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015년 신2강(신4:1-43) 음성으로 임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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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신명기 2강
말씀 | 신명기 4:1-43
요절 | 신명기 4:12
음성으로 임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되 음성뿐이므로 너희가 그 말소리만 듣고 형상은 보지 못하였느니라.”
지난 주 말씀에 이어서 오늘 말씀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출애굽 2세대들에게 계속 역사 공부를 시키십니다. 선배들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도록 도우십니다. 또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눈에 보이는 우상들에게 현혹되지 않도록 하나님은 음성으로 임하시는 분이심을 분명히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규례와 법도를 행함으로 큰 나라가 되라(1-8). 1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그것을 얻는 전술과 전략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야 할 것 같은데 하나님은 그의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그들이 살고 원하는 것을 얻게 된다고 약속하십니다. 규례는 원어로 몫, 한계, 영역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영역이 있습니다. 나와 너의 영역이 있습니다. 십계명에서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생명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것도 결혼한 사람의 영역에 들어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탐내지 말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영역을 탐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죄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영역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율법은 단순히 하지 말라는 금지 명령이 아니라 내 몫이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법도는 옳고 그름을 판결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은 절대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선악의 판단 주체가 될 때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이고 상대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을 더하거나 빼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편한대로 이기적인 목적으로 또는 숨은 의도를 가지고 왜곡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며 그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지킨다는 것은 붙들고 간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간직해야 내가 부딪치는 상황에서 올바른 판단을 하고 깊이 있게 통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 깊이 있을 때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의 말씀을 지킵니다. 딸이 엄마 사랑해 하면서 애교를 부립니다. 그러나 엄마가 심부름을 시켜도 행하지 않는다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의 말을 듣지 아니할 때 하나님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으십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한다면 그의 말을 깊이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의 관계성이 깊어집니다. 그 사람의 말을 잘 듣고 지킨다는 것은 그에 대한 존중과 존경을 나타냅니다. 내가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 아니한다면 무시 받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의 존재감이 깃털처럼 가볍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모멸감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의 말씀을 깊이 듣고 지킬 때 살게 하시며 참된 안식과 평강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목적을 분명히 가르치십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규례와 법도를 지킴으로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킴으로 그들이 생명을 얻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2:14).”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우리가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선한 일을 함으로서 신자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바알의 말을 들음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바알브올은 브올지방의 바알이란 뜻인데 모압 족속이 섬기던 다산의 신입니다. 그들이 싯딤에 머무를 동안 모압 여자들의 미인계에 넘어가 우상을 숭배하고 모압 여자들과 음행을 했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단순한 음행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 보다 바알의 말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우상에게 순종하고, 결국은 육신적이 됩니다. 창세기 6장에 보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자 자기 눈에 보기 좋은 여자마다 취하여 육체가 되었습니다. 집을 나간 탕자도 아버지 집을 떠나자 허랑방탕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자 하나님은 진노하셨고 염병으로 죽은 자가 2만 4천 명이나 되었습니다(민25:1-9). 오직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사람들은 다 생존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 때 어떤 복을 주십니까? 5,6절을 보십시오.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가 들어가서 기업으로 차지할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 때 이것이 우리의 지혜요 지식입니다. 오베드로 선교사님의 강의를 들어보면 우리나라는 샤머니즘과 불교 유교로 인해서 어두움에 처해 있었습니다. 사상이 어두우면 삶도 어둡습니다. 샤머니즘은 우리에게 무지몽매한 신과 비윤리적인 삶을 살게 했습니다. 불교는 음란과 부패로 고려를 망하게 했습니다. 유교는 사대주의와 당파싸움, 형식주의로 조선을 망하게 하였습니다. 그 이후에 우리는 기독교의 진리 위에 대한민국을 기도로 건국하였습니다. 북한은 주체사상이라는 우상숭배에 빠져서 가장 미천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기독교 진리에 기초한 나라를 이루어 작지만 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둔한 자로 깨달음을 줍니다. 미국이 청교도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나라로 세워졌을 때 큰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인본주의가 팽배하여 많은 불의를 행하고 힘이 약화되고 있습니다.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큰 나라가 힘을 가지고 불의를 행할 때, 남의 것을 힘으로 빼앗고 공정하지 않게 될 때 그 나라는 약해집니다. 진정으로 큰 나라는 수준 높은 문화가 있고 역사가 있고 윤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할 때 인애와 공의가 있는 나라가 됩니다. 