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 슥5강(9,10장)/ 우리의 요새이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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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스가랴서 공부 제 5 강 183
말씀 / 스가랴 9:1-10:12b
요절 / 스가랴 9:12
우리의 요새이신 하나님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 너희는 보장으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날도 이르노라 내가 배나 네게 갚을 것이라(슥 9:12)."
스가랴 선지자는 여덟 가지 환상을 보면서 천사에게 묻고 응답을 받는 과정에서 성전 재건을 통한 이스라엘의 회복을 증거했습니다. 더 나아가 참 성전되시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에 대한 예언을 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함께 은혜 받을 말씀은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메시야의 구원 사역에 대한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새 해에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덧입고 왕되신 예수님을 깊이 영접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I. 열방에 대한 심판(9:1-8)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가 하드락 땅에 임하며 다메섹에 머물렀습니다. 하드락과 다메섹은 수리아의 지명들입니다. 수리아는 주변 국가들과 함께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세상 사람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보았습니다. 역으로 하나님의 눈은 세상 사람들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그는 교만하고 불의한 세상 나라들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경고가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공동체에 임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개인의 인격이 있듯이 국가는 국격이 있으며 개인의 죄가 있듯이 국가적인 죄도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의 죄에 대해서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수리아뿐만 아니라 그 접경에 있는 두로와 시돈에도 임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들의 죄가 무엇입니까? 두로와 시돈은 넓은 세상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역을 통해서 부를 축적했고 세상의 여러 가지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서 많은 지식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섬나라로서 해양 산업이 매우 발달해 있었습니다. 두로는 비록 작은 섬이지만 높이 45미터나 되는 성으로 방위되어 있었습니다. 그 나라는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앗수르의 살만에셀 왕이 5년 동안 포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느부갓네살은 13년 동안 포위했지만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두로는 정보뿐만 아니라 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해상 무역으로 돈을 벌어 은을 티끌같이, 정금을 거리의 진흙같이 쌓았습니다. 그들의 교만은 하늘을 찌르듯 하였습니다.
그러나 4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그를 쫓아내시며 그의 바다 권세를 치시리니 그가 불에 삼키울지라.” 이 예언대로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서 그 나라는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육지에서 두로까지 폭 60미터, 길이 800미터의 방파제를 쌓아서 두로 성을 공격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두로가 멸망할 때에 7개월 동안 포위해서, 6,7천명이 학살당했고, 2천명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3만명이 노예로 팔려 갔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재물과 바다 가운데 있는 섬으로서 요새를 구축하고 교만해진 그들을 하나님은 처참하게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과 같이 세계열강들의 교만에 대해서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우리가 조금 잘 살게 되었다고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입니다.
두로와 시돈이 멸망하는 것을 보고 그 주변 국가들이었던 아스글론이 보고 무서워하며 가사도 심히 아파할 것이며 에그론은 그 소망이 수치가 되므로 역시 그러할 것입니다. 가사에는 임금이 끊칠 것이며 아스글론에는 거민이 없을 것이며 아스돗에는 잡족이 거하게 될 것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대로 알렉산더 대왕이 블레셋을 칠 때에 가사에 있던 임금을 사로잡아 갔고 가사의 왕은 마차에 묶여서 온 성읍을 끌려 다니면서 수치를 당했다고 합니다. 또한 다른 나라 사람들을 이주시켜서 아스돗은 잡족이 거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블레셋의 교만을 끊고 그 입에서 그 피를, 그 잇사이에서 그 가증한 것을 제하십니다. 이는 그들이 가증스러운 우상의 제물을 먹는 악습을 버리도록 하시며, 다른 민족을 착취하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심판하신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 돌아와서 유다의 한 두목같이 되게 하시며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같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들을 심판하시는 목적이 그들도 자기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 그 백성으로 삼고자 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백성들이 구원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만민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일본과 중국뿐 아니라 세상 만민을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주변 나라들을 심판하시는 중에도 그 택한 백성은 보호하십니다. 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둘러 진을 쳐서 적군을 막아 거기 왕래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예언대로 알렉산더가 이스라엘을 침공하려고 했을 때 꿈에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서 그를 영접하였는데 실제로 대제사장이 그를 영접하고 성경에 그에 대해서 예언된 것을 들려주자 이스라엘을 침공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보호하고 안식일을 지키도록 했습니다.
