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 왕상3강 성전 봉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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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열왕기서 제 3 강
말씀 / 열왕기상 8장
요절 / 열왕기상 8:28
솔로몬의 성전 봉헌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성전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성전은 말씀이 있는 곳이요 기도하는 곳이요, 인생들이 죄로 인한 문제를 해결 받는 곳입니다. 또한 삶의 구심점이 되어야 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성전을 통해서 교회의 역할에 대해서도 새롭게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성전은 말씀이 있는 곳입니다(8:1-21). 성전이 다 완성된 후 솔로몬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 성 곧 시온에서 메오 올리고자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이스라엘 장로와 모든 지파의 족장들을 예루살렘으로 소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에다님 월 곧 칠월 절기에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모이자 제사장들이 궤를 멨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궤와 회막과 성막 안의 모든 거룩한 기구들을 메고 올라갔습니다. 솔로몬 왕과 그 앞에 모인 이스라엘 회중이 저와 함께 궤 앞에 있어 양과 소로 제사를 드렸는데 그 수가 많아 기록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었습니다.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그 처소인 지성소 그룹들의 날래 아래로 메어 들였습니다.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두 돌판은 십계명을 하나님이 기록한 것으로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여호와께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입니다.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기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구름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여졌습니다. 이 구름은 눈부시게 영광스러웠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보면 죽기 때문에 빽빽한 구름으로 하나님은 임재하셨고 그로 인하여 제사장이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자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그의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늘의 예루살렘에서 그의 구속 받은 성도들 가운데 거하실 축복된 상태에 대한 예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이후에 사람들의 손으로 지어진 성전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는 참 것에 대한 그림자와 상징으로 주어진 이러한 모든 예표들의 완성이었기 때문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6:19)” 참된 신자 안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싡신자의 몸은 하나님의 집 즉 참 성전인 것입니다. 한편 모든 신자들은 “산 돌들로서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벧전2:5)”,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갑니다(엡2:22).”
우리는 여기서 성전의 중심이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에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출25장 21,22절은 말씀합니다.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하나님께서는 언약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말씀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은 성령님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조명 하에 말씀을 읽고 공부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 마음은 성령님께서 거하시는 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 시간에 메신저를 통해서 자신의 뜻을 전하십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말씀을 읽고 공부할 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고이사무엘 선교사님은 핍박을 받고 환란이 많을 때 일수록 성경공부에 전념하셨습니다. 이때 나아갈 방향이 생기고 비전을 보고 힘있게 복음 역사를 섬길 수 있었습니다.
둘째, 성전은 죄인들이 향해서 기도하는 집입니다(22-30). 솔로몬은 그의 기도에서 하나님을 상천하지에 주와 같은 신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23). 그는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27)”라고 말하면서 성전이 하나님을 모시기에는 부족한 곳임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공간적으로 제한할 수 없습니다. 시편 기자는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시139:7-12).” 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옵시며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29)”라고 간구합니다. 그는 계속해서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30)”라고 간구합니다. 이 말씀대로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지만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는 응답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고 어려울 때 도움을 줄 곳을 바라봅니다. 무언가를 향해 도움을 청합니다. 이방인들은 우상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우상을 향해 손을 벌렸습니다. 심지어 나무나 바위를 향해서도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성전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곧 성전 안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성전은 기도가 충만한 곳이어야 합니다. 성전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곳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성전이십니다. 우리는 죄와 고통으로 괴로울 때 예수님을 향하여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 주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솔로몬은 죄로 인해서 고난을 받게 될 여러 경우에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해야 함을 말해 줍니다. 이웃에게 범죄 할 경우 성전을 들어 맹세할 때에 악한 자의 죄를 정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돌리시고 의로운 자를 의롭다 하사 그 의로운 대로 갚아 달라고 기도합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에 패했을 경우 그들이 주께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전에서 빌며 간구할 때 주는 들으시고 그들의 죄를 사해주시며 그 열조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고 합니다. 저희가 범죄하여 비가 오지 않을 경우 그들이 성전을 향하여 빌며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그 죄에서 떠나거든 주의 땅에 비를 내려 달라고 합니다. 