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2012년 야고보서 5강(5:1-20) 길이 참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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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야고보서 5강
말씀 야고보서 5:1-20
요절 야고보서 5:8
길이 참으라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우리는 지난 주 겨울 수련회를 통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제 야고보서의 결론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야고보는 결론으로 성숙한 신앙인으로서 길이 참으라는 말씀과 기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막연하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농부와 같은 자세로 일하면서 길이 참아야 합니다. 고난을 받을 때에 길이 참아야 합니다. 열매를 얻고자 하면 참아야 합니다. 고난을 받으면서 참는 길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병을 이기고, 열매를 맺고,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또 우리가 언제 죽을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안개와 같이 가는 인생인데 물질에 소망을 두면 안 됩니다. 재물은 썩고 옷은 좀먹으며 금과 은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말세에 재물을 쌓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말세에 근로자들의 임금을 떼먹고 주지 아니하면 그 근로자들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고생이 임합니다. 이는 심판을 자초하는 것임으로 울고 통곡해야 합니다. 우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마음이 비만에 걸리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세상에서 고난을 받는 우리는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아야 합니다. 사람에 대해서 참아야 합니다. 부자들의 횡포에 대해서 참아야 합니다. 부자들의 압제 때문에 그들에게 보복하려고 하지 말고 참아야 합니다. 낙심하거나 자포자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분노와 다툼에 휘말리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이 강림하실 때 영생과 상급을 얻을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농부가 비를 기다린 끝에 귀한 열매를 얻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농사를 지을 때 어려운 일들이 많습니다. 진득하게 참지 못하면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자고 깨고 하다 보면 씨가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참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되 잠시만 참을 것이 아니라 길이 참아야 합니다. 우리의 목표와 목적이 세상에 있다면 참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당하는 일이 억울하다고 생각하면 기를 쓰고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의 목표는 주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열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장차 우리 믿음의 수고가 열매를 맺어서 인정을 받을 날이 반드시 옵니다.
8절을 보십시오.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핍박과 가난 때문에 믿음을 버리고 당장의 평안을 구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 있으나 흔들리지 말고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극심한 핍박에 자제심을 잃고 분노에 휩싸이지 않도록 마음을 굳건하게 해야 합니다. 주님이 강림하시면 마음을 굳건하게 한 자들이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파도를 보고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푯대되신 주님을 바라보고 굳게 서야 합니다. 누가 뭐래도, 다른 사람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더라도 비교하지 말고 중심을 지켜야 합니다.
참는 것과 믿음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믿음이 있을 때 오래 참을 수 있습니다. 오래 참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우리가 인내하지 못하면 원망하고 좌절하기 쉽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가만히 있으면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농부처럼 해야 할 일을 하면서 그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물질적인 형편이 어려울 때 참아야 합니다. 제자 양성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참아야 합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참을 줄 아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 형제를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말고 참아야 합니다.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다는 것은 고난이 곧 끝난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참을 수 있습니까?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나만 참는 것이 아닙니다. 다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욥은 하루 아침에 재산과 자녀와 건강을 잃었습니다. 그는 고난을 받는 이유를 알고 싶었습니다.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다든지, 악한 일을 했다면 달게 받을 텐데 이유없이 고난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억울했습니다. 친구들은 고난당하는 그를 찾아와서 회개하라고 말하는데 회개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답답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자신의 믿음을 정금같이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찾았습니다. 그리하며 참았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의 재산을 이전보다 두 배나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자녀들도 주셨습니다. 그의 건강과 명예를 회복시켜주셨습니다.
