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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2012년 겨울수양회 야고보서 제 1강(1:1-18) 시험을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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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수
댓글 0건 조회 1,105회 작성일 12-02-12 10:03

본문

2012년 야고보서 1강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 
말씀 약 1/1~18
요절 약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본문 말씀 야고보서는 야고보 선생님이 흩어진 유대 성도들에게 쓴 서신입니다. 이 서신의 기록연대는 야고보가 순교하기 전인 AD 60년경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배경을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약 30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사실 초대교회에서는 예루살렘 공동체가 잘 이루어졌습니다. 구원의 은혜, 말씀의 은혜가 넘쳤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의 순교 이후로 핍박이 거세졌고, 성도들은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나고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들의 믿음과 삶이 분리가 되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야고보 선생님이 펜을 들어 이 편지를 썼습니다. 이것만은 꼭 말해줘야겠다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정말 이들에게 주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 까요?
 
 2절을 봅시다. (1인)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들이 겪는 여러 가지 시험은 무엇이었을 까요? 예루살렘의 핍박을 피해 성도들은 세계 각지로 흩어졌습니다. 흩어진 성도들은 먹고 살기 위해 장사를 하든, 땅을 일구든 뭔가를 다시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는 세상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이 있었습니다. 이방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그들의 삶 속에는 율법도 없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도 없었습니다. 부유한 사람이 인정을 받고 가난한 사람은 멸시를 받았습니다. 현재적으로 강한 사람이 대우를 받고 약자는 무시를 받았습니다. 인간적인 열심, 자기 성실로 성공을 향해 달리는 사람, 자기 기분대로 살아가는 사람, 적당히 쾌락을 즐기며 사는 사람, 그런 사람들 속에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함께 있으면 닮아가기가 쉽습니다. 그들과 관계성을 맺고 그 곳의 룰을 따라 살아가면서 그들의 문화가 성도들의 삶 속에 파고 들어왔습니다. 문화라는 것은 참 무서운 것입니다. 오랜 역사를 통해 흘러왔기 때문에 그것을 분별하고 부인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에게 여러 가지로 시험이 되었습니다.

 야고보서 전체를 보면 실제로 이 성도들의 삶 속에 어떠한 것들이 들어왔는 지를 볼 수 있습니다. 부한 자는 높이고 가난한 자는 무시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는 말로만 동정하고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음행에 빠지는 사람이 있었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보다는 화를 내었습니다. 함부로 말을 하고, 시기와 다툼을 하였습니다. 허탄한 자랑을 하고, 재물과 세상 명예에 대한 소원이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를 양다리 걸치는 사람이 생겨났습니다.

 머니머니해도 역시 시험이 되는 것은 머니였습니다. 본문 9절에서 11절 말씀을 보면 이미 성도들 가운데, 돈 문제가 생겨났음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 문화 속에서 부유한 형제는 높임을 받고 대우받고 그 사회 속에서도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반면 가난한 형제는 낮게 여김을 받고 대우도 못받고 멸시와 냉대를 받았습니다. 은연중에 좀 있는 형제가 없이 사는 형제를 돌아보지 않고 무시하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에게 시험이 되었습니다. 맨 처음 신앙생활할 때는 은혜 가운데 니거 내것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내것이라 하지 않고 서로 다 통용하며 나누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고, 내 것을 꾸려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내 인생, 내 집, 내 가정을 먼저 챙겨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다른 성도들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핍박으로 흩어졌지만, 이제는 스스로 흩어졌습니다. 몸도 멀어졌지만 마음도 멀어졌습니다.

