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07년 여호수아5강(6:1-27) 무너져 내리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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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겨울 여호수아 제 5 강
말씀 여호수아 6:1-27
요절 여호수아 6:5
무너져 내리리니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을 공략하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를 행하도록 하시고 여호수아의 발에서 신발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전쟁을 하기 전에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께 주도권을 맡기라고 하십니다. 오늘 공부할 말씀은 그 구체적인 실천사항입니다. 여리고 성은 당시에 난공불락의 성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지혜로 무너뜨렸습니다. 이 가운데 나타난 영적 진리를 배워서 우리도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를 소망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으로 인하여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여리고 성은 B.C. 7000년 전에 세워진 도시였습니다. 학자들은 여리고 성 자체의 크기는 둘레가 약 4 Km 정도로 추정합니다. 카트린 캐년이 쓴 “여리고 발굴”(N.Y. 1957)에 의하면 여리고는 가파른 경사지 정상에 이중 성벽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외벽은 두께 2미터, 높이 7미터였습니다. 그 위에 둔덕이 있고 집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벽이 있었습니다. 그 높이는 5.4미터입니다. 이런 여리고 성은 직접적인 군사 공격으로는 거의 함락이 불가능한 천연의 요새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방어하고자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보통 성을 공략하려면 포위 공격을 하던지, 스파이더맨과 같이 성벽을 타고 꼭대기에 이르는 접근로를 뚫어야 합니다. 아니면 토성을 쌓아서 성을 공격해야 합니다. 포위해서 여리고의 방어 병력을 굶주리게 하여 항복을 받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 200만 명이 오래 동안 먹고 버틸 수 있는 식량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연합군이 공격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오래 끄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불리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주시는 전술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 하나님이 친히 싸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여호수아에게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다고 하십니다(2).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승리를 주겠다고 하십니다. 먼저 이긴 싸움임을 믿고 싸우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 그리하라고 하십니다.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하고 제 칠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은 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 소리가 들릴 때에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르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릴 것이고 그때 백성들이 올라가서 공략하라고 하십니다.
여호수아는 제사장들과 백성에게 무슨 방향을 주었습니까? 10절을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제사장들은 여호수아의 방향대로 나가서 언약궤를 메고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그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언약궤 앞과 뒤에 무장한 군사들을 배치하고 믿음으로 성을 돌았습니다. 이때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침묵하도록 명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시겠다는 데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사람이 어떻게 저떻게 해 보자고 말하는 것은 소음에 불과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침묵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백성들 가운데는 믿음이 좋은 사람도 있지만, 믿음이 약한 사람도 있고, 인간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 중에 누구 한 사람이 “왜 성을 공격을 하지 않고, 돌라고 하는 거야, 성을 돌기만 하면 어떻게 저 성이 무너진단 말이야?” 하면서 불신의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불신의 말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고 또 전달되어 불신적인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무기력해져서 성을 7일 동안 온전히 돌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리고 성을 돌면서 침묵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고 침묵할 때 속에서 불이 났을 것입니다. 첫 날은 이스라엘 군대가 침묵하자 여리고 군대도 침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둘째 날 부터는 달랐을 것입니다. 여리고 군대가 조롱했습니다. “이 겁쟁이들아! 꼴을 보니 너희가 싸우는 것이 무서운 게로구나! 이 성이 얼마나 튼튼한지 똑똑히 보거라!” 이런 적의 조롱을 받으면서도 이스라엘 군대는 계속 침묵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침묵하면서 기도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고요한 가운데 주님의 세미한 속삭임을 들었습니다. 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침묵할 때 마음에 평강이 임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집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승리를 주신다는 것을 믿고 마음에 여유를 갖게 됩니다. 처음 6일간 백성들은 하루에 한 바퀴만 돌았습니다. 그리고는 진에 일찍 돌아와서는 쉬었습니다. 그들은 여리고가 당장에 무너지지 않는다고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왜 성을 당장 정복하게 하지 않으시는가 하며 하나님을 불신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지긋이 하루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그리고 쉬었습니다. 우리도 캠퍼스를 복음으로 정복하고자 할 때 믿음에서 나오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당장에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고 상황이 어렵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심을 믿고 여유있게 캠퍼스를 돌아야겠습니다.
