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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 슥4강(7,8장)/금식이 변하여 희락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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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4,429회 작성일 04-01-18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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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스가랴서 공부 제 4 강                                                       
말씀 / 스가랴 7:1-8:23
요절 / 스가랴 8:19

금식이 변하여 희락이 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월의 금식과 오월의 금식과 칠월의 금식과 시월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지니라(슥 8:19).”

  오늘 제목은 소망이 넘치는 말씀입니다. 금식이 변하여 희락이 되리라는 말씀은 듣기만 해도 은혜가 됩니다. 7장은 성전이 완성되어 가고 있는데 금식을 계속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응답이 나오고 8장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거하심으로 이루어지게 될 축복에 대한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이 형식적인 금식을 버리고 거룩한 백성다운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정직과 긍휼을 가진 자녀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때 금식이 변하여 희락이 됩니다. 이 모든 일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시간 주님께서 이루실 복된 날들을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I. 누구를 위한 금식인가(7:1-14)

  다리오 왕 사년 구월 곧 기슬리월(태양력12월) 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했습니다. 다리오왕 2년 팔월(태양력 11월)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해서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했고 육년 아달월(태양력 3월) 삼일에 성전 건축을 마쳤습니다. 이를 살펴 볼 때 지금은 한참 외부 공사를 마치고 내부 공사가 진행될 때였습니다. 성전 모습이 규모를 갖추어 가는 것을 볼 때 모든 백성들에게 기쁨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벧엘 사람이 사레셀과 레겜멜렉과 그 종자를 보내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고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여러 해 동안에 행한 대로 오월간에 울며 재계하리이까?” 오월은 성전과 왕궁이 파괴된 날입니다. 그들은 이 날을 기억하여 다시는 그런 수치를 당하지 않고자 역사화시켰습니다. 그들은 역사의식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일본에 합병되었던 날(1905년 11월 을사조약)을 대부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70년 동안 그 날을 기억하며 금식했습니다. 역사를 잃어버리면 생명을 잃는 것입니다. 역사는 생명 자체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100년 전의 상황과 흡사한 강대국들의 도전과 위협 속에 있습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 주장 등 국가가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롭게 역사의식을 회복하여 나라의 미래를 열어야 합니다.

  지금 유대인들은 성전 건축이 착착 진행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에 금식을 하면서 슬픈 기색을 띠기보다는 기쁜 마음으로 축제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또한 금식이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의미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금식을 괜히 생고생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금식을 하라, 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더 중요한 동기를 물어보셨습니다.

  4-6절을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너희의 먹으며 마심이 전혀 자기를 위하여 먹으며 자기를 위하여 마심이 아니냐” 금식은 기본적으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번제와 다른 제사보다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삼상15:22). 하나님은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기를 원하십니다(고전 10:31). 그런데 그들은 오래 동안 금식을 하면서 형식화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자 금식했습니다. 그 결과 금식을 하나 안하나 생활이 전과 똑같았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에 끌려간 이유는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했을 때는 예루살렘 사면 읍에 백성이 거하여 형통하였고 남방과 평원에도 사람이 거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을씨년스럽게 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참된 금식이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가 이미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피차에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남을 해하려 하여 심중에 도모하지 말라” 금식을 하건 안하건 중요한 것은 삶입니다. 삶의 내용입니다. 그들이 정직하고 사랑으로 모든 일을 해야 했습니다. 공의와 사랑, 정직과 사랑은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입니다. 예배를 잘 보고 돌아가면 가정에서 사랑으로 섬기고, 직장에서 거룩한 백성다운 삶을 살므로써 변화를 일으켜야 합니다. 새벽 기도, 소감 쓰기, 일대일, 청소하기, 음식으로 섬기기, 금요기도 모임 등등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일을 마음을 드려서 하면 우리의 영혼이 새로워지고 영적인 힘을 얻게 됩니다. 성도의 교제 속에서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은혜를 받아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면 본래의 목적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주 소감을 쓰면 한 주 해야 할 일을 다 한 것 같습니다. 사실 소감을 마음을 바쳐 쓰면서 우리는 내면의 상처들이 치료되고 혼란스럽던 일들이 정리가 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행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소감 쓰는 맛을 알기 때문에 쓰지 못하면 자책감에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진실되게 소감을 쓰고 말씀대로 살고자 부족한대로 투쟁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변화와 성장을 체험하게 됩니다. 매일 새벽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때로 피곤하고 슬프던 마음이 사라지고 기쁨이 생기고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샘물 같이 솟아납니다. 그래서 하루 하루 승리할 수 있습니다. 새벽을 깨워 승리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살아 있다는 강한 인상을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청종하기를 싫어하여 등으로 항하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므로 크게 노하신 사실을 상기시키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자 이어폰을 끼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을 딱딱하게 하여 말씀을 받지 않고자 애를 썼습니다. 그들 마음 가운데 하나님과 그 말씀에 대한 반발심이 자랐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들을 때 습관적으로 졸았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이렇게 마음을 금강석 같이 단단하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내친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13,1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먼저 그들이 불러도 응답하지 않으시고 열국으로 흩어지는 심판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겼습니다. 자기들이 정치와 경제, 외교를 잘 운영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벨론을 일으키셔서 그들을 침공하게 하셨고 그 나라를 황무하게 하시고 쓸만한 사람들은 모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하심으로 황폐하게 하셨습니다(14b). 하나님은 그 백성이 회개하도록 오래 기다리셨으나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을 때 무섭게 진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땅을 황무하게 하였습니다.