 반면 여전히 물질이 부족하고 가난한 동역자들은 시험이 들었습니다. 과거 앞뒤 돌아보지 않고 역사에 헌신헸던 것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그 때 좀 남겨둘걸 하는 미련이 들어왔습니다.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이들에게 격려가 필요하고 위로가 필요했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힘든 형제들에게 야고보 선생님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2절을 다시 봅시다. (ME)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기쁨도 보통 기쁨이 아니고 온전한 기쁨, 표준 번역에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아니 지금 당장 벌어놓은 물질도 없고, 앞은 캄캄한데 어떻게 이 상황이 온전한 기쁨이 될 수 있습니까? 3절을 봅시다. (1인)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앎이라.” 믿음의 시련이 무엇입니까? 성도들이 갖고 있었던 믿음은 무엇입니까? 초대 교회 성도들은 무엇이든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이 채우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과거 이 하나님의 채우심을 경험했습니다. 저도 직장에서 3달 월급 밀리고, 회사를 나온 적이 있습니다. 6개월동안 공부를 하면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오히려 열심히 돈을 갔다가 공부하는 데 썼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우리 가정의 모든 필요와 먹을 것과 쓸 것을 채우셨습니다. 큰 형이 하늘이 양육비로 매달 얼마씩 보내주었고, 또 처갓집에서, 또 희한한 방법으로 하나님이 모든 루트를 통해 모든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그래서 애들 키우면서 맘껏 공부도 하고, 직장 스트레스 없이 6개월을 잘 놀았습니다. 그 과정이 불안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제 인생에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요 축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JOB을 구했고, 다시 평신도 JOB을 통해서 필요한 물질을 벌었습니다. 저는 이 경험을 통해서 가족과 동역자들의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또 물질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내가 먹을 일용할 양식은 하나님이 주시고, 하나님이 나를 먹이고 입히신다는 믿음이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이 채우실 것을 믿고 형제들과 나누는 삶을 사는 것, 이것이 바로 성도들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믿음이 시험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인내는 그 믿음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기적으로 자기중심적으로 돈 벌고 자기 삶을 꾸리는 시대 가운데서 그 믿음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채우신다는 믿음, 그 믿음을 변치 않고, 변함없이 나누고 베풀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일이 일어납니까? 4절을 봅시다. (형제)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그렇게 인내하면 하나님께서 부족함이 없이 채우십니다. 필요한 것을 채우실 뿐 아니라 우리의 존재도 부족함이 없이 온전하게 하십니다.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게 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눌 수 있는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이 믿음의 시련은 마치 금광석을 제련하는 과정과 같습니다. 펄펄 끓는 용광로에 금광석을 넣고 다 녹이고 태웁니다. 그러면 불순물이 빠지고 순전한 정금만 남습니다. 전에는 내 안에 불순물이 많이 있었습니다. 돈, 출세, 세상적인 부, 물질, 성공에 대한 집착과, 유혹을 즐기고 싶은 마음, 이런 것들이 내 안에 뒤섞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련을 통해 그런 불순물이 빠지고 순수한 것들이 남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진심과 정직한 마음이 남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 사람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남습니다. 그렇게 사람을 순수하게 사랑하고 나누는 삶을 살면, 인생에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 있습니다. 진짜로 웃음이 나오고 생기가 넘칩니다.
 
 5절을 봅시다. (자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지혜는 무엇을 말합니까? 지혜는 단순한 지식이 아닙니다. 지혜는 내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실제적인 삶의 기술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자기 것을 꾸리는 세상 속에서, 나누어 주고도 풍요롭게 살아가는, 삶의 기술입니다. 하나님께 구하면 이러한 삶의 지혜를 주십니다.
 
 오히려 부유한 사람, 자신을 위해 물질을 쌓는 사람은 쇠잔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면 부한 자의 삶은 풀의 꽃처럼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소유를 통해서, 가진 것을 통해 인정받고자 했던 사람은 결국 가진게 다 떨어지고 나면 아무도 그를 돌아보지 않을 것입니다. 이기적으로,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사람은 결국 쇠잔하게 됩니다. 

