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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2015년 신4강(7,8장) 여호와를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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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96회 작성일 15-02-08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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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신명기 4 강
말씀 | 신명기 7,8장
요절 | 신명기 8:11
여호와를 잊지 말라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우리는 지난 주 풍요의 덫에 대해서 잠깐 언급을 했습니다. 오늘은 풍요의 덫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사람이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찾지만 그런 문제들이 해결되고 부요해지면 하나님을 잊기 쉽습니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일만 달러를 넘어서면 신앙을 잃어버리고 세속화된다는 보고서들이 많이 있습니다. 선진국들이 이미 겪었고 우리도 겪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전체적인 상황은 풍요의 덫에 걸려 넘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풍요 속에서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더 발전해 갈 수 있을까요? 이런 고민을 하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여호와께서 택하신 민족(7:1-11).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될 때 그 땅의 백성들을 진멸해야 합니다.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말고 그들과 혼인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을 진멸하면 혼인할 것도 없고 우상 숭배의 문제로 고민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들을 진멸하지 못하고 결국 우상 숭배와 그들과 혼인을 하고 멸망하게 됩니다. 가나안 백성을 정복한 후에 진멸하라는 말씀은 잔혹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그들을 진멸하지 않았을 때 결국은 그들이 죽고 멸망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은 사람의 인정과 생각으로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인들과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이방인들이 그들을 유혹하여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갑자기 그들을 멸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심판하실 때 그들도 함께 멸망을 당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슈틀리케 대표팀 축구 감독은 인터뷰 마지막에 여 기자에게 마이크를 주면서 집안에서 최종 결정권자는 자기 아내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결국 여자의 말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아내의 신앙과 가치관이 중요합니다.
 
  6,7절을 보십시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가나안 일곱 족속을 진멸하고 그들과 관계를 맺지 말고 우상을 없애야 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떤 민족입니까? 하나님의 성민입니다. ‘성민’은 ‘구별된 민족’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이 지상 만민 중에서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신 민족입니다. 죄로 가득한 세상에서 그들을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고자(출19:5) 택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가나안 땅과 같은 세상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입니다(벧전2:9). 이런 존재로서 살려면 죄악된 세상과 구별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때마다 내 안에 들어오는 이 시대의 우상들인 물질주의, 쾌락주의, 인본주의 등 세상 문화를 헐고 깨뜨리고 찍어내는 영적 투쟁을 해야 합니다. 시대의 분위기가 연애문화, 쾌락문화이기 때문에 중심을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 생각하고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에 대해서 열등감이나 소외감을 가질 것이 아니라 자부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수효가 적습니다. 다수의 원칙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여론을 따라 살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미국에서 유대인들은 소수이지만 그 사회를 이끌고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이 세상에서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 때 이 사회의 문화를 이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과 언약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시오, 그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십니다. 반대로 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십니다. 그런즉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야 합니다. 이는 구체적으로 십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는 십계명을 지키는 백성,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백성을 뜻합니다. 선교는 왜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백성을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제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것도 몸집을 불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 전도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가서 그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그 다음에 전도하고 선교를 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킬 때 받는 축복(12-8:10). 본문은 하나님의 신실성과 인간의 불성실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데 왜 사람들은 우상을 섬길까요? 우상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신랑 되신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것은 영적인 외도인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변함이 없는데 인간의 마음은 왜 변할까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탐심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교만해졌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역사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어떤 축복을 주십니까? 13-15절을 보십시오. “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를 번성하게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하게 하시리니 네가 복을 받음이 만민보다 훨씬 더하여 너희 중의 남녀와 너희의 짐승의 암수에 생육하지 못함이 없을 것이며 여호와께서 또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 하사 너희가 아는 애굽의 악질에 걸리지 않게 하시고 너를 미워하는 모든 자에게 걸리게 하실 것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때 계명 자체 내에 사람을 살리는 요소가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단순히 법을 잘 지켰기 때문에 복을 받는 것인가요? 