이 땅에 기근이나 전염병이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 재앙을 만났을 경우 그들이 다 각각 자기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기도나 간구를 하거든 주께서 그들의 죄를 사유하시며 그 모든 행위대로 행하사 갚으시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주의백성이 그 땅에서 사는 동안 항상 주를 경외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또 멀리서 온 이방인이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그의 부르짖는대로 이루어 땅의 만민으로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성전은 만민을 위한 선교 센터의 구실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방인에 대한 따뜻한 솔로몬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그들이 비록 이방인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했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선민의식에 사로잡혀서 이방인에게 배타적인 자세를 취한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출전할 경우 이 전을 향해서 기도하면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 일을 돌아보아 달라고 합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에 포로로 잡혀갔을 경우 사로 잡혀 간 땅에서 스스로 깨닫고 돌이켜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하여 패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하며 자기를 사로잡아 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주께서 그 열조에게 주신 땅 곧 주의 빼신 성과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돌아오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52절을 보십시오. “원컨대 주는 눈을 들어 종의 간구함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간구함을 보시고 무릇 주께 부르짖는 대로 들으시옵소서” 솔로몬은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기도는 이와 같이 부르짖어야 합니다. 성경에 기도를 나타내는 말을 조사해 보면 묵상 기도는 매우 적고 대부분 부르짖는 것입니다. 노래는 소리를 내서 해야 하고 메시지도 소리를 내서 전해야 하듯이 기도도 부르짖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들은 살다 보면 여러 가지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이런 인생 문제들을 성전에서 또는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인생 문제를 혼자서 해결하려고 끙끙거리다가 힘을 소진하지 말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이 죄를 범하고 하나님의 벌을 받았을 때 죄 용서를 빌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죄를 용서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성전은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나와서 용서를 비는 집입니다. 성전은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나오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성전으로 향해 있습니다. 성전에서 죄인과 하나님이 만납니다. 그 성전에서 죄인이 하나님의 용서함을 받고 구원과 생명을 얻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말씀의 선포와 함께 죄사함이 넘쳐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회개의 역사가 있고 세례와 성만찬을 베풉니다.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다는 솔로몬의 고백대로 인간은 죄로 인해서 고통합니다. 또한 죄로 인해서 여러 모양의 재앙들이 발생합니다. 죄로 인해서 문제가 생깁니다. 이런 저런 문제 있는 사람들이 기도하고 용서 받고 문제를 해결 받는 장소가 바로 성전입니다. 그런 점에서 성전은 치료하는 곳이요 요양하는 곳입니다. 쉼을 주는 장소입니다. 위로를 받는 곳입니다. 죄문제를 다 드러내 놓고 치료를 받는 곳입니다. 이런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거기 계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건축학을 공부해 보면 건물이 사람을 만든다고 합니다.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생활했습니다.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구심점이었습니다. 요즈음은 사람들의 삶은 가정이 구심점이 되고 술집이 구심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를 중심으로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센터에 양들이 북적북적 거리고 일대일 말씀 공부와 기도의 열기가 충만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교사들이 오고 가며 쉼을 누리고 힘을 얻어 재 파송되는 선교센터가 되어야 합니다. 목자님들이 직장에 갈 때 ,퇴근할 때 한번씩 들러서 기도하고 교제를 나누면서 힘을 얻는 장소, 기도하는 장소, 문제를 해결하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러면 은사를 가진 분들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각 요회 마다 요일에 모임을 이루는 가운데 말씀을 나누고 교제하고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많은 일을 하지 못할지언정 함께 모여서 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초대 교회를 보면 성도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셋째,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소서 (8:54-66). 기도 후에 솔로몬은 이스라엘 온 회중을 축복했습니다. 60,61절을 보십시오. “이에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런즉 너희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화합하여 완전케 하여 오늘날과 같이 그 법도를 행하며 그 계명을 지킬지어다.” 그는 세상 만민이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기 원했습니다 . 그가 성전을 건축한 것은 백성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모든 길로 향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돌아보십니다. 솔로몬은 주의 종의 일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일을 날마다 당하는 대로 돌아 보사 이에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기도했습니다. 성전을 통해서 백성은 하나님께 가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돌아 보십니다. 이로써 세상 만민은 이스라엘의 신인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 만민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는 일은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쳐 주고 그들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세상 만민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하려면 힘을 얻기 위해서 모이는 교회가 되는 동시에 흩어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섬김과 사랑과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도하고 심방하고 봉사하고 선교를 함으로 세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능력을 보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간증을 합니다. 그것이 전도입니다. 우리가 캠퍼스에 힘있게 하나님을 전하기를 기도합니다.
