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여호수아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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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서 서론
1. 제목
히브리인들은 대개 어떤 책의 제목을 정할 때 책의 첫머리에 나오는 단어나 구,절 등을 따거나 아니면 저자 및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삼는 관례가 있다. 모세 오경은 각 권의 첫 단어를 따서 그 책의 제목으로 삼았었다. 반면 본서는 모세의 후계자이자 본서의 중심 인물인 여호수아의 이름을 책 제목으로 삼고 있다. 여호수아의 뜻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또는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이다. 여호수아란 이름은 ‘예수아’(느8:7) 또는 ‘호세아’(민13:8, 16 신32:44)로 불리기도 한다.
2. 저자와 저작 시기
본서의 저자는 여호수아이다. 24:26절은 본서를 기록한 자가 여호수아임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 밖에도 여호수아 자신이 직접 체험했거나 목격한 바를 기록한 것이라는 내증이 많다(1:1-9; 5:1, 6:7-8장). 물론 그렇다고 해서 본서 전부를 여호수아가 기록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여호수아 사후에 발생된 사건들도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는 갈렙의 헤브론 정복(15:13-15 ;cf. 삿1:1,10,20), 옷니엘의 드빌 정복(15:15-19; cf.삿1:11-15), 단 지파의 레센 정복(19:47; cf.삿18:28,29) 등이다. 이를 종합해 볼 때 본서의 대부분은 여호수아 자신이 직접 기록하였으며, 그 외의 일부 기사는 여호수아와 마찬가지로 성령의 영감을 받은 자에 의해서 가필됨으로서 본서가 완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저작 시기를 대개의 학자들은 사사 옷니엘(B.C.1374-1334)이후, 늦어도 B.C. 12세기 이전인 것으로 추정한다.
3. 역사적인 상황
가. 여호수아의 침입 시기: 열왕기상 6:1에 의하면 솔로몬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지 480년이 되는 해부터 성전을 짓는 일을 시작했다. 이 해는 그가 즉위한 지 4년째 되는 해(아마967년)이니까 출애굽은 1446년에 일어난 것이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 히브리 노예들은 비돔과 라암셋에서 국고성(출1:11)을 건설한 적이 있는데 라암셋(혹은 람세스 또는 라암세스)이라는 이름은 라암세스1세 이전에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출애굽은 약 1290년경이 된다. 그러므로 가나안 침입은 1250년경에 일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이 분석은 상당히 단순화 시킨 것이다. 실제로 성경에는 더 많은 자료들이 있는데 이것들 중 어떤 것은 초기 시대설을 지지해 주고, 또 어떤 것들은 후기 시대설을 설명해 준다.
나. 국제적인 상황: 애굽에서 강력했던 제18왕조는 종말을 고했다. 테베에 근거를 두고 있었던 이 왕조는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를 지배했으며, 유프라테스강까지 원정을 했다. 그러나 이 왕조는 아메노피스4세가 암몬 제사장들에게 반발을 하고, 수도를 아케타텐(Akhtaten)으로 이전시킨 것에 의해서 약화되었으며, 그 이후로 결코 완전하게 회복하지 못했다. 이 왕조는 14세기 후반 군사 쿠테타에 의해서 종말을 맞이했다. 제 19왕조 초에 세티1세는 아바리스 혹은 동부 삼각주 지역에서 남쪽으로 30Km쯤 되는 칸티르에 수도를 건설하기 시작했으며, 라암세스 2세는 그 일을 대규모로 계속 진행시켰다. 아마르나 서신들(1887년 아멘호텝 4세의 옛 수도였던 아케타톤의 자리에서 발굴된 고대의 외교서신 문서 묶음)이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바와 같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애굽의 지배력은 아마르나 시대에 와서 점점 쇠퇴하기 시작했다. 라암세스 2세는 시리아쪽으로 밀고 내려오는 히타이트(헷)족속을 저지시키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비극에 가까운 전쟁을 치룬 후에 그는 하투실리스 3세(1275-1250년경)와 조약을 체결했으며, 그 조약을 확증하기 위해 그와 하투실리스의 딸은 결혼을 했다. 히타이트와 애굽 제국은 오랜 전쟁으로 둘다 약해졌다. 히타이트의 수도는 파괴되었으며, 히타이트 제국은 1200년경에 해양민족들에게 무너졌다. 팔레스타인에서 애굽의 영향력은 더 이상 크게 작용하지 못했으며 제 19왕조는 1197년경에 멸망했다. 앗시리아 제국은 1100년경까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팔레스타인은 새로운 나라가 탄생하기 좋은 시기인 “힘의 공백”의 중심지였다.
4. 기본 구조
가. 약속의 땅에서 치루어야 할 전쟁 준비(1:1-5:1)
나. 약속된 땅의 정복(5:2-12:24)
다. 약속한 땅의 분배(13:1-22:34)
라. 약속의 땅에서 지켜야 할 언약(23:1-24:33)
5. 내용 전개
출애굽기는 구속의 역사, 레위기는 예배의 문제, 민수기는 하나님의 군대의 반열 가운데 있는 우리들의 위치, 신명기는 믿음과 사랑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보다 영적인 개념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모세 오경에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어떤 백성이 되기를 원하는가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첫째,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사는 백성. 둘째, 이방세계와 구별되게 하는 거룩한 백성. 셋째, 이방의 우상 숭배, 우상 숭배에서 나온 모든 것과 싸우는 백성. 넷째, 우상의 세력을 철저히 파괴하는 백성이 되는 것이다. 신명기 12:3 “그 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또 그 조각한 신상을 찍어서 그 이름을 그곳에서 멸하라.”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배경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유일한 하나님이며, 유일한 구원자요 축복하시는 분이라는 사상이 깔려 있다. 신명기 6:4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신명기 10:17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시라.”
이 점이 이스라엘이 가장 믿어야 할 점이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심어야 할 사상이었다. 당시 가나안 땅은 우상 숭배로 가득 차 있었다. 결국 이스라엘은 앞에 치열한 영적 전쟁을 앞두고 있었다. 가나안 땅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이다(창 12:7, 15:16).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의 부패가 충만하여 때가 되자 이스라엘을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고자 하셨고(출 3:8), 이스라엘은 그 땅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그런 그들에게는 두 종류의 싸움이 있었다. 첫째, 가나안 땅에 사는 백성들과의 싸움이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그 땅에서 살기 위해서는 그 땅에 이미 살고 있던 백성들과 싸워야 했고 그들을 쫓아내야만 했다. 그 싸움은 보이는 사람과의 싸움이었다. 둘째, 가나안 땅에 심겨진 우상 숭배와 거기서 나온 모든 사상, 가치관, 생활양식과 싸워야 했다. 그리고 그 싸움은 보이지 않는 싸움이었다. 모세를 이어 백성의 인도자가 된 여호수아와 백성 앞에는 이 싸움이 놓여 있었다. 이 싸움은 결코 쉬운 싸움이 아니었다. 그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장대한 아낙 자손들이요, 문명도 이스라엘보다 훨씬 발달해 있었다. 40년 전 그 땅 앞에서 이스라엘은 두려움에 떨었고, 떨었던 모든 사람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다 광야에서 죽었다.
가나안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여호수아는 40년 전의 쓰라린 실패를 기억했다. 그리고 긴장했다. 그런데 성경에 의하면 그 싸움은 여호수아나 이스라엘 민족의 싸움이 아니라, 여호와의 싸움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셨다. 여호수아에서는 이스라엘이 승리했다. 그러나 사사기에서는 이스라엘이 패배했다.