참으로 큰 나라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암송하며 지키는 가정은 큰 가정이 됩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는 사람은 지혜와 지식을 얻게 되고 큰 사람,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성경을 수없이 읽고 힘써 순종하였을 때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7,8절을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일반적으로 큰 나라는 숫자, 영토, 국력, 영향력이 큰 나라인데 커지면 공정성이 떨어집니다. 오늘날은 크면 무조건 좋은 것이 됩니다. 양(羊)이 많으면 모든 것이 용납되고 적으면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큰 나라는 자기의 힘을 믿기보다 하나님을 믿고 그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나라입니다. 작은 자, 연약한 자를 위해서 배려할 줄 아는 나라입니다. 큰 나라이지만 상대방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큰 사람, 힘센 사람들이 약한 사람들을 존중하면 사람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됩니다. 하나님은 강자나 약자나 동일하게 다루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큰 나라가 되고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나라에 대해서 반복하십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나라를 세워야 하기 때문에 어떤 나라를 세울 것인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호와께서 ‘큰 나라’를 말씀하실 때 땅이 큰 나라, 군사력이 강한 나라,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를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소유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공의로운 규례와 법도를 가진 나라를 큰 나라로 보십니다. 하나님이 크시기 때문에 크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소통하게 되면 크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덧입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덧입습니다. 그래서 돈이 많고 권력을 가진 사람이 큰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을 지키는 사람, 영향력이 있는 사람, 도덕성이 있는 사람, 원대한 비전을 품은 사람이 진정으로 큰 사람입니다.
둘째, 음성으로 임하신 하나님(9-40).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백성을 모이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10절을 보십시오. “네가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에게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주어 그들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를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리라 하시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호렙 산 아래에 모이자 그 산에 불이 붙어 불길이 충천하고 어둠과 구름과 흑암이 덮였는데 여호와께서 불길 중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셨지만 음성뿐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소리만 듣고 형상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시오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언어 속에는 인격이 담겨 있습니다. 언어는 형상보다 상상력을 자극해서 진리를 풍성하게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세미한 음성으로 나타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형상으로 만들면 그 모양으로 한계를 짓게 됩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신데 형상을 만들면 유한 속에 갇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신비한 분이신데 규정이 됩니다. 형상은 패턴을 만듭니다. 패턴을 만들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형상을 만들면 획일화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어떤 형상도 갖고 계시지 않은, 따라서 어떤 형상으로도 조작될 수 없는 영적인 존재이십니다. 또한 택한 백성들에게 규례와 법도를 정해 지킬 것을 명령하시는 초월적인 존재이십니다. 여호와께서 음성으로만 자신을 나타내셨으므로 백성들은 목소리로 들은 말씀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바알주의는 눈으로 보는 신앙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신앙은 음성으로 듣는 신앙입니다. 보는 것은 제한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말씀을 읽고 깊이 묵상하고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 한없이 성장하고 진리가 풍성해집니다. 현대인은 비주얼한 것, 영상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음성으로 들린 말씀, 문자로 기록된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신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또 말은 정해지지 않습니다. 의미를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이나 십년 후나 똑 같으면 우상이 되기 쉽습니다. 물론 고정되면 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음성으로 말씀하심으로 우리가 깨어서 듣고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그들이 눈으로 본 그 일들을 잊어버리지 말고 가르치라고 하십니다. 사람은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기억을 해야 합니다. 잊어먹지 않도록 반복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과거의 일을 잊어버리면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게 됩니다. 말씀을 잊어버리면 하나님이 주시는 현재의 말씀과 방향을 무시하고 거역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부모의 영향력이 중요합니다. 신명기는 제사장이나 다른 종교지도자들이 아니라 부모들이 그들 자녀의 영적 교육을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스라엘이 어떤 형상으로든지 우상을 만들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호렙 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그들이 어떤 형상도 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부패하여 어떤 형상으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남자의 형상이든지, 여자의 형상이든지, 땅 위에 있는 어떤 짐승의 형상이든지, 하늘을 나는 날개 가진 어떤 새의 형상이든지, 땅 위에 기는 어떤 곤충의 형상이든지,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어족의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고 하십니다. 또 그리하여 그들이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해와 달과 별들, 하늘 위의 모든 천체 곧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배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우상을 만드는 이유는 자기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신앙생활이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이런 신앙생활은 부패하게 됩니다.