II. 도래할 메시야에 대한 예언(9:9-10:12)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보호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왕이 되십니다. 9절을 보십시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시온의 딸은 딸 같은 시온 곧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의 딸이라는 말도 역시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크게 기뻐하고 즐거이 부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왕이 임하게 때문입니다. 당시 그들은 바사 제국의 통치 하에 있었기 때문에 왕이 없었습니다. 충성하고 헌신할 대상이 없었습니다. 왕이 없는 그들은 보호도 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진정한 왕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이 왕은 메시야 곧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는 공의로우십니다. 그는 그 백성을 원수들의 무리한 침략 아래 두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공의를 발동하여 구원해 주십니다. 이 공의는 죄의 노예된 그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히우는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가 그 백성들의 죄값을 담당하시므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그는 왕으로서 죄와 원수 사망 권세로부터, 마귀의 권세로부터 그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그는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겸손하게 통치하십니다. 그는 평화의 상징인 나귀 새끼를 타고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그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은 진정한 평화를 맛보게 됩니다. 그 평화는 어디까지 이르게 됩니까?
10절을 보십시오.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알렉산더나 시이저나 나폴레옹이나 수많은 영웅들은 무력으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드골은 프랑스는 칼에 의해서 평화를 유지시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상식입니다. 그런데 칼에 의해서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질까요? 외적인 평화는 가져올 수 있을지 몰라도 내면의 평화까지는 가져올 수 없습니다. 칼은 칼을 부릅니다. 복수는 복수를 낳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칼을 쓰는 자는 다 칼로 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병거와 말과 활을 끊고 이방 사람들에게 화평을 전하십니다. 그의 정권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의해서 이루어지지만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초림하심으로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재림하실 때에 완성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폭력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 갈 것입니다. 또한 그 나라는 한 민족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이고 영원할 것입니다. 현 세계 질서는 힘과 철저한 국가 이기주의에 기초해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공의는 힘으로 원수를 이겨야 가능합니다. 전능하신 예수님은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 말씀으로 진정한 평화를 가져오십니다. 그가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만이 우리의 진정한 소망입니다.
빌리 그래함은 하나님과의 평화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 시대의 절망스러운 모습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전쟁, 기근, 음란, 탐욕, 폭력, 두려움, 불안 등등,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마약을 복용하기도 하고 잊고자 애를 쓰기도 하고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수면제는 갈수록 사용량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사람들은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실 수 있습니다. “이 평화를 얻으려고 주 앞으로 나아갈 때 주 예수님 우리에게 이 평화주리로다 평화 평화 하나님 주신 선물 오 크고 놀라운 평화 하나님 선물일세(찬468)” 하나님과 평화한 사람은 사람들과도 평화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평화의 전파자가 될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의 내면에 있는 평화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11, 12절을 보십시오.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를 인하여 내가 너의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 너희는 보장으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날도 이르노라 내가 배나 네게 갚을 것이라.” 지금 이스라엘은 물 없는 구덩이에 갇힌 상태였습니다. 앞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사방을 둘러보아도 길이 막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구덩이에 갇혔는데 물 없는 구덩이였습니다. 물 없는 구덩이란 절대 절망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소망을 품었지만 갇혔습니다. 