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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2015년 신13강(26:16-28:68) 축복과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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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14회 작성일 15-04-26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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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신명기 13 강
말씀 | 신명기 26:16-28:68
요절 | 신명기 27:12,13

축복과 저주
“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에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 산에 서고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서고”

  우리는 이제까지 십계명의 세부 사항을 공부했습니다. 26:16-30장은 언약 체결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이 언약이 모압 땅에서 체결되어서 모압 언약이라고 합니다. 이는 시내산 언약을 2세대들에게 다시 말씀하시며 언약을 체결하시는 내용입니다. 26장은 이스라엘과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27장은 언약 체결 지침을 말하고 있고 28장은 언약 준수에 따른 축복과 저주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명기 28장을 축복의 장이라고 부르는데 사실은 축복보다 저주하는 내용이 네 배가 더 많습니다. 그 저주도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미움 사이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이 있기에 미움이 있는 것입니다. 정말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무관심한 것입니다. 로마서를 볼 때 하나님의 심판은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소망이 있고 돌이키고자 하기 때문에 저주하는 것입니다. 저주를 받을 때 그 의미를 깊이 깨닫고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징계를 받으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26:16-30).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이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 하여 지켜 행하라고 하십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네가 오늘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또 그 도를 행하고 그의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 그의 소리를 들으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근거는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나와 인격적인 관계성이 맺어져 있어야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말에 순종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인정할 때 그의 도를 행할 수 있습니다. 도를 행한다는 말은  “길을 걸어가다”라는 뜻인데 한 방향을 가지고 인생 전체를 걸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규례와 법도 중 하나를 하고 안하고가 아니라 내 인생 전체가 어떤 길을 걸어가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로마서에서도 우리가 추구하는 인생의 목적에 따라서 그 사람을 심판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의 도를 행하려면 그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때 그때 주시는 말씀, 그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필요한 때 소리로 말씀하시니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잠언 8:1-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그가 길 가의 높은 곳과 네거리에 서며 성문 곁과 문 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불러 이르되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부르며 내가 인자들에게 소리를 높이노라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명철할지니라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마음이 밝을지니라 너희는 들을지어다 내가 가장 선한 것을 말하리라 내 입술을 열어 정직을 내리라.” 하나님께서는 주의 종들을 보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폭풍 같은 소리로도 말씀하시지만 세미한 음성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리를 주의해서 들어야 합니다. 지나가는 것 같은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고난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확성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가 더 쉽습니다. 그러나 진정 지혜로운 사람은 축복의 때에, 평화로운 때에 세미하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소리를 듣고 그 말씀을 지킵니다. 그것이 생명을 얻고 복을 받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백성은 어떤 백성입니까? 18,1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 너를 그의 보배로운 백성이 되게 하시고 그의 모든 명령을 지키라 확언하셨느니라 그런즉 여호와께서 너를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사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시고 그가 말씀하신 대로 너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계명을 지키기에 앞서서 먼저 나와 하나님의 관계가 분명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보배로운 백성이요,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신 여호와의 성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사실은 특권이요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언약관계의 출발은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대한 사랑 고백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즉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먼저 선행되어야 규례와 법도를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규례와 법도만 들이대면 사무적이 되고 의무감에서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우리에게 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말씀은 순종하기에 무거운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의 의식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이 분명할 때 그의 말씀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는데 이제까지 노예로 살아왔기 때문에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개인의 성향을 중시하는 시대를 살다보니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내 스타일대도 사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삶에 행복이 없습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우리의 본성대로 사는 것은 계속되는 목마름만 가져옵니다. 목마름을 해갈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풍성한 생명이 있습니다.

