업고 왕이 되고자 하는 것을 보고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요압은 다윗 왕국에서 막강한 군대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이요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가 뛰어난 사람입니다. 나단 선지자는 요압이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 때문에 더욱 두려웠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세가 아도니야에게 기우는 것을 보고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단 선지자도 얼마든지 현실과 타협하여 아도니야를 도울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현실파악을 잘하고 대처하는 현명한 일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나단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솔로몬 편에 섬으로 목숨을 거는 위험한 선택을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편에 섰습니다. 그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진리 편에 섰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이 아도니야에게 있지 않고 솔로몬에게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역대상 22:8,9절은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보라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그는 온순한 사람이라 내가 그로 주변 모든 대적에게서 평온을 얻게 하리라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그의 생전에 평안과 안일함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그는 이를 기초로 솔로몬의 모친 밧세바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밧세바를 찾아가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음을 듣지 못하였나이까? 우리 주 다윗은 알지 못하시나이다”라고 말하고 밧세바와 솔로몬의 생명을 구할 계책을 말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합니다. 나단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겠지 생각하고 가만히 있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나단 선지자와 같은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역사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다윗 왕은 밧세바와 나단의 말을 듣고 “내가 이전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켜 네게 맹세하여 이르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반드시 나를 이어 왕이 되고 나를 대신하여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였으니 내가 오늘 그대로 행하리라” 하고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웠습니다. 모든 백성이 그를 따라 올라와서 피리를 불며 크게 즐거워하므로 땅이 그들의 소리로 말미암아 갈라질 듯하였습니다.

  우리는 솔로몬이 어떻게 왕이 되었는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그는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잠잠히 기다렸습니다. 솔로몬은 왕이 된 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왕상 3:7).” 하나님의 집을 건축한 후에도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을 지켜 주십시오(왕상 8:24).” 솔로몬은 다윗의 뒤를 잇기를 원했습니다. 다윗 길을 따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주인으로 알았습니다. 다윗은 자기 왕권을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왕권을 지키심을 알았습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할 것이다(삼사 7:16).”  한편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 왕권을 가져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압살롬이 반역을 했을 때 다윗은 고백합니다.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않는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삼하 15:26).” 그런 다윗은 자기 왕권을 자기가 지키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왕권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세움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많은 준비를 해야 합니다. 다윗 왕은 왕으로서 기름부음을 받기 전에 양을 충성스럽게 돌보았습니다. 사자와 곰이 와서 양들을 늑탈하려 할 때 자기 목숨을 걸고 양들을 구해내었습니다. 골리앗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할 때 분연히 일어나 골리앗을 대적하여 승리하였습니다. 사울 왕이 그를 죽이고자 할 때 사울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원수와 싸웠지 자기 원수와 싸우지 않았습니다. 누가 자기를 무시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해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그는 자신이 죄인임을 깊이 인정했습니다. 밧세바와 불륜을 저지르고 이를 감추기 위해서 우리아를 전투 맨 앞에 보내어 죽게 했습니다. 그 일로 선지자 나단을 통해서 책망을 받았을 때 그는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 12:13)” 고백합니다. “무릇 나는 내 죄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3-5).” 왕들과 오늘날의 대통령들도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왕은 신과 같은 존재이기에 왕이 자기 죄를 인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비록 왕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환난받는 사람들, 억울할 사람들, 상처 받은 사람들의 목자가 되어 그들을 돌보며 겸손히 하나님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철저히 훈련하셨고 때가 되자 30세에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왕이 되었고 2년의 내전 후에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왕으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리더가 되고자 하면 리더다움을 배우고 실력을 길러야 합니다. 사람들은 어떤 모임에 있든지 리더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이 있다고 해서 모두 리더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리더가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리더다움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배우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깊이 깨닫고 사람과 싸우기보다 자기 죄와 싸우고 성결한 삶을 살고자 힘쓰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강해져야 합니다. 사람의 연약함을 깊이 이해하고 긍휼의 마음을 덧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맡겨주신 양들을 사랑하고 힘써 섬기는 것입니다. 아무 쓸모없는 자인데,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주의 역사에 귀하게 쓰시는 은혜를 늘 기억할 때,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는 낮추시고 겸손한 자는 높이십니다.