이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있던 유대인들의 상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제 36년 동안 갇혀 있었을 때 소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은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요 애굽의 노예로 살았듯이 현대인들은 돈의 노예요, 음란의 노예요, 이기심의 노예요 죄의 노예와 같은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소망은 있지만 출구가 보이지 않으면 자살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카드빚을 지고 도저히 갚을 길이 보이지 않아 자녀들과 함께 동반 자살을 합니다. 사람들은 현실의 고통이 도저히 끝날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때 소망을 잃고 자살을 합니다. 지난 한 해 우리 나라에서 13055명이 자살을 했습니다. 한달에 1080명, 하루 37명이 자살을 했습니다. 이는 교통사고로 죽은 자보다 자살한 사람이 더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한다는 것은 보장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을 보호해줄 요새를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의미 치료 심리학자인 빅터 프랭크가 쓴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에 보면,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유대인 수용소인 아우슈비츠 경험이 적혀있습니다. 그 수용소의 포로들은 그 지옥 같은 환경 속에서도 "나는 살아날 수 있다. 언젠가 나는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따뜻한 침실에서 잘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라는 희망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크리스마스와 신년이 지나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는다고 합니다. 크리스마스와 신년에 기대했던 석방의 꿈이 좌절되자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죽었다는 것입니다. 소망을 품지 못하면 이렇게 살 이유와 의욕과 힘을 잃고 죽게 됩니다. 1950년대 베를린 대학 피아노 교수로 유명하였던 헐만 씨는 나치 독일 때 전쟁 반대자로서 강제 노동 수용소에 갇혔다가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그는 하루 종일 심한 노동을 하고 지쳐버린 몸으로 매일 한 시간씩 잠들기 전에 나무 침대를 피아노 건반 삼아 연습하였다고 합니다. 후에 '무엇이 죽음의 수용소에서 당신을 살아 남게 하였는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나는 반드시 다시 피아노를 연주할 것이다.'라는 불굴의 소망 때문이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레퍼토리들은 한없이 반복되며 수용소 연주장에서 밤마다 공연되었다. 소리는 나지 않았으나 나의 소망의 귀에는 그 아름다운 곡들이 쟁쟁히 울리고 있었다."
하나님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믿음으로 소망을 품은 자들을 기뻐하시고 “소망을 품었던 갇혔던 자들아 너희는 보장으로 돌아올찌니라”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배나 갚아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배나 갚아주신다는 것은 그동안 받는 고난에 대해서 꼭 두 배로 보상해 주신다는 뜻이 아니라 상상을 초월해서 많이 보상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90년대부터 어려워진 캠퍼스 복음 역사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소망을 품지 못하고 ‘UBF의 일대일 성경공부 방법이나 제자양성이나 세계 선교는 소망이 없다’하며 캠퍼스 복음 역사를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말씀의 능력을 믿고 복음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믿고 소망을 품고 이날 까지 남은 분들에게 하나님께서 배나 갚아주실 것을 믿습니다. 올해는 소망을 품었던 우리에게 하나님의 배나 갚아주시는 역사가 충만히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13-17절은 그 백성이 헬라의 침략을 당할 때에 보호해 주시고 친히 싸워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내가 유다로 당긴 활을 삼고 에브라임으로 먹인 살을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식을 격동시켜 헬라 자식을 치게 하며 너로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많은 주석가들은 이 귀절부터 유대 나라가 유다 마카비의 지도 하에서 헬라의 실루 시대의 왕조를 승리할 일에 대한 예언이라고 말합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 위에 나타나서 그 살을 번개같이 쏘아 내실 것이며 주 여호와께서 나팔을 불리시며 남방 회리바람을 타고 행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호위하시리니 그들이 원수를 삼키며 물매 돌을 밟을 것이며 그들이 피를 마시고 즐거이 부르기를 술 취한 것같이 할 것인즉 피가 가득한 동이와도 같고 피 묻은 제단 모퉁이와도 같을 것이라.” 주님은 온유하실 뿐만 아니라 강력한 전사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들을 통해서 악령의 역사를 제압하시며 승리를 이루어가십니다.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 떼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면류관의 보석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게 될 것입니다. 그의 형통함과 그의 아름다움이 어찌 그리 큰지 소년은 곡식으로 강건하며 처녀는 새 포도주로 그러할 것입니다(16,17). 양떼는 공격용 무기가 없고 무능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구원을 받게 될 그 날에 그들은 면류관의 보석같이 여호와의 땅에서 빛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형통함과 아름다움이 풍성한 삶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가 여호와 하나님께 비를 구하라고 합니다. 10장 1절을 보십시오. “봄비 때에 여호와 곧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리라.” 