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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2024년 스3강(5,6장) 선지자의 권면을 따랐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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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56회 작성일 24-02-0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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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에스라 3강
말씀 | 에스라 5장,6장
요절 | 에스라 6:14
 
선지자의 권면을 따랐으므로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을 따랐으므로 성전 건축하는 일이 형통한지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따라 성전을 건축하며 일을 끝내되”

  성전 건축이 중단된 지 16년 후에 대적들의 방해를 극복하고 건축이 재개되었습니다.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에 감동을 받은 백성들이 용기를 내어 성전 건축을 완공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어떻게 성전 건축이 형통할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성전이 완성되는 과정에서 바사 왕들의 조서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6:3-5,6:6-12). 하나님께서는 왕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성전 건축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대적들의 방해를 통해 왕들이 조서를 내려 성건 건축을 금지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시 선지자들을 통해 주신 말씀으로 감동을받고 백성들은 성전 건축을 재개하고 완성합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이 모든 일의 주체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주권자가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일하고 계십니다.

  유다 사람들이 성전 건축을 시작하게 된 것은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하신 말씀에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언이란 토라에 기초하여 내가 처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고 또 말씀을 지켜 나갈지 전망하는 것입니다. 성전 건축이 중단된 상황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학 1:5-8).” 그들은 성전 건축을 재개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말하였지만 선지자들은 너희는 자기 행위를 살피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자기 집을 지으며 자기 자녀들을 챙기는데 힘을 썼습니다. 그들은 자기 집을 지으면서 건축 기술을 많이 배웠습니다. 그들은 사는 것이 힘들자 선지자의 말씀을 듣고 자기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과 세상의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감격과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해마다 우리의 마음을 모아서 성탄 보배합을 드렸습니다. 이런 헌신으로 올해도 남미 선교사님들을 지원하고 국내와 해외의 어려운 분들을 지원하고자 합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이웃 사랑의 실천은 구체적으로 전도와 선교, 구제로 나타났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세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의 헌신을 축복해 주셔서 이 시대의 성전인 교회공동체를 더욱 건강하고 아름답게 세워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선지자들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백성들이 용기를 얻었습니다.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일어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하였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그들을 도왔습니다. 선지자들은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왕의 명령을 따를 것인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것인가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지 않아서 망한 것을 기억했습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고자 결단을 했습니다. 학개 선지자의 책망과 스가랴 선지자의 격려의 말씀으로 그들은 감동을 받고 새로운 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찼습니다. 지도자들이 앞장을 서서 본을 보였습니다. 백성들은 진심을 가지고 따랐습니다.

  그 때에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관들이 다 나아와 그들에게 위협적인 말을 했습니다.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 이 말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위축되기보다 담담하게 이 건축하는 자의 이름을 말하였습니다. 건축하는 자의 이름은 자기 지도자의 이름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지도자들이 해를 당할까봐 주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건 건축을 재개함으로 인해 어떤 손해나 처벌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진정한 왕이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성전 건축을 재개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지도자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돌보시자 대적들이 더 이상 건축을 방해하지 못했습니다. 스가랴 4:6에 보면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환경이 바뀌지 않았지만 나는 바뀔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에 담대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음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딤후 1:7).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절제하는 마음이 일을 되게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자 성건 건축이 형통하게 됩니다. 성전건축은 인력과 자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열정과 비전을 가질 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주변의 강한 반대가 있어도,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예언의 말씀을 들을 때 도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식어진 열정에 다시금 불을 붙이는 힘이 있습니다. 낙심한 마음을 일으켜 도전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상황에 따라 흔들리기도 하고 열정이 식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상황에서 율법에 기초하여 하나님 편에서 상황을 해석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적인 지도자들의 영감 있는 메시지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그 시대 상황에 맞게 해석하여, 다양한 상황에서 언약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영감있는 메시지가 선포될 때 사람들의 마음이 감동을 받고,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일어나게 됩니다. 

