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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2000년 가을 에베소서 제 4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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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섬김이
댓글 0건 조회 4,643회 작성일 03-01-17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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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가을 에베소서 제 3 강
말씀/에베소서 3:1-21
요절/에베소서 3:6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비밀이 무엇이며 그리스도의 사랑이 어떠한가를 배우고자 합니다.

 I. 그리스도의 비밀 (1-13)

 1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가 되었습니다. 그 경위를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바울은 2년 동안 에베소에 머물렀습니다. 거기서 유대인과 헬라 지성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믿기 어려운 헬라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될 때 믿었습니다. 마법과 요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것은 바울 조차도 믿기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에베소에서 있은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바울은 전 세계가 복음화될 비전을 보았습니다. 행 19:21절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바울은 예루살렘에 갔다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가는 목적은 이방인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가 선교 보고를 하기 위함이요 다른 하나는 준비된 구제 헌금을 전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에베소 성도인 드로비모와 함께 도착하였을 때 완고한 고집쟁이들이 바울이 이방인과 함께 성전에 들어갔다고 오해하여 고소하고 예루살렘 감옥에 쳐넣었습니다. 나중에 그는 로마 감옥으로 이송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들을 위하여 갇힌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1절은 …으로 끝을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깨달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그들도 알기를 바랬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이라는 말은 세계 만민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뜻합니다. 비밀이라는 말은 이전에 감추어진 것이었지만 이제는 밝히 드러난 진리를 뜻합니다. 기독교의 비밀은 인간의 지식이나 이해력으로는 결코 깨달을 수 없으나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비로소 깨닫게 된 진리를 뜻합니다. 그가 3,4,9절에서 '비밀'이라는 말을 반복해서 사용한 것은 하나님의 만민 구속 계획이 그가 묘사하기에는 너무나 영광스럽고 고귀하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비밀은 그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알려져 있었습니다. 출19:5,6절은 말씀합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하나님의 비밀은 그의 택하신 백성들이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이 되어서 온 세계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목자가 되고 영적인 아버지 어머니들이 되어서 각 사람에게 일대일로 성경을 가르치고 온 세상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흘러 넘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즉 하나님의 비밀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기갈든 영혼이 해갈함을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선택된 백성들에게 선포되었는데 선택된 백성들은 세계 만민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선포하고 세상을 낙원으로 만들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9:6-7절은 하나님의 비밀을 시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애굽에서 430년 동안 하나님의 훈련을 받은 후에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은 하나님의 비밀이 세계선교 사명임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40년 동안의 광야 훈련 동안 그들은 연금 생활자들과 같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규칙적으로 얻을 수 있었고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들이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는 것을 통해서 영적인 눈이 뜨이고 성숙한 목자들로 자라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매우 타성적이고 게으른 불평분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일세대는 여호수아와 갈렙 장군만 빼고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비밀, 즉 세계를 구원할 목적으로 홍해를 마른 땅과 같이 건넜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을 정복했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약속의 땅을 정복했습니다. 그러나 열 두 족속들이 아름다운 땅에 정착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더 이상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흩어져 있는 적들이 분명하게 보이건 숨어 있건 그들을 무시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은 하나님보다 젖과 꿀을 더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비밀 즉 세계 선교 사명이 그들의 마음으로부터 떠나게 되었습니다. 비밀은 거기에 있었지만 그들은 세상적인 생활 방식으로 인해서 그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왜 바울이 이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는 다른 교회와 마찬가지로 에베소 교인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을 심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울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의 나이나 힘든 육체 때문이 아니라 또 불편한 감옥 생활 때문도 아닙니다. 그는 온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성도들에게 심기 위해서 울고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 가운데 세계 선교에 대한 열망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을 볼 때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축복하셔서 계속해서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도록 선교 자원자들을 보내어 주시고 이들을 키우고 훈련하여 이방인을 위한 제물로 드릴 수 있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그리스도 안에서 이스라엘 사람과 이방인들이 함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6).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와 함께한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들만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방인들도 이스라엘과 함께 하나님의 상속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조선 시대에 양반이 백정과 함께 결혼을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인도에서 불가촉 천민이 브라만과 함께 생활하는 것과 같습니다. 유대인들이 받았던 축복을 이방인들이 고스란히 받게 된 것입니다. 그 시대에 바울 만이 이 비밀 즉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방인 즉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함께 후사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우리에게 말한 것을 생각할 때 정말로 장엄하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한 사마리아 여인이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 사람들에 의해서 무시를 받았습니다. 사마리아 남자들은 사마리아 여자들을 무시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들 중에서 요한복음 4장에 언급된 여인은 부도덕한 삶으로 인해서 가장 무시받고 가장 고독했습니다. 선택된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무시했습니다. 우물가에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접근했을 때 그리심산과 에발산 사이의 계곡만큼이나 골이 깊었습니다. 예수님은 대낮에 여행을 하고 난 후 피곤했고 제자들은 양식을 얻기 위해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마리아 여인에게 호의를 구했습니다. "물 좀 달라" 그때 그 여인이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여인은 나라의 찢긴 상황을 말했는데 그들 사이는 너무나 적대감이 깊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녀를 도왔습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그러자 여자가 대답했습니다.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이렇게 될 때까지 여인을 도왔습니다.

 6절을 다시 보십시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당시에 이방인들은 단지 이방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비록 이방인이 짐승과 같다 할지라도 심지어 그들이 우연히 태어났고 운명에 따라서 산다고 할지라도 이스라엘과 함께 후사가 될 수 있다는 비밀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그들이 왕이요 왕비라 할지라도 슬펐습니다. 클레오파트라는 그 좋은 예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이스라엘과 함께 하나님의 후사가 될 수 있습니다.