비는 하나님이 주시는 자연계의 축복을 상징하지만 영적 은혜도 비유합니다. 영적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시는 성령의 감화입니다. 우리를 축복하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으니 그에게 부르짖어야 합니다. 대저 점이나 토정비결 등 복술자는 진실치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하며 허탄한 것을 보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것들을 의지하는 자는 길 잃은 양같이 유리하며 필경은 망하게 됩니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입니다. 우리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은혜를 베풀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지도자들에게 노를 발하시며 그들을 치십니다. 그러나 유다 족속을 전쟁의 준마와 같게 하십니다(3). 그리고 유다 족속에게서 참 목자가 나오게 하십니다(4,5). 메시야는 교회의 토대인 '모퉁이 돌'이고, 또 백성의 모든 영광과 소망을 걸어놓는 말뚝이며, '싸우는 활'처럼 적에 대하여, 공격력이 있고, 또 그 백성의 '권세 잡을 자'입니다. 이 주 안에서 그들은, 힘차게 싸우는 까닭에, 기병으로 된 적은 패배하고(5), 하나님의 백성은 크게 승리하여 기뻐합니다(7). 그들은 그 기도에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 구속되고, 여러 곳에서 불러내어 본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홍해가 열리고, 요단강이 멈춘 것 같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곳에, 모든 곤란한 장애는 제거됩니다(11). 12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들로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케 하리니 그들이 내 이름을 받들어 왕래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상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요새시오 소망이 되심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올 한 해 하나님께 연요절로 잡은 기도 제목들을 아뢰고 배나 받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깨서 우리 각자에게 우리의 인생을 불태울 수 있는 비전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스가랴 9:1-10:12b
요절 / 스가랴 9:12
우리의 요새이신 하나님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 너희는 보장으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날도 이르노라 내가 배나 네게 갚을 것이라(슥 9:12)."
스가랴 선지자는 여덟 가지 환상을 보면서 천사에게 묻고 응답을 받는 과정에서 성전 재건을 통한 이스라엘의 회복을 증거했습니다. 더 나아가 참 성전되시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에 대한 예언을 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함께 은혜 받을 말씀은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메시야의 구원 사역에 대한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새 해에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덧입고 왕되신 예수님을 깊이 영접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I. 열방에 대한 심판(9:1-8)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가 하드락 땅에 임하며 다메섹에 머물렀습니다. 하드락과 다메섹은 수리아의 지명들입니다. 수리아는 주변 국가들과 함께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세상 사람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보았습니다. 역으로 하나님의 눈은 세상 사람들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그는 교만하고 불의한 세상 나라들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경고가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공동체에 임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개인의 인격이 있듯이 국가는 국격이 있으며 개인의 죄가 있듯이 국가적인 죄도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의 죄에 대해서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수리아뿐만 아니라 그 접경에 있는 두로와 시돈에도 임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들의 죄가 무엇입니까? 두로와 시돈은 넓은 세상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역을 통해서 부를 축적했고 세상의 여러 가지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서 많은 지식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섬나라로서 해양 산업이 매우 발달해 있었습니다. 두로는 비록 작은 섬이지만 높이 45미터나 되는 성으로 방위되어 있었습니다. 그 나라는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앗수르의 살만에셀 왕이 5년 동안 포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느부갓네살은 13년 동안 포위했지만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두로는 정보뿐만 아니라 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해상 무역으로 돈을 벌어 은을 티끌같이, 정금을 거리의 진흙같이 쌓았습니다. 그들의 교만은 하늘을 찌르듯 하였습니다.
