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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2015년 신7강(12:1-13:18)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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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98회 작성일 15-03-08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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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신명기 제 7 강 
말씀 | 신명기 12:1-13:18
요절 | 신명기 12:18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는 네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함께 그것을 먹고 또 네 손으로 수고한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되”

  신명기 12-26장은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규례와 법도가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줍니다. 즉 십계명의 각 계명을 하나씩 설명하는 각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1,2계명에 대한 해설입니다. 12장이 예배와 예배 장소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고 있고 13장은 하나님의 백성이 피해야 할 우상숭배 선동자에 대한 율법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핵심을 말하자면 하나님만을 최고의 자리에 모시고 살라는 것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네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셔서 차지하게 하신 땅에서 너희가 평생에 지켜 행할 규례와 법도는 이러하니라.”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복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은 지금부터 선포될 율법과 규례를 잘 지키는 것입니다. 율법과 규례는 그 땅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얻고 누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첫째, 우상 숭배의 흔적을 파하고 하나님 중심의 새로운 제사 제도를 확립해야 합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쫓아낼 민족들이 그들의 신들을 섬기는 곳은 높은 산이든지 작은 산이든지 푸른 나무 아래든지를 막론하고 그 모든 곳을 너희가 마땅히 파멸하며 그 제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또 그 조각한 신상들을 찍어 그 이름을 그 곳에서 멸하라.” 가나안 사람들은 높은 산과 언덕에서 신들을 숭배했는데, 높은 산들에 신들이 산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신들의 거처지 혹은 그와 인접한 곳에서 제사를 지내거나 예배를 하면 더 효과가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그들은 무성한 나무 아래를 성지로 간주하기도 했습니다. 큰 나무가 자라기에는 척박한 환경에서, 싱그러움을 간직한 거목은 신들의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다고 여겨져 다산과 풍요로움의 상징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예배 처소에는 제단과 주상, 아세라 상, 신상들이 있었습니다. 제단은 곡물, 짐승, 술, 향 등을 신들에게 불살라 바치는 곳이었습니다. 대체로 돌이나 흙을 사용하여 만들었고 윗면은 귀금속으로 덮여 있거나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주상은 다듬거나 다듬지 않은 돌기둥을 뜻하는데 이것들은 신들을 상징하거나 신들의 거처지로 여겨졌습니다. 아세라 상은 가나안 사람들이 숭배하던 여신의 이름이며 가장 능력 있는 신이었던 바알의 아내로 여겨졌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가나안 종교의 모든 것을 확실하게 파괴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그들의 생존과 연관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대신 우상으로 섬겼던 것들을 완전히 없애야 합니다. 하나님 대신 미신을 믿고 점을 치거나 부적을 붙였던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또 물질, 출세, 쾌락, 사람, 자기 자신을 우상으로 섬겼다면 이것들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중심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5-7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는 너희가 그처럼 행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제물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의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소와 양의 처음 난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하나님의 백성은 가나안 사람이 자기 신들을 숭배하는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섬겨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섬겨야 합니까? 주께서 정하신 곳을 찾아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그 장소를 정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정하신 그곳에서 주께 나아가야 합니다. 나아간다는 것은 곧 예배를 드린다는 뜻입니다. 출애굽기 20:24절에 의하면 하나님이 그곳을 정하실 때까지는 곳곳에서 예배를 드려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배 처는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성전이 완성되기 전에는 성막과 법궤가 이곳 저곳으로 이동해 다녔습니다. 언제든 법궤와 성막이 있는 곳이 바로 하나님이 인정하신 유일한 예배 장소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곳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 어려운 요구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이들을 염두에 두고 이스라엘 남자들은 매년 최소한 세 번 성전으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그때가 되기 전까지는 이스라엘 영토 여러 곳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예배 장소를 묻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산(그림심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신 참된 예배는 예배의 대상과 자세가 중요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오늘날 모든 신자들이 어떤 특정한 한 장소에서만 예배를 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예배의 통일성과 질서를 위해 하나님이 택하신 장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입니다. 교회에 모이지 않고 각 사람들이 흩어져 예배를 드린다면 나름대로 되기 쉬울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신앙의 일치나 질서가 깨어질 수 있습니다. 수 천, 수만 개의 나름대로 예배 모습이 나오고 그러다가 이방 종교와 흡사한 것도 나올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하나 됨을 원하십니다. 교회 공동체에서의 예배는 하나 됨이 중요합니다. 예배의 타락을 막기 위해서도 이것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이 교회, 저 교회 돌아다니며 예배를 드리고,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추구하고 헌신하지 않는 신자들이 있는데 이는 옳지 않습니다. 또 주일 예배를 빠지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텔레비전으로 예배를 대체하고자 하는 신자들이 있고, 편리를 위해서 인터넷 예배, 비디오 예배를 드리는 것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예배를 빠지기 때문에 비디오 예배를 드리지만 그렇게 하지 않도록 힘을 써야겠습니다.