예를 들어 우리는 욕심을 내야 복을 받을 것 같은데 탐내지 않아서 복을 받는 것인가요? 사실 욕심은 모든 죄악의 근원입니다. 욕심 때문에 복을 받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은 동시에 타락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욕심을 내서 복을 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섬김으로 복을 받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십계명에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말씀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보이지 않는 신을 섬기려면 생각을 해야 합니다. 생각을 하다보면 지혜와 지식이 생기고 삶이 풍성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지키다보면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 사랑과 지혜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인격을 만나고 생명을 얻게 됩니다. 말씀을 지키는 가운데 사랑이 풍성해 집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번성하고 자손들을 어떻게 키울지를 알기 때문에 자손들이 잘 됩니다. 그가 머리와 손으로 일하는 모든 일들이 복을 받습니다. 물질, 자녀, 건강 등 그야말로 축복의 종합선물세트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신실한 삶을 살게 되면 만민보다 훨씬 뛰어나고 풍부하게 하십니다.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경건하게 사는 사람들은 모두 풍요로워야 하며 만약 궁핍하게 산다면 그가 신앙적으로 바로 서지 못한 결과라고 말해야 합니까?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이 성도들의 삶에 실제적이고 물리적으로 임하는 면을 강조합니다. 또한 건강과 물질적인 축복이 믿음과 순종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못 된다는 점도 선언합니다. 시편 73편 기자는 자신의 시대에 악이 성행하고 악인이 성공하는 반면 의인이 고통 속에 나날들을 보내며 하나님의 언약은 어떤 효력도 발휘하지 못한다고 탄식합니다. 선지자들은 남을 착취하고 악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과 분노를 선언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순종하기만 하면 무조건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건강을 누리게 된다는 맹목적인 ‘번영 복음’과 구약 신앙 사이에는 큰 괴리감이 존재합니다. 현대인들은 성공을 논하지만 구약 사람은 축복을 논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네게 복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주의 교훈으로 인도함을 받으며 살 때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실 것입니다.

  8:1절을 보십시오.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할 때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그곳에서 축복을 받고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려면 사십 년간 광야 길을 걷게 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광야 길을 걷게 하시며 낮추셨습니다. 낮춘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2,3,16)? 눌러버리는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은 내 힘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인데 비해서 낮추게 되면 내 힘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40년 동안의 허송세월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들을 훈련하셨습니다. 인간의 죄로 인하여 빚어진 일을 하나님은 양육의 기회로 삼으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 훈련의 목적은 이스라엘이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종종 광야를 지나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삶의 광야를 지나야 합니다. 광야생활은 사람을 성숙하게 하기도 하고 파괴하기도 합니다. 광야 생활은 이스라엘을 겸손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40년 동안 그들을 광야에서 방황하게 한 것은  그들을 시험하기 위한 것입니다. 시험한다는 것은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인격과 말의 진실성을 테스트하는 것입니다. 곧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킬 것인지를 알고자 한 것입니다. 계명은 지키려는 자가 마음에서부터 우러나는 의지를 바탕으로 노력해야 지속적으로 지켜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광야 시험을 통해서 그들의 마음이 어떠한가를 알고자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시험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얻기 원하셨던 교훈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이었습니다(3b).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그의 몸을 위하여 음식을 먹는 것보다 그들의 영혼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하는 것을 더 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권면입니다. 인간의 생사고락이 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40일 금식 후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을 때에 이 말씀으로 사탄의 시험을 이기셨던 일을 잘 알고 있습니다(마4:4). 예수님이 이 말씀을 인용하실 때에도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사람은 짐승이 아니기 때문에 배부름에서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습니다. 삶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려면 음식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그의 영광을 위해서 살 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40년간 광야생활의 훈련을 주신 동기는 사랑입니다. 부모가 아들을 꾸짖고 징계하는 것은 미워서 괴롭히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자식 잘 되라고, 자식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잘 지키는 자들이 되라고, 그래야 약속의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삶을 살게 될 것이기에 징계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채찍질하십니다(히12:6). 그러므로 우리도 고난의 때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해야 합니다. 고난을 받을 때에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훈련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히12:10).