그들은 스스로 삼가서 여호와께서 그들과 세우신 언약을 잊지 말고 하나님께서 금하신 어떤 형상의 우상도 조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소멸하는 불이 되셔서 쓸모없이 된 그들을 태워서 없애실 것입니다. 그리고 금속을 정련하듯이 꼭 필요한 사람, 끝까지 범죄하지 않은 사람들만을 남기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독점적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절대적으로 사랑하십니다. 그러니 그들에게도 그런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또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우상에게 빼앗기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는 배타성을 가지셨습니다. 절대적이고 유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만 돌려야 마땅한 영광을 다른 신들에게 돌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절대로 하나님과 맺은 시내산 언약을 잊으면 안 됩니다. 특히 우상을 조각하여 하나님처럼 섬기는 죄에 빠지면 안 됩니다. 우상을 만들면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함으로 그의 노를 일으킬 것입니다. 또 그들이 얻는 땅에서 속히 망하게 될 것입니다. 거기서 그들의 날이 길지 못할 것입니다. 또 여호와께서 그들을 여러 민족 중에 흩으실 것입니다. 또 여러 민족 중에 그들의 남은 수가 많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들이 사람의 손으로 만든 바 보지도 못하며 듣지도 못하며 먹지도 못하며 냄새도 맡지 못하는 목석의 신들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포로 생활을 하면서 곤고하게 될 때에 그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될 것입니다.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게 됩니다. 이 모든 일로 그들이 환난을 당하다가 끝날에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그의 말씀을 청종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자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그 자녀들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멸하지 아니하시며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어떤 국민이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생존하였습니까?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습니까? 이는 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나타내심은 그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신명기에서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원 받은 사실을 약 20번 언급합니다. 모세는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미래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과거 역사에 대한 기억이 중요합니다. 우리도 개인적으로 과거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을 끊임없이 기억하고 감사할 때 두려움이 없어지고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며 목적지를 향해 전진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규례와 법도를 행함으로 큰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상을 숭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고 이웃과 후손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상을 강조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르치는 일에 더욱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을 공부하며 더욱 분명하고 풍성한 신앙생활을 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신명기 4:1-43
요절 | 신명기 4:12
음성으로 임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되 음성뿐이므로 너희가 그 말소리만 듣고 형상은 보지 못하였느니라.”
지난 주 말씀에 이어서 오늘 말씀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출애굽 2세대들에게 계속 역사 공부를 시키십니다. 선배들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도록 도우십니다. 또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눈에 보이는 우상들에게 현혹되지 않도록 하나님은 음성으로 임하시는 분이심을 분명히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규례와 법도를 행함으로 큰 나라가 되라(1-8). 1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그것을 얻는 전술과 전략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야 할 것 같은데 하나님은 그의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그들이 살고 원하는 것을 얻게 된다고 약속하십니다. 규례는 원어로 몫, 한계, 영역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영역이 있습니다. 나와 너의 영역이 있습니다. 십계명에서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생명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것도 결혼한 사람의 영역에 들어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탐내지 말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영역을 탐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죄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영역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율법은 단순히 하지 말라는 금지 명령이 아니라 내 몫이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법도는 옳고 그름을 판결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은 절대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선악의 판단 주체가 될 때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이고 상대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을 더하거나 빼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편한대로 이기적인 목적으로 또는 숨은 의도를 가지고 왜곡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며 그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지킨다는 것은 붙들고 간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간직해야 내가 부딪치는 상황에서 올바른 판단을 하고 깊이 있게 통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 깊이 있을 때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의 말씀을 지킵니다. 