가. 약속의 땅에서 치루어야 할 전쟁 준비, 확신(1-5:1)
① 하나님의 약속을 통한 확신: 가나안 정복의 지휘관은 여호수아였다. 그는 아말렉과의 전쟁(출17:8-16)을 진두지휘하였고, 모세와 함께 시내산에 들어갔으며(출24:13-18), 가나안 땅을 정탐(민13-14장)하고 돌아온 사람이었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모세를 섬기고 배우면서 훈련을 받았고 마침내 모세의 후계자로 지목되었다(민13:8;신31:1-8,14-23). 그는 공식적인 지도자로서 위임되었다(수1:1-9). 그 때 모세는 죽었고 여호수아가 모세를 뒤이어 지휘관이 되어 7년 동안 가나안 정복을 지휘하였다. 그것은 여호수아로서는 큰 특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거운 짐이기도 했다. 여호수아로서는 자기의 지휘 아래 과연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차지할 수 있을지, 그리하여 그 땅의 모든 악을 정복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여호수아는 크게 두려워했다.
하나님은 그런 여호수아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또 해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그러면서 여호수아가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② 여리고의 기생 라합을 통한 확신 : 여호수아 2장은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이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평안히 영접하고 그들을 숨겨준 사건인데, 이 사건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여리고 사람의 입으로 가나안 땅을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이미 주셨다고 하는 메시지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영접한 라합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9).” 라합의 말을 들은 정탐꾼들은 돌아가서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확신에 찬 보고를 했다.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붙이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거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
③ 요단강의 멈추어 섬을 통한 확신(3-5:1): 이스라엘과 가나안 사이에는 요단강이 가로놓여 있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얻기 위해서는 먼저 요단강을 건너야 했다. 그 때는 보리추수를 할 때로서 그 시기에는 항상 요단강 물이 언덕에 넘쳤다. 이스라엘이 그 강을 그냥 건너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요단강의 흐름을 멈추게 하셨다.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 쌔...(15,16)” 이 일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는데 첫째, “사시는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정녕히 쫓아내실 줄을 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3:10).” 그 땅에서 이방 족속들을 쫓아낸다는 것은 곧 그 땅에서 모든 악을 제거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악에 대한 승리를 의미한다. 이로 볼 때 가나안 땅에서 악과 싸우고 악을 제거하는 그 일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들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하시는 것이다. 둘째,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한 줄을 알게 하려고 함이다.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니라(4:24).” 이 일을 통해서 여호와는 자신의 능력을 땅의 모든 백성에게 보여주고자 하셨다.
나. 하나님이 친히 싸우신 정복 전쟁(5:2-12장)
이스라엘은 요단강을 건넜고 가나안 땅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 가나안 정복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에게는 절대 뒤로 물러설 수 없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일만 남았다.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과 여호수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준비를 시킨다. 그리고 실제 전투가 벌어졌을 때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신다는 것을 드러내셨다.
① 앞으로의 싸움의 성격을 분명히 하심(5장):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를 행하도록 명령하셨다. 이스라엘은 그대로 했다. 그들이 할례를 행한 후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셨다.” 그들이 할례를 행함으로써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애굽의 수치를 굴러가게 하셨다고 했다. 「애굽의 수치」가 무엇인가? 애굽의 수치가 굴러간 지금 이스라엘은 어떻게 되었는가?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왔을 때에 눈을 들어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물었다.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그가 말했다.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오신 것은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기 위함이었다. 결국 앞으로 이스라엘과 여호수아가 싸워야 할 싸움은 그들의 싸움이 아니라, 여호와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앞으로의 싸움은 여호와의 싸움으로 여호와께서 친히 싸우신다.
그렇다면 그 싸움이 왜 여호와의 싸움인가? 여호와께서 시작하신 싸움이기때문이다. 또 여호와의 대적들과 싸우는 싸움이다. 앞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대적하여 싸워야 할 상대는 이스라엘의 적이라기보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적이다. 왜냐하면 그 적들은 여호와가 아닌 이방의 신들, 곧 우상들을 신으로 섬기고 있었고, 그들의 삶의 형태 또한 이방적인 것이기 때문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앞으로의 싸움의 성격을 분명히 하셨다.
② 여리고 전투 - 하나님이 친히 싸우신 싸움(6장): 여리고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한 일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 주위를 빙빙 돌았고, 마지막 날에 소리 지른 것밖에 없었다.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그리고 백성은 외쳤고, 백성이 외치니 견고한 성벽이 무너졌다. 그것은 백성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힘으로 된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를 점령한 것은 6.25 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이 인천 상륙작전을 감행함으로 한반도의 허리를 갈라놓은 것과 같은 작전이었다. 그들은 여리고 점령을 시작으로 해서 10장까지 가나안 땅 남부 전체를 점령하고, 11장과 12장에서 가나안 땅 북부를 점령함으로 아브라함 시대이후 600여년 동안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 정벌을 완수한다.
③ 전쟁의 성격이 변질될 위험(7,8장):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정복할 때 여호와 하나님은 그 성의 물건들에 대해서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노라.” 7:1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다고 했다.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했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여호와께서 극렬히 분노하셨다. 이스라엘이 아이 성을 칠 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지 않으셨고, 그들은 작은 성과의 싸움에서 보기 좋게 패했다.
여호와는 여호수아에게 명령을 내려 물건을 훔친 사람을 찾아내게 하셨고, 그 찾아낸 사람, 곧 아간을 백성들이 돌로 쳐 죽인 후에야 여호와께서 그 극렬한 분노를 그치셨고, 아이 성 전투에서 함께 하셨다. 여호와는 아간의 행위로 인해 왜 그렇게 극렬히 분노하셨을까? 아간의 행위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전쟁의 성격을 변질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나안 전쟁은 여호와 하나님과 가나안 지방의 우상들, 죄와의 영적 전쟁이었다. 그런데 아간이 여리고 전투에서 물건을 훔침으로써 그 가나안 전쟁을 약탈 전쟁으로 변질시킬 수 있었다. 그 전쟁은 다른 이방인들의 전쟁처럼 약탈 전쟁이 아니라, 죄와의 거룩한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한 개인의 싸움이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의 싸움이었다. 한 개인의 죄로 인해 공동체가 징계를 받았다. 개인은 공동체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의 백성은 개별적인 집합체가 아니라 한 몸에 속한 지체로서 존재한다.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한 책임을 공유할 때 그들은 거룩한 백성으로서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게 될 것이다. 가나안 전쟁은 죄와의 싸움이었고, 거룩한 백성을 만들어 세계를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비전을 담고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함을 회복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승리를 주셨다(8장).
④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진멸하라(9-12장): 이스라엘이 여러 나라들을 정복하고 여러 왕들을 죽였다. 여리고 왕, 아이 왕, 예루살렘 왕, 헤브론 왕, 야르뭇 왕, 라기스 왕, 에글론 왕, 게셀 왕, 드빌 왕, 게델 왕, 호르마 왕, 아랏 왕, 립나 왕, 아둘람 왕, 막게다 왕, 벧엘 왕, 답부아 왕, 헤벨 왕, 아벡 왕, 랏사론 왕,마돈 왕, 하솔 왕, 시므론 므론 왕, 악삽 왕, 다아낙 왕, 므깃도 왕, 게데스 왕, 욕느암 왕, 돌 왕, 고임 왕, 디르사 왕으로 도합 삼십 일 왕이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여러 왕들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께서 그 왕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시고, 또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셨기 때문이었다. 10:8 “그들을 두려워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그들의 한 사람이라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10:10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게 하시므로...” 10:12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붙이시던 날에...” 10:32 “여호와께서 라기스를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지라.” 10:42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신 고로 여호수아가 이 모든 왕과 그 땅을 단번에 취하니라.”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반복되는 말씀은 “그 성읍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10:28, 30, 32, 33, 35, 37, 39, 40, 11:8, 11, 14,21)”라는 말씀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11:20절에서 “그들로 저주 받은 자 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진멸하려 하심이었더라.”고 말씀했다(10:40; 11:12). 당시 가나안 사람들의 종교적 매춘이나 어린 아이 제사 등 이 종교가 가지고 있는 부패에 심판의 정당한 근거가 있다. 가나안 종교의 성적 문란함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엄격한 윤리에 커다란 위협이 될 것이 분명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축복하시고자 하는 이 세상의 영적인 생활이 위급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여호와는 썩은 환부를 도려내라고 명령하셨던 것이다.