12절에는 맹세하지 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고 합니다. 왜 고난을 말하다가 갑자기 맹세 문제가 나올까요? 고난을 받을 때에 이 문제만 넘어가면 어떻게 하겠다고 맹세하기 쉽습니다. 이때 헛맹세를 하지 말고 참으라는 것입니다. 맹세하는 이유는 문제를 쉽게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또는 하나님을 재촉하려고 하는 맹세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고난의 때에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길이 참으면서 고난을 잘 이길 수 있을까요? 13,14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우리 가운데 고난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위암으로 고난당하는 분이 계십니다. 림프암으로 고난을 당한 분도 계십니다. 대장암으로 고난을 당하는 분도 계십니다. 디스크로 고난을 당하는 분도 있습니다. 육체적 질병으로 고난을 당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질병으로 고난을 당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목자들은 양을 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서 당하는 마음의 아픔이 있습니다. 우리가 고난 가운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역사적으로 볼 때 고난이 결코 손해가 아니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고난을 통해서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고난 속에서 우리는 강해지고 순수해지고 겸손해집니다. 무엇보다 고난을 통해서 기도의 용사로 훈련이 됩니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고난 가운데 있을 때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왜 나한테 이런 고난이 생기냐며 원망하고 불평하기 쉽습니다. 또 고난이 깊어지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기도하고 싶어도 기도할 힘이 없습니다. 저도 이전에 신장병으로 고생할 때 기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무엇을 하든 쉽게 지치고 무기력해져서 누워 있는 것이 하루 일과였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은 나를 돌아보지 않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사막에 두 사람의 발자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가다보니 한 사람의 발자국 밖에 없습니다. 생각해보니 자신이 가장 힘들 때 였습니다. 그는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내가 그렇게 고난을 당할 때 당신은 어디 계셨습니까? 그러자 주님께서는 나는 너와 항상 함께 하였다. 네가 힘들었을 때, 그때 내가 너를 안고 길을 걸어갔단다.” 우리가 고난 가운데 기도할 수 없지만 성령께서는 내 속에서 탄식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떠나가는 것이 제자들에게 유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가시면 성령을 보내주시기 때문입니다.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으셨지만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영으로서 제한이 없으십니다. 그는 침투성이 강하십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들어와 거하십니다.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도 계십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서 탄식하며 기도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고자 할 때 성령께서도 나와 함께 기도해 주시지, 기도하지 않는데 알아서 기도해 주지는 않습니다. 어떤 분은 기도해야 하는 것은 알지만 하나님께 화가 나서 기도할 수 없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주시지 않는 것 같아서 화가 나기도 합니다. 기도하나 아니하나 매 한가지라고 생각하여 기도하지 않는 분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진실되게 투쟁하신 분들입니다. 또 믿음이 좋으신 분들입니다. 정말 기도하면서 응답을 기다리고 믿음으로 살고자 투쟁하는 사람만이 이런 마음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받으면서 기도가 깊어지게 됩니다. 깊이 기도하다보면 더 이상 기도할 필요가 없음을 느낍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확신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로 더 이상 하나님을 귀찮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때부터는 감사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나의 기도를 들으신 것에 대한 감사를 드리고 찬송을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음으로 즐거우면 찬송해야 합니다.
기도는 나 혼자서 해야 할 때도 있지만 동역자들에게 기도 요청을 하고 합심해서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병든 사람은 교회의 장로들을, 지도자들을 청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기도하라는 것은 의학적인 치료를 받으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름을 바르다는 말은 민간의학인데 올리브 기름에는 소독과 진정 작용이 있다고 합니다. 또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성령이 임하신다는 의미로서 하나님의 터치가 있음을 말씀해줍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모든 병의 원인이 죄에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일부 죄가 병의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에 우리는 먼저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죄 사함을 받을 때 육신의 병도 쉽게 낫습니다. 대개 마음의 병이 육신의 병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치료하기 전에 먼저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중풍병을 치료하기 전에 근원적인 죄의 병을 치료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회개를 받으시고 그 병을 일으킨 죄를 사하시고, 그 병에서 낫게 하십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낫게 하는 힘이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야고보는 무엇을 권합니까? 16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16절에서 중요한 말은 ‘서로’ 라는 단어인데 두 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죄를 서로 고백하며 …, 서로 기도하라.” 이 말씀을 볼 때 우리의 소감 모임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우리가 말씀에 기초한 회개의 소감을 서로 발표하는 소감 모임은 참으로 성경적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회개의 투쟁을 깊이 한 소감을 통해 서로 고백하며 은혜를 나눌 때 우리 각 자 안에 치유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그러므로 우리가 각 팀별로 소감 모임을 잘 이루고 서로 기도하는 시간들을 매주 잘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여기서 ‘의인’ 은 일차적으로 교회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피의 은혜를 덧입고 거듭난 자들은 근본적으로 의인입니다. 그러한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크므로 서로의 치유를 위하여 기도할 때 역사하는 힘이 크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기도에 대해서 엘리야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입니다. 그도 연약하고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런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했습니다. 다시 그가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습니다(17,18). 엘리야의 기도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그는 갈멜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하고 말했습니다. 엘리야는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고 했습니다.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반복해서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응답될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와 똑 같은 성정의 사람 엘리야가 자연 현상까지 변동시킨 초자연적인 일을 함으로 기도의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로스엔젤레스 다우니 센터의 민수잔나(월신)선교사는 등산을 갔다가 60미터 아래 바위 위에 떨어져 머리가 다 깨어졌습니다. 주위의 사람들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선교동역자들은 하나님을 믿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코마 상태에서 삼일만에 깨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종로센터에 와서 간증도 하였습니다. 기도의 응답은 신비입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는 표적이 따른다고 약속해주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6,17).”