그러나 4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그를 쫓아내시며 그의 바다 권세를 치시리니 그가 불에 삼키울지라.” 이 예언대로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서 그 나라는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육지에서 두로까지 폭 60미터, 길이 800미터의 방파제를 쌓아서 두로 성을 공격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두로가 멸망할 때에 7개월 동안 포위해서, 6,7천명이 학살당했고, 2천명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3만명이 노예로 팔려 갔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재물과 바다 가운데 있는 섬으로서 요새를 구축하고 교만해진 그들을 하나님은 처참하게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과 같이 세계열강들의 교만에 대해서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우리가 조금 잘 살게 되었다고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입니다.
두로와 시돈이 멸망하는 것을 보고 그 주변 국가들이었던 아스글론이 보고 무서워하며 가사도 심히 아파할 것이며 에그론은 그 소망이 수치가 되므로 역시 그러할 것입니다. 가사에는 임금이 끊칠 것이며 아스글론에는 거민이 없을 것이며 아스돗에는 잡족이 거하게 될 것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대로 알렉산더 대왕이 블레셋을 칠 때에 가사에 있던 임금을 사로잡아 갔고 가사의 왕은 마차에 묶여서 온 성읍을 끌려 다니면서 수치를 당했다고 합니다. 또한 다른 나라 사람들을 이주시켜서 아스돗은 잡족이 거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블레셋의 교만을 끊고 그 입에서 그 피를, 그 잇사이에서 그 가증한 것을 제하십니다. 이는 그들이 가증스러운 우상의 제물을 먹는 악습을 버리도록 하시며, 다른 민족을 착취하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심판하신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 돌아와서 유다의 한 두목같이 되게 하시며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같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들을 심판하시는 목적이 그들도 자기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 그 백성으로 삼고자 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백성들이 구원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만민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일본과 중국뿐 아니라 세상 만민을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주변 나라들을 심판하시는 중에도 그 택한 백성은 보호하십니다. 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둘러 진을 쳐서 적군을 막아 거기 왕래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예언대로 알렉산더가 이스라엘을 침공하려고 했을 때 꿈에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서 그를 영접하였는데 실제로 대제사장이 그를 영접하고 성경에 그에 대해서 예언된 것을 들려주자 이스라엘을 침공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보호하고 안식일을 지키도록 했습니다.
II. 도래할 메시야에 대한 예언(9:9-10:12)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보호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왕이 되십니다. 9절을 보십시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시온의 딸은 딸 같은 시온 곧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의 딸이라는 말도 역시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크게 기뻐하고 즐거이 부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왕이 임하게 때문입니다. 당시 그들은 바사 제국의 통치 하에 있었기 때문에 왕이 없었습니다. 충성하고 헌신할 대상이 없었습니다. 왕이 없는 그들은 보호도 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진정한 왕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이 왕은 메시야 곧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는 공의로우십니다. 그는 그 백성을 원수들의 무리한 침략 아래 두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공의를 발동하여 구원해 주십니다. 이 공의는 죄의 노예된 그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히우는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가 그 백성들의 죄값을 담당하시므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그는 왕으로서 죄와 원수 사망 권세로부터, 마귀의 권세로부터 그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그는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겸손하게 통치하십니다. 그는 평화의 상징인 나귀 새끼를 타고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그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은 진정한 평화를 맛보게 됩니다. 그 평화는 어디까지 이르게 됩니까?
10절을 보십시오.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알렉산더나 시이저나 나폴레옹이나 수많은 영웅들은 무력으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드골은 프랑스는 칼에 의해서 평화를 유지시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상식입니다. 그런데 칼에 의해서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질까요? 외적인 평화는 가져올 수 있을지 몰라도 내면의 평화까지는 가져올 수 없습니다. 칼은 칼을 부릅니다. 복수는 복수를 낳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칼을 쓰는 자는 다 칼로 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병거와 말과 활을 끊고 이방 사람들에게 화평을 전하십니다. 그의 정권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의해서 이루어지지만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초림하심으로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재림하실 때에 완성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폭력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 갈 것입니다. 또한 그 나라는 한 민족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이고 영원할 것입니다. 현 세계 질서는 힘과 철저한 국가 이기주의에 기초해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공의는 힘으로 원수를 이겨야 가능합니다. 전능하신 예수님은 자신의 죽으심과 부활, 말씀으로 진정한 평화를 가져오십니다. 그가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만이 우리의 진정한 소망입니다.