다. 약속한 땅의 분배(13:1-22:34)
① 기업의 분배(13:1-21:45) : 각 지파에게 나누어준 땅은 기업으로 불렸다. 기업이란 유업이란 뜻이다. 유업이란 그 땅을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라는 뜻이다. 그 땅은 이스라엘이 자기들 힘으로 쟁취한 땅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이다. 여호수아는 그 백성들이 가나안 사람에 대한 우위를 확보한 것만으로 충분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
파괴시킨 다음이라 이제는 건설해야 했다. 이제는 전사들뿐만 아니라 정치가와 행정가, 학자와 학생도 필요했고, 농부와 기술자, 사업가들이 나서서 뿌리를 내리고 번성해야 했다.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유업으로 얻은 땅은 다시 후손들에게 물려져야 했다.
이스라엘의 중심에 실로가 있었다. 거기에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회막을 두었다. 레위 지파는 48개의 성읍에 흩어져서 하나님의 법도를 가르치며 제단 위에 번제를 드렸다. 분쟁이 있을 때는 재판도 했다. 그들은 여호와의 사자들로서 행동했다(신33:10). 레위지파는 야곱의 예언대로 흩어지게 되었지만 그 결과는 유익한 것이었다.
각 지파가 기업을 분배받았을 때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그 땅에 거하는 사람들을 다 쫓아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13:13 “그술 사람과 마아갓 사람은 이스라엘 자손이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술과 마아갓이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더라.” 15:63 “예루살렘 거민 여부스 사람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오늘날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하니라.” 16:10 “그들이 게셀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사람이 오늘날까지 에브라임 가운데 거하며 사역하는 종이 되니라.” 17:12 “그러나 므낫세 자손이 그 성읍들의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하였더니 이스라엘 자손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너희가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취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18:3).” 하나님께서 본래 주고자 했던 영토와 이스라엘이 실제로 차지하게 된 영토를 비교해 보면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 범위는 솔로몬 때에 매우 짧은 기간 실현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의도하신 바와 실지로 우리의 것으로 소유한 것 사이에도 이와 유사한 대조가 있다. 세계와 국내 캠퍼스를 생각할 때 아직 개척되지 않은 곳이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나 영적인 성장, 깨끗한 마음, 죄를 정복함, 끊임없는 교제, 성령을 통해서 주시는 선물의 측면 등 아직 차지하지 못한 땅이 없는지 살펴보자.
② 여호와 신앙이 분명한 백성들(22장): 르우벤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 저편 땅, 자기들의 기업으로 돌아가면서 요단 가에 단을 쌓았는데 볼 만한 큰 단이었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여호와의 단이 아닌 다른 단을 쌓은 것으로 생각하고 그들과 싸우고자 했다.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말했다. “오직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단 외에 다른 단을 쌓음으로 여호와께 패역하지 말며 우리에게도 패역하지 말라(22:19).”
그러나 르우벤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그 단을 쌓은 것은 다른 신에게 번제나 다른 제사를 드리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들도 여호와께 속한 백성임을 증거하기 위함이었다(22:24-28). 이 일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가나안 정복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께 대해 열심이 있었다. 그들은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믿었고, 오직 여호와만을 믿고 따르고자 했다. 그 땅의 다른 신을 따를 마음이 없었다.
라. 여호수아의 마지막 부탁, 그의 결심(23-24장)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셨고, 이방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셨고, 가나안 땅을 주셨다는 것을 강조했다. 23:3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자시니라.” 23:10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이렇게 말하고서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이방신들을 좇지 말고 오직 여호와를 좇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백성은 어떻게 하든 자기는 여호와를 좇겠다고 했다. 그리고 만일 백성이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신을 좇으면 기록된 모든 악한 일들이 백성에게 임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께서 백성을 위해 친히 싸우시고, 그 땅을 백성에게 주신 내적 목적을 잘 알았다. 그는 백성들로 하여금 주위의 이방신들을 좇지 않고 오직 여호와를 좇게 하도록 강하게 권면했다. “그러면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너희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24:23).” 이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내신 목적이었다. 여호수아는 그 점을 잘 알았고, 그것을 백성들에게 분명히 가르쳤다. 그의 모범은 등대처럼 빛났으며 항구의 어두움을 밝혀주었다.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의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24:31).” 여호수아는 건물 지붕의 전체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중앙의 기둥과 같은 존재였다.
6. 생각해 볼 문제
가. 헤렘(Herem), 여호와의 이름으로 하는 살상 : 여리고를 점령했을 때 이스라엘은 라합과 그 가족을 제외한 전거주민과 성을 불태웠다(6:24,25). 그들은 아이 성이나 기타 다른 곳에서도 똑같은 일을 했다(8:24-29;10:28,30,32,33,35,37,39,40,11:8,11,14,21). 이 완전한 파괴를 가리키는 말이 헤렘(Herem), 즉 “헌납”이며 이 단어의 동사는 “완전히 파괴하다”라고 번역된다. 이 “헌납”이라는 주제에 대한 성경의 묘사가 하나님이 원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한 행동을 했다는 의미로 표현된다면 다소 거침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여호수아가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또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명한 대로”(10:40; 11:12) 행했다는 것이 여러 번 언급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시켜서 누구를 죽이라고 한다거나, 그가 어떤 도시의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을 완전히 멸절하라고 명령했다고 하는 생각은 너무나도 마음에 걸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구약의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와 동일하신 분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그리스도나 사도들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그들은 자기들의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며,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신 분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이러한 종교적 “헌납”이 그 당시의 종교적 문화 현상의 한 부분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고대 근동의 민족들에게 있어서는 사람이나 전리품, 또는 포로들을 자기들의 신들에게 바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다. 이러한 사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러한 행위를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는지를 설명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이것이 유일한 답은 아니다. 가나안 사람들에 대한 성경의 입장은 단순히 “그들을 진멸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 명령에는 이유가 있다. 그들의 종교적 매춘이나 어린 아이 제사 등 이 종교가 가지고 있는 부패에 근거가 있다. 가나안 종교의 성적 문란함은 여호와 종교의 엄격한 윤리에 커다란 위협이 될 것이 분명했다. 생명이 위급한 경우에 의사는 팔이나 다리, 또는 신체의 중요한 기관일지라도 잘라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영적인 생활 -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축복하시고자 하는 이 세상의 영적인 생활 - 이 위급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여호와는 환부를 도려내라고 명령하셨던 것이다.
또 하나의 증거로서 역사가 보여준 판결을 들 수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학살에 염증을 느꼈는지 아니면 성적인 환락으로 가득 찬 종교의식에 유혹을 당했든지 하여튼 가나안 사람들을 진멸하는 일을 그만 두었다. 가나안 종교는 점차적으로 이스라엘 종교 속으로 퍼져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나중에 선지서들에서 보게 되는 바와 같이 이 가나안 종교들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들을 불러 왔다. 즉 외세의 압제, 침략, 이스라엘 백성들의 도피,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의 멸망과 포로 생활을 가져왔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에게 모든 이방인을 다 멸하라는 명령을 하지 않으셨으며, 단지 가나안 사람들만을 멸하라고 하셨다. 이 방침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을 이스라엘이 차지할 때까지만 적용되는 한시적인 것이었다. 나중에 아모스와 미가, 이사야와 같은 선지자들의 도덕적, 윤리적 가르침들은 이스라엘에게 여호와의 말씀으로 주어졌으며, 그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율법과 선지자들의 말을 완성하셨다고 주장하셨다. 가나안 사람들을 멸절시킨 것은 이러한 맥락 속에서 보아야만 한다.