19,20절을 보십시오.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우리는 병든 자들의 나음을 위해서 기도할뿐만 아니라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각종 이단의 유혹, 돈의 유혹, 쉽고 편안한 삶의 방식에 미혹되어 믿음을 떠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학생들은 진화론에 미혹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전함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이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입시로 인해서 믿음에서 떠났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을 사랑하여 하나님께 다시 돌아와 믿음으로 살도록 권면해야 합니다. 그들을 돌이키면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고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야고보서 말씀을 통해서 행함으로 믿음을 보이라고 권면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길이 참아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공부하고 이를 행하려면 길이 참아야 합니다. 우리가 고난 속에서 기도에 힘쓰는 가운데 내적인 힘을 덧입고 말씀대로 행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주에 신입생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기를 기도합니다. 전도하는 일에 동참하기 어려운 분들은 기도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전도하는 분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렇게 합심동역하여 구원 역사를 힘써 이루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야고보서 5:1-20
요절 야고보서 5:8
길이 참으라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우리는 지난 주 겨울 수련회를 통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제 야고보서의 결론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야고보는 결론으로 성숙한 신앙인으로서 길이 참으라는 말씀과 기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막연하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농부와 같은 자세로 일하면서 길이 참아야 합니다. 고난을 받을 때에 길이 참아야 합니다. 열매를 얻고자 하면 참아야 합니다. 고난을 받으면서 참는 길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병을 이기고, 열매를 맺고,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또 우리가 언제 죽을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안개와 같이 가는 인생인데 물질에 소망을 두면 안 됩니다. 재물은 썩고 옷은 좀먹으며 금과 은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말세에 재물을 쌓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말세에 근로자들의 임금을 떼먹고 주지 아니하면 그 근로자들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고생이 임합니다. 이는 심판을 자초하는 것임으로 울고 통곡해야 합니다. 우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마음이 비만에 걸리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세상에서 고난을 받는 우리는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아야 합니다. 사람에 대해서 참아야 합니다. 부자들의 횡포에 대해서 참아야 합니다. 부자들의 압제 때문에 그들에게 보복하려고 하지 말고 참아야 합니다. 낙심하거나 자포자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분노와 다툼에 휘말리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이 강림하실 때 영생과 상급을 얻을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농부가 비를 기다린 끝에 귀한 열매를 얻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농사를 지을 때 어려운 일들이 많습니다. 진득하게 참지 못하면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자고 깨고 하다 보면 씨가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참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되 잠시만 참을 것이 아니라 길이 참아야 합니다. 우리의 목표와 목적이 세상에 있다면 참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당하는 일이 억울하다고 생각하면 기를 쓰고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의 목표는 주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열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장차 우리 믿음의 수고가 열매를 맺어서 인정을 받을 날이 반드시 옵니다.