 후사란 무슨 뜻입니까? 후사란 하나님의 자녀요 전 세계의 영원한 통치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딤후2:11,12절은 말씀합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롬8:17절은 말씀합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그들이 영생을 얻는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족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은혜로 예수님 안에서 죄사함을 받고 그 유업으로서 하나님 나라와 영생을 얻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영광과 권세를 누리게 됩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축복입니까?

 7-10절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의 일군을 삼으시고 쓰시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복음의 일군이 되었습니다. 교회의 핍박자요 훼방자요 포행자였던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신 것도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요 그가 직분을 감당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은혜의 선물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을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했습니다. 그는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11)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의 일군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세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신령한 축복들과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와 생명과 능력과 축복과 소망 등 그리스도의 풍성은 측량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풍성이 다함이 없이 무한대로 크다는 뜻입니다. 둘째는 이전에는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구원의 은총에 참여함을 나타내고 예수님을 통해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통일되는 것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영적으로 계몽시키는 것이 그의 사명임을 말한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지혜를 정사와 권세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여기서 정사와 권세들은 하늘의 선한 천사들을 가리킵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고 그리스도에 의해 구속되고 성령에 의해 거룩하게 된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이 완성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게 됩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을 전하고 가르치는 목자의 직분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복된가를 알 수 있습니다. 목자의 직분은 우주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세계를 정복하는 영적인 장군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습니다(12). 담대함은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가질 수 있는 심령의 자유로서 하나님과 화목된 상태의 즐거운 모습을 나타냅니다. 사도 바울은 목자의 담대함과 당당함이 인간의 공로에 근거한 교만한 모습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문제를 해결받고 하나님과 화목한 가운데 나타나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일군이 소심해지는 것은 자기의 사명과 직분에 대해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요 믿음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환난과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의 사랑에 뿌리를 박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은 그가 감옥에 있음으로 인해 성도들이 실망하지 말고 용기를 갖기를 원했습니다. 그의 감옥살이는 그들에게 영광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세계 구속 계획이 성취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II. 그리스도의 사랑 (14-21)

 14-21절은 사도 바울의 기도입니다. 그는 먼저 우리의 속 사람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강건해지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충만해지기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첫째, 성령으로 말미암아 속 사람이 강건해지도록 기도합니다. 일반적으로 세상 사람들은 크리스천들은 연약해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은 친절하지만 강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성도들의 속 사람이 강건해지도록 기도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강해질 수 있습니까? 16절을 보십시오.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속 사람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순간 성령께서 창조하십니다. 속 사람은 몸에 반대되는 영혼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속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기는 본질적인 인간을 가리킵니다. 속 사람 은 겉 사람 즉 죽을 본성이 후패되어 갈 때에도 매일 새롭게 되어 갑니다. 그런데 바울은 속 사람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강건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넘치는 사랑의 전모를 알도록 기도합니다. 17-19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대임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모든 인류를 포함할 만큼 넓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종류의 죄인들을 품고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 문둥병자, 거라사 광인, 사마리아 여인, 니고데모와 같은 귀족 등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사랑하십니다. 또한 그의 사랑은 영원히 지속할 만큼 깁니다. 그의 사랑은 오래 오래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의 사랑은 시간과 함께 식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원수까지도 사랑하실 만큼 높습니다. 또한 그의 사랑은 깊습니다. 희생적인 사랑의 깊이는 자기 생명을 줄 만큼 깊습니다. 그는 자신을 다 쏟아 부어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독생자를 보내어 세상 죄를 위해서 죽게 하심으로 세계 만민을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기에는 너무나 연약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영접할 때 강해집니다. 한 목자님은 선배 목자님을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그의 속 사람이 선배 목자님을 오해하여 사랑할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숙한 목자님이 도움으로 은혜가 충만해지면서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부 폴리갑이 84세 였을 때 그는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체포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원수들은 그를 기둥에 묶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인하도록 압력을 넣었습니다. 교부 폴리갑은 늙었기 때문에 육신에 힘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속사람은 강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내주 예수님은 나를 평생 사랑하셨소. 그런데 내가 어떻게 내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인할 수 있겠소." 그러자 곧 연기가 나고 기둥 막대기에 불이 붙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은 알 수 있는 사랑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기를 바라고 이 사랑이 성도들 안에 증가되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인간도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의 지식을 혼자서 다 소유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런 무한한 사랑을 이해하는데 다른 성도들의 존재가 중요함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바울 사도가 "모든 성도와 함께"라고 말함으로 다른 성도들의 존재가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해하는데 필요불가결한 것임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경험과 배경이 모두 합쳐져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성장을 계속하여 하나님의 충만을 맛보는 상태로까지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충만은 하나님 안에 있는 충만 또는 하나님 자신을 채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과 능력의 전부를 포함합니다. 하나님의 충만은 하나님께서 주신 어떤 은사에 국한되지 않고 하나님의 완전의 전체, 또는 하나님 안에 있는 탁월함의 전체를 뜻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시는 분이십니다. 저는 이제까지 인생을 돌아보면 이 말씀대로 축복하셨음을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나의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생각도 아시고 나를 축복하십니다. 그리고 그 축복을 감당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간직한 사람들이 되도록 축복하시고 그 속사람이 성령으로 강건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해 나가도록 축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이런 축복을 받고 온전히 그리스도 예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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