나. 여호수아는 태양을 멈추게 했는가? : 여호수아 10:12,13절 말씀은 태양과 달이 거의 하루 동안 하늘에서 그 움직임을 멈추었다고 말하는 듯하다.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문제는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는 분이란 것에 대한 의심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태양이 움직이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본문을 번역하면 “기브온 위의 태양아, 가만히 있으라, 아얄론 골짜기의 달도 가만히 있으라!” 그래서 태양이 가만히 있었으며, 달도 가만히 있었다. 여기서 “가만히 있다”로 번역된 동사는 “꼼짝하지 않고 서 있다(remain motionless)”라는 뜻도 되고 “가만히 있다(be quite)”라는 뜻도 된다.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태양더러 “머무르라”고 했는지 아니면 “가만히 있으라”(즉 심한 열을 발하지 말아라)고 했는지가 확실하지가 않다. 13절에 나오는 말씀(“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은 “멈추어 서 있다”라는 의미를 지지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여호수아가 태양의 열기를 줄여 줄 것을 간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어떤 학자들은 대기의 반사력이 바뀜에 의해서 태양과 달의 빛이 굴절되었으며, 그 결과 태양과 달이 멈추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믿는다. 경우가 어찌 됐든지간에 - 그리고 무엇인가가 일어났던 것은 분명하다 - 그것으로 인해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을 크게 강화되었다.
“1960년대 어느 날, 나사(NASA)의 우주 과학자들은 미래에 쏘아올릴 인공위성의 궤도를 결정하기 위해 컴퓨터로 10만년 전의 태양과 달의 궤도를 계산했다. 계산 도중 그들은 정확하게 24시간이 빠진 것을 발견했다. 그 원인을 몰라서 고민하고 있을 때 과학자들 중 성경을 잘 아는 한 사람이 구약의 여후수아 시대에 태양이 ‘하루 멈췄다’는 기록을 찾아냈다. 과학자들은 컴퓨터로 여호수아 시대에 천체 궤도를 조사한 결과 23시간 20분 동안 천체의 움직임이 정지됐었다는 것을 찾아냈다.” 그러나 이는 분명한 오류라고 1997년 3월 25일, 나사에 속한 고다드 우주비행센터(GSFC)는 홈페이지(http://imagine.gsfc.nasa.gov/docs.ask_astro/answers/970325g.html)를 통해 공식적으로 ‘그런 일이 없음’이라고 밝혔다. 호주 및 한국창조과학회에 따르면 태양과 달이 멈춘 사건에 대해 지금의 물리학적 법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7. 여호수아서와 신약의 관계
여호수아는 그 이름에서부터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 여호수아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인데, 포로시대 후기에 ‘예수아’로 바뀌었다. 신약시대에 와서 헬라식 이름인 ‘예수’로 불리웠다. ‘예수’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마1:21)라는 뜻으로 곧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구원과 승리를 가져다줄 자를 의미한다. 즉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승리와 안식을 가져다 준 사실은 장차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고 당신 백성들에게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가져다 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한다.
또한 본서에는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이 창가에 매단 붉은 줄로 인하여 목숨을 보전하는 사건이 나온다(2:17-21). 여기서 붉은 줄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흘리신 보혈을 상징하는 바 누구든지 그 피 공로를 의지하기만 하면 라합처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히9:19-22). 더욱이 이 이방 여인은 훗날 그리스도의 계보에 오르기까지 하였는데(마1:5), 이는 이방인에게도 차별없이 미치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예표해 준다.
그 밖에도 여호수아에게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나타나는 장면이 나온다(5:13-15). 이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단순한 하나님의 메신저인 천사가 아니라 근본 하나님이심은 전후 문맥에 의해 충분히 입증된다. 즉 이 분은 구약시대에도 성부, 성령 하나님과 더불어 부단히 활동하셨던 성자 하나님 그리스도의 현현으로 장차 신약 시대에 있어서 성육신하여 활발히 활동하실 그분의 활동을 예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그들의 기업으로, 그들의 안식으로 인도했다(신3:20, 12:10, 25:19, 수1:13,15, 14:15, 21:44, 23:1). 그러나 이것은 기껏해야 적들로부터의 일시적인 안식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몇 세기 후에 더욱 많은 적들을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기업을 주시긴 했지만 이 기업은 또한 빼앗겨질 수도 있는 것이었으며, 실제로 북왕국과 남왕국은 그 땅에서 쫓겨났다. 여호수아서는 끝이 열려있는 책이다. 이 백성이 기업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 땅은 아직 소유되지는 않았다(수13:1-7, 15:63, 17:12). 신약의 관점에서 보면 여호수아의 성공들은 부분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가 거둔 성공들은 여호수아의 이름을 따르고는 있지만 여호수아보다 위대하신 분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영원히 빼앗기지 않을 기업으로 인도할 미래를 예시하고 있다(벧전1:3-5).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수아가 갖지 못한 안식을 가져다주실 것이다(히3:11,18, 4:1-11).
8. 이 시점에서 여호수아서를 배우는 목적
가.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바를 신실하게 지키심을 확신하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 하나님의 말씀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사 말씀하시고 인도하시며 승리를 주기를 원하신다.
나. 우리가 정복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가 확인하기 위해서 : 우리가 정복해야 할 적은 육신이다. 타락한 옛 성품들과 옛 사람의 모습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반드시 점령될 것이다. 또한 우리가 점령해야 할 적은 세상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악한 세상,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세상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반드시 점령될 것이다. 우리가 점령해야 할 적은 우리의 육신을 통치하며 이 세상을 자기 수하에 두고자 하는 악한 세력인 사단이다. 사단은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로 무장하고 나가면 반드시 점령될 땅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단의 심장부를 갈라놓으셨다.
다. 지도자 여호수아의 영적 리더십을 배우기 위해서 : 여호수아 14:7절에서 모세가 갈렙을 정탐꾼으로 보냈을 때 그의 나이는 40세였다. 그는 38년의 광야 생활을 보내고 78세에 모세의 후계자가 되었다. 그리고 7년 동안 가나안 정복 전쟁을 수행하고 85세(수14:10)에 그의 분깃을 받았다. 그가 90세쯤 되었을 때 땅을 분배하는 일을 했고 은퇴하여 임종할 때는 110세였다. 그는 모세의 수족과 같은 부목자 생활을 최소한 40년 이상을 하였다. 그리고 7년 동안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할 때 사령관으로 헌신하여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다. 그는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었고 분명히 융통성 없는 꽉 막힌 사람이었으며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수행하는 것에만 최대의 관심을 갖는 외길 인생이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요 절대 순종의 사람이었다. 그는 대단한 잘못 뿐만 아니라 작은 실수도 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위대한 영웅은 아니었으나 분명히 하나님께서 함께 하사 위대하게 쓰신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7년 동안 전쟁에 전력하느라 자신의 후계자를 키울 시간적인 여유를 갖지 못했다. 이스라엘 전체를 통합할 지도자가 없음으로 인해서 사사시대에 이르러 이스라엘은 영적인 혼란에 직면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장래를 내다보고 우리는 어떤 지도자를 키워야 하며, 어떻게 키울 것인가?
라. 우리의 기업인 세계와 국내 캠퍼스를 복음으로 정복할 비전을 보기 위해서 : 현재 우리를 통해 전세계 233개국 중에서 90개국을 개척했음으로 개척 초기에 불과하다. 2041년까지 10만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여 전세계 7천개 캠퍼스를 개척하고, 국내 각 캠퍼스를 개척하려면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개척정신을 충만히 덧입어야 한다. 각 캠퍼스도 학생 목자들을 세우는 일을 하려면 할 일이 많다. 여호수아서를 공부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비전을 보기를 소망한다.
9. 참고 도서
가. 강병도 편저, 「호크마 종합 주석 여호수아」. 기독 지혜사. 1992.
나. 레이몬드 딜러더. 트렘퍼 롱맨, 「최신 구약 개론」. 박철현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0.
다. 글리슨 L. 아처, 「구약 총론」. 김정우 역. 기독교문서선교회. 1995.
라. 메릴. F. 엉거 저, 「구약 개론」. 엄성옥 역. 은성. 1993.
마. 윌리엄S. 라솔 외, 「구약개관」. 박철현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0.
바. 클라우스 베드터만 편집, 「구약해석학」. 박문재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5.
사. F.B. 마이어저, 「여호수아」. 정중은 역, 기독교문서선교회. 1991.
아.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 「여호수아」. 비전북출판사. 1999.
자. 김경섭, 「파워리더 여호수아」. 프리셉트. 2005.
2006. 9. 5. 이엘리야 편집.
