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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09년 야고보서 1강(1:1-27)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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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2,370회 작성일 09-08-0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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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야고보서 공부 제1강                                                                395
말씀: 야고보서 1:1-27
요절: 야고보서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새만금 방조제를 쌓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바다를 흙으로 메워서 땅을 만들고 길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덤프트럭으로 흙과 자갈을 갖다 부으면 조류가 휙 쓸고 지나가 버립니다. 그러나 여기에 커다란 시멘트 구조물을 던지고 또 흙을 갖다 부어 물을 막아 나갑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새만금간척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시련을 당할 때 우리의 수고가 헛되게 보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기도하고 사랑의 수고를 하고 소망 가운데 인내하면 반드시 선한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야고보서는 당시 예루살렘 감독으로 있던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여러 가지 핍박으로 흩어져 있던 성도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당시 성도들은 핍박으로 인해서 믿음에서 떠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또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고 하는 말씀을 곡해하여 믿음만 강조하고 구체적인 행위의 열매가 없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성도들에게 야고보 선생은 믿음의 인내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성도들의 합당한 생활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시련을 만날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배우고자 합니다. 

  첫째, 시험을 당할 때 기쁘게 여기라(1-4) : 2절을 보십시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우리는 이 세상을 살다보면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납니다. 우리 가운데 시련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믿음으로 살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는데 실제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시험을 볼 때마다 합격하고, 항상 건강하고, 하는 사업마다 잘 되고, 자녀들이 쑥쑥 잘 자라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살아도 문제는 있고 시련도 있습니다. 이렇게 시련을 당할 때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아프리카의 선교사님들은 40도가 넘는 날씨와 수돗물 전기불이 잘 들어오지 않는 환경에서 10년 20년 복음을 전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신수 센터에 있는 세 분의 목자님, 선교사님들은 복음을 위해서 가족과 떨어져서 몇 년씩 살기도 합니다. 이들에게 외로움은 큰 시련입니다. 어떤 사모님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좋지 않은 몸을 가지고 계속해서 일해야 하는 시련이 있습니다. 고3 학생들은 수능 준비를 하느라 피를 말리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잠 좀 실컷 자고 싶은데 매일매일 깨어서 공부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유사무엘 선교사는 에이즈 환자의 바늘에 찔리기도 하고, 말라리아 걸려 숨이 넘어가는 자녀의 모습을 눈물로 지켜보기도 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한 두 가지 시련이 아니라 여러 가지 시련을 당하는데 될 수 있으면 피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시련이 사라지도록 기도하라고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안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사람은 아프면 울고 시련을 당하면 우울해지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비범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는 우리가 시련을 당할 때 어떻게 기뻐할 수 있을까요? 시련의 의미를 알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3절을 보면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시련은 불순물을 제하고 정금과 같이 순결한 믿음을 갖게 합니다. 욥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사도 바울은 환난을 인내를 만들어 낸다고 했습니다(롬5:3). 우리는 시련을 거친 연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의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시련을 당한다고 해서 망할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다시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시련은 인내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우리는 기뻐해야 합니다. 인내는 무엇입니까?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하는 내면의 성품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는 시련을 당할 때 중도에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시련을 당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습니다. 시련의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품을 조각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겸손과 긍휼이 풍성한 것입니다. 또 거룩한 것입니다. 오래 참는 것이요 인내하는 것이요 온유한 것입니다. 우리가 시련을 당함으로 자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라고 깨닫게 됩니다. 나 자신은 참으로 허물도 많고 연약함도 많습니다. 그러나 시련을 통해서 질긴 사람이 됩니다. 마음이 강한 사람이 됩니다. 두려움에 맞서 싸우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시련을 잘 견뎌내면 하나님의 상급이 있습니다. 우리 믿음이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합니다(벧전1:7).

  오래전에 타임지에 실렸던 특집 기사입니다. 일단의 어린이들을 방에 들어가게 하고 한 가운데에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과자인 마쉬멜로우를 가져다놨습니다. 이것을 먹지 않고 2시간을 참는 아이에겐 더 많은 마쉬멜로우를 주겠다고 약속을 했고 4시간을 참는 어린이에겐 푸짐한 상품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실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마쉬멜로우에게서 눈을 돌렸습니다. 보면 먹고 싶으니까 벽을 쳐다보는 아이, 노래를 부르는 아이, 엎드려서 잠을 청하는 아이 별의별 아이들이 다 나왔습니다. 드디어 참지 못하고 뛰어가서 먹는 아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탈락자들이 속출하고 울고 신경질을 내고 이런 실험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아이들도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결국 소수의 아이들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4시간을 버텼습니다. 그런데 먹는 것 앞에서 인내한 아이들이 그러지 못한 아이들보다 EQ가 높았고 학업 성취도도 높았고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이 기사는 보여주었습니다. 결론은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우고 싶다면 자기 본성을 부인하며 인내하는 훈련을 교육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신앙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과 같아서 인내를 필요로 합니다.