넷째, 성전의 한계(9:1-9). 9장 1절을 보십시오. 솔로몬이 성전과 왕궁 건축하기를 마친 후였습니다. 이때는 솔로몬의 통치가 24년이 되는 해로서 그의 통치가 절정을 이루던 시대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먼저 축복의 말씀을 허락하셨습니다. 그가 건축한 성전에 하나님의 이름을 영영히 두며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항상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4,5절을 보십시오.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며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여 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내가 네 아비 다윗에게 허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너의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한다는 말은 하나님께 대해 항상 성실하고도 정직한 태도를 지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그의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 어떻게 됩니까? 6,7절을 보십시오. “만일 너희와 너희 자손이 아주 돌이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숭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나의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면 국물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눈에 보이는 영광과 번영에 마음을 빼앗겨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지 못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우상 숭배의 죄에 빠지게 됩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땅에서 끊어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세워진 거룩한 성전일지라도 던져 버려져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 거리가 되며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경고의 말씀을 하심으로 솔로몬이 영적인 위기의 순간에 자신을 돌아보기를 원하셨습니다.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 하나님은 성전을 엎어버리십니다. 이 예언은 실제로 B.C. 586년에 1차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배교와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동원하여 이스라엘을 멸망시켰습니다. 이때 예루살렘은 포위되어 성전이 파괴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리고 이 예언의 2차 성취는 신약ㄱ시대에 이루어졌습니다. 로마 장군 디도가 이끄는 군대가 유대에 진격하여 그 옛날 자신의 선조가 바벨론에 포로되어 각 지에 흩어졌듯이 그들은 2천년 동안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평양을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가 들어와서 하나님보다 인간을 우상화했을 때 끊임없이 홍수와 기근이 일어나고 수백만이 굶어죽는 역사의 교훈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중심한 삶을 살 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고 번영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떠나 말씀을 부담스러워하고 불순종할 때 저주를 받게 됨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세상 일에 바쁘게 쫓기는 삶을 살기보다 한 템포를 늦추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과 마음을 화합하여 그 말씀대로 행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때 우리와 이 백성을 위대한 백성으로 세계 만민 구속 역사에 귀히 쓰실 줄 믿습니다.
말씀 / 열왕기상 8장
요절 / 열왕기상 8:28
솔로몬의 성전 봉헌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성전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성전은 말씀이 있는 곳이요 기도하는 곳이요, 인생들이 죄로 인한 문제를 해결 받는 곳입니다. 또한 삶의 구심점이 되어야 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성전을 통해서 교회의 역할에 대해서도 새롭게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성전은 말씀이 있는 곳입니다(8:1-21). 성전이 다 완성된 후 솔로몬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 성 곧 시온에서 메오 올리고자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이스라엘 장로와 모든 지파의 족장들을 예루살렘으로 소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에다님 월 곧 칠월 절기에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모이자 제사장들이 궤를 멨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궤와 회막과 성막 안의 모든 거룩한 기구들을 메고 올라갔습니다. 솔로몬 왕과 그 앞에 모인 이스라엘 회중이 저와 함께 궤 앞에 있어 양과 소로 제사를 드렸는데 그 수가 많아 기록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었습니다.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그 처소인 지성소 그룹들의 날래 아래로 메어 들였습니다.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두 돌판은 십계명을 하나님이 기록한 것으로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여호와께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입니다.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기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구름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여졌습니다. 이 구름은 눈부시게 영광스러웠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보면 죽기 때문에 빽빽한 구름으로 하나님은 임재하셨고 그로 인하여 제사장이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자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그의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늘의 예루살렘에서 그의 구속 받은 성도들 가운데 거하실 축복된 상태에 대한 예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이후에 사람들의 손으로 지어진 성전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는 참 것에 대한 그림자와 상징으로 주어진 이러한 모든 예표들의 완성이었기 때문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6:19)” 참된 신자 안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싡신자의 몸은 하나님의 집 즉 참 성전인 것입니다. 한편 모든 신자들은 “산 돌들로서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벧전2:5)”,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갑니다(엡2:22).”
