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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2018, 1강(엡4:1-16)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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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15회 작성일 17-12-31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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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신년 제 1 강 
말씀 | 에베소서 4:1-16
요절 | 에베소서 4:15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우리는 지난 주 성탄 예배와 성탄 축하의 밤을 통해서 각 지체들이 은사를 발휘하여 예수님께 경배를 드림으로 기쁘고 풍성한 예배를 드렸습니다. 성탄의 기쁨으로 인해서 집에 가기가 너무 아쉬워 교회에 남아 밤늦게까지 교제를 나눈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제 2017년 마지막 날을 보내고 새 해를 준비하면서 우리가 내적인 방향을 잡기 원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모든 족속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통일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원대한 뜻이 교회 공동체의 하나됨을 통해서 실현이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첫째,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그러므로’란 ‘교회에 대해서 앞에서 말한 바와 같으므로’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혔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도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도록 권면합니다. 부르심에 합당한 삶이란 무엇입니까? 2,3절을 보십시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겸손은 자기를 낮추고 비우는 것입니다. 사탄의 꾀에 빠져서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했던 인간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저주를 받았습니다. 인간은 자신을 우주의 중심에 놓고 싶어 합니다. 늘 자기를 높이고 인정을 받고 자랑하고 싶습니다. 세상의 일을 자기의 뜻대로 주관하고 싶어 합니다. 이런 교만 때문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분열되어 공동체가 무너집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가장 두드러진 성품은 겸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자기를 비우고 종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는 죄인들을 영접하고 사랑으로 섬기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의 다스림을 받게 될 때 교회의 일원이 되고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돌아보면 내가 자랑할 말한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할 때 겸손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온유는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입니다. 오래 참음은 자기를 거역하는 사람에 대해서 오래 참는 것입니다.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는 것은 넓은 마음, 관용으로 다른 사람의 약점까지 포용하는 것입니다. 출신배경이 다르고 성향이나 추구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그 다름으로 인해서 다양성 속의 풍성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생각과 행동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배울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런 다름으로 인해서 늘 갈등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해서 무시하고 거부한다면 늘 대립하고 소리를 높이고 에너지를 낭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소모적인 싸움을 하다가 그 공동체는 황폐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말과 행동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를 분별하고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옳고 그름을 따지려고 하기보다 사랑으로 용납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또한 평안의 매는 줄 안에서, 성령의 하나 됨을 힘써 지킴으로써 부르심에 합당하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무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십자가에서 율법을 폐하시고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해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인종과 민족을 떠나서 하나가 되고, 나이 든 목자와 신세대, 취향과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사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여 하나가 될 때 사람들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알게 됩니다. 또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통일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써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를 가로 막는 담을 허무시고 둘을 한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보내신 성령께서도 성도들 가운데 역사하여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 공동체의 지체가 되게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성도들이 유기적인 연합 가운데 하나가 되도록 쉬지 않고 역사하십니다. 그런데도 성도들의 연합을 깨뜨리려는 사탄의 많은 시도와 위협이 있습니다. 인간의 연약함과 욕심 때문에 성도 간에 갈등이 생깁니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깊이 인식하고 어떤 경우에도 겸손과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고, 평안한 상태를 유지하여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킴으로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야 합니다.

  4-6절을 봅시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사도 바울은 하나 됨을 지켜야 하는 근거를 삼위 하나님에게서 찾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한 몸으로 만드셨습니다. 부르심 받은 신자들은 한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도 한분이십니다. 한분 예수 그리스도는 한 믿음과 한 소망과 한 세례의 대상이십니다. 성부 하나님도 한분이십니다. 성부 하나님은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십니다. 하나님을 쪼갤 수 없듯이 교회도 쪼갤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one)라는 단어를 완전수인 일곱 번을 사용함으로써 신자들이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킴으로써 부르심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둘째, 받은 직분과 은사를 발휘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야 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우리 각 사람’은 모든 성도를 가리킵니다. 성도로 구성된 교회는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몸에 비유됩니다(16). 몸은 머리, 눈, 코, 귀, 입, 손과 발, 심장을 비롯한 내장, 척추 등 다양한 지체들로 구성됩니다. 모든 지체는 각각의 기능을 가지고 머리의 지시를 받아서 활동을 합니다. 눈은 보는 역할을 하고, 코는 숨을 쉬는 역할을 하고, 척추는 몸을 지탱하고, 심장은 피가 몸 전체로 순환하게 하고, 손은 몸에 필요한 실제적인 일을 하고, 발은 필요한 곳으로 몸을 이동시킵니다. 몸을 구성하는 모든 지체가 자신이 맡은 기능을 할 때, 몸은 건강하고 정상적으로 활동합니다. 만일 어느 한 지체라도 작동하지 않으면 몸은 불구가 됩니다. 이와 같이 모든 성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중요한 역할이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비교하면서 어떤 지체가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각 사람이 교회의 지체로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각 사람의 분량에 맞게 은사를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선물인 은사를 받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받은 은사가 무엇인지 잘 알고, 그 은사를 활용하여 교회 안에서 봉사 할 때 교회는 생동감이 넘치고 성장하게 됩니다. 

  우리 가운데에도 메시지를 전하는 분들이 있고, 찬양 팀을 섬기는 분, 앰프와 비디오 등 기기를 다루는 분, 식사와 청소 등 봉사하는 분, 재정을 관리하는 일에 관계되어 일하는 분, 중보기도에 힘쓰는 분 등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각자 맡은 일에 충성을 다 할 때 교회는 잘 돌아가게 됩니다.