  7절에서 하나님은 백성이 드리는 예물을 귀하게 여기시며 그들이 드린 예물의 일부를 주님 앞에서 먹으며 하나님과 자신들의 특별한 관계를 기념하도록 하셨습니다. 주의 백성이 주님 앞에서 즐거워한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것들이 만족스럽게 성취되어 가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면서 사는 주의 백성은 신앙 고백의 일원으로 주님께 끊임없이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또한 이 땅에서 우리가 수고하고 그 수고로 얻은 수익의 일부를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이유 중 한 가지는 이 일로 인해 우리가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풍요로움을 즐기는 입장에서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입으로는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축복이라고 시인하면서도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을 아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꺼이 드리는 자를 기뻐하십니다(고후9: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

  미국 어느 한 마을에 낡은 교회 건물이 있었습니다. 교회도 낡았지만 진입로가 울퉁불퉁해서 비만 오면 물이 괴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진입로에 벽돌이 20장씩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 주에도 20장, 그 다음 주에도 20장. 나중에 알고 보니 12살 먹은 존 워너메이커라는 소년이 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벽돌공장에서 일하는 소년이었습니다. 그는 교회를 사랑했는데 교회가 비만 오면 진입로가 질척거리자 자신이 받은 급여를 벽돌로 바꾸어서 스스로 진입로에 벽돌을 깐 것입니다. 이 소식이 알려졌고 감동을 받은 교회 성도들이 헌금을 해서 진입로뿐만 아니라 교회 전체를 새로 건축하는 은혜로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처럼 하나님께 드리기를 사모한 존 워너메이커는 그 후에도 항상 헌금하는 것을 즐거워했습니다. 그는 YMCA의 총재가 되어 세계 각 곳에 수 많은 교회를 세웠고, 우리나라 YMCA 건물도 워너 메이커가 기증한 벽돌로 건축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베다니 주일학교를 세워서 67년 동안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셔서 백화점 왕이요, 체신부 장관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드리기를 기뻐했더니 상상할 수 없을만큼 하나님이 축복하신 것입니다.

  또한 어떤 그리스도인은 모든 일에 있어서 심각해야 하며, 하나님 외에 그 어떠한 것도 즐거워하거나 기뻐해서는 안된다는 자세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신앙생활은 져야 될 짐이며 견뎌 내야 하는 고통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물질 때문에 즐거워하는 것을 금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빌3:1a).”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기쁨은 믿음 생활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것입니다. 희락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찬양하며 하나님 앞에서 기쁨과 감사를 누리는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기쁨을 회복하여 주시며 즐거움을 나누도록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모세는 이미 언급한 다양한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짐승을 제물로 잡는 것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곳에서만 해야 하지만 단순히 고기를 얻기 위해서 가축을 도살하는 것은 각자 사는 성읍에서 할 수 있다고 합니다(15,20-21). 이스라엘이 누리는 모든 것을 축복해 주신 하나님은 이들에게 10%만 “그곳”에서 즐기도록 하고, 나머지 90%는 아무 곳에서나 자유롭게 즐길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내려 주신 축복의 100%를 즐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만 명심해야 할 것은 피는 먹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피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피는 땅에 흘려버려야 합니다. 이는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경의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짐승이나 사람의 생명에 대하여 무한정한 권한은 가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둘째, 우상 숭배 선동자에 대한 율법. 믿음의 공동체에게 외부적인 요인들보다는 내부적인 요인들이 더 큰 위협이 됩니다. 13장에는 우상숭배를 부추기는 내부적인 요소들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3:1-3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선지자와 꿈꾸는 자들은 소위 ‘가장 기도를 많이 하고 가장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표적과 기사를 행하면서 이것이 바로 자기들의 주장이 진실임을 입증하는 것인 양 떠들어 댑니다. 그들의 주장은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섬기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거짓 선지자가 어떤 이적을 행하더라도 그의 모든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았음을 입증합니다. 표적과 선행은 결코 그들이 선포하는 메시지의 진실성을 입증할 수 없습니다. 이적과 은사가 기독교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닙니다. 회교도와 스님, 그리고 힌두교도와 아프리카 무당도 방언을 하고 치유 사역을 합니다. 영성은 성령의 은사가 아니라 열매로 판단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일을 허락하실까요? 왜 갑자기 예언자나 은사를 받았다는 자들이 이적을 동반하며 하나님께 반역하도록 종용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주 하나님께서 우리가 정말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알고자 하셔서 시험해 보시는 것입니다(6:5).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느냐인 것입니다. 이 말씀은 또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주 매력적인 가르침으로 성도들을 설득하려고 하는데 그가 가르치는 것이 성경적인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 가장 기본적으로 해 볼 수 있는 테스트의 기준은 바로 이것입니다. “저 사람의 말이 모든 것을 바쳐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데 도움이 되는가?” 만일 조그마한 의구심이 든다면 미련없이 버려야 합니다. 4절은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게 하는지가 판단 기준이 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며 그를 경외하며 그의 명령을 지키며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를 의지하며” “따르라, 경외하라, 지키라, 청종하라, 섬기라, 의지하라” 6개의 동사를 사용하여 총체적으로 여호와 하나님만을 사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이단들이 교회에 침투하여 신자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신천지라는 이단은 기성교회에 자기 신도들을 파송하여 그곳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섬겨서 교회의 인정을 받고 성도들의 존경을 받으면 조금씩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는 가르침으로 교회에서 성도들을 빼돌리라고 합니다. 예언자가 하는 말이 누가봐도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이 지시하는 것과 약간 다르다고 생각이 들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성경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성경에서뿐만 아니라 고대 근동 문화에서도 기록된 문서가 구두로 선포된 메시지보다 더 권위가 있었습니다. 헷 족속의 계약을 보면 이런 예가 있다고 합니다. “종주가 종속자에게 지시하기를 만일 종주가 보낸 사절의 말이 함께 보낸 문서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을 경우, 문서가 정확한 것이니 사절의 말을 믿지 말고 문서의 내용을 따르라.”