이렇게 하다가 여호수아가 명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쳐야 합니다. 이를 볼 때 침묵할 때와 외칠 때가 있습니다. 외칠 때는 한 목소리로 외쳐야 합니다. 우리는 때를 따라 복음을 외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비전과 말씀을 외쳐야 합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외쳐야 합니다. 한 목소리로 외칠 때 큰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하는 한 마디와 불평 불만을 말하는 사람의 잔소리는 무게가 다릅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한 마디는 사람뿐만 아니라 하늘도 움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많은 말을 하기보다 하나님이 친히 하시는 일을 바라보아야 겠습니다.
둘째, 승리의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아침에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는 새벽에 기도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힘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순종했습니다. 그랬을 때 백성들도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도울 수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여호와의 궤를 메고 일곱 제사장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계속 진행하며 나팔을 불고 무장한 자들은 그 앞에 행하며 후군은 여호와의 궤 뒤에 행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군했습니다. 행진하는 백성들의 가운데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사용한 나팔은 은나팔이 아니라, 양뿔에 구멍을 뚫어 만든 양각 나팔이었습니다. 그것은 가장 저질의 재료로 만든 것으로서 소리가 둔탁하며 모양이 없었습니다. 탁월한 권능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양각 나팔의 소리에 비유될 수 있는 ‘전도의 미련함’으로써 마귀의 왕국은 무너지게 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제 칠 일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여전한 방식으로 성을 일곱 번 도니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 날뿐이었더라.” 마지막 날에 그들은 28킬로미터를 행군했습니다. 새벽부터 일찍이 일어나서 돌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하루 종일 28킬로미터를 도는 것이 힘들다고 줄이지 않았습니다. 히 11:30절에는 “믿음으로 칠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될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은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좋은 믿음은 좋은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무겁지 않았습니다. 성의 둘레가 약 4 Km 이고, 당시 이스라엘 군을 약 60 만으로 본다면 15열 종대로 1 미터 간격으로 돌아야 맨 먼저 행진한 군사가 도착할 때 제일 뒤에 있는 군사가 행진을 시작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성을 둘러싸고 돌았습니다.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여섯째 날까지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실패처럼 보인다고 하여 다른 방법을 취하는 것이 승리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최후의 순간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꼭 붙잡고 순종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었습니다. 빰삐라 빰, 빰빰빰빰.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백성들이 크게 소리를 질러 외쳤습니다. 그들의 외침은 승리의 외침이요 기도의 외침이었습니다. 와! 여호와의 영광이여! 여호와의 능력이여! 함성 소리와 함께 성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20).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자 그 견고한 성벽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여리고 성 안에 있던 백성들은 공황 상태에 빠졌습니다. 용기백배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진멸했습니다. 남녀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로 멸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무너뜨려야 하는 강한 여리고 성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학과 공부가 여리고 성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물질 문제, 어떤 사람에게는 인간관계 문제, 어떤 사람에게는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정 문제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변화되지 않는 죄악의 여리고 성이 있습니다. 이런 죄 문제들이 얼른 해결되고 새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것이 쉽게 되지 않습니다. 죄악된 자아가 무너져야 하는데 펄펄 살아서 날뜁니다. 강한 자기중심성, 잘 변화되지 않는 악한 습관, 혈기와 교만, 정욕, 판단하는 마음, 적당주의, 인본주의, 물질주의 등 강한 죄성들이 있습니다. 제자 훈련을 하는데 쉽게 되지 않습니다. 우리 시대의 세속적인 세계관들은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인본주의적인 세계관으로 인해서 젊은이들은 복음을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뉴에이지 사상, 막스-레닌주의, 자유주의 등은 정치, 종교, 예술, 문화, 학문 분야에서 힘있게 그 세력을 떨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없다, 물질이 최고다, 인간의 능력으로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믿음을 갖는 것을 고리타분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견고한 이론들에 젖어 있는 지성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고 성경에 기초한 진리 위에 살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맞서는 그 세력이 매우 견고해 보입니다. 우리는 이런 여리고 성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고 그의 말씀을 앞세우고 싸워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어리석다고 조롱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고 좌우에 날선 검과 같아서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캠퍼스를 우리 손에 붙이신 것을 믿고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고후 10:4절에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 계시록 12:11절에서는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능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럴 때 견고한 성이 무너집니다. 죄악을 깨닫고 돌이키게 됩니다. 사단의 세력이 떠나고 성령의 역사가 임합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통해서 죄사함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복음을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임합니다.