  셋째,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라(2:1-12).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자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 다윗의 유언은 솔로몬에게 힘써 대장부가 되라는 것입니다. 대장부는 “건장하고 씩씩한 사내”라는 뜻입니다. 진정한 대장부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말씀에 기초하여 싸우는 사람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식하고 그 앞에서 정직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세상은 사람이 살만한 곳이 됩니다. 다윗은 자신이 잘못을 하였을 때는 깨끗이 인정하였고, 나발을 치러 가고자 하였을 때, 아비가일의 이야기를 듣고 돌이키는 대장부다운 내면성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사울을 죽이고 왕이 될 기회가 많았지만 기회주의자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고,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지키면 무엇을 하든지 형통하게 됩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실 때 무엇을 하든지 형통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과 그가 일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이 형통하기 위해서 무엇을 합니까? 형통하게 되기 위해서 인간적인 노력을 많이 합니다. 열심히 일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지 않습니다. 대장부가 되어 힘써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사 하는 일마다 형통하게 하십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세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하나는 요압입니다. 그는 군대장관인데 이스라엘 군대의 사령관 아브넬을 사심을 가지고 죽여 태평 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게 했습니다. 아마사가 군대장관이 되자 그를 죽여 자기가 그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이런 불의한 자를 백발이 평안하도록 죽게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신이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자신을 쫓아다니며 악독한 말로 저주한 시므이를 무죄로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길르앗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그들이 왕의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여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가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망다닐 때에 바르실래가 그를 지극정성으로 도운 것을 기억하고 그 아들들에게 은혜를 베풀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워 다윗 성에 장사되었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십년입니다. 헤브론에서 칠년을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솔로몬이 다윗의 왕위에 앉으니 그의 나라가 심히 견고하였습니다.

  넷째, 왕위를 견고히 한 솔로몬(13-46). 아도니야가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나아와 한 가지 간청을 하였습니다. 그는 “당신도 아시는 바이거니와 이 왕위는 내 것이었고 온 이스라엘은 다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왕으로 삼으려 하였는데 그 왕권이 돌아가 내 아우의 것이 되었음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니이다(15).” 그는 교묘하게 교만한 말을 하였습니다. 이 왕위가 자기 것이었는데 솔로몬이 왕이 된 것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솔로몬 왕에게 청하여 수넴 여자 아비삭을 자신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밧세바는 그의 속마음을 간파하지 못하고 좋다고 말하였습니다. 밧세바가 솔로몬 왕에게 나아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아도니야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소서”라고 순진하게 간청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자 솔로몬의 안색이 변하였습니다. 22,23절을 보십시오. “솔로몬 왕이 그의 어머니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하여 아도니야를 위하여 수넴 여자 아비삭을 구하시나이까 그는 나의 형이오니 그를 위하여 왕권도 구하옵소서 그뿐 아니라 제사장 아비아달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을 위해서도 구하옵소서 하고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여 이르되 아도니야가 이런 말을 하였은즉 그의 생명을 잃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이다.” 왜 솔로몬 왕이 이렇게 진노한 것입니까? 왕의 아내를 취하고자 하는 아도니야의 마음은 자신을 다윗 왕과 동급으로 여기고 있고 솔로몬을 아랫사람으로 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왕을 알기를 우습게 여기는 그의 교만을 볼 때 이미 왕좌를 노리고 있음을 간파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브나야를 보내 당장 아도니야를 쳐서 죽였습니다. 그리고 제사장 아비아달을 직분을 박탈하고 고향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엘리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였습니다.
 
  그 소문이 요압에게 들리자 그는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제단 뿔을 잡았습니다. 그가 다윗을 떠나 압살롬을 따르지 아니하였으나 아도니야를 따랐음입니다. 솔로몬은 이 이야기를 듣고 브나야를 보내어 그를 치라고 했습니다. 요압이 여호와의 장막에서 죽겠다고 하자 솔로몬은 그의 말대로 죽여 묻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요압이 까닭 없이 흘린 피를 이스라엘에서 제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요압은 다윗 왕도 어쩌지 못한 자기가 매우 강한 사람입니다. 그는 싸움꾼입니다. 요압은 평화의 시기에 싸움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나라가 흔들리고 깨집니다. 솔로몬이 그런 요압을 제거함으로써 전쟁의 요소, 싸움의 요소를 없애버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시므이를 불러 예루살렘에서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거기서 살고 어디든지 나가지 말라.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나가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니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 가리라”고 말했습니다. 시므이가 이 말씀이 좋사오니 내 주 왕의 말씀대로 종이 그리하겠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삼 년 후에 시므이가 두 종이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도망간 것을 알고 그 종을 찾아 데려왔습니다. 왕이 시므이를 불러 여호와를 두고 한 맹세와 그가 왕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한 것을 확인시켰습니다. 그리고 브나야에게 명령하여 나가서 시므이를 치니 그가 죽었습니다. 시므이는 다윗의 보호를 받으면서도 사울 때문에 다윗을 미워하였습니다. 시므이는 기회만 오면 언제든지 사울의 요소, 다윗에 대한 미움을 표출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솔로몬은 평화의 시대, 화합의 시대를 열고, 성전 건축이라는 과업을 해내야 합니다. 그런 시대에 사울의 요소가 살아 있다면 나라가 다시 분열하여 싸울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이런 요소를 제거함으로서 나라가 그의 손에 견고하여졌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왕을 세우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고자,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 다윗의 길을 따르고자 하는 그를 왕으로 세우시고 나라를 견고하게 하셨습니다. 다윗의 길은 하나님의 왕권을 인정하고 순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자기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믿고 사는 사람이 견고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새 사람이 되었음을 믿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죄악된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자기가 죽고 주님을 따를 때 주님이 나와 가정과 교회와 이 나라를 견고하게 세워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왕 되신 예수님을 높이고 따를 때 개인과 우리의 공동체 속에 진정한 평화가 있고 번영이 있습니다. 우리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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