  거짓이 드러난 선지자나 은사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그들을 처형하여 이런 악을 뿌리채 뽑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런 선지자나 꿈 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에게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게 하려 하며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령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5).”
 
  6-11절은 친족이나 친구가 우상숭배를 부추길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장 은밀한 곳에서 가장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우상 숭배를 하자고 은밀하게 속삭일 때 물리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친족과의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죄를 추궁하기보다 묵인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이런 친족관계마저도 하나님과의 언약보다 우선시 될 수는 없습니다. 모세는 그들이 다른 신들을 섬기자고 부추길 때 그를 따르지 말며 듣지 말며 긍휼히 여기지 말며 애석히 여기지 말며 숨기지 말고 너는 용서 없이 그를 죽이라고 합니다. 예수님도 가족관계보다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동생들이 찾아 왔을 때 그는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막3:33-35)”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나 본문이 반 가족적인 가치관을 제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가족과 친구가 가장 교묘하고 은밀한 우상숭배의 근원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자녀들을 포함하여 친족들의 우상숭배의 죄에 대해서 너무나 관대해진 것 같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이해심이 깊어 보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우리의 가족과 친족들의 구원을 위해서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12-18절은 한 성읍 전체가 우상을 숭배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주하는 성읍에 어떤 불량배가 일어나서 그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섬기자 한다면 자세히 묻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온 도시를 설득할 정도의 영향력과 언어 능력을 지닌 사람들은 종교 지도자들, 사회 지도자들, 성읍의 유지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량배라는 표현을 볼 때 사회에서 좋은 일로는 인정받지 못한 자들일 수 있습니다. 그들로 인해서 도시 전체가 우상숭배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만일 이런 가증한 일을 성읍 전체에서 행하고 있다면 마땅히 그 성읍 주민을 칼날로 죽이고 그 성읍과 그 가운데 거주하는 모든 것과 그 가축을 칼날로 진멸하고 또 그 속에서 빼앗아 차지한 물건을 다 거리에 모아 놓고 그 성읍과 그 탈취물 전부를 불살라 하나님께 드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성읍은 영구히 폐허가 되어 다시는 건축되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진노를 그치시고 그를 긍휼히 여기시며 자비를 더하사 그들로 번성하게 하실 것입니다. 동족이 죽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아픔을 딛고 순종하여 진멸할 때 번성을 약속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을 최고 자리에 모시고 살라고 합니다. 이것을 방해하는 세력을 철저하게 제거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만을 섬기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상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대적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외부의 적, 내부의 적과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이 순수하기를 원하십니다. 만약 우리에게 믿음을 버리도록 핍박하는 세력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핍박을 받더라도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강요로 많은 분들이 핍박을 받았습니다. 중국은 문화혁명으로 많은 신자들이 핍박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물질주의와 세속주의의 강한 영향으로 신앙이 약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 분위기와 맞서 믿음을 지키며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는 기쁨을 더욱 풍성히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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