셋째, 칼날로 멸할지니라. 17a절을 보십시오. “이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여기서 바치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헤렘입니다. 그 기본적인 의미는 ‘사람이 어떤 물건을 사용하거나 오용하지 못하도록 따로 구분시켜 오로지 하나님께 넘겨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넘겨준다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 바치는 ‘봉헌’의 의미와 철저히 파멸시키고 저주하는 ‘진멸’의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멸하니라”는 말씀도 헤렘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여리고 성의 모든 것을 철저히 파괴하라고 하십니까? 이는 죄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죄악된 바이러스이기 때문입니다. 조류 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된 닭들이 발견되면 반경 3킬로미터 내의 닭은 다 도살합니다. 그래도 염려가 되면 8킬로미터 내의 닭을 다 도살합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순식간에 바이러스가 퍼져서 다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의 우상 숭배와 죄악을 박멸하고 뿌리 뽑기를 원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백성이 파멸하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전쟁은 대개 탈취물을 나누기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거룩한 전쟁입니다. 정복 전쟁이 아니라 여호와의 전쟁입니다. 가나안 문명이 이스라엘 보다 앞섰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러 가지 물건들을 볼 때 탐욕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다 파괴해야 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렵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을 진멸하시는 중에도 기생 라합과 그 부모와 그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과 그의 친족도 다 구원하십니다. 이는 기생 라합이 여리고를 탐지하려고 보낸 사자를 숨겨주었기 때문입니다. 라합의 집은 여리고 성벽 위에 있었는데 고고학적인 발견 결과 여리고의 북쪽 벽은 무너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벽에 기대어 성이 세워져 있고 아마 그 곳이 라합의 집터였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리고 사람들이 다 심판을 받아 죽는 가운데서도 믿음의 사람 라합과 그에게 속한 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죄악으로 가득 찬 여리고 성을 심판하신 것처럼 이 세상도 철저하게 불로 심판을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우리를 반드시 기억하시고 구원하십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 하나님은 여리고 성을 폐허가 된 채로 남겨 두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역사적인 증거로 삼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손들에게 역사 교육을 시키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또한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 앞에서 경외심을 가지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고 죄와 싸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각자에게 있는 여리고 성과 같은 문제 앞에서 영적인 싸움을 싸우고 있습니다. 이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미 승리를 주겠다고 하신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씀 그대로 순종해야 되겠습니다. 그럴 때 무너질 것 같지 않고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여리고 성과 같은 문제가 놀랍게 해결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대장이 되셔서 친히 싸우시고 승리 주실 것을 믿고 찬양하고 감사하며 전진해야겠습니다. 올 해 우리 각자의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체험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여호수아 6:1-27
요절 여호수아 6:5
무너져 내리리니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을 공략하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를 행하도록 하시고 여호수아의 발에서 신발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전쟁을 하기 전에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께 주도권을 맡기라고 하십니다. 오늘 공부할 말씀은 그 구체적인 실천사항입니다. 여리고 성은 당시에 난공불락의 성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지혜로 무너뜨렸습니다. 이 가운데 나타난 영적 진리를 배워서 우리도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를 소망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으로 인하여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여리고 성은 B.C. 7000년 전에 세워진 도시였습니다. 학자들은 여리고 성 자체의 크기는 둘레가 약 4 Km 정도로 추정합니다. 카트린 캐년이 쓴 “여리고 발굴”(N.Y. 1957)에 의하면 여리고는 가파른 경사지 정상에 이중 성벽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외벽은 두께 2미터, 높이 7미터였습니다. 그 위에 둔덕이 있고 집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벽이 있었습니다. 그 높이는 5.4미터입니다. 이런 여리고 성은 직접적인 군사 공격으로는 거의 함락이 불가능한 천연의 요새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방어하고자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보통 성을 공략하려면 포위 공격을 하던지, 스파이더맨과 같이 성벽을 타고 꼭대기에 이르는 접근로를 뚫어야 합니다. 아니면 토성을 쌓아서 성을 공격해야 합니다. 포위해서 여리고의 방어 병력을 굶주리게 하여 항복을 받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 200만 명이 오래 동안 먹고 버틸 수 있는 식량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연합군이 공격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오래 끄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불리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주시는 전술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 하나님이 친히 싸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여호수아에게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다고 하십니다(2).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승리를 주겠다고 하십니다. 먼저 이긴 싸움임을 믿고 싸우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 그리하라고 하십니다.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하고 제 칠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은 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 소리가 들릴 때에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르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릴 것이고 그때 백성들이 올라가서 공략하라고 하십니다.