8절을 보십시오.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핍박과 가난 때문에 믿음을 버리고 당장의 평안을 구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 있으나 흔들리지 말고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극심한 핍박에 자제심을 잃고 분노에 휩싸이지 않도록 마음을 굳건하게 해야 합니다. 주님이 강림하시면 마음을 굳건하게 한 자들이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파도를 보고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푯대되신 주님을 바라보고 굳게 서야 합니다. 누가 뭐래도, 다른 사람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더라도 비교하지 말고 중심을 지켜야 합니다.
참는 것과 믿음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믿음이 있을 때 오래 참을 수 있습니다. 오래 참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우리가 인내하지 못하면 원망하고 좌절하기 쉽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가만히 있으면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농부처럼 해야 할 일을 하면서 그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물질적인 형편이 어려울 때 참아야 합니다. 제자 양성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참아야 합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참을 줄 아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 형제를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말고 참아야 합니다.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다는 것은 고난이 곧 끝난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참을 수 있습니까?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나만 참는 것이 아닙니다. 다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욥은 하루 아침에 재산과 자녀와 건강을 잃었습니다. 그는 고난을 받는 이유를 알고 싶었습니다.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다든지, 악한 일을 했다면 달게 받을 텐데 이유없이 고난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억울했습니다. 친구들은 고난당하는 그를 찾아와서 회개하라고 말하는데 회개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답답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자신의 믿음을 정금같이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찾았습니다. 그리하며 참았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의 재산을 이전보다 두 배나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자녀들도 주셨습니다. 그의 건강과 명예를 회복시켜주셨습니다.
12절에는 맹세하지 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고 합니다. 왜 고난을 말하다가 갑자기 맹세 문제가 나올까요? 고난을 받을 때에 이 문제만 넘어가면 어떻게 하겠다고 맹세하기 쉽습니다. 이때 헛맹세를 하지 말고 참으라는 것입니다. 맹세하는 이유는 문제를 쉽게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또는 하나님을 재촉하려고 하는 맹세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고난의 때에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길이 참으면서 고난을 잘 이길 수 있을까요? 13,14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우리 가운데 고난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위암으로 고난당하는 분이 계십니다. 림프암으로 고난을 당한 분도 계십니다. 대장암으로 고난을 당하는 분도 계십니다. 디스크로 고난을 당하는 분도 있습니다. 육체적 질병으로 고난을 당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질병으로 고난을 당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목자들은 양을 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서 당하는 마음의 아픔이 있습니다. 우리가 고난 가운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역사적으로 볼 때 고난이 결코 손해가 아니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고난을 통해서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고난 속에서 우리는 강해지고 순수해지고 겸손해집니다. 무엇보다 고난을 통해서 기도의 용사로 훈련이 됩니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고난 가운데 있을 때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왜 나한테 이런 고난이 생기냐며 원망하고 불평하기 쉽습니다. 또 고난이 깊어지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기도하고 싶어도 기도할 힘이 없습니다. 저도 이전에 신장병으로 고생할 때 기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무엇을 하든 쉽게 지치고 무기력해져서 누워 있는 것이 하루 일과였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은 나를 돌아보지 않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사막에 두 사람의 발자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가다보니 한 사람의 발자국 밖에 없습니다. 생각해보니 자신이 가장 힘들 때 였습니다. 그는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내가 그렇게 고난을 당할 때 당신은 어디 계셨습니까? 그러자 주님께서는 나는 너와 항상 함께 하였다. 네가 힘들었을 때, 그때 내가 너를 안고 길을 걸어갔단다.” 우리가 고난 가운데 기도할 수 없지만 성령께서는 내 속에서 탄식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떠나가는 것이 제자들에게 유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가시면 성령을 보내주시기 때문입니다.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으셨지만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영으로서 제한이 없으십니다. 그는 침투성이 강하십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들어와 거하십니다.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도 계십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서 탄식하며 기도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고자 할 때 성령께서도 나와 함께 기도해 주시지, 기도하지 않는데 알아서 기도해 주지는 않습니다. 어떤 분은 기도해야 하는 것은 알지만 하나님께 화가 나서 기도할 수 없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주시지 않는 것 같아서 화가 나기도 합니다. 기도하나 아니하나 매 한가지라고 생각하여 기도하지 않는 분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진실되게 투쟁하신 분들입니다. 또 믿음이 좋으신 분들입니다. 정말 기도하면서 응답을 기다리고 믿음으로 살고자 투쟁하는 사람만이 이런 마음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받으면서 기도가 깊어지게 됩니다. 깊이 기도하다보면 더 이상 기도할 필요가 없음을 느낍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확신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로 더 이상 하나님을 귀찮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때부터는 감사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나의 기도를 들으신 것에 대한 감사를 드리고 찬송을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음으로 즐거우면 찬송해야 합니다.