빌리 그래함은 하나님과의 평화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 시대의 절망스러운 모습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전쟁, 기근, 음란, 탐욕, 폭력, 두려움, 불안 등등,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마약을 복용하기도 하고 잊고자 애를 쓰기도 하고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수면제는 갈수록 사용량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사람들은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실 수 있습니다. “이 평화를 얻으려고 주 앞으로 나아갈 때 주 예수님 우리에게 이 평화주리로다 평화 평화 하나님 주신 선물 오 크고 놀라운 평화 하나님 선물일세(찬468)” 하나님과 평화한 사람은 사람들과도 평화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평화의 전파자가 될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의 내면에 있는 평화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11, 12절을 보십시오.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를 인하여 내가 너의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 너희는 보장으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날도 이르노라 내가 배나 네게 갚을 것이라.” 지금 이스라엘은 물 없는 구덩이에 갇힌 상태였습니다. 앞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사방을 둘러보아도 길이 막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구덩이에 갇혔는데 물 없는 구덩이였습니다. 물 없는 구덩이란 절대 절망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소망을 품었지만 갇혔습니다. 이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있던 유대인들의 상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제 36년 동안 갇혀 있었을 때 소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은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요 애굽의 노예로 살았듯이 현대인들은 돈의 노예요, 음란의 노예요, 이기심의 노예요 죄의 노예와 같은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소망은 있지만 출구가 보이지 않으면 자살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카드빚을 지고 도저히 갚을 길이 보이지 않아 자녀들과 함께 동반 자살을 합니다. 사람들은 현실의 고통이 도저히 끝날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때 소망을 잃고 자살을 합니다. 지난 한 해 우리 나라에서 13055명이 자살을 했습니다. 한달에 1080명, 하루 37명이 자살을 했습니다. 이는 교통사고로 죽은 자보다 자살한 사람이 더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한다는 것은 보장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을 보호해줄 요새를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의미 치료 심리학자인 빅터 프랭크가 쓴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에 보면,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유대인 수용소인 아우슈비츠 경험이 적혀있습니다. 그 수용소의 포로들은 그 지옥 같은 환경 속에서도 "나는 살아날 수 있다. 언젠가 나는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따뜻한 침실에서 잘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라는 희망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크리스마스와 신년이 지나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는다고 합니다. 크리스마스와 신년에 기대했던 석방의 꿈이 좌절되자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죽었다는 것입니다. 소망을 품지 못하면 이렇게 살 이유와 의욕과 힘을 잃고 죽게 됩니다. 1950년대 베를린 대학 피아노 교수로 유명하였던 헐만 씨는 나치 독일 때 전쟁 반대자로서 강제 노동 수용소에 갇혔다가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그는 하루 종일 심한 노동을 하고 지쳐버린 몸으로 매일 한 시간씩 잠들기 전에 나무 침대를 피아노 건반 삼아 연습하였다고 합니다. 후에 '무엇이 죽음의 수용소에서 당신을 살아 남게 하였는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나는 반드시 다시 피아노를 연주할 것이다.'라는 불굴의 소망 때문이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레퍼토리들은 한없이 반복되며 수용소 연주장에서 밤마다 공연되었다. 소리는 나지 않았으나 나의 소망의 귀에는 그 아름다운 곡들이 쟁쟁히 울리고 있었다."