 그럼 어떠한 사람이 진정 높은 사람입니까? 어려움 속에서도 세상의 유혹을 참고 적극적으로 나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믿고 구제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채우실 것을 믿고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돕고 격려하는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네 앞길이나 신경쓰라’ 고 할 수 있습니다. 너도 어려운 처지에 돕긴 누굴 돕냐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도 내게 있는 믿음을 지켜 낸 사람에게는 복이 있습니다. 12절을 봅시다. (다같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시험을 견디어 내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십니다. 그 면류관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시련을 참고 견디는 것을 자신에 대한 사랑이라고 보셨습니다. 이 시련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세상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복을 믿고 살아갈 것이고, 세상을 사랑하면 세상의 삶의 방식을 따라 살아갈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험 속에서 사랑을 보십니다.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성을 맺기를 원하십니다. 그 시험 속에서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성을 맺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 길의 여정 끝에서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에게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험의 때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가 시험을 받는 이유는 자기 욕심 때문입니다. 처음에,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을 때는 오히려 감사가 넘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버는 돈이 많아질수록, 지위가 올라가고, 생활이 안정될수록, 가정이 생기고 내 것이 많아질수록 욕심이 생겨납니다. 내 것을 집착하게 되고, 손이 오그라듭니다. 이렇게 욕심에 끌려 미혹될 때 시험에 넘어집니다. 15절을 봅시다. (ME)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욕심이 죄를 낳습니다. 죄가 자라서 불러오는 것은 죽음입니다. 외적으로 망하고 죽게도 하지만, 그 사람의 존재를 쓸모없게 만들어버립니다. 물질 욕심에 빠지면 한동안은 돈 버는 재미, 돈 모으는 재미가 쏠쏠할지 몰라도, 그 사람의 삶은 피폐해지고 결국 쇠잔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미혹에 속지 맙시다. 내 안에 있는 욕심이 나를 미혹합니다. ‘왜, 너 혼자 손해 보고 있어. 너도 네 인생이 있잔아~, 다른 사람 신경 쓸 새가 어딨어. 사람은 각자 살아가는 거야.’ 자기 욕심은, 돈 따위가 행복을 줄 것처럼 믿게 합니다. 하나님만 믿고 살다가는 내 인생, 내 가정, 내 꿈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러나, 속지 말아야 합니다. 17절 말씀을 봅시다. (형제)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옵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좋은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이로써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독생자의 그 피로 사신 우리를 하나님은 얼마나 사랑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내 삶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항상 공급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또 나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주셨습니다. 믿음의 동역자를 주셨고, 자녀들과 양들과 믿음 안에서 좋은 사람들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우리에게는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을 따라 우리를 낳으셨고, 말씀에 기초하여 새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첫 열매’가 되게 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첫 열매가 된다는 것은 이것이 시작이라는 의미입니다. 첫 열매를 보면 아 이제부터 이러한 열매가 맺히겠구나 기대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열매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려움 가운데도, 나누고 베푸는 믿음의 삶을 살면, 하나님의 복을 믿고 하나님이 채우실 것을 믿고 나누는 삶을 살면, 다른 사람들도 보고 배울 수 있습니다. 이방 양들도, 학생 양들도 그런 삶을 보고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복을 믿는 사람,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 이것이 퍼져 갈 것입니다. 이것이 야고보 선생님이 꿈꾸는 새로운 삶의 모습이요 방향입니다.

 우리 센터에는 여전히,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가운데도 믿음으로 살고, 말씀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귀하신 목자님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 분들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특히 엘리사벳 사모님을 존경합니다. 저는 평소에 센터에 거의 나오지 못하다가 주말에 센터에 나오는 데, 그 때마다 항상 사모님이, 센터에서 기도하는 모습, 섬기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부엌에서, 여러 개의 휴지통들 사이에서 청소하고 정리하고 음식을 하며 섬기시는 모습을 봅니다. 사모님을 볼 때마다 동역자들을 향한, 양들과 자녀를 향한 따뜻한 마음과 사랑을 느낍니다.

 또, 개인적으로 빌립 목자님과 유니스 사모님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이번에 목자님 병문안을 가는 데, 옛날 일이 생각났습니다. 과거 소망이를 하나님 나라로 먼저 보냈을 때 많은 목자님들이 저희 가정을 찾아오셨습니다. 어김없이 빌립 목자님과 유니스 사모님도 저희 가정을 찾아 오셔서 저희 가정의 슬픔을 공감해주고 위로해주셨습니다. 그 때 많은 동역자님들이 기억나지만, 빌립 목자님이 기도해 주시고 위로해 주신 일이 특별히 기억에 남습니다. 저는 그 사랑과 위로를 통해, 시험의 때에도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목자님은 이제 와서 자신이 보험을 안든 것을 후회하기도 하셨지만. 저는 목자님이 삶을 통하여 순수하게 사랑하고, 말씀으로 돕고 섬긴 수많은 믿음의 동역자들이 바로 목자님의 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드리는 작은 오병이어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목자님 가정에 필요한 물질을 온전히 채우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목자님이 병 낫기를 기도합니다. 온전히 건강을 회복할 때까지 우리가 사랑하고 돕고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아직 저는 섬김을 받는 데 익숙하고 나누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자기 욕심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복을 믿고 나누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믿음이 저와 저희 모임과 각자의 마음 가운데 싹트길 기도합니다. 자기 것을 꾸리고 가진 자를 대접하는 세상 속에서 물질보다 사람의 존재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꽃을 피우기를 기도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채우시고 넘치게 주실 것을 믿으며, 인내하고 열매 맺으며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를 소망합니다.

“시련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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