1. 제목
히브리인들은 대개 어떤 책의 제목을 정할 때 책의 첫머리에 나오는 단어나 구,절 등을 따거나 아니면 저자 및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삼는 관례가 있다. 모세 오경은 각 권의 첫 단어를 따서 그 책의 제목으로 삼았었다. 반면 본서는 모세의 후계자이자 본서의 중심 인물인 여호수아의 이름을 책 제목으로 삼고 있다. 여호수아의 뜻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또는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이다. 여호수아란 이름은 ‘예수아’(느8:7) 또는 ‘호세아’(민13:8, 16 신32:44)로 불리기도 한다.
2. 저자와 저작 시기
본서의 저자는 여호수아이다. 24:26절은 본서를 기록한 자가 여호수아임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 밖에도 여호수아 자신이 직접 체험했거나 목격한 바를 기록한 것이라는 내증이 많다(1:1-9; 5:1, 6:7-8장). 물론 그렇다고 해서 본서 전부를 여호수아가 기록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여호수아 사후에 발생된 사건들도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는 갈렙의 헤브론 정복(15:13-15 ;cf. 삿1:1,10,20), 옷니엘의 드빌 정복(15:15-19; cf.삿1:11-15), 단 지파의 레센 정복(19:47; cf.삿18:28,29) 등이다. 이를 종합해 볼 때 본서의 대부분은 여호수아 자신이 직접 기록하였으며, 그 외의 일부 기사는 여호수아와 마찬가지로 성령의 영감을 받은 자에 의해서 가필됨으로서 본서가 완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저작 시기를 대개의 학자들은 사사 옷니엘(B.C.1374-1334)이후, 늦어도 B.C. 12세기 이전인 것으로 추정한다.
3. 역사적인 상황
가. 여호수아의 침입 시기: 열왕기상 6:1에 의하면 솔로몬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지 480년이 되는 해부터 성전을 짓는 일을 시작했다. 이 해는 그가 즉위한 지 4년째 되는 해(아마967년)이니까 출애굽은 1446년에 일어난 것이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 히브리 노예들은 비돔과 라암셋에서 국고성(출1:11)을 건설한 적이 있는데 라암셋(혹은 람세스 또는 라암세스)이라는 이름은 라암세스1세 이전에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출애굽은 약 1290년경이 된다. 그러므로 가나안 침입은 1250년경에 일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이 분석은 상당히 단순화 시킨 것이다. 실제로 성경에는 더 많은 자료들이 있는데 이것들 중 어떤 것은 초기 시대설을 지지해 주고, 또 어떤 것들은 후기 시대설을 설명해 준다.
나. 국제적인 상황: 애굽에서 강력했던 제18왕조는 종말을 고했다. 테베에 근거를 두고 있었던 이 왕조는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를 지배했으며, 유프라테스강까지 원정을 했다. 그러나 이 왕조는 아메노피스4세가 암몬 제사장들에게 반발을 하고, 수도를 아케타텐(Akhtaten)으로 이전시킨 것에 의해서 약화되었으며, 그 이후로 결코 완전하게 회복하지 못했다. 이 왕조는 14세기 후반 군사 쿠테타에 의해서 종말을 맞이했다. 제 19왕조 초에 세티1세는 아바리스 혹은 동부 삼각주 지역에서 남쪽으로 30Km쯤 되는 칸티르에 수도를 건설하기 시작했으며, 라암세스 2세는 그 일을 대규모로 계속 진행시켰다. 아마르나 서신들(1887년 아멘호텝 4세의 옛 수도였던 아케타톤의 자리에서 발굴된 고대의 외교서신 문서 묶음)이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바와 같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애굽의 지배력은 아마르나 시대에 와서 점점 쇠퇴하기 시작했다. 라암세스 2세는 시리아쪽으로 밀고 내려오는 히타이트(헷)족속을 저지시키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비극에 가까운 전쟁을 치룬 후에 그는 하투실리스 3세(1275-1250년경)와 조약을 체결했으며, 그 조약을 확증하기 위해 그와 하투실리스의 딸은 결혼을 했다. 히타이트와 애굽 제국은 오랜 전쟁으로 둘다 약해졌다. 히타이트의 수도는 파괴되었으며, 히타이트 제국은 1200년경에 해양민족들에게 무너졌다. 팔레스타인에서 애굽의 영향력은 더 이상 크게 작용하지 못했으며 제 19왕조는 1197년경에 멸망했다. 앗시리아 제국은 1100년경까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팔레스타인은 새로운 나라가 탄생하기 좋은 시기인 “힘의 공백”의 중심지였다.
4. 기본 구조
가. 약속의 땅에서 치루어야 할 전쟁 준비(1:1-5:1)
나. 약속된 땅의 정복(5:2-12:24)
다. 약속한 땅의 분배(13:1-22:34)
라. 약속의 땅에서 지켜야 할 언약(23:1-24:33)
5. 내용 전개
출애굽기는 구속의 역사, 레위기는 예배의 문제, 민수기는 하나님의 군대의 반열 가운데 있는 우리들의 위치, 신명기는 믿음과 사랑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보다 영적인 개념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모세 오경에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어떤 백성이 되기를 원하는가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첫째,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사는 백성. 둘째, 이방세계와 구별되게 하는 거룩한 백성. 셋째, 이방의 우상 숭배, 우상 숭배에서 나온 모든 것과 싸우는 백성. 넷째, 우상의 세력을 철저히 파괴하는 백성이 되는 것이다. 신명기 12:3 “그 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또 그 조각한 신상을 찍어서 그 이름을 그곳에서 멸하라.”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배경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유일한 하나님이며, 유일한 구원자요 축복하시는 분이라는 사상이 깔려 있다. 신명기 6:4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신명기 10:17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시라.”
이 점이 이스라엘이 가장 믿어야 할 점이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심어야 할 사상이었다. 당시 가나안 땅은 우상 숭배로 가득 차 있었다. 결국 이스라엘은 앞에 치열한 영적 전쟁을 앞두고 있었다. 가나안 땅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이다(창 12:7, 15:16).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의 부패가 충만하여 때가 되자 이스라엘을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고자 하셨고(출 3:8), 이스라엘은 그 땅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그런 그들에게는 두 종류의 싸움이 있었다. 첫째, 가나안 땅에 사는 백성들과의 싸움이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그 땅에서 살기 위해서는 그 땅에 이미 살고 있던 백성들과 싸워야 했고 그들을 쫓아내야만 했다. 그 싸움은 보이는 사람과의 싸움이었다. 둘째, 가나안 땅에 심겨진 우상 숭배와 거기서 나온 모든 사상, 가치관, 생활양식과 싸워야 했다. 그리고 그 싸움은 보이지 않는 싸움이었다. 모세를 이어 백성의 인도자가 된 여호수아와 백성 앞에는 이 싸움이 놓여 있었다. 이 싸움은 결코 쉬운 싸움이 아니었다. 그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장대한 아낙 자손들이요, 문명도 이스라엘보다 훨씬 발달해 있었다. 40년 전 그 땅 앞에서 이스라엘은 두려움에 떨었고, 떨었던 모든 사람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다 광야에서 죽었다.
가나안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여호수아는 40년 전의 쓰라린 실패를 기억했다. 그리고 긴장했다. 그런데 성경에 의하면 그 싸움은 여호수아나 이스라엘 민족의 싸움이 아니라, 여호와의 싸움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셨다. 여호수아에서는 이스라엘이 승리했다. 그러나 사사기에서는 이스라엘이 패배했다.
가. 약속의 땅에서 치루어야 할 전쟁 준비, 확신(1-5:1)
① 하나님의 약속을 통한 확신: 가나안 정복의 지휘관은 여호수아였다. 그는 아말렉과의 전쟁(출17:8-16)을 진두지휘하였고, 모세와 함께 시내산에 들어갔으며(출24:13-18), 가나안 땅을 정탐(민13-14장)하고 돌아온 사람이었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모세를 섬기고 배우면서 훈련을 받았고 마침내 모세의 후계자로 지목되었다(민13:8;신31:1-8,14-23). 그는 공식적인 지도자로서 위임되었다(수1:1-9). 그 때 모세는 죽었고 여호수아가 모세를 뒤이어 지휘관이 되어 7년 동안 가나안 정복을 지휘하였다. 그것은 여호수아로서는 큰 특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거운 짐이기도 했다. 여호수아로서는 자기의 지휘 아래 과연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차지할 수 있을지, 그리하여 그 땅의 모든 악을 정복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여호수아는 크게 두려워했다.