  둘째, 언약 체결 지침(27장).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넌 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로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고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위에 기록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위에 새기면서 마음에 새길 수 있습니다. 또한 바위에 말씀을 새겨 놓음으로서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오늘날로 하면 먼저 성경을 편찬하여 배포하고 공부를 시키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기초를 하나님의 말씀 위에 두도록 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행동은 생각에서 나옵니다. 그러니 생각의 거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게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가치관, 인생관, 결혼관, 역사관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 순종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삶에 즐거움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 하나님과 언약 관계 안에서 즐겁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이 요단을 건넌 후 축복과 저주 선포를 위해 열 두 지파를 여섯으로 나누어서 에발 산과 그리심 산에 세우라고 하십니다. 레위 사람이 큰 소리로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전하면 모든 백성은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그런데 레위 사람들은 먼저 저주를 선포했습니다. 죄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말해준 것입니다. 우상을 만들고 세우는 자, 부모를 경홀히 하는 자,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 맹인의 길을 잃게 하는 자, 약한 자들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 간음하는 자, 살인자, 뇌물을 받는 자,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를 저주합니다. 그러면 백성들은 모두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시각적, 청각적인 교육 효과가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한 번 해 볼까요? 제가 말씀을 선포할 때 여러분은 아멘으로 화답하면 되겠습니다. 15-26절입니다. 여기에 12개의 저주가 나오는데 다 은밀한 가운데 행해지는 죄들입니다. 그들이 이제까지 죄라고 생각하지 않고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행동했던 것들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축복의 땅에 들어가기 때문에 들뜨기 쉬운데 저주를 선포함으로 죄를 예방하고자 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고 저절로 축복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축복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때 옵니다. 그 관계를 깨뜨리면 축복의 땅에 들어가서 저주를 받습니다. 저주의 선포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현실을 자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만큼 저주의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러므로 긴장하고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클수록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고전10:12).
 
  특히 첫째 조항과 11번째 조항에 은밀히(secretly)란 말이 나옵니다. 우상을 은밀히 세우는 자, 은밀히 사람을 죽이는 자 즉 암살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은밀히 죄를 짓는 자는 내가 범하는 죄를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은밀한 죄로 인해 저주가 옵니다. 은밀히 죄 짓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도리어 나의 은밀한 삶 속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저주가 떠나고 복이 선포될 것입니다(마태복음 6:1-18).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은밀히 말씀을 읽고 은밀히 기도하고 은밀히 약한 사람을 돕는다면, 언약 관계에 풍성한 비밀을 가진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약자에 대한 긍휼과 사랑이 가득한 축복의 공동체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축복을 받을 것인가 저주를 받을 것인가는 나의 은밀한 삶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정치권에 불고 있는 사정 한파는 사실 은밀히 이루어진 일들입니다. 그러나 은밀히 주고 받은 뇌물로 인해서 명망있는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은밀한 가운데서도 정직하고 의롭게 산 사람들은 떳떳할 것입니다. 결국 남이 보지 않는 가운데 의롭게 살고 정직하게 산 사람들은 신뢰받고 큰 일을 맡게 됩니다.

  셋째, 축복과 저주(28장). 28장은 유명한 ‘축복과 저주’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문에는 짧은 축복(1-14)과 긴 저주(15-68)가 나옵니다. 축복이 14절, 저주가 54절로서 저주가 축복의 네 배나 됩니다. 하나님은 그 언약 관계를 통해 이스라엘을 넘치게 축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어디를 가든지 복이 따라오기를 원하십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1-6).”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면 그들의 존재가 복 자체(3,6)가 됩니다.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됩니다. 도시에서도, 들에서도 복을 받는다는 말은 오늘날로 하면 공업과 상업과 농업과 어업과 모든 서비스업이 복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물질적인 풍요가 있고 안보가 튼튼해서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사업이 번창할 뿐만 아니라 인구가 늘어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과 칭찬과 부러움을 받는 대상이 됩니다. 1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축복하는 목적이 나와 있습니다.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그들이 하는 모든 일에 복이 임하는 것을 보고 주변의 왕들이 두려워하여 평화조약을 체결한 것과 같습니다. 세상 말로 하면 운이 따르는 사람과 함께 하면 그 사람도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그와 함께 하고자 주변 사람들이 몰려들 것입니다.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12b-14).” 그 백성이  돈을 꾸어주는 힘 있는 나라가 되고, 세계에 대해서 지도력을 발휘하는 나라가 됩니다. 그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않고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언약 관계의 풍성함 속에 복을 누리는 생활입니다. 하나님도 이스라엘이 그와 바른 관계 속에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되시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주십니다. 심지어 자기 아들도 아끼지 않고 주셨습니다(롬 8:32).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저주가 옵니다. 성읍에서도, 들에서도, 그의 가족과 사업과 가축들도 저주를 받습니다.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습니다. 각종 질병에 들게 되고 하늘은 놋이 되고 땅은 철이 됩니다. 비대신 티끌과 모래가 땅에 덮입니다. 다른 나라의 침공을 받고 약해지고 포로가 됩니다. 미치는 것, 눈머는 것, 정신병에 걸리고 압제와 노략을 당하나 구원할 자가 없습니다. 형제가 자매와 약혼을 하나 다른 남자에게 여자를 빼앗깁니다. 집을 건축하나 거하지 못하고 소를 잡으나 먹지 못하고 목전에서 빼앗깁니다. 자녀를 다른 민족에게 빼앗기고 종일 생각하고 찾음으로 눈이 피곤하고 손에 힘이 없어집니다. 수고한 것을 알지 못하는 민족이 먹고 항상 압제와 학대를 당합니다. 그들이 이런 저주를 받음으로 당할 슬픔과 원통함이 어떠할까요? 미치고 환장할 노릇입니다(34).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포로가 되어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민족들의 놀림과 속담과 비방 거리가 됩니다. 거두는 것이 적고 자녀들은 포로가 됩니다. 이방인이 들어와서 자기 땅을 차지하고 그들을 다스리며 그들은 점점 낮아집니다. 항상 돈을 꾸게 되고 꼬리가 되어 결국 멸망하게 됩니다.