  7-10절은 그들이 들어가게 될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할 때 얻게 될 축복에 대해서 다시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들어가 얻게 될 땅은 아름다운 땅입니다. 그가 먹을 때에 모자람이 없고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입니다. 그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릅니다. 밀과 보리와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입니다.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입니다. 그가 먹어서 배부르고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 233개국 중에서 경제 10위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지난 해만 해도 우리나라는 경상수지 흑자가 894억 달러로 사상 최대였습니다. 우리의 복지 수준이 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이지만 내는 세금도 최하위입니다. 미국의 선교사님들은 한국에 들어와서 생활하는 것을 보면 한국이 미국보다 생활수준이 낫다고 말합니다. 과거에 더 잘 사는 나라로 이민을 갔던 많은 분들이 이제는 돌아오고 있습니다. 역이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70년 동안 평화와 번영을 주셨습니다. 이런 축복의 때에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셋째, 축복의 때에 여호와를 잊지 말라(11-20). 이스라엘이 풍부하게 될 때에 무엇을 조심해야 합니까? 오늘 그들에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가야 합니다. 그들이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소와 양이 번성하며 은금이 증식되며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마음이 교만하여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세는 시간이 지나면 풍족함이 오히려 이스라엘의 신앙에 극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평온한 만족감은 기억상실증을 잉태하고, 기억상실증은 하나님 없이도 잘 살수 있다는 생각으로 발전하며,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필요성을 부인하게 됩니다. 주의 백성이 하나님을 잊고 산다는 것은 곧 그분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는 것은 그분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잊는 것은 단순히 기억하지 못하거나 얼이 빠진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아무리 많은 지식을 지녔다 해도 만일 그 지식이 하나님의 지속적이고 실제적인 임재에 대한 생생한 기억의 일부가 되지 못하고 단순한 정보 수준에 머문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의 삶에서 잊혀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께 예배와 제물을 꾸준히 드리고 심지어 매일 기도와 찬양을 드리면서도 그 분의 말씀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잊고 사는 것입니다. 말씀 따로, 생활 따로 산다면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기독교인 중에서 ‘창조론’을 진리로 믿는 사람은 10명 중 6명뿐이라고 합니다.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믿는 신자들은 줄었지만 이 세상 종말이 오면 절대자의 심판을 받는다는 확신은 30년 전에 비해서 10%나 줄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생활수준이나 소득 정도가 높아지면서  종교적 신념은 약화된다고 합니다.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먹고 살만해지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물질적 풍요함이 오히려 하나님과의 관계에 해가 된다면 가난한 자로 사는 것이 더 복된 일이 아닐까요?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오늘날 우리는 세상적인 풍요로움을 구하는 데 기도의 시간을 대부분 할애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먼저 기도해야 할 것은 부가 생기면 그 부를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지혜와 청사진을 달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하고 그 일을 이루어 나가야 진정으로 복된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일생동안 감당할 수 있는 세계 캠퍼스 복음화라는 위대한 사명이 있습니다. 이 사명을 위해서 살 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일생 한국과 세계 캠퍼스를 복음화하기 위해서 살 때 늘 젊은이의 스피릿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센터를 건축하고 난 후 이 센터 안에서 말씀 공부와 교육이 여러 모양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또한 선교사들을 훈련하고 파송하고 재교육하는 일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대학생들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지 연구하고 섬겨야 합니다. 특히 학생들이 졸업을 해도 취직이 어려운데 어려울 때 하나님께 나아와 부르짖으며 기도하도록 영적인 훈련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생기면 취직도 할 수 있습니다. 취직해서는 무엇을 할 것입니까? 평신도 목자로서 캠퍼스 양을 치고 섬겨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통일 한국, 제사장 나라의 꿈을 가져야 합니다. 통일이 되어 북한 사람들도 구원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것이 이 나라를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로 세우신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면서 살지만 내가 사는 인생의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가르치며 순종하는 삶 속에 진정한 만족과 의미가 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이런 착각이 진행되면 교만이 시야를 가려 더 이상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되고 하나님을 잊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죄악에서, 고난의 용광로에서 구원해 내신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이 구원의 은혜와 축복들을 누리는 것이 내가 능력이 있어서나 열심히 해서가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이 능력 주셨기 때문이요 예수님의 은혜로 인한 것임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1953년 전쟁이 끝나고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습니다. 필리핀이나 말레이시아를 동경하였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매순간 기도할 때마다, 양식을 쓸 때마다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 나를 도와주고 은혜를 베풀어 준 사람들을 끊임없이 기억하고 입은 은혜를 회상해야 합니다. 우리는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또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고마운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한 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계속해서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만일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반드시 멸망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북한을 똑바로 보고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풍요의 때에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힘써 감당해야겠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들과 양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면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물질로 통일 한국, 세계 선교를 위해서 헌신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축복의 때에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마음을 넓혀서 선교사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섬기며 파송하고 재교육하는 일에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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