  총독이 다리오 왕에게 올린 글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상소한 글을 보면 비교적 객관적입니다. 공정하고도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앞서 여러 민족 사람들이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린 악의적인 고발과 다릅니다. 총독이 알고자 하는 것은 성전과 성곽 건축이 과연 페르시아 정부의 허락을 받은 정당한 사업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9). 성전을 건축하라는 고레스 왕의 조서는 18년 전에 선포되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확인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다리오 왕은 할아버지 고레스 왕을 존경했기 때문에 메대 악베다에 있는 서고에 까지 조사관을 파송하여 조서 내용을 확인하였습니다.

  상소문에 올린 내용을 보면 유다 장로들이 자신들의 신분을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분명한 정체성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페르시아 왕의 통치를 받지만, 그 전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종들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들의 자신감과 담대함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상황을 보는 시각, 하나님과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습니다. 정체성은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나타냅니다. 정체성이 분명할수록 적대적인 상황에서 더욱 분명하게 싸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면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다음으로 옛 성전은 그들의 조상들이 하나님을 노엽게 하여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겨서 헐게 하셨습니다. 아닥사스다 왕 때 대적들이 고발하는 내용을 보면, 바벨론에 반역했기 때문에 무너졌다고 고발하였습니다(4:15). 그러나 그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조상들이 하나님을 반역했기 때문입니다. 유다 장로들은 왜 성전이 무너졌는지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과거 70년 포로생활의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과거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고자 하는 마음이 분명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1장에 기록된 고레스 왕의 조서 내용에 기초하여 성전 건축의 정당성을 얘기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분명한 정체성과 역사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바사 총독에게 주눅이 들지 않고 성전건축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성전건축은 환경과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내가 왜 존재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고자 하는지 이유가 분명할 때 이 세상에서 역경에 굴하지 않고 사명인으로서 살 수 있습니다. 

  이번 학생 수양회에서 전한 말씀도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뜻을 정한 것입니다. 다니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지키고자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필요한 건강과 지식과 지혜를 주셨습니다. 바벨론의 장학생들보다 열 배가 뛰어난 지혜를 주셨고 꿈도 해석하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과 바사에서 총리로 크게 쓰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방 땅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수양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평생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님의 제자로, 일대일 목자로 살고자 결단하였습니다. 세상의 유혹을 거절하고 각자 전공공부에 힘쓰기로 결단하였습니다. 400여명의 젊은 청년들의 작은 결단이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 우리 모임과 한국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기대가 되는 수양회였습니다. 이 수양회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지원해 주신 목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다리오 왕은 바벨론의 문서창고를 조사할 뿐만 아니라 메대도 악메다 궁성까지 조사하여 한 두루마리를 찾았습니다. 악메다는 고레스가 B.C550년에 정복한 메대의 수도였습니다. 날씨가 건조하고 좋아서 페르시아 왕들의 여름 별장이 있고, 고레스는 B.C538년 봄에 바벨론을 떠난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 데, 아마 악메다로 갔을 것이고, 거기서 예루살렘 포로 귀환 조서를 내렸을 것입니다. 거기에 기록하였으되 고레스 왕 원년에 조서를 내려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성전 곧 제사 드리는 처소를 건축하되 지대를 견고히 쌓고 그 성전의 높이는 육십 규빗으로, 너비도 육십 규빗으로 하고 큰 돌 세 켜에 새 나무 한 켜를 놓으라 그 경비는 다 왕실에서 내리라 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하여 바벨론으로 옮겼던 하나님의 성전 금, 은 그릇들을 돌려보내어 예루살렘 성전에 가져다가 하나님의 성전 안 각기 제자리에 둘지니라 하였습니다.