  우리가 28장을 해석할 때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축복과 저주를 순종과 불순종에 대한 기계적 응보로 보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자칫 재앙을 당한 사람을 향해 ‘신명기 28장에 의거해서 불순종에 따른 벌이다’라는 식으로 해석하면 욥의 친구들처럼 어리석은 상담자 될 것입니다. 또 재앙 당한 사람들이 이 말씀 앞에 절망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이 말씀은 ‘언약 관계’, 즉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뜨거운 사랑의 관계를 기초로 해석해야 합니다. 겉으로 볼 때 저주 목록이 너무 끔찍하고 심지어 이스라엘 역사에 실현된 사실에 비추어 이스라엘의 미래가 절망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저주의 말씀은 언약 취소를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이스라엘이 언약을 순종할 것을 호소하는 열정적인 요청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확실하게 예방주사를 놓으십니다. 그리고 이들이 정말 언약을 지키지 못할 것도 예견하시고 메시야를 대망하게 하십니다. 그들이 이를 나중에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오길 원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저주를 받는다고 끝난 상황이 아닙니다. 아직 돌아올 기회가 있고 언약 회복의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포로로 끌려가 다 상황 종료 된 것 같은데, 거기서도 언약이 회복됩니다(30장). 이로 볼 때 저주는 하나님의 불같은 사랑입니다. 무섭고 끔찍한 저주 말씀 속에 하나님의 뜨거운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그들도 하나님 사랑하기 바라는 그 타는 마음이 있습니다. “나는 네 하나님이다. 나에겐 너 밖에 없다. 그러니 너도 나에게 돌아와 나를 사랑한다고, 나밖에 없다고 말해다오.” 이렇게 타오르는 사랑의 마음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신명기에 기록된 저주는 언약 안에 타고 있는 하나님 사랑의 또 다른 면인 것입니다. 그 사랑이 이스라엘 역사 속에 흐르며, 오늘날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부어지고 있습니다. 저주 이야기 속에 절망과 두려움이 아니라 언약을 회복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을 우리도 영접하고 말씀을 사랑하며 지키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풍족할 때에 영적으로 안일해지기 쉽고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세상에 마음을 다 빼앗기기 쉽습니다. 47,48절을 보십시오.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부족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적군을 섬기게 될 것이니 그가 철 멍에를 네 목에 메워 마침내 너를 멸할 것이라.” 복을 받고 있을 때에, 모든 것이 풍족할 때에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복을 받다가 갑자기 무너질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늘의 별 같이 많아진 때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물질이 풍족한 때에 줄어든다고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풍족하다고 하나님을 버리고 불순종하면 갑자기 망해버릴 수 있습니다. 축복이나 저주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입니다. 저주도 사람의 노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영역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풍족할 때에 더욱 힘써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저주의 때에 이를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임을 깨닫고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를 뜨겁게 사랑하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복을 받고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귀히 쓰임 받는 종들이 많아지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우리 공동체를 세워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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