  8-10절은 예수님이 성육신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심으로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실 수 있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혜의 직분이 무엇입니까? 11절을 보십시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사도’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로서, 교회를 설립하고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백성에게 전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복음 전하는 자’는 순회사역자들을 말합니다. 선교사처럼 비기독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웁니다. ‘목사’로 번역된 헬라어 ‘포이멘’은 양을 치는 목자를 가리킵니다. ‘목사와 교사’ 앞에는 관사가 하나만 붙어 있어서 양들을 돌보는 목자이면서 동시에 말씀을 가르치는 성경선생을 가리킵니다. 목자는 양떼들을 돌보고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합니다. 결국 은혜의 직분이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잘 풀어서 전하고 말씀대로 살도록 돕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사도, 선지자, 복음 전도자, 목자와 교사 같은 지도자들을 세우신 목적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성숙한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후에 봉사의 일을 힘써 함으로서 교회를 세우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일 성도가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봉사의 일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맡은 일을 기분에 따라서 형편에 따라서 감당하게 되면 여러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힘을 빼고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이 된 후에 봉사의 일을 통해서 교회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야 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성도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될 때까지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믿음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지식이 없으면 맹목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지식이 있으나 믿음이 없으면 교만한 신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지식과 믿음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또한 온전한 사람이 될 때까지 성장해야 합니다. 온전한 사람이란 충분히 성숙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성장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수준에까지 성장해서,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처럼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을 닮은 작은 예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정도 성장할 때까지 봉사의 일을 하지 않는다면 평생 동안 봉사의 일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봉사의 일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성장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들로 성장할수록 교회는 더욱더 세상에 대하여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미숙하기 때문에 세상에 소금과 빛의 역할을 못하는 것입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어린 아이의 특징은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지, 교회 공동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결코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의 관계성, 사람들과의 관계성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모든 성도는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서 다른 성도들과 연결되고 결합되어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를 돌아보지 않고 혼자서만 신앙 생활하고자 하는 사람은 영적 어린아이입니다. 영적 어린아이는 신앙의 뿌리가 견고하지 못합니다.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서 이리 저리 흔들립니다. 사람들의 말과 세상의 풍습을 따라서 왔다 갔다 합니다. 우리가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영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요동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따라서 사는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려면,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말을 하고 정직한 행동을 해야 합니다. 이런 생활을 할 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른 것처럼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몸의 성장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에게 연결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된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결되어서 그의 도움을 받아서 자라납니다. 그리스도는 각 지체에게 직분을 주실 뿐만 아니라 각 지체가 직분을 감당할 수 있도록 계속 도우십니다.

  ‘마디’는 몸의 사지를 접촉점에서 한데 결합시켜 주는 관절입니다. 마디는 몸의 각 부분에 힘과 균형을 제공하는 통로로서 몸을 지탱하는 수단입니다. 여기서 ‘마디’는 사도, 선지자, 복음 전도자, 목자와 교사 같은 사역자를 가리킵니다. 모든 성도들은 사역자들을 통해서 연결되고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런 사역자들을 통해서 지체가 성장하고 맡은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세운 사역자들의 가르침을 잘 받아야 합니다. 또한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한다”고 했습니다. 교회의 성장은 단지 목회자의 사역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목회자와 함께 몸에 속한 모든 지체들이 받은 은사의 분량대로 제 역할을 할 때 성장합니다. 모든 성도는 교회의 각 지체로서 주님께 받은 직분이 있습니다. 그 직분을 알고 힘써 감당할 때에만 교회가 풍성해지고 생명력이 넘치고 성장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제가 성장해야 할 목표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충만한 분량까지라는 말씀에 놀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성장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게 됩니다.

  영국의 유명한 목회자였던 마틴 로이드 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청교도들을 알프스에 비유하고 루터나 칼빈을 히말라야에 비유한다면, 조나단 에드워즈는 에베레스트 산에 비유하고 싶은시험을 받곤 합니다. 제게 있어서 그는 언제나 사도 바울을 가장 닮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죠나단 에드워즈는 어릴 때부터 남이 보지 않는 장소에서 하루에 5번씩 기도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는 철저한 가정교육 덕택으로 6세 때 아버지부터 라틴어를 습득했고, 13세가 되기 전에 라틴어, 헬라어, 히브리어 등을 통달하여 원어 성경을 읽게 되었습니다. 9세 되던 날 그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는 10세에는 벌써 영혼에 관한 글을 지었으며, 11세에는 자연계와 곤충들을 관찰하고 소논문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13세에 예일대학에 입학하였고 17세에 수석으로 졸업을 하였습니다. 그후 성직자의 뜻을 품고 그곳에서 2년 동안 더 공부하여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목사 후보생으로서 설교할 자격을 얻어 뉴욕시에 있는 한 작은 장로교회에서 첫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26세에 노샘프턴 회중교회의 담임목사로 추대되어 24년 동안 목회하였습니다. 그는 미국이 낳은 위대한 부흥설교가요 신학자요 철학자요 사상가요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또한 그는 위대한 작가로서 미국 문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는 학생 복음 운동과 한국교회에까지 영향을 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는 제2, 3의 죠나단 에드워즈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린 아이의 수준을 벗어나 남에 대한 배려, 사랑, 믿음, 오래 참음 등 여러 면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기를 기도합니다. 배우기를 멈추는 순간 그 사람을 늙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배우는데 정진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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