여호수아는 제사장들과 백성에게 무슨 방향을 주었습니까? 10절을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제사장들은 여호수아의 방향대로 나가서 언약궤를 메고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그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언약궤 앞과 뒤에 무장한 군사들을 배치하고 믿음으로 성을 돌았습니다. 이때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침묵하도록 명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시겠다는 데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사람이 어떻게 저떻게 해 보자고 말하는 것은 소음에 불과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침묵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백성들 가운데는 믿음이 좋은 사람도 있지만, 믿음이 약한 사람도 있고, 인간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 중에 누구 한 사람이 “왜 성을 공격을 하지 않고, 돌라고 하는 거야, 성을 돌기만 하면 어떻게 저 성이 무너진단 말이야?” 하면서 불신의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불신의 말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고 또 전달되어 불신적인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무기력해져서 성을 7일 동안 온전히 돌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리고 성을 돌면서 침묵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고 침묵할 때 속에서 불이 났을 것입니다. 첫 날은 이스라엘 군대가 침묵하자 여리고 군대도 침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둘째 날 부터는 달랐을 것입니다. 여리고 군대가 조롱했습니다. “이 겁쟁이들아! 꼴을 보니 너희가 싸우는 것이 무서운 게로구나! 이 성이 얼마나 튼튼한지 똑똑히 보거라!” 이런 적의 조롱을 받으면서도 이스라엘 군대는 계속 침묵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침묵하면서 기도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고요한 가운데 주님의 세미한 속삭임을 들었습니다. 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침묵할 때 마음에 평강이 임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집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승리를 주신다는 것을 믿고 마음에 여유를 갖게 됩니다. 처음 6일간 백성들은 하루에 한 바퀴만 돌았습니다. 그리고는 진에 일찍 돌아와서는 쉬었습니다. 그들은 여리고가 당장에 무너지지 않는다고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왜 성을 당장 정복하게 하지 않으시는가 하며 하나님을 불신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지긋이 하루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그리고 쉬었습니다. 우리도 캠퍼스를 복음으로 정복하고자 할 때 믿음에서 나오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당장에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고 상황이 어렵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심을 믿고 여유있게 캠퍼스를 돌아야겠습니다.
이렇게 하다가 여호수아가 명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쳐야 합니다. 이를 볼 때 침묵할 때와 외칠 때가 있습니다. 외칠 때는 한 목소리로 외쳐야 합니다. 우리는 때를 따라 복음을 외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비전과 말씀을 외쳐야 합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외쳐야 합니다. 한 목소리로 외칠 때 큰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하는 한 마디와 불평 불만을 말하는 사람의 잔소리는 무게가 다릅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한 마디는 사람뿐만 아니라 하늘도 움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많은 말을 하기보다 하나님이 친히 하시는 일을 바라보아야 겠습니다.
둘째, 승리의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아침에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는 새벽에 기도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힘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순종했습니다. 그랬을 때 백성들도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도울 수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여호와의 궤를 메고 일곱 제사장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계속 진행하며 나팔을 불고 무장한 자들은 그 앞에 행하며 후군은 여호와의 궤 뒤에 행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군했습니다. 행진하는 백성들의 가운데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사용한 나팔은 은나팔이 아니라, 양뿔에 구멍을 뚫어 만든 양각 나팔이었습니다. 그것은 가장 저질의 재료로 만든 것으로서 소리가 둔탁하며 모양이 없었습니다. 탁월한 권능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양각 나팔의 소리에 비유될 수 있는 ‘전도의 미련함’으로써 마귀의 왕국은 무너지게 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제 칠 일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여전한 방식으로 성을 일곱 번 도니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 날뿐이었더라.” 마지막 날에 그들은 28킬로미터를 행군했습니다. 새벽부터 일찍이 일어나서 돌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하루 종일 28킬로미터를 도는 것이 힘들다고 줄이지 않았습니다. 히 11:30절에는 “믿음으로 칠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될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은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좋은 믿음은 좋은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무겁지 않았습니다. 성의 둘레가 약 4 Km 이고, 당시 이스라엘 군을 약 60 만으로 본다면 15열 종대로 1 미터 간격으로 돌아야 맨 먼저 행진한 군사가 도착할 때 제일 뒤에 있는 군사가 행진을 시작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성을 둘러싸고 돌았습니다.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여섯째 날까지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실패처럼 보인다고 하여 다른 방법을 취하는 것이 승리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최후의 순간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꼭 붙잡고 순종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었습니다. 빰삐라 빰, 빰빰빰빰.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백성들이 크게 소리를 질러 외쳤습니다. 그들의 외침은 승리의 외침이요 기도의 외침이었습니다. 와! 여호와의 영광이여! 여호와의 능력이여! 함성 소리와 함께 성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20).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자 그 견고한 성벽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여리고 성 안에 있던 백성들은 공황 상태에 빠졌습니다. 용기백배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진멸했습니다. 