 II. 금식이 변하여 희락으로(8:1-23)

  하나님께서는 시온을 위하여 질투하십니다. 질투한다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생기는 분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분노하셨지만 이제는 시온에 돌아와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임재로 인해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길거리에 늙은 지아비와 늙은 지어미가 다시 앉을 것입니다. 그들은 다 나이 많으므로 각기 손에 지팡이를 잡을 것입니다. 전쟁으로 인해서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노인과 어린아이들입니다. 그런데 노인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평화가 지속된다는 말입니다. 노인들의 지혜와 경륜을 젊은이들이 배우고 시니어들이 존경을 받습니다. 원로들이 있는 공동체는 무게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성읍 거리에 동남과 동녀가 가득하여 거기서 장난을 합니다. 고무줄 놀이, 땅따먹기 놀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면서 아이들로 왁자지껄할 것입니다. JBF 형제 자매들과 새내기들이 센타에서 키타도 치고 찬송도 하고 축구도 하면서 생동감이 넘치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CBF 어린이들이 자라면서 역사는 배가 될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공동체는 미래가 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백성들의 눈에는 이렇게 예루살렘에 노인들이 많아지고 어린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은 기이한 것입니다. 지금 예루살렘 성읍에는 사람이 별로 없어 황무합니다. 대적들로 인해서 불안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시기만 하면 그런 것은 일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동방에서부터, 서방에서부터 구원하여 내고 인도하여다가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성실과 정의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우리 가운데 새내기들로 가득한 역사가 일어나도록 하려면 그런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임 가운데 임재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려면 우리가 그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두세 사람이 합심하여 기도하는 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기도와 사랑의 사람이  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강력하게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축복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에게 한 가지 명령을 하셨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집 곧 전을 건축하려고 그 지대를 쌓던 날에 일어난 선지자들의 입의 말을 이 때에 듣는 너희는 손을 견고히 할지어다.” 성전 재건을 위해서 힘쓰던 그들이 삯도 제대로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마음이 힘들어졌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다른 일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삯을 받지 못하니 성전 건축 역사를 위해 일할 수 없게 되었고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이방인들의 집에 가서 머슴살이나 파출부 일을 해 주어야 했습니다. 혼자 벌어 가족들이 먹고 살기 힘들기 때문에 맞벌이 부부를 하는 가정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짐승도 삯을 받지 못하자 힘을 낼 수 없었습니다. 또 여호와의 전이 건축되는 것을 싫어하는 대적들의 위협으로 성전 건축에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는다, 성전을 건축할 때가 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원하시지도 않는 일인데 우리가 왜 이 고생을 하면서 성전을 건축하느냐?’ 등등의 불신과 원망불평을 하게 되었고 성전 건축을 위해서 일해야 할 팔은 점점 힘을 잃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에게 이제는 그들을 전과 같이 대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11). 이제는 백성들이 평안한 추수를 얻을 것이며,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고 땅이 산물을 내고 하늘은 이슬을 내려서 풍년이 들게 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또 1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그들이 전에는 저주를 받는 자들이 되었으나 이제는 그들을 구원하여 축복이 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축복과 안정을 약속해 주시고 그들에게 명하셨습니다. 13b절을 보십시오. “두려워 말찌니라. 손을 견고히 할찌니라”