하나님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믿음으로 소망을 품은 자들을 기뻐하시고 “소망을 품었던 갇혔던 자들아 너희는 보장으로 돌아올찌니라”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배나 갚아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배나 갚아주신다는 것은 그동안 받는 고난에 대해서 꼭 두 배로 보상해 주신다는 뜻이 아니라 상상을 초월해서 많이 보상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90년대부터 어려워진 캠퍼스 복음 역사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소망을 품지 못하고 ‘UBF의 일대일 성경공부 방법이나 제자양성이나 세계 선교는 소망이 없다’하며 캠퍼스 복음 역사를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말씀의 능력을 믿고 복음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믿고 소망을 품고 이날 까지 남은 분들에게 하나님께서 배나 갚아주실 것을 믿습니다. 올해는 소망을 품었던 우리에게 하나님의 배나 갚아주시는 역사가 충만히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13-17절은 그 백성이 헬라의 침략을 당할 때에 보호해 주시고 친히 싸워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내가 유다로 당긴 활을 삼고 에브라임으로 먹인 살을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식을 격동시켜 헬라 자식을 치게 하며 너로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많은 주석가들은 이 귀절부터 유대 나라가 유다 마카비의 지도 하에서 헬라의 실루 시대의 왕조를 승리할 일에 대한 예언이라고 말합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 위에 나타나서 그 살을 번개같이 쏘아 내실 것이며 주 여호와께서 나팔을 불리시며 남방 회리바람을 타고 행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호위하시리니 그들이 원수를 삼키며 물매 돌을 밟을 것이며 그들이 피를 마시고 즐거이 부르기를 술 취한 것같이 할 것인즉 피가 가득한 동이와도 같고 피 묻은 제단 모퉁이와도 같을 것이라.” 주님은 온유하실 뿐만 아니라 강력한 전사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들을 통해서 악령의 역사를 제압하시며 승리를 이루어가십니다.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 떼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면류관의 보석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게 될 것입니다. 그의 형통함과 그의 아름다움이 어찌 그리 큰지 소년은 곡식으로 강건하며 처녀는 새 포도주로 그러할 것입니다(16,17). 양떼는 공격용 무기가 없고 무능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구원을 받게 될 그 날에 그들은 면류관의 보석같이 여호와의 땅에서 빛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형통함과 아름다움이 풍성한 삶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가 여호와 하나님께 비를 구하라고 합니다. 10장 1절을 보십시오. “봄비 때에 여호와 곧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리라.” 비는 하나님이 주시는 자연계의 축복을 상징하지만 영적 은혜도 비유합니다. 영적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시는 성령의 감화입니다. 우리를 축복하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으니 그에게 부르짖어야 합니다. 대저 점이나 토정비결 등 복술자는 진실치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하며 허탄한 것을 보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것들을 의지하는 자는 길 잃은 양같이 유리하며 필경은 망하게 됩니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입니다. 우리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 은혜를 베풀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지도자들에게 노를 발하시며 그들을 치십니다. 그러나 유다 족속을 전쟁의 준마와 같게 하십니다(3). 그리고 유다 족속에게서 참 목자가 나오게 하십니다(4,5). 메시야는 교회의 토대인 '모퉁이 돌'이고, 또 백성의 모든 영광과 소망을 걸어놓는 말뚝이며, '싸우는 활'처럼 적에 대하여, 공격력이 있고, 또 그 백성의 '권세 잡을 자'입니다. 이 주 안에서 그들은, 힘차게 싸우는 까닭에, 기병으로 된 적은 패배하고(5), 하나님의 백성은 크게 승리하여 기뻐합니다(7). 그들은 그 기도에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 구속되고, 여러 곳에서 불러내어 본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홍해가 열리고, 요단강이 멈춘 것 같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곳에, 모든 곤란한 장애는 제거됩니다(11). 12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들로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케 하리니 그들이 내 이름을 받들어 왕래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상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요새시오 소망이 되심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올 한 해 하나님께 연요절로 잡은 기도 제목들을 아뢰고 배나 받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깨서 우리 각자에게 우리의 인생을 불태울 수 있는 비전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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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회 다운로드 | DATE : 2004-01-25 09: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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