하나님은 그런 여호수아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또 해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그러면서 여호수아가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② 여리고의 기생 라합을 통한 확신 : 여호수아 2장은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이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평안히 영접하고 그들을 숨겨준 사건인데, 이 사건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여리고 사람의 입으로 가나안 땅을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이미 주셨다고 하는 메시지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영접한 라합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9).” 라합의 말을 들은 정탐꾼들은 돌아가서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확신에 찬 보고를 했다. “진실로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붙이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거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
③ 요단강의 멈추어 섬을 통한 확신(3-5:1): 이스라엘과 가나안 사이에는 요단강이 가로놓여 있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얻기 위해서는 먼저 요단강을 건너야 했다. 그 때는 보리추수를 할 때로서 그 시기에는 항상 요단강 물이 언덕에 넘쳤다. 이스라엘이 그 강을 그냥 건너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요단강의 흐름을 멈추게 하셨다.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 쌔...(15,16)” 이 일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는데 첫째, “사시는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정녕히 쫓아내실 줄을 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3:10).” 그 땅에서 이방 족속들을 쫓아낸다는 것은 곧 그 땅에서 모든 악을 제거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악에 대한 승리를 의미한다. 이로 볼 때 가나안 땅에서 악과 싸우고 악을 제거하는 그 일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들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하시는 것이다. 둘째,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한 줄을 알게 하려고 함이다.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니라(4:24).” 이 일을 통해서 여호와는 자신의 능력을 땅의 모든 백성에게 보여주고자 하셨다.
나. 하나님이 친히 싸우신 정복 전쟁(5:2-12장)
이스라엘은 요단강을 건넜고 가나안 땅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 가나안 정복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에게는 절대 뒤로 물러설 수 없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일만 남았다.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과 여호수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준비를 시킨다. 그리고 실제 전투가 벌어졌을 때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신다는 것을 드러내셨다.
① 앞으로의 싸움의 성격을 분명히 하심(5장):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할례를 행하도록 명령하셨다. 이스라엘은 그대로 했다. 그들이 할례를 행한 후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셨다.” 그들이 할례를 행함으로써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애굽의 수치를 굴러가게 하셨다고 했다. 「애굽의 수치」가 무엇인가? 애굽의 수치가 굴러간 지금 이스라엘은 어떻게 되었는가?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왔을 때에 눈을 들어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물었다.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그가 말했다.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오신 것은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기 위함이었다. 결국 앞으로 이스라엘과 여호수아가 싸워야 할 싸움은 그들의 싸움이 아니라, 여호와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앞으로의 싸움은 여호와의 싸움으로 여호와께서 친히 싸우신다.
그렇다면 그 싸움이 왜 여호와의 싸움인가? 여호와께서 시작하신 싸움이기때문이다. 또 여호와의 대적들과 싸우는 싸움이다. 앞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대적하여 싸워야 할 상대는 이스라엘의 적이라기보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적이다. 왜냐하면 그 적들은 여호와가 아닌 이방의 신들, 곧 우상들을 신으로 섬기고 있었고, 그들의 삶의 형태 또한 이방적인 것이기 때문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앞으로의 싸움의 성격을 분명히 하셨다.
② 여리고 전투 - 하나님이 친히 싸우신 싸움(6장): 여리고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한 일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 주위를 빙빙 돌았고, 마지막 날에 소리 지른 것밖에 없었다.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그리고 백성은 외쳤고, 백성이 외치니 견고한 성벽이 무너졌다. 그것은 백성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힘으로 된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를 점령한 것은 6.25 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이 인천 상륙작전을 감행함으로 한반도의 허리를 갈라놓은 것과 같은 작전이었다. 그들은 여리고 점령을 시작으로 해서 10장까지 가나안 땅 남부 전체를 점령하고, 11장과 12장에서 가나안 땅 북부를 점령함으로 아브라함 시대이후 600여년 동안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 정벌을 완수한다.
③ 전쟁의 성격이 변질될 위험(7,8장):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정복할 때 여호와 하나님은 그 성의 물건들에 대해서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노라.” 7:1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다고 했다.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했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여호와께서 극렬히 분노하셨다. 이스라엘이 아이 성을 칠 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지 않으셨고, 그들은 작은 성과의 싸움에서 보기 좋게 패했다.
여호와는 여호수아에게 명령을 내려 물건을 훔친 사람을 찾아내게 하셨고, 그 찾아낸 사람, 곧 아간을 백성들이 돌로 쳐 죽인 후에야 여호와께서 그 극렬한 분노를 그치셨고, 아이 성 전투에서 함께 하셨다. 여호와는 아간의 행위로 인해 왜 그렇게 극렬히 분노하셨을까? 아간의 행위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전쟁의 성격을 변질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나안 전쟁은 여호와 하나님과 가나안 지방의 우상들, 죄와의 영적 전쟁이었다. 그런데 아간이 여리고 전투에서 물건을 훔침으로써 그 가나안 전쟁을 약탈 전쟁으로 변질시킬 수 있었다. 그 전쟁은 다른 이방인들의 전쟁처럼 약탈 전쟁이 아니라, 죄와의 거룩한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한 개인의 싸움이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의 싸움이었다. 한 개인의 죄로 인해 공동체가 징계를 받았다. 개인은 공동체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의 백성은 개별적인 집합체가 아니라 한 몸에 속한 지체로서 존재한다.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한 책임을 공유할 때 그들은 거룩한 백성으로서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게 될 것이다. 가나안 전쟁은 죄와의 싸움이었고, 거룩한 백성을 만들어 세계를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비전을 담고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함을 회복했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승리를 주셨다(8장).
④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진멸하라(9-12장): 이스라엘이 여러 나라들을 정복하고 여러 왕들을 죽였다. 여리고 왕, 아이 왕, 예루살렘 왕, 헤브론 왕, 야르뭇 왕, 라기스 왕, 에글론 왕, 게셀 왕, 드빌 왕, 게델 왕, 호르마 왕, 아랏 왕, 립나 왕, 아둘람 왕, 막게다 왕, 벧엘 왕, 답부아 왕, 헤벨 왕, 아벡 왕, 랏사론 왕,마돈 왕, 하솔 왕, 시므론 므론 왕, 악삽 왕, 다아낙 왕, 므깃도 왕, 게데스 왕, 욕느암 왕, 돌 왕, 고임 왕, 디르사 왕으로 도합 삼십 일 왕이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여러 왕들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께서 그 왕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시고, 또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셨기 때문이었다. 10:8 “그들을 두려워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그들의 한 사람이라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10:10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게 하시므로...” 10:12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붙이시던 날에...” 10:32 “여호와께서 라기스를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지라.” 10:42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신 고로 여호수아가 이 모든 왕과 그 땅을 단번에 취하니라.”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반복되는 말씀은 “그 성읍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사람을 진멸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10:28, 30, 32, 33, 35, 37, 39, 40, 11:8, 11, 14,21)”라는 말씀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11:20절에서 “그들로 저주 받은 자 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진멸하려 하심이었더라.”고 말씀했다(10:40; 11:12). 당시 가나안 사람들의 종교적 매춘이나 어린 아이 제사 등 이 종교가 가지고 있는 부패에 심판의 정당한 근거가 있다. 가나안 종교의 성적 문란함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엄격한 윤리에 커다란 위협이 될 것이 분명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축복하시고자 하는 이 세상의 영적인 생활이 위급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여호와는 썩은 환부를 도려내라고 명령하셨던 것이다.