우리는 여기서 성전의 중심이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에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출25장 21,22절은 말씀합니다.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하나님께서는 언약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말씀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은 성령님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조명 하에 말씀을 읽고 공부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 마음은 성령님께서 거하시는 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 시간에 메신저를 통해서 자신의 뜻을 전하십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말씀을 읽고 공부할 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고이사무엘 선교사님은 핍박을 받고 환란이 많을 때 일수록 성경공부에 전념하셨습니다. 이때 나아갈 방향이 생기고 비전을 보고 힘있게 복음 역사를 섬길 수 있었습니다.
둘째, 성전은 죄인들이 향해서 기도하는 집입니다(22-30). 솔로몬은 그의 기도에서 하나님을 상천하지에 주와 같은 신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23). 그는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27)”라고 말하면서 성전이 하나님을 모시기에는 부족한 곳임을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공간적으로 제한할 수 없습니다. 시편 기자는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시139:7-12).” 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옵시며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29)”라고 간구합니다. 그는 계속해서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30)”라고 간구합니다. 이 말씀대로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지만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는 응답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고 어려울 때 도움을 줄 곳을 바라봅니다. 무언가를 향해 도움을 청합니다. 이방인들은 우상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우상을 향해 손을 벌렸습니다. 심지어 나무나 바위를 향해서도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성전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곧 성전 안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성전은 기도가 충만한 곳이어야 합니다. 성전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곳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성전이십니다. 우리는 죄와 고통으로 괴로울 때 예수님을 향하여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 주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솔로몬은 죄로 인해서 고난을 받게 될 여러 경우에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해야 함을 말해 줍니다. 이웃에게 범죄 할 경우 성전을 들어 맹세할 때에 악한 자의 죄를 정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돌리시고 의로운 자를 의롭다 하사 그 의로운 대로 갚아 달라고 기도합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에 패했을 경우 그들이 주께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전에서 빌며 간구할 때 주는 들으시고 그들의 죄를 사해주시며 그 열조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고 합니다. 저희가 범죄하여 비가 오지 않을 경우 그들이 성전을 향하여 빌며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그 죄에서 떠나거든 주의 땅에 비를 내려 달라고 합니다. 이 땅에 기근이나 전염병이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 재앙을 만났을 경우 그들이 다 각각 자기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기도나 간구를 하거든 주께서 그들의 죄를 사유하시며 그 모든 행위대로 행하사 갚으시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주의백성이 그 땅에서 사는 동안 항상 주를 경외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또 멀리서 온 이방인이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그의 부르짖는대로 이루어 땅의 만민으로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성전은 만민을 위한 선교 센터의 구실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방인에 대한 따뜻한 솔로몬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그들이 비록 이방인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했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선민의식에 사로잡혀서 이방인에게 배타적인 자세를 취한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출전할 경우 이 전을 향해서 기도하면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 일을 돌아보아 달라고 합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에 포로로 잡혀갔을 경우 사로 잡혀 간 땅에서 스스로 깨닫고 돌이켜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하여 패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하며 자기를 사로잡아 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주께서 그 열조에게 주신 땅 곧 주의 빼신 성과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돌아오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52절을 보십시오. “원컨대 주는 눈을 들어 종의 간구함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간구함을 보시고 무릇 주께 부르짖는 대로 들으시옵소서” 솔로몬은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기도는 이와 같이 부르짖어야 합니다. 성경에 기도를 나타내는 말을 조사해 보면 묵상 기도는 매우 적고 대부분 부르짖는 것입니다. 노래는 소리를 내서 해야 하고 메시지도 소리를 내서 전해야 하듯이 기도도 부르짖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들은 살다 보면 여러 가지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이런 인생 문제들을 성전에서 또는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인생 문제를 혼자서 해결하려고 끙끙거리다가 힘을 소진하지 말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이 죄를 범하고 하나님의 벌을 받았을 때 죄 용서를 빌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죄를 용서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성전은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나와서 용서를 비는 집입니다. 성전은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나오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성전으로 향해 있습니다. 성전에서 죄인과 하나님이 만납니다. 그 성전에서 죄인이 하나님의 용서함을 받고 구원과 생명을 얻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말씀의 선포와 함께 죄사함이 넘쳐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회개의 역사가 있고 세례와 성만찬을 베풉니다.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다는 솔로몬의 고백대로 인간은 죄로 인해서 고통합니다. 