딸이 엄마 사랑해 하면서 애교를 부립니다. 그러나 엄마가 심부름을 시켜도 행하지 않는다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의 말을 듣지 아니할 때 하나님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으십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한다면 그의 말을 깊이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의 관계성이 깊어집니다. 그 사람의 말을 잘 듣고 지킨다는 것은 그에 대한 존중과 존경을 나타냅니다. 내가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 아니한다면 무시 받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의 존재감이 깃털처럼 가볍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모멸감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의 말씀을 깊이 듣고 지킬 때 살게 하시며 참된 안식과 평강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목적을 분명히 가르치십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규례와 법도를 지킴으로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킴으로 그들이 생명을 얻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2:14).”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우리가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선한 일을 함으로서 신자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바알의 말을 들음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바알브올은 브올지방의 바알이란 뜻인데 모압 족속이 섬기던 다산의 신입니다. 그들이 싯딤에 머무를 동안 모압 여자들의 미인계에 넘어가 우상을 숭배하고 모압 여자들과 음행을 했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단순한 음행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 보다 바알의 말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우상에게 순종하고, 결국은 육신적이 됩니다. 창세기 6장에 보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자 자기 눈에 보기 좋은 여자마다 취하여 육체가 되었습니다. 집을 나간 탕자도 아버지 집을 떠나자 허랑방탕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자 하나님은 진노하셨고 염병으로 죽은 자가 2만 4천 명이나 되었습니다(민25:1-9). 오직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사람들은 다 생존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 때 어떤 복을 주십니까? 5,6절을 보십시오.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가 들어가서 기업으로 차지할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 때 이것이 우리의 지혜요 지식입니다. 오베드로 선교사님의 강의를 들어보면 우리나라는 샤머니즘과 불교 유교로 인해서 어두움에 처해 있었습니다. 사상이 어두우면 삶도 어둡습니다. 샤머니즘은 우리에게 무지몽매한 신과 비윤리적인 삶을 살게 했습니다. 불교는 음란과 부패로 고려를 망하게 했습니다. 유교는 사대주의와 당파싸움, 형식주의로 조선을 망하게 하였습니다. 그 이후에 우리는 기독교의 진리 위에 대한민국을 기도로 건국하였습니다. 북한은 주체사상이라는 우상숭배에 빠져서 가장 미천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기독교 진리에 기초한 나라를 이루어 작지만 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둔한 자로 깨달음을 줍니다. 미국이 청교도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나라로 세워졌을 때 큰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인본주의가 팽배하여 많은 불의를 행하고 힘이 약화되고 있습니다.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큰 나라가 힘을 가지고 불의를 행할 때, 남의 것을 힘으로 빼앗고 공정하지 않게 될 때 그 나라는 약해집니다. 진정으로 큰 나라는 수준 높은 문화가 있고 역사가 있고 윤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할 때 인애와 공의가 있는 나라가 됩니다. 참으로 큰 나라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암송하며 지키는 가정은 큰 가정이 됩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는 사람은 지혜와 지식을 얻게 되고 큰 사람,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성경을 수없이 읽고 힘써 순종하였을 때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7,8절을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일반적으로 큰 나라는 숫자, 영토, 국력, 영향력이 큰 나라인데 커지면 공정성이 떨어집니다. 오늘날은 크면 무조건 좋은 것이 됩니다. 양(羊)이 많으면 모든 것이 용납되고 적으면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큰 나라는 자기의 힘을 믿기보다 하나님을 믿고 그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나라입니다. 작은 자, 연약한 자를 위해서 배려할 줄 아는 나라입니다. 큰 나라이지만 상대방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큰 사람, 힘센 사람들이 약한 사람들을 존중하면 사람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됩니다. 하나님은 강자나 약자나 동일하게 다루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큰 나라가 되고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나라에 대해서 반복하십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나라를 세워야 하기 때문에 어떤 나라를 세울 것인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호와께서 ‘큰 나라’를 말씀하실 때 땅이 큰 나라, 군사력이 강한 나라,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를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소유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공의로운 규례와 법도를 가진 나라를 큰 나라로 보십니다. 하나님이 크시기 때문에 크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소통하게 되면 크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덧입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덧입습니다. 그래서 돈이 많고 권력을 가진 사람이 큰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을 지키는 사람, 영향력이 있는 사람, 도덕성이 있는 사람, 원대한 비전을 품은 사람이 진정으로 큰 사람입니다.