다. 약속한 땅의 분배(13:1-22:34)
① 기업의 분배(13:1-21:45) : 각 지파에게 나누어준 땅은 기업으로 불렸다. 기업이란 유업이란 뜻이다. 유업이란 그 땅을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라는 뜻이다. 그 땅은 이스라엘이 자기들 힘으로 쟁취한 땅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이다. 여호수아는 그 백성들이 가나안 사람에 대한 우위를 확보한 것만으로 충분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
파괴시킨 다음이라 이제는 건설해야 했다. 이제는 전사들뿐만 아니라 정치가와 행정가, 학자와 학생도 필요했고, 농부와 기술자, 사업가들이 나서서 뿌리를 내리고 번성해야 했다.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유업으로 얻은 땅은 다시 후손들에게 물려져야 했다.
이스라엘의 중심에 실로가 있었다. 거기에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회막을 두었다. 레위 지파는 48개의 성읍에 흩어져서 하나님의 법도를 가르치며 제단 위에 번제를 드렸다. 분쟁이 있을 때는 재판도 했다. 그들은 여호와의 사자들로서 행동했다(신33:10). 레위지파는 야곱의 예언대로 흩어지게 되었지만 그 결과는 유익한 것이었다.
각 지파가 기업을 분배받았을 때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그 땅에 거하는 사람들을 다 쫓아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13:13 “그술 사람과 마아갓 사람은 이스라엘 자손이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술과 마아갓이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더라.” 15:63 “예루살렘 거민 여부스 사람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오늘날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하니라.” 16:10 “그들이 게셀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사람이 오늘날까지 에브라임 가운데 거하며 사역하는 종이 되니라.” 17:12 “그러나 므낫세 자손이 그 성읍들의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하였더니 이스라엘 자손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너희가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취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18:3).” 하나님께서 본래 주고자 했던 영토와 이스라엘이 실제로 차지하게 된 영토를 비교해 보면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 범위는 솔로몬 때에 매우 짧은 기간 실현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의도하신 바와 실지로 우리의 것으로 소유한 것 사이에도 이와 유사한 대조가 있다. 세계와 국내 캠퍼스를 생각할 때 아직 개척되지 않은 곳이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나 영적인 성장, 깨끗한 마음, 죄를 정복함, 끊임없는 교제, 성령을 통해서 주시는 선물의 측면 등 아직 차지하지 못한 땅이 없는지 살펴보자.
② 여호와 신앙이 분명한 백성들(22장): 르우벤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 저편 땅, 자기들의 기업으로 돌아가면서 요단 가에 단을 쌓았는데 볼 만한 큰 단이었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여호와의 단이 아닌 다른 단을 쌓은 것으로 생각하고 그들과 싸우고자 했다.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말했다. “오직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단 외에 다른 단을 쌓음으로 여호와께 패역하지 말며 우리에게도 패역하지 말라(22:19).”
그러나 르우벤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그 단을 쌓은 것은 다른 신에게 번제나 다른 제사를 드리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들도 여호와께 속한 백성임을 증거하기 위함이었다(22:24-28). 이 일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가나안 정복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께 대해 열심이 있었다. 그들은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믿었고, 오직 여호와만을 믿고 따르고자 했다. 그 땅의 다른 신을 따를 마음이 없었다.
라. 여호수아의 마지막 부탁, 그의 결심(23-24장)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셨고, 이방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셨고, 가나안 땅을 주셨다는 것을 강조했다. 23:3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자시니라.” 23:10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이렇게 말하고서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이방신들을 좇지 말고 오직 여호와를 좇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백성은 어떻게 하든 자기는 여호와를 좇겠다고 했다. 그리고 만일 백성이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신을 좇으면 기록된 모든 악한 일들이 백성에게 임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께서 백성을 위해 친히 싸우시고, 그 땅을 백성에게 주신 내적 목적을 잘 알았다. 그는 백성들로 하여금 주위의 이방신들을 좇지 않고 오직 여호와를 좇게 하도록 강하게 권면했다. “그러면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너희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24:23).” 이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내신 목적이었다. 여호수아는 그 점을 잘 알았고, 그것을 백성들에게 분명히 가르쳤다. 그의 모범은 등대처럼 빛났으며 항구의 어두움을 밝혀주었다.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의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24:31).” 여호수아는 건물 지붕의 전체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중앙의 기둥과 같은 존재였다.
6. 생각해 볼 문제
가. 헤렘(Herem), 여호와의 이름으로 하는 살상 : 여리고를 점령했을 때 이스라엘은 라합과 그 가족을 제외한 전거주민과 성을 불태웠다(6:24,25). 그들은 아이 성이나 기타 다른 곳에서도 똑같은 일을 했다(8:24-29;10:28,30,32,33,35,37,39,40,11:8,11,14,21). 이 완전한 파괴를 가리키는 말이 헤렘(Herem), 즉 “헌납”이며 이 단어의 동사는 “완전히 파괴하다”라고 번역된다. 이 “헌납”이라는 주제에 대한 성경의 묘사가 하나님이 원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한 행동을 했다는 의미로 표현된다면 다소 거침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여호수아가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또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명한 대로”(10:40; 11:12) 행했다는 것이 여러 번 언급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시켜서 누구를 죽이라고 한다거나, 그가 어떤 도시의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을 완전히 멸절하라고 명령했다고 하는 생각은 너무나도 마음에 걸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구약의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와 동일하신 분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그리스도나 사도들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그들은 자기들의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며,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신 분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이러한 종교적 “헌납”이 그 당시의 종교적 문화 현상의 한 부분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고대 근동의 민족들에게 있어서는 사람이나 전리품, 또는 포로들을 자기들의 신들에게 바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다. 이러한 사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러한 행위를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는지를 설명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이것이 유일한 답은 아니다. 가나안 사람들에 대한 성경의 입장은 단순히 “그들을 진멸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 명령에는 이유가 있다. 그들의 종교적 매춘이나 어린 아이 제사 등 이 종교가 가지고 있는 부패에 근거가 있다. 가나안 종교의 성적 문란함은 여호와 종교의 엄격한 윤리에 커다란 위협이 될 것이 분명했다. 생명이 위급한 경우에 의사는 팔이나 다리, 또는 신체의 중요한 기관일지라도 잘라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영적인 생활 -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축복하시고자 하는 이 세상의 영적인 생활 - 이 위급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여호와는 환부를 도려내라고 명령하셨던 것이다.
또 하나의 증거로서 역사가 보여준 판결을 들 수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학살에 염증을 느꼈는지 아니면 성적인 환락으로 가득 찬 종교의식에 유혹을 당했든지 하여튼 가나안 사람들을 진멸하는 일을 그만 두었다. 가나안 종교는 점차적으로 이스라엘 종교 속으로 퍼져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나중에 선지서들에서 보게 되는 바와 같이 이 가나안 종교들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들을 불러 왔다. 즉 외세의 압제, 침략, 이스라엘 백성들의 도피,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의 멸망과 포로 생활을 가져왔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에게 모든 이방인을 다 멸하라는 명령을 하지 않으셨으며, 단지 가나안 사람들만을 멸하라고 하셨다. 이 방침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을 이스라엘이 차지할 때까지만 적용되는 한시적인 것이었다. 나중에 아모스와 미가, 이사야와 같은 선지자들의 도덕적, 윤리적 가르침들은 이스라엘에게 여호와의 말씀으로 주어졌으며, 그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율법과 선지자들의 말을 완성하셨다고 주장하셨다. 가나안 사람들을 멸절시킨 것은 이러한 맥락 속에서 보아야만 한다.