기도는 나 혼자서 해야 할 때도 있지만 동역자들에게 기도 요청을 하고 합심해서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병든 사람은 교회의 장로들을, 지도자들을 청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기도하라는 것은 의학적인 치료를 받으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름을 바르다는 말은 민간의학인데 올리브 기름에는 소독과 진정 작용이 있다고 합니다. 또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성령이 임하신다는 의미로서 하나님의 터치가 있음을 말씀해줍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모든 병의 원인이 죄에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일부 죄가 병의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에 우리는 먼저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죄 사함을 받을 때 육신의 병도 쉽게 낫습니다. 대개 마음의 병이 육신의 병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치료하기 전에 먼저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중풍병을 치료하기 전에 근원적인 죄의 병을 치료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회개를 받으시고 그 병을 일으킨 죄를 사하시고, 그 병에서 낫게 하십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낫게 하는 힘이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야고보는 무엇을 권합니까? 16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16절에서 중요한 말은 ‘서로’ 라는 단어인데 두 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죄를 서로 고백하며 …, 서로 기도하라.” 이 말씀을 볼 때 우리의 소감 모임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우리가 말씀에 기초한 회개의 소감을 서로 발표하는 소감 모임은 참으로 성경적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회개의 투쟁을 깊이 한 소감을 통해 서로 고백하며 은혜를 나눌 때 우리 각 자 안에 치유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그러므로 우리가 각 팀별로 소감 모임을 잘 이루고 서로 기도하는 시간들을 매주 잘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여기서 ‘의인’ 은 일차적으로 교회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피의 은혜를 덧입고 거듭난 자들은 근본적으로 의인입니다. 그러한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크므로 서로의 치유를 위하여 기도할 때 역사하는 힘이 크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기도에 대해서 엘리야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입니다. 그도 연약하고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런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했습니다. 다시 그가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습니다(17,18). 엘리야의 기도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그는 갈멜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하고 말했습니다. 엘리야는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고 했습니다.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반복해서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응답될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와 똑 같은 성정의 사람 엘리야가 자연 현상까지 변동시킨 초자연적인 일을 함으로 기도의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로스엔젤레스 다우니 센터의 민수잔나(월신)선교사는 등산을 갔다가 60미터 아래 바위 위에 떨어져 머리가 다 깨어졌습니다. 주위의 사람들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선교동역자들은 하나님을 믿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코마 상태에서 삼일만에 깨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종로센터에 와서 간증도 하였습니다. 기도의 응답은 신비입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는 표적이 따른다고 약속해주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6,17).”
19,20절을 보십시오.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우리는 병든 자들의 나음을 위해서 기도할뿐만 아니라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각종 이단의 유혹, 돈의 유혹, 쉽고 편안한 삶의 방식에 미혹되어 믿음을 떠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학생들은 진화론에 미혹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전함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이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입시로 인해서 믿음에서 떠났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을 사랑하여 하나님께 다시 돌아와 믿음으로 살도록 권면해야 합니다. 그들을 돌이키면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고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야고보서 말씀을 통해서 행함으로 믿음을 보이라고 권면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길이 참아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공부하고 이를 행하려면 길이 참아야 합니다. 우리가 고난 속에서 기도에 힘쓰는 가운데 내적인 힘을 덧입고 말씀대로 행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주에 신입생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기를 기도합니다. 전도하는 일에 동참하기 어려운 분들은 기도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전도하는 분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렇게 합심동역하여 구원 역사를 힘써 이루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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