남녀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로 멸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무너뜨려야 하는 강한 여리고 성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학과 공부가 여리고 성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물질 문제, 어떤 사람에게는 인간관계 문제, 어떤 사람에게는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정 문제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변화되지 않는 죄악의 여리고 성이 있습니다. 이런 죄 문제들이 얼른 해결되고 새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것이 쉽게 되지 않습니다. 죄악된 자아가 무너져야 하는데 펄펄 살아서 날뜁니다. 강한 자기중심성, 잘 변화되지 않는 악한 습관, 혈기와 교만, 정욕, 판단하는 마음, 적당주의, 인본주의, 물질주의 등 강한 죄성들이 있습니다. 제자 훈련을 하는데 쉽게 되지 않습니다. 우리 시대의 세속적인 세계관들은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인본주의적인 세계관으로 인해서 젊은이들은 복음을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뉴에이지 사상, 막스-레닌주의, 자유주의 등은 정치, 종교, 예술, 문화, 학문 분야에서 힘있게 그 세력을 떨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없다, 물질이 최고다, 인간의 능력으로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믿음을 갖는 것을 고리타분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견고한 이론들에 젖어 있는 지성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고 성경에 기초한 진리 위에 살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맞서는 그 세력이 매우 견고해 보입니다. 우리는 이런 여리고 성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고 그의 말씀을 앞세우고 싸워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어리석다고 조롱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고 좌우에 날선 검과 같아서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캠퍼스를 우리 손에 붙이신 것을 믿고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고후 10:4절에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 계시록 12:11절에서는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능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럴 때 견고한 성이 무너집니다. 죄악을 깨닫고 돌이키게 됩니다. 사단의 세력이 떠나고 성령의 역사가 임합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통해서 죄사함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복음을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임합니다.
셋째, 칼날로 멸할지니라. 17a절을 보십시오. “이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여기서 바치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헤렘입니다. 그 기본적인 의미는 ‘사람이 어떤 물건을 사용하거나 오용하지 못하도록 따로 구분시켜 오로지 하나님께 넘겨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넘겨준다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 바치는 ‘봉헌’의 의미와 철저히 파멸시키고 저주하는 ‘진멸’의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멸하니라”는 말씀도 헤렘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여리고 성의 모든 것을 철저히 파괴하라고 하십니까? 이는 죄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죄악된 바이러스이기 때문입니다. 조류 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된 닭들이 발견되면 반경 3킬로미터 내의 닭은 다 도살합니다. 그래도 염려가 되면 8킬로미터 내의 닭을 다 도살합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순식간에 바이러스가 퍼져서 다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의 우상 숭배와 죄악을 박멸하고 뿌리 뽑기를 원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백성이 파멸하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전쟁은 대개 탈취물을 나누기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거룩한 전쟁입니다. 정복 전쟁이 아니라 여호와의 전쟁입니다. 가나안 문명이 이스라엘 보다 앞섰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러 가지 물건들을 볼 때 탐욕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다 파괴해야 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렵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을 진멸하시는 중에도 기생 라합과 그 부모와 그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과 그의 친족도 다 구원하십니다. 이는 기생 라합이 여리고를 탐지하려고 보낸 사자를 숨겨주었기 때문입니다. 라합의 집은 여리고 성벽 위에 있었는데 고고학적인 발견 결과 여리고의 북쪽 벽은 무너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벽에 기대어 성이 세워져 있고 아마 그 곳이 라합의 집터였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리고 사람들이 다 심판을 받아 죽는 가운데서도 믿음의 사람 라합과 그에게 속한 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죄악으로 가득 찬 여리고 성을 심판하신 것처럼 이 세상도 철저하게 불로 심판을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우리를 반드시 기억하시고 구원하십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 하나님은 여리고 성을 폐허가 된 채로 남겨 두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역사적인 증거로 삼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손들에게 역사 교육을 시키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또한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 앞에서 경외심을 가지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고 죄와 싸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각자에게 있는 여리고 성과 같은 문제 앞에서 영적인 싸움을 싸우고 있습니다. 이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미 승리를 주겠다고 하신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씀 그대로 순종해야 되겠습니다. 그럴 때 무너질 것 같지 않고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여리고 성과 같은 문제가 놀랍게 해결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대장이 되셔서 친히 싸우시고 승리 주실 것을 믿고 찬양하고 감사하며 전진해야겠습니다. 올 해 우리 각자의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체험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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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회 다운로드 | DATE : 2007-02-11 09: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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