  다리오 왕은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너희 동관 유브라데 강 건너편 아바삭 사람들은 그 곳을 멀리하여 하나님의 성전 공사를 막지 말고 유다 총독과 장로들이 하나님의 이 성전을 제자리에 건축하게 하라고 조서를 내렸습니다. 건축 기금은 왕의 재산 곧 유브라데 강 건너편에서 거둔 세금 중에서 그 경비를 이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주어 그들로 멈추지 않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또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 곧 하늘의 하나님께 드릴 번제의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 양과 또 밀과 소금과 포도주와 기름을 예루살렘 제사장의 요구대로 어김없이 날마다 주어 그들이 하늘의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을 드려 왕과 왕자들의 생명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만약 이 명령을 변조하면 그의 집에서 들보를 빼내고 그를 그 위에 매어달게 하고 그의 집은 이로 말미암아 거름더미가 되게 하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그들이 선지자들의 권면을 따랐을 때, 예상하지 못하고 기대하지 못한 지지와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의 믿음과 순종을 넘치게 축복하셨습니다. 18년 전에 기록된 고레스 왕의 명령, 또 지금 다리오 왕의 명령이 큰 권위를 갖는다면 하나님의 명령은 얼마나 더 큰 권위를 갖는단 말입니까? 페르시아 왕의 조서만 어겨도 집 들보를 빼고, 사람을 그 위에 매달고, 그 집을 거름더미로 만드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조서를 바꾸거나 어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페르시아 왕의 조서를 이처럼 절대적으로 신속하게 이행해야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우리는 어떤 자세로 반응해야 하겠습니까?

  다리오 왕의 조서가 내리자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관들이 신속히 준행하였습니다. 또한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을 따랐으므로 성전 건축하는 일이 형통하였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따라 성전을 건축하며 일을 끝내되 다리오 왕 제육년 아달월 삼일에 성전 일을 끝냈습니다. 나의 열심이나 능력으로 안 되던 일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훨씬 빨리 끝낼 때가 있습니다. 메시지도 나의 지혜로 끙끙대며 쥐어짜도 안 써지던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감동이 임하면 술술 써지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때 일이년 걸릴 일들이 한두달 만에 끝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일하시지 않는 한 나는 하나님 나라의 열매 맺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방법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데 있어 절대로 열쇠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열쇠가 되는 것은 나와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성전 건축이 끝나자 그들은 성전 봉헌식을 행하였습니다. 성전 봉헌식을 행할 때에 모세의 책에 기록된 대로 속죄제를 드리고 제사장을 그 분반대로, 레위 사람을 그 순차대로 세웠습니다.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과 자기 땅에 사는 이방 사람의 더러운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구별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속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다 먹고 즐거움으로 이레 동안 무교절을 지켰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즐겁게 하시고 또 앗수르 왕의 마음을 그들에게로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하나님의 성전 건축하는 손을 힘 있게 하도록 하셨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영광을 위해서 친히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홀로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원수 나라 왕의 마음까지 돌리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것이 형통하게 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원수들도 친구가 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따라야 할 최종적인 권위는 하나님의 예언입니다. 유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음으로 망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때그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선지자들의 권면을 따르면 현실적으로 손해보고 망할 것 같은데, 사실은 형통하였습니다. 선지자들의 권면이 존중받고 있다는 점에서 돌아 온 공동체에 희망이 보입니다.

  하나님이 성전건축을 위해 바사 왕들의 조서를 사용하셨습니다. 이방 왕의 지배를 받고 있는데, 그 이방 왕들의 도움으로 성전을 건축할 수 있었습니다. 돌아온 자들이 홀로 건축하겠다고 했는데, 이방 왕들의 도움으로 지은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민족주의적인 관점으로 보면 반민족주의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성전을 이스라엘 사람들의 건축물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롬3:27).” 영적인 정체성과 순수성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지만, 동시에 이방인들에 대하여 열려 있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돌아온 자들이 회복해야 하는 것은 솔로몬 시대의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애초에 그들에게 두셨던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라는 정체성과 사명의 회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확장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도 전세계 모든 분야에서 계속 확장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임을 축복하셔서 98개국에 1800여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셨습니다. 우리나라도 세계 6위의 경제력과 국방력을 가진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세계에 대해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섬기려면 먼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다운 성품과 실력을 갖추어 나가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순종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함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세상을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한 분 한 분의 작은 봉사와 헌신이 모일 때 우리는 홍대와 이 나라와 세계를 향해서 큰 일을 섬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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