둘째, 음성으로 임하신 하나님(9-40).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백성을 모이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10절을 보십시오. “네가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에게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주어 그들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를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리라 하시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호렙 산 아래에 모이자 그 산에 불이 붙어 불길이 충천하고 어둠과 구름과 흑암이 덮였는데 여호와께서 불길 중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셨지만 음성뿐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소리만 듣고 형상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시오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언어 속에는 인격이 담겨 있습니다. 언어는 형상보다 상상력을 자극해서 진리를 풍성하게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세미한 음성으로 나타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형상으로 만들면 그 모양으로 한계를 짓게 됩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신데 형상을 만들면 유한 속에 갇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신비한 분이신데 규정이 됩니다. 형상은 패턴을 만듭니다. 패턴을 만들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형상을 만들면 획일화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어떤 형상도 갖고 계시지 않은, 따라서 어떤 형상으로도 조작될 수 없는 영적인 존재이십니다. 또한 택한 백성들에게 규례와 법도를 정해 지킬 것을 명령하시는 초월적인 존재이십니다. 여호와께서 음성으로만 자신을 나타내셨으므로 백성들은 목소리로 들은 말씀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바알주의는 눈으로 보는 신앙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신앙은 음성으로 듣는 신앙입니다. 보는 것은 제한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말씀을 읽고 깊이 묵상하고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 한없이 성장하고 진리가 풍성해집니다. 현대인은 비주얼한 것, 영상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음성으로 들린 말씀, 문자로 기록된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신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또 말은 정해지지 않습니다. 의미를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이나 십년 후나 똑 같으면 우상이 되기 쉽습니다. 물론 고정되면 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음성으로 말씀하심으로 우리가 깨어서 듣고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그들이 눈으로 본 그 일들을 잊어버리지 말고 가르치라고 하십니다. 사람은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기억을 해야 합니다. 잊어먹지 않도록 반복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과거의 일을 잊어버리면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게 됩니다. 말씀을 잊어버리면 하나님이 주시는 현재의 말씀과 방향을 무시하고 거역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부모의 영향력이 중요합니다. 신명기는 제사장이나 다른 종교지도자들이 아니라 부모들이 그들 자녀의 영적 교육을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스라엘이 어떤 형상으로든지 우상을 만들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호렙 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그들이 어떤 형상도 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부패하여 어떤 형상으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남자의 형상이든지, 여자의 형상이든지, 땅 위에 있는 어떤 짐승의 형상이든지, 하늘을 나는 날개 가진 어떤 새의 형상이든지, 땅 위에 기는 어떤 곤충의 형상이든지,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어족의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고 하십니다. 또 그리하여 그들이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해와 달과 별들, 하늘 위의 모든 천체 곧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배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우상을 만드는 이유는 자기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신앙생활이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이런 신앙생활은 부패하게 됩니다.
그들은 스스로 삼가서 여호와께서 그들과 세우신 언약을 잊지 말고 하나님께서 금하신 어떤 형상의 우상도 조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소멸하는 불이 되셔서 쓸모없이 된 그들을 태워서 없애실 것입니다. 그리고 금속을 정련하듯이 꼭 필요한 사람, 끝까지 범죄하지 않은 사람들만을 남기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독점적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절대적으로 사랑하십니다. 그러니 그들에게도 그런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또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우상에게 빼앗기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는 배타성을 가지셨습니다. 절대적이고 유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만 돌려야 마땅한 영광을 다른 신들에게 돌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절대로 하나님과 맺은 시내산 언약을 잊으면 안 됩니다. 특히 우상을 조각하여 하나님처럼 섬기는 죄에 빠지면 안 됩니다. 우상을 만들면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함으로 그의 노를 일으킬 것입니다. 또 그들이 얻는 땅에서 속히 망하게 될 것입니다. 거기서 그들의 날이 길지 못할 것입니다. 또 여호와께서 그들을 여러 민족 중에 흩으실 것입니다. 또 여러 민족 중에 그들의 남은 수가 많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들이 사람의 손으로 만든 바 보지도 못하며 듣지도 못하며 먹지도 못하며 냄새도 맡지 못하는 목석의 신들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포로 생활을 하면서 곤고하게 될 때에 그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될 것입니다.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게 됩니다. 이 모든 일로 그들이 환난을 당하다가 끝날에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그의 말씀을 청종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자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그 자녀들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멸하지 아니하시며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어떤 국민이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생존하였습니까?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습니까? 이는 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나타내심은 그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신명기에서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원 받은 사실을 약 20번 언급합니다. 모세는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미래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과거 역사에 대한 기억이 중요합니다. 우리도 개인적으로 과거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을 끊임없이 기억하고 감사할 때 두려움이 없어지고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며 목적지를 향해 전진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규례와 법도를 행함으로 큰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상을 숭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고 이웃과 후손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상을 강조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르치는 일에 더욱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을 공부하며 더욱 분명하고 풍성한 신앙생활을 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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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회 다운로드 | DATE : 2015-01-25 14:2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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