  둘째, 시련을 당할 때 지혜를 구하십시오(5-18) : 우리는 시련을 만나면 생각이 많아지고  우왕좌왕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시련을 없애달라고 기도하기보다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시련을 당할 때에 어두운 생각, 슬픈 생각을 하기보다 새벽을 깨워 기도하고 철야 기도를 하면서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나무는 겨울이 오면 잎을 떨어뜨립니다. 그리고 그 추운 겨울을 견딥니다. 그러면 어느새 봄이 돌아옵니다. 터널은 어둡지만 끝이 있습니다. 시련의 때에 우리는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화려한 것들, 없어도 되는 것들을, 허세를 부리는 마음 등을 털어 내야 합니다. 단순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지혜가 있을 때 시련을 복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시련의 의미를 깨닫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이 계속 시련을 당하는데 깨닫지 못하면 어리석은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시련을 극복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배울 것이 있지만 실패한 사람들의 문제를 나도 겪을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배우면 더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간접 경험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우리는 시련을 이길 지혜를 구할 때 믿음으로 구하고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십니다. 우리는 문제에 직면하고 시련을 당할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많이 알고 있는 사람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기보다는 튕기고 자기를 세우기를 원합니다. 또 이것도 모르느냐면서 핀잔을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누구라도 가까이 갈 수 있는 상담자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때 부딪치는 상황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지식은 많은데 지혜가 부족하다고 합니다. 생각은 많이 하지만 어리석게 행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인간의 한계를 깊이 인정하고 하나님께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시련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얻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의 영광, 물질적인 복, 열매는 사실 작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나를 아는 것이 값지고 보배로운 것입니다. 우리가 시련의 때에 의심하고 두려워하고 불평하기보다 믿음으로 구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기를 바랍니다. 어려울 때 그 사람의 본성이 다 드러납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의 온전하심에 이르기까지 자라기를 기도합니다.

  시련의 때에는 하나님의 길과 세상의 길 사이에서 의심하게 됩니다. 의심한다는 말은 분리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심리적으로 두 마음을 품어 분리된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과 세상 양쪽에서 저울질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의심하는 자는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시련을 만날 때에 하나님을 믿고 끝까지 간구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지혜를 덧입어야 합니다. 시련을 복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시험을 받을 때에 우리는 자기 비하에 빠지기 쉽습니다.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서 문제를 당당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비굴해 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선생은 권면합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9-11).” 여기서 낮은 자는 가난한 자를 말합니다. 가난한 자는 영적으로 자신이 얼마나 부요한지 자랑해야 합니다. 자기의 높음을 자랑해야 합니다. 주눅이 들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감을 갖고 시련을 대해야 합니다. 반대로 부한 자는 낮아짐을 자랑해야 합니다. 세상 것들은 금방 지나가버리기 때문입니다. 시련의 때에 돈이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돈이 사랑을 대신해 줄 수는 없습니다. 돈이 생명을 연장시킬 수 없습니다. 돈이 가정의 따스함을 대신 할 수 없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에게 주어지는 복이 무엇입니까? 12절을 보십시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시험을 참은 결과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됩니다. 말세 지말에 시련이 많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상급을 주십니다. 시험을 받을 당시는 마음이 힘듭니다. 고통스럽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나를 시험하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십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주식에 투자를 했습니다. 경제가 곤두박질치면서 주식이 반토막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왜 이렇게 궁핍하게 만드셨느냐고 원망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힘들게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자기 욕심에 끌려서 그런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힘들게 만드신 것이라는 사탄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대신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7,18절을 보십시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좋은 은사와 선물을 계속해서 내려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 여름에 장대비를 내리시고 강렬한 태양 빛을 비추심으로 초목이 왕성하게 자라도록 하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과 성령과 신령한 은사를 내려주셔서 시련을 이기고 번성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자격 없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가정과 자녀와 공부하고 일할 수 있는 건강과 지혜를 주셨습니다. 자기 성취를 할 수 있는 직장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즐거워 할 수 있는 일, 기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우리로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가운데 우리를 풍성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들과 온전한 선물들이 무엇인지 헤아려 보십시오. 특히 시련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신령한 선물들에 더욱 풍성하게 하십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 아멘.

  셋째, 말씀을 속히 듣고 행하라(19-27) : 19절을 보십시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 개의 눈과 두 개의 귀를 주시고 반면에 한 개의 입을 주셨습니다. 이는 보고 듣는 일을 말하는 것보다 속히 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또 한 입으로 두 소리를 못하게 하심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듣는 것이 매우 부족하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또 고집이 세기로 이름이 나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잘 싸우고 감정을 드러냅니다. 성격이 대체로 매우 급합니다. 빨리 빨리 문화는 세계가 다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듣기보다 자기 말을 하기를 좋아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은 건성으로 듣습니다. 잘 듣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오해는 충분히 듣지 않기 때문에 생깁니다. 우리가 한 사람의 말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들으면 공감이 생깁니다. 그리고 감정이입이 됩니다. 그의 마음까지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가 말하지 않는 것까지 정말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않은 것까지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솔로몬은 왕으로 등극하고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솔로몬은 듣는 마음을 주시도록 구했습니다(왕상 3:9). 제대로 들어야 지혜로운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들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하는 말을 깊이 들어 시련의 때를 잘 견디어 내기를 기도합니다. 시련을 잘 이기고 하나님의 상급을 받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우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성내는 것을 속히 하게 되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할 확률이 높습니다. 뿐만 아니라 화를 내면 혈압이 올라가고, 눈이 나빠지고, 심장과 신장도 안 좋아지고, 위도 안 좋아집니다. 사람이 화를 내면 여유가 없어집니다. 마음에 평안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인간관계가 파괴됩니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가 듣는 일에 속히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러나 듣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22-25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으면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됩니다. 말씀을 듣고 행할 때 온전하게 됩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으면 거울을 보고 얼굴에 무엇이 붙었는지 확인하고 떼지 않는 사람과 같습니다. 얼굴에 밥풀이 붙었는데 그것을 보고 떼지 않을 사람은 흥부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함으로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아야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말씀을 행함으로 이루어야 할 경건은 무엇입니까? 경건한 사람은 자기 혀를 재갈 물려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을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이 경건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날 때 인내해야 합니다. 시험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위로부터 계속해서 부어주십니다.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인내의 복을 받고 믿음의 승리를 체험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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