나. 여호수아는 태양을 멈추게 했는가? : 여호수아 10:12,13절 말씀은 태양과 달이 거의 하루 동안 하늘에서 그 움직임을 멈추었다고 말하는 듯하다.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문제는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는 분이란 것에 대한 의심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태양이 움직이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본문을 번역하면 “기브온 위의 태양아, 가만히 있으라, 아얄론 골짜기의 달도 가만히 있으라!” 그래서 태양이 가만히 있었으며, 달도 가만히 있었다. 여기서 “가만히 있다”로 번역된 동사는 “꼼짝하지 않고 서 있다(remain motionless)”라는 뜻도 되고 “가만히 있다(be quite)”라는 뜻도 된다.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태양더러 “머무르라”고 했는지 아니면 “가만히 있으라”(즉 심한 열을 발하지 말아라)고 했는지가 확실하지가 않다. 13절에 나오는 말씀(“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은 “멈추어 서 있다”라는 의미를 지지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여호수아가 태양의 열기를 줄여 줄 것을 간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어떤 학자들은 대기의 반사력이 바뀜에 의해서 태양과 달의 빛이 굴절되었으며, 그 결과 태양과 달이 멈추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믿는다. 경우가 어찌 됐든지간에 - 그리고 무엇인가가 일어났던 것은 분명하다 - 그것으로 인해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을 크게 강화되었다.
“1960년대 어느 날, 나사(NASA)의 우주 과학자들은 미래에 쏘아올릴 인공위성의 궤도를 결정하기 위해 컴퓨터로 10만년 전의 태양과 달의 궤도를 계산했다. 계산 도중 그들은 정확하게 24시간이 빠진 것을 발견했다. 그 원인을 몰라서 고민하고 있을 때 과학자들 중 성경을 잘 아는 한 사람이 구약의 여후수아 시대에 태양이 ‘하루 멈췄다’는 기록을 찾아냈다. 과학자들은 컴퓨터로 여호수아 시대에 천체 궤도를 조사한 결과 23시간 20분 동안 천체의 움직임이 정지됐었다는 것을 찾아냈다.” 그러나 이는 분명한 오류라고 1997년 3월 25일, 나사에 속한 고다드 우주비행센터(GSFC)는 홈페이지(http://imagine.gsfc.nasa.gov/docs.ask_astro/answers/970325g.html)를 통해 공식적으로 ‘그런 일이 없음’이라고 밝혔다. 호주 및 한국창조과학회에 따르면 태양과 달이 멈춘 사건에 대해 지금의 물리학적 법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7. 여호수아서와 신약의 관계
여호수아는 그 이름에서부터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 여호수아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인데, 포로시대 후기에 ‘예수아’로 바뀌었다. 신약시대에 와서 헬라식 이름인 ‘예수’로 불리웠다. ‘예수’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마1:21)라는 뜻으로 곧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구원과 승리를 가져다줄 자를 의미한다. 즉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승리와 안식을 가져다 준 사실은 장차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고 당신 백성들에게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가져다 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한다.
또한 본서에는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이 창가에 매단 붉은 줄로 인하여 목숨을 보전하는 사건이 나온다(2:17-21). 여기서 붉은 줄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흘리신 보혈을 상징하는 바 누구든지 그 피 공로를 의지하기만 하면 라합처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히9:19-22). 더욱이 이 이방 여인은 훗날 그리스도의 계보에 오르기까지 하였는데(마1:5), 이는 이방인에게도 차별없이 미치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예표해 준다.
그 밖에도 여호수아에게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나타나는 장면이 나온다(5:13-15). 이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단순한 하나님의 메신저인 천사가 아니라 근본 하나님이심은 전후 문맥에 의해 충분히 입증된다. 즉 이 분은 구약시대에도 성부, 성령 하나님과 더불어 부단히 활동하셨던 성자 하나님 그리스도의 현현으로 장차 신약 시대에 있어서 성육신하여 활발히 활동하실 그분의 활동을 예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그들의 기업으로, 그들의 안식으로 인도했다(신3:20, 12:10, 25:19, 수1:13,15, 14:15, 21:44, 23:1). 그러나 이것은 기껏해야 적들로부터의 일시적인 안식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몇 세기 후에 더욱 많은 적들을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기업을 주시긴 했지만 이 기업은 또한 빼앗겨질 수도 있는 것이었으며, 실제로 북왕국과 남왕국은 그 땅에서 쫓겨났다. 여호수아서는 끝이 열려있는 책이다. 이 백성이 기업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 땅은 아직 소유되지는 않았다(수13:1-7, 15:63, 17:12). 신약의 관점에서 보면 여호수아의 성공들은 부분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가 거둔 성공들은 여호수아의 이름을 따르고는 있지만 여호수아보다 위대하신 분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영원히 빼앗기지 않을 기업으로 인도할 미래를 예시하고 있다(벧전1:3-5).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수아가 갖지 못한 안식을 가져다주실 것이다(히3:11,18, 4:1-11).
8. 이 시점에서 여호수아서를 배우는 목적
가.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바를 신실하게 지키심을 확신하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 하나님의 말씀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사 말씀하시고 인도하시며 승리를 주기를 원하신다.
나. 우리가 정복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가 확인하기 위해서 : 우리가 정복해야 할 적은 육신이다. 타락한 옛 성품들과 옛 사람의 모습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반드시 점령될 것이다. 또한 우리가 점령해야 할 적은 세상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악한 세상,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세상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반드시 점령될 것이다. 우리가 점령해야 할 적은 우리의 육신을 통치하며 이 세상을 자기 수하에 두고자 하는 악한 세력인 사단이다. 사단은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로 무장하고 나가면 반드시 점령될 땅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단의 심장부를 갈라놓으셨다.
다. 지도자 여호수아의 영적 리더십을 배우기 위해서 : 여호수아 14:7절에서 모세가 갈렙을 정탐꾼으로 보냈을 때 그의 나이는 40세였다. 그는 38년의 광야 생활을 보내고 78세에 모세의 후계자가 되었다. 그리고 7년 동안 가나안 정복 전쟁을 수행하고 85세(수14:10)에 그의 분깃을 받았다. 그가 90세쯤 되었을 때 땅을 분배하는 일을 했고 은퇴하여 임종할 때는 110세였다. 그는 모세의 수족과 같은 부목자 생활을 최소한 40년 이상을 하였다. 그리고 7년 동안 가나안 정복 전쟁을 할 때 사령관으로 헌신하여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다. 그는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었고 분명히 융통성 없는 꽉 막힌 사람이었으며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수행하는 것에만 최대의 관심을 갖는 외길 인생이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요 절대 순종의 사람이었다. 그는 대단한 잘못 뿐만 아니라 작은 실수도 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위대한 영웅은 아니었으나 분명히 하나님께서 함께 하사 위대하게 쓰신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7년 동안 전쟁에 전력하느라 자신의 후계자를 키울 시간적인 여유를 갖지 못했다. 이스라엘 전체를 통합할 지도자가 없음으로 인해서 사사시대에 이르러 이스라엘은 영적인 혼란에 직면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장래를 내다보고 우리는 어떤 지도자를 키워야 하며, 어떻게 키울 것인가?
라. 우리의 기업인 세계와 국내 캠퍼스를 복음으로 정복할 비전을 보기 위해서 : 현재 우리를 통해 전세계 233개국 중에서 90개국을 개척했음으로 개척 초기에 불과하다. 2041년까지 10만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여 전세계 7천개 캠퍼스를 개척하고, 국내 각 캠퍼스를 개척하려면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개척정신을 충만히 덧입어야 한다. 각 캠퍼스도 학생 목자들을 세우는 일을 하려면 할 일이 많다. 여호수아서를 공부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비전을 보기를 소망한다.
9. 참고 도서
가. 강병도 편저, 「호크마 종합 주석 여호수아」. 기독 지혜사. 1992.
나. 레이몬드 딜러더. 트렘퍼 롱맨, 「최신 구약 개론」. 박철현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0.
다. 글리슨 L. 아처, 「구약 총론」. 김정우 역. 기독교문서선교회. 1995.
라. 메릴. F. 엉거 저, 「구약 개론」. 엄성옥 역. 은성. 1993.
마. 윌리엄S. 라솔 외, 「구약개관」. 박철현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0.
바. 클라우스 베드터만 편집, 「구약해석학」. 박문재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5.
사. F.B. 마이어저, 「여호수아」. 정중은 역, 기독교문서선교회. 1991.
아.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 「여호수아」. 비전북출판사. 1999.
자. 김경섭, 「파워리더 여호수아」. 프리셉트. 2005.
2006. 9. 5. 이엘리야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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