  하나님은 그 백성이 성전을 건축하는 팔을 강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성전 건축에 힘을 내어서 성전을 완공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성전을 건축함으로 성전 예배가 회복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생활,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거룩한 생활을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성전을 통해서 하나님의 죄사함이 임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지치고 연약해진 팔을 다시 강하게 하여 돌을 나르고 나무를 잘라오고 길을 내며 장려한 성전을 건축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형편이 당장에 좋아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성전을 건축하는 그들의 팔을 강하게 할 수 있습니까?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대적들과 장래 염려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전을 완공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소망과 뜻을 위해서 헌신해야 합니다. 이런 믿음과 소원을 가지면 현실의 역경은 그들의 팔을 약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뿐입니다. 문제는 믿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데서 오는 거룩한 소원과 열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집 곧 전을 건축하려고 그 지대를 쌓던 날에 일어난 선지자들의 말을 이때에 듣는 너희는 손을 견고히 할찌니라.” 하나님은 그 백성의 처지를 이해하시고 그들과 함께 하셔서 승리의 삶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믿고 강한 힘을 발휘해서 성전 건축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팔을 강하게 하면 일이 가볍게 느껴지고 힘든 일도 쉽게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인생은 일하면서 살도록 두 팔이 주어졌습니다. 공부하는 팔, 일하는 팔을 강하게 하면서 영적 성전을 건축하는 팔을 강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정과 캠퍼스와 직장에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을 세우고 세계 233개국 캠퍼스에 주님의 몸 된 성전을 세우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받을 것이 확실한 그들에게 어떤 삶을 살라고 명하셨습니까? 16,17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각기 이웃으로 더불어 진실을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심중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나의 미워하는 것임이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은 그들이 힘든 현실로 인해서 이기적이 되고 그로 인해서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고 분열되는 일이 없도록 연약한 자들을 돌보고 공의롭게 행하며 서로를 존중함으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팔을 견고히 하여 성전을 건축하면 어떤 은혜가 주어집니까? 19절을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월의 금식과 오월의 금식과 칠월의 금식과 시월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찌니라” 당시 이스라엘은 일년에 네 번 국가적인 금식 기간을 가졌습니다. 그것은 모두 성전이 파괴되고 나라를 잃고 포로로 잡혀오게 된 것을 잊지 않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금식은 아픈 과거를 회상케 하였고 죄를 기억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수치를 당하지 않고자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금식을 할수록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고, 장래는 암담하게 보였습니다. 이런 그들의 삶에는 참된 기쁨과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그들의 금식이 변하여 희락의 절기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습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성전 건축을 통해서 그들의 신앙을 바로 세우시고 그들과 함께 거하심으로 다시는 진노와 저주가 없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속에서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은 참 성전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심으로 온전히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나 우리 인간의 죄를 없이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죄 없는 몸으로 우리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뒤집어쓰시고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저주를 다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여 죽음을 이기고 영생의 문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어떤 죄인이든 값없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죄로 인한 저주에서 해방되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참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을 누릴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밝고 긍정적인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기쁨은 세상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줍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금식이 변하여 희락이 되면 그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납니까? 20-22절을 보십시오. 그때에 여러 성읍의 백성들이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하면서 그들을 찾아오게 됩니다. 여러 도시와 홍익대와 주변의 대학에서 학생들이 몰려 올 것입니다. 강대한 나라들도 자신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오게 됩니다. 그리고 23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는 언어가 다른 외국인 열명이 한 명의 유다 사람의 옷자락을 잡고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제발 너희를 따라 갈테니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해 주시오’하며 애걸하며 따라오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목자가 양들을 찾아 다니는 것이 아니라 양들이 떼거리로 목자를 찾아다니게 될 것입니다. 모든 목자들이 외국인 제자 10명 이상을 인도하는 권능 있는 성경 선생들이 된다는 뜻입니다. 사 49:6절에서도 이와 동일한 약속이 있습니다. “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인생의 짐과 제자 양성의 한계로 인해서 슬퍼하고 근심하는 우리들에게 귀한 소망의 말씀을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슬픔과 낙망과 두려움의 금식이 변하여 희락이 되게 하시고, 이방인들의 목자요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가 늘 이 은혜의 하나님 안에서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고 복음 전파와 제자 양성을 통해서 영적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더욱 힘 있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설날에 각 가정에 복음이 증거되고 여러분들이 복의 근원들이 다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의 가정마다 슬픔이 변하여 희락이 되는 역사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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