또한 죄로 인해서 여러 모양의 재앙들이 발생합니다. 죄로 인해서 문제가 생깁니다. 이런 저런 문제 있는 사람들이 기도하고 용서 받고 문제를 해결 받는 장소가 바로 성전입니다. 그런 점에서 성전은 치료하는 곳이요 요양하는 곳입니다. 쉼을 주는 장소입니다. 위로를 받는 곳입니다. 죄문제를 다 드러내 놓고 치료를 받는 곳입니다. 이런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거기 계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건축학을 공부해 보면 건물이 사람을 만든다고 합니다.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생활했습니다.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구심점이었습니다. 요즈음은 사람들의 삶은 가정이 구심점이 되고 술집이 구심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를 중심으로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센터에 양들이 북적북적 거리고 일대일 말씀 공부와 기도의 열기가 충만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교사들이 오고 가며 쉼을 누리고 힘을 얻어 재 파송되는 선교센터가 되어야 합니다. 목자님들이 직장에 갈 때 ,퇴근할 때 한번씩 들러서 기도하고 교제를 나누면서 힘을 얻는 장소, 기도하는 장소, 문제를 해결하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러면 은사를 가진 분들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각 요회 마다 요일에 모임을 이루는 가운데 말씀을 나누고 교제하고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많은 일을 하지 못할지언정 함께 모여서 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초대 교회를 보면 성도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셋째,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소서 (8:54-66). 기도 후에 솔로몬은 이스라엘 온 회중을 축복했습니다. 60,61절을 보십시오. “이에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런즉 너희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화합하여 완전케 하여 오늘날과 같이 그 법도를 행하며 그 계명을 지킬지어다.” 그는 세상 만민이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기 원했습니다 . 그가 성전을 건축한 것은 백성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모든 길로 향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돌아보십니다. 솔로몬은 주의 종의 일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일을 날마다 당하는 대로 돌아 보사 이에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기도했습니다. 성전을 통해서 백성은 하나님께 가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돌아 보십니다. 이로써 세상 만민은 이스라엘의 신인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 만민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는 일은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쳐 주고 그들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세상 만민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하려면 힘을 얻기 위해서 모이는 교회가 되는 동시에 흩어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섬김과 사랑과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도하고 심방하고 봉사하고 선교를 함으로 세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능력을 보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간증을 합니다. 그것이 전도입니다. 우리가 캠퍼스에 힘있게 하나님을 전하기를 기도합니다.
넷째, 성전의 한계(9:1-9). 9장 1절을 보십시오. 솔로몬이 성전과 왕궁 건축하기를 마친 후였습니다. 이때는 솔로몬의 통치가 24년이 되는 해로서 그의 통치가 절정을 이루던 시대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먼저 축복의 말씀을 허락하셨습니다. 그가 건축한 성전에 하나님의 이름을 영영히 두며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항상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4,5절을 보십시오.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며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여 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내가 네 아비 다윗에게 허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너의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한다는 말은 하나님께 대해 항상 성실하고도 정직한 태도를 지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그의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 어떻게 됩니까? 6,7절을 보십시오. “만일 너희와 너희 자손이 아주 돌이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숭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나의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면 국물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눈에 보이는 영광과 번영에 마음을 빼앗겨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지 못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우상 숭배의 죄에 빠지게 됩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땅에서 끊어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세워진 거룩한 성전일지라도 던져 버려져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 거리가 되며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경고의 말씀을 하심으로 솔로몬이 영적인 위기의 순간에 자신을 돌아보기를 원하셨습니다.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 하나님은 성전을 엎어버리십니다. 이 예언은 실제로 B.C. 586년에 1차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배교와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동원하여 이스라엘을 멸망시켰습니다. 이때 예루살렘은 포위되어 성전이 파괴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리고 이 예언의 2차 성취는 신약ㄱ시대에 이루어졌습니다. 로마 장군 디도가 이끄는 군대가 유대에 진격하여 그 옛날 자신의 선조가 바벨론에 포로되어 각 지에 흩어졌듯이 그들은 2천년 동안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평양을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가 들어와서 하나님보다 인간을 우상화했을 때 끊임없이 홍수와 기근이 일어나고 수백만이 굶어죽는 역사의 교훈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중심한 삶을 살 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고 번영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떠나 말씀을 부담스러워하고 불순종할 때 저주를 받게 됨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세상 일에 바쁘게 쫓기는 삶을 살기보다 한 템포를 늦추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과 마음을 화합하여 그 말씀대로 행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때 우리와 이 백성을 위대한 백성으로 세계 